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사람 142 / 그놈이 그놈이었다
지하철 바닥이 꺼질까 걱정이라도 되는 듯
살금살금 사뿐사뿐 허리를 얌전히 숙이고 다가오는 반백 사내.
빨간 넥타이에 반질반질한 구두, 말끔한 옷차림.
내 옆 비어 있는 자리로 겸손히 다가오더니 허리를 숙이며
“여기 좀 앉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단정히 앉더니 왼쪽 팔을 썩 걷어 올리고 한 팔을 내놓는데
엄청나게 큰 황금 시계가 나 보란 듯 번쩍거렸다.
나는 그런 시계는 처음 보는 터라 거기에 눈길을 박고 저런 것은 얼마나 비쌀까?
저런 것을 차고 다니는 것으로 보아 엄청난 부자인가 보다
생각하는데 그가 겸손히 격식을 차리고 물었다.
“이 차가 금정역을 가지요?”
“네.”
나는 아직도 금시계에 빠져 대답했다.
“한 삼십 분이면 가겠지요?”
“네, 그럴 겁니다.”
그래도 나는 그 사람은 보지 않고 시계만 보았다.
“금정역에서 수원 가는 차가 있습지요?”
“네.”
그랬더니 그가 또 한 마디 했다.
“저는 시골서 왔습니다.”
나는 이 말에 얼굴을 돌리고 그 사람을 똑바로 보았다. 언제인가 들어 본 같은 말이었다.
‘저는 시골서 왔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며 그를 바로 쳐다보는 순간 ‘어디서 본 사람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차가 다음 정거장에 도착했다.
그 사람은 벌떡 일어서며
“갑자기 배가 아파서 화장실 좀 다녀가겠습니다.”
하고 일어나 나가 버렸다.
나는 그 사람을 어디서 보았나 생각해 보니 작년에 당산역에서
시골 강릉에 있는 태양 모텔 주인인데 도둑을 맞아서 차비가 없으니
15만원만 꾸어주시면 갚겠다고 자기 주소 전화번호까지 적은
종이쪽지를 내보이며 매달려 딱하기에 10000원만 주고 난 뒤에
그가 바로 사기 친 도둑놈이라는 것을 알았다.
당시 전화를 걸어보니 그런 번호가 없다는 것이고
주소도 그런 곳이 없고 태양 모텔도 없다고 했다.
‘저는 시골서 왔습니다.’
그 소리. 아직도 그 놈은 전철을 타고 다니며 사기를 치고 있었던 거다.
그런 그가 우연히 나를 만나 눈치를 채고 ‘이크! 큰일 났다’하고 달아난 거였다.
그 놈이 그 놈이었다
멀쩡한 놈이 할 짓이 없어 그 짓을 아직도 하고 있는지.
길에서 과도히 상냥하게 굴고 금 팔지 금반지 번쩍번쩍 자랑하는자
처지가 딱한 척 사정하거든 딱 잘라 거부하시고 조심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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