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방/수필

옆 사람 19 / 이상한 고슴도치

웃는곰 2025. 5. 5. 14:23

옆 사람 19 / 이상한 고슴도치

 

 

31번석 내 옆자리에 새까만 망태기 모자에 새까만 마스크를 하고 털이 복슬복슬한 회색 목도리에 까만 털 오버를 들쓴 아가씨가 앉았다.

 

고슴도치를 연상시켜서 첫인상이 제로였다.

그런데다가 놀랍게도 손톱이 게딱지같이 길고 긴데다 회토색칠을 했는데

그 위에 뭘 또 붙여서 손톱인지 거북이 등인지 이상하기만 했다.

 

별 사람이 다 있네 하고 생각하는데 자리에 앉은 지 5분쯤

스마트 폰에 빠졌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2호칸 앞으로 부지런히 걸어갔다.

그런데 들고 온 가방을 내 옆자리에 둔 채였다. 별로 크지도 않은 가방만 동그마니 두고…….

 

아가씨는 화장실이 있는 2호 칸으로 간 뒤 한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가방에 신경이 쓰였다. 가방에 무엇이 들었는지 모르지만

누굴 믿고 그렇게 굴려놓고 갔을까?

 

5분쯤 지나 돌아와 앉아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더니 또 일어나 2호칸 쪽으로 갔다.

가방은 여전히 둔 채.

이 아가씨 설사가 나서 그런가? 아니면 여자만 하는 뭐 그것이 급했나?

나를 믿고 가방을 두고 간 건가? 왜 가방은 그냥 두고 돌아다닐까?

 

그러는데 한참 후 돌아온 아가씨는 스마트 폰에 머리를 박고 있다가

이번에는 일어나 1호 칸 맨 뒤쪽으로 갔다.

그 사이에 차가 수원역에 도착, 그래도 아가씨는 돌아오지 않았다.

가방만 두고 빈자리를 뜨자니 공연히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주인 없는 가방을 그냥 두고 내리면……?

 

개운치 않고 찜찜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할 수 없이 내려야 했다.

그래서 뒷문 쪽으로 하차하러 가면서 보니 그 아가씨가 뒷구석에서 전화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냥 내렸다. 그리고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만약 그 가방에 무엇이 들었는지 모르지만,

그 고슴도치가 나쁜 사람이면 가방 옆 사람인 나를 잡고

그 안에 뭐뭐가 들었었는데 없어졌다고 덤벼든다면 어떻게 될까?

 

가방만 동그마니 두고 내리면 어떻게 되는 거야 하는 의문도 생겼지만…….

만약 그녀가 나를 잡고 그 안에서 돈을 꺼내갔다고 악을 쓰며 경찰서로 가자고 한다면? 아이구, 상상만 해도 소름!

 

이상한 사람이 나의 기분을 어지럽혔다. 나는 아무 탈 없이 내린 것이 다행스런 생각까지 들었다.

만약 빈자리에 둔 가방을 누가 집어간다면? 하는 기우도 생기고…….

 

낯모르는 옆 사람이지만 거동조심하고 자기 물건을 잘 간수하고 조심할 할 때

남도 편하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 여자애는 산에 살다 온 고슴도치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쩌면 그 아가씨는 세상 사람을 자기를 믿듯 남을 믿는 신뢰감이 그랬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사실 그런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이니 얼마나 아름다운 나라인가.

이런 생각을 하며 마음 정리.

 

우리나라 정말 좋은 나라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문학방 >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뽕나무 밭(桑田)  (0) 2025.06.05
옆 사람 18 / 부엉이 영감  (2) 2025.05.17
옆 사람 18 / 부엉이 영감  (0) 2025.04.25
옆 사람 17. 하늘 꾀꼬리  (2) 2025.04.19
우산과 그런 사이  (0) 2025.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