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좌석 13 / 부엌 차린 다람쥐
내가 31번 석에 앉았는데 키가 작은 부인이 들어오고 뒤를 이어 역시 작은 키의 남자가 손수레를 끌고 따라와 32번석 앞에 멈추었고 부인이 자리에 앉았다.
손수레를 끌고 따라온 남자는 가지 않고 통로에서 무슨 이야기인지 두 사람이 계속 속닥거렸다.
‘저 부부가 여기 나란히 앉아 이야기하면 얼마나 좋을까? 한분은 입석표만 산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내가 자리를 양보해주면……?’ 하고 생각했지만 쉽게 자리 양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망설이는데 출발 안내 방송이 나왔다. 그제야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
다람쥐같이 작은 부인은 차에 오를 때부터 검은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남편인 듯한 남자가 내리자 검은 안경을 벗고 잠자리눈처럼 둥그렇고 큰 안경을 바꾸어 썼다.
그러더니 그 안경을 벗어 검은 안경과 나란히 앞좌석에 달린 망주머니에다 걸더니 이번에는 작은 안경을 바꾸어 썼다.
‘이 다람쥐 아줌마, 안경점을 차리나?’
이렇게 생각하고 지켜보자 이번에는 손수레에 있는 짐을 풀었다. 그 안에서 크고 작은 비닐봉지들이 나오고 플라스틱 꼬마 통들이 쏟아져 나왔다.
‘허허, 이 다람쥐 아줌마 산보 오셨나? 뭘 하시려는 걸까?’
나는 호기심이 생겨서 지켜보는데 그 아줌마는 옆 사람에는 관심 없이 바닥에다 그것들은 이리 놓았다 저리 놓았다 이리 놓았다 자리바꿈을 하는 동안 내 앞 통로는 살림살이로 즐비했다.
안경 2개를 걸어놓은 망에는 물병을 넣고 홀짝홀짝 마시며 부엌처럼 꾸몄다.
나는 나갈 때 어떻게 나간담? 저렇게 벌여놓은 살림살이들을 날아서 넘어야 하나 밟고 넘어야 하나 생각 중인데 아줌마는 그것들을 이리저리 들었다 놓았다 바빴다.
‘참 이상한 아줌마, 다람쥐 같은 살림놀이를 하시네.’
그러고 바라보는 동안 30분이 지나갔다. 방송에서 수원입니다. 내리실 분은…….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줌마는 앉은 채 나한테는 관심도 배려도 없이 지나가라는 거였다. 할 수 없이 나는 조심스럽게 살림살이들을 넘어 통로로 나왔고 차에서 내렸다.
이상한 다람쥐 아줌마다. 무슨 살림을 거기다 차릴까? 날마다 타는 차, 날마다 바뀌는 옆 사람, 참 별별 사람이 다 앉았다 떠난다. 그분은 왜 그렇게 안경을 여러 개나 가지고 다니며, 살림살이를 거기다 차렸을까?
세상을 살다 보면 일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가는 인물과 사건을 만나기도 한다. 참 이상한 사람들 가운데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스스로 내가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지만 남이 볼 때의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내가 아닐 수도 있다. 과연 나는 남이 볼 때 어떤 사람일까? 이상한 사람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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