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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곰 2017. 2. 28. 11:52

나는 여섯 살

 

할아버지는 몇 살이에요?

나는 발에 안 맞는 아빠 신발을 신고 뒤뚱뒤뚱 걸어서 마을 회관으로 갔습니다.

마을회관 앞에는 아주 오래 묵은 느티나무가 있습니다. 나무는 가지를 넓게 펴서 그늘을 만들어 놓고 온 종일 가지를 저어 시원하게 부채질을 합니다. 그 그늘에는 넓은 평상이 있고 거기에는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둘러앉아 이야기도 하고 장기도 두고 바둑도 둡니다.

오늘은 이웃집 대머리 할아버지 혼자 눈을 감고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습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모르시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할아버지를 !’ 하고 놀래 드리려고 살금살금 다가가는데 할아버지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빙그레 웃으시다가 나보다 먼저 꽥 소리를 치셨습니다.

에끼!!”

나는 할아버지를 놀래 주려다가 그만 깜짝 놀랐습니다.

할아버지!”

네가 나를 놀래주려고 고양이 걸음으로 다가왔지?”

, 할아버지는 눈을 감고도 다 보시나요?”

그래, 할아버지는 눈을 감고도 다 본다.”

헤헤헤, 할아버지는 귀신인가 봐.”

네가 귀신을 보았느냐?”

못 보았어요. 할아버지는 보셨나요?”

나도 못 보았다. 넌 올해 몇 살이냐?”

나는 오른손을 쫙 펴고 왼손 손가락을 하나 들어 보였습니다. 할아버지가 웃으시면서 물었습니다.

여섯 살이냐?”

.”

, 벌써 육년이 지났구나.”

그리고 할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할아버지가 몇 살일까 궁금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몇 살이에요?”

네 나이보다 열두 배나 많다.”

그게 몇 살인데요?”

몇 살인지 알아 보거라.”

열 두 살인가요?”

그것보다 여섯 배가 많다.”

모르겠어요.”

이렇게 말하고 할아버지 대머리를 보고 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왜 머리가 없어요?”

이 녀석아, 머리가 왜 없느냐. 이게 머리가 아니고 무엇이냐?”

그러시면서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빙빙 돌리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다시 물었습니다.

왜 머리털이 없느냐고요?”

그렇게 물었어야지. 나이가 많아지면 머리카락이 다 달아난단다.”

왜요?”

나도 모른다.”

할아버지는 빙긋이 웃으시더니 파란 하늘로 동동 떠가는 구름을 보시며 입을 다무셨습니다. 나는 무슨 말이든지 하고 싶은데 할아버지가 가만히 있으시니 나도 입을 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리저리 돌아보는데 큰 느티나무 밑동에 내가 들어가도 될 만큼 커다란 구멍이 나 있고 그 속이 새까맸습니다.

나는 큰 느티나무에 왜 구멍이 났을까 궁금했습니다.

할아버지, 이 나무는 왜 큰 구멍이 났어요?”

그것이 그리 궁금하냐?”

, 그리고 속이 까맣게 탄 거 같아요.”

네 눈에는 까맣게 탄 것으로 보이느냐?”

.”

내가 들은 대로 이야기해 주랴?”

.”

할아버지는 내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시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느티나무는 속이 왜 비었을까?

이 큰 나무도 옛날에는 너처럼 어린 나무였단다.”

나무는 몇 살인가요? 할아버지.”

내 나이보다 다섯 배는 많을 게다.”

그게 몇 살인데요?”

이 다음에 네가 자라거든 알아 보거라.”

할아버지는 엉터리. 모르니까 다 내가 알아보라고 하시는 거지요?”

그래 나는 엉터리다. 똑똑한 네가 다 알아 보아라.”

나는 다시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이 나무에 난 저 구멍은 누가 그랬나요?”

동네 사람들이 그랬다.”

동네 사람들이 왜 그랬어요?”

지금은 없지만 이 나무에는 오래 전부터 동네 사람들이 나무에다 빨간 헝겊, 파란 헝겊을 매달아 놓고 앞에는 촛불을 켜놓고 술과 떡을 가져다 놓고 절을 하면서 빌었단다.”

왜 나무한테 빌어요?”

자기 아들 장가보내 달라고 빌고, 농사 잘 되게 해 달라고 빌고, 병든 사람 병 고쳐 달라고 빌고, 집 나간 사람 빨리 돌아오게 해 달라고 빌고, 모두가 나무한테 사정을 하면서 빌었단다.”

그래서 나무가 소원을 다 들어 주었나요?”

나무가 무슨 수로 그 많은 소원들을 들어주겠느냐? 사람마다 사정을 하는데 그 소원을 다 들어줄 수 없는 나무는 하나님한테 사정을 했다. 사람들보다 몇 배나 간절히 하나님한테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달라고 애걸복걸하다가 그만 저렇게 속이 터져 구멍이 나고 새카맣게 탔단다.”

사람들 때문에 나무가 속이 저렇게 까맣게 타서 구멍이 났어요?”

그래, 사람도 나무도 속이 타면 모두 병이 나는 것이란다.”

할아버지는 또 하늘을 바라보다가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불쌍한 것, 뉘 집 앤지도 모르는 것을 거두어 놓고 날마다 속을 끓이자니 얼마나 속이 탈꼬.”

나는 할아버지가 하는 말이 무슨 소릴까 궁금했습니다.

할아버지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니다, 네가 알면……. 알 것 없다.”

뭔데요?”

이때 키다리 할아버지가 나타났습니다.

자네가 와 있었군. 무얼 하고 있는가?”

, 저 녀석하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네.”

키다리 할아버지는 나를 힐끗 보더니 웃으며 말했습니다.

저 녀석이 많이 자랐어. 포대기에 싸들고…….”

대머리 할아버지가 급히 말을 막았습니다.

자네 무슨 소릴 하는가?”

? 못할 말 했는가?”

저 녀석이 들으면…….”

두 할아버지가 무슨 비밀 이야기를 하려다 만다고 생각하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할아버지들이 안 보이는 나무 뒤로 돌아가 불쑥 솟은 굵은 나무뿌리를 타고 앉았습니다.

할아버지들은 내가 못 듣는 줄 알고 하려던 말을 계속했습니다.

키다리 할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종팔이가 대문 앞에서 주워 안고 집에 들어오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저렇게 자랐어.”

그렇구먼. 누군지도 모르는 갓난아이를 안고 왔다고 부부가 한동안 소란을 피우더니…….”

그랬지. 처음에는 남편이 바람이 나서 아이를 낳아 왔다고 오해하던 부인이 한동안 아이를 들여다보지도 않았다네. 그러더니 어느 새에 애하고 정이 들어 자기가 낳은 자식보다 더 사랑하지 않는가. 그것을 보면 참 신기하기도 해.”

사람은 사람을 사랑하게 되어 있고 제 나름으로 사랑을 받게 되어 있는 것 같네그려.”

나는 그게 무슨 말인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를 대문 앞에서 주워 왔다고?’

나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럴 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머리 할아버지 말씀에 내가 엄마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 애 이름이 뭔가? 문수 아닌가. 대문 앞에서 거두어 왔다고 대문 문에 거둘 수를 써서 문수가 아닌가.”

키다리 할아버지도 그렇다고 생각되는 듯 같은 소리를 했습니다.

맞는구먼. 이름은 제대로 지은 것 같네. 문수라, 그럴 듯해, 허허허.”

종팔이가 무식한 것 같으면서도 아는 게 제법 많은 사람이라니까.”

내 이름 박문수가 문 앞에서 거두어 들였다고 문수라고? 아니야,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나는 할아버지들 하는 이야기를 더 듣지 않고 집을 향해 달렸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엄마한테 물어볼 거야. 내 이름을 왜 문수라고 지었느냐고 물어볼 거야. 할아버지들이 한 말이 거짓말인지 아닌지 알아볼 거야.’

그런데 갑자기 눈물이 났습니다.

내가 엄마 아들이 아니라고? 아니야, 아니야.’

나는 고개를 저으면서 집으로 달려가 엄마를 불렀습니다.

엄마아!”

부엌에서 엄마가 내다보면서 물었습니다.

왜 그래?”

엄마! 내 이름이…….”

왜 그래 문수야.”

갑자기 문수야 하고 부르는 엄마 목소리가 가슴에 주먹으로 맞은 것같이 부딪쳤습니다. 그 순간 엄마한테 달려들어 품에 안겼습니다. 엄마는 걱정스럽게 물었습니다.

문수야 왜 그래 잡자기 응?”

나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문수라고 부르는 것도 싫어졌습니다. 엄마는 속도 모르고 문수야 문수야 하면서 걱정스러워했습니다.

당장에 엄마한테 물어볼 거야 하고 달려왔지만 그 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엄마, …….”

그래 말해.”

비밀이 생겼어요

나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야, 엄마.”

그렇게 말하고 엄마 눈을 바라보았습니다. 엄마 눈 속에는 사랑이 가득했습니다. 나는 속으로 말했습니다.

저것 봐, 엄마 눈빛이야, 엄마는 진짜 우리 엄마야.”

엄마는 또 물었습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데 그래 문수야.”

문수? 문수? 나는 문수라는 이름이 내 이름 같지 않았습니다. 내 이름이 아니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엄마, 내 이름 바꿔 줘.”

이름을 바꿔 달라고?”

.”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 거야?”

그냥.”

엄마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습니다.

문수가 싫으면 복돼지라고 불러 줄까?”

복돼지?”

엄마는 고개를 까딱 하면서 대답했습니다.

그래, 복돼지.”

나는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왜 복돼지라고 그래?”

네가 생기고부터 우리 집이 부자가 되었거든.”

내가 생기고부터 부자가 되었다고 하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그래서 물었습니다.

엄마.”

?”

나는 엄마가 낳은 아들이야? 하고 물어보고 싶었는데 갑자기 그 말하기가 무서워졌습니다. 엄마가 너를 낳은 뒤에 부자가 되었기 때문이지 하고 대답해 주었으면 하고 바랐는데 내가 생기고부터라고 하는 말은 이상합니다.

엄마는 내 맘도 모르고 또 물었습니다.

우리 복돼지, 무슨 말이 하고 싶은데 그래?”

아니야, 비밀이 생겼어.”

비밀?”

.”

무슨 비밀인지 말해 봐. 엄마가 궁금한데?”

나는 갑자기 내 맘 들키는 게 싫어서 엉뚱한 말을 했습니다.

엄마, 유치원에.”

그래 말해 봐.”

우리 반에 빈이라는 애가 있고 덕순이라는 애가 있는데…….”

그래, 그 애들이 뭐라고 했니?”

어저께 비가 왔잖아.”

그랬지.”

나는 우산 없이 유치원으로 가는데 앞에 빈이와 덕순이가 우산을 받치고 가다가 나를 보고 둘이 똑같이 얘, 이리 와 내 우산 같이 쓰고 가자 했어.”

그래서?”

나는 어떤 아이 우산을 같이 쓰고 갈까 생각했어.”

엄마는 아주 재미있다는 눈빛으로 나를 들여다보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솔직히 대답했습니다.

빈이는 입이 꽃잎같이 예쁜데 덕순이는 입이 풀떡같이 생겼거든.”

호호호, 그래서?”

그리고 빈이 코는 송편같이 예쁜데 덕순이 코는 인절미 같아서…….”

엄마는 크게 웃었습니다.

호호호, 재미있네. 그리고?”

빈이 눈은 비둘기 눈같이 예쁜데 덕순이 눈은 그늘에 가린 지붕 같아서…….”

엄마는 더 재미있어 했습니다.

그래? 또 뭐가 다르지?”

빈이 이마는 반달같이 둥근데 덕순이 이마는 눈썹하고 머리가 붙을 것같이 좁아서 답답해 보였어.”

엄마는 또 물었습니다.

또 뭐가 다른데?”

빈이는 걸어가는 뒷모양이 새같이 가벼운데 덕순이는 돼지 궁둥이같이, 히히히.”

엄마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우리 복돼지가 누구 우산을 같이 쓰고 갔을까?”

엄마는 누구 우산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글쎄. 두 아이 가운데 맘씨가 고운 쪽이 아닐까?”

빈이는 예쁘기는 한데 교만하고 새촘해 보이고 덕순이는 넙데데한데 순하여 바보같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무한테도 가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모르는 엄마는 다시 물었습니다.

누구 우산을 같이 쓰고 갔니?”

엄마는 누구 우산을 같이 쓰고 싶어?”

글쎄, 누가 좋을까. 아무래도 빈이 우산 속으로 들어갔을 것 같다.”

?”

빈이가 덕순이보다 예쁘니까.”

엄마는 몰라. 그건 비밀이야.”

이렇게 말한 나는 빈이 우산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는데. 엄마도 나처럼 예쁜 아이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른들은 몰라요

다음날입니다. 나는 동생 문구하고 엄마를 따라 슈퍼에를 갔습니다. 엄마가 나를 보고 말했습니다.

문수야, 네가 갖고 싶은 거 아무 거나 골라 봐.”

나는 문수야 하고 부르는 것이 싫었습니다.

엄마, 나 복돼지야.”

엄마가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호호, 그랬지. 복돼지라고 했지.”

그 말에 네 살짜리 동생 문구가 엄마를 올려다보며 물었습니다.

엄마, 형아가 복돼지야?”

엄마가 문구를 귀엽게 내려다보며 말했습니다.

그래, 형아는 오늘부터 복돼지라고 부르기로 했다.”

문구가 물었습니다.

엄마. 그럼 나는 뭐야?”

글쎄, 너는 뭐라고 불러 줄까?”

이때 내가 말했습니다.

엄마, 문구는 금돼지라고 불러.”

문구가 좋아하는 얼굴로 말했습니다.

금돼지? 내가 금돼지?”

엄마가 대답했습니다.

그래, 그렇게 하자. 금돼지가 얼마나 귀엽니?”

나는 내가 지어준 이름을 엄마가 좋아하는 것이 기뻤습니다. 그래서 슈퍼 안에 있는 물건 가운데 빨간 돼지저금통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엄마, 난 돼지저금통 살래.”

엄마가 그쪽으로 가면서 말했습니다.

그렇게 하자, 그럼 금돼지는 무엇이 사고 싶을까?”

금돼지 문구가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털로 만든 아기 판다곰을 가리켰습니다.

엄마, 난 저거.”

우리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가게 안을 도는 동안 주인아줌마가 따라오며 방긋거리다가 판다곰을 내려주면서 말했습니다.

형은 돼지를 사고 동생은 판다를 사네. 더 좋은 것도 많은데, 호호호.”

그러면서 엄마한테 물었습니다.

형제인가 봐요.”

엄마가 대답했습니다.

그래요, 큰애는 복돼지 작은아이는 금돼지랍니다.”

아주머니가 또 웃으며 말했습니다.

돼지 가족이시네요. 호호호.”

엄마도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되었네요, 호호호.”

주인아줌마가 나와 문구를 번갈아 보다가 엄마한테 물었습니다.

친형제지요?”

, 친형제예요.”

어쩌면 한 엄마한테 나온 아들들이 이렇게 다를까?”

엄마가 물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주인아줌마가 대답했습니다.

형은 영화배우 뺨칠 만큼 잘생겼는데 동생은 좀…….”

나는 엄마 얼굴을 곁눈질로 훔쳐보았습니다. 엄마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살짝 지나갔습니다. 그때 나는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나는 문간에서 거둬들인 아이라는 말이 맞는지도 몰라.’

주인아줌마는 동생 문구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습니다.

너도 자라면 형처럼 잘생길 거야.”

그리고 진열대에서 빨간 돼지저금통을 내려서 나한테 주었습니다. 나는 갑자기 돼지저금통이 싫어졌습니다.

싫어요.”

나는 돼지저금통을 던져 버리고 슈퍼 밖으로 뛰어 나왔습니다. 그리고 울지 않으려고 하는데 눈물이 나서 팔꿈치로 눈물을 닦으며 골목길을 달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엄마가 바로 뒤따라오면서 물었습니다.

문수야, 왜 그래?”

나는 또 문수야 하는 소리가 싫어졌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는 걱정스럽게 물었습니다.

왜 갑자기 그랬어? 돼지저금통이 싫어서 그랬니?”

나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있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는 몰라요

엄마가 아빠한테 말했습니다.

여보, 오늘 어머님이 오신다는데 어떡하죠?”

?”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음식을 차려야 할 텐데…….”

, 우리 먹는 대로 차려드리면 될 걸 무슨 걱정이오?”

일 년에 한번 오시는 어머님을 우리가 먹는 대로 차려드린다고요?”

그럼 어떡하겠소?”

돈 좀…….”

아빠는 머리를 저었습니다.

? 난 빈털터리요. 정 그러면 다음 달 월급 타서 준다고 하고 이웃집에서 좀 빌려다 음식을 차리던지.”

알았어요.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음식을 차려드리려면 그렇게라도 해야지요.”

엄마는 아빠가 출근하고 나자 옆집 미나 엄마한테 돈을 꾸어다 장을 보아 왔습니다. 그리고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생선과 쇠고기를 사다가 국을 끓이고 생선을 구어 정성껏 상을 차렸습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빠 말대로 할머니께 우리가 먹는 대로 해드리면 안 될까?’

그러나 엄마는 고깃국에 생선을 굽고 맛있는 반찬을 가득히 차렸습니다. 할머니는 밥상을 들여다보시며 말했습니다.

뭘 이렇게 많이 차렸느냐? 돈도 없을 텐데.”

엄마는 겸손히 말했습니다.

별로 차린 것은 없지만 많이 드세요.”

알았다. 잘 먹으마.”

그렇게 말씀하신 할머니는 식사를 맛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빠가 퇴근하여 돌아오시자 할머니가 엄마 모르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너희 집은 이렇게 날마다 잘 차려 먹고 살다가 언제 돈을 모으겠느냐? 작은애 네를 가 보아라. 너보다 훨씬 잘살면서도 먹고 사는 건 보리밥에 고춧가루 하나도 없는 백 배추김치를 먹고 살더라. 네 댁은 살림이 너무 헤프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할머니를 멍하니 바라보시는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할머니는 아무것도 몰라. 우리 집은 날마다 김치 하나에 보리 섞은 밥만 먹지만 오늘은 할머니가 오시기 때문에 돈이 없어서 옆집에서 돈을 꾸어다가 상을 차려 드린 거예요. 우리가 날마다 이렇게 먹고 살면 얼마나 좋겠어요. 할머니는 몰라요.’

할머니는 하룻밤을 주무시고 작은아버지 댁으로 가셨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엄마와 아빠가 밤에 나누는 이야기를 다 들었습니다. 아빠가 물었습니다.

오늘 돈을 꾸어다가 상을 차렸소?”

어떡해요. 어머니가 오셨는데 우리가 먹는 대로 해 드릴 수는 없지 않아요?”

그래서 당신이 어머니 사랑을 못 받는 것이오.”

? 그게 무슨 말이에요?”

어머니가 오실 때마다 돈을 꾸어서라도 상을 잘 차려 드리니까 우리가 날마다 그렇게 먹는 줄 아는 것 아니오. 그러니 당신이 살림을 알뜰히 하지 않는 며느리라고 생각하시게 된 것이오. 작은집을 보시오.”

작은집이 어떤데요?”

작은집은 우리와 달라요. 평소에 잘해 먹다가도 어머니가 오신다고 하면 보리밥에 고춧가루 하나 없는 소금에 절인 배추김치만 내놓는단 말이오.”

그걸 어떻게 알아요?”

내가 보아서 알고 있소. 평소에 잘해 먹다가도 어머니가 오신다고 하면 맛없는 김치를 담가 대접하면서 생활이 너무 어렵다고 엄살을 부리는 걸 보았소. 그러니까 어머니는 딱하다고 고춧가루도 그 애네 집에는 주고 우리는 아무것도 안 주는 것이오. 그리고 당신이 살림을 헤프게 해서…….”

그 다음 말은 안 해도 나는 알아요. 그래서 우리 집이 가난하다는 말을 하려다가 만 것입니다. 그런데도 엄마는 화도 안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그런 것은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내가 아무리 없어도 어쩌다 오시는 어머님을 그렇게 푸대접은 못해요.”

당신은 천사요. 나는 천사 같은 당신이 바보같이 보이기만 하오. 고맙소, 하하하.”

아빠가 엄마를 인정해 주는 것이 기뻤습니다. 그러나 할머니가 엄마 사정을 너무 몰라주는 것이 억울하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남의 속도 모르고

할머니가 다녀가시고 며칠 지난 어느 날 작은고모가 오셨습니다. 고모님은 오시자마자 첫 인사로 엄마한테 말했습니다.

언니, 나 좀 급해서 그런데 돈 좀 꿔줘요.”

엄마는 고모님이 오셨다고 반가워하다가 멈칫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급해서 그러니 돈 좀 꾸어달라고 했어요.”

엄마는 난처한 얼굴이 되었습니다.

고모, 그런 것이라면…….”

왜요? 돈 없다고 하시려는 거지요?”

그래요, 우리도 어려워요.”

그런 말 말아요, 언니.”

엄마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대답했습니다.

고모, 우리 형편을 다 알면서.”

고모는 엉뚱한 말을 했습니다.

다 알고 하는 말이에요. 엄마가 그러시는데 작은오빠네 는 시어빠진 김치쪼가리에 보리밥만 먹고 사는데 언니네 집에는 고깃국에 비싼 생선까지 구워 입맛이 착착 들러붙는 음식을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놓고 먹더라고 하셨어요. 그러시면서 큰오빠 네가 먹고 사는 것 보면 잘 사는 것 같다면서 돈이 급하면 큰오빠한테 가 보라고 해서 왔어요.”

…….”

엄마는 기가 막힌 얼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고모가 또 말했습니다.

언니, 그렇게 큰돈을 빌려달라는 것도 아니에요. 오십 만원만 주시면 바로 갚아드릴게요.”

엄마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오십만 원이나요?”

고모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습니다.

왜 그렇게 놀라시우? 오빠가 꼬박꼬박 월급 타다 바치면 앉아서 살림이나 하면서 그깟 몇 푼이나 된다고…….”

나는 며칠 전에 할머니가 오시던 날 생각을 했습니다. 엄마가 옆집에서 돈을 꾸어다가 할머니 반찬을 해드린 것을 아는데 고모는 그것도 모르고 엄마가 돈이 많은 줄 알고 있으니 답답했습니다. 엄마는 죄라도 지은 것처럼 고모 앞에서 절절매며 말했습니다.

고모, 오해하지 마세요. 우리도 늘 풍성하게 먹고 사는 처지가 아니에요.”

고모는 엉뚱했습니다.

아무래도 잘 먹고 잘 산다는 건 엄마가 알고 계신데 죽는 소리 말고 빌려주어요. 거저 달라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야박하게 굴지 말아요.”

야박한 게 아니에요. 우리 사정이 고모 생각하는 만큼 넉넉한 것이 아니에요. 오빠 월급이 얼마나 되는지 아시고 그러세요?”

그런 것까지 내가 알아서 뭘해요. 꼽쳐놓은 것 좀 내놓아요, 언니.”

나는 가만히 듣고만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엄마 사정은 내가 더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모 말에 토를 달았습니다.

고모님, 엄마 정말 돈 없어요. 엄마를 괴롭히지 마세요.”

고모가 내 눈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면서 한 마디 했습니다.

, 너까지도 엄마라고 역성을 드는 거냐? 너같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어른들 말하는 데 끼어드니?”

엄마가 당황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애가 하는 말인데 뭘 그렇게까지 말을 해요.”

그러면서 나에게 밖에 나가 놀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밖으로 나오면서 너같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하고 말한 고모의 말씀이 이상하게 가슴에 새겨졌습니다.

그 날 엄마는 미안해하는 얼굴로 죄인처럼 절절매고 고모는 원망스런 눈으로 엄마를 괴롭히다가 돌아갔습니다.

엄마는 찬바람이 부는 듯 쌀쌀맞은 고모가 돌아가는 등뒤에다 대고 몇 번씩 굽실거리며 인사를 했습니다.

고모,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고모는 삐져서 인사도 안 받고 가면서 나를 싸늘한 눈빛으로 훑어보고 고개를 홱 돌렸습니다.

내 마음이 이렇게 아픈데 엄마는 어떻겠어요. 나는 생각했습니다.

엄마, 내가 빨리 커서 엄마한데 돈 많이 벌어다 드릴게요.’

엄마는 바보

엄마하고 삼촌네 집을 가는 길이었습니다. 넓은 길 한 복판에 하얀 봉투 하나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내가 엄마 보고 물었습니다.

엄마, 저것 봐. 저게 뭐야?”

엄마도 봉투를 보고 말했습니다.

글쎄, 무슨 봉투가 땅에 떨어져 있지?”

나는 엄마보다 빨리 달려가 봉투를 집어다 엄마한테 드렸습니다. 엄마는 봉투 속을 들여다보더니 눈이 둥그레졌습니다.

아아니! 이건…….”

내가 물었습니다.

엄마, 그게 뭐야?”

돈이 들어 있구나. 봉투를 제 자리에 갖다 놓아라.”

나는 갑자기 엄마 말이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돈이면 주운 사람이 임자가 아닌가요.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엄마 말대로 봉투를 제 자리에 놓으면서 엄마는 바보 같다고 생각하며 물었습니다.

엄마, 왜 도로 가져다 놓는 거야?”

잃어버린 사람이 찾으러 올 거다. 우리가 집어가면 안 된다.”

나는 엄마 생각하고 달랐습니다.

엄마, 주인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우리가 집었으니까 우리 거 아닌가.”

주인이 찾으러 왔을 때 없으면 어떡하겠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았습니다. 주인이 찾으러 왔을 때 없으면 안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엄마 말대고 제 자리에다 놓고 돌아왔습니다.

엄마 말대로 갖다 놓았어.”

잘했다.”

그리고 몇 발자국을 가다가 엄마가 멈추어 서서 말했습니다.

문수야, 돌아가서 그 봉투 집어 오너라.”

나는 엄마 말이 반가웠습니다. 거기다 버리고 가면 어떤 사람이 보고 집어가 버리면 어떻게 될까 하고 생각하는 중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집어 오라고 하시므로 그 돈은 우리 돈이다 하고 달려가 봉투를 집어 들고 왔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엄마, 왜 맘이 바뀌었어?”

엄마 생각이 바뀐 것은 저 봉투를 마음씨 나쁜 사람이 집어가면 주인이 찾지 못할 것 같아서 그런다.”

그럼 엄마가 집어가면…….”

나는 엄마가 집어가서 써 버리면 우리가 나쁜 사람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하려다가 말았습니다. 엄마는 내 맘을 알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주인이 찾을 수 있도록 그것을 파출소에 맡기려고 그런다. 우리가 쓰면 우리가 나쁜 사람이지.”

, 그랬구나.”

나는 엄마 얼굴을 올려다보면서 눈을 깜박했습니다. 나도 엄마 마음 알았다는 윙크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엄마하고 나는 그 봉투를 들고 파출소로 갔습니다. 파출소 경찰관 아저씨가 물었습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엄마가 봉투를 내밀면서 대답했습니다.

길에서 돈이 든 봉투를 주웠습니다. 주인이 찾으러 오시거든 돌려드리세요.”

얼마나 들었습니까?”

오만 원짜리 세 장이 들었습니다.”

경찰관 아저씨가 엄마한테 허리를 숙여 보이며 봉투를 받아들었습니다.

이렇게 고마우신 분을 만나서 반갑습니다. 주인이 찾으러 오면 돌려드리겠습니다. 아주머니 연락처나 알려 주시고 가시지요.”

연락처는 알아서 뭘 하시려고요. 아저씨가 알아서 하세요.”

아닙니다. 주인이 찾으러 오시지 않으면 우리도 이 돈을 함부로 사용하지 못합니다. 길에서 주우셨으니 아주머니가 임시 주인이십니다.”

그래도 엄마는 연락처를 안 알려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말했습니다.

아저씨, 우리 집 전화번호를 적어드릴까요?”

아저씨가 놀랍다는 듯 물었습니다.

네가 전화번호를 적을 수 있니?”

, 저는 한글도 쓸 수 있고 숫자도 다 알아요.”

호오, 귀엽게 생긴 녀석이 똑똑하기도 하구나. , 여기다 전화번호를 적어 놓아라.”

경찰 아저씨는 종이 대신 돈 봉투에다 전화번호를 쓰라고 했습니다. 나는 유치원에서 배운 대로 전화번호를 또박또박 써서 봉투를 돌려드렸습니다. 경찰 아저씨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칭찬했습니다.

귀여운 것이 글씨도 잘 쓰는구나. 넌 몇 살이냐?”

여섯 살이에요.”

여섯 살? 유치원에 다니는구나?”

.”

엄마하고 나는 그렇게 경찰관 아저씨한테 봉투를 맡기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엄마가 나를 귀엽다는 듯이 보시면서 말했습니다.

어느새 네가 자라서 전화번호도 쓸 줄 알게 되었구나. 봉투를 경찰 아저씨한테 맡기고 오니까. 마음이 가볍지?”

정말 그랬습니다.

, 엄마. 우리가 잘한 거 같아.”

그래야 하는 거야. 내 돈이 아니면 길에서 줍던 어떻게 되어 내 손에 들어오든 욕심을 내서는 안 되는 거야. 알았지?”

, 엄마.”

그리고 며칠 지난 어느 날 파출소에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엄마가 낚시에 걸렸어요

엄마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 . 어디신데요? 파출소라고요? , 알겠습니다.”

엄마는 얼굴이 약간 빨개진 채 나를 바라보며 중얼거렸습니다.

무슨 일일까? 파출소에서 엄마를 오라는구나.”

나는 왜 오라는 것인지 엄마보다 먼저 생각해 냈습니다. 틀림없이 돈을 찾으러 오는 사람이 없으니 와서 돈을 도로 가져가라는 전화일 것이라고.

엄마, 빨리 가요. 나도 갈게요.”

네가 왜 좋아하는 얼굴이냐?”

좋은 일이 있을 거야, 엄마.”

좋은 일이라니, 엄마는 불안한 생각이 드는데.”

엄마, 파출소에서 우리가 맡긴 돈을 주인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엄마가 내 말을 막았습니다.

어린 게 별 소리를 다하는구나.”

엄마는 나를 앞세우고 파출소로 갔습니다. 파출소에는 경찰관 아저씨와 머리가 하얀 할머니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경찰아저씨가 엄마를 그 할머니한테 인사를 시켰습니다.

두 분 인사하시지요. 이족은 돈을 잃어버린 할머니이시고 이쪽은 돈을 주어다 맡기신 아주머니십니다.”

할머니가 엄마 손을 잡으면서 인사를 했습니다.

반갑습니다. 양심을 찾았으니 반갑습니다.”

엄마는 어리둥절한 얼굴이었고 나도 어리둥절했습니다. 양심을 찾았다고 하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물건도 아닌 양심을 찾는다는 말이 되는 말인가요.

엄마가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양심이라고 하시니.”

할머니가 엄마 손을 잡은 채 말했습니다.

나는 살날도 얼마 남지 않았지만 사정이 있어서 댁같이 양심적인 사람을 만나려고 모험을 했습니다.”

할머니는 이상한 소리를 했습니다. 무슨 모험을 했다는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할머니는 엄마가 당황하는 얼굴을 하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젊은 댁은 맘씨가 아주 고운 분 같아요. 이상하게 생각 마시고 내 말을 들어 주세요.”

경찰관 아저씨가 서서 이야기하는 것이 안 되었던지 의자 두 개를 가져다 놓고 말했습니다.

여기 앉아서 말씀을 나누시지요.”

그리고 나 보고는 한쪽 구석에 있는 뱅뱅이 의자를 가리키며 거기 앉으라고 했습니다. 할머니가 엄마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나는 이제 아들이 사는 호주로 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집을 팔고 가려니 아들이 돌아왔을 때를 생각하여 팔 수도 없고 또 약간 가진 돈도 가지고 갈 수가 없어서 누구한테 맡길까 생각하다가 모험을 생각했습니다.”

엄마가 물었습니다.

모험이라고 하시는데 그 모험이 무슨 뜻인가요?”

내가 재산을 맡겨도 좋을 사람을 찾으려고 돈 봉투 열 개를 만들어 그 길목에다 놓고 양심을 기다렸습니다.”

친척이나 가까운 사람들이 있으실 텐데…….”

다 헛것이었어요. 내가 그 자리에다 돈 봉투를 떨어뜨려놓고 조카를 불렀지요. 그랬는데 조카는 봉투를 집어들고 입 다물고, 또 시동생뻘 되는 분이 다니는 길목에다 그것을 던져 보았더니 그분도 집어 들고 자기 돈 쓰듯 하고 그렇게 아는 사람 여섯 명 째 시험을 해 보았습니다.”

할머니는 엄마 얼굴을 빤히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습니다.

내가 백오십만 원을 버리더라도 양심을 찾기만 한다면 수확이라는 생각에 일곱 번째 던진 낚시에 댁이 걸렸다오. 호호호. 우습지요? 낚시에 걸렸다는 말 섭섭히 듣지 말아요.”

엄마는 겸손하게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어른님.”

나는 엄마가 낚시에 걸렸다는 말을 듣고 재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돈 봉투가 낚시였고 엄마하고 나는 미끼를 문 물고기 히히히 재미있어.

할머니가 또 말했습니다.

일곱 번째 낚시에 걸린 양심을 보고 나는 이 세상이 험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양심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오.”

할머니는 경찰관 아저씨를 보고 물었습니다.

경찰관님, 이 분이 내 돈 봉투를 주어다 맡긴 사람이 틀림없이 맞지요?”

경찰관이 분명히 대답했습니다.

맞습니다. 저 꼬마도 맞고요.”

할머니는 나를 돌아다보고 말했습니다.

귀엽게 생겼군, 영리하겠어.”

엄마가 대답했습니다.

까불기는 해도 영리합니다.”

할머니가 나를 불렀습니다.

이리 와 나하고 손을 좀 잡아 보자.”

뻔뻔스런 할머니

할머니는 문수 손을 잡고 중얼거렸습니다.

복 있는 손이야, 주걱 손끝이 두툼하고 예쁜 것이 잡는 것마다 복이 들어올 손이야.”

엄마가 이상하다는 듯 물었습니다.

할머니, 무슨 말씀이세요?”

아니에요, 나 혼자 해 본 소리라우.”

엄마가 경찰관 아저씨한테 물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돌아가도 되지요?”

경찰관 아저씨가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이때 할머니가 한 마디 했습니다.

아이 엄마, 나도 같이 갑시다.”

엄마가 놀라서 물었습니다.

?”

왜 그리 놀라시오? 나도 댁을 따라 가고 싶어서 하는 소리예요.”

저를 따라 가시겠다고요?”

내가 시장해서 그러니 댁에 같이 가서 밥 한 끼만 얻어먹고 싶은데 안 되겠수?”

엄마는 기쁘게 대답했습니다.

그러시다면 모시고 가겠습니다. 하지만 저희 집은 좀 누추해서…….”

누추하다고 하시는 말씀은 말아요. 한 끼 얻어먹는 처지에 그런 걸 따지겠습니까?”

이해해 주신다면 그렇게 하시지요.”

할머니는 엄마를 따라 파출소를 나섰습니다. 나는 할머니 손에 잡혀 깡충깡충 뛰면서 엄마를 따랐습니다. 할머니가 사랑 가득한 눈으로 물었습니다.

몇 살이냐?”

여섯 살이어요.”

이름은?”

나는 얼른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복돼지라고 할까 문수라고 할까 망설이다 대답했습니다.

복돼지여요.”

할머니가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복돼지? 호호호. 귀여운 것, 이름도 귀엽네.”

그리고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말했습니다.

나이보다 크고 어엿하구나.”

할머니는 엄마를 보고 물었습니다.

댁까지는 얼마나 더 머우?”

아니에요.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엄마는 시장을 지나면서 가게에서 생선을 샀습니다. 우리 집에는 손님한테 대접할 만한 반찬거리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할머니는 내 손을 꼭 잡고 말없이 엄마만 따랐습니다.

한참 만에 우리 집에 도착했습니다. 할머니는 집을 둘러보시며 물었습니다.

이 집은 자택인가요?”

엄마가 얼굴이 빨개지면서 대답했습니다.

전세랍니다. 방 두 개짜리로 집이 아주 협소해요.”

그렇구려. 방 두 개라도 방마다 웃음을 가득히 채우고 살면 행복한 것이지요.”

할머니는 웃는 얼굴로 나한테 물었습니다.

그렇지? 복돼지, 방마다 싸우는 소리로 가득 채운 집이 있는가 하면 웃음소리로 가득 채우고 사는 집이 있다. 너희 집은 어떤 집이냐?”

나는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우리 집은 방마다 웃음소리가 가득한 집이에요.‘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내가 그럴 줄 알았다. 너희 집은 복 받은 집이야.”

엄마가 나를 귀엽다는 듯이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리고 할머니한테 물었습니다.

이 애 말이 맞을 것 같다고 생각하시나요?”

할머니는 분명하게 대답했습니다.

맞지요. 떨어진 봉투를 주어다가 주인한테 돌려준 것만 보아도 어떤 사람인지 짐작이 가지요.”

그렇게 하여 우리 집에 함께 와 점심식사를 맛있게 하신 할머니가 이상한 말씀을 하였습니다.

내가 부탁드릴 것이 하나 있는데 들어주시겠수?”

무슨 말씀인데요?”

내가 오늘 삼십만 원을 꼭 갚아야 할 곳이 있는데 경찰 연락을 받고 급히 나오느라 깜박 잊고 그냥 나왔어요. 15만원이 부족해서 그러는데 나를 믿고 15만원만 꾸어 줄 수 없겠수? 귀한 점심까지 얻어먹고……. 뻔뻔스런 소리인 줄은 알지만 원체 급한 일이니 어쩌겠수.”

엄마는 선뜻 대답을 못하고 망설였습니다.

한번 믿었으면 끝까지 믿어라

엄마는 할머니한테 양해를 구했습니다.

저한테는 그런 큰돈이 없습니다. 어른님이 급하다고 하시니 옆집에 가서 좀 빌려오겠습니다. 그래도 괜찮겠지요?”

할머니는 정말 뻔뻔스러웠습니다.

그렇게라도 해 주신다면 고맙지요.”

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옆집으로 갔습니다. 그 동안 할머니가 나한테 물었습니다.

넌 이 담에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

부자가 되고 싶어요.”

호호호, 부자가 되고 싶다고? 왜 부자가 되고 싶으냐?”

엄마는요 돈이 없어서 아빠 월급날까지는 이 집 저 집에서 돈을 꾸어다 살다가 월급을 받아오면 꾸어온 돈 다 갚고 나면 맨주먹이라 또 돈을 꾸어다 살아요.”

네가 그런 것도 알아?”

엄마가 날마다 돈 꾸러 가는 거 보니까요.”

그래서 부자가 되고 싶은 거야?”

, 엄마가 돈 꾸러 다니지 않게 하려면 부자가 되어야 해요.”

네가 효자로구나. 호호호, 귀여운 것.”

할머니하고 이야기하는 동안 엄마가 돈을 꾸어가지고 돌아왔습니다. 할머니가 물었습니다.

정말 돈을 꾸어 오시었수?”

. 받으세요.”

돈을 그렇게 쉬이 꾸어 오는 것을 보니 아이 엄마 신용이 좋은 것 같구려. ”

신용은 잃지 않고 살았으니까요.”

할머니는 엄마가 내주는 돈을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습니다.

금방 만난 나를 믿고 돈을 꾸어다까지 주는 걸 보면 아기 엄마는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소. 이 돈은 모레 갚겠으니 우리 집으로 받으러 오셨으면 하는데 그렇게 하겠수?”

그렇게 하시라면 그렇게 해야지요.”

고맙기도 해라. 우리 집이 어딘지 아시우?”

모릅니다.”

내가 어디 사는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돈을 꾸어다 주다니 아이 엄마를 내가 믿어도 되겠소?”

어른님의 깊은 뜻을 알고 있는데 뭘 더 이상 알고 싶어 하겠습니까.”

깊은 뜻이라고 하셨수?”

양심을 찾기 위해 길에다 큰돈을 투자할 수 있는 어른님이신데 더 이상 무슨 의심을 하겠습니까.”

할머니는 아주 기쁜 얼굴로 말했습니다.

호호호, 내가 사람은 바로 만난 것 같아요. 이 주소로 돈을 받으러 오시오.”

할머니는 주소를 적어 주고 집에서 떠났습니다. 나는 엄마가 바보짓을 한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돈을 꾸어다까지 주면서 겨우 주소라고 적어 준 종이쪽지만 받고 할머니를 그냥 가시게 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할머니가 어디로 가는지 따라가 보고 싶었습니다.

엄마, 저 할머니 어디로 가는지 내가 알아보고 올까?”

그럴 필요 없어. 저 할머니는 보통 어른이 아니야.”

그래도 나는 이상해 엄마.”

엄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의심이 가는 사람은 믿지 않으면 되고 한번 믿었으면 어떤 일도 믿어야 하는 거야.”

엄마, 너무 어려워서 못 알아듣겠어.”

믿음이 가면 끝까지 믿어준다는 말이야.”

참 이상한 할머니야. 점심도 먹고 싶다고 하고 돈도 꿔달라고 하고 무슨 할머니가 그래? 그 할머니가 정말로 돈을 갚아 줄까?”

모레 그 집으로 가 보면 알겠지. 한번 믿었으면 끝까지 믿어야 한다. 알았니?”

, 엄마.”

그리고 하룻밤이 지나고 할머니가 오라는 날이 되었습니다. 엄마보다 내가 먼저 엄마한테 말했습니다.

엄마, 오늘 그 할머니한테 가는 날이지?”

그래, 너도 기억하고 있었니?”

엄마는 그 주소를 가지고 할머니 집을 찾아갔습니다.

어어!?

엄마가 주소를 들고 찾아간 집은 동네 한복판에 있는 가장 큰 집이었습니다. 집이라기보다 성 같은 집이었는데 철 대문이 얼마나 큰지 그 앞에 서기가 겁이 났습니다.

내가 물었습니다.

엄마, 이 집이 할머니네 집이에요?”

그런 것 같다.”

나는 아주 큰집을 보고 마음이 조무라 들었습니다. 그래서 엄마한테 반말도 안 나왔습니다.

엄마, 이 집에 할머니가 정말 있을까요?”

글쎄 나도 모르겠다.”

엄마는 한쪽에 있는 부저를 꾹 눌렀습니다. 나는 뿌웅하는 부저 소리에 가슴이 떨렸습니다.

안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누구시오?”

할머니 목소리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또 겁이 났습니다. 이 집은 할머니 집이 아닌지도 모르잖아요. 남자 목소리가 다시 물었습니다.

누구를 찾아오셨습니까?”

엄마가 조심스럽게 대답했습니다.

할머니를 찾아 왔습니다.”

남자 목소리가 하고 대답을 하면서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꽈앙!”

철대문소리가 얼마나 큰지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엄마도 놀란 듯 움찔했습니다. 남자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어서 오세요.”

나는 엄마 손을 잡고 대문 안으로 들어서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대문 안에는 널따란 잔디밭이 있고 사방에 꽃이 피어 향기가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양지바른 쪽에 커다란 늙은 소나무가 있고 그 아래 나직한 틀 그네가 있었습니다. 이런 집이 세상에 있는 것은 보지도 못했지만 듣지도 못했습니다. 집 둘레에는 대추나무와 감나무가 울창하고 사과나무에 사과까지 주렁주렁 달려 있었습니다.

내가 엄마 손을 꼭 잡고 물었습니다.

엄마, 꿈꾸는 것 같아요.”

엄마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래, 나도 꿈꾸는 것만 같다.”

이때 현관문이 열리면서 할머니가 활짝 웃으며 맞았습니다.

어서 와요, 기다리고 있었다우.”

나는 할머니 앞에 배꼽인사를 드렸습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그래, 복 돼지가 왔구나. 우리 집에 복 돼지가 들어왔어, 호호호, ”

엄마도 수줍게 인사를 했습니다.

그간 안녕하셨어요?”

반가워요, 어서 오세요.”

할머니는 아주 겸손하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큰 집에 사는 사람은 아무나 보고 반말을 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할머니는 아주 점잖고 겸손했습니다.

복 돼지 엄마, 우리 집도 이렇게 누추하답니다.”

엄마는 대답을 못하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집이 누추하다고 하시면 저희 집을 보시고 어떠셨을까 부끄럽습니다.”

고마워요, 오늘 꼭 오기를 기다렸어요.”

나는 궁둥이가 쑥 가라앉는 소파에 묻힌 채 할머니를 가만히 바라보았습니다. 할머니는 우리 집에 왔을 때 보던 그 할머니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좋은 할머니 같으면서도 무섭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친절했습니다.

젊은 댁, 오늘은 우리 집에 왔으니 나하고 점심도 먹고 세상 이야기도 하고 가요, 안 되겠수?”

아닙니다. 많이 놀다가 가겠습니다.”

고마워요.”

이때 주방에서 아줌마가 차를 내왔습니다. 할머니는 차를 들면서 엄마한테 말했습니다.

댁은 전세를 살고 계시다고 했지요?”

.”

이왕 남의 집 전세 살 바에는 우리 집에 와서 전세로 사시면 어떻겠어요?”

엄마는 깜짝 놀란 얼굴이었습니다.

?”

왜 그리 놀라시우?”

저희는 보증금이 얼마 안 됩니다. 이렇게 좋은 집에 올 처지가 못 됩니다.”

내가 언제 보증금을 많이 내라고 했나요? 복 돼지네가 들어 있는 보증금이면 넉넉해요.”

아무리 그러셔도 안 됩니다.”

안 될 것 없어요. 나한테는 그만한 사정이 있어서 그러니 내 말대로 하세요.”

엄마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무슨 사정이 있으신가요?”

우리 아들이 호주에 사는데 나 보고 거기 와서 살자는 것을 몇 년을 두고 미루다가 이제는 갈 생각이에요. 그래서 우리 집을 맡아 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오.”

그런 사정이 있으셨나요?”

그래서 내가 급하게 양심을 찾고 있었다오. 그런데 복 돼지 엄마를 만났지요.”

…….”

그래서 말인데 우리 집을 좀 맡아 주세요. 그러시면 내가 이 집을 맡기는 조건을 말해 줄게요.”

무슨 조건이……. 있으신가요?”

이 집을 복 돼지한테 맡기고 싶은데 어떨는지.”

어린 저 애한테요?”

그래요. 저 복 돼지라면 내가 믿을 수 있다오.”

엄마는 한참 동안 말을 못했습니다. 할머니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내가 호주에 가고 나면 언제 올는지 몰라요. 그래서 저 아이한테 모든 것을 맡기고 싶어요. 이 집 권리와 내가 좀 가지고 있는 동산을 복 돼지 앞으로 해 놓고 가고 싶어서 그럽니다. 댁이 이 집에 세를 들어오시면 나하고 계약을 하는 것이 아니고 복 돼지하고 하는 것이지요. 아들이 가지고 있으나 엄마가 가지고 있으나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

우물쭈물하지 말고 대답해요. 그러면 바로 나도 호주로 갈 준비를 하겠어요.”

그렇게 빨리나요?”

내가 주인을 만났으니 서둘러도 되지요.”

주인이시라니요?”

할머니가 나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 복 돼지를 만났으니 하는 말이라우.”

할머니, 다시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우리 수입으로는 이 큰 집을 관리할 힘도 없고…….”

그런 염려는 말아요. 내가 집 관리비와 복 돼지가 불편 없이 살도록 생활비를 넉넉히 보내 줄 테니 아무 염려 말고 이사만 오세요.”

이렇게 하여 우리 집은 할머니네 커다란 집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할머니는 호주로 가기 전에 나한테 예쁜 가방 하나를 안겨주었습니다.

이건 네가 받아 가지고 엄마한테 맡겨라.”

그리고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복 돼지 엄마, 이 아이는 내 손자로 알고 갈 테니 아이한테 맡긴 것을 열어 보지 말고 잘 보관해 주어요. 집안 어디든지 깊숙이 두었다가 내가 생활비 송금을 못하거든 그때 열어보시도록 하세요.”

그렇게 하고 할머니는 정말로 호주로 가셨습니다. 엄마도 아빠도 꿈을 꾸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나도 꿈을 꾸는 것 같았습니다.

길에서 봉투 하나 주워서 주인을 찾아 주었을 뿐인데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건 꿈도 꿀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커다란 집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엄마는 날마다 한 시간씩 골방에 들어가 하나님한테 감사 기도를 하고 아빠는 회사를 다녔습니다.

그렇게 몇 달을 즐겁게 지내고 있던 어느 날 고모가 찾아왔습니다.

엄마 찾아 골목길

언제나 그렇지만 고모는 우리 집에 오기만 하면 심술을 부리십니다. 우리가 이사 온 집 주소를 들고 찾아온 고모님은 집안을 둘러보시며 심술 난 소리를 했습니다.

언니, 내가 돈 몇 푼 꾸어 달랄 때는 없다고 딱 잡아떼더니 어느새 돈을 모아 이렇게 큰 집으로 이사를 했수?”

엄마는 언제나 고모 앞에서는 숨을 제대로 못 쉽니다. 고모는 엄마를 위해 아무것도 해 준 것 없으면서 큰소리는 땅땅 치십니다.

엄마가 나직이 말했습니다.

고모, 우리가 돈이 많아서 이 집으로 이사 온 게 아니에요.”

그것도 말이라고 해요? 이렇게 큰 집을 전세로 왔든 사글세로 왔든 한두 푼이 들어갔을 리가 없지 않아요?”

다 그럴 사정이 있었어요.”

그럴 사정이라니요?”

엄마는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고모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습니다.

, 변명을 하자니까 양심이 걸려서 그러시는 것 같은데 좀 솔직히 살아요. 내가 돈 몇 푼 얻으러 오면 언제나 돈 없다는 소리만 하지 말고요.”

나는 고모가 하는 말이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우리 사정을 알지도 못하면서 엄마만 만나면 괴롭히는 고모가 미웠습니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고모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말 하지 마세요.’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고모를 바라보자 고모가 힐끗 보면서 톡 쏘는 소리를 했습니다.

넌 어린것이 왜 그런 눈으로 날 보는 거냐? 재수 없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를 피해 건넌방으로 갔습니다. 무슨 말이든지 하면 고모한테 야단맞을 것 같아서 겁이 났기 때문입니다. 내가 안 보이자 고모가 엄마를 보고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것이 나를 원망스런 눈으로 바라본다니까. 언니, 남의 자식 그렇게 키워 보았자 아무 소용없어요. 문간에서 주워 들인 애를 제 자식 보듯 애지중지하는 게 맘에 안 들어요.”

엄마가 깜짝 놀란 소리로 말했습니다.

고모! 그게 무슨 소리예요? 애 듣겠어요. 목소리 낮춰요.”

들으려면 들으라지. 내가 없는 소리 했나?”

그게 말이라고 하시는 거예요?”

말이 아니면 뭐예요. 남의 자식은 남의 자식이지. 어떤 어미가 제 자식을 길바닥에다 내버려요.”

나는 고모가 하는 말을 다 들었습니다. 그전에 느티나무 아래서 할아버지들이 하시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나는 갑자기 슬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모가 하는 말이나 할아버지가 하시던 말이나 같은 말이야. 나는 문간에서 주워 들인 아이야. 나를 낳아준 진짜 엄마는 누구일까? 어디 있을까? 엄마가 보고 싶다.’

고모가 하는 소리가 또 들렸습니다.

저런 애 하나 더 길러 봐야 소용없어요. 고아원에나 보냈어야지 왜 끼고 살아요. 자기가 낳은 자식도 제대로 못 키우면서.”

엄마가 조심스럽게 떨리는 소리로 말했습니다.

고모, 자꾸 그런 소리 하려거든 돌아가요.”

가라고 안 해도 갈 때 되면 가요. 배고픈데 뭐 먹을 거나 좀 내놓아요.”

알았어요.”

엄마가 주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나는 엄마가 못 보는 사이에 집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긴 골목길을 걸으며 생각했습니다.

고모 말대로 지금 나를 키워준 엄마가 진짜 엄마가 아니라면 진짜 엄마가 보고 싶다. 어디든 나를 낳아준 엄마가 또 있을 거야. 엄마, 어디 있어?’

나는 골목길을 빠져나와 큰길로 나섰습니다. 그리고 무작정 걸어가며 지나가는 아줌마들을 보고 저 사람이 엄마일까? 저 아줌마가 내 엄마일까? 어떤 사람이 내 엄마야? 하고 엄마를 찾았습니다.

누가 내 엄마야?’

시장 골목을 가면서 아줌마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어쩌면 내가 찾는 얼굴이 엄마일지도 몰라. 엄마가 나를 알아볼 수 있을지도 몰라. 낳아준 엄마는 꼭 있을 거야. 저쪽 동네에 있을까? 아니면 강 건너일까.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엄마 하고 불러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엄마라고 불러볼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걸어가다가 해가 졌습니다. 나는 어두운 골목길을 또 걸어가며 엄마를 불렀습니다.

엄마, 엄마 어디 있어? 엄마. 엄마.”

이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시커먼 그림자가 다가왔습니다.

13 불쌍한 할머니

아가야, 집이 어디냐?”

시커먼 차림의 할머니가 묻는 소리에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

그리고 고개를 돌려 그쪽을 보았습니다. 어둠속이라 잘 안 보이지만 할머니였습니다. 할머니가 또 물었습니다.

몇 살이냐?”

할머니가 묻는 말은 나직하고 부드러우며 착한 사람의 목소리였습니다. 나는 똑똑히 대답했습니다.

여섯 살이어요.”

여섯 살? 그런데 어디를 가는 것이냐?”

몰라요.”

모르다니, 너 집이 어딘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우리 집이 어디쯤 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집 주소를 엄마는 알지만 나는 모릅니다.

몰라요.”

집도 모른다고?”

.”

그래 어디로 가는 길이냐?”

엄마를 찾아가는 거여요.”

엄마를 잃었느냐?”

…….”

나는 대답하기가 부끄러웠습니다. 엄마를 내가 잃은 것이 아니라 엄마가 나를 버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어디 있을까 생각하는데 할머니가 또 물었습니다.

왜 말이 없어?”

몰라요.”

모르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어디로 갈 생각이냐?”

몰라요.”

집도 갈 곳도 모르고 그냥 아무데나 가는 거냐?”

, 엄마를 찾아 가는 거여요.”

이런 딱한 일이 있나. 집도 모르고 엄마도 모르면서 어쩌자는 것이야.”

할머니는 내 손을 잡으셨습니다.

오늘은 날이 어두워졌으니 우리 집으로 가자.”

나는 아무 소리도 못하고 할머니 손에 끌려 어두운 길을 걸었습니다. 할머니는 언덕길을 걸어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골목을 한참 가더니 판자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말했습니다.

들어와라.”

나는 할머니가 하라는 대로 들어갔습니다. 할머니는 부엌도 없는 좁은 집에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 집은 이렇게 생겼단다. 길바닥에서 자는 것보다는 좀 나을 게야. 오늘은 여기서 하룻밤 지내고…….”

할머니는 한쪽 구석에 사과 궤짝으로 꾸며놓은 부엌에서 라면을 끓여 주시면서 말했습니다.

오늘은 이것이라도 먹자. 배가 고프지?”

.”

정말 배도 고프고 마음은 울고 싶었습니다. 할머니도 라면을 잡수시면서 물었습니다.

맛있지?”

.”

어린 것이 어쩌자고 집을 나와 길을 잃었을꼬.”

나는 할머니 말을 들으니까 눈물이 펑 나왔습니다. 엄마를 찾으러 나왔지만 엄마는 어디 있는지 누가 내 엄마인지 모르고 있으니 그냥 울고만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낯선 할머니 앞에서 울 수도 없고 부끄럽기만 했습니다.

할머니는 아주 친절했습니다.

라면이라도 먹이고 보니 잘생긴 얼굴이로구나.”

나는 그 말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내 속을 모르시는 듯 얼굴을 쓰다듬어 주시면서 중얼거렸습니다.

우리 손자도 지금쯤은 이만하겠지. 그 어린 것이 어디서 어떻게 살아 있기나 한지…….”

나는 할머니가 하는 말을 들으니 불쌍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를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할머니도 손자가 있어요?”

있었지.”

어디 있어요?”

모른다.”

할머니는 눈물을 찔끔 흘리고 주먹으로 닦았습니다.

넌 집이 어딘지 생각이 나지 않느냐?”

나는 고개만 끄덕했습니다. 골목길을 너무 멀리 걸어왔기 때문에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

오늘은 여기서 지내고 내일 너의 집을 찾아보자.”

할머니는 요를 깔고 나를 옆에 뉘고 이불을 덮었습니다. 나는 눈을 감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에는 이런 집도 있어. 좁은 집에 부엌도 없고 방도 따로 없고 부엌이 방이고 방이 부엌인 집이야. 할머니는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 식구들도 없나. 할머니는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참 이상하고 불쌍한 사람이다. 그렇지만 나한텐 고마운 할머니야. 이 할머니가 아니었으면 난 지금 어디서 어떻게 되었을까.’

할머니는 나를 안고 곤히 주무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잠이 오지 않아서 밤을 거의 새웠습니다.

다음 날 나는 할머니를 따라 파출소로 갔습니다.

14 다시 만난 할머니

할머니는 파출소로 들어가 말했습니다.

길 잃은 아이가 있기에 내가 하루 저녁 재우고 오늘 데리고 왔어요. 이 아이 부모가 찾는 연락이 오면 집으로 갈 수 있게 해 주어요.”

그리고 할머니는 자리를 뜨려 했습니다. 그러자 경찰관 아저씨가 물었습니다.

할머니, 어디 사시는 분인지 알려주고 가셔야지요.”

그건 알아서 뭘 해요?”

아이를 찾는 부모가 안 나타난다든가 부모가 나타나 할머니를 만나보고 싶다고 하면 알려드려야지요.”

정 그렇다면 내 주소는 적어두고 가리다.”

할머니는 경찰관 아저씨한테 주소를 적어주고 문을 나서는데 경찰관 아저씨가 또 물었습니다.

할머니는 무얼 하시나요?”

부끄럽게 그런 것까지 묻지 말아요.”

그래도 좋은 일을 하셨는데 그 정도는 알아야 되는 것 아닙니까.”

저 옆에 고물상에서 일한다오.”

고물상에서 무슨 일을 하시는데요?”

꼬치고치 묻지 말아요. 날마다 리어카를 끌고 다니면서 고물을 모아다 고물상에 주고 라면 값이라도 번다우.”

경찰관 아저씨가 허리를 굽히고 대답했습니다.

할머니 고맙습니다. 이 아이 부모가 나타나서 뵙고 싶다고 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럴 것 없어요. 다만 아이 부모가 안 나타나거든 연락해 주세요.”

그렇게 하고 할머니는 갔습니다. 나는 인사도 할 줄 모르는 아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할머니한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머죽이 서서 바라만 보았습니다.

경찰아저씨는 나한테 어디서 어떻게 살았느냐 부모님은 어떤 분이냐고 불었습니다. 나는 엄마가 없다고 하려다가 대답했습니다.

우리 엄마는요, 예쁘고요 착해요.”

경찰아저씨가 또 물었습니다.

그런데 왜 집을 나온 거야?”

나는 대답하기가 싫어서 짧게 말했습니다.

대답하기 싫어요.”

녀석, 아주 똑똑하게 생겼는데……. 기다려 봐라. 여기저기 연락하여 집 나간 아이를 찾는 부모님이 있으면 만나게 해 주마.”

그렇게 말하고 나를 한쪽에 얌전히 앉아 있으라고 해 놓고 사방에 전화를 했습니다. 그러나 엄마 전화는 빨리 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엄마를 기다리며 생각했습니다.

진짜 엄마는 나를 길러준 엄마야. 나를 낳아 버린 엄마는 엄마가 아니야. 엄마가 보고 싶다. 엄마가…….’

하루가 지나고 해가 또 지려고 할 때 전화가 왔습니다. 경찰아저씨가 전화를 받으면서 나한테 물었습니다.

넌 몇 살이냐?”

여섯 살이어요.”

엄마 이름은?‘

몰라요.”

아빠 이름은?”

…….”

나는 엄마 이름도 모르지만 아빠 이름도 모릅니다. 남들이 박가라고 하는 말을 들어서 아빠가 박이라고만 알았습니다. 경찰아저씨가 또 물었습니다.

이름은?”

박문, 아니 복돼지예요.”

경찰아저씨가 저쪽에다 대고 대답했습니다.

복돼지랍니다.”

이때 경찰아저씨 중에 높은 아저씨가 말했습니다.

이봐요, 김순경. 아이를 맡아 놓고 그런 것도 자세히 안 물어보았어요?”

경찰아저씨가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죄송합니다. 어린애라…….”

높은 아저씨가 물었습니다.

저 아이 부모가 찾는 게 맞지요?”

, 맞는 것 같습니다.”

경찰아저씨는 전화에 대고 굽실거리며 말했습니다.

네네, 맞는 것 같습니다. 여기는 대현동에 있는 대현 파출소입니다.”

그리고 한참 기다리고 있을 때 엄마 아빠가 달려왔습니다. 나는 엄마를 보는 순간 가슴이 뛰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엄마, 엄마!”

나는 엄마 품에 안겨서 앙하고 울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이 엄마가 진짜 엄마야, 엄마.’

엄마도 반가워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경찰한테 물었습니다.

이 애가 어제 밤은 어떻게 지냈습니까?”

경찰아저씨가 종이쪽지를 내주며 말했습니다.

이 주소에 사시는 어떤 할머니가 길에서 방황하는 이 애를 데려다 재우고 아침에 여기다 맡기고 갔습니다.”

 

그렇게 고마운 할머니가…….”

엄마는 그 좋이 쪽지를 들고 말했습니다.

그런 분이 계셨으니…….”

엄마는 경찰아저씨들한테 인사를 하고 주소가 적힌 쪽지를 들고 할머니 집을 찾아갔습니다. 나는 아빠 손을 잡고 엄마 뒤를 따랐습니다.

엄마가 골목길을 올라가며 말했습니다.

이 동네는 독거노인이 많이 사는 것 같아요.”

아빠도 두리번거리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런 것 같소. 고마운 할머니가 어떻게 이런 동네에 사실까.”

엄마가 집을 찾았습니다. 나도 어제 본 집이라 그 집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엄마가 할머니를 불렀습니다.

주인어른 계세요?”

방이 부엌이고 부엌이 방인 문이 열리며 그 할머니가 내다보았습니다.

누구시오?”

내가 얼른 대답했습니다.

할머니 저여요.”

할머니가 반가워하면서 밖으로 나오셨습니다.

15 우리 집으로 오신 할머니

할머니는 활짝 웃으며 말했습니다.

네가 엄마를 찾았구나. 고맙기도 해라.”

그리고 할머니가 죄라도 지은 듯 겸손하게 말했습니다.

내가 사는 게 이래서 안으로 모시지는 못하겠어요. 손님이 오셨는데 어쩌나.”

엄마가 친절하게 말했습니다.

괜찮습니다. 할머니 고맙습니다.”

고맙기는…….”

할머니는 많이 수줍어했습니다. 엄마가 할머니 손을 잡으며 말했습니다.

할머니, 정말 고맙습니다. 올라오다 보니 길가에 포장마차가 있던데 거기라도 좀 같이 가실까요?”

할머니는 반갑게 대답했습니다.

그럽시다. 거기라도 가서 잠간 쉬었다 가시지요.”

그렇게 하여 포장마차 안에 네 사람이 들어갔습니다. 작은 포장마차는 아늑했습니다. 아빠가 물었습니다.

할머니는 혼자 지내시나요?”

그렇다우.”

엄마가 또 물었습니다.

지내시기 많이 불편하시지요?”

불편해도 그럭저럭 살다 보니 살만합니다.”

엄마는 아빠 귀에다 대고 무슨 말인가를 속삭였습니다. 아빠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할머니는 나를 귀엽다고 쓰다듬어 주시었습니다.

너를 또 만나니 더 반갑구나. 엄마 아빠 만났으니 좋지?”

, 할머니.”

어제 저녁에 춥지 않았어?”

안 추었어요.”

나는 할머니 눈을 들여다보며 생각했습니다.

우리 할머니 같다, 우리 할머니.’

그렇게 생각했지만 나는 할머니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를 보고 있으면 진짜 우리 할머니 같았습니다.

엄마하고 아빠는 귓속말을 한참 나눈 뒤에 엄마가 입을 열었습니다.

할머니,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제 말씀을 들어주세요.”

할머니는 무슨 말인가 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무슨 말씀이든 하시지요.”

지금까지 이렇게 사신 것 같은데 저희를 따라 가 함께 사시면 어떻겠습니까?”

할머니는 깜작 놀란 소리를 했습니다.

?”

놀라지 마시고 저희와 함께 사시자는 거예요. 우리가 사는 집은 넓고 방도 많습니다. 우리 복돼지를 도와주셨으니 우리도 갚아드려야지요. 우리하고 가족처럼 사시었으면 합니다.”

안 될 말이에요. 나 같은 사람은 지금처럼 사는 게 편합니다.”

아빠가 진지하게 말했습니다.

할머니, 우리 아이를 그렇게 따듯이 보살펴 주셨는데 어찌 우리가 가만히 있을 수 있습니까. 더구나 지금 사시는 형편을 다 보았는데…….”

할머니는 그래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공연히 내가 가서 짐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젊은 분들은 그렇게 사시면 되고 늙은이는 이제 살날도 엄마 남지 않았으니 이렇게 살아도 괜찮아요. 다 늙은 것이 왜 남의 짐이 되겠어요.”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가 사는 집에 가시면 하실 일도 많습니다. 저희를 도우시면서 사시면 됩니다. 그러면 할머니도 편하고 저희도 편합니다.”

할머니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리고 생각을 하다가 물었습니다.

내가 따라 가면 댁들을 도울 일이 있다고요?”

, 하루 종일 하실 일이 있습니다. 저희와 같이 사시어도 공짜로 사시는 건 아닙니다.”

그렇다면…….”

엄마가 좋아서 끼어들었습니다.

고마워요 할머니, 우리와 같이 살면서 복돼지 할머니 노릇도 해주시고요, 또 할 일이 많아요.”

리어카 끌고 다닐 정도의 일거리만 있다면 따라 가지요.”

그보다 더 많은 일거리가 있습니다. 같이 가세요.”

이렇게 하여 할머니는 우리 집으로 이사를 오셨습니다. 나는 할머니가 너무 좋아서 날마다 할머니만 따라 다녔습니다. 그런데 더 좋은 일이 있어요. 엄마 아빠가 교회에 나가시는데 할머니도 교회를 다니시고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 가족이 된 할머니는 주일날이면 교회를 함께 갔습니다. 우리 교회는 예쁘게 지은 지붕이 빨간 그림 같은 건물입니다.

나는 교회에 엄마를 따라 꼭꼭 가지만 아무것도 모릅니다. 왜 교회에 가야 하는지 목사님 말씀은 무슨 뜻인지 모릅니다. 요새는 할머니 손을 잡고 교회에 가는 게 즐거웠습니다. 나는 어른들을 따라 가지만 예배 시간에는 지루하고 졸려서 몸부림을 칩니다.

내가 예배시간에 어떻게 하는지 아세요?

16 꺄악!

오늘 엄마를 따라 교회에 나왔습니다. 나는 엄마와 할머니 사이에 앉았습니다. 주일마다 예배가 시작되면 나는 하품이 나오고 어깨가 근질거리고 궁둥이가 뒤틀려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몸을 뒤틀기도 하고 발바닥을 긁기도 하고 콧구멍을 파다가 옆으로 누워 다리를 의자 등받이에 올려놓고 발가락 장난도 칩니다.

오늘 기도 시간에 어른들이 모두 수그리고 있을 때 나는 고개를 쑥 빼고 이리저리 둘러보았습니다. 바로 그때 저쪽에 나보다 어린 아기가 고개를 반짝 들고 두리번거리다가 나를 보고 꺄악!’ 하고 놀란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아이 엄마는 기도하다가 놀라 아이를 쥐어박았습니다. 아이는 아팠을 텐데 울지도 못하고 고개를 쏙 집어넣었습니다. 나는 그 아이가 얼마나 아플까 생각하다가 의자 밑으로 들어가 뒤에 앉은 아줌마 발을 간질였습니다.

 아줌마는 깜짝 놀라 어마!’ 하고 발을 뿌리쳤습니다. 그 소리에 나는 아줌마보다 더 놀라 벌렁 넘어졌다가 일어났습니다. 엄마가 까불면 못 쓴다고 꾸짖었습니다. 나는 눈물을 찔끔 흘렸습니다.

목사님 말씀은 왜 그렇게 끝이 나지 않는지 예배 시간은 견디어 내기가 아주 괴로운 시간입니다. 언제나 목사님은 감사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라고 하십니다. 무엇에나 감사하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은 내가 지칠 때쯤 끝이 납니다.

나는 주일마다 어른들이 기도할 때는 고개를 높이 쳐들고 무슨 재미있는 것이 없을까 하고 두리번거리며 찾습니다.

그러나 모두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내가 도둑이 된 것 같아 얼른 고개를 수그리고 발바닥을 긁다가 무릎을 접었다 폈다 합니다.

오늘도 기도 시간에 고개를 쳐들고 둘러보다가 바로 내 뒷자리에 낯선 얼굴이 나타난 것을 발견했습니다. 나는 의자 위로 올라 눈을 감고 조용히 기도하는 그 얼굴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이마에는 주름이 많고 머리는 대머리에 눈썹은 올라갔다가 툭 꺾여 처지고 얼굴에는 점도 많고, 나이가 아주 많아 보였습니다.

몇 살일까? 왜 이렇게 늙었을까? 이름도 있을까? 꽃도 좋아할까? 왜 교회에 왔을까?’

나는 갑자기 물어 보고 싶은 게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할아버지의 팔에 기다랗게 뻗친 솜털 하나를 잡아 살짝 당겨 보았습니다.

17. 할아버지 눈 예수님 눈

대머리 할아버지는 기도하시다가 눈을 살짝 뜨고 빙긋이 웃더니 내 손을 잡아 손안에 모으고 다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나는 손을 살짝 빼고 할아버지의 기다란 눈썹을 잡아당겨 보았습니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화도 안 내고 내 손을 잡아 커다란 자기 손 안에 가두시고 얼굴 가득 웃으셨습니다.

기도가 끝났을 때 나는 할아버지 귀에다 대고 물어보았습니다.

할아버지 몇 살이야?”

할아버지는 웃는 얼굴로 입을 다문 채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나는 다시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백 살이야?”

할아버지는 고개를 가만히 옆으로 저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백 살도 넘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천 살이야?”

할아버지는 소리 없이 더 활짝 웃으시었습니다. 그리고 두 손을 쫙 펴 보이셨습니다.

열 살?”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 하셨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물었습니다.

넌 몇 살?”

여섯 살.”

 나는 얌전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를 바라보니 할아버지는 백 살로 보이지 않고 아주 멋진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동네 학교 교장 선생님보다 더 높은 사람 같아서 할아버지 귀에다 대고 가만히 말했습니다.

할아버지는 교장선생님보다 멋져요. 아주 멋져요.”

이렇게 말하고 다시 보니 정말 할아버지는 아주 멋진 얼굴이었습니다. 나는 할아버지한테 매달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할아버지 팔에 난 긴 솜털을 잡아당기며 물었습니다.

할아버지도 꽃 좋아해요?”

할아버지는 옆 사람이 모르게 개미소리 만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래.”

무슨 꽃?”

장미.”

장미가 뭐야?”

할아버지는 빙긋이 웃으며 손가락으로 입을 꼭 눌렀습니다. 나도 그건 압니다. ! 입 다물고 조용히! 하라는 것이거든요.

나는 더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내 입에다 손가락을 하나 세워 가리고 할아버지를 발라보았습니다. 할아버지는 기도할 때처럼 빙긋이 웃으며 바라보셨습니다.

나도 예쁘게 웃으며 할아버지 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할아버지 눈에는 목사님이 말씀하신 예수님 얼굴이 들어 있었습니다

 

18 얼굴로 보아서는

엄마하고 전철을 타고 친척집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나는 키가 작아서 천장 손잡이를 잡을 수 없어서 엄마 손에 매달려 다녀요. 엄마는 내 손을 잡고 경로석 쪽으로 갔습니다.

경로석에는 젊은 아줌마 둘이 앉아서 이야기를 하며 깔깔거리고 그 곁에는 아저씨가 신문을 펴들고 얼굴을 가린 채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나는 여섯 살이라 학교는 못 들어갔지만 한글은 엄마한테 배워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경로석 유리창에 그려 있는 그림과 글씨는 읽을 수 있습니다..

거기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병든 사람, 임신한 아줌마, 키가 작아서 손잡이를 잡을 수 없는 어린이가 앉는 곳이라고 되었습니다.

엄마 곁에는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가 가방을 들고 서 있고 나는 엄마 손에 매달려 흔들리고 있는데 자리에 앉은 아줌마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처럼 깔깔거렸습니다. 신문 보는 아저씨는 글씨도 읽지 않고 얼굴을 가린 채 꼼짝 않았습니다.

나는 속으로 말했습니다.

아줌마 아저씨 일어나셔요. 이 자리는 곁에 계신 할아버지와 나같이 어린이들이 앉는 자리예요.’

이렇게 생각하며 엄마를 올려다보았더니 엄마 얼굴에도

젊은 사람들이 곁에 노인이 계신 것도 안 보이나. 노인들을 위해 자리를 비워 두자는 글도 안 읽어 보았을까. 우리 아이도 다리가 아플 텐데.’

하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줌마들은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는지 손짓을 해가며 깔깔대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 곁에 신문에 얼굴을 숨기고 아무것도 못 보는 듯이 앉아 있는 아저씨는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엄마 곁에 손잡이를 잡고 서 있던 할아버지는 네 정거장 째에서 내리시면서 자리에 앉은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여기 앉은 세 분 얼굴로 보아서는 경로석에 앉을 나이가 아니신데 이렇게 만원 차에서 어린애가 서 있고 나 같은 늙은이가 서 있는데 이럴 수가 있소? 나는 내리지만 이 자리는 언제나 비워 두시오. 그래야 노인들이 마음 편이 와서 앉을 수 있을 것 아니오. 이런 것은 무례요. 아시겠소?”

할아버지가 내리시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셨습니다. 그 말이 내 마음 속에서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고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대신 하시니 고소했습니다

나는 어리기 때문에 자리에 앉고 싶어도 어른들 보고 자리 내달라고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른들이 자리를 내어주시면 고맙게 앉기는 하지만 언제나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가 한 마디 하시자 앉았던 아저씨가 벌떡 일어나 나를 앉히고 다른 쪽 칸으로 가셨습니다. 거기 그냥 서 있기가 부끄러워서였을 거예요.

그러나 젊은 아줌마들은 할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을 못 들은 듯 계속 깔깔거렸습니다. 두 아줌마가 주고받는 이야기는 우습지도 않고 좋은 이야기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옆에 노인이 있든 말든 떠들어대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내려야 할 정거장은 아직도 많아 남았는데 꼬부랑 할머니가 올라오셨습니다.

19. 나를 울린 아줌마들

할머니는 내가 앉은 경로석으로 오셨습니다. 나는 속으로 말했습니다.

아줌마들 일어나셔요. 할머니 오신 것 안 보여요?”

엄마 얼굴을 보았습니다. 엄마도 아주머니들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할머니는 키가 작아서 손잡이를 잡지 못하고 기둥을 잡으셨습니다. 그것을 보신 엄마가 나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할머니 앉으시게 네가 일어나라.”

나는 엄마 손에 잡혀 일어섰습니다. 할머니는 고맙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엄마를 보며 감사의 인사를 했습니다.

할머니가 편히 앉아 계시니 나는 다리가 아팠지만 마음은 즐거웠습니다.

다음 정거장에서 할아버지 둘이 타셨습니다. 그리고 경로석으로 다가오셨지요. 나는 이제 아줌마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만약 안 일어나면 아줌마들 일어나셔요. 노인들이 오셨어요.’ 하고 말해야지 했습니다. 그런데 깔깔대고 재미있게 이야기하던 아줌마들이 할아버지들을 보자 웃으며 말했습니다.

어르신들 이리 앉으세요. 저희가 내려앉을게요.”

그러면서 두 아줌마가 의자에서 바닥으로 내려앉았습니다. 두 아줌마는 일어서지도 않은 채 앉아서 그대로 미끄러져 바닥에 앉지 않겠어요.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바닥에 그대로 앉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 두 분은 아주 겸손하게 사양하다가 자리에 앉으셨고 두 아줌마는 앉은 채 자리를 옮겨 앉았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아줌마들한테 눈길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친절하게 말했습니다.

일어나세요. 바닥에 앉으시면 어떡해요.”

한 아줌마가 밝게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미안해요. 우리는 일어설 수 없는 장애인이에요.”

? 장애인이시라고요?”

엄마는 많이 놀라는 얼굴이었습니다. 어쩌면 엄마 마음도 지금 내 마음과 같았을 거예요.

조금 전만 해도 아줌마들의 깔깔거리는 소리와 밝은 얼굴이 얄미웠는데 갑자기 내 마음이 슬퍼졌습니다.

아줌마들 내가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얼굴만 보고 미워한 것이 잘못이었어요.’

얼굴로 보아서는 모든 것을 알 수 없다는 것도 오늘 알았습니다.

20 이름은 누가 지었을까?

집으로 돌아온 나는 갑자기 엄마한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엄마한테 물었습니다.

엄마는 뭐든지 다 알지?”

그게 무슨 말이냐?”

갑자기 물어 싶은 말이 많이 생겼어.”

그게 무슨 말이야? 무엇이든지 물어봐라. 아는 대로 말해 줄게.”

엄마, 돼지 보고 왜 돼지라고 했을까? 토끼라고 해도 될 텐데?”

그게 무슨 말이냐?”

, 개를 보고 소라고 하지 않고 왜 개라고 했을까?”

얘가 점점.”

지렁이 보고 뻐꾸기라고 하지 않고 왜 지렁이라고…….”

엄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습니다.

그게 왜 그렇게 궁금하냐?”

엄마는 그런 생각 안 해 보았어?”

그런 생각을 누가 하니? 바쁜데.”

나는 궁금한 것들이 너무 많아. 뽕나무 보고 왜 뽕나무라고 했을까?”

엄마가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뽕따던 사람이 뽕을 따다가 뽕하고 방귀를 뀌어서 뽕나무가 되었단다. 호호호.”

그랬구나, 히히히. 방귀나무네. 그럼 원숭이는 왜 말이라고 하지 않고 원숭이라고 했어?”

그건 원숭이한테 물어 봐라.”

알았어. 원숭이를 만나면 물어볼게. 그러면 소나무는 노루라고 하지 않고 왜 소나무라고 했어?”

엄마는 어이가 없어서 아무렇게나 대답했습니다.

소나무는 사람들이 소를 매어 놓아서 소나무라고 했단다.”

나는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노루는 왜 노루라고 했을까? 강아지라고 했으면 좋을 텐데, 그리고 강아지는 메뚜기라고 해도…….”

그러다 보니 엄마는 식물과 동물, 새들과 물고기 이름은 누가 어떻게 하여 지었는지가 더 궁해졌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공책을 연필이라고 하지 않고 왜 공책이라고 했을까.”

엄마도 궁금한 마음이 생겼어?”

그래, 네 말을 듣다 보니 궁금한 게 너보다 더 많다.”

엄마도 모르는 게 많은가 보지? 히히히.”

너보다 더 많다. 호호호.”

이때 할머니가 들어오셨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하는가?”

내가 말했습니다.

할머니도 모르는 문제예요.”

내가 모르다니 네가 아는 건 나도 다 안다.”

할머니, 사과를 배라고 하지 않고 왜 사과라고 했는지 아세요?”

사과는 사과고 배는 배니까 그렇게 부르지.”

틀렸어요.”

엄마가 말했습니다.

할머니 대답하지 마세요. 얘가 묻는 건 아무도 몰라요.”

21. 눈물로 밥을 해 먹고

할머니는 호기심이 생긴 듯 나를 보고 물었습니다.

네가 묻는 말을 어른이 대답할 수 없다고?”

애가 대답했습니다.

엄마는 그랬어요.”

할머니는 사랑이 가득한 눈으로 말했습니다.

엄마는 몰라서 대답을 못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아. 무엇이든 물어보렴?”

나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물었습니다.

할아버지를 왜 할머니라고 하지 않고 할아버지라고 했어요?”

글쎄다. 왜 할아버지를 할머니라고 부르지 않을까?”

할머니는 대답을 못했습니다.

할머니도 모르시지요?”

모르겠다. 다른 거 물어봐 다오.”

군인하고 사람하고 왜 달라요?”

군인이 사람이고 사람이 군인인데…….”

엄마가 끼어들었습니다.

할머니 저 애가 묻는 말은 아무도 못 당해요. 그만 하시고 저하고 살아온 이야기나 하세요.”

그러면서 엄마가 나를 밖으로 나가 놀라고 했습니다. 나는 엄마 말대로 밖으로 나왔지만 갈 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장난감을 가지고 마루에 앉아 놀았습니다. 장난감 집을 짓고 있는데 엄마 말소리가 들렸습니다.

날마다 집안 청소하고 돌보시기 힘드시지요?”

힘이 들다니요. 이렇게 사는 것만도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오.”

저도 이렇게 큰 집에는 처음 살아 보아서 손갈 데가 너무 많아 걱정을 했어요. 그런데 할머니를 만나고 이렇게 도움을 받으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다행이오. 나 같은 것을 거두어 주시고 마음도 그렇게 곱게 써주시니 내가 산 보람을 느낀다오.”

엄마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할머니는 어쩌다가 쪽방촌에 사시게 되었나요?”

다 팔자지.”

가족이 없으신가요?”

있었다오.”

그런데 왜?”

우리도 전에는 그런대로 잘 살았다오. 그런데 아들이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하여 크게 다쳐서 병원 신세를 지었는데…….”

그러셨군요.”

할머니가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습니다.

병원비가 원체 비싸서 집을 팔아도 모자라 절절 매고 있는데 아들이 그만 저 세상으로 먼저 가고 말았다오. 우리를 거지로 만들어 놓고 간 것이지……. 오갈 데가 없으니 어떡하오. 며느리와 내가 쪽방촌으로 이사를 하고 나는 길에 다니며 라면 박스며 과자 상자를 주어다 입에 풀칠을 하는데……. 임신까지 한 며느리가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오.”

엄마가 슬픈 소리로 말했습니다.

아이 딱하셔라.”

할머니가 하던 말을 계속했습니다.

쪽방에서 며느리가 사내아이를 낳았지 뭐유.”

그래서요?”

어느 날 며느리가 아이를 포대기에 싸들고 나갔다 맨몸으로 돌아오더니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울면서 말했지.”

…….”

할머니는 우시는 듯 목소리가 젖었습니다.

며늘애가 하는 말이 아이를 어떤 집 문앞에 버리고 왔다면서 자식 버린 어미가 무슨 낯으로 어머니를 모시느냐면서 친구가 있다는 다른 나라고 가겠다고……. 그리고 집을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아서 나 혼자 살고 있었다오.”

엄마도 무슨 말인가 하는 것 같은데 슬픈 목소리라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도 할머니 이야기를 듣는 동안 마음이 슬퍼졌습니다. 그렇게 불쌍한 할머니가 나를 도와주신 것입니다.

할머니가 한참 동안 입을 다물고 있다가 이상한 말을 했습니다.

22. 꼭 만나야 할 사람

내가 참 이상했어요, 아기 엄마.”

무슨 말씀인지요?”

문수를 만나던 날…….”

무슨 일이 있었나요?”

참 이상하게도 길을 잃고 헤매는 아이를 보는 순간 내 아들 어렸을 때 생각이 번개처럼 떠오르지 않겠수. 그래서 내가 다가가 말을 걸었더니 아이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또 내 아들을 닮은 거였어요.”

그러셨어요?”

지금은 세상에 없지만 우리 아들이 어렸을 때 문수를 빼닮았다고 하면 될까…….”

엄마가 놀랍다는 듯 말했습니다.

그럴 수가 있을까요? 그래서 문수를 데려가셨군요?”

그랬지요. 내 아들이 길을 잃고 헤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좁아터진 집이지만 데리고 갔다오.”

엄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하는 것 같았습니다.

참 이상도 하네요.”

할머니도 그랬습니다.

이상하지요? 참 이상해요. 저 애는…….”

엄마도 또 말을 하다가 우물거렸습니다.

그러면, 그러면 혹시……?”

할머니가 우물거리고 말했습니다.

이런 말은 참 부끄러운데……. 우리 손자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지만 올해 여섯 살쯤 되었을 거예요. 살아 있기나 한지…….”

엄마가 또 중얼거렸습니다.

여섯 살……?”

할머니가 또 지난 이야기를 하면서 울먹였습니다.

우리가 웬만큼 어렵지만 않았어도 어린 핏덩이를 남의 집 문 앞에 버리지는 않았을 거…….”

엄마가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그때 아기를 어디다 보냈는지 아시나요?”

모르지요. 며느리가 혼자 어딘가 가서…….”

엄마가 물었습니다.

어린애를 보내실 때 무슨 표적이라도 해 놓은 것도 없었나요?”

잘은 모르겠는데 생일을 적어 두었다고 하는 것 같았다오.”

생일이 언제지요?”

삼월 초하루…….”

엄마가 놀란 목소리로 다시 물었습니다.

삼월 초하루요?”

그렇다오.”

아이를 쌌던 포대기를 기억하시나요?”

내가 만든 누비포대기였는데…….”

엄마가 당황한 듯 또 물었습니다.

누비? 색깔은요?”

내가 좋아하는 분홍색이었지요. 누비이불 끝에다 내가 복자를 하나 새겨 놓았는데…….”

엄마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복자요?”

왜 그리 놀라시오?”

가만, 잠깐만 기다리세요.”

엄마는 장롱을 뒤지더니 내가 어렸을 때 덮고 자던 포대기를 들고 물었습니다.

할머니, 이 포대기를 보시면…….”

할머니가 포대기를 보시자마자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아아니! 그건……. 내가 만든 누비…….”

엄마도 우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할머니가 만드신 포대기라고요? 그럼 문수가……?”

나는 할머니와 엄마가 하는 말을 듣고 내가 누구인가를 알았습니다. 바로 내가 할머니를 만난 것입니다. 엄마가 방문을 열고나오며 나를 불렀습니다.

문수야. 방으로 들어와라.”

나는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할머니 앞으로 다가가 큰절을 올리며 할머니를 불렀습니다.

할머니…….”

할머니는 나를 품에 안고 큰소리로 우시었습니다.

내가 너를 만났구나. 너를 만났어…….”

이렇게 하여 나는 친할머니를 만났고 엄마도 할머니한테 큰절을 올리며 말했습니다.

저는 이제부터 어머니로 모시겠습니다.”

할머니도 놀라시며 벌떡 일어서서 엄마하고 맞절을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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