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들의 항의
세상에서 가장 착한 동물은 토끼입니다.
놀라기 잘하고 먹는 것도 예쁜 입으로 조금씩밖에 먹지 않습니다.
욕심도 없고 불만이 있어도 말하지 않습니다.
얌전하고 순한 토끼장 앞에 동물들이 모여 회의를 했습니다.
맨 먼저 귀뚜라미가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참 이상합니다. 우리가 노래하면 운다고 합니다. 귀뚤귀뚤 작작작 귀뚤귀뚤 색색색/우리는 사는 동안 행복합니다/달밤엔 책 읽는 소리 귀뚤귀뚤귀귀뚤 /어둔 밤엔 사랑 안고 귀뚤귀뚤 내 사랑. 이렇게 즐기며 부르는 노래가 얼마나 듣기 좋습니까. 이게 우는 소리로 들리는 사람들은 참 불쌍합니다.”
이 말을 들은 뻐꾸기가 거들었습니다.
“맞습니다. 뻐꾹! 사람들은 참 답답합니다. 내가 목을 빼고 친구를 찾으며 노래를 하면 나 보고도 운다고 합니다. 친구들아 모여라 뻐꾹 뻐뻐꾹 / 진달래가 피었다 뻐꾹 뻐뻐꾹/ 사랑하는 민숙아 뻐꾹 뻐뻐꾹/ 진달래 꽃 따줄게 뻐꾹 뻐뻐꾹/ 오목눈이 둥지 속에 알을 낳았다./ 오목눈이 엄마 새야 미안해 뻐뻐꾹. 이렇게 노래를 하는데 우리를 보고 운다고 하니 그게 말이 됩니까?”
이때 닭이 소란스럽게 나섰습니다.
“두 분 말씀이 맞습니다. 나는 사람들과 가장 가까이 지내며 새벽마다 날이 밝았으니 일어나라고 목청을 돋우어 꼬끼오! 꼭 깨오! 외치면 게으름뱅이들은 새벽닭이 운다면서 귀찮아합니다. 내가 왜 새벽부터 울겠습니까? 꼭 끼어 안고 싶다 나의 사랑 닭순아 꼭끼오 꼭끼오/ 아침 먹고 놀이 가자 닭순아 꼭끼오/ 하는 말을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하고 운다고 합니다.”
이때 매미와 개구리가 한꺼번에 자기가 먼저 말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래서 사회를 맡은 돼지가 말했습니다.
“자, 그러지 마시고 이제부터 발언할 분은 미리 접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접수는 가나다순으로 하겠습니다. 매미보다는
개구리가 먼저 되겠습니다. 또 접수할 분 있습니까?”
참석자 뜸부기, 부엉이, 소쩍새가 가나다순으로 접수했습니다.
돼지가 개구리에게 발언권을 주자 개구리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모내기할 때 올 농사는 풍년일세 개굴개굴 일하세/ 남자들은 모를 심고 아주머니 밥 내온다 개굴개굴 신난다/ 우리도 짝을 짓고 결혼하자 개굴개굴/ 그런데 사람들은 우리가 운다고 합니다. 울면서 사랑할 짝을 찾는 동물이 어디 있습니까?”
참석자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뒤를 이어 매미가 연미복 차림으로 나와 말했습니다.
“앞에 분들도 다 그러셨습니다만 우리가 나무 위에서 여름 내내 노래를 부르며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을 사람들은 너무 모릅니다. 맴맴 쓰르르맴 아이들은 꿈을 꾸고 어른들은 쉬시지요 맴맴 쓰르르맴/ 아름다운 세상에서 함께 있어 좋아요 맴맴 쓰르르맴/ 우리들은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맴맴 쓰르르맴. 사람들은 장수하나 우리들은 잠깐 나서 노래하다 떠납니다. 맴맴 쓰르르. 그런데 사람들은 우리가 운다 합니다. 사람들은 정말 정말 이상합니다.”
이때 뜸부기가 날개를 활짝 펴 올리며 뜸북 뜸북하고 외쳤습니다.
“내 소리 들어보셨지요? 이게 우는 소리입니까? 농부들이 일할 때 우리는 농부들 일손에 맞추어 뜸북뜸북 장단을 맞추어 주면서 노래를 하는 것입니다. 왼손으로 파고 오른 손으로 덮어요 뜸북뜸북 뜸뜸북/ 아주머니 밥 내와요 뜸북뜸북 뜸뜸북/ 새참에 막걸리는 나도 한잔 먹고 싶네 뜸북뜸북 뜸뜸북/ 올 가을에 아들 장가 뜸북뜸북 뜸뜸북/ 쉬엄쉬엄 하시지요 뜸북뜸북 뜸뜸북 이 얼마나 정다운 노래입니까? 이것도 모르고 우리가 운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노래까지 있어요.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면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는데 어쩌고 말입니다. 비단구두 사오면 얼마나 기쁜 일인데 운단 말입니까. 뜸북뜸북 뜸북새 노래를 하면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고 돌아올 때 웃으며 구두 사온대 하면 얼마나 듣기 좋습니까.”
모여 있는 동물들이 모두 옳소 하고 박수를 보냈습니다. 부엉이도 뜸부기처럼 부우엉 부우엉 하고 말을 시작했습니다.
“제 소리가 우는 소리로 들리는 분 앞으로 나오십시오. 나는 밤이 깊어가고 있으니 그만들 자라고, 그만 주무시지요 부엉부엉 / 좋은 꿈 꾸세요 부엉부엉 / 부부 싸움 하지 말고 안고 자세요 부엉부엉 부우엉 / 도둑들아 물러가라 부엉부엉 그런데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사람들이 원망스럽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소쩍새 어른?”
소쩍새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습니다.
“부엉 어른이 말씀하신 대로 사람들은 정서적으로 우리의 감정을 너무 몰라줍니다. 나도 밤이면 밤마다 돌아다니는 도둑들을 지키며 도둑이 서쪽으로 갑니다 서쪽서쪽 / 내 짝은 어디 있나 서쪽이냐 동쪽이냐/ 달 밝으니 참 좋구나 같이 놀자 서쪽서쪽/ 처녀 총각 몰래 만나 사랑하네 서쪽서쪽! 이렇게 알려주면 내 속도 모르고 내가 운다고 합니다. 무엇이 아쉬워 한밤중에 울겠습니까?”
사회를 맡은 돼지가 좌중을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아침에 우는 새는 배가 고파 울고 저녁에 우는 새는 임이 그리워 운다는 노래도 있습니다. 그건 사람들 생각이지요. 아침에 새가 우짖는 것은 우는 것이 아니라 해가 뜨니 기쁘다는 소식이고 저녁에 짖는 것은 잠자리를 마련했으니 친구여 이리 오라, 나하고 자자 친구 부르는 소리 아닙니까?”
이때 잠잠히 듣고만 있던 토끼가 빨간 눈을 굴리며 말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까마귀님과 까치님 그리고 멍멍 개님들은 사람들이 운다고 하지 않고 짖는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까치가 돼지에게 말했습니다.
“개가 짖는다는 말은 그럴 듯하게 들리지만 우리 새들을 보고 짖는다고 하면 개가 된 기분이 들고 자존심이 좀 상합니다.”
이때 개가 멍멍하고 소리쳤습니다.
“무엇이 어때요? 자존심이 상한다고요? 나는 새들이 짖는다고 하는 말이 귀에 거슬렸습니다. 새가 짖다니 새들 수다에 우리는 잠도 제대로 못 자요. 우리가 멍멍하고 소리치는 것은 우리만 다니는 길로 도둑이 들어옵니다. 구멍을 보세요 개구멍 보세요 멍멍/ 쥐구멍 보세요 멍멍/ 개구멍은 우리같이 정의로운 무리가 다니는 길을 감히 도둑과 쥐가 다니기 때문에 불쾌한 것입니다. 그리고 수다나 떠는 새들이 그런 소리를 낼 수 있습니까?”
까치가 받아 말했습니다.
“우리가 수다를 떤다고 하셨습니까? 나는 높은 나무 위에서 멀리 손님이 오시는 것을 알고 반가운 손님이 오십니다 하고 까까가 하고 누구보다 먼저 알리는 정보를 전니다. 그런데 가끔 사람들은 우리가 운다고 하는 소리도 들었습니다만 개처럼 짖는다는 말을 더 많이 들었습니다.”
이때 까마귀가 까치의 말을 막고 입을 열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흉조라고 하는 나라도 있고 길조라고 하는 나라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저를 흉조라고 합니다. 까악까악 하고 소리 내는 것은 노래도 짖는 것도 아닙니다. 매사에 조심하셔야겠습니다. 길 조심하세요 차 조심하세요 하지만 사람들은 우리가 하는 경고를 무시하고 사고를 당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짖어서 재수 없다고 엉뚱한 소리를 하여 억울합니다.”
동물들의 항의는 끝없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사회자 돼지가 졸려서 잠 좀 자야겠다고 하면서 결론을 내렸습니다.
“여러분의 소원을 들었으니 앞으로는 사람들이 새들이나 개구리가 운다는 말을 못하게 하겠습니다. 노래를 운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고쳐주어야 합니다. 서양에서는 모두 노래한다고 합니다. 어두운 역사를 가지고 슬프게 살아온 사람들은 무슨 소리든 우는 소리로 듣는 것이 운명을 더 어둡게 만듭니다. 나는 늘 즐거워서 웃고 삽니다. 음식마다 꿀맛이라 꿀꿀/ 잠을 자도 꿀맛이라 꿀꿀/ 세상에 꿀맛 아닌 게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운다는 말은 안 하고 모두 나만 보면 꿀꿀합니다. 여러분 앞으로는 모두가 꿀꿀꿀꿀 삽시다.”
그리고 돼지가 마지막 폐회선언을 했습니다.
“회의가 너무 길어졌습니다. 다음 회기에 하기로 하고 사회봉을 칩니다. 땅땅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