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속의 아이들. 23 / 두 제자의 우정③
그런 다음 날입니다.
덕구네 찐빵 가게로 들어가는 골목 길 입구에 이상하게 생긴 검은 차 한 대가 서 있었습니다.
승용차도 아니고 트럭도 아닌데 앞에 세 사람씩 여섯 명이 탈 수 있는 고급 칸과
뒤에 짐을 실을 수 있는 칸이 붙은 차입니다.
아침 일찍부터 와 있는 차에는 덕구 친구 준태가 타고 있었습니다.
준태는 지나가는 사람을 유심히 보고 있다가 한 사람을 눈여겨보고 차에서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 앞으로 다가가 겸손히 인사를 했습니다.
“어른님, 실례합니다.”
영감이 놀란 눈으로 물었습니다.
“누구시오?”
“말씀 좀 여쭈어 보겠습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게요?”
“잠깐 이쪽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영감은 경계하는 눈으로 물었습니다.
“내가 왜 그리로 가오?”
“잠깐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무슨 말인지 여기서 하시오.”
“저 골목 안에 있는 덕구 찐빵집을 아시지요?”
“그렇소만. 댁은 뉘시오?”
“자세한 말씀은 차에 들어가서 드리지요. 제 차 안이 편합니다.”
노인은 더 경계했습니다.
“왜 차에까지 올라가자는 게요?”
“그러시면 여기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덕구찐빵집 친한 친구입니다.”
“그렇다면 덕구찐빵집으로 가서 이야기합시다.”
“아닙니다. 덕구한테 비밀로 드릴 말씀이 있어서 그럽니다.”
“무슨 말인지 해 보시오. 나 바쁜 사람이니까.”
“제 말씀 오해하지 말고 들어 주세요.”
“해 보시오.”
“저는 강남 네거리 10층 백화점 주인입니다.”
“그렇다면 누구신가. 그 빌딩 주인은 나도 아는 사이였는데……. 혹시 3년 전에 돌아가신 이상연 씨의 아드님이신가?”
“네, 맞습니다. 제가…….”
“이름을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몰랐소. 이 늙은이한테 무슨 할 말이 있소?”
“조용한 데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제야 영감이 경계하지 않고 말했습니다.
“차로 올라갑시다. 누군지 알았으니 좋소.”
차에 올라 준태가 정식으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저는 이준태라고 합니다.”
“나는 박두병이오.”
“박선생님이시군요.”
“선생은 무슨 선생, 그냥 박할배라고 부르시게. 무슨 말인지 들어 보세.”
“예, 어른님께서 비밀로 하고 도와주십시오.”
“내가 뭘 도와줄 게 있나?”
“찐빵집 덕구는 제가 가장 믿고 좋아하는 친구입니다.”
“그 사람 몇 년 동안 지켜보았지만 사람은 진국인 것 같았어.”
“그 친구 같은 사람 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그 친구가 어른님께 자금을 빌려서 빵집을 차린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 것 같네만.”
“그 친구가 어른님께 빌린 돈을 제가 갚아드리려고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오늘도 좋고 언제든 어른님께서 빌려준 돈을 받아 주신다면 갚아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큰돈을 그냥 거저 갚아준다고?”
“네, 좋은 친구를 사는데 돈이 아깝겠습니까?”
“허허, 별일이야. 세상 살다가 친구를 돈으로 사겠다는 사람을 보다니, 이 늙은이하고 농담하자는 건 아닌가?”
“어찌 어른님한테 농담을 합니까? 대신 차용증은 저를 주셔야 합니다.”
“내가 차용증 받았다는 건 어떻게 아시었나?”
“들어서 알았습니다. 그러니 저한테 차용증을 돌려주시면 돈을 갚아드리겠습니다.
그 대신 제 친구한테는 절대 비밀로 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이야기는 옛날이야기 책에나 있는 미담인데, 허허, 그 친구가 그렇게 좋은가? 기가 막히군!”
“친구한테 빌려주신 돈을 받으시고 그 친구한테는 가셔서 차용증을 잃어버렸다고 거짓말을 해 주십시오. 그리고 언제든 그것을 찾을 때 다시 올 테니 그 동안 이자만은 정확히 정기적금을 부어 두라고 하십시오.”
노인은 금니를 번쩍거리며 입을 크게 벌리고 웃었습니다.
“하하하, 이런 일도 있다니, 동화책에서도 보지 못한 미담 아닌가, 하하하.
준태라고 했지? 그 맘씨가 너무 고마워서 내가 그렇게 하겠네.
내가 80이 되도록 차용증 먼저 내준 역사가 없는데 오늘은 믿고 넘겨보겠네. 자, 이것 받고 돈 돌려주게.”
'문학방 >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랍속의 아이들. 25 / 두 제자의 우정⑤ (0) | 2025.05.28 |
---|---|
서랍속의 아이들. 24 / 두 제자의 우정④ (0) | 2025.05.27 |
서랍 속의 아이들. 22 / 두 제자의 우정① (0) | 2025.05.25 |
서랍속의 아이들. 21 /걱정⑤ 내부 적이 외부 적보다 무서운 것 (1) | 2025.05.24 |
랍속의 아이들. 20 /걱정④ 가짜 목사들의 최후 (1) | 2025.05.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