귀머거리 할아버지
1. 첫 아들네 집
시골서 농사를 짓던 노인이 힘이 부쳐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들들이 사는 서울로 왔습니다.
할머니는 돌아가신 지 5년이 넘었습니다.
혼자 외롭게 사는 아버지를 알면서도 아들 삼 형제가 있고 딸 하나가 있지만 아무도 아버지를 모시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보따리를 둘러메고 큰아들을 찾아갔습니다. 손자들은 할아버지가 오셨다고 좋아하였습니다.
“할아버지, 이제 우리하고 같이 사실 거예요?”
할아버지는 손자들이 말하는 입을 바라보시면서 대답했습니다.
“오냐, 너희들과 살라고 왔다. 좋으냐?”
이때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할아버지 전화예요. 전화 받으세요.”
“오냐, 너희들과 살라고 왔다. 좋으냐?”
“전화예요.”
“고구마?”
“전화예요.”
“강아지?”
“아이, 할아버지는 귀머거린가 봐.”
“누가 왔다고?”
“전화 받으세요.”
“오냐, 너희들과 살라고 왔다. 좋으냐?”
“어이구, 할아버지는 못 말려. 전, 화, 예, 요!”
“저울질?”
손자 손녀가 할아버지에게 전화 받는 시늉을 했습니다.
그제야 할아버지는 알았다고 전화기를 집어들었습니다.
“여보세요. 뭐라구요? 뭐라구?”
저쪽에서 무어라고 하는 것 같은데 할아버지는 전혀 못 알아듣는 것이었습니다.
“달이 떴다고?”
보다 못한 손자가 받았습니다.
“여보세요, 성북동인데요.”
저쪽에서 말했습니다.
“어른 바꿔.”
“알았어요, 할아버지 바꿔드릴게요.”
손자가 내미는 전화기를 할아버지가 받았습니다.
“전화 바꿨습니다.”
저쪽에서 뭐라고 했는지 알 수 없지만 할아버지 대답은 이상했습니다.
“오늘이 장날이라고요? 뭐라구. 개똥밭에 살아도 이승이 좋다구? 암암. 그렇지, 그렇고말고, 오늘 댁이 결혼을 했다구? 축하하오.”
옆에서 듣고 있던 손자가 전화기를 받아들었습니다.
“여보세요?”
아무 소리도 없었습니다. 손자는 할아버지를 원망스럽다는 듯 바라보았습니다.
“할아버지, 전화가 끊어졌잖아요?”
“불이 났다구?”
“이유 답답해. 전화가 끊어졌다구요!”
“오냐, 너희들과 살라고 왔다. 좋으냐?”
손자들은 할아버지가 귀머거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웃는 얼굴로 손자들을 사랑했습니다.
첫날은 큰아들과 며느리가 반가워하더니 며칠 못 가서 며느리의 눈치가 달라졌습니다.
며느리가 남편을 잡고 말했습니다.
“여보, 아버님이 귀가 절벽이에요. 저래가지고 어떻게 사시는지 몰라. 답답해서 살 수가 없어요.”
“참고 살아야지, 늙어서 못 알아듣는 거야 어쩔 수 없지 않소?”
“어느 정도래야지요. 맨몸으로 올라오셔서 돌아가실 때까지 우리 신세만 지실 작정인가요?”
“신세라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하오? 자식이 부모를 모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오?”
“그건 다 옛날 이야기예요. 지금 법적으로 큰아들 작은아들이 있는 줄 알아요? 유산은 딸까지도 똑같다구요.”
“아버님 들으시겠소. 조용히 하시오.”
“듣긴 뭘 들어요. 귀가 절벽인데요. 당신은 답답하지도 않아요?”
“나라고 왜 답답하지 않겠소?”
“아버님은 돈 한푼 없이 오셨나 보지요?”
“아버님은 종손으로 조상님들이 주신 땅을 갈면서 우리를 기르셨소. 그러나 우리가 농사를 짓지 않겠다고 하니 이십 년이나 혼자 농사를 지으시다가 농토는 남의 손으로 갔고 이제는 맨손으로 우리를 찾아오신 것이오. 아버님이 무슨 돈이 있겠소?”
“나는 못 모셔요.”
다음 날 아침입니다. 할아버지가 말씀하셨습니다.
“둘째 아들이 어떻게 사는지 한번 가보고 싶구나.”
“벌써 가시겠다고요?”
“둘째는 어려서 참 성미가 급했는데 지금은 어떠한지 넌 아느냐?”
“많이 좋아졌어요.”
“잘 가라구?”
“아닙니다. 더 계시라고 했습니다.”
“개구리는 논에 살아야 한다구?”
“아닙니다.”
“아리랑?”
“아닙니다. 다녀오세요.”
“그래 오늘이 장날이지.”
아들은 답답해 견딜 수가 없었지만 참았습니다. 그러나 며느리는 짜증을 냈습니다.
“가시겠다는데 왜 말려요? 가시게 두세요. 말을 알아들어야지요. 귀가 절벽인데 무슨 말을 하세요.”
노인은 큰아들 집을 떠나 작은아들 집으로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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