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217 / 우리 사이에
“우리 윤달이는 겉 다르고 속 다른 아이여.
속으로 좋아하면서 겉으로는 여우 짓을 한당게. 그런 줄은 알지?”
“야.”
“고마워. 오늘이 내 생일여.
우리 집은 생일날 좋아하는 사람허고 가족이 모여 식사를 혀왔어.
허총각은 우리 가족여.”
허당은 아무 말 않고 식사를 마쳤다.
국자는 허당의 등을 쓰다듬으며 엄마가 하는 친절한 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와 줘서 고마워. 언제고 배고프면 와서 국밥도 먹고 곱창도 맘껏 먹어 잉?”
허당은 과한 친절을 받고 돌아왔다.
하필은 국자하고 허당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고 허우가 빨리 퇴근하기만 기다렸다.
허당이를 꼭 잡을 수 있는 사람은 하우뿐이기 때문이다.
하우가 다른 날보다 좀 늦게 돌아왔다. 하필이 반겼다.
“오늘은 많이 늦었구먼.”
“십 분밖에 안 늦었는데 뭘 늦었다고 그래?”
간절하게 기다리는 사람한테 십분은 짧은 시간이 아니다.
아버지 속을 모르는 하우는 허당을 먼저 찾았다.
“오빤 어딨어?”
“이층에서 책 찾어. 올라가 봐.”
하우가 이층으로 올라가더니 허당하고 무슨 이야기인지 꾀꼬리처럼 조잘거렸다.
전 같으면 벼락을 칠 일이지만 그렇지 않고 속으로
‘그려 잘 하고 있는겨. 하우야 그리 혀’
하고 응원을 하고 있었다.
꿔간 돈은 가져왔어?
한편 국자네 집에 놀랄 일이 벌어졌다.
쨍하고 해 뜰 날 온다던 태풍이 닷새 만에 느닷없이 나타났다.
국자는 태풍이 꼴이 보기 싫어서 얼굴을 돌리고 눈을 흘겼다.
“아아니, 우쩌자고 금방 오는겨?”
태풍이 큰 입을 쩍 벌리고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하, 이 할망이 날 안 기다렸단 말인가?”
“워디가 이쁘다고 기둘려?”
“그러지 마. 내가 왜 왔는지 알기나 하는가? 하하하.”
“웃는 소리 안 방가웅게 입 봉혀.”
“하하하, 내가 다시 왔는데 안 반가워?”
“안 방갑다니께.”
“소주, 아니 맥주 한 병 가지고 이리 와서 내 말좀 들어봐.”
“맥주꺼정?”
“내가 팔자 고쳐가지고 왔으니 들어보시라고 할망구야.”
국자는 얼굴까지 찡그리고 물었다.
“맥주 값은 가지고 온겨?”
“암.”
“내가 꿔준 돈도?”
“암. 이자까지 갚을 테니 맥주에 마른안주 특으로 가져와.”
“웃기는 소릴 허고 자빠졌네.”
“꿔준 돈 받으려면 알아서 해.”
국자가 억지로 맥주와 안주를 가져다 놓고 물었다.
“그새 쨍허고 해가 떠서 온겨?”
“그렇당게.”
“바로 말혀. 거짓말 아녀?”
“잘 들어봐. 내가 고향으로 갔다가 돈벼락을 맞았어.
고향집을 지키고 있던 아들이 몇 달을 기다렸다는데…….”
“아들이 있었댜?”
“올해 서른 살 먹은 애가 있는데 저 혼자 돼지며 소를 기르고 있었지.”
“장개는 갔는겨?”
“아직.”
“홀애비에 노총각 아들이 불쌍쿠먼.”
“잘 들어봐. 우리 동네 뒷산이 우리 산이었는데
그 자리가 공장 부지가 되어 보상을 받았다는 거야.
보상금을 내가 있어야 내준다고 하여 아들이 기다리다가 나를 보고 얼마나 좋아하는지…….”
국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보상금이 을마나 된댜?”
“9억!”
“9억? 태풍이 부자 된 거 아닌가베?”
“큰 부자는 아니지만 숨통은 틀만 하지.”
국자가 호기심이 발동하여 맥주를 따르면서 물었다.
“그 돈을 다 찾은겨?”
“찾아서 이 통장에 넣었지. 볼라나?”
태풍이 개비에서 통장을 꺼내어 보여주자 국자 얼굴이 달라졌다.
“어매, 참말이네. 난 평생에 천만 원 든 통장도 못 만져 봤는디
억짜리 통장을 만져봉게 가슴까지 벌렁거려.”
태풍이 어깨에 힘을 주고 거드름을 폈다.
“똑똑히 봤지? 전에 꾼 2만원 이자까지 3만 원 받어.”
“아녀, 안 주어도 좋응게 오늘 맥주 값이나 줘.”
“조금 있으면 우리 아들이 주차장에 차 세우고 올 거야. 국밥 하나 특별로 말아 줘.”
“아들도 왔다는 겨어?”
“왔어. 저기 들어오네.”
국자가 태풍이 아들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
돼지나 치고 살았다는 홀아비 아들이 쑥 빠진 미남으로 보였다. 9억짜리 위력에 그만 국자가 눈이 멀고 만 것이다.
“저 청년이 태풍이 아들여?”
“그렇다니까.”
“오메, 잘도 생겨버렸네에.”
“정말 잘생겼지? 윤달이하고 뭐뭐하면 안 좋을까?”
“안 좋은게 아녀. 뭐뭐하면 좋지이.”
“언제 유달이하고 우리 아들 평하고 만나게 해 볼까?”
“아들 이름이 평이면 태평이 아녀?
태풍보다 엄청 좋네. 당장에 윤달이 오라고 할겨.”
태풍이 부자가 된 것을 안 국자 맘이 좌에서 우로 발라당 뒤집혔다.
국자가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했다.
“조금 있으면 온댜. 식사허면서 기둘려.”
태풍이 껄껄거리며 말했다.
“우리가 사둔되는 거 아닌가?”
“암, 우리 윤달이도 스물 여섯이니께 나이도 맞구먼.”
태평이 식사를 끝낼 때 윤달이가 왔다.
윤달이 태풍이 와 있는 것을 알고 바락 소릴 질렀다.
“또야? 또!”
국자가 전에 없이 얌전한 소리로 말했다.
“그게 무신 소려. 이 어른으로 말하면…….”
윤달이 태평이를 보자 목을 쏙 들이밀고 물었다.
“그래서?”
“이 청년은 태풍 아저씨 아들여. 인사혀.”
윤달이 참새처럼 까딱 고갯짓을 하고 쪼르르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국자가 따라가 물었다.
“총각 봤지? 우뗘?”
“어떻긴 뭐가 어떻다는 거야?”
“허당보다 좋지?”
“약간.”
“약간 좋으면 된겨. 내가 그 청년허고 해 볼겨.”
“뭘 해?”
“넌 시집 안 갈겨? 난 저 청년이 맴에 꼭 들어.”
“알았어. 생각해 볼게.”
국자는 그만하면 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나와서 말했다.
“저것이 태평이한티 한눈에 반혀서 달아난겨.
처녀 적엔 맴에 들면 달아나잔여?”
태풍이 한술 더 떴다.
“여자들이란 다 그렇더라구. 맘에 드는 사람을 만나면 달아나는
꿩이 대가리를 땅에 박듯 싫어싫어 난 몰라 하면서
궁둥이를 내놓고 내숭을 떨더라 이 말이야.”
“그렇지이? 갸가 태평이가 맘에 든다는 몸짓이 아닌가베.”
“일이 잘 될 것 같구먼. 오늘은 이만 가 봐야 하고
수일 내로 아들과 상의하고 올 테니 그리 알고 기다려.”
태풍이 개비에서 돈을 꺼내며 말했다.
“맥주 값하고 전에 꾼 돈.”
국자가 손사래까지 쳤다.
“아녀, 안 받을겨. 우리 사이에 그럼 쓰나?”(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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