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사람 18
부엉이 영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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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 좌석에 우중충하고 오종종하게 생긴 70대쯤 보이는 부엉이같이 새까만 차림의 영감이 가방과 검은 비닐 봉투를 들고 콩콩거리며 달려와 앉았다.
아무 상관도 없는 옆자리 승객이지만 아가씨가 와서 앉으면 기분이 좋고 부엉이같이 생긴 사람이 앉으면 왜 싫은지 내 심보를 모르겠다.
아가씨든 영감이든 나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는 거 아닌가. 솔직히 말해 아가씨가 좋은 건 내 속이 엉큼해서인 것 같다. 하하하.
키도 작고 새까맣고 오종종하게 생긴 사람이 내 옆자리에 앉자마자 비닐봉투에서 무슨 빵인지 모르겠으나 별로 안 좋은 냄새나는 것을 꺼내어 우걱우걱 먹는 것이었다.
밀가루 냄샌가? 하는 중에 날마다 그 시간이면 나오는 안내방송 “기내에서는 음식을 잡수시면 안 됩니다. 핸드폰은 진동으로 하시든 꺼놓으시기 바랍니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도 이 부엉이 영감은 수그린 채 우적우적 먹기에 정신이 없었다. 내가 보기에도 좋지 않았고 빵 냄새도 별로였다.
부엉이 영감, 빵을 다 먹고 나더니 가방을 열었다. 힐끗 훔쳐보니 책이 가득했다.
나는 책만 보면 눈이 번쩍 띄고 마음이 변하는 별종이다. 호기심이 나서 지켜보다가 그가 꺼내 드는 책을 보고 더 깜짝 놀랐다.
어!! ?? 저건? <역대 세계의 소피스트> !!
왜 놀라느냐고?? 그 책은 바로 우리 출판사에서 발행한 철학 교양서이기 때문이었다.
출판 50년에 내가 만든 책을 보는 사람은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었다. 나는 갑자기 빵 냄새도 구수하고 오종종한 영감의 얼굴이 귀엽게 보여서 말을 건넸다.
“선생께서는 그 책을 어떻게 가지고 계십니까?”
부엉이영감 입술에 빵이 묻은 채 대답.
“난 꼴이 이렇게 생긴 대로 별 볼일 없는 인간이지요. 이 나이가 되도록 나이만 먹고 배고프면 음식이나 해치우는 식충이니까요.”
“식충이가 아니십니다. 책을 들고 계신데…….”
그가 물었다.
“어다까지 가시오?”
“수원까지 갑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디까지 가시나요?”
부엉이 영감 대답.
“대전까지 갑니다. 내일 온전에 모 대학에서 철학특강을 해달라는 청을 받아서 가는 길입니다.”
그 대학은 내가 잘 아는 대학이고 거기서 우리 출판사의 그 책을 선택한 적도 있어서 반가웠다. 그는 변명 비슷하게 말했다.
“나는 여섯 시에 아침을 먹고 오후 다섯 시에 저녁을 먹습니다. 1일 2식이지요. 차에서 음식을 먹지 말라고 했지만 난 그 시간에는 꼭 먹어야 삽니다.”
그리고 잠깐 사이에 몇 마디 더 나누다 시간이 되어 나는 차에서 내렸다.
집으로 돌아오며 반성했다.
내가 참 교만하고 건방지고 못돼먹은 인간이라는 것.
남을 외모만 보고 평가하는 못된 습관이 있다는 것,
남자보다 여자를 좋아하는 수컷 추태 인간이라는 것,
별로 아는 것도 없으면서 아는 체한다는 것,
내 허물은 못 보면서 남을 비판하는 비겁한 인간이라는 것,
매사에 나이 값, 이름값을 못한다는 것…….
집에 도착하도록 생각하니 반성할 것이 너무 많아서 줄여야 한다.
부엉이 영감이 유대인으로 말하면 랍비 같은 분이었다.
유대인들은 거지 중에도 랍비가 있으므로 외모로 상대 평가를 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난 고개를 숙여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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