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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사람 14 / 어! 또 만났네

웃는곰 2024. 7. 21. 19:43

옆 사람 14 / ! 또 만났네

 

지하철 엘리베이터 앞에서 언젠가부터 만나는 사람이 있었다.

붉으죽죽한 가죽 개똥모자를 쓰고 등이 약간 구부정한 영감이다. 우연히 퇴근길에 몇 번을 만났더니 어느 날인가 영감이 나를 보고 놀랍다는 듯 한마디 했다.

! 또 만났네.”

 

나도 속으로 그러네, 영감 자주 만나네.’ 하고 형식적으로 머리만 꾸벅해 보였다.

 

영감은 마치 엿장수나 고물 장수같이 보였다. 이유는 모자 때문이었다. 고물장수나 옛날 엿장수는 그런 모자를 쓰고 다니는 것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나서 얼굴이 익은 영감이 어느 날 무궁화호 내 좌석 31번 석을 지나 33번 석으로 지나가다 나를 발견하고 또 ! 또 만났네.”했다.

 

그리고 수원역에서 나를 따라 내렸다. 그리고 내 뒤를 졸졸 따라오기에 무얼 하는 영감일까?’하고 생각하는데

우리 자주 만나는데 오늘 차 한잔 하고 갑시다. 내가 대접하겠소.” 했다.

할 수 없이 그럽시다 하고 그와 함께 카페로 들어갔다.

 

영감이 커피 두 잔을 사들고 와 마주앉았다. 아무리 보아도 엿장수나 고물장수 같은데 마스크로 가린 얼굴을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었다.

 

영감이 커피를 권하면서 찻잔 닦으라고 준 곰보 휴지를 펴더니 거기다 자기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으며 말했다.

난 명함이 없어서 이렇게 써 드릴 테니 이해하여 주시오.”

나도 명함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말로만 저도 없습니다.’ 하고 들여다보니 글씨가 보통 필체가 아니었다.

 

또박또박 깔끔하게 쓴 글자가 살아 있었다. 그래서 그 휴지를 받아들면서 내 이름을 대고 내가 먼저 마스크를 벗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분도 그제야 마스크를 벗었다.

이크! 품위 있는 얼굴!”

 

마스크와 모자를 벗은 얼굴은 엿장수도 고물장수도 아니었다. 인상이 좋은 품위를 느끼며 솔직히 말했다.

 

참 인품이 좋으십니다. 제가 겉 사람만 보고 실례했습니다.”

아닙니다. 실례라니요. 나도 선생이 좋아서 차 한잔 하자고 한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뭘 하시는 분인데 날마다 열차를 타십니까?”

 

저는 **대학교 대학원 교수부장을 지내고 지금은 **정부기관에 근무합니다.”

나는 가지고 있는 <울타리>를 건네면서 말했다.

저는 출판사를 하면서 이런 책을 만듭니다. 이 책이 제 명함이기도 합니다.”

그러시군요. 연세가 저와 비슷해 보이시는데……?”

용띠입니다. 선생님은?”

토끼띠입니다.”

그럼 형님이십니다.”

한 살 차이에 무슨 형 아우입니까. 우리 친구합시다.”

 

이래서 나는 영감친구를 알게 되었고, 동시에 내가 얼마나 건방지고 오만한 사람인가를 반성했다. 그렇게 훌륭한 교수를 차림새만 보고 엿장수 고물장수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유대인 거지 중에는 랍비가 있다는 말을 알면서도 나는 겉 사람만 보는 눈을 가졌으니 한심하지 않은가. 내가 제대로 된 사람이 되자면 아직 멀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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