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방/수필

옆 사람 140 / 미친년은 아니었다

웃는곰 2026. 5. 3. 09:57

옆 사람 140 / 미친년은 아니었다

 

늘 경로석을 찾는 처지가 되고 보면 경로석 이야기가 많아진다.

친구와 경로석으로 갔더니 양쪽에 머리 하얀 영감을 두고 가운데

40대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스마트폰에 빠져 있었다.

 

내 동행자는 88.

난 그 여자가 나의 동행자에게 자리를 내줄 줄 생각했는데 꼼짝 않는 거다.

임신부인가하고 배를 보니 납작하다

불구자인가 했더니 그렇지도 않은 느낌.

그럼 다리가 하나 짧은 여자인가? 생각하며

이 정도의 어른이 앞에 서면 자리를 양보해 주어야 할 텐데

하고 생각하면서도 말은 못했다.

 

몇 정거장 가다가 그녀가 발딱 일어섰다.

쌩쌩한 수탉 같은 건강한 여자였다.

그녀 떠난 자리에 88세가 앉았다..

 

그제야 그 동안 침묵하던 옆의 80대 초반영감들

젊은 것이 왜 늙은이들 자리에 와서 버티는지 맘에 안 들었어.”

또 다른 영감

임신부도 아니고 병신도 아니면서 늙은이 자리에 앉아 뻔뻔스럽게?”

두 영감은 품고 참았던 불만에 언성이 높았다.

 

88세 내 동행이 남긴 말.

어쩌면 미친년인지도 몰라요. 일어서서 갈 때 보니

씰룩거리는 행동거지가 얌전하지 않더라고요.”

 

얼마나 미웠으면 가는 뒷모습까지 살폈을까.

요새 노인들은 젊은이들 자리에 안 간다.

젊은이들이 마음 불편해 할까 봐 그런 거다.

 

나는 속으로 중얼중얼.

돈도 안 내고 공짜로 타면서 자리 타령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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