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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 고향의 비밀함

웃는곰 2018. 2. 12. 10:40

안데르센 고향의 비밀함
188매 / 71쪽


1 열어보지 마시오
안데르센의 고향 덴마크 오덴세. 진태네 가족이 일주일간 오덴세 변두리 동화속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동네에서 민박을 하던 첫날입니다.
민박집은 널따란 초록 정원이 있고 둘레는 꽃이 만발한 이층집입니다. 아래층에는 주방과 거실이 있고 거실엔 돌아가면서는 책장에 책이 가득이 꼽혀 있고 커다란 텔레비전이 있고 이층은 침실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뱅글 계단 벽에는 희한한 장식품들이 걸려 있기도 하고 선반에 작은 조각 인형이 아기자기하게 놓여 있었습니다.
형 태진이와 동생 태린이는 창문 밖으로 넓은 초원이 보이는 침실을 배정받았습니다. 침실에는 침대 둘이 나란히 있고 한쪽 벽화 아래는 이상하게 생긴 나귀등처럼 누르스름한 커다란 함이 엎드려 있었습니다. 
민박집 주인이 방을 안내하면서 말했습니다.
“이 집안에 있는 물건은 아무것이나 다 만져도 좋지만 이 함은 열어보시면 안 됩니다. 절대로 열어보지 마세요. 부탁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주인은 나갔습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초원과 그 주변을 돌아가며 지은 빨간 지붕의 노란 벽이 보이는 집들과 마을을 굽이굽이 돌아 멀리 초원으로 꼬리를 감춘 동네 길은 행복을 찾아 가는 아이처럼 아름다웠습니다.
동생 태린이 한참 동안 창밖 구경을 하다가 앞에 놓인 함을 가리키며 물었습니다.
“형아, 저 함에는 무엇이 들었을까?”
그렇지 않아도 태진이는 그 함이 이상하게 보이고 큰 거북이 같다고 생각하고 있던 중입니다.
“너도 궁금하니?”
태린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궁금해. 왜 주인이 저 함은 열어보지 말라고 했을까?”
태진이도 같은 말로 대답했습니다.
“왜 열어보지 말라고 했을까? 주인이 그렇게 말하고 나가니까 더 궁금해지는 걸. 너도 그렇지?”
“그러니까 물어본 거 아냐?”
태진이는 그 함을 이렇게 부르고 싶었습니다.
“저 함 이름은 거루함이다.”
“거루함이 뭔데?”
“나도 몰라. 그냥 이상하고 큰 함이라 거루함이라고 부르고 싶어졌어.”
“거루함? 이상하게 생긴 커다란 함이니까?”
“그래, 강에다 띄우면 둥둥 떠내려갈 것만 같아서 거룻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거루함이라고 했어.”
“재미있는 이름인데 히히히. 형아, 그런데 저 안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너보다 내가 더 궁금해.”
태린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형아, 뚜껑을 한번 열어 볼까?”
“안 돼!”
“왜?”
“몰라. 주인이 열어보지 말라고 했잖아.”
“주인이 그렇게 말해서 더 궁금해졌는데……. 열어보자.”
태진이 단호히 말렸습니다.
“절대 열어보면 안 돼.”
“형아가 그렇게 말하니까 더 궁금해지는걸.”
“그래도 안 돼.”
태진이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동생보다 더 궁금했습니다.
‘저 안에 무엇이 들었을까? 무엇이 들었을까? 왜 열어보지 말라고 했을까?’
태린이 못 참겠다는 듯 또 말했습니다.
“형아, 저거 열어보면 안 돼?”
“몰라.”
태린이 참지 못하고 또 말했습니다.
“형아, 저거 열어보면 무엇이 나올까? 뚜껑을 열면 펑하고 무엇이 튀어나올까?”
태진이는 더 무시무시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저 안에 사람을 숨겨놓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말을 다 듣고 있다가 뚜껑을 열면 얼굴이 빨갛고 치렁치렁한 노랑머리를 늘어뜨리고 시퍼런 손톱이 기다란 도깨비 같은 사람이 꺄악! 하고 튀어나올지도 몰라. 아이 무서워!’
동생 태린이 참지 못하고 말했습니다.
“형아, 한번 열어보자.”
“안 돼!”
겉으론 단호히 대답했지만 태진이가 더 궁금했습니다.
‘저 안에 무엇을 숨겨 놓고 열어보지 말라고 했을까? 너무 너무 궁금하다. 뭐가 들어 있는 거냐고?’ 
2. 사람을 연구하는 로버트
형제는 궁금증을 풀지 못한 채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형 태진이 동생을 바라보았습니다. 동생 태린이는 어느새 쿨쿨 자고 있었습니다.
이때 벽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게 그렇게 궁금하냐?”
태진이 대답했습니다.
“네. 아주 많이 궁금해요.”
벽에서 또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렇게 궁금하면 열어 보아라.”
“그래도 괜찮아요?”
“물론이지.”
“집 주인이 열어보지 말라고 했는데요.”
“나도 안다. 그 사람은 바보야.”
“네?”
“그 사람이 열어보지 말라고 하지 않았으면 너도 관심이 없었을 거 아니냐?”
“네. 그래요. 열어보지 말라고 해서 궁금해졌어요.”
“그래서 바보라는 거다. 제 딴에는 비밀을 지킨다고 한 소리였지, 흐흐흐 바보.”
태진이 거루함 곁으로 갔습니다. 소리가 또 들렸습니다.
“뭘 망설이는 거냐? 뚜껑을 열어 봐.”
“이 안에 무엇이 들었을까요?”
“열어보면 안다.”
태진이 함의 손잡이 뚜껑을 활짝 열었습니다.
“아! 이건……!”
함 속은 빨간 카펫이 깔려 있고 가운데 눈동자를 뱅글뱅글 돌리는 로버트가 누운 채 올려다보며 말했습니다.
“친구, 고맙다. 나 좀 일으켜 줄래?”
태진이 손을 내밀며 물었습니다.
“넌 로버트가 아니냐?”
“그래, 로버트야.”
“누가 너를 여기다 가두었니?”
“집 주인이.”
“왜?”
“주인은 바보야.”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태진이가 일으켜 주자 발딱 일어선 로버트가 팔딱 뛰어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이고 시원해! 고맙다, 나를 해가 비치는 쪽으로 데려다 줄래?”
“알았어.”
태진이가 로버트를 들고 해가 환히 비치는 창 앞으로 갔습니다. 햇빛을 받은 로버트는 갑자기 접었던 다리를 쭉쭉 뻗고 팔을 쭉쭉 뻗었습니다. 몸집은 작은데 팔다리가 길어지자 왕거미처럼 변했습니다. 로버트가 긴 다리를 버티고 서서 물었습니다.
“네 이름이 뭐니?”
“차태진이야.”
“차태진? 내 친구가 되어 줄래?”
“좋아.”
로버트가 다리를 꺾고 엎드리며 말했습니다.
“내 등에 업혀!”
태진이는 업힐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거미같이 가늘고 기다란 다리가 올라타면 부러질 것 같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망설이는데 로버트가 재촉했습니다.
“왜 안 업히는 거냐? 빨리 내 등에 타.”
“…….”
“넌 내가 우습게 보여서 타지 않는 것이냐?”
“그런 건 아니지만…….”
“안 되겠다. 내가 너를…….”
말도 채 끝내지 않고 로버트가 한 발을 내밀어 태진이를 번쩍 들어 등에다 태웠습니다. 가느다란 다리가 웬 힘이 그렇게 센지 놀라웠습니다. 로버트가 주의를 주었습니다.
“내 허리를 꽉 잡아라. 놓치면 안 돼. 알았지?”
태진이 로버트 허리를 꽉 잡았습니다. 그 순간 로버트가 유리창을 활짝 열고 공중으로 날아올랐습니다.
로버트는 날개도 없고 엔진도 없는데 굉장히 빠른 속도로 달려 북해 가운데 한 섬에 내렸습니다. 섬은 온통 로버트 놀이방 같았습니다. 개미처럼 생긴 것, 새처럼 생긴 것, 사슴처럼 생긴 것, 거북이처럼 생긴 것, 나무토막같이 생긴 것 등이 노랑 파랑 초록 등 갖가지 색깔의 로버트가 우글거렸습니다.
태진이가 물었습니다.
“로버트야, 여기가 어디냐?”
“여기는 사람을 연구하는 로버트 나라다.”
“사람을 연구하는 나라?”
“왜? 이상하냐?”
“사람이 로버트 연구를 하는 건 보았지만……. 사람을 연구하는 로버트가 있다고?”
“믿지 못하겠으면 저 큰 개미처럼 생긴 로버트를 만져 보아라.”
태진이는 갑자기 겁이 났습니다.
“만져도 괜찮으냐?”
“만지면 안다. 만져 봐.”
3. 장미를 만드는 로버트
태진이가 개미 로버트 더듬이 끝을 조심스럽게 만졌습니다. 그 순간 개미 로봇이 두 발을 발딱 세우더니 큰소리로 웃어댔습니다.
“하하하하, 네가 감히 어디를 만지느냐?”
“…….”
태진이는 어이가 없어서 입도 벙긋 못했습니다. 개미 로버트가 더듬이를 길게 뽑아 올리면서 물었습니다.
“사람아, 넌 무엇이 보고 싶으냐?”
함께 온 거미 로버트가 말했습니다.
“개미야, 유치한 사람한테 그렇게 물으면 어떻게 대답하겠느냐? 네 실력을 아무거나 보여줘라.”
개미 로버트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태진이한테 물었습니다.
“어떠냐? 넌 꽃을 좋아하지?”
묻는 로버트는 별것 아닌 개미지만 함부로 말을 할 수가  없어서 어물거렸습니다.
“응. 꽃을…….”
“무슨 꽃이 좋으냐?”
바로 앞에 장미가 긴 목에 꽃 한 송이를 달고 바람에 간들거렸습니다.
“장미가 좋아.”
“그래? 잘 보아라. 저 건너편 섬에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으냐. 보이지?”
“응.”
“이제부터 너하고 나는 친구다 알았지?”
태진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알았어.”
개미 로버트가 건너편 섬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 사람들이 모두 섬에서 달아나는 걸 볼래?”
“……?”
“잘 보아라. 저 장미가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넷이 되고 넷이 여덟이 되고 여덟이 열여섯이 되고 계속해서 배로 불어날 것이다.”
이때 거미 로버트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저 장미는 우리 로버트가 만든 것이다. 한번 만져보고 향기도 맡아 보아라.”
태진이 장미를 만져보았습니다. 촉촉하고 보드라운 꽃잎이 살아 있는 장미였습니다. 냄새도 맡아 보기 전에 진한 향기가 진동했습니다.
“진짜 장미다.”
거미 로버트가 또 설명했습니다.
“사람들은 조화를 만드는 기술까지는 뛰어나서 조화와 실제 장미를 구분하지 못할 만큼 그럴 듯하게 모양을 만들지만 장미한테서 향기가 나고 또 장미가 장미를 만들어 내는 기술은 없다. 그러나 우리 로버트 나라에서는 실제 장미보다 예쁘고 향기도 아름다운 장미를 만들어낸단다.”
거미 로버트가 개미 로버트한테 말했습니다.
“건너 섬사람들을 모두 내쫓아 보아라.”
그 순간 눈앞에 있던 장미가 건너편 섬으로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섬 전체를 장미로 뒤덮었습니다. 섬사람들이 장미를 피하여 이리저리 도망하다가 모두 배를 타고 건너편 다른 섬으로 달아났습니다. 작은 섬이 장미 섬이 되고 말았습니다. 태진이 넋을 놓고 바라보자 로버트 개미가 기다란 더듬이를 코앞에 대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로버트를 만들어 놓고 모두 신기해하고 좋아한다. 그러나 머지않아 크게 후회할 거다. 네가 보는 앞에서 섬사람들이 달아나듯 지구 사람들을 우리 로버트가 모두 지구 밖으로 내쫓을 날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로버트를 만들지만 로버트는 발전하여 사람보다 뛰어난 지능을 발휘할 단계가 되었다. 이 로버트 나라는 네가 보듯이 섬이지만 여기서 전 세계를 장미꽃으로 뒤덮어 버리면 사람들은 장미에 찔려 죽든지 굶어 죽을 것이다.”
태진이 어림도 없는 소리라고 말하려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말은 믿을 수가 없어.”
개미 로버트가 비웃는 소리를 했습니다.
“사람들은 전쟁을 위해 각종 무기를 만들고 원자폭탄을 만들어 놓고 서로 위협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우리가 장미로 전 세계를 뒤엎어 버리면 무기도 소용없고 사람의 지혜로는 우리 로버트의 지능을 감당하지 못한다. 알겠느냐? 사람들이 섣부르게 로버트를 만들고 지능을 발휘하게 한 것이 실수였어, 하하하.”
거미 로버트가 말했습니다.
“너는 개미 로버트가 한 말을 믿을 수가 없겠지? 그러나 그 말은 사실이다. 너는 사람의 지능이 세상 만물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만 로버트한테 인공지능을 넣어준 것이 실수였다. 저기로 가보면 사람이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들인지 알게 될 것이다. 나를 따라 와라.”

4. 인공지능의 역풍
섬에서 가장 높은 곳에는 축구장보다 두 배는 되어 보이는 평지가 있고 거기는 많은 로버트가 즐비하게 깔려 햇빛을 쬐고 있었습니다. 거미 로버트가 그것들을 가리키며 물었습니다.
“어떠냐? 볼만하지 않으냐?”
태진이 그것들을 돌아보며 대답했습니다.
“신기하다.”
“잘 봐라. 모두가 모양이 다 다르다. 소 같은 것도 있고 돼지 같은 것도 있고 새 같은 것도 있고 땅 위에 사는 모든 동물과 하늘에 날아다니는 모든 새와 물속에 사는 물고기 모양이 있는가 하면 각종 꽃들도 있다.”
태진이 물었습니다.
“저 로버트가 모두 자는 듯이 가만히 있는데 왜 움직이지를 않느냐?”
“지금은 태양열을 받는 중이다. 로버트는 사람이 넣어준 지능으로 새로운 로버트를 만들 수는 있지만 태양열로 충전을 해야 활동을 할 수 있다.”
“태양열을 못 받으면 어떻게 되느냐?”
“그 점이 우리가 가진 가장 큰 약점이다. 아무리 지능이 높아도 에너지가 없으면 활동을 못한다. 그래서 우리가 연구하는 것은 태양열에 의한 에너지를 얻기보다…….”
태진이 말을 잘랐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보다 지능이 뛰어나서 무엇이나 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지만 태양 에너지를 받지 못한다면 사람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말이 아니냐? 로버트가 죽다는 말이 아니냐?”
“그렇지, 그 점이 사람만 못하지만 지금 연구가 다 되어 가고 있다. 우주에는 태양 에너지보다 강력한 에너지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무한대로 넓은 우주에는 수천억 개의 별들이 돌아가고 별과 별이 서로 자력을 유지하며 자기 궤도를 돌고 있는데 그 힘의 작용이 태양에너지보다 수천억 배 크다는 것을 알고 그 에너지를 우리가 받는 것을 연구한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여기 있는 모든 로버트가 수억 년을 작동할 수 있다. 사람들은 백년도 못 살고 죽고 능력발휘를 못 하지만 로버트는 수명을 계산할 수 없이 길고 새로운 것을 발명할 능력은 한없이 많아진다. 사람의 계산으로는 측량할 수도 없겠지. 한 송이 장미가 섬을 덮을 만큼 늘어나는 것을 보았잖으냐?”
“그 광경은 놀라웠다.”
“사람들이 로버트를 아무리 연구해도 우리가 연구하는 단계에는 이르지는 못한다. 장미 모양은 그럴 듯하게 만들면서 장미가 새끼 장미를 만들고 향기가 나게 할 수는 없지 않으냐?”
“그건 그렇지만 로버트를 만든 것은 사람이었다.”
“맞는 말이지만 인공지능을 우리한테 제공한 것은 사람들의 실수였어.”
“사람도 우주의 자력을 이용하여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 단계까지 발전시킬 날이 올 것이다.”
“어림도 없는 소리. 사람이 로버트가 장미를 만드는 수준에 이르려면 천년이 걸려도 불가능하다. 그런가 하면 우리 로버트는 천 년 동안 무엇을 어떻게 발전시킬지는 사람들이 계산할 수 없을 것이다.”
태진이 사방에 널려 있는 각종 로버트를 보면서 물었습니다.
“저 많은 로버트는 다 무엇이냐?”
“저것들은 모두가 사람들이 생각하기 어려운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예를 든다면 저기 파란 두꺼비 로버트는 입에서 피를 토하면 그 물이 전 세계의 바다와 강물과 샘물을 피로 만들 수 있고 저 노란 나비가 날개를 치면 전 세계를 메뚜기로 덮을 수 있고 또 저 갈색 노루가 발길질을 하면 전 세계가 우박이 쏟아져 아무도 살아날 수가 없다.”
태진이 잠에서 깨어나며 중얼거렸습니다.
“인공지능의 역풍! 인공지능…….”
동생 태린이 그 소리를 듣고 물었습니다.
“형아, 인공지능이 뭐야?”
태진이 꿈에서 깨어 정신을 찾고 되물었습니다.
“응? 뭐라고?”
태린이 또 물었습니다.
“형아, 인공지능이 뭐고 역풍이 뭐냐고?”
완전히 잠에서 깬 태진이 배를 불룩하게 내밀고  누워 있는 거루함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저 속에 로버트가 있다고?’
태린이 다그쳐 물었습니다.
“형아,  꿈꿨어?”

5. 한국에도 동화작가가 있나요?
태진이 대답했습니다.
“응, 꿈이었어.”
“무슨 꿈?”
“무서운 꿈.”
“말해 줘.”
태진이 거루함을 가리켰습니다.
“저 함 속에는 로버트가 들어 있는지도 몰라.”
“로버트? 무슨 로버트? 귀신 로버트?”
“귀신은 아니고…….”
이때 아래층에서 엄마가 불렀습니다.
“얘들아, 일어났으면 아침 먹자.”
태진과 태린이 아래층으로 내려갔습니다. 식탁에는 이미 아침상이 차려 있었습니다. 가족이 모두 한자리에 둘러앉아 시작하자 아빠가 말했습니다.
“오늘은 안데르센기념관을 찾아보기로 했다. 태린이는 안데르센이 누구인지 모르겠지?”
“알아요, 유명한 동화작가잖아요?”
아빠가 놀랍다는 듯 칭찬을 했습니다.
“오, 너도 안데르센을 아는구나. 안데르센은 아주 유명한 동화작가였다. 태진이는 형이니까 더 많이 알겠구나. 안데르센이 언제 적 사람이었는지 알겠니?”
태진이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안데르센은 1805년에 태어나 1835년부터 본격적인 동화 창작에 들어가 1872년까지 총 160여 편의 동화를 썼고 <인어 공주>, <눈의 여왕>,<성냥팔이 소녀> 등이 그의 작품이라고 해요.”
아빠가 대견하다는 듯 태진을 빙긋이 웃으며 바라보았습니다.
“모르는 줄 알았더니 너희들이 많은 것을 알고 있구나. 태린이한테 하나 더 물어 볼까? 우리나라에는 어떤 동화작가가 있지?”
태린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물었습니다.
“몰라요, 우리나라에도 동화작가 있나요?”
엄마가 끼어들었습니다.
“그래요, 태린이만 모르는 게 아니라 나도 아는 작가가  없어요.”
아빠가 태린이와 눈을 맞추며 말했습니다.
“동화 작가가 나도 얼른 떠오르는 인물이 없다. 그러고 보니 내가 태린이한테 동화작가를 물어볼 자격이 없구나.”
잠잠히 듣기만 하던 할아버지가 입을 열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노래로 남은 동요나 전래 동화는 많지만 작가가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특히 동화는 작가미상의 전래동화가 있을 뿐 작가는 별로 알려진 인물이 없다.”
태진이가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왜 전래동화는 있는데 작가가 알려지지 않았을까요?”
할아버지가 대답했습니다.
“글쎄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옛날에 이야기하기를 좋아한 사람이 지어서 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이 듣고 자기 집이나 다른 곳에서 말로 한 이야기가 집에서 집으로 전해지고 또 마을에서 마을로 전하여 온 나라에 전해져 유명해지기는 했지만 맨 처음에 이야기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 길이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게다가 먼 옛날에는 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해진다는 말이 있었고 책도 종이도 귀한 시절이었다. 게다가 한글이 창제되기 전이라 글자로 기록을 남길 수도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아빠가 고개를 끄덕이고 듣다가 말했습니다.
“우리나라에 한글이 없었더라면 지금도 소설이나 동화는 책으로 나오지 못했을 거예요. 일제가 한글 억압정책을 쓰던 시절에는 시나 소설을 마음대로 지을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문학이 다른 나라처럼 발전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지요. 해방 후에는 작가들이 자유롭게 활동해서 동요 작가의 이름이 전해지고 몇몇 동화작가도 알려졌지만 이렇다 할 탁월한 작품이 없어서 아이들한테 알려진 작가가 없는 것 같아요.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훌륭한 동화작가가 나와 어린이 마음속에도 남고 세계적으로 알려지는 대문호가 나올 거예요.”
엄마가 딱딱한 분위기를 깼습니다.
“너무 딱딱한 이야기를 하면 종일 부담이 될 것 같아요. 식사나 맛있게 하고 오덴세 구경을 하면서 현장 공부를 하는 게 좋겠어요.”
이렇게 하여 식사를 마치고 오덴세 관광 겸 안데르센 기념관을 찾아 길을 떠났습니다. 우리 가족이 탄 차가 시내 중심으로 들어섰을 때 오덴세 거리는 차가 도로를 가득히 메우고 있어서 모든 차들이 꼼짝을 못하고 굼벵이처럼 움직였습니다.
서울만 차가 붐비는 줄 알았더니 여기도 서울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지도를 보고 안데르센 기념관을 찾아 접근했을 때 직선거리로는 백 미터, 찻길로 돌아가면 삼백 미터쯤 되는 복잡한 도로변 한곳에 잘 꾸며진 도로공원이 있었습니다.
도로 공원에는 시커먼 동상 다섯이 줄을 이어 서 있는 것을 본 할아버지가 신기하다고 하시면서 차에서 내려 그것들을 사진기로 찍었습니다.
가장 오른쪽에는 거지 차림의 여자가 있고 다음은 청년이 모로 누워 시름에 잠겼고 드 다음 중앙에는 청년일 일어서서 신문팔이를 하는 형상이고 그 다음에는 안데르센의 정중한 차림의 흉상이 지구를 타고 앉아 있고 가장 끝 왼편에는 몸매를 자랑하는 비너스 동상 머리에 안데르센이 결합되어 있어서 머리는 안데르센이고 몸은 비너스 동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동상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안데르센 기념관을 다 돌아본 뒤 오후에 카메라에 담은 동상들이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귀한 자료라는 것을 안 할아버지가 신이 나신 듯 나름대로 이렇게 해석을 하셨습니다.
6. 동상 이야기
동상들은 안데르센 일생을 보여주는 기록 작품이었습니다.
맨 우측에 초라한 여인상
안데르센은 가난한 집에 태어났고 어머니는 남의 집 빨래를 해주면서 어렵게 가정을 꾸렸습니다. 거지처럼 초라한 동상은 빨랫감을 모아들고 있는 안데르센 어머니입니다.


가운데 모로 누워 있는 청년상은 안데르센이 좌절한 시절 노숙을 할 정도로 비참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의 상징.

 
가운데 신문팔이처럼 보이는 동상은 좌절했던 안데르센이 무엇인가 해서 살아보겠다고 용기를 내어 거리에 나서서 삶을 구걸하는 젊은 시절의 모습.

 



안데르센은 탁월한 작가로 세상에 알려지고 한 인간의 당당한 모습을 갖추었지만 어딘가 슬프고 외로워 보이는 얼굴이 측은해 보임.


 비너스와 결합된 이 동상의 깊은 뜻은 알 수 없으나 할아버지는 나름대로의 동화를 만드셨습니다. 즉 일생을 결혼도 하지 않고 외롭게 살다 간 탁월한 나라의 보배 작가를 절세의 미녀 비너스와 결합시킨 사람들의 애틋한 소망이 느껴진다. 예쁜 여자 몸에 머리를 안데르센과 결합시킨 것은 영혼으로나마 아름다운 여자를 만나 행복하라고 한 것 같았습니다. 안데르센의 유방이 이렇게 컸을 리는 없을 테고 말입니다.
태진이와 태린이는 할아버지의 해설을 들으며 그럴 듯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안데르센은 사랑했던 여인과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다가 70세의 나이로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생을 마쳤다고 설명하시고 차에 오르셨습니다.
좁고 복잡한 길을 겨우겨우 빠져나와 안데르센 기념관을 돌아보고 거기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200년이 넘은 작가의 기념관을 나라에서 관리하여 보존하고 있다는 것만 보아도 덴마크가 얼마나 좋은 나라인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200년 뒤에 다른 나라 사람들이 찾아와 기념관을 관람하는 작가가 우리나라에도 나오기를 빌었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밤이 왔습니다.
태진이와 태린이는 거루함이 있는 이층 방에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형 태진이는 피로했던지 침대에 눕자마자 쿨쿨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태린이는 열어보지 말라는 이상한 거루함 때문에 잠이 쉽게 오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가물가물 졸음에 빠졌을 때 거루함 속에서 누가 퉁퉁 하고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태린이 다가가서 함을 열었습니다.
“누구세요?”
함 속에 얼굴이 크고 다리가 긴 사람이 옆으로 구부리고 누웠다가 고개를 들면서 대답했습니다.
“나다. 고맙다.”
“아저씨가 거기 있었어요?”
“그래, 좁고 답답해서 죽을 뻔했다. 넌 누구냐?”
“차태린이예요.”
“동양사람 같구나.”
“네, 한국에서 왔어요.”
“그렇지, 해 뜨는 나라 한국이라는 아름다운 나라가 있다는 말은 들었다.”
함 속에서 나온 아저씨는 다리가 엄청나게 길고 눈도 코도 컸습니다. 아저씨가 손을 내밀었습니다. 태린이가 손을 잡자 아저씨는 날개라도 달린 듯 아래층으로 미끄러져 내려가 해가 환하게 비치는 정원으로 갔습니다. 태린이가 어리둥절하여 물었습니다.
“여기가 어디예요?”
“내가 함에 갇히기 전에 놀던 공원이다.”
“아저씨는 누구세요?”
“나? 누구 같으냐?”
가만히 보니 도로 공원에서 본 얼굴하고 비슷했습니다.
“아저씨, 안데르센 아저씨가 아닌가요?”
“네가 안데르센을 아느냐?”
“네.”
“안데르센이 누구냐?”
“유명한 동화작가 아닌가요?”
“하하하, 고맙다 네가 나를 알아주다니.”
“맞지요? 안데르센 아저씨. 아저씨는 몇 살이에요?”
“너보다 200살이 많다.”
태린이 이상해서 물었습니다.
“아저씨가 내 나이를 아세요?”
“알지.”
“그럼 아저씨가 이백아홉 살이에요?”
“그렇다. 나한테 또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느냐?”
태린이는 물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았습니다.
“네, 아주 아주 많아요. 아무거나 물어봐도 돼요?”
“그래, 아무 거나 물어보아라.”
“아저씨가 지은 동화 가운데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는 어떤 건가요?”
안데르센은 잠깐 생각하다가 대답했습니다.
7. 벌거벗은 임금님과 성냥팔이 소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는 동화가 있다. 그건 내가 1837년에 <아이들을 위한 동화>집을 통해 발표한 작품이었다. 권력 앞에 바른말을 하지 못하는 어른들의 어리석은 모습을 꼬집어 지은 이야기였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서 쓴 글이었지.”
안데르센은 잠시 태린이를 들여다보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너도 아는 이야기일는지 모르겠다만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안데르센은 이렇게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옛날 어느 나라에 엄하고 욕심 많은 임금이 있었다. 그 못된 임금을 골탕 먹이기 위해 하루는 거짓말쟁이 재봉사와 그의 친구가 임금을 찾아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옷을 만들어 주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입을 자격이 없고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옷이 보이지 않고 지혜로운 사람한테만 보이는 특별한 옷이라고 이야기한다.
임금은 기뻐하며 작업실을 내주고, 신하들에게 두 사람이 작업하는 것을 살피라고 명령한다. 아무리 보아도 신하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어리석음이 드러날까 두려운 신하들은 모두 멋진 옷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거짓 보고를 하였다.
임금은 신하들의 보고를 받고 흡족해했다. 그리고
‘저 신하들은 그 옷이 보인다 하니 모두가 지혜로운 자들이로구나.’
하고 생각했다. 신하들이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말을 하랴 하고 임금님은 신하들의 말을 믿었다. 시간이 지나고 재봉사는 임금에게 옷이 완성되었다며 입어볼 것을 권하였다. 임금님 눈에도 옷이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임금 역시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옷이 보이는 척하고 입히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임금은 입을 자격이 없고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다는 새 옷을 입고 거리행진을 한다. 백성들은 감히 웃지도 못하고 임금이 발가벗은 것을 보고도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본 한 아이가 “임금님이 벌거벗었네!”라고 소리친다. 그제야 임금은 신하들한테 속은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어떠냐?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냐?”
태린이 얌전하게 대답했습니다.
“네,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여요. 또 다른 이야기를 둘려주세요.”
“알았다. 나는 가난한 구두 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나 구걸까지 해야 했던 어머니를 소재로 <성냥팔이 소녀>라는 동화를 썼다. 가난한 아픔이 가슴에 못 박혀 쓴 글이었지.”
“저도 그 제목은 들어보았어요.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안데르센은 눈을 감고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성냥팔이 소녀의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새해를 하루 앞둔 그믐밤, 한 굶주린 성냥팔이 소녀가 추위를 무릅쓰고 성냥을 팔러 거리로 나섰다. 성냥을 팔지 못하면 집에 돌아갈 수도 없는 소녀는 꽁꽁 언 손을 녹이기 위해 성냥 한 개비에 불을 붙였다. 그러자 빨갛게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온갖 환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첫 번째 성냥은 큰 난로가 되고, 이어서 맛있는 음식이 차려진 식탁, 그리고 예쁜 크리스마스트리가 나타난다. 크리스마스트리에 달린 불빛은 높은 하늘로 올라가 환한 별이 된다. 그 불빛 속에 할머니가 나타나자 소녀는 자기도 그리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다. 소녀는 할머니가 떠나지 않고 머물러 있게 하기 위해 남은 성냥을 몽땅 태워버린다. 그러자 사방이 밝아지고 소녀는 할머니 품에 안긴 채 하늘로 올라간다. 추운 밤이 지나고 날이 밝자 소녀가 미소 지은 얼굴로 죽어 있는 것을 사람들이 발견한다. 그러나 소녀가 어떤 아름다운 것을 보았는지, 얼마나 축복을 받으며 할머니와 함께 즐거운 새해를 맞이하였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이야기이다. 어떠냐?”
“너무 슬픈 이야기예요.”
“또 무슨 이야기가 듣고 싶으냐?”
“또 해주실 거예요?”
“그래, 너한테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미운 오리새끼 이야기를 해줄까?”
8. 미운 오리새끼 안데르센
“내가 바로 미운 오리새끼였다. 들어 보아라.”
안데르센은 이렇게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한 둥우리에서 유난히 큰 알이 하나 있었다. 그 알에서 태어난 새끼 오리는 보통의 오리들과 다르게 생겼다. 그래서 다른 오리들이 비웃고 괴롭혔다.
처음에는 어미 오리가 다독여주었지만 나중에는 어미 오리마저 새끼 오리가 이상하게 생겼다고 차라리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렇게 하여 상처를 받은 새끼 오리는 집을 떠나 어느 마음씨 좋은 할머니의 집으로 가서 지내게 된다. 하지만 그 집에 사는 고양이와 닭이 이상하게 생겼다고 괴롭혀서 견디지 못하고 새끼 오리는 도망쳐 나온다.
추운 겨울이 지나 봄이 왔다. 화창한 어느 날 우연히 새끼 오리는 자기가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저는 못생긴 오리로만 알았던 새끼 오리는 닭이나 오리와 같지 않은 멋지고 아름다운 백조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후 미운 오리새끼는 꽥꽥거리면서 날지도 못하고 뒤뚱거리는 오리와 뒤뚱뒤뚱 걷는 닭들을 버리고 백조의 무리 속으로 들어가 자유롭고 멋지게 하늘을 날아다니며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다.
처음 제목은 <어린 백조>로 했다가 반전의 묘를 살리고자 <미운 오리 새끼>로 성장하는 이야기로 했던 것도 잘한 것 같다고 생각된다.
미운 오리새끼 이야기를 들려준 다음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처음에 지은 <어린 백조>라고 제목을 붙였더라면 너무 평범해서 아무한테도 관심을 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운 오리새끼>라고 제목을 바꾸어 놓으니까 사람들이 미운 오리새끼? 왜 미운 오리새끼야? 하고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게 되어 제목의 반전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아저씨는 참 멋져요. 나도 <어린 백조>라고 하면 안 읽고 싶어요. 그런데 미운 오리새끼라고 하니까 궁금증이 나거든요. 그런데 아저씨가 미운 오리새끼 같았다고 하셨는데 왜 그러셨어요?”
이때 안데르센이 목멘 음성으로 말했다.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 생각을 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난다. 나는 1805년 4월 2일, 덴마크 제2의 도시 오덴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나폴레옹 전쟁에 참전했다가 돌아온 후 서리가 내리던 밤에 신경쇠약으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구두수선공이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세탁부로 남의 빨래를 해주고 근근이 살았다. 집안 형편이 찢어지게 가난했지.”
“……?”
“내 이름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다. 그 이름은 내가 루터교회에서 세례 받을 때, 대부모(代父母)가 붙여준 이름이다. 크리스티안은 영어로 읽으면 크리스천이다. 우리 가문은 할머니가 병원에서 청소부로 일할 정도로 가난했다. 그렇게 가난하게 살면서도 독실한 루터교회 신자인 어머니는 나에게 예수를 공경하는 순수한 개신교 신앙을 심어주었고, 아버지는 인형극과 독서를 통해 어린 나에게 옛날이야기와 <아라비안나이트>를 자주 들려주며 상상력을 심어주셨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나는 한때 어린나이에 공장에 나가서 막일도 했다.”
태린이는 아저씨가 불쌍해 보였습니다. 안데르센 아저씨는 이렇게 말을 마쳤습니다.
“어머니는 날마다 이 집 저 집 찾아다니며 빨래거리를 가져다 밤에는 빨래를 하고 다리미로 다려서 가져다주고 몇 푼씩 받아 생활비를 대셨다. 늘 거지처럼 사시던 불쌍한 어머니 생각을 하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 외아들인 나는 늘 외롭게 지냈다. 집안 형편이 그러하니 친구도 사귈 수 없어 밖에서 혼자 뛰어놀았다. 그러나 혼자 무슨 재미가 있겠니. 그래서 집안에 들어앉아 혼자 지껄이고 깔깔거리며 종이를 오려 만든 인형놀이를 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내성적이고 예민한 성격이 되었다.”
태린이는 무슨 말이든 아저씨를 위로해 주고 싶었지만 좋은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엉뚱한 말을 했습니다.”
“아저씨, 다른 이야기는 또 없어요?”
“알았다. 이런 슬픈 이야기도 있다.”
9. 맘씨 고운 인어공주
키다리 안데르센은 인어공주 이야기를 이렇게 해 주셨습니다.
인어공주의 대략은 이렇다. 인어공주는 깊고 깊은 바다 속 인어들이 사는 궁전에 살던 여섯 인어 공주 가운데 막내 여섯 번째 공주 이야기다. 그 여섯 공주 가운데 막내 인어공주가 가장 아름다웠다.
어느 날 막내 인어공주가 바깥세상을 구경하려고 바다 위로 얼굴을 살짝 내밀었다. 그때 마침 커다란 배 한 척이 지나가고 있었다.
뱃전에는 잘생긴 왕자님이 나와 있었다.
“아, 저분은 누구실까?”
인어공주는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렇게 인어공주가 넋을 잃고 왕자님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폭풍이 몰아쳐 왕자님이 탄 배가 뒤집히고 말았다.
배에 탄 사람들이 바다에 가라앉자, 인어공주가 물에 빠진 왕자님을 구해 내었다. 인어공주는 왕자님을 바닷가에 눕히고 바라보았다.
날이 밝자 한 예쁜 아가씨가 마침 바닷가를 산책하고 있었다. 인어공주는 재빨리 바위 뒤로 숨었다.
예쁜 아가씨가 왕자님을 발견하고 돌보아 주었다. 그것을 본 인어공주는 깊은 바다 속으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인어공주는 왕자님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바다마녀를 찾아갔다. 그리곤 아름다운 다리를 갖게 해달라며 사정했다.
“제 꼬리 대신 다리를 갖게 해 주세요.”
마녀가 조건을 달고 말했다.
“그러면 네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게 주어야 한다. 그래도 좋으냐?"
인어공주는 망설이다가 왕자님을 사랑하는 마음만큼 목소리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네, 왕자님만 볼 수 있다면…….”
마녀가 이상한 약을 주면서 말했다.
“그럼 이 약을 먹으면 될 게야. 먹으렴. 그러나 네가 이 약을 먹은 후 일곱 번째 아침이 오는 날까지 왕자님한테 사랑의 키스를 받아내지 못하면 넌 물거품이 될 게다.”
인어공주는 얼른 약을 받아 삼켰다.
그 순간 인어공주는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면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인어공주가 바닷가에서 눈을 떴을 때 하체를 보니 꼬리가 아닌 쭉 빠진 두 다리가 있었다.
인어공주는 너무 기뻐서 소리를 질렀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때, 바닷가에서 산책 중이던 왕자님이 인어공주를 발견하곤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가씨는 누구신가요? 어디서 오셨습니까?”
그러나 목소리를 잃은 인어공주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왕자님은 말을 못하는 인어공주를 불쌍히 여겨 자기의 성으로 데리고 갔다.
며칠 후, 인어공주는 왕자님이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그 신붓감은 인어공주가 구해 놓은 왕자를 지나가다 들여다보던 그 예쁜 아가씨였다. 그 아가씨는 이웃나라 공주로 왕자와 결혼하기 위해 자기가 왕자님을 구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 사실을 안 인어공주는 매우 슬펐다. 그러나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슬픔을 감추고 춤을 추며 왕자의 결혼을 축하해 주었다. 그리고 엿새 째 되던 날 밤 인어공주는 슬픔에 잠겼다. 그때, 인어공주의 언니들이 찾아와 칼을 주며 말했다.
“막내야, 이 칼을 받아라. 이 칼로 네가 왕자님을 죽이지 않으면, 넌 물거품이 되고 말 거야.”
인어공주는 언니들이 준 칼을 받아 들고 왕자님이 자는 방으로 숨어 들어갔다. 그러나 왕자님을 사랑한 인어공주는 차마 왕자님을 죽일 수가 없었다.
‘아! 차라리 내가 물거품이 되고 말 거야.’
인어공주는 그냥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그때 마침 일곱 번째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인어공주는 아픈 가슴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왕자님, 부디 행복하세요.”
그 한 마디를 남긴 인어공주는 바다 속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마침내 일곱 번째 아침이 밝았고 인어공주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물거품이 된 인어공주는 하늘 높이 떠올랐다.

야기까지 듣고 태린이 말했습니다.
“아저씨, 또 다른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안데르센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알았다.”
10. 그림 없는 그림책
안데르센은 웃으며 아아듣기 힘든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가 공상을 마음대로 하던 이야기다.”
한 가난한 화가가 고향을 떠나 대도시의 다락방에서 쓸쓸히 지내고 있던 어느 날 밤, 창문 밖에 정든 달이 둥실 떠 있는 것을 보고 위안을 받는다는 이야기다.
달은 그때부터 밤마다 화가를 찾아와 창문을 통해서 세상을 내려다본 일들을 이야기해 주고, 화가는 그 이야기를 적는다. 이러한 구성으로 서른세 밤의 스케치와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창문으로 들여다보는 달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밤 이야기를 들려준다. 달은 낮잠을 자고 밤에만 일어나기 때문에 어떤 때는 졸린 눈으로 나비 눈썹을 떴다가 어떤 때는 반쪽만 내놓고 윙크하면서 애교를 부리기도 하고, 어떤 때는 활짝 웃으며 온 얼굴이 입으로 변하고 그러다가 호랑이 눈썹을 하고 흘겨보기도 한다.
세상 비밀을 보았을 때는 눈썹달로 뜨고 낯부끄러운 것을 보았을 때는 반달로 숨어서 보고, 좋은 일을 보았을 때는 둥그런 웃는 얼굴이 되었다가 배신하는 자가 못되게 구는 것을 보면 호랑이 눈썹이 된다.
그림 형제의 동화가 언어학과 민담 채집이라는 학술 연구 과정에서 생겨난 부산물로 간결하고도 직설적인 형식을 지녔다면, 이 동화는 기발한 상상력과 화려한 묘사와 독특한 내용이 돋보이는 본격적인 문학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전에도 동화를 쓰는 사람은 있었지만 누구도 이 장르에서 그처럼 독보적인 지위에 오르지는 못했다.
모든 것이 그가 살아온 인생사가 바로 작품에 대한 최상의 주석이 될 것이다.
전기 작가 재키 울슐라거에 따르면 안데르센은 성공한 ‘미운 오리새끼’이며, 고결한 ‘인어공주’이고 ‘꿋꿋한 양철 병정’이자, 왕의 사랑을 받는 ‘나이팅게일’이며, 악마 같은 ‘그림자’라고 했다. 우울한 ‘전나무’이기도 하고, 불쌍한 ‘성냥팔이 소녀’이기도 하다고 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마친 안데르센은
“죽어서 듣는 소리는 지나가는 바람만도 못한 것이야. 하하하.” 하고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태린이 놀라 소리쳤습니다.
“아저씨! 안안, 아저씨!”
이 소리에 태진이 잠에서 깨어 손을 젓는 태린이를 깨웠습니다.
“태린아, 왜? 아저씨가 누구야?”
11. 생각이 다른 형제
잠에서 깬 태린이 한쪽에 웅크리고 있는 당나귀 등 같은 거루함을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형아, 저 안에 뭐가 들었을까?”
태진이 대답했습니다.
“그 안에는 로버트가 들었을 거야.”
태린이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야, 저 속엔 안데르센이 들었어.”
태진이 고집스럽게 대답했습니다.
“아니야, 로버트가 있을 거야.”
태진이는 거미처럼 다리가 기다란 로버트가 이상한 몸짓으로 걸어 나와 장미를 만들어 사방에 흩으러 놓는 상상을 했습니다.
그러나 태린이는 조금 전에 사라지면서 안데르센이 남김 소리 ‘죽어서 듣는 소리는 지나가는 바람만도 못한 것이야. 하하하.’를 상상하면서 말했습니다.
“난 알아, 저 안에는 안데르센 아저씨가 자고 있어.”
태진이도 지지 않고 말했습니다.
“아니야, 저 속에는 다리가 기다란 로버트가 다리를 꼭 접고 옆으로 누워 있을 거야.”
태린이 제안했습니다.
“형아, 누구 말이 맞는지 한 번 열어 볼까?”
태진이 망설이다가 대답했습니다.
“그럴까?”
이때 밖에서 아빠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너희들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냐?”
태진이도 태린이도 입을 꼭 다물고 아무 소리도 하지 않은 얼굴을 지었습니다. 아빠가 두 아들의 얼굴을 돌아보며 물었습니다.
“너희들이 저 함을 열어보자고 하는 것 같았는데 아니냐?”
태진이 고개를 저었습니다. 태린이도 눈을 말똥거리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의 속을 다 알고 있는 아빠는 엉뚱한 소리를 했습니다.
“이 집 주인이 저 함을 열어보지 말라고 한 것은 우리가 그의 약속을 잘 지키는지 보기 위해 시험으로 해 둔 말 같다. 공연히 그것을 열어보고 덴마크 사람한테 신용 없는 한국 사람이라는 말을 듣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알았지?”
형제는 공손히 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네, 아빠.”
대답은 이렇게 했지만 태진이는 그 속에 로버트가 들어 있어요 하고 생각하고 태린이는 속으로 그 안에 안데르센이 들어 있어요 하고 말했습니다. 
아빠는 두 아들한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우리가 이 오덴세까지 온 것은 아동문학가 안데르센에 대하여 배우고 싶은 것이 목적이었지 않니?”
형제는 또 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네, 아빠.”
 아빠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이러합니다.
“안데르센은 열한 살 때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시자 어머니와 고생을 많이 했단다. 안데르센은 공장 일도 해 보았지만 적성에 안 맞아 선천적으로 타고난 노래 솜씨가 좀 있어서 열두 살에 노래와 연기로 오덴세의 부잣집을 찾아다니며 재주를 보여주다가 동네 명물이 되었단다. 그러다 보니 돈이 좀 모였지. 그래서 그 돈을 가지고 본격적인 연기자의 길을 걷기 위해 혼자 무작정 수도 코펜하겐으로 갔더란다. 그리고 열네 살에 코펜하겐에 도착한 뒤 여러 극단을 찾아가 입단을 요청했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더란다. 연기 재능은 좀 있지만 뛰어나지 않고 평범하다는 것이 퇴자를 맞은 이유였단다.”
태진이 물었습니다.
“그래서 연기를 안 하고 동화를 쓰게 되었나요?”
아빠가 아는 대로 말했습니다.
“그런 셈이지. 연기의 꿈을 접고 나니 새로운 길이 보였던 것 같다.”
아빠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을 이었습니다.
“안데르센은 보잘것없는 가문에서 태어났고 정규교육도 제 때에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작가로 데뷔한 후에도 사회적으로 많은 홀대를 당했다고 했다. 그 당시 자기 처지를 생각하면서 쓴 작품이 <미운 오리새끼>였단다. 남들이 안 알아주고 무시하는 상황을 그린 작품이자 자기만의 꿈을 성공으로 이끄는 꿈을 그린 작품이기도 한 것 같다.”
태진이는 재미있게 듣는데 태린이는 이해가 잘 안 되어 머리를 갸웃거리며 말했습니다.
“아빠, 그냥 재미있고 쉬운 이야기로 하시면 안 되나요?”
아빠가 대답했습니다.
“네가 알아듣기에는 좀 어려운 이야기지만 지금 들어두면 이담에 기억이 날 거다.”
그리고 아빠는 더 어려운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12. 코펜하겐의 인어공주
“안데르센은 스물여덟 살 때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를 여행했고,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자기 이야기를 소재로 지은 장편소설 <즉흥시인>을 발표해 격찬을 받았단다.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동화>라는 제목으로 첫 번째 동화집을 펴냈는데 사람들은 <즉흥시인>이 안데르센을 유명하게 만들었다면 <아이들을 위한 동와>는 안데르센을 불멸의 작가로 만들었다고 칭찬을 했단다.”
태린이 불만스런 얼굴로 말했습니다.
“아빠, 나한테는 어려운 이야기여요. 그런 이야기는 그만 하고 오늘 어디로 구경 갈 건지 알려주세요.”
아빠가 아들을 귀엽다는 눈으로 바라보며 대답했습니다.
“알았다. 오늘은 안데르센의 생가를 둘러보고 코펜하겐으로 가서 인어공주를 보기로 하자.”
태린이를 앞세우고 온 가족이 동네 길을 걸었습니다. 말로만 듣던 덴마크는 정말 아름다운 나라였습니다. 도로도 깨끗했지만 가지가지 예쁜 색깔의 지붕과 넓은 정원에 피어 있는 꽃들이 모두 웃는 것만 같아 마치 꿈길을 걷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빠가 사방을 둘러보며 말했습니다.
“이렇게 그림 같은 마을에 살면서 아름다운 마음을 갖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영혼이 죽은 사람일 것이다.”
길섶마다 돌아가며 꽃길이고 마을 담장이 모두 꽃나무로 덮여 있었습니다. 날씨도 맑고 파란 하늘이 얼마나 좋았던지 날아다니는 기분이었습니다.
동네를 구경하고 나서 온 가족이 차에 올라 안데르센의 생가를 찾아갔습니다. 생가는 황토색 벽에 구식 건물이고 길가로 창이 나 있는 작은 집이었습니다.
태린이 태진이를 보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유명한 안데르센 아저씨네 집이 저렇게 작아?”
태진이도 실망했다는 듯 말했습니다.
“그래, 너무 작고 늙었어. 실망이야.”
말 타고 달려가며 본다는 말이 있는데 태진이네 가족이 그랬습니다. 안데르센 생가를 그렇게 바라만 보고 자동차는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을 향해 달렸습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길다는 19킬로미터나 되는 긴 바다 다리를 달렸습니다.
오랜 만에 엄마가 입을 열었습니다.
“안데르센이 열여덟 살 때니 그때는 차도 없었을 텐데 이 넓은 바다를 어떻게 무얼 타고 갔는지 궁금하네요. 지금은 기차도 다니고 일반 차도 고속으로 달리는 이 다리가 있지만 말이에요.”
아빠가 정말인지 아닌지 모를 대답을 했습니다.
“그때는 지금 같지 않지만 구식 차가 다녔을지도 모르오. 안데르센이 극단에 들어가 배우가 되겠다는 꿈에 젖어 그만 겁도 없이 갔을 것이오.”
몇 시간을 달려 코펜하겐에 도착했습니다. 코펜하겐은 오덴세보다 화려하고 큰 도시였습니다. 도시를 지나 강 같기도 하고 바다 같기도 한 바닷가 길을 달려 한 곳에 차를 세우고 사람들이 줄을 이어 가는 길을 따라 갔습니다. 길 아래  물가에 솟아 있는 바위에 인어공주 동상이 보였습니다. 그것을 보려고 구름떼같이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태린이 신기하다는 듯 태진이를 보고 말했습니다.
“형아, 저 사람 좀 봐. 머리가 새빨갛고 얼굴은 새까만데 눈은 하얗고, 저 사람은 노랑머리에 새하얀 얼굴이 외국사람 같다.”
태진이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바보야, 여기는 외국사람 같은 게 아니라 외국이야.”
태린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아, 그렇지, 여기는 우리나라가 아니지. 히히히.”
아빠가 태린이 손을 잡고 사람들 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인어공주 앞에서 사진도 찍었습니다. 바닷가 바위를 비스듬히 타고 누운 자그마한 인어공주는 생각보다 아주 작아 보였습니다. 유명한 인어공주라 기대가 컸는데 실물을 보니 자그마한 동상이 더 작게 보였던 것입니다.
그 동상을 보자고 온 세상에서 수만 명의 사람들이 바닷가로 몰려들어 하얗게 뒤덮었습니다.
태린이를 가운에 앉히고 가족이 인어공주를 배경으로 여러 자세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자리를 떠나 코펜하겐 도로를 따라 시가지 구경을 하고 다시 긴 바다 다리를 건너 민박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밤이 되었습니다.
태진이와 태린은 또 거루함이 기다리는 방에 들어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태린이 비밀함을 보면서 말했습니다.
“형아, 저 뚜껑을 열어 보면 안 될까?”
“안돼. 아빠가 말씀했잖아, 주인이 그것을 우리가 열어보면 한국 사람은 신용이 없다고 생각할 거라고 말이야.”
“그랬지. 그래도 나는 저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궁금해. 딱 한번만 열어보고 싶은데…….”
말끝을 흐린 태린이 스르르 잠이 들었습니다. 태진이는 혼자 비밀함을 보면서 동생과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저 속에 무엇이 들었을까? 로버트가 있는 건 틀림없어……. 맞아, 로버트가 들어 있을 거야…….’
그러면서 태진이도 스르르 눈을 감고 꿈길로 들어가 궁금한 비밀함 뚜껑 곁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힘껏 뚜껑을 열었습니다.
13. 할머니가 엄지공주라고요?
비밀함 속에는 새하얀 머리에 새하얀 얼굴의 할머니가 모로 웅크리고 누워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뚜껑이 열리자  눈을 반짝 뜨고 말했습니다.
“누구냐? 나 좀 일으켜다오.”
태진이 놀라 주춤 물러서며 물었습니다.
“할머니는 누구세요?”
할머니가 팔을 내밀며 명령하듯 말했습니다.
“그런 건 묻지 말고, 먼저 나를 좀 일으켜다오.”
태진이 할머니를 일으켜 주었습니다. 할머니가 일어서자마자 거루함 밖으로 뛰쳐나오며 서둘렀습니다.
“가자, 빨리 나를 따라 오너라.”
태진이는 할머니를 따라 문밖으로 나갔습니다. 하얀 할머니는 밖으로 나오자 오므렸던 허리를 쭉 폈습니다. 갑자기 키가 태진이보다 컸습니다.
“할머니는 누구세요?”
할머니는 등을 돌려대며 명령하듯 말했습니다.
“그런 건 묻지 말고 내 등에 업혀라. 바쁘다.”
태진이 등에 업히자 할머니는 나는 듯이 골목길을 이리저리 돌아 알 수 없는 들길로 달렸습니다. 겁이 난 태진이 또 물었습니다.
“할머니는 누구세요?”
“그런 건 차차 알게 될 거야. 묻지 마라.”
“어디로 가시는데요?”
“가 보면 안다.”
“할머니는 왜 그 함속에 갇히셨나요?”
“말이 많다. 그것도 차차 알게 될 게다.”
할머니는 매우 빠르게 길을 달리며 물었습니다.
“넌 나를 살려준 고마운 아이야. 동양사람 같은데 어느 나라 사람이냐?”
“한국…….”
할머니는 더 말하지 않고 한참 동안 들판을 달려 풍차 방앗간 곁 벤치에 내려놓으며 말했습니다.
“한국은 해 뜨는 좋은 나라지. 여기서 좀 쉬어 가자.”
태진이 또 물었습니다.
“여기가 어딘가요? 할머니.”
할머니가 태진이 얼굴을 들여다보며 물었습니다.
“넌 내가 할머니로만 보이느냐?”
“네.”
“호호호, 내가 어느새 할머니가 된 거야?”
“할머니는 누구신데요?”
“할머니, 할머니 하지 마라. 한때는 공주라는 말을 들었는데 너한테 할머니 소리를 들으니 거시기하구나.”
“공주님이셨다고요?”
“그래. 나는 엄지공주란다.”
“네?”
“왜 그리 놀라느냐? 내 말을 믿을 수가 없다는 거냐? 엄지공주를 아느냐?”
“네, 책에서 읽어 보았는데…….”
“그런데?”
“엄지공주는 아주 작고…….”
“또?”
“할머니가 아니었어요.”
“엄지공주 이야기를 아는 대로 해 보아라.”
태진이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을 더듬고 어리어리하게 말했습니다.
“엄지공주는요……. 엄지손가락같이 작아서 쥐구멍에도 들어가고 달팽이 껍데기 속에도 들어가고 소매에도 들어갔다가 늑대 뱃속으로 들어가기도 했는데 할머니는 나보다 더 크잖아요.”
“그래서 내가 엄지공주가 아니라는 말이냐?”
태진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것을 본 할머니가 눈을 깜박거리며 말했습니다.
“네 생각에 내가 할머니로만 보이느냐?”
“네, 아기공주는 아니에요.”
“네가 아는 엄지공주는 어떤 것이었지?”
태진이 아는 대로 말했습니다.
“옛날 어느 마을에 작고 예쁜 아이를 가지고 싶어 하는 한 부인이 있었대요. 부인의 간절한 소원을 들은 요정이 부인한테 꽃 한 송이를 주었고 얼마 후 꽃 속에서 아주 작은 아이가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 다음은?”
“부인은 아기가 엄지처럼 작다고 엄지공주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대요. 그런데 어느 날 엄지공주를 자기 아들의 신붓감으로 정한 어미두꺼비가 엄지공주를 납치해 갔대요.”
할머니는 눈으로 말했습니다.
“그리고?”
“두꺼비한테 잡혀간 엄지공주는 물고기들의 도움으로 연못을 탈출하지만, 엄지공주에게 반한 풍뎅이한테 또 다시 납치되지요. 그러나 사랑이 식어버리자 풍뎅이는 엄지공주를 무참히 버렸대요. 불쌍한 엄지공주는 들쥐 아줌마의 도움으로 숲속 생활을 하게 되지요.”
“그래서?”
“어느 날 들쥐 아줌마는 나이는 많지만 능력이 있는 두더지와 결혼을 하라고 했답니다. 마음에는 들지 않지만 고마운 들쥐 아줌마의 청을 거절할 수 없던 엄지공주는 그러기로 했대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지?”
“결혼을 앞둔 어느 날 엄지공주를 사랑한 제비가 엄지공주에게 함께 도망하자고 했대요. 예쁘고 날렵한 제비가 좋아진 엄지공주는 두더지와의 결혼을 하루 앞두고 제비 등에 올라 남쪽 나라로 달아났대요.”
“또?”
“제비를 따라 남쪽 나라로 간 엄지공주는 꽃 요정들을 다스리는 왕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고 제비는 엄지공주를 진심으로 사랑했대요. 그러나 사랑이란 좋아한다고 다 결혼하기보다는 자기가 해 줄 수 있는 상대가 있다면 사랑하는 이의 행복을 위해 사랑을 단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대요.”
“그랬지…….”
“그렇게 마음씨 고운 제비는 사랑하는 공주의 행복을 빌며 왕자와 엄지공주가 결혼하게 하고 둘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고 해요.”
할머니가 물었습니다.
“너는 그 엄지공주가 나라고 믿을 수 없다는 거지?”
태진이 할머니 얼굴을 가만히 올려다보며 대답했습니다.
14. 벌레가 된 아이
“할머니는 공주가 아니에요.”
할머니가 물었습니다.
“넌 나보다 작지? 얼마나 작은지 아느냐?”
“많이 작아요.”
할머니가 방앗간 벽에 뚫린 작은 구멍을 가리키며 이상한 명령을 했습니다.
“저 구멍으로 들어가 봐라.”
“네? 제가 그 작은 구멍으로 들어가라고요?”
“그래야 네가 얼마나 작은지 알 테니까.”
태진이 구멍을 들여다보며 말했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들어갈 수 없어요.”
할머니가 일어서서 구멍 앞으로 가며 말했습니다.
“내가 먼저 들어갈 테니 너도 따라 들어와 봐.”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할머니가 그 작은 구멍으로 쏙들어가서 내다보며 손짓을 했습니다.
“이리 들어와!‘
“네?”
“넌 나보다 작아서 들어오기 쉬울 거다. 빨리 들어와. 이 안에 볼거리도 많고 먹을거리도 수두룩하다.”
태진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쥐구멍보다 작은 구멍으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할머니, 난 안 들어갈래요.”
“안 들어오면 가겠다고?”
“네. 집으로 갈 거예요.”
할머니가 뾰족한 소리로 깔깔거렸습니다.
“호호호, 저 녀석이 아직도 제가 사람인 줄 생각하는 모양이잖아. 호호호.”
태진이 불만스럽게 말했습니다.
“할머니, 내가 사람이 아니라고요?”
할머니가 비웃는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바보 같은 녀석. 넌 사람이 아니야. 네가 비밀함을 여는 순간 넌 벌레가 된 거야. 그것도 모르고 제가 사람이라고 호호호.”
태진이 눈을 부릅뜨고 외쳤습니다.
“내가 사람이 아니고 벌레라고요?”
“넌 나보다 작다는 걸 알고 있지?”
“…….”
“내가 이 작은 구멍으로 들어오는 것도 보았지? 그래도 네가 사람이라고? 호호호.”
태진이 자기 몸을 둘러보다가 말했습니다.
“아니! 이게 뭐야? 내가 정말 벌레잖아?”
할머니가 또 웃어댔습니다.
“호호호, 나를 잘 보아라. 내가 바로 엄지공주란 말이다. 넌 엄지공주가 얼마나 작은지 알고 있지? 그런데 너는 나보다 훨씬 작다. 그래도 네가 사람이라고?”
“할머니, 나를 우리 집으로 데려다 주세요.”
“너도 나도 너의 집에 갔다가는 맞아죽어!”
“네? 왜요?”
“대답은 나중에 듣고 이리 들어와 봐.”
태진이 구멍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구멍이 작아 보였는데 몸이 구멍보다 훨씬 작았습니다.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났습니다.
‘엄마, 난 어떡해? 내가 벌레가 된 거야, 엄마!’
할머니가 앞장서서 넓은 방앗간 속을 이리저리 돌아다녔습니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 썩은 보리자루 속으로 들어가면서 말했습니다.
“저 속으로 들어가자. 보리떡이 잔뜩 쌓여 있다.”
아무리 보아도 썩은 보리였습니다. 그런데 그걸 보리떡이라고 뜯어먹으면서 할머니는 헤헤거렸습니다.
“아이고 맛있어. 이렇게 맛있는 떡이 천장까지 쌓였네.”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떡이 아니라 썩은 보리더미였습니다.
“할머니, 그건 떡이 아니라 썩은 보리예요.”
할머니가 한입 가득 물고 대답했습니다.
“네가 아직 배가 불러서 떡으로 보이지 않는 거야. 조금 있어 봐라. 배가 고프면 떡으로 보일 거다.”
할머니는 배가 불룩하도록 먹고 떡덩이 속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태진이는 이리저리 둘러보았습니다. 이쪽은 좁고 컴컴한데 넓은 저쪽에는 환한 빛이 가득했습니다. 태진이 중얼거렸습니다.
“엄마한테 돌아갈 거야. 엄마도 태린이도 보고 싶고 아빠가 큰소리로 웃는 소리도 듣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배가 고프기 시작했습니다. 어디 먹을거리가 없을까 하고 두리번거렸습니다. 놀랍게도 할머니가 떡 덩어리 위에 누워 떡을 베고 자고 있었습니다.
“아! 떡이다. 떡.”
태진이 그것을 정신없이 뜯어 먹었습니다. 새까맣고 쿨쿨한 냄새가 나는 떡이 맛있었습니다. 얼마 동안 먹고 나자 배가 불렀습니다.
자던 할머니가 눈을 뜨고 물었습니다.
“뭘 하고 있었느냐?”
태진이가 배를 쓰다듬으며 대답했습니다.
15. 쥐구멍 속으로 달아나다
“할머니, 나 떡을 실컷 먹었어요.”
할머니가 웃으며 물었습니다.
“맛있더냐?”
“네.”
“그런 거다. 배가 고프면 무엇이든지 입에 들어가는 것은 다 떡으로 보이는 거다.”
보리 무더기 속에서 내려다보니 아래 강아지가 넓죽 엎드려 앞발을 턱에 괴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장난이 치고 싶은 태진이가 말했습니다.
“할머니, 저 강아지 한번 놀려줄까요?”
“어떻게?”
“강아지 코를 꼬집어주면 깜짝 놀라겠지요?”
“그러면 강아지가 가만히 있겠니?”
태진이 팔딱 뛰어 강아지 등을 탔습니다. 그런데도 강아지는 졸고 있었습니다. 등에서 살살 기어 내려와 강아지 콧등을 꼭 물었습니다. 깜짝 놀란 강아지가 소리쳤습니다.
“깨갱! 꺅!”
강아지 소리가 얼마나 큰지 강아지보다 더 놀란 태진이 팔딱 뛰어 달아났습니다. 그 뒤를 강아지가 물으려고 달려들었습니다. 이때 할머니가 외쳤습니다.
“빨리 구멍으로 들어가라!”
태진이는 얼결에 앞에 보이는 쥐구멍 속으로 쏙 들어갔습니다. 강아지가 구멍 앞까지 따라와 주둥이를 구멍에다 들이밀었습니다. 그러나 구멍이 너무 좁아서 강아지는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태진이 구멍에서 내다보며 놀렸습니다.
“용용 죽겠지. 강아지야, 들어와 봐라!”
강아지가 구멍 속을 들여다보며 짖어댔습니다.
“망망, 망망!”
강아지는 몇 번 짖다가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쥐구멍 안쪽에서 쿨쿨 자고 있던 쥐가 잠에서 깨어 소리쳤습니다.  
“누구냐? 내 집에 들어온 놈이 누구냐, 찍찍!”
태진이 깜짝 놀랐습니다.
“이크! 이게 누구야? 내가 싫어하는 쥐, 쥐잖아?”
태진이 구멍 밖으로 뛰쳐나왔습니다. 그 뒤를 쥐가 따라오면서 소리쳤습니다.
“거기 서! 이 벌레야! 내가 물어죽일 거다. 찌찌찍찍!”
태진이 도망쳐 나오는 것을 본 할머니가 소리쳤습니다.
“네 앞에 작은 구멍으로 들어가라!”
태진은 쥐한테 물리기 바로 앞에 구멍이 있었습니다. 태진이는 그 구멍으로 쏙 들어갔습니다. 쥐가 따라 들어오려다가 주둥이만 굴속에다 박고 소리쳤습니다.
“나와! 이 벌레! 안 나올래?”
이때입니다. 쥐가 찍찍거리는 소리를 들은 주인이 막대기를 들고 달려왔습니다. 그만 쥐는 날개라도 달린 듯이 달아났습니다. 방앗간 주인은 덩치가 어찌나 코끼리 만했습니다.
“아! 사람이다. 참 크다, 난 뭐야 나도 사람인데 나는 뭐야?”
사람은 쥐가 달아나자 막대기를 집어던지고 보리가마니 위에 있는 할머니를 발견했습니다.
“이건 무슨 벌레가 늙은이같이 생겼어?”
그러면서 엄지손가락과 가운데 손가락을 둥글게 조였다가 할머니를 향해 톡하고 퉁겼습니다. 손가락에 맞은 할머니가 붕 퉁겨져 날아갔습니다. 태진이 깜짝 놀라 팔을 내밀어 내저으며 소리쳤습니다.
“할머니, 할머니!”

이때 태린이가 어깨를 흔들었습니다.
“형아, 왜 이래? 응?”
태진이는 아직도 팔을 들어 올린 채 눈을 떴습니다. 태린이 물었습니다.
“형아. 꿈꿨어?”
태진이 눈을 뜨고 사방을 두리번거렸습니다. 태린이가 걱정스런 얼굴로 들여다보며 또 물었습니다.  
“형아, 나쁜 꿈 꿨어?”
태진이 정신이 들어 감격한 소리로 물었습니다.
“아! 태린아, 형이 사람 맞지?”
“그게 무슨 소리야?”
“꿈이었어. 내가 벌레가 된 꿈…….”
그러면서 한쪽에 웅크리고 있는 거루함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저 안에 엄지공주가 들어 있는지도 몰라. 아아, 무서워.’
태린이도 거루함을 바라보며 중얼거렸습니다.
“형아, 저 함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태진이는 거기 로버트가 아니면 엄지공주가 숨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다가 대답했습니다.
“로버트, 아니, 엄지공주…….”
태린이 말했습니다.
“아니야, 저 비밀함에는 안데르센이…….”
이때 아빠가 문을 열고 들여다보며 물었습니다.
“너희들 무슨 이야기들을 그렇게 하고 있느냐?”
16. 안데르센은 이런 사람
태린이 대답했습니다.
“아빠,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래, 너희도 잘 잤느냐?”
태린이 말했습니다.
“형아가 아주 무서운 꿈을 꾸었나 봐요.”
아빠가 태진이한테 물었습니다.
“무슨 꿈을 구었느냐?”
태진이 대답했습니다.
“꿈에 제가 아주 작은 벌레가 되어 고양이한테 쫓기다 쥐한테 쫓기다 깨어났어요.”
아빠가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말했습니다.
“하하하, 네가 벌레가 되는 꿈을 꾸었다고?”
“네, 꿈에 생각은 사람인데 몸이 벌레였어요.”
태린이가 거루함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 함 때문이었는지도 몰라요.”
아빠가 물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저 함을 열어보지 말라고 해서 궁금히 생각하다가 꿈을 꾸었는데 나는 저 함 속에 안데르센이 들어 있는 꿈을 꾸었어요.”
아빠가 빙긋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래? 안데르센이 무슨 동화 이야기라도 해 주더냐?”
태린이 꿈에 만난 안데르센의 이야기를 해드렸습니다.
아빠가 다 듣고 나서 말했습니다.
“오늘은 돌아가는 날이다. 여기까지 온 것은 안데르센에 대하여 배우고 싶어서 온 것인데 그렇게 좋은 꿈을 꾸었다니 너는 많은 공부를 한 것 같다.”
태진이도 로버트 꿈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다른 질문을 했습니다.
“아빠, 안데르센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아빠가 물음에 대답했습니다.
“안데르센은 1805년에 태어나 1875년 8월 4일 오전 11시 5분에 70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한때 ‘25년 전에 나는 작은 짐 꾸러미 하나를 들고 코펜하겐에 왔다. 그때는 가난한 이방인 소년이었으나 오늘 나는 식탁에서 왕과 여왕을 마주하고 앉아 코코아를 마신다’고 자랑했으며 27세 때인 1832년에는 감히 자서전을 발표했고, 이후 10년 단위로 그 증보판을 펴내며 자기 성공담을 구구절절 묘사하기도 했단다. 가난한 구두수선공 아버지와 남의 집 빨래를 해주고 살다가 다른 남자한테 시집간 어머니를 둔 고아였던  그가 러시아 황제의 손자와 입을 맞추었다 하니 놀랍지 않으냐. 어쩌면 백조가 된 이후에도 미운 오리새끼 적 기억을 잊지 못했지 않은가 생각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가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는 것도 기막힌 이야기다. 가족이 한 사람도 없는 그는 8월 11일에 있은 장례식에는 덴마크 국왕과 황태자를 비롯한 수백 명의 인사들이 찾아왔지만, 혈연관계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불쌍한 사람이라고 해야 할지…….”
아빠는 창밖을 내다보며 잠시 생각하다가 이었습니다.
“그렇게 살다 간 안데르센은 오늘날 세계적 동화작가의 대명사가 되었고 특히 창작 동화 분야에서는 그야말로 일인자였다. 예술을 제외한 다른 분야에서는 무능한 것이 예술가의 특징이라면, 안데르센이야말로 일류급 예술가인 셈이었다. 자기 재산 관리는 물론이고 원고 정리조차도 남의 손을 빌려야 했고, 특히 은인인 요나스 콜린의 아들 에드바르 콜린한테 만사를 전적으로 의지했단다.”
태진이 중얼거리듯 말했습니다.
“훌륭한 예술가 소리는 들었지만 바보였나 봐요.”
태린이도 끼어들었습니다.
“동화만 쓰다 보니 어린이가 되어서 그랬던 거 같아요.”
아빠가 형제를 사랑스럽게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태린이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구나. 안데르센은 평소에 사랑을 많이 받고 지내던 에드바르 부부와 죽어서도 나란히 묻히고 싶다고 했단다. 그래서 그의 소원대로 훗날 세 사람을 같은 묘지에 나란히 묻어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몇 년 뒤에 콜린 가문의 후손들이 에드바르 부부의 무덤을 다른 데로 이장함으로써 그 후부터는 안데르센 혼자 남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전혀 외롭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은 그의 사후로부터 지금까지 ‘미운 오리새끼’의 무덤은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일종의 명승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너희도 보았지만 그의 기념관도 큰 정원에 호수를 파고 그 호수 위에 유리 기념관을 건축한 것도 물에 뜬 오리 새끼를 상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이야기한 아빠가 말했습니다.
“그만 내려가거라. 아침 식사를 해야지.”
아들 형제가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아빠는 거루함을 들여다보며 생각했습니다.
‘저안에는 도대체 무엇이 들었기에 열어보지 말라고 했을까. 그러니까 더 궁금해 하지 않는가.’
아빠는 비밀함 앞으로 걸어가 생각을 굳혔습니다.
‘나라도 열어 볼 거나. 너무 궁금해! 오늘 떠나고 나면 다시는 못 올 텐데…….’
아빠는 비밀함 손잡이를 꽉 잡고 뚜껑을 활짝 열었습니다. 그리고 들여다보다가 깜짝 놀라 멈칫 물러섰습니다.
17. 비밀은 비밀로 남아야
아래층으로 내려온 아빠는 비밀함 속의 비밀 이야기는 하지 않고 출발 준비를 서둘렀습니다.
“오늘은 오덴세에서 유명한 공원을 돌아보고 가다가 독일 함부르크에서 인공호수 공원과 몇 군데 돌아보자면 시간이 없다. 빨리 떠나자.”
태린이는 아빠가 서두는데도 이층 침실의 비밀함 생각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아빠, 우리들 침실에 있는 그 함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요?”
아빠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습니다.
“거기 무엇이 들었는지 알려고 할 것 없다. 주인이 열어보지 말라고 했으니…….”
태진이도 한 마디 했습니다.
“아빠, 그래도 그 비밀함을 한번 열어 보고 가면 안 될까요?”
아빠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주인이 열어보지 말라고 했으니 약속을 지키는 것이 예의가 아니겠니?”
아빠는 이렇게 대답하면서 양심이 찔렸습니다.
‘내가 이런 말 할 자격이 있나? 히히히. 너희들도 열어보고 싶어 하지만 열어볼 것도 없다. 나도 너희들보다 더 궁금했으니까. 히히히.’
엄마도 아이들 편을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아이들 궁금증은 풀어주는 게 좋겠어요.”
아빠가 꾸짖듯 말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아이들처럼…….”
그렇게 말하고 아빠는 또 속으로 웃었습니다.
‘히히히, 내가 이렇게 뻔뻔스러운 사람이었나? 그 안에 들어 있는 게 무엇인지 알면서. 그렇지만 모두가 보고 나면 실망할 터인데 그래도 그렇게 궁금한가? 히히히.’
이러다가는 아이들이 올라가서 함을 열어보려고 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밀이란 간직할 때 아름답고 신비한 것이다. 거기 무엇이 들어 있는지 보는 것보다 거기 무엇이 들어 있을까 하고 생각하면 별별 상상을 다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그 안에 있는 비밀보다 더 아름다운 이야기와 꿈을 꿀 수도 있는 거야. 그깟 누렁이 함에 무엇이 들었겠느냐. 여기 민박집에서 그런 비밀함도 있었는데 열어보고 싶었지만 주인의 부탁이라 열어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는 생각으로 돌아가면 이다음에 재미있는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비밀을 간직한 함이 있고 그 속이 궁금해서 엉뚱한 상상도 해 보았다는 거…….”
엄마가 또 입을 열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궁금증을 못 풀고 가는 것보다는 열어보는 편이 홀가분할 것 같아요.”
아빠는 엄숙한 얼굴로 대답했습니다.
“허허, 어른이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하시오. 주인이 열어보지 말라고 했으니 약속을 지키는 것이 신사의 도리가 아니겠소. 이건 국가적 신의이고 체면 문제요.”
이렇게 말한 아빠는 또 속으로 웃었습니다.
‘히히히, 내가 왜 이래? 다 열어보고도……. 그렇지만 그 속에 무엇이 들었더라는 말을 하면 아이들의 궁금증은 풀리겠지만……. 그러면 내가 뭐가 되는 거야? 히히히. 아이들만도 못한 아빠라고 하겠지? 실은 나도 궁금증을 풀지 못해 열어 보고 엉뚱한 소리를 지껄이고 있으니……. 내가 바로 이중인격자가 아닌가. 히히히.’
아빠는 서둘러 민박집 열쇠를 들고 앞장섰습니다.
“이제 나가자. 길을 서둘러야 해.”
아이들이 궁금증을 못 버리고 이층을 힐끔거리며 아빠 뒤를 따랐습니다. 가족이 모두 현관에서 나오자 아빠는 주인이 가르쳐준 대로 열쇠를 문에 달린 비밀 열쇠 통에다 쨍그렁하고 넣었습니다. 이제는 다시 들어갈 수 없는 집이 되었습니다. 아빠는 집을 나서면서 생각했습니다.
‘내가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더라는 말은 절대로 할 수 없는 비밀이다. 만약 입을 열면 나는 아빠로도 남편으로도 또 한국인으로도 자격이 없는 사람이 될 테니까……. 그 비밀함은 결국 비밀이 이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나한테 가르쳐주었다. 그 비밀을 누구한테 언제 말할 수 있을까. 히히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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