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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소설 / 하필 허당에 빠진 국자 201-205

웃는곰 2025. 10. 17. 19:05

허당이 놓치면 큰일 난다

 

하필이 불만스런 얼굴로 물었다.

허당이 어디 있던 그건 왜 자꾸 물어싸?”

국자 한 마디.

난 세상에서 허당이 젤 잘나 보여서 그려.”

괜히 허당에 빠지지 말고 가봐.”

난 벌써 허당이한티 빠진 걸?”

허당이한티 빠진 사람이 한둘이 아닌 줄은 아는겨?”

나 말고 또 누가 있댜?”

있으니께 하는 말여.”

어떤 미친놈이…….”

 

하필은 속으로 내가 바로 그 놈이다 하고 대답했다.

빨리 가 봐.”

왜 그런댜? 가라고 안 혀도 갈거구먼.”

 

국자가 토라진 얼굴로 돌아갔다.

뒤를 잇기라도 하듯 하우가 퇴근하여 돌아왔다.

하우는 아버지한테 하는 첫 인사가 허당 찾는 소리였다.

오빠 어딨어, 아빠?”

 

전 같으면 괘씸한 것 하고 꾸짖을 하필이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이층서 책 찾고 있어. 올라가 봐.”

알았어 아빠.”

 

어려서부터 오냐오냐 키웠더니 시집 갈 나이가 되어서도

어린애 짓을 하는 딸이다.

그래도 세상에서 딸보다 예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는 하필이다.

이층으로 올라간 하우가 허당을 찾았다.

오빠. 나 왔어. 어디 있어?”

 

책장 뒤에서 허당이 얼굴을 내밀며 물었다.

퇴근한 겨?”

그래 오빠, 나 안 보고 싶었어?”

그런 말 허지마. 아저씨가 아시면 우쩔라고 그려?”

아빠가 뭐라 해도 난 내 맘대로 할 거야.”

 

하필은 그렇게 말하는 하우가 가슴에 품고 싶을 만큼

사랑스럽고 좋았지만 차마 말도 못하고

그 소리가 아래층까지 들릴까봐 가슴을 졸였다.

그런 소리 아저씨가 들으시면 씅내실겨. 조심혀.”

 

아래층에서 다 듣고 있는 하필은 씅내기보다

좋아서 싱글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려 잘혔어. 하우야, 내 걱정은 말고 허당이 꼭 잡어야 혀.

허당이 놓치면 큰 손해여, 알지?”

 

허당이를 3억짜리 돈다발처럼 생각하는 하필은 마음이 바뀌었지만

허당은 그 속을 알지 못하므로 하우하고 가까이하는 걸 조심하고 말했다.

아무 말이나 막 허지 마, 아저씨가 들으시면 씅내시구 지청구맞어, 알었지?”

 

허당을 국자한테 뺏기면 안되지

 

다음 날 아침 하우가 출근길에 많은 책을 다마스에 가득히 싣고

도서관으로 가려는데 하필이 말했다.

오늘 책 납품허고 천천히 와아. 급허게 달리는 건 위험허니께.”

 

하우가 까부는 소리를 했다.

아빠, 그 말 정말이야? 천천히 와도 돼?”

그려, 늦어도 조심혀.”

하우가 운전대를 허당한테 맡기며 말했다.

오빠, 오늘부터는 납품 담당이야.

운전도 하고 책도 서고까지 혼자 다 날라야 해. 알았지?”

그려.”

 

허당은 아저씨 앞에서는 매우 조심했다.

그렇지만 하우를 옆에 앉히고 운전하는 것처럼 기쁜 일도 없었다.

납품을 마치고 하우가 퇴근하기까지 허당은 차에서 기다리며

들고 온 판타지 동화책 대왕 람세스와 집시를 읽고 있었다.

 

퇴근하고 차로 온 하우가 물었다.

오빠 무슨 책을 보고 있어?”

이런 책인디 책 전체가 해골과 집시의 대화로만 되어 있어서

읽기에 부담이 없어서 읽고 있어.”

재미있는 이야기야?”

재미있는 것보다 이런 말이 인상적이여.”

 

무슨 말인데?”

집시가 사막에서 해골을 만났는디 해골이 집시한티

나는 너의 미래 모습이고 너는 나의 과거 모습이다.’라고 한 말.”

호호호, 정말 재미있는 말이네.

사람은 누구나 해골이 될 것이고 해골이 된 사람은

누구나 살았을 적 젊은 시절을 행각하고 그런 말을 하겠지.”

 

그려,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 공짜를 좋아허고

욕심의 종이 되어 사람이기를 포기허고

살다가 가는 사람도 있으니께.”

오빠, 그런 얘기 그만 하고 좋은 데 놀러가자.”

그러지 마. 그러다가 괜헌 추억을 만들면 이담에 마음만 아플 테니께.”

 

괜찮아, 슬픈 추억보다 아름다운 추억을 가진 사람이 행복할 거야.

우리 아빠가 그렇게 무서워?”

무서운 건 아니고 조심스러운겨.

어른의 생각은 젊은 사람의 생각보다 깊은 것이니께.”

운전은 내가 할 거야. 목적지는 독립기념관. 싫어?”

좋은 대로 혀.”

 

그렇게 하여 둘이는 독립기념관을 둘러보고 해가 질 녘에 곳간으로 돌아왔다.

기다리던 하필이 전에 없이 유순한 말로 물었다.

이렇게 늦게 어딜 갔다 온겨?”

 

허당이 수그리고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죄송혀유 아저씨.”

하필이 하우한데 눈길을 돌렸다.

어디를 멀리 갔다 온 겨?”

맞아 아빠. 천천히 와도 된다고 해서 독립기념관을 구경하고 왔어. 잘했지?”

잘한 건 아니지만 무사히 댕겨왔으니 좋구먼.”

 

이렇게 대답한 하필은 속으로 잘혔어.

앞으론 허당이를 꽉 잡어야 혀.

허당이 놓치면 큰일이니께.’

 

그렇게 말하고 둘이 더 있게 하려고 자릴 떠나

가까이 있는 경로당으로 갔다.

낯익은 95세 최고령 노인이 크게 반겼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