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뻐꾸기
"뻐꾹, 뻐꾹, 뻑뻐꾸욱!"
"까까까 까까까 까까아!"
"국국구구욱 국국구구욱!"
"짹짹짹 짹짹짹 짹째액짹!"
새들이 모여 사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숲 속 새들 마을에 큰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날이 밝아오는 새벽, 갑자기 커다란 굴착기 차가 나타나 산 밑을 돌아가면서 나무를 꺾고 쓰러트리고 땅을 뒤집기 시작했습니다.
"붕붕 부웅 붕붕."
"쿵쿵쿵 쿵쿵쿵 쿠웅"
숲 속의 새 둥지들이 커다란 차바퀴에 깔려 부서지고 높은 나무 위에 지은 까치집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한동안 산아래 마을 사람들이 살던 집 철거를 반대하며 아우성칠 때 산 속의 새들은 구경을 하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새들이 아우성을 치게 되었습니다.
나무 위에 멋진 집을 짓고 사는 까치가 앞장서서 외치자 뻐꾸기도 다른 새들을 모아 철거 반대를 외쳤습니다.
"우리는 물러갈 수 없어요. 나무를 베지 마세요! 까깍깍!"
"우리의 숲을 건드리지 마세요, 뻐국뻐국 뻑뻐구욱!"
"사람들은 너무 하지 않아요? 짹짹짹!"
"사람들 행패가 너무 심하다 심해 국국구구욱!"
새들이 아무리 소리쳐도 사람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습니다. 날이 다 밝았을 때는 더 많은 사람들이 여러 대의 차를 몰고 와서 온 동네 집과 나무를 쓰러뜨리고 베고 무너뜨렸습니다.
새들은 한 자리에 모여 회의를 했습니다.
"이래도 되는 겁니까?"
할아버지까지가 부리로 땅을 콕콕 쪼면서 말했습니다. 산비둘기도 화가 난 얼굴로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해요, 우리는 어디로 가라고, 이게 뭐예요."
"우리 함께 저 기계를 부서뜨립시다."
하루 종일 새들은 목이 쉬도록 소리를 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해가 지고 어두워졌습니다. 새들은 모두 헤어져 어디론지 떠났습니다.
뻐꾸기 가족은 산 속 깊이 들어가 잠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들 뻐꾸기가 말했습니다.
"이제는 여기를 아주 멀리 떠나야 해요. 사람들이 집을 짓기 시작하면 아주 커다란 집을 세우고 우리가 발붙일 곳도 없게 만들어요."
아빠 뻐꾸기가 한참 생각을 하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그렇지만 정든 곳을 어떻게 떠나겠느냐. 이 근처에서 어떻게든 살아야지."
어미 뻐꾸기도 한마디했습니다.
"다른 곳은 싫어요. 이 근처에 살아요."
아들 뻐꾸기들이 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럼 우리끼리 떠나도 좋아요?"
"너희들도 이제 다 자랐으니 마음대로 하거라."
아빠 뻐꾸기의 말에 아들 뻐꾸기들은 그 다음날 아주 멀리 집을 떠났습니다.
한편 까지도 가족회의로 모였습니다. 아빠 까치가 부리를 탁탁 치면서 말했습니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야. 우리가 지은 저 집이 얼마나 튼튼했소? 그걸 한번에 무너뜨리다니."
엄마 까치도 속상해 하면서 말했습니다.
"그 집을 짓느라고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사람들이 안다면 그렇게 무너뜨리지는 못할 거예요."
"집을 지을 때 받침대로 쓰려고 굵은 나무를 물어 나르다 입을 다쳐서 피를 얼마나 흘렸소."
아들 까치들이 말했습니다.
"지금 그런 이야기할 때가 아니에요. 당장에 여기를 떠나야 해요. 여기 아니면 살 곳이 없어서 무지막지한 사람들을 보면서 살아요?"
다른 아들 까치가 말했습니다.
"엄마 아빠가 안 가시겠다면 우리끼리 떠날 거예요. 여기보다 훨씬 좋은 산들이 얼마든지 있어요."
다음날 아들 까치들은 모두 산 속 깊이 날아갔습니다. 자식들이 모두 하늘 높이 날아 어디론가 사라지고 나자 늙은 까치 부부는 마을을 내려다보면서 옛날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기가 참 좋은 동네였는데……"
"그렇지요, 참 좋은 동네였지요. 저쪽에 사는 철수네 식구들은 마음씨가 고왔지요. 가끔 콩 누룽지도 주고."
"그렇지, 이쪽 우물곁에 살던 순이는 얼마나 예뻤고."
"여보, 저 끝 집 영감은 참 심술쟁이였어요."
"맞아, 그 영감 남의 집 호박이 제대로 크는 것을 가만히 보지 못했지. 호박에 말뚝 박아놓고 시치미를 뚝 떼고 주인이 '누가 남의 호박에 말뚝을 박아놓았는지 모르겠어' 하면 '글쎄올시다. 못된 사람 같으니라고, 남의 호박에 못을 박는 얌체도 있나' 하고 저쪽으로 가서는 혼자 히히거리고 웃었어. 그래서 내가 큰소리로 '저 아저씨가 그랬어요, 저 아저씨 나빠요' 하고 외쳤지만 사람들은 내 말을 못 알아
들었어."
"그래요, 사람들은 참 불쌍해요. 무슨 말을 그렇게 많이 하고 사는지. 우리처럼 몇 마디만 하면 될 것을, 우리 말도 못 알아들으면서 너무 복잡하게 살아요."
"그러면서도 자기들이 세상에서 제일이라고 뽐내며 자랑하는 걸."
"호호호…… 사람들은 참 우스워요. 날개가 없어서 날지도 못하면서 잘난 체를 하고."
"그래도 날아다니는 기계를 만들어 하늘을 우리보다 빠르게 돌아다니는 걸 보면 신통하기도 하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건 새들이에요."
"암, 사람들은 겨우 제 발등밖에 못 보지만 우리는 사람들 마음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넓은 세상을 다 내려다보고 살지. 옛날에는 우리가 사람들한테 얼마나 좋은 일을 많이 했소. 군대 간 아들이 돌아오면 우리가 먼저 알고 그 집 앞에서 짖어주면 사람들은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하다가 아들이오면 우리를 보고 얼마나 많이 고맙다고 했소."
"그러나 이제 세상은 많이 달라졌어요. 전에는 우리가 나무 위에 앉아 세상을 내려다보며 이런 저런 소식을 전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나무보다 더 높은 집을 지어 놓고 사람들이 거꾸로 우리 안방을 내려다보고…… 자존심 상해서 더 이상 도시 근처는 살기 싫어졌어요."
"맞아, 자존심 상하는 일이야."
"여보, 사람들이 나무를 베고 풀을 짓이겨 놓아서 걱정이에요. 전에는 종달새가 풀밭에 집을 짓고 우리와 어울려 살았기 때문에 알을 그 둥지에다 낳을 수 있었지만 종달새들이 다 떠나 버렸기 때문에 어디다 알을 낳아야 할지 알 수가 없어요."
"이렇게 합시다. 저 늙은 까치 부부가 집을 짓고 알을 까거든 친하게 지내다가 거기다 슬쩍 낳아 둡시다."
"그래도 될까요?"
"내게 맡기고 기다리시오. 이제부터는 까치들을 가까이 친해 두어야겠소."
뻐꾸기는 날마다 까치를 따라 다니며 심부름도 해주고 맛있는 먹거리도 구하여 주었습니다. 암 뻐꾸기는 암 까치와 친하게 지내고 수뻐꾸기는 수까치와 친하게 지냈습니다.
얼마 후 암 까치가 알을 낳기 시작했습니다. 암 뻐꾸기는 까치집에 찾아가 암 까치하고 재미있게 놀다가 암 까치가 벌레를 잡으러 날아간 사이에 알을 낳아놓았습니다.
숫자를 세지 않는 까치는 열심히 알들을 품었습니다. 뻐꾸기 부부는 먹이를 잡아다 암 까치에게 먹여주었습니다. 까치는 고마워했습니다.
"뻐꾸기님 고마워요."
"아니에요. 다른 새들은 다 떠났지만 우리는 이렇게 남아 있으니까 서로 돕고 살아야지요."
"내가 새끼를 다 까고 나면 더 맛있는 거 많이 구해 드릴게요."
어미뻐꾸기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새끼들이 나오면 더 많은 먹이를 구해 드릴 테니 아무 염려 마시고 편히 아이들이나 키우세요."
"고마워요."
얼마 후 알을 깨고 예쁜 새끼들이 태어났습니다. 어미까치는 새끼들이 추울까봐 날개를 넓게 펴고 앉아 발로 새끼들을 만져주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새끼들이 크게 자라나 둥지가 넘치기 시작했습니다. 집이 좁아서 새끼들끼리 밀고 쪼고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그 중에 몸집이 가장 큰 맏이새끼까치가 말했습니다.
"이렇게 싸우다가는 우리가 다 떨어져 죽고 말겠다. 이 중에서 누구 하나를 내쫓아야겠다."
다른 새끼까치가 노란 입을 짝짝 벌리며 말했습니다.
"그래야 되겠어. 누구를 내쫓을까?"
새끼까치들은 겁먹은 눈으로 서로 바라보았습니다.
"난 싫어 안 나갈 거야."
"나도 싫어."
맏이까치가 돌아보다가 얼굴이 여느 새끼까치와 다르게 생긴 뻐꾸기새끼를 바라보았습니다.
"너, 너는 아무래도 이상하게 생겼어. 널 내쫓아야 하겠어."
"싫어, 난 너하고 살 거야."
다른 새끼까치가 얄밉게 말했습니다.
"맞아, 넌 처음부터 이상하게 생긴 게 마음에 안 들었어. 하는 짓이나 먹는 것이나 다 우리하고 달랐어. 네가 없어지면 우리는 넓고 편하게 살 거야."
"싫어, 난 안 나갈 거야."
"얘들아, 우리 이 애를 밀어내자!"
"그래, 그래, 모여라. 얏!"
새끼가치들이 와하고 달려들어 새끼뻐꾸기를 밀어냈습니다.
"싫어, 싫어, 아아 앗!"
새끼뻐꾸기는 높은 집에서 뚝 떨어져 내렸습니다. 다른 새끼가치들이 좋아서 날개를 활짝 펴며 짹짹거렸습니다.
"아유 시원해, 하나만 빠져도 이렇게 넓고 좋은 걸, 왜 진작에 그런 생각을 못했는지 몰라."
"글세 말이야."
다른 새끼들이 이렇게 좋아하는 사이에 새끼뻐꾸기는 힘도 없는 날개를 펴고 허둥거리면서 밑으로 떨어져 내렸습니다. 이때 먹이를 물고 돌아오던 어미까치가 보고 빠르게 달려들어 새끼뻐꾸기를 등으로 받쳤습니다.
어미까치는 새끼뻐꾸기를 안전한 곳에 자리를 잡아 주고 물고 있던 먹이를 먹여주었습니다. 이때 어미뻐꾸기도 먹이를 물고 돌아오다가 자기 새끼가 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어미까치가 하는 것도 다 보았습니다.
'고맙다 까치야.'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 뻐꾸기는 물고 있는 먹이를 둥지로 가서 새끼까치들에게 먹여주었습니다. 어미까치가 뻐꾸기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어요."
"고마워요, 까치님."
"고맙기는요, 내 새끼 내가 아끼는데요 뭘."
뻐꾸기는 가슴이 찡했습니다. 어미까치가 새끼뻐꾸기를 자기 새끼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어미까치가 말했습니다.
"아이들이 장난을 치다가 이렇게 떨어지는 일이 자주 있어요. 앞으로도 두 마리는 더 떨어질 거예요."
"그러면 어떡하지요?"
"어쩔 수 없지요. 이 애는 오늘 다행히 제가 보았기 때문에 살렸지만 다른 애들은 떨어져 죽는 수가 많아요."
"딱하기도 하지."
"어쩔 수 없어요. 앞으로 나는 이 애를 특별히 돌봐주어야 해요. 여기는 숲이라 위험하지요. 쥐도 있고 뱀도 있고 사나운 동물이 나타나면 잡아먹히니까요."
"걱정이군요."
"뻐꾸기님이 다행히 곁에 있으니 저 위에 아이들한테 먹이를 구해다 적당히 나누어주세요. 나는 이 아이가 날아서 돌아다닐 때까지 돌보아야 합니다."
"저도 함께 도와드릴게요."
"그렇게 하세요."
그리고 며칠 안 지났습니다. 뻐꾸기 둥지에서는 새끼들의 싸움이 또 벌어졌습니다. 서로 밀고 쪼고 할퀴고 울고 대단한 싸움이었습니다.
맏이새끼까치가 몸집이 가장 작은 새끼를 확 밀어 떨어뜨렸습니다.
"엄마아아!"
몸집 작은 새끼까치가 밑으로 떨어져 내렸습니다. 콩! 하더니 날갯죽지를 쫙 펴고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미뻐꾸기가 급히 달려가 돌보았습니다. 새끼뻐꾸기는 많이 다쳐서 일어나지를 못했습니다.
어미까치는 그것을 바라보면서 혼잣말을 했습니다.
"넌 일어나기 힘들어……."
어미뻐꾸기는 불쌍한 새끼까치를 살리려고 이것저것 물어다 먹이며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바라보는 어미까치는 고마워서 눈물이 났습니다.
"뻐꾸기님, 고마워요, 남의 자식을 그렇게 열심히 돌보시는 마음씨가 너무 고마워요."
"고맙기는요."
이렇게 말하는 뻐꾸기는 어미까치가 더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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