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가 사는 집 195/69쪽
1. 부자 되는 비결
잉꼬부부 정다다와 유익선은 항상 웃으며 감사를 입에 달고 다니는 친구 같은 젊은 짝꿍이다.
남편 유익선은 아내를 ‘다다!’하고 부르고, 아내 정다다는 남편을 ‘익선!’ 하고 이름을 부르고 산다.
“다다, 오늘 방송 들어보았나?”
“무슨 방송인가요?”
“우리나라 최고 갑부 화성그룹 회장님이 특별강의를 한다는 소식 말이오. 오늘은 특별히 텔레비전 방송으로 중개를 한다는데.”
“당근이죠. 당신 회사 회장님이신데요.”
부부는 회장의 강의를 듣기 위해 회사 강당으로 갔고 강당에는 수천 명의 간부사원들과 내빈 그리고 방송기자들이 가득 메웠다.
그룹 회장은 유명한 연설가이면서도 평소에 강의나 인터뷰를 하지 않는 것은 물론, 과묵하기로 소문난 분이기 때문에 그가 무슨 말을 할는지 들을 기회를 놓칠 수 없었던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오늘 강의는 ‘상비약 세 가지를 가지고 계십니까?’였다.
강의를 하기 위해 강단에 오른 회장은 시원한 대머리에 건장한 모습이었다. 회장은 등단하며 대뜸 청중을 향해 물었다.
“여러분, 성공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고 다음 말을 기다렸다. 회장님이 나직하면서도 강한 힘이 든 음성으로 말했다.
“우리가 흔히 말하기를 성공한 사람이라면 적어도 명예와 지위와 부, 이 세 가지를 갖추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꼭 갖추어야 할 요건이라고 평가하는데 이의가 없는 줄로 압니다. 여러분 모두가 과연 그렇다고 동의하십니까?”
사실 회장은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춘 분이다. 강의를 듣기 위해 참석한 수천 명은 다음 말에 귀를 기울였다. 회장은 칠판에 무언가를 크게 적었다.
‘1000억’
그리고 말을 이었다.
“외람된 말씀이긴 합니다만 저의 재산은 적어도 1000억은 훨씬 넘을 것 같습니다.”
회의장에 참석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므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회장이 물었다.
“여러분, 이런 제가 부럽습니까?”
모두가 “예!”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대답을 듣고 난 회장은 강의를 계속했다.
“지금부터 누구든지 이와 같은 성공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을 말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1000억 중에는 ‘0’이 몇 개입니까? 셋이지요?”
모두가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회장님은 계속했다.
“첫 번째 0은 명예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0은 지위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0은 부(돈)입니다. 이 세 가지는 인생에서 누구에게나 선망의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청중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회장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0 앞에 있는 ‘1’에 대하여 제 의견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1은 바로 나의 건강과 가족입니다. 여러분! 만일 1을 없애면 1000억이란 숫자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바로 0원이 되어 버립니다. 1이 없는 0은 아무리 많아도 소용없는 숫자란 말입니다.”
청중 모두가 기가 차다는 표정이었다. 회장님의 강의가 계속되었다.
“그렇습니다. 인생에서 명예, 지위, 돈도 중요하지만, 아무리 명예가 훌륭하고 지위가 높고 돈을 많이 가지고 있어도 내가 건강하지 못하고 또, 가족이 없다면 내가 가진 모든 건 가치가 없는 것이고 바로 실패한 인생이 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강의를 듣는 청중들은 그제야 진정한 성공의 의미를 알겠다는 듯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깐 술렁이던 장내가 갑자기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지금까지의 이야기와 강의는 별 의미가 없었다는 듯 재벌 회장께서는 가장 핵심적인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시작했다.
2. 부자는 습관이 만든다
“제가 잘 알고 지내던 유명한 의사께서 마지막 남긴 중요한 말씀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도 익히 잘 알고 계시는 훌륭한 세 분의 의사를 소개하겠습니다. 세 분의 의사 이름은
첫째 의사는 음식(Food)입니다.
그리고 둘째 의사는 수면(Sleeping)이고
셋째 의사는 운동(Exercise)입니다.
여러분! 마음에 꼭 새겨두시면 좋겠습니다.”
회장은 수강자들을 둘러본 다음 말을 이었다.
“음식은 위(胃)의 4분의 3(75%)만 채우시고 절대로 과식(過食)하지 않으신다면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수면은 밤 10:00시 이전에 잠을 자고 아침 6:00시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신다면 어떻겠습니까? 형편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지만 수면 8시간은 필수 요건입니다.
운동은 열심히 걷다 보면 웬만한 병은 다 나을 수 있습니다. 연령에 따라 조금은 다르기도 하지만매일 하루 2Km 이상을 걸으시면 건강은 보장된다고 합니다.
이상은 극히 보편적이고 이미 잘 아시는 내용들입니다. 음식과 수면과 운동을 잘 이행하시면 아래의 세 가지 귀중하고 필수적인 약과 함께 복용하시면 효과가 더욱 크다는 사실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강조한 다음 또 다음 말을 계속했다.
“육체의 건강과 더불어 마음과 생각과 영혼의 건강을 위해 꼭 필요한 약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웃음(Laughter),
다음은 사랑(Love),
끝으로 셋째는 감사(Thanks)입니다.
육체만 건강한 것은 정확히 말하면, 반쪽 건강에 불과합니다. 영혼과 마음과 생각과 육체가 골고루 건강한 사람이 되어야 진정한 건강미를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건강한 육체를 지닌 사람이란
웃음이 얼굴에서 떠나지 않는 사람,
사랑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
감사가 넘치는 사람입니다.”
회장님은 역시 사랑이 넘치는 눈으로 앞에서부터 뒷자리 다다익선 부부가 있는 곳까지 둘러본 다음 설명을 했다.
“첫째 웃음은 평생 꾸준히 복용해야 합니다. 웃음의 약은 부작용이 없는 만병통치약이라는 진리를 알고 계실 줄 믿습니다.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도 이 약을 많이 자주 복용하시면 나쁜 일도 좋은 일로 바뀐다는 사실입니다.”
회장은 웃는 표정을 지어 보이고 다음 말을 이었다.
“아침의 웃음은 건강이 따라오고 하루를 여유롭게 만들어 줍니다. 점심의 웃음은 화목이 깃들고 친구나 동료들과 함께 멋지게 어울려 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녁의 웃음은 가족과 함께 행복과 평화를 만들어 간다고 의사가 말했습니다. 웃음 약을 많이 복용하시면 행복이 넘쳐나고 평안이 찾아옵니다. 웃음 약은 하루를 즐겁게 하고 나 자신도 모르게 나의 모든 것을 소유하게 합니다. 근엄하고 굳어 있는 얼굴보다 미소 짓고 환하게 웃는 얼굴, 한번 웃으면 한 번 더 젊어지는 웃음이 됩니다.”
회장님은 강물이 흘러가듯 유연하게 다음 말을 이었다.
“둘째 사랑은 비상 상비약입니다. 이 약은 시도 때도 없이 복용해도 복용할수록 건강에 좋습니다. 가장 귀하고 중요한 약중의 약입니다. 성경을 보니 믿음 소망 사랑은 항상 지녀야 하는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가장 고귀하고 영원한 이 사랑을 상비약으로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야말로 누구보다도 성공하고 값진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 확신합니다. 내 주위를 곰곰이 살펴봐도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그 모습이 늙지도 않습니다. 그뿐 아니라 모습이 늘 행복해 보입니다. 이 진리를 깨닫는 사람은 분명히 행복한 인생을 사는 사람임이 틀림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3. 감사와 사랑으로 사는 삶
회장은 물을 한 모금 마신 다음 이었다.
“다음은 유대인의 지혜서로 알려진 탈무드에 이런 질문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하고 지혜롭게 승리한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사랑하며 감사하는 사람이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감사는 인생 최고의 밑천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런 멋진 재주와 기술을 가진 분은 인생살이에 손해 볼 일이 결단코 없을 것입니다.
내가 아침에 눈 떴다는 사실,
내 눈이 모든 걸 볼 수 있다는 사실,
내가 편히 숨 쉬고 있다는 사실,
내가 세 끼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
이 모든 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조건들입니다.
나에게 자질구레한 잔병이 있어도 내가 지금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이만큼 건강하게 활동하니 매일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를 아껴주는 소중한 가족이 있으니 이 또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언제 어디서도 기도할 수 있음에 이것 또한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조건입니다.
따뜻한 마음과 정을 나눌 친구도 몇 녀석 있으니 이것 또한 분에 넘치는 벅찬 감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도 가고 싶은 곳에 내 발로 당당히 걸어갈 수 있으니 이 또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도 건강하고 즐겁고 유쾌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어 내가 행복하다는 사실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에서 백까지 우리는 모든 일에 감사할 조건이 차고 넘칩니다. 나는 기독교인이 아닙니다만 성경 말씀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
이런 구절의 범사는 모든 일을 일컫습니다.
조건 없이 모든 일에 감사하라 합니다.
‘인생 기본 틀을 지켜 행하라’고 가르치는 말씀이라고 생각됩니다. 앞을 보지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미국의 시청각 장애인 헬렌켈러는 장애인으로 태어나게 된 것까지도 평생 감사생활로 생을 마감함으로써 후세에 귀감(龜鑑)이 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감사할 조건을 다 갖추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내가 지금까지 강조한 말을 잊지 말고 생활하시기 바라며 이만 간단히 말을 마치겠습니다.”
이것이 그룹 회장님 강의 내용이다, 다다가 중얼거렸다.
“모두 유익한 말씀이었어요.”
유익도 한마디 했다.
“다다가 유익한 말씀이라고 받아들였으니 그대로 살아봅시다.”
다다가 웃으며 받았다.
“익선도 인정한다는 말씀이지요?”
4. 식당 봉사
잉꼬부부는 강의를 듣고 나와 점심식사를 하려고 골목 식당을 찾아 들었다.
작은 식당에 웬 손님이 그렇게 많이 몰려왔는지 빈자리도 없이 꽉 차서 와글거리는데 아가씨 혼자 음식을 나르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이거 달라 저것 달라 아우성인데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땀을 빼고 있었습니다. 익선이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자 다다가 일어서며 말했다.
“안되겠어요. 우리가 손님으로 오긴 했지만 이럴 때 저 아가씨를 좀 도와주어야겠어요.”
그리고 주방으로 달려가 쟁반을 들고 거들기 시작했다. 낯선 손님이 거들어 주자 아가씨가 고마워했다.
“손님, 이러시면 안 되는데요.”
다다가 웃으며 대답했다.
“안 되는 게 아니에요. 혼자 얼마나 힘드세요. 제가 도울 테니 부담 갖지 말아요.”
“손님, 고맙습니다.”
그렇게 하여 거의 한 시간 동안 손님을 받고 음식을 나르며 일을 마쳤다. 그 동안 남편 익선도 빈 그릇을 날라주기도 하고 부부가 점심도 굶은 채 도왔다.
식당 안이 조용해지자 익선이 다다한테 말했다.
“우리도 이제 점심 식사합시다.”
이때 아가씨는 물론 식당 주인까지 나와 허리를 굽실거리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마침 오늘 직원 한 사람이 나오지 않아서 미스 오가 혼자 고생을 했는데 손님들께서 도와주시어 큰 힘이 되었습니다. 다른 방법으로 감사는 못 드리고 우리 집 특식으로 대접하겠습니다.”
다다가 대답했다.
“그러실 것 없어요. 대접하시겠다는 말씀으로 족합니다.”
“아닙니다. 이렇게 고마운 분들한테 그럴 수야 없지요.”
“우리는 정식으로 식대를 내고 먹어야 봉사한 보람이 있지요. 수고했다고 대접을 받으면 봉사한 보람이 없어지는 거예요.”
이때 익선도 한 마디 했다.
“그렇습니다. 대접받고자 하여 도와드린 것이 아니고 즐겁게 봉사한 것이니 더 말씀은 마시고 장국밥이나 주세요. 밥값도 공짜는 사양합니다.”
주인이 더 겸손히 말했다.
“지금까지 50년간 식당을 해 왔지만 손님이 오늘처럼 도와주시는 분은 없었습니다. 오늘은 매우 고마운 날입니다. 감사합니다.”
익선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감사한다는 말씀 두 번째 하셨습니다. 그 정도면 감사는 충분히 받은 것이니 우리도 식사하고 가야 합니다.”
5. 고집 센 할머니
주인이 정성껏 차려주는 상을 받고 부부는 밖으로 나와 시장 입구를 지나는데 한쪽 귀퉁이 담장 아래 꼬부랑 할머니가 신문지를 펴놓고 푸성귀와 감자, 고구마 몇 개를 놓고 있는 것을 보았다. 다다가 할머니 곁으로 다가가 말을 건넸다.
“할머니, 이거 파시는 거예요?”
“그래요.”
“이거 다 얼마치나 되나요?”
“만원어치나 되는지 잘 모르겠어요.”
“값도 모르시면서 장사를 하세요?”
“손님이 주시는 대로 받아요. 어떤 분은 5천 원도 주고 어떤 분은 만원도 주시면 주는 대로 감사했지요.”
“5천원 받고도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셨어요?”
“돈이야 생기는 대로 살면 되지요. 욕심 부려서 되나요.”
다다가 할머니를 자세히 들여다보다가 머리를 갸웃하고 말했습니다.
“할머니는 이런 장사만 할 분이 아닌 것 같은데…….”
할머니가 대답했다.
“장사할 사람이 따로 있나요?”
“옛날부터 이런 장사를 하셨나요?”
“젊어서야 다른 일을 했지요.”
“무슨 일을 하셨나요?”
“초등학교 선생도 해 보고…….”
다다가 더 파고들 들었다.
“어디서 선생님을 하셨나요?”
“경기도 산골 학교에서 했지요.”
“그런데 어쩌다 이런 장사를 하시게 되었어요?”
할머니가 귀찮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런 것까진 묻지 말아요. 안 살 거면 가세요.”
“아니에요. 이것들 다 사갈 거예요.”
다다는 2만 원을 내놓았다. 할머니는 만 원만 받으며 말했다.
“이것만 받을게요. 만원도 비싼 게요.”
“그러지 말고 다 받으세요.”
할머니는 단호했다.
“안 팔아요. 제값보다 비싸게 파는 건 도둑질이이에요.”
곁에서 보고 있던 익선이 기가 막혀서 끼어들었다.
“할머니, 우리가 드리는 성의는 받으셔야지요.”
“동정은 안 받아요. 안 팔 테니 물러들 가세요.”
다다가 만원만 넘겨주고 깔려 있는 신문지에 푸성귀를 다 싸들었다.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툭툭 털고 일어서서 말했다.
“잘들 가시오.”
이 한 마디를 남기고 자리를 떴다. 할머니가 골목길 멀리 가고 있을 때 다다가 말했다.
“우리 저 할머니가 어디 사시는지 알아보고 돌아가요.”
유익선이 의아해 물었다.
“왜 그러오?”
“알아보고 싶은 게 있어요.”
그렇게 하여 부부는 할머니가 가는 길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할머니는 좋은 집들을 다 지나 언덕 위에 허술한 집으로 들어갔다. 그것을 확인한 다다가 길을 돌아 집으로 향했고 익선은 말없이 뒤를 따라 하루가 갔다.
6. 몸살 난 할머니
다음날 다다가 직장에서 일찍 퇴근하여 그 할머니 만났던 자리로 갔다. 나와 있으려니 믿었는데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집을 알았으니 어째서 나오시지 않았는지 알아보려고 그 집을 찾아갔다. 집 앞에 막 도착했을 때 안에서 꼬마 아이가 나왔다. 아이한테 물었다.
“너 이 집에 사니?”
“네. 누구세요?”
“응. 아주 똘똘하게 생겼구나. 누구하고 살아?”
“할머니하고.”
“엄마 아빠는?”
“없어요.”
“지금 어디 가는 거야?”
“할머니 약 사러가요.”
“무슨 약?”
“몸살 약 사오라고 하셨어요.”
“그래? 나하고 같이 가자.”
“아줌마는 누구예요?”
“할머니를 잘 아는 사람이야. 걱정하지 말고 약방으로 가자.”
이렇게 하여 약방에 가서 감기몸살약과 몸에 좋다는 보약 종류를 사서 아이한테 안겨주고 말했다.
“아줌마는 바빠서 가야 해. 너 혼자 갈 수 있지?”
“네.”
아이를 돌려보내고 다다는 멀찍이 떨어져 그 뒤를 밟았다. 아이는 귀엽게 약봉지를 들고 집으로 갔다.
다다는 집을 둘러보았다. 사람이 사는 집 같지 않은 매우 낡은 집이었다. 한 시간쯤 지나서 아이가 들어간 대문으로 들어가 할머니와 아이가 나누는 소리를 엿들었다.
“할머니, 안 아파? 다 나았어?”
“그래, 네가 좋은 약을 사와서 먹었더니 금방 나았다.”
“내가 약을 사러 갔는데 어떤 예쁜 아줌마가…….”
“그게 무슨 소리냐?”
“나도 몰라.”
“모르다니 무슨 말이야?”
“어떤 아줌마가 어디 가냐고 물어서 할머니 약 사러 간다고 했더니 따라와서 이렇게 약을 사주고 할머니가 준 돈은 나 가지라고 했어.”
“네가 그 돈을 가졌다고?”
“응.”
“앞으로는 남이 주는 돈 받으면 안 된다. 알았어?”
“그 아줌마 누구야?”
“네가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고마운 아줌마지?”
“고맙기는 한데 돈을 너한테 돌려주어서…….”
7. 살다 보면 별꼴을 다 보는겨
다다는 거기까지 듣고 돌아오고 다음 날 또 시장 모퉁이를 찾아갔다. 다행히 오늘은 할머니가 푸성귀 몇 가지를 펴놓고 장사를 하고 있었다. 다다가 다가가 인사를 했다.
“할머니, 오늘도 나오셨네요?”
노인은 금방 알아보고 대답했다.
“고워요.”
“정말 고마우셨어요?”
“그렇게 다 사주었으니 고맙지요.”
“오늘도 다 사드릴까요?”
“안 팔아요. 먼저 사간 것도 못 다 먹었을 텐데…….”
“다 먹었어요. 오늘도 전처럼 드리면 되지요?”
“그럴 것 없어요. 오천 원어치만 사가세요.”
“우리는 식구가 많아서 다 사가도 모자라요.”
“웬 식구가 그렇게 많아요. 요새 세상에.”
“할머니는 몇 식구나 되세요?”
“식구랄 것도 없지요.”
“어디 사시나요?”
“그건 왜 물어?”
“솔직히 말씀드릴까요?”
“말해 봐.”
할머니가 갑자기 말투를 바뀌었다.
“할머니네 집에 한번 가 보고 싶어서요.”
“거지나 사는 집 같은 델 뭘 볼게 있다고.”
“할머니가 젊었을 때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다고 했잖아요.”
“그랬지.”
“선생님까지 하신 분이 이런 장사를 하시니 궁금해서 그래요.”
“사람 살다 보면 별꼴을 다 보는겨.”
“선생님 하실 때 이야기 하나만 들려주실래요?”
“그건 왜?”
“선생님들은 특별히 사랑했던 제자를 오래 두고 기억하신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그랬지…….”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다 지난 이야기가 무슨 자랑이라고. 이거 사갈 거면 오천 원어치만 가지고 가.”
“오천 원어치를 사서는 안 산 것만 못해요.”
“그럼 다른 데 가 봐.”
“할머니는 고집쟁이신가 봐요.”
“난 허튼 짓은 안 해.”
“좋아요. 그럼 오천 원어치만 살 테니 할머니 추억담이나 들려주세요.”
“오늘은 그럴 기분이 아니야. 몸살기가 아직 남아서.”
“그러세요? 약을 사다 드릴까요?”
“약은 집에 가면 있어.”
“제가 집까지 모셔다 드릴까요?”
“별소릴 다하네. 사갈려거든 빨리 오천 원어치 가지고 가. 남은 건 내가 가지고 갈 테니.”
“알았어요. 오천 원어치만 주세요.”
노인은 반이 넘게 주고 자기는 한 주먹만큼 들고 일어서서 손짓을 했다.
“잘가.”
“네. 먼저 가세요.”
노인이 자기 집을 향해 걸었다. 다다는 간격을 두고 뒤를 따랐다. 노인은 역시 그 집으로 들어가고 잠시 후에 아이가 나왔다. 다다가 아이한테 손짓으로 불렀다.
“아줌마 왜요?”
“아줌마 말 잘 들어. 너 약국에 갔을 때 나 보았다고 할머니한테 말하지 마.”
“왜요?”
“너하고 나 비밀.”
아이가 재미있다는 듯 고개를 까딱해 보이며 손가락을 입에 세워대고 웃었다.
“알았어요. 비밀!”
다다는 용감하게 대문 안으로 들어가 할머니 방문을 톡톡 노크했다.
8. 박절한 할머니
노크 소리에 문을 열고 본 할머니가 깜짝 놀라며 내쳤다.
“여기가 어디라고 따라왔어! 돌아가!”
“할머니 용서해 주세요.”
“용서 빌 일을 왜 해?”
“죄송해요.”
“죄송한 줄 알았으면 돌아가.”
“할머니.”
“누가 할머니야?”
할머니는 문을 딱 닫고 내다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다다는 그 자리에 선 채 물러나지 않았다. 할머니가 문틈으로 내다보고 소리쳤다.
“여기가 어디라고 따라 와! 가지 못해?”
“할머니, 여쭈어보고 싶은 말씀이 있어요.”
“난 대답하기 싫어. 괜히 푸성귀나 사주는 척하고 이게 무슨 짓이야.”
“저 오늘 안 갈 거예요.”
“가든지 말든지 난 몰라!”
“이러지 마시고 제 말 좀 들어주세요.”
“할 말 없다니까.”
“저는 있어요.”
할머니가 밖에 있는 손자를 불렀다.
“필우야, 방으로 들어와.”
필우는 방으로 들어가며 손가락을 입에 세워 보이고 싱긋 웃었다. 비밀을 지키겠다는 신호가 아주 귀여웠다.
다다는 그래도 한 자리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필우가 문틈으로 내다보다 할머니한테 말했다.
“할머니.”
“왜?”
“아줌마 아직도 안 갔어.”
“가든지 말든지 내버려 둬!”
“그래도 할머니이.”
“넌 동화책이나 봐.”
“싫어. 아줌마 들어오라고 해.”
“어린것이 무슨 소리야?”
“아줌마는 우리 집 손님이잖아.”
“손님이 무슨 손님이야. 모르는 사람이야.”
필우는 생각보다 똑똑했다.
“우리 집까지 왔으니까 손님이잖아.”
“손님 아니야.”
“할머니가 그랬잖아. 누구든 우리 집에 오면 친절하게 대접해야 한다고.”
“…….”
“할머니가 거짓말 한 거야?”
“…….”
“난 할머니가 하라고 하는 대로 하기 싫어.”
“…….”
“내가 나가서 아줌마 막대기로 때려서 내쫓을까?”
“…….”
“난 할머니 말 안들을 거야.”
“…….”
“할머니 벙어리야?”
“…….”
“할머니, 내가 아줌마 모시고 올 거야.”
“…….”
“할머니가 왜 다른 사람처럼 보여?”
“…….”
“내가 아줌마 데리고 올 거야.”
그리고 문을 열고 말했습니다.
“아줌마, 들어오세요.”
다다가 못 이기는 척하고 방문 앞에 다가서며 말했다.
“할머니, 저 들어가도 되지요?”
“…….”
할머니가 대답을 하지 않자 필우가 말했습니다.
“아줌마 들어오세요.”
다다가 조심스럽게 방안으로 들어가 무릎을 꿇었다.
“어르신 저 들어왔습니다.”
8. 할머니 입
마지못한 할머니가 돌아앉아 입을 열었다.
“참 끈질긴 사람.”
“할머니 죄송해요.”
할머니가 물었다.
“뭘 물어보겠다고 이러시나?”
“할머니가 학교 선생님을 하실 때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다 잊은 일이야.”
“그래도 생각나는 대로 말씀해 주세요.”
“뭘 어쩌자고 보채는 거야?”
다다는 무릎을 꿇은 채 입을 열지 않았다. 할머니가 꾸짖는 소리로 말했다.
“됐어. 그만 돌아가.”
“안 갑니다.”
“뭐라고?”
“할머니가 선생님하실 때 이야기를 해 주세요. 산골학교가 어디신지요?”
“몰라, 다 잊었어.”
“그때 몇 학년을 맡으셨나요?”
“그런 걸 알아서 뭘 하겠다는 거야?”
“궁금한 게 많아요.”
“이만큼 대답했으니 돌아가.”
“그러지 마시고 선생님하실 때 기억나는 대로 말씀해 주세요.”
“그건 알아서 뭘 하겠다는 게야?”
“들어봐야 뭘 하든지 하지요.”
“참 독하군. 거머리같이…….”
“전 거머리보다 더 독해요 할머니.”
할머니가 손자 필우한테 돈을 주며 말했다.
“가게 가서 사이다 한 병 사와라.”
필우가 나갔다. 할머니 어조가 약간 부드러워졌다.
“저 어린 것 듣는 데서 말하긴 뭣하고…….”
다다가 납작 숙이고 감사했다.
“고맙습니다.”
“고마울 것도 없어. 내가 기억하고 있는 걸 이야기하자면 길어.”
“길어도 다 들을게요.”
할머니는 다다를 한번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지금은 내가 이 꼴이지만 한때는 그럴듯하게 살았지. 사범학교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 발령을 받고 간 산골학교는 학교 시설도 그렇지만 아이들이고 학부모고 모두가 거지였어.”
“그랬군요.”
“6.25전쟁이 가난한 사람들을 더 비참하게 만들었었지.”
“…….”
“선생들은 그래도 나라에서 주는 것이 있어서 밥을 먹었는데 시골 사람들은 굶기를 밥 먹듯 했고 학생들은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얼굴에 버짐이 날 정도로 비쩍 마르고 불쌍했어.”
다다는 그런 학생일 때를 생각하며 자기가 겪은 일을 남의 이야기하듯 말했다.
“저도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내가 한 반을 오륙학년 두 해를 맡았었는데…….”
이때 필우가 돌아왔다.
“할머니 사이다.”
할머니가 한쪽에 간수해 놓은 보자기를 풀고 도자기 잔을 내놓고 사이다를 따라주며 말했다.
“이거라도 마시고 돌아가.”
“아니에요. 마시고 가라시면 안 마실 거예요.”
“고집이 쇠고집이군.”
할머니는 사이다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계속했다.
“사이다는 마시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고. 내 얘기도 듣든지 말든지 몇 마디 할 테니 듣고 돌아가.”
“고마워요 할머니. 저도 이거 마시고 할머니 말씀을 듣겠어요.”
할머니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옛 얘기를 시작했다.
9. 할머니의 아픈 기억
“내가 학교에서 첨 맡은 반은 5학년 2반이었는데 기가 막혔어.”
할머니는 손가락을 몇 번 세다가 이었다.
“우리 반 아이들이 60명이었는데 그 가운데 첫눈에 든 아이가 있었지.”
“예뻤어요?”
“예쁘기도 하고 공부도 잘하고 명랑해서 잘사는 집 아이인 줄 알았지.”
“그런데요?”
“그때는 교사들이 가정방문을 의무적으로 했어. 나도 아이들 집을 하나하나 돌아보았는데 내가 가장 사랑했던 아이네 집에 가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왜요?”
“그렇게 예쁘고 명랑하고 공부 잘하는 아이가 움집에 살더라고.”
“…….”
“내가 그 아이네 집에, 집도 아니야 땅을 파고 둥그렇게 막대기로 뚜껑을 걸치고 그 위에 짚을 얹어 비만 안 맞게 해 놓은 집인데 들어가 보니 벽도 흙이고 바닥도 회포대종이를 깔고…….”
할머니는 당시를 생각하며 눈물을 훔쳤다.
“그 상황은 말로 못해. 그래서 내 머릿속에 그 상황이 더 깊이 박혔어.”
“…….”
“그런 속에 사는 아이가 어찌나 그리도 명랑했던지. 귀엽고 잊을 수가 없었어.”
“…….”
“내가 물었지. 부모님은 무얼 하시느냐 했더니 아버지는 산 너머 부잣집 머슴이었는데 군대에 나가갔다 전사하고 아버지가 없으니 엄마가 그 집에 살 수가 없어서 여기다 움집을 짓고 나와 낮에는 동네 일이 있는 집에 가서 일해 주고 겨우 먹을거리만 구해 왔다는 거야.”
“…….”
“생각만 해도 불쌍하지 않아?”
“…….”
“내가 그 아이의 사정을 알고부터는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어. 옷도 변변치 못하게 입었지만 학교에 오면 부잣집 아이들보다 더 명랑하고 힘차게 활동하고 공부도 일등만 했지. 그래서 반장도 했어.”
“…….”
“다른 애들은 점심 도시락을 싸오는데 그 애는 도시락도 못 사오고 점심시간이면 슬그머니 나가 우물에서 물을 퍼마시고 시간을 보내다가 교실로 돌아오곤 했는데…….”
“…….”
“내가 머리를 좀 썼지. 날마다 도시락 하나를 싸다가 한 아이를 시켜서 거짓말을 했어. 그 아이 엄마가 도시락을 두 개씩 싸주는데 다 먹을 수가 없어서 버려야 할 정도라고. 그래서 누구든지 도시락을 안 싸온 사람이 있으면 같이 하나씩 먹자라고 시켰지. 그랬더니 내가 사랑하는 그 아이가 명랑하게 내가 도와줄게 하면서 날마다 점심을 같이 먹었어. 난 그 아이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 웬만한 아이 같으면 배가 고파도 먹지 않으려고 했을 텐데 명랑한 반장 아이는 즐겁게 먹었어. 그것이 얼마나 고맙고 예뻤던지……. 나는 그 아이의 그런 성격을 부러워했지.”
다다가 눈물을 똑 떨어트린 채 입을 꼭 다물었다.
“…….”
“내 얘기 재미가 없잖아?”
“아니에요.”
“사람은 그래야 하는 거라는 걸 이제야 이런 꼴로 살다가 겨우 깨달았어. 사람은 어려울수록 용감하고 당당해야 하는데 매사에 주눅이 들어 할 말 못하고 할 일도 못하게 되더란 말이야.”
“…….”
“그렇게 하여 그 아이가 졸업을 하고 중학교를 가야 하는데 집안 사정이 그러다 보니 진학할 희망이 없었지.”
“…….”
“내가 생각을 많이 했어. 다른 애들은 진학을 하는데 그렇게 뛰어난 아이가 중학교를 못 간다고 생각해 봐. 아깝지 않아?”
“…….”
“그래서 내가 용단을 내렸어.”
10. 제자 뒷바라지
“다른 아이들은 다 진학한다고 들떠 있는데 그 애는 전에 없이 기가 죽은 채 시무룩하고 우울해 보였어. 안 그렇겠나?”
“…….”
“내가 그 앨 불러 말했지. 너도 중학교에 가. 내가 알아서 해 줄게. 우리 군에서 제일 좋다는 남녀공학 영주학교에 오늘 네 이름으로 원서를 냈다. 시험공부 잘 해봐.”
“…….”
“그 애는 생기를 얻고 시험을 보았는데 응시자 600명 가운데 시험 발표 날 보니 2등이었어. 1등을 해야 입학금 면제를 받을 수 있는데 2등이라 못 받았지.”
“…….”
“그래서 내가 학교로 찾아가 교장선생님한테 사정하여 2등이지만 등록금 반을 면제받기로 하고 입학을 시켰지.”
“…….”
“고 귀여운 것이 1학년을 마칠 때 전 학년에서 1등을 한 거야. 그래서 등록금을 안 내고 다닐 수 있었어. 나는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
“그 애가 중학을 졸업할 때까지 나는 하나도 안 빼먹고 학교 준비물이며 학용품을 남부럽지 않게 준비해 주었어,”
“…….”
“그 애는 중학 졸업 후 당시에 인기 있는 상업학교를 지망했고 입학시험에 1등으로 합격하여 3년간 줄곧 등록금 면제를 받고 졸업을 했지. 졸업생 중에 최우수상 수상자가 되었어. 내가 가서 축하해 주었는데 그 날 나는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 그런 경사스런 날도 그 애 엄마는 차림새가 부끄러워 못 간다고 안 갔어. 그래서 내가 대신 학부모 노릇을 했어.”
“…….”
“아이가 원래 똑똑하고 주판 실력이 뛰어나고 예뻐서 국제은행에서 특채를 한 거야. 그 애 학교의 최대 경사였어. 난 얼마나 기뻤던지 밤에 혼자 울었어.”
“…….”
“그렇게 좋은 일이 있고 그 아이가 서울로 가게 되었는데 집 사정 때문에 서울로 갈 수가 없었어. 그런데 특채를 한 우수한 아이라고 신문사에서 취재하러 은행장과 기자들이 그 아이 집을 방문했지. 방문자 모두가 놀라서 당황했는데 은행에서 특별히 서울에다 살 집을 마련해 주고 그 엄마도 모시고 갔지.”
“…….”
“잘사는 다른 아이들은 중학교만 마친 아이, 고등학교는 갔지만 대학진학은 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흩어졌어.”
“…….”
“그 아이가 서울로 간 다음 나는 나대로 대구에 있는 초등학교로 가게 되었어.”
11. 할머니의 과거
할머니는 한참 뜸을 들이가다 말을 계속했다.
“그 애도 나도 얼결에 큰일을 당하고 헤어져 다시는 못 만나게 되었어.”
“…….”
“그 아이네 주소도 모른 채 나는 나대로 대구로 가서 그 애를 찾을 수 없었고 그 애는 대구로 떠난 나를 찾을 수가 없었던 거야.”
“…….”
“지금은 통신이 잘 되어 있지만 그때는 전화도 없고 학교에 알아보아도 학교에서도 모르고…….”
“…….”
“나는 한동안 그 애 생각에 밥맛도 잃었어. 그러다 세월이 가고 나이가 차서 나한테 좋은 혼처가 있어서 결혼을 했고…….”
“…….”
“나는 대구에서 가장 큰 방직공장을 하는 집 장남하고 결혼을 했는데…….”
“…….”
“결혼 후에도 나는 10년이 넘게 학교에 나가다가 아이를 갖게 되어 학교를 그만 두고 아들만 정성껏 길렀지. 그렇게 기른 아들이 대학을 마치던 해 우리 영감이 돌아가시자 아들이 장가도 가고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 사업도 능란하게 잘했어. 그런데 가장 큰 주 거래처에 부도가 났어. 받은 어음을 공장 자재 거래처에 지불한 것이 휴지로 돌아오자 우리 회사에서 지불하라는 요구가 빗발쳤지. 우리가 어음 액수대로 지불해야 하는데 그것을 막지 못해 공장이 무너졌어.”
“…….”
할머니는 당시를 생각하며 눈물까지 지었다.
“사업이 그렇게 무너지고 나니 집안이 태풍 맞은 거지꼴이 되었지. 그 충격으로 우리 아들이 세상을 떠나고 우리 집에는 며느리하고 세 살짜리 손자만 남았는데 채권자들이 며느리를 들볶자 며느리는 그 등쌀을 견디지 못하여 날마다 눈물로 지샜어.”
“…….”
“며느리가 너무 딱해서 내가 그랬지. 네가 무슨 죄가 있어서 시달리느냐. 필우는 내가 기를 테니 넌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달아나 숨어서 결혼도 하고 잘살아라. 빚쟁이들이 나 같은 늙은이를 어쩌겠니. 그러자 며느리는 울면서 안 가겠다고 하는 걸 내가 등을 밀어 내쫓았지. 그 날로 며느리는 달아나 행방불명이 되었어.”
“…….”
“결국 채권자들이 나한테 매달리는 거야. 내가 무슨 힘이 있어서 그 문제를 해결하겠나. 나는 세 살짜리 필우를 데리고 날마다 며느리처럼 울고 지냈지.”
“…….”
“세상인심이 참 무섭다는 걸 느꼈어, 잘 돌아갈 때는 여기저기서 선물도 해 오고 굽실거리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모두 원수가 되어 나를 벌레 보듯 대하더군. 그때 공장 밑바닥에서 경비 겸 청소를 하던 민씨라는 영감이 나한테 그러더군.”
“…….”
“주인마님, 이제 별도리가 없으십니다. 오늘 밤 우리 고향 집으로 당분간 피신을 하시지요. 그러더니 밤중에 아는 사람 트럭을 불러 손자와 나를 태우고 이 집 근처에 있는 자기 집으로 데리고 왔어.”
“…….”
“전에는 넥타이 매고 머릿기름 자르르 바르고 살살거리며 아부하던 사람들이 옛정이고 뭐고 없이 돌아서는데 겨울바람보다 차가웠어. 그런 나를 평소에 밑바닥에서 궂은 일만 하던 민씨라는 분이 구해 주었어.”
“…….”
“민씨 어른은 농사를 짓다가 연이 닿아 우리 공장에 와서 한동안 일을 하시던 분이지만 고향에서는 존경받는 분이라는 걸 알았지. 그런 분이 왜 거기까지 와서 허드렛일을 하셨는지……. 그분이 나를 자기 친구네 집이라며 이 빈집 단칸방에 맡기고 낮에는 자기 밭에 나와서 일을 도와 달라고 사정했어.”
할머니는 나직한 소리로 말을 이었다.
12. 할머니는 천사
“사정은 내가 해야 하는데 민씨 어른이 사정하면서 당분간 먹고 살라고 부인하고 둘이 쌀, 간장, 김치 등을 이고 지고 가져다주면서 낮에는 나와서 들일을 좀 거들어주시면 좋겠다는 거야.”
“…….”
“그렇게 하여 필우를 키웠어, 올해 일곱 살이 되었으니 많은 세월이 흘렀고 나는 민씨의 도움을 받으며 낮에는 시장 귀퉁이에서 푸성귀장사를 했지. 이렇게 하다 보니 아이 옷도 사 입힐 만큼 되었고 그럭저럭 지내는 터인데…….”
할머니는 할 말 다했으니 돌아가라고 했다.
“그간 가슴에 품고 살아온 비밀을 남한테 털어 놓으니 가슴이 한결 후련하네. 이제 그만 돌아가. 더 해 줄 말도 없어.”
“…….”
다다가 꿈쩍도 하지 않자 물었다.
“새댁은 뭘 하는 사람인데 나한테 이러는가?”
“…….”
“저는 새댁이 아니에요.”
“…….”
“젊어 보여서 한 말이어.”
“…….”
“어디 사시나?”
“저 사는데 아시면 따라가시겠어요?”
“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는가?”
“…….”
“늙은이를 놀리고 싶은가?”
“놀리다니요…….”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말고 돌아가.”
“네. 오늘은 말씀대로 돌아가고…….”
다다는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 익선이 많이 기다린 듯 반겼다.
“다다, 웬일로 이렇게 늦었어?”
다다는 웃으며 어물거렸다.
“추억을 만나서 놀다 왔…….”
“그게 무슨 말이야? 추억을 만나다니?”
사랑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남편은 천사의 눈이었다. 약간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물었다.
“나 착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어때요?”
“원래 착한 사람이 어떻게 더 착한 사람이 되겠다는 건가?”
“난 원래 착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런데 오늘 할머니 천사를 만나서 마음이 많이 달라졌어요.”
“할머니 천사를 만나다니, 다다가 천사인데…….”
“정말이에요. 불쌍한 천사 할머니를 만났어요.”
“어디서?”
“시장골목 앞에서요.”
“거기가 어딘데?”
“익선도 알아요.”
“나도 안다고? 참 이상도 하군.”
“며칠 전에 길가에서 푸성귀를 팔던 할머니…….”
“그 할머니가 천사라고? 하하하, 천사가 왜 거기서 그러고 있었나?”
“진짜 천사는 낮고 외롭고 슬픈 사람들 곁에서 사는 거예요.”
“다다가 갑자기 철학자가 되었나?”
“그래요. 천사 철학자가 되고 싶어요.”
“점점 어려운 말만 하잖아?”
“어때요? 다다가 천사 철학자가 되고 싶은데 도와줄래요?”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천사를 도와줄 수 있나?”
13.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다고
다다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익선은 누구한테나 좋은 사람이라는 뜻이 아닌가요?”
“그렇지, 다다익선 익선이라고 했지.”
“다다하고 익선이 좋은 일 하나 해요.”
“뭔데?”
“그 할머니가 사는 집을 가 보았어요.”
“이상도 하네. 왜 그런 델 가?”
“내가 그 할머니를 어머니처럼 모시고 싶어서 그래요.”
“농담하는 거 아니지?”
“농담 아니에요. 그 할머니는 다 쓰러져 가는 집에서 일곱 살 먹은 손자를 키우고 계셨는데 할머니 힘으로 손자 뒷바라지를 제대로 할 것 같지 않아요. 손자가 아주 영리고 귀엽게 생겼어요.”
“그래서?”
“그 아이를 위해 우리가 착한 일을 하자는 거예요. 학교 갈 나이가 된 아인데 할머니가 무슨 대책을 세우고 계신지…….”
익선이 신중한 소리로 대답했다.
“아무리 그래도 어떤 집 아이인지도 모르면서 그 아이 뒷바라지를 하자는 거 아닌가?”
“그 천사 할머니 손자인데 뭘 더 알고 싶은 게 있겠어요?”
“글쎄, 내가 언제 다다가 좋다는 거 싫다고 한 적이 있었나?”
“고마워요. 내일은 천사 할머니를 만나서 의논해 보고 싶어요.”
“음, 알아서 하고.”
익선은 이름 그대로 착하고 너그러운 사람이다. 다다도 알고 보면 천사 같은 사람이라 항상 부부는 잉꼬처럼 다정다감하다.
다음 날 다다가 시장을 찾아갔다. 할머니는 늘 그 자리에서 그 모양대로 푸성귀를 펴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다가 다가가 인사를 했다.
“할머니 저 왔어요.”
할머니도 구면이라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를 받았다.
“왔어? 오늘도 뭘 사러 시장에 나왔나?”
“시장에서 몇 가지 사고 할머니 푸성귀 몽땅 사가려고요.”
“식구가 얼마나 되기에 그 동안 사간 걸 다 먹었나?”
“할머니, 그거 다 싸세요. 제가 가져갈 게요.”
“날마다 사다가 정말 다 먹나?”
“예, 오늘은 다 사가지고 할머니 집에 가서 놀다 가고 싶어요.”
“우리 집은 왜 날마다 오려고 해?”
“드릴 말씀도 있고요.”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다고 이러는 게야?”
“가서 말씀드릴게요.”
이렇게 하여 다다는 푸성귀를 다 챙겨 들고 할머니 집으로 갔다. 그리고 다른 가게에서 산 치즈, 포도 등을 내놓으며 말했다.
“필우가 좋아하는 것들에요.”
“무슨 할 말이 있다고 이러는 게야?”
“할머니 제가 농담하는 거 아니에요.”
“무슨 말을 하려는데?”
“할머니, 필우 데리고 우리 집으로 가서 저하고 살아요.”
할머니가 펄쩍 뛰었다.
“무슨 소릴 그렇게 하는 게야? 내가 이렇게 산다고 우습게 보여서 이러는 게야?”
“아니에요. 진심으로 드리는 말씀이에요.”
할머니는 단호했다.
“안 가!”
“할머니 마음도 이해해요. 그렇지만 필우도 생각하셔야지요.”
“필우는 내가 잘 길렀어. 남 말 함부로 하지 말고 가!”
할머니는 치즈가 든 봉투를 집어던지며 소리쳤다.
“내가 이러고 사니까 제 맘대로 날 데리고 가겠다고? 날 데려다 식모라도 시키고 싶은 게야?”
“…….”
“왜 말이 없어? 당장 나가!”
다다는 겸손히 허리를 숙이고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오늘은 가고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뭘 또 온다는 게야? 절대 오지 마!”
14. 사라진 할머니를 찾다
다다는 쫓겨나다시피 푸성귀를 챙겨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먼저 퇴근하여 와 기다리던 익선이 웃으며 물었다.
“오늘도 천사 할머니 가게를 통째로 사가지고 오는군?”
“그랬어요. 우린 무공해 식품을 실컷 먹으니 좋지 않아요?”
“암. 예쁜 천사가 할머니 천사네 가게에서 사온 무공해 식품 아닌가.”
“할머니 천사 고집이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무슨 고집?”
“우리 집에 와서 같이 살자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나를 쫓아버리지 뭐유.”
“그래서 쫓겨 왔다는 말이군?”
“아무리 그래도 내일 또 가서 설득시킬 거예요.”
“그렇게 싫다는 어른을 왜 모시려고 그래? 그것이 다다 맘대로 될까?”
“될 때까지 해야죠.”
“하긴 다다 고집도 대단한 걸 내가 알지.”
*
다음 날 오후 다다는 시장 모퉁이 할머니 자리를 찾아갔다. 당연히 계실 줄 알았는데 할머니가 안 나오셨다. 옆 사람한테 물어보았지만 왜 안 나왔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할 수 없이 할머니가 사는 집으로 찾아갔다.
놀랍게도 문에 자물쇠가 잠긴 채 비어 있었다. 다다는 실망하여 그 집에서 나아오고 말았다. 고집 센 할머니가 결국 어디론가 숨어버린 것이다.
시장으로 돌아와 몇 사람한테 물어보았다. 할머니 또래의 어른이 기억을 더듬으며 한 마디 했다.
“분명하지는 않지만 그 늙은이를 도와주는 늙은이들이 있었는데…….”
다다는 짚이는 바가 있었다.
“할머니, 그 두 어른이 부부 같았지요?”
“그런 것 같았어. 어떤 때는 두 사람이 푸성귀를 들어다 주기도 하고…….”
“그분들이 어디 사시는지 아시나요?”
“확실히는 모르지만 시장에서 벗어나 한참 들길로 나가면 시골 마을이 있는데 그 동네 사람 같기도 하고…….”
“동네 이름을 아세요?”
“관두리라고 했던가? 무슨 두리라고 했는데.”
“고마워요 할머니. 제가 한번 찾아가 볼게요.”
다다는 그 길로 시장골목을 빠져나와 논밭이 보이는 들길을 걸었다. 한참을 가다 보니 마을이 보였다.
‘관두리라고 하신 것 같은데 그만두라는 관둬 하는 말인가? 아니면 고관이 쓰는 모자란 뜻인가?’
이런 생각을 하며 마을길로 들어서는데 동네 아이들이 뛰놀고 있었다. 그 아이들 노는 한쪽 구석에 필우가 아이들 놀이를 구경하는 듯 멍하니 앉아 있었다. 반가워서 다가가 이름을 불렀다.
“필우야.”
필우가 보고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했다.
“아줌마, 안녕…….”
“언제 여기로 왔지?”
“오늘 아침에요.”
“할머니는 어디 계셔?”
“저기 집에…….”
필우는 다다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앞장서서 걸었다. 골목을 돌아 큰 대문 집으로 들어갔다. 농촌 집이지만 규모가 크고 정갈했다. 필우가 안채 건넌방으로 들어가며 할머니한테 말했다.
“할머니, 아줌마 왔어.”
할머니가 내다보시고 깜짝 놀라 물었다.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게야?”
“죄송해요. 할머니가 어디로 가시든지 찾을 수 있어요.”
이때 집주인 부부가 들일을 하고 돌아오는 것 같았다. 두 분이 각각 손에 호미와 괭이를 들도 있었다. 다다를 보자 물었다.
“누구를 찾아오셨소?”
다다가 겸손히 인사했다.
“죄송합니다. 필우 할머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주인 할머니가 유순한 말로 받았다.
“이렇게 오셨으니 안으로 드시오.”
15. 왜 자꾸 찾아오는 게야?
“감사합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노인 부부는 다다를 앞세우고 할머니 방으로 들어갔다. 할머니가 탐탁지 않은 낯으로 물었다.
“왜 자꾸 오는 게야?”
“할머니가 좋아서 찾아왔어요.”
이때 집주인 영감이 끼어들었다.
“댁은 우리 마님을 어떻게 아시었소?”
“장보러 왔다가 싱싱한 푸성귀를 파시기에 사다 보니 할머니가 좋아져서 왔습니다.”
부인도 한마디 끼어들었다.
“사람이 사람 좋아하는 건 좋지만 피차 누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고 좋아해야 하는 건데…….”
다다가 대답했다.
“저는 할머니도 좋았지만 필우가 예뻐서…….”
주인 영감이 말했다.
“어린애가 좋아서 그러신다지만 잘못 하면 오해 받아요.”
다다가 속엣 말을 했다.
“할머니가 혼자 사시면서 학교 갈 손자를 키우신다고 해서 할머니를 모시고 우리 집으로 가서 필우 학교도 보내고 돌보고 싶어서 그럽니다.”
부인이 놀란 듯 물었다.
“어떻게 그런 생각까지 하셨수? 그 말 믿어도 되우?”
“믿으세요.”
주인 영감이 다짐했다.
“정 그러시다면 내가 한번 댁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고 결정하겠소. 여기 계신 마님은 보통 분이 아니시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부부가 돌보아드리기로 한 어른이시오.”
다다가 당돌하다 싶을 만큼 대답했다.
“그러시다면 어른들께서 우리 집을 보시고 의심나는 걸 확인하고 결정해 주세요.”
부인이 대답했다.
“그럽시다. 어디서 어떻게 사는 분인지 확인하고 결정합시다.”
할머니가 듣다가 한 마디 했다.
“그러실 것 없어요. 나는 남의 신세 지고 싶지 않아요.”
주인 영감이 말했다.
“주인마님, 이런 일은 저희한테 맡기세요. 제가 직접 모든 걸 확인하고 결정하습니다.”
부인도 거들었다.
“그럽시다. 당장 댁이 어디서 어떻게 사시는 분인지 확인하고 봅시다.”
그렇게 몇 마디 나누고 부부가 나섰다. 할머니는 극구 말렸지만 부부 고집을 꺾지 못했다. 다다가 겸손히 말했다.
“할머니 그렇게 하세요. 제가 어른들 모시고 우리 집에 가서 결정하시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다다는 농부 부부를 모시고 집으로 향했다. 넓은 들길을 걸어 시장을 지나고 초등학교를 지나 새로 지은 큰 아파트로 갔다.
농부 부부는 시내에서 가장 큰 아파트라는 걸 멀리서 보기는 했지만 직접 와보지는 못했다. 부인이 아파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올려다보기만 해도 어지러운데 여기서 어떻게 산대요?”
다다가 친절하게 대답했다.
“보기보다는 살기에 편해요. 저희 집은 9층이에요.”
세 사람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눈 깜짝할 새에 9층 3호실 앞에 도착했다. 다다가 문을 열고 안에다 대고 말했다.
“익선 나 왔어요.”
안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왜 이렇게 늦었어. 오늘도 천사 할머니 만나느라고 늦었나?”
“천사할머니보다 더 좋은 천사님들을 모시고 왔어요.”
그리고 부부한테 허리를 숙이며 청했다.
“여기가 우리 집이에요. 들어오세요.”
이때 익선이 나타나 밝은 얼굴로 인사했다.
“천사님들 어서 오세요.”
따라 들어선 부부가 어리둥절할 눈으로 물었다.
“여기가 정말 댁이 맞소?”
16. 도깨비에 홀렸나
다다가 대답했다.
“네, 맞아요. 우리 집이에요 제 남편이고요.”
그리고 익선한테 안으로 모시라고 눈짓을 했다. 익선이 친절하게 두 어른을 거실 소파로 모셨다. 영감이 부인한테 나직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했다.
“이게 어찌 된 일이오.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온 우리를 천사라고…….”
부인이 말했다.
“참 이상한 부부예요. 예고도 없이 이러면 남편이 놀라실 텐데 무슨 부부가 이래요.”
영감도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예고 없이 아무나 불쑥 데리고 오면 내가 당장 내쫓을 텐데 이게 어찌 된 일인지 허허허…….”
부인이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 같은 농부를 천사래요. 세상에 나서 천사 소리를 들어보다니, 호호호.”
부부가 이렇게 속닥거리는 동안 다다가 향기로운 차를 내왔다.
“차 좀 드시고 이야기도 하시다 저녁 식사도 하고 가세요.”
“무슨 저녁까지.”
영감이 이렇게 말하고 두리번거리며 중얼거렸다.
“마루도 넓고 부엌도 좋고, 방이 여기저기 몇 개인지…….”
부인도 같은 생각을 하다가 웃으며 말했다.
“호호호. 우리가 도깨비에 홀린 것 같아요.”
“글쎄 말이오. 방도 많고 으리으리한 것이 궁궐 같소.”
“당신 궁궐을 보셨소?”
“이게 궁궐이지 궁궐이 따로 있소.”
이렇게 대답하고 이어 익선한데 물었다.
“주인장, 우리가 이렇게 예고 없이 들이닥쳐도 화나지 않소?”
익선이 겸손히 대답했다.
“천사님들을 모시고 왔다는데 왜 화가 납니까?”
“우리 같은 농사꾼 부부를 어째서 천사라고 놀리시오?”
“놀리는 게 아닙니다. 저의 아내가 천사를 모시고 왔다면 틀림없이 훌륭한 분들을 모시고 왔을 것을 믿습니다.”
부인이 동감을 표시했다.
“좋은 부부는 그렇지요. 피차가 믿고 상대가 사랑하면 같이 사랑하고 좋다고 하면 같이 좋아하는 것이 부부지요. 그런데 우리 영감하고 나는…….”
영감이 받았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나가서도 샌다더니 에헴 에헴.”
익선이 끼어들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면 두 어른은 부부 싸움할 분들이 아니세요.”
영감이 대답했다.
“그렇소, 우리는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었소.”
다다가 부인한테 물었다.
“아저씨 말씀이 맞나요?”
부인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우리는 한 번도 싸워 보지 않아서 내가 영감 속을 다 모르고 살았다오.”
익선이 물었다.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안 되네요. 싸워보지 않아서 어른 속을 모르신다고요?”
“그래요. 사람이 사람 속을 알려면 한 번 싸워보면 숨겼던 속이 보이는 법이지요. 그런데 그 속을 알고 싶어서 내가 싸움을 걸어도 영감은 소가 닭 보듯 하여 호호호.”
다다도 끼어들었다.
“우리도 서로 속을 모르고 살아요. 말씀 듣고 보니 저이 속을 알고 싶을 땐 싸워봐야겠어요.”
익선이 대답했다.
“속사람은 바로 겉 사람입니다. 사랑스런 겉 사람을 믿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영감이 또 한 마디.
“맞소. 닭이 닭을 만나면 싸우지만 닭이 아무리 대들어도 소가 그깟 거하고 싸우겠소.”
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나를 닭이라고요?”
17. 당신은 닭 나는 소
영감이 큰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닭이고 나는 소요. 오늘 시험은 만점이오. 이만한 사람들이라면 우리보다 천배나 훌륭한 사람들이오. 이 집이 바로 천사가 사는 집이 아니겠소. 우리 마님을 맡겨도 좋을 것 같소.”
다다가 신이 났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영감이 선포하고 다시 물었다.
“한 가지 물어봅시다. 두 분은 무얼 하시는 분들이신지 물어도 되겠소?”
익선이 대답했다.
“저는 화성그룹 기획실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영감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그 유명한 화성그룹 말이오? 그렇게 큰 회사의 기회실장님이시라면…….”
민씨 부인도 한 마디 했다.
“그 그룹 회장님이라면……. 아주 유명하신 분이시던데 거기서 근무하신다고요?”
다다가 부인한테 물었다.
“농촌에 사시면서 어떻게 그 그룹 회장님을 아시나요?”
“얼마 전에 텔레비전에 나와서 하시는 말씀 다 들었지. 그런 분이라면 더 이상 훌륭한 인물을 찾지 못하지.”
다다 익선이 오히려 놀랐다. 그룹 회장의 강의를 텔레비전에서 들었다니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영감이 내친 김에 하나 더 물었다.
“이 집이 바로 천사네 집인데 바깥천사는 그렇고 안 천사는 따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저는 동양무역주식회사에서 재무담당 이사로 있어요.”
영감이 놀랍다는 듯 두 사람을 번갈아 둘러보았다.
“대단한 부부시오. 그만하면 우리 마님을 모셔도 될 것 같소.”
부인이 두리번거리며 한마디 했다.
“미안하지만 집안 구경도 좀 하고 싶은데…….”
다다 익선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그러세요.”
농부 부부는 방을 둘러보았다. 방이 다섯이나 있었고 화장실도 세 군데나 있는 것을 보고 신기하다는 듯 부인이 물었다.
“두 사람이 사는 집에 웬 방이 이렇게 많은가……. 화장실도 여럿이고.”
다다가 대답했다.
“우리 부부가 방 하나를 쓰고 또 하나는 집안일을 돕는 아줌마가 쓰시고 하나는 서재이고, 빈 방 두 개는 손님이 오시면 모시는 방인데 할머니가 오시면 하나는 할머니방하고 하나는 필우 공부방 겸 잠자는 방으로 쓰게 할 생각이에요.”
영감이 흐뭇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소. 주인마님을 이런 데로 모시면 얼마나 좋겠소. 이 댁에서 그렇게 하신다면 우리가 먹을 채소와 식량은 맡아서 대드리겠소.”
익선이 대답했다.
“고맙습니다만 그러실 것 없습니다. 모든 건 다 저희가 책임지겠습니다.”
다다도 한 마디 거들었다.
“어르신들께서는 가끔 오셔서 말동무나 해주시면 좋을 거예요. 할머니는 우리가 식모살이를 시키려고 이러느냐고 역정을 내셨지만 오시면 그런 일도 하실 수 없어요. 집안일을 보시는 아주머니가 있어서 편하실 거예요.”
부인이 기뻐서 말했다.
“우리 마님이 좋아하셔야 할 텐데, 원래 꼬장꼬장하고 고결한 분이라 어떨지…….”
영감님도 얼굴에 웃음으로 화장하고 말했다.
“내가 신기하게 생각한 건 그런 고결한 분이 푸성귀를 들고 시장바닥에서 장사를 하시는 것이 이해가 안 될 때도 있었소.”
다다도 같은 생각을 했지만 말하지 않았다. 농부 부부가 돌아가고 난 다음 날 할머니는 손자와 살던 집으로 돌아왔다. 그 날 집으로 다다가 또 할머니를 찾아갔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아직도 마음 안정이 안 된 듯 심드렁한 얼굴로 받았다.
“안 간다는데 왜 자꾸 이러나?”
18. 황소 힘줄 같은 고집
다다는 물러서지 않았다.
“저는 할머니를 꼭 모시고 갈 거예요.”
할머니는 단호했다.
“내가 안 간다는데 그래도?”
“할머니가 가실 때까지 찾아올 거예요.”
“황소 힘줄 같은 사람.”
“어제 그 민씨 어른 말씀 들으셨지요?”
“들었어.”
“민씨 어른 말씀을 듣고도 저를 못 믿으시는 거예요?”
“못 믿는 건 아니지만.”
“필우를 생각해서라도 할머니가…….”
할머니는 단호했다.
“안 간대도!”
이때 밖에서 놀던 필우가 들어왔다. 영리한 아이라 금방 다다를 보고 인사했다.
“아줌마.”
“그래, 필우 친구들하고 놀다 왔어?”
“네. 아줌마는 왜 또 왔어요?”
“필우하고 할머니 모시고 우리 집으로 가려고 왔지.”
“아줌마네 집이 어딘데요?”
“밖에서 보면 멀리 보이는 높은 아파트가 보이지?”
“네. 아줌마 거기 살아요?”
“그래, 할머니 모시고 거기 가서 살고 싶어서 왔어.”
“정말요?”
“정말이야. 좋지?”
“네.”
“그럼 됐어. 할머니하고 같이 가자.”
필우가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할머니, 그럴 거야?”
“…….”
필우가 엉뚱한 질문을 했다.
“아줌마네 부자예요?”
“왜?”
“그냥요.”
“그래, 아줌마 부자야. 좋지?”
“네.”
할머니는 기가 차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필우가 할머니한테 말했다.
“할머니 우리 아줌마네 집에 가요.”
할머니가 마땅치 않다는 어조로 말했다.
“네가 뭘 안다고 그래?”
“난 알아. 아줌마 좋은 사람이야.”
“뭐야, 네가 아줌마가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
“알아. 아줌마는…….”
필우가 하려는 말은 할머니 약 사러 갈 때 약 사준 것을 말하려는 눈치였다. 그래서 다다가 말을 막고 눈짓을 했다. 영리한 필우는 알아채고 다른 말을 했다.
“할머니, 나 여기 살기 싫어. 아줌마 따라 갈 거야.”
할머니가 꾸짖었다.
“누굴 따라 간다는 게야. 할머니 말도 안 들어보고.”
“할머니는 고집쟁이야.”
“뭐야? 할미가 고집쟁이라고?”
필우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앙앙 할머니 미워. 앙앙앙.”
다다가 필우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필우야, 이러면 안 돼. 할머니한테 고집쟁이라고 하면 못써.”
필우가 울음을 그치고 할머니한테 빌었다.
“할머니 잘못 했어.”
할머니가 누그러진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렇게 가고 싶어?”
“응.”
할머니가 다짐하듯 물었다.
“아줌마가 그렇게 좋아?”
“좋아. 엄마같이 좋아. 난 엄마가 없잖아.”
그 한 마디에 갑자기 할머니 목이 메어 눈물을 짰다.
“그래, 할미가 암만 잘해 줘도 어미만은 못하지.”
할머니가 필우를 당겨 안고 눈물까지 흘렸다.
19. 할머니가 허락하지 않으시니
손자를 품에 안고 할머니가 속삭이듯 말했다.
“귀여운 것이 엄마가 많이 그리웠구나.”
다다도 가슴이 메었다. 엄마 없이 할머니하고만 살아온 어린 것이 말은 못해도 엄마가 많이 그리웠던 것이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할머니도 필우도 말이 없었고 다다도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침묵이 한동안 흐른 다음 다다가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할머니, 필우 말을 들으니 꼭 데려다 아들로 삼았으면 좋겠지만 할머니가 그렇게 허락하지 않으시니 저는 그냥 돌아가겠습니다.”
이 말에 필우가 또 앙앙 울음보를 터뜨렸다.
“앙앙, 할머니, 아줌마 가면 안 돼.”
할머니는 조개처럼 입을 꼭 다문 채 손자 등을 쓰다듬었다. 필우도 울면서 할머니 품에 안겼다. 눈물이 그렁한 할머니가 마지못해 속을 털어놓았다.
“울지 마. 할미가 생각해 볼게.”
할머니는 다다한테 눈길을 돌렸다.
“정말 진심으로 이러시나?”
“예. 진심입니다. 어제 우리 집에 오셨던 어른들께도 우리 마음을 전해 드렸습니다.”
할머니는 패배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히 그것이 진실이라면 필우를 보아서라도 내가 져주어야지.”
다다가 허리를 굽히고 감사했다.
“고맙습니다. 앞으로 잘 모시겠습니다.”
필우도 할머니 말에 귀를 쫑긋 세우고 눈을 반짝 떴다.
“할머니, 아줌마 따라갈 거야?”
“그래, 네 고집에 할미가 졌다. 요 고집쟁이!”
그렇게 하여 그 날로 몇 안 되는 살림 보따리를 챙기고 마침 찾아온 민씨 부부의 도움을 받으며 집을 떠났다.
다다 뒤를 할머니와 민씨 부부, 그리고 필우가 아파트 문 앞에 둘러섰다. 다다가 키 번호를 누르자 필우가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그거 누르면 문이 열리는 거예요?”
다다가 대답했다.
“그래, 이제부터는 너도 이 번호를 누르고 다닐 거야.”
그러면서 초인종을 눌렀다. 안에서 딩동땡 소리가 나고 문 옆에 난 모니터 화면이 밝아지며 안에서 익선이 내다보았다. 필우는 또 호기심이 생겨서 물었다.
“어? 누가 보이네. 텔레비전이에요?”
“아니야. 안에서 주인이 내다보는 거야.”
20. 천사 할머니 축하합니다
그러는 동안 문이 열리고 익선이 웃는 얼굴을 내밀었다.
“어서 오십시오. 천사님들.”
민씨 영감이 허허거리며 말했다.
“이 집에는 천사만 사는 집이라 아무나 천사라고 하시는 거 같네요.”
익선이 대답했다.
“이 사람이 어떻게든지 천사 할머니를 모시고 올 거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 집 천사가 고집이 얼마나 센지 제가 못 당하고 산답니다. 하하하.”
그 여유 있는 웃음소리에 긴장했던 사람이 모두 얼굴에 꽃이 피었다. 안으로 들어선 다다가 할머니한테 새삼스럽게 인사를 했다.
“천사 할머니, 저희 집에 오심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이어 익선도 한 마디 했다.
“천사 할머니, 우리 집을 진짜 천국으로 만들어 주세요.”
할머니가 부끄러워하는 몸짓으로 인사를 받았다.
“고마워요. 나야 늙은이지만 두 분은 정말 천사 같으시오. 앞으로 내가 누를 끼치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서오.”
민씨 부부가 합창하듯 말했다.
“할머니 천사님, 축하합니다.”
할머니가 부끄러워 얼굴을 가렸다.
“왜들 늙은이를 몰리시나?”
민씨 부인이 말했다.
“음덕양보(陰德陽報)라는 말이 있더니 마님께서 평생에 쌓으신 덕을 하나님이 보상해 주시는 거예요. 이 집 주인 부부를 아들 며느리로 생각하시고 젊은 천사들과 행복하게 사세요. 저희는 이만 가겠습니다.”
다다가 식사라도 같이 하고 가라고 잡았지만 부부는 기쁜 얼굴로 돌아가며 할머니한테 인사를 했다.
“천사 마님, 날마다 행복하세요. 시간 나면 놀러 올게요.”
두 어른이 돌아가고 나자 어른들 하는 것만 지켜보던 필우가 말했다.
“아줌마, 할머니하고 나는 어디서 자요?”
다다가 친절하게 받았다.
“그것이 그렇게 궁금했니? 날 따라 와 봐.”
다다와 익선이 앞에 서서 집안 소개를 했다. 그리고 할머니 방과 필우 방을 알려주자 필우가 물었다.
“이렇게 좋은 방에서 나 혼자 자라고요?”
다다가 물었다.
“왜?”
“난 할머니하고 잘 거예요.”
“그럼 그렇게 해. 더 크거든 네 방을 쓰고.”
이렇게 하여 다다는 할머니를 자기네 집으로 모셨고 필우는 다다 부부의 사랑을 받고 초등학교를 다니고 할머니는 집안 돌보미 아줌마가 지극 정성으로 모셔서 불편 없이 사셨다. 천국 같은 가정에서는 날마다 웃음소리가 넘쳤고 할머니는 곱게 머리가 희어지고 필우는 중학생이 되었다.
토요일 오후 다다가 할머니한테 여쭈었다.
“할머니 초등학교 선생님 하실 때 가장 사랑했다는 제자 이름을 기억하시나요?”
“기억하지. 그 애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
“애가 영리하고 똑똑해서 어디서든지 잘살고 있을 거야. 한번 보고 싶구먼.”
“…….”
그러면서 고개를 들었다 숙이며 제자 이름을 불렀다.
“그 아이 이름은 정다다였는데…….”
다다가 갑자기 할머니 앞에 무릎을 꿇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선생님…….”
“선생님이라니? 이 무슨 소리여?”
“제가 바로 선생님 사랑을 받은 정다다예요.”
할머니가 놀라 눈을 번쩍 뜨고 떨리는 소리로 물었다.
“뭐? 뭐라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