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코별에서 온 아이 /242매
산에 올라
어느 날 나는 구름을 떠받치고 있는 높은 산에 올라 멀리 멀리 반짝거리며 흐르는 강줄기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오!
아름다운 강!
오!
아름다운 세상!
이렇게 감탄하고 있을 때
하늘 저 끝 멀리서 파란 별 하나가 날아왔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별같이 보이던 비행체가 바로 내 곁에 내렸습니다.
내가 놀라 어리둥절한 찰나 별은 사라지고 키가 작고 눈이 동그랗고 파란 아이가 나타났습니다.
그 아이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내 곁으로 다가와 인사했습니다.
“안녕?”
그 아이는 이상한 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그 소리가 내 귀에 익숙한 말로 들렸습니다. 우리말은 아닌데 그가 하는 말을 내가 알아들을 수 있었고 내가 안녕? 하고 대답하자 싱긋 웃으며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습니다.
“당신은 지구에 태어난 지 몇 년이나 되십니까?”
키는 작았지만 어른처럼 보이는 아이는 나한테 당신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나는 기분이 묘하여 갸웃거리고 생각하다가 대답했습니다.
“오십 년이 되었소.”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살 것 같습니까?”
“길어야 오십 년……. 당신은 몇 살이시오?”
“몇 살로 보이십니까?”
“얼굴에 비해 키가 너무 작습니다. 조금 전에 별을 타고 오셨지요?”
“그렇습니다. 제가 타고 온 것은 별이 아니라 비행체입니다.”
“당신은 우주인이신가요?”
“아닙니다.”
“어느 나라 사람인가요?”
“저는 나라가 없습니다.”
“나라가 없다니 믿을 수가 없습니다.”
“나는 유니코 별에 살고 있습니다.”
“별에 살고 있다니요, 그런 별도 있습니까?”
“있습니다. 지구에서 2백억 광년 떨어진 먼 곳에 있는 별이지요.”
“2백억 광년이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정말 먼 곳에 있는 별이지요. 그 별에는 우리 가족과 이웃이 살고 있습니다.”
“그 이웃들도 지구인인가요?”
“그렇습니다.”
“어떻게 하여 지구인이 그 먼 별에 가서 살 수 있게 되었지요?”
“아주 오랜 옛날 일이지요. 그때 지구에는 지금보다 과학이 200억 배나 발달한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2백억 배라고요? 그게 가능합니까?”
“그 이상도 가능합니다.”
“언제 그 별에 가셨습니까?”
“2백억 년 전에 지구를 떠났다가 지금 왔습니다.”
“그러시면 지금 지구 나이로 2백억 살이 넘는 거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어떻게 하여 어린 모습이 그대로 있을 수가 있습니까?”
“들어보시겠습니까?”
2. 원시 과학시대
“2백억 년 전에는 지금 정도의 원시수준의 과학이 아니라 상상을 초월한 과학이 발달하여 늙지 않는 약을 만들었고 지구에 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끼리끼리 비행체를 타고 아무 별이든 가고 싶은 별나라로 이사를 했습니다.”
“별나라로 이사를 간다고요?”
“우주는 넓고 별들은 많으니까 가고 싶은 대로 가서 살면 됩니다.”
“당신 말에 따르면 200억 살이 넘은 것 같은데 자손은 얼마나 두셨습니까?”
“원시과학 수준인 지구에서는 자식을 낳고 기르지만 별나라로 간 사람들은 자식을 더 이상 낳지 않습니다.”
“그럴 수가……”
“저는 어려서 떠났기 때문에 남이 보기에는 언제나 어린이로 보이지만 나이는 많습니다. 시간을 초월한 경지에 이른 과학인들은 나이같은 것은 따지지 않습니다.”
“당신이 지구를 떠날 때는 어떠하였는지요?”
“지구과학이 가장 발달했을 때는 손으로 만든 꽃이 들에 핀 꽃보다 예뻤고 그 꽃에서 향기가 얼마나 아름답게 났던지 그 향기를 맡으며 자기가 꾸고 싶은 꿈을 꾸었고 그 꽃들은 암수가 있어서 서로 번식도 하였지요. 두 꽃이 어울리면 새로운 꽃이 생기는 것입니다. 사람이 만든 꽃이 자연이 만든 꽃보다 좋았다는 것을 생각하고 다른 것을 생각해 보시지요. 지금 사람으로는 상상도 못합니다.”
“그 말이 정말입니까?”
“정말이냐고 묻지 마십시오. 지금 사람들은 서울서 부산을 가려면 비행기를 타고 가든지 기차나 버스로 가지만 그때는 그런 기구는 원시물이라고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 먼 거리를 다녔습니까?”
“서울서 부산으로 가려면 통신함이라는 기계 속으로 들어가 스위치를 누르면 몸이 눈 깜짝할 새에 부산에 있는 통신함으로 이동합니다. 거기서 일을 보고 돌아올 때도 그렇게 왔습니다.”
“공상이 과하십니다.”
“공상이라니요? 2백억 년 동안에 지구에 변화가 몇 번이나 있었는지 아십니까?”
“지구에 무슨 변화가 있었습니까?”
“내가 지구를 떠날 무렵에는 지구에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미리 안 사람들이 모두 비행체를 타고 다른 별로 달아났습니다.”
“공상이 비약적입니다.”
“당신의 과학 수준에서 생각하며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과학보다 2백억 배를 상상이나 해 보십시오. 가능하시겠습니까? 지금 당신의 머리로는 도저히 어떤 상상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지구의 21세기 과학은 글로벌 세계를 만들었습니다.”
“과학의 발달은 사람의 머리로 따라가지 못합니다. 기초 과학은 사람이 구성하지만 과학이 과학을 발전시킬 때는 사람이 과학의 종이 되고 희생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로버트가 사람도 하지 못하는 새끼 로버트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사람을 종 으로 부리기도 합니다.”
“그렇게 발달했던 지구가 지금은 왜 이렇습니까?”
“지구가 폭발했다가 다시 엉겨 붙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모든 생명체는 다 죽고 다행히 수정되었던 생명체가 지굼의 온도와 습도가 맞을 때 동식물이 생기고 사람도 생겼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1억년 동안 생활의 변화를 했고 과학적인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그 수준이기 때문에 지금 인류의 21세기 문명이란 우리 시대의 과학수준에 비하면 원시 단계밖에 안 안 되는 것입니다.”
“꿈같은 말씀이십니다. 저는 원시 과학 단계라고 해도 좋으니 궁금한 것을 물어보겠습니다.”
3. 와! 거짓말, 거짓말
“지구 사람들이 다 별로 이사를 했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지요. 그 당시 지구 인구는 90억 명이었는데 모두가 별나라로 이사를 갔습니다.”
“별이 그렇게나 많습니까?”
“별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앞으로 얼마든지 이사를 한다 해도 별은 남습니다.”
“별이 몇 개나 될까요?”
“재미있는 숫자 크기 이야기를 해 드릴까요?”
“숫자라고요?”
“가장 작은 수가 1이지요? 그 다음이 십, 백, 천, 만, 십만, 백반, 천만, 억, 십억, 백억, 천억, 조, 십조, 백조, 천조, 경, 해, 정, 재, 극, 항하사, 아승지, 나유타, 불가사의, 무량대수입니다. 무량대수가 얼마나 크고 많은 것이겠습니까?”
“무량대수란 수량을 잴 수 없는 끝없는 숫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시간이 언제부터 시작하여 언제가 끝인지 모르듯, 공간의 시작이 어디이고 끝이 어딘지 모르는 상태가 무량대수라 하면 되겠지요. 그 속에 지구라는 작은 별이 떠돌아다니고 우리는 그 별에 기생하는 동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기생이라니요 너무 비하하십니다.”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요. 둥그런 지구에 다닥다닥 붙어살며 때리고 맞고 싸우는 꼴은 쇠똥굴이 둘이 쇠똥을 굴리며 서로 자기가 먹겠다고 싸우는 모습과 다를 바가 없지요.”
“그래도 비유가 지나치십니다. 별나라로 이사는 어떻게 갔습니까?”
“지금의 로켓과 비슷한 대형 비행체를 만들고 맘에 맞는 몇 가족이 함께 타고 갔습니다. 조금 전에 제가 타고 온 파란 빛깔의 비행체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게 비행체였다고요?”
“그렇습니다. 당신이 볼 때는 빛으로만 보였을 것입니다.”
“그것이 비행체라면 정말 믿을 수가 없습니다.”
“왜요?”
“어떻게 빛으로만 보입니까? 비행체라면 공기의 저항을 받아 날카로운 소리를 내고 바람을 일으켰을 것입니다.”
“그 점이 지구 과학의 한계입니다. 광년보다 빠른 비행체를 타면 소리도 나지 않고 말질 수도 없습니다. 2백억 년 전에는 우리도 소리가 나고 덜덜거리는 비행기를 타고 다녔지요. 그런 정도는 과학이 유치한 단계에서나 있는 일입니다. 지구 과학을 지금보다 5배만 발전시켜도 비행체가 대기권을 비행할 때 소리를 내지 않게 됩니다.”
“그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지금 지구인은 달에 가는 것만도 대단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지구 과학이 1억 배만 발달하면 달같이 작은 별에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광년보다 빠른 비행체를 타고 며칠만 가면 태양 저쪽에 있는 별나라를 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구에 사는 것이 싫어서 일찍이 비행체를 타고 떠났지요. 좁은 지구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치고받고 싸우고 이념 전쟁을 하고 골치 아프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별은 지구보다 십 배는 큰데 거기 사는 사람은 백오십 명뿐입니다.”
“백 오십 명이 죽지도 않고 아이도 낳지 않고 산단 말입니까?”
“거기 사는 사람들은 식사도 하지 않고 죽지도 않고 애도 낳지 않습니다. 일정한 사람들이 살면서 넓은 대지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즐기다가 다른 별로 놀러도 갑니다.”
“와! 거짓말도 정도껏 하셔야지 믿을 게 아닙니까?”
“그 정도라는 것이 어떤 것입니까? 지구과학이 측정할 수 있는 한계를 말씀하시나요?”
“지구과학을 너무 우습게보지 마십시오.”
“우습게 보는 게 아닙니다.”
“정말 그 비행체만 타면 이 별 저별을 돌아다닐 수 있다고요?”
“물론입니다.”
“당신들은 천사보다도 행복하신 것 같은데 과학이 발전한 속에서 천사님들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천사는 따로 있지 않습니다. 우리같이 별에 사는 사람들이 어
쩌다 지구에 다니러 왔다 가는 것이 천사로 보일 뿐입니다.”
“천사들은 사람의 마음을 알고 위로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당신들이 그런 것까지 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천사를 본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지금 지구과학의 수준으로는 최첨단 과학의 힘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쉽게 말씀해 주시지요.”
4. Χ선을 무시하는 초자연 과학
“지금 지구과학은 물질에다 물질을 통화시키지 못합니다. 쉽게 말하면 물속으로 기름을 통과시키고 싶어도 물과 기름이 혼합하여 분리가 어려워 뜻을 이루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고작 Χ선으로 물질을 통화시킨 것이 대단한 발전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물질이 물질을 그대로 통과시킬 수 있는 단계가 지금 과학의 100억배만 발전하면 가능해집니다. 그 정도인데 지구 과학의 2백억 배의 과학 발달을 상상할 수나 있나요?”
“2백억 배로 발달한 과학은 어느 정도입니까?”
“지구 사람들은 문이 닫혀 있으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과학의 발전은 문이 필요 없고 집이 필요 없는 단게에 이릅니다. 밖에서 방안으로 들어가려면 그냥 물질을 통과하여 방안으로 둘어갑니다.”
“거짓말 같습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신처럼 될 수가 있을까요? 지구에 오직 한 사람이 닫힌 문을 열지 않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는 기록이 있을 뿐입니다.”
“바로 그겁니다. 제자들이 방문을 걸어잠그고 자기들끼리 모인 자리에 예수님이 들어섰다는 것 말씀인지요?”
“그렇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과학을 발전시켜도 하나님의 오묘한 수준에까지 이르지는 못합니다. 지구 과학의 2백억 배를 발전시킨 우리지만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는 작은 장난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을 사람들은 자기들의 잣대로 재고 자기들의 생각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지만 전혀 다릅니다. 우리가 아무리 재주를 부려고 하늘의 나는 새와 물속의 각종 어족과 광야의 수없이 많은 동물과 곤충을 만들려 해도 그 단계의 기술은 없습니다. 이만하면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아시겠지요?”
“무슨 이야기인지 머리가 아픕니다.”
“머리 아플 것 하나도 없습니다. 지구 과학은 지금 이 정도가 한계일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지구는 어떤 형태로 변할는지 예축할 수 있습니까?”
“못합니다. 다만 지구를 위협하는 것은 사람이 만들어 놓은 핵무기들입니다. 누군가가 핵을 사용하여 전쟁을 일으키면 모든 나라가 핵을 집중적으로 퍼붓고 그 결과 지구는 산산조각이 나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상상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구는 사람끼리 싸우다가 폭파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대운행에 따른 화를 당할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지구는 서서히 식어가고 있습니다. 지구 온도가 올라간다고 하지만 그것은 지구를 둘러싼 대기권 안에서 사람들이 발행시킨 가스 때문이지요. 지구 속은 차츰 물의 힘에 제압당한 불이 물에 눌려 지구 속의 불이 악을 쓰고 겉으로 뿜어져 나와 화산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그 세력이 약해지고 지구는 결국 물의 정복으로 불이 꺼지면 급랭하여 얼음덩어리가 될 것입니다.”
“그런 상상은 하지 마십시오. 지구는 불로 심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불로 심판을 받는다고 해도 물을 태우지는 못합니다. 지구를 둘러싼 물이 모두 영하의 냉동상태가 되면 지상에서 수정된 모른 생명체는 얼음 속에 갇혀 생명을 유지합니다. 만약 불이 모든 것을 태워버린다면 지구의 생명체가 다 사라지고 맙니다. 지구 과학이 발견할 것 가운데 가장 이해하기 쉬운 원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무엇인가요?”
“모든 생명체는 영하로 냉각시키면 생명을 보관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와 같은 원리로 지구가 급랭하여 얼음이 되면 모든 생명체는 죽지만 수정된 씨앗은 죽지 않고 살아 있다가 지구의 변화를 따라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납니다.”
“생각을 너무 비약하십니다.”
5. 물과 불의 싸움과 생명 탄생
별에서 온 아이가 물었습니다.
“물과 불이 싸우면 어느 편이 이길 것 같습니까?”
“물이 이긴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렇지만 언뜻 보기에는 불이 물을 이긴 것으로 보이지요. 불이 공격을 하면 물은 수증기로 되어 하늘로 달아났다가 다시 물로 변하여 불을 끄려고 덤빕니다. 그러다가 불이 정말 꺼지면 물은 갑자기 냉각괴어 얼음이 되고 맙니다.”
“그런 이야기는 어린 아이도 아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나 물이 얼음 상태로 영하로 계속해서 열이 내려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제가 아는 지식으로는 물이 영하로 내려갈수록 부피가 늘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계속해서 물이 영하로 내려가면 끝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제 생각은 거기까지 미치지 못합니다.”
“얼음이 영하로 한없이 내려가 최극 단계에 이르면 얼음덩어리는 폭발하여 깨어집니다. 그리고 조각들이 날다가 서로 부딪칩니다. 그 깨진 얼음장이 강렬하게 부딪치는 순간 불이 번쩍 일어나고 그 열기로 얼음이 녹고 녹은 물은 서로 엉겨 붙어 물덩어리를 이룹니다.”
“그 말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얼음과 얼음이 부딪친다고 불이 일어난다는 것은 공상입니다.”
“생각해 보시오. 영하 몇 도라고 하는 것은 무슨 뜻인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영하라는 수치 이하에는 열이 있다는 말입니다. 영하 10도라면 10도 이하에는 열이 있는 것으로 세상 만물에 열이 없는 것이 없습니다. 나무에도 돌에도 열이 숨어 있기 때문에 그것들에 쇠나 돌 등이 부딪치면 불꽃이 일어나고 불꽃을 받은 인화불질이 있을 때는 불길로 바뀌는 것입니다.”
“아아, 생각이 납니다. 과학시간에 배웠습니다. 모든 물체에는 열이 있다는 것을 배운 생각이 납니다.”
“불과 물은 서로 원수인 것 같지만 가장 관계가 깊은 동행자입니다. 불이 신랑이라면 물은 신부 같은 것이지요. 불이 있는 곳에 열이 있고 열이 있는 곳에 숨은 물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구가 파괴되었을 때 급랭한 얼음 속에 갇힌 수정된 씨앗이 물을 만나 햇빛을 받고 적당한 온도에 이르면 생명체로 깨어납니다.”
“그럴 듯합니다.”
“사람들은 병균이라고 하는 바이러스가 왜 생기는지를 확실히 모르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인류를 공격하기 위해 새로 만든 것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그 누군가는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모든 아메바로부터 바이러스와 신생동물이 나타나는 것은 지구 위에 물과 온도의 변화에 따라 물속에 숨겨진 씨앗이 부화하는 것뿐입니다. 그 변화로 생기는 것은 사람의 지식과 능력으로는 막지 못합니다.”
“그 변화는 누가 일으키는 걸까요?”
“과학적으로 설명하면 대자연의 현상이라고 하지만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이해하기 어려움 어떤 존재의 힘을 거부할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지구인들은 지금 발전한 과학의 수준으로 신의 존재를 깔보고 그 능력을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무시합니다. 그러나 지구과학의 수억 배의 발전을 한 유니코 별에 사는 사람들은 그 과학과 자연의 중심에 존재하는 어떤 능력을 거부하지도 못하고 누구인지 알지도 못합니다. 과학의 초기단계에서는 그것을 신이라고 하면서 자기들 자로 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최첨단 과학자들은 초자연적인 것 같은 그 힘의 원심력에 굴복합니다.”
“그게 신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그 존재 앞에 무릎을 꿇고 능력을 찬양합니다.”
“당신이 사는 별의 사람들은 다 그 신을 믿는 신자들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뿐이 아니라 서로가 신 같은 조재들입니다.”
“그건 물슨 말입니까?”
“당신은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시지요?”
“당연하지요.”
“그러나 나는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다 알고 있습니다.”
“초능력 독심법을 아시나요?”
“그것도 과학의 힘에 의해 가능한 것입니다.”
“과학의 힘으로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요?”
“물론입니다. 당신은 지구 과학의 수준으로 말하지만 유니코 별에 사는 사람들은 지구 과학의 2백억 배 앞선 과학의 수준으로 보는 것입니다.”
“점을 치는 것 아닙니까?”
“아주 쉽게 말해 드리지요. 지구 사람들은 서로가 아무리 해도 한 몸으로 합칠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유니코 별의 사람들은 상대의 마음을 알고자 할 때는 바로 상대 속으로 들어갑니다.”
“네? 그것도 말이라고 하십니까?”
“자기 지식의 자로만 재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물질로 되어 있고 신경세포로 되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물질이 합치고 신경세포를 일치시키면 상대의 속으로 들어갔다 나올 수 잇는 것입니다.”
“아아! 그런 공상으로 나를 현혹하지 마십시오.”
“만약 내가 이 지구에 계속 머물러 산다면 사람들은 나를 뭐라고 하겠습니까?”
“이상한 아이라고 할 것입니다. 당신의 나이는 아무도 모르니까요.”
“그렇지요. 아주 이상한 아이로 보겠지요. 그러나 사람들은 나를 위대한 신으로 볼 것입니다.”
“그건 또 무슨 말씀인가요?”
6. 신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
“사람들은 신기한 것을 보면 먼저 신으로 생각합니다. 내가 만일 여기 사람들과 어울려 살며 그 사람이 생각하는 것을 완전히 알아맞힌다면 나를 사람으로 보지 않을 것입니다.”
“그게 가능합니까?”
“가능하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증명해 드릴까요?”
“어떻게요?”
“잠깐만 계십시오. 제가 안 보이다가 보일 것입니다.”
“네?”
그 순간에 별에서 온 아이는 어디로 갔는지 사라졌습니다. 내가 허공에다 대고 물었습니다.
“어디 계시오?”
놀라운 일입니다. 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 사람이 다시 그 자리에 나타났습니다.
“놀라셨지요?”
“놀랐습니다. 어떻게 어디를 갔다 오셨습니까?”
“나는 잠깐 사이에 당신 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왔습니다.”
“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과학이 초자연적 수준에 이르면 물질과 물질 속을 물질이 통과할 수 있다고요. 그리고 누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으면 그 사람 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옵니다.”
나는 그 어린 사람이 진짜 사람인지 귀신인지 의심이 가서 물었습니다.
“당신의 말을 믿어도 됩니까?”
“물론이지요. 내가 당신 속에 들어가서 몇 가지 알아온 것이 있습니다.”
“네?”
“당신은 여기 오시기 전에 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마을 뒷길로 하여 이 산까지 올라오는데 5시간이나 걸렸습니다.”
나는 너무 놀라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그 사람만 바라보았습니다.
“조금 전에 당신은 내가 사람인가 귀신인가 의심하시면서 겁을 내셨습니다.”
“그런 것도 아십니까?”
“누구든지 상대를 알고 싶으면 상대 속으로 들어가 모든 과거의 모든 행위와 생각들을 알아가지고 나옵니다. 때로는 들어가지 않고도 눈으로 상대의 마음을 읽습니다.”
“눈으로 마음을 읽는 것은 독심술이 아닌가요?”
“독심술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대강 짐작일 뿐이지만 내가 확인하는 관찰은 완전합니다.”
“당신은 이 지구에 살고 싶지 않습니까?”
“여기에 살 수가 없습니다. 만약 내가 이 지구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다가 상대의 마음을 꿰뚫어본다는 것을 알면 사람들은 나를 신으로 보게 되고 나는 잡스런 종교 교주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싫어도 교주가 되고 사람들의 흠모를 받을 것입니다. 과학적으로 원시과학 수준의 미개하고 유치한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다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요. 유치한 과학의 수준에 있는 지구인들은 막연하게 신을 만들고 그 앞에 절을 합니다. 과학이 최첨단으로 발전하면 종교라는 것은 없어집니다. 그 대신 과학으로 풀 수 없는 어떤 능력 앞에 머리를 숙이게 됩니다. 그건 귀신도 아니고 어떤 형상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 알 수 없는 능력 앞에서 머리를 들 수가 없습니다. 과학을 얼마나 더 발전시켜야 알 수 있는 대상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발전한 과학단계에 있으면서도 과학을 능가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느끼십니까?”
“물론지지요. 전에 말씀했던 꽃 이야기 생각나십니까? 꽃을 만들고 향기가 나게 하고 꽃끼리 결합하면 새끼 꽃이 태어나게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과학으로 만든 꽃은 자라지 않고 사람이 만든 크기에 사람이 만든 대로만 있습니다. 물론 그 단계까지만 가려도 지금 지구 과학으로는 수천 년이 걸려야 할 것입니다만.”
“그런 기술이 과연 가능할까요?”
“어떤 물체든 만들고 작동시킬 수 있는 실력을 가진 것이 우리 별로 이사한 사람들의 실력입니다. 하지만 모양은 자연이 만든 것보다 더 멋지고 그럴 듯하게 만들지만 속에 작동할 수 있는 생명을 넣을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물고기 모양을 만들고 헤엄을 치게 하고 새를 만들어 하늘을 날게 할 수는 있어도 생명을 넣을 수 없는 벽에 부딪쳤다는 것입니다. 생명까지 만들어낼 수 있다면 과학이 더 이상 발전할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7. 종교는 원시단계 과학의 오만
“생명을 부여하는 능력은 누가 발휘하는 힘입니까?”
“나도 모릅니다. 다만 당신이 이해하기 쉽게 말해 준다면 그 힘의 주인은 야훼라는 오직 한 주인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종교를 말하고자 하십니까?”
“종교란 원시 과학단계에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지만 초자연 단계의 과학은 종교가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야훼라는 말은 종교용어가 아닌가요?”
“종교를 논하고 싶어서 그런 이름을 대드린 것은 아닙니다. 우리 별 사람들은 그 힘의 원천을 야훼라고 불러왔습니다.”
“결국 종교를 말하는 것 아님니까. 저는 종교를 싫어합니다.”
“종교를 싫어한다고 하니 우리와 같은 생각입니다. 하지만 종교 이전에 과학으로도 풀어낼 수 없는 힘의 원천은 무시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종교는 유치한 과학 단계 사람들이 지키는 습관이고 오만입니다.”
“오만이라고요?”
“과학이 지금 지구 과학의 다섯 배만 발달해도 사람들은 종교를 갖지 않습니다. 오직 과학으로 해결할 수 없는 그 어떤 능력이 작용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우주를 운행하는 별들의 궤도와 이탈이 가져오는 무서운 변화를 지휘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별에서 온 아이는 멀리 하늘을 바라보며 신기한 얼굴을 지었습니다. 떠나온 별을 그리는 것 같아서 내가 물었습니다.
“가족이 사는 별이 그리우신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지구에 사는 사람들이 한심해서 그럽니다.”
“한심하다니요? 옛날에 당신들도 지구에서 떠났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과학을 그렇게 발전시켜 놓고 왜 여기를 떠나 외롭게들 살고 있습니까?”
“사람들은 과학이 발전할수록 오만해집니다. 좁은 지구에서 살기가 답답한 사람들이 비행체를 타고 구주 여행을 하기도 하지만 마음에 드는 별로 이사도 했습니다. 우리도 그 가운데 하나지만 지구로 돌아와 살고 싶어서 돌아왔을 때 지구에는 큰 사고가 나 있었습니다.”
“사고라니요?”
“과학을 경쟁적으로 발전시키다가 두 나라가 큰 싸움을 벌였습니다. 한쪽에서 핵으로 공격하자 다른 쪽에서도 핵 공격을 하자 지구가 불덩어리로 되고 모든 것이 불에 타서 왕무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구는 10억년 동안 숯덩이같이 풀 한 포기도 날 수 없는 폐허였습니다.”
“그런 사건이 일어난 지구에 사람이 어떻게 또 생겼고 초목이 생겼습니까?”
“처음에 말했지요? 물은 강한 불을 만나면 달아난다고요. 지구가 불덩어리가 되자 바다와 강물이 모두 수증기로 변하여 공중으로오 달아났다가 수억 년 세월이 흐른 뒤에 비가 되어 땅을 적시기 시작했습니다.”
“불에 다 타서 없어졌을 동식물은 어떻게 하여 생겼습니까?”
“당신은 머리가 나쁘시군요. 물이 달아날 때 물속에 수정된 온갖 생명들이 말려 올라갔고 영하 수천도의 차가운 우주에 도달한 물이 얼어 수정된 생명체를 보호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지구가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을 때 태양의 열을 받은 물속의 수정체는 생명으로 태어나 지구를 지금처럼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과학의 발달은 결국 대자연의 사랑 안에서 벗어나 저주를 받고 멸망합니다. 그런 현상이 번복하여 끝없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지구인이 더 이상 불행을 반복하고 살지 않을 길은 없나요?”
8. 과학은 인심을 메말린다
“있습니다. 대자연을 움직이는 힘의 주인인 야훼의 뜻을 온전히 따르면 화를 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야훼의 뜻에 잘 순종하다가 걸출한 인물이 나타나면 변하여 그 사람을 신으로 모시고 야훼를 잊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따르다가 전혀 다른 형태로 변하고 과학을 발전시키고 과학에 의존합니다. 쉽게 말해 사람은 대자연의 주인인 야훼의 뜻을 벗어나 사람을 믿다가 과학을 믿고 과학을 신 이상으로 믿다가 그 과학의 힘에 희생당하고 전멸합니다. 그러면 사람의 씨가 마르는 것 같지만 무한한 능력을 가진 대자연의 주인 야훼는 모든 씨앗을 물속에 간직했다가 다시 세상을 동식물로 채웁니다.”
“그런 것은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그럴 것 같습니다만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과학의 희생자가 되지 않을까요?”
“살아 있는 사람은 스스로가 신의 역할을 합니다. 자기만 믿고 남을 믿지 못합니다. 사람이 스스로 겸손해지고 남을 믿고 사랑하면 될 것이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사람이나 침승은 자기보다 약한 자를 희생시키고 자기 욕망을 채우려고 합니다. 그 욕망이 사라지지 않는 한 지구뿐 아니라 지구와 비슷한 별에 사는 모든 생물은 경쟁을 벗어나지 못하고 투쟁하다가 전멸합니다.”
“대안은 없을까요?”
“사람이 서로 사랑하지 않고 사는 한 대안은 없습니다. 이 지구는 사람들의 전쟁터만 되는 것이 아니라 물과 불의 전쟁더미 위에 사람이 사는 것도 무시하면 안 됩니다.”
“무슨 말씀인지요?”
“지구 곳곳에서 지반이 약한 곳으로 지하의 불길이 뻗쳐 올라옵니다. 그러면 지구에는 큰 지진이 일어나고 화산이 터지고 그것이 계속됩니다. 결국 화산을 내뿜던 지하의 불은 세력이 약해지고 꺼지게 됩니다. 그 순간 지구는 냉각상태로 바뀌고…….”
“그 이야기는 전에 했던 것입니다. 이야기가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원래 모든 것은 돌고 도는 것 아닙니까. 아무것도 회전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당신도 나도 그 회전 속에 끌려 돌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던 중 나와 유니코 별 사람들은 과학이 선하게 쓰여지던 시대에 지구를 벗어나 지구의 통제를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큰 우주는 쉬지 않고 움직입니다. 별들이 힘의 원천을 따라 끝없이 움직입니다.”
“공상과학 이야기 같은 말씀만 하시는군요.”
“세상 이야기를 할까요? 지구에는 뛰어난 인물들이 곳곳에 출현했다가 사라졌습니다. 1억년 전의 사건은 기억도 못하지만 수천 년전의 일은 사람들이 기억합니다.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야훼께서 예수라는 인물을 보내어 유대인이나 헬라인의 의식을 바꾸고자 했지만 사람들은 인간적인 풍습을 거부하는 예수를 죽였고 인도에서는 석가라는 인물이 나와서 미신에 사로잡힌 인도인들을 깨우치려고 신은 없다고까지 주장하며 브라만교와 힌두교를 바로 잡으려다가 그들에게 쫓기다가 돼지고기를 잘못 먹고 식중독으로 죽고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밖에도 많은 선지자들이 나왔지만 세상에 깊이 뿌리박힌 미신적인 의식은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한편 과학이 종교를 제압하려고 하지만 과학은 종교를 제압하기 전에 스르로 파멸하고 니다. 과학의 발전은 편리한 것 같지만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사람은 서로 사랑해야 하는데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과학에 의존하고 서로가 멀리하며 사랑이 식어갑니다. 이웃 사랑은 개인의 사랑이지만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나라와 나라가 서로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나는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온 것이 아닙니다. 그 동안 지구에는 어떤 변화가 있나 보려고 온 것입니다. 당신이 사는 세상 구경을 하고 싶습니다.”
“제가 안내해 드리지요.”
9. 지구인의 의심하는 습관
“당신이 안내할 것 없습니다. 당신은 나를 따라다니며 내가 하는 것만 보기 바랍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하는 동안 끼어들지 않기 바랍니다.”
“……?”
“또 아무도 나와 당신이 동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볼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당신은 나와 동행하는 동안은 유니코별 사람이 되어 엑스레이보다 정확하게 상대의 마음을 꿰뚫어볼 수 있게 됩니다.”
“……?”
“그뿐 아니라 이제부터는 나와 같이 가면 어디든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있습니다. 어떤 집 안방으로 문을 열지 않고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불가능한 말을 믿으라는 것입니까?”
“지구인에게 먼저 빼버려야 할 것이 의심하는 습관입니다. 그리고 지나치게 이기심이 심한 욕심입니다.”
“불안한데 어떻게 의심하지 않고 삽니까.”
“나를 믿으시겠습니까?”
“네.”
“이제 당신이 버리지 못하는 의심하는 습관을 빼버리겠습니다. 자, 내 손을 잡으세요.”
나는 망설이다가 한 마디 더 했습니다.
“당신 말을 정말 믿으라는 말입니까?”
“당신은 잠재 습관을 못 버리시는군요. 자, 이 손을 잡고 세상을 돌아보세요. 당신이 상상하지 못하는 것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내가 그의 손을 잡았을 때 눈앞이 바뀌었습니다. 분명히 산 정상에서 그를 만났는데 산은 간 데 없고 엉뚱한 도시가 보였습니다.
“여기가 어딥니까?”
“보시다시피 도시입니다. 나와 동행하시면서 잠잠히 따르며 약속한 대로 하시기 바랍니다.”
그와 한 곳에 이르렀을 때 하늘에서 빛줄기가 커다란 유리 집에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아주 큰 꽃집이었습니다. 각종 꽃이 만발하여 방긋거리고 어떤 꽃나무 줄기는 유리창을 기어오르고 밖으로 나가고 싶어 했습니다.
내 앞을 성큼성큼 걸어서 들어서는 로리를 본 아가씨가 물었습니다.(로리라는 이름이 이상하지요? 처음에 만났을 때 그 이름을 알지 않았나요.)
“어서오세요.”
“아가씨, 안녕?”
로리가 어른이나 되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말투가 이상하게 느껴진 아가씨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로리를 보았습니다. 그 눈빛은 어린 것이 당돌하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가씨는 자기보다 많이 어린 아이로 생각했던 듯 반말로 물었습니다.
“뭘 사러 왔니?”
로리는 아가씨가 묻는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유리창을 기어오르는 꽃만 바라보았습니다. 아가씨가 약간 불쾌한 듯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꼬마야, 무슨 꽃이 사고 싶니?”
“꽃들보다 아가씨가 더 예뻐.”
“뭐야? 아가씨라고?”
“응, 아가씨.”
“얘가, 누나라고 불러. 나를 아가씨라고?”
“난 꽃보다 아가씨라고 말하고 싶어.”
“얘가 왜 이래?”
“누나라고 부르지 않아서 그래?”
“그래, 네가 몇 살인데 날 보고 아가씨 아가씨 하니?”
“나 나이 많아.”
“뭐라고? 쬐그만 게…….”
“나 이백억 살이야.”
“뭐야? 얘가 언제 보았다고 농담을 하는 거야.”
“지금 보고 있잖아.”
“꽃 사려고 온 것 아니면 나가.”
“이 꽃들은 다 어디서 난 거야?”
“나도 몰라. 사지도 않을 거며 왜 묻니?”
“아가씨는 꽃보다 예쁜데 마음씨는 꽃 같지 않은 것 같아.”
“뭐라고?”
“꽃을 사는 사람한테는 친절하고 안 사는 사람한테는 그냥 나가라고 하면 돈 없이 꽃이 좋아서 구경하러 온 사람은 어떻게 해?”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10. 꽃을 잘못 사랑하는 사람들
나는 아가씨 말씨에 불만이 생겨서 한 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입을 열려고 하는데 로리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끼어들지 말라고 했는데!”
그 소리에 나는 흠칫 놀랐습니다. 꼬마 로리가 정말 내 속을 꿰뚫어보고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 소리를 분명히 들었는데 아가씨는 못 들은 것 같았습니다. 알아들었더라면 무슨 말이든 했을 텐데 아가씨는 가만히 있었습니다.
로리가 약을 올리는 듯한 소리로 물었습니다.
“아가씨, 꽃구경하는 사람한테 구경 값을 받으면 안 될까?”
“뭐라고?”
아가씨는 약간 토라진 소리를 했습니다. 그때 손님이 왔습니다.
“어서오세요.”
“예, 꽃들이 모두 예쁘군요.”
“무슨 꽃을 드릴까요?”
아가씨는 꽃같이 예쁜 입으로 아주 상냥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손님은 무뚝뚝하게 물었습니다.
“이건 하나에 얼마요?”
“이 꽃은 오백 원입니다.”
“저건 얼마요?”
“그 꽃은 천원이에요.”
로리가 손님한테 물었습니다.
“아저씨는 꽃을 좋아하시나요?”
손님은 역시 로리를 무시하는 눈으로 보면서 대답했습니다.
“좋아한다, 그건 왜?”
“사랑하기도 하시고요?”
“그래, 사랑하고 좋아한다. 그건 왜 묻냐?”
“아가씨는 이 꽃은 하고 말하는데 아저씨는 이건 하고 꽃을 무시하는 말로 했잖아요?”
“꽃 보고 이건 하는데 무슨 잘못이라도 있다는 거냐?”
“아가씨처럼 이 꽃은 하고 꽃을 인정하는 말을 해야 꽃도 좋아할 것 아니에에?”
“허허, 별 놈 다 보겠네. 네가 몇 살인데 어른을 훈계하러 드는 거냐?”
“나이 같은 건 안 물으시는 게 좋아요.”
“조그만 놈이 건방지군, 허허. 아가씨, 오백 원짜리로 열 송이만 주시오.”
아가씨는 꽃송이가 약간 작은 것들 열 송이를 골라 묶어 주었습니다. 손님은 건방진 모습 그대로 인사도 없이 문을 나섰습니다.
로리가 아가씨한테 말했습니다.
“아가씨, 꽃은 같은 꽃인데 어떤 것은 오백 원하고 어떤 것은 천원씩 파는 것은 불공평해요.”
아가씨는 마뜩찮은 눈빛으로 대답했습니다.
“크고 작은 것이 다르니까 그런 것 아니냐?”
“크기는 다르지만 똑같은 생명이 아닌가요?”
“별 소리를 다 하는구나. 너하고 말씨름 하고 싶지 않아. 꽃이든 뭐든 안 사가려거든 나가!”
로리는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듯 작은 잎을 펼치고 하품하는 작은 꽃잎을 가리키며 물었습니다.
“아가씨, 이 꽃은 무슨 꽃인가요?”
“이름은 알아서 뭘하게?”
“사람들은 꽃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사랑하는 법을 몰라.”
“뭐라고?”
“여기 꽃들은 모두 옥에 갇힌 죄수들 같아.”
“뭐라고?”
“저 유리창에 기어오르는 꽃을 봐. 밖으로 나가고 싶어서 몸부림을 치고 있어.”
“얘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우리가 꽃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몰라서 그러니? 이 추운 날 밖에다 내놓아 보아라 다 얼어 죽어. 꽃들이 춥지 말라고 날로도 피워주고 물도 주고 잎도 따주고 얼마나 세심히 돌봐주는지 넌 몰라.”
“그게 사랑이라고?”
“사랑이 아니면 뭐냐?”
“꽃들한테는 벌과 나비가 있어야 해. 그런데 벌도 나비도 안 주고 꽃만 피워놓는 것은 고문이야. 꽃들은 들에서 봄에 피어 여름 내내 벌들과 나비와 어울려 살아야 행복한 거야. 사람이 꽃들의 계절을 빼앗고 겨울잠을 자야 하는데 억지로 깨워놓고…….”
“너 자꾸 쓸데없는 소리 하려면 빨라 나가!”
그러면서 꽃집 아가씨는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이상하게 생기고 나이도 어린 것이 꼬박꼬박 날 보고 아가씨라고 한단 말이야. 어디서 굴러 들어온 얄미운 애가 건방진 소릴 하고 있어, 아이 왕짜증!’
로리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상하게 생기고 나이도 어린 것이 꼬박꼬박 날 보고 아가씨라고 한단 말이야. 어디서 굴러 들어온 얄미운 애가 건방진 소릴 하고 있어, 아이 왕짜증! 하고 생각하지만…….”
꽃집 아가씨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이 꼬마가 내 속을 꿰뚫어보는 거 아냐?’
로리가 대답했습니다.
“아가씨 생각이 맞아. 나는 아가씨 속을 꿰뚫어보고 있어.”
“뭐라고?”
그러면서 또 생각했습니다.
‘별일이야, 쬐그만 게 남의 속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로리가 대답했습니다.
“별일이 아니야. 내가 키는 작고 어려 보이지만 내가 누군지 알면 아가씨는 놀랄 거야.”
꽃집 아가씨는 기가 막혀서 물었습니다.
11. 날아다니는 화분
“네가 정말 남의 속을 다 들여다보고 있다는 거냐?”
“그렇다고 했는데 또 물어?”
이때 문이 열리고 얌전하게 생긴 아주머니가 들어와 꽃들을 둘러보았습니다. 아가씨가 물었습니다.
“무슨 꽃을 찾으시나요?”
“저기 있는 백합이 예쁘게 보이는데 화분을 이쪽으로 가져올 수 있을까요?”
“네. 기다리세요.”
이때 로리가 나한테 그 화분을 들어다 손님 앞에 놓으로고 손짓을 했습니다. 나는 날래게 달려가 그 화분을 들어다 손님 앞에 놓았습니다. 그 순간 아가씨도 손님도 놀라 입을 딱 벌렸습니다.
“어마! 아아! 이게 어찌 된 일이야?”
로리가 말했습니다.
“왜 그렇게 놀라시나요?”
아가씨가 모난 소리로 말했습니다.
“넌 보고도 모르겠니? 화분이 발도 없으면서 손님 앞으로 오는 거 못 보았니?”
“보았어. 손님이 그렇게 말씀하시기 때문에 내가 화분을 그리로 옮겨드린 거야.”
“뭐야? 네가 그랬다고?”
“그랬어, 아가씨.”
손님이 로리를 보고 놀란 듯 물었습니다.
“그걸 네가 정말로 그랬다고?”
“네, 제가 그랬습니다.”
“믿을 수가 없어. 어떻게 손도 안 대고 물건을 움직인다는 거야?”
“믿을 수 없으시면 시험해 보시지요.”
“절말?”
“네.”
주인 아가씨는 눈만 동그랗게 뜨고 서 있고 손님이 미소를 지으며 시험하는 말을 했습니다.
“저기 선반 위에 놓인 화분을 이리로 옮겨 볼래?”
“알았어요.”
이때 내가 잽싸게 달려가 그 선반 위에 있는 화분을 들어 내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너무 높이 있어서 내 키가 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로리를 향해 팔이 자라지 않는다고 손짓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선반 위에 있는 화분이 내가 손도 대지 않았는데 저 혼자 날개라도 달린 듯 훌쩍 내려 손님 앞으로 갔습니다.
그것을 본 손님과 아가씨가 기절할 듯 놀라 어마 소리를 연거푸 질러댔습니다. 그런데 그 두 사람보다 더 놀란 것은 나였습니다. 내 손도 닿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 화분이 날아간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놀라 무슨 말인가 하려고 입을 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로리가 손짓으로 입을 다물라고 했습니다. 내가 투명신간으로 로리 곁에 있다는 것을 모르는 두 사람은 신기해 하며 로라를 경계하는 눈으로 살폈습니다.
아가씨가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별꼴이야, 이게 어찌 된 일이야. 저 애가 사람이야 귀신이야?’
그 속을 꿰뚫어보는 로리가 대답했습니다.
“난 귀신도 아니고 유령도 아니야. 사람이야 아가씨.”
여자 손님이 놀라서 속으로 말했습니다.
“별꼴이야. 어린 것이 누나뻘이나 되는 큰 아가씨한테 꼬박꼬박 반말을 하다니!”
로리가 대답했습니다.
“제가 반말을 해도 괜찮아서 하는 소리니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아주머니.”
손님은 또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아니! 네가 내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구나.”
“맞아요. 들여다보고 있어요.”
여자 손님은 놀라서 꽃도 사지 않고 도망치듯 나가며 말꼬리를 남겼습니다.
“별꼴이야, 세상에 이상한 애도 다 있어. 무서워, 아이 무서워.”
아가씨가 말했습니다.
“넌 누구냐? 빨리 가라. 네가 이러고 있으면 너 때문에 장사도 못해 먹는다.”
“아가씨, 내 말 한 마디만 더 들어볼래?”
12. 사람은 과학의 종이 된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아가씨는 지금 지구 과학이 엄청나게 발전했다고 생각하지?”
“그걸 말이라고 하니?”
“지구 과학보다 다섯 배나 발전하면 어떤 세상이 될까?”
“내가 그런 걸 어떻게 아니?”
“아가씨는 내가 하는 말 믿을 수 있어?”
꽃집 아가씨는 속으로 말했습니다.
‘네가 우리 집에 온 뒤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 화분이 날아다녔거든, 넌 귀신이야 사람이야?’
로리가 대답했습니다.
“난 귀신도 아니고 이상한 아이도 아니야. 과학이 발전하면 나같이 되는 거야.”
“그건 무슨 소리냐?”
“내가 가까운 친구를 불러올 테니 놀라지 마.”
그러면서 나한테 손짓을 했습니다. 내가 가볍게 그들 곁으로 다가섰습니다. 꽃집 아가씨가 놀라서 멈칫하고 물러섰습니다.
“아저씨는 누구예요? 어디 있다가 나타나신 거예요?”
내가 친절히 대답했습니다.
“나는 바로 친구의 심부름을 했을 뿐입니다. 놀라지 마세요.”
“무슨 심부름을 하셨는데요?”
“화분을 이쪽으로 옮기라고 해서 옮겨주었습니다.”
“네에? 아저씨가 화분을 옮기셨다고요?”
“그래요.”
“거짓말, 믿을 수가 없어요. 아무도 없었는데 아저씨가 언제 화분을 옮겼다는 거예요?”
로리가 말했습니다.
“그것이 과학의 힘입니다.”
“무슨 과학이 투명인간을 만들어요?”
“지구 과학의 다섯 배만 발달해도 지구인들은 과학에 눌려 살아남지 못합니다. 지금도 지구인들은 전쟁과 핵의 위험 속에서 불안하게 살고 있지 않아요?”
“그렇기는 하지만 지금보다 다섯 배나 발달할 수가 있나요?”
내가 대답했습니다.
“과학은 날로 발달하기 때문에 지금보다 이백억 배나 발달할 수도 있답니다. 이 분은 어린이로 보이지만 지구 나이로 이백억 살이넘은 분입니다.”
꽃집 아가씨는 믿지 않았습니다.
“어린이를 데리고 농담하지 마세요.”
그러면서 로리한테 물었습니다.
“네가 정말 이백억 살이 넘은 아이라고?”
로리가 갑자기 존경어로 대답했습니다.
“그래요, 내 나이는 지구 나이로 따질 수가 없어요. 우리가 지구를 떠날 때가 이백억 년 전이고 지구보다 과학이 이백억 배가 발달했을 때이니 숫자로 따질 수가 없지요.”
그 순간 꽃집 아가씨는 어린 아이로만 보던 로리가 어른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갑자기 제가 말을 함부로 한 것 같네요. 용서해 주세요.”
“용서라니요. 보이는 대로 말했을 뿐이신데요.”
“이백억 년 전에 태어났다면서 어떻게 어린이 모습 그대로 있을 수 있나요?”
“사람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단계의 과학이 발달하면 사람이 과학을 좌지우지 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이 사람을 마음대로 어거합니다. 과학의 발달은 좋은 것 같지만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우리 별에 사는 사람들은 과학의 힘으로 지구를 떠났지만 지금은 과학에 의하여 나이도 더 먹을 수가 없고 키도 더 자랄 수가 없어요. 그뿐 아니라 죽고 싶은 생각이 들지도 않지만 죽겠다고 해도 죽을 수도 없지요.”
나는 로리의 말을 들으며 과학이 얼마나 발달해야 끝이 나는 걸까 생각했지만 과학의 발달은 끝이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기초과학의 끝은 결국 멸망이 기다릴 뿐입니다. 그러나 초자연과학은 사람이 과학의 힘에 이끌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가씨는 갑자기 친절해졌습니다.
“제가 차라도 대접해 드릴게요. 별나라에서 오신 손님한테 무례를 한 것 같습니다.”
로리가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이렇게 말로라도 대접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다시 가 볼 데가 있어서 이만…….”
로리가 자리를 떠나 앞장섰습니다. 나는 그 뒤를 따랐습니다.
13. 신기한 장난감
로리는 매우 빠른 속도로 걸어 우리가 처음 만났던 산 정상으로 올랐습니다. 그리고 멀리 들판과 높은 하늘을 향해 팔을 벌리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엎드려 시간을 보낸 뒤에 나를 보고 물었습니다.
“당신은 이곳에 자주 오셨지요?”
“그렇습니다. 여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산입니다. 멀리 강물이 흘러가고 그 끝에 바다가 있고 하늘은 언제나 구름이 한가롭게 흘러가고 그림 같은 세상이 마음에 듭니다.”
“당신은 아직도 내가 어린 아이로 보이시지요?”
“그렇습니다만 지금은 외모를 보지 않습니다.”
“외모를 보지 않으신다는 말씀은?”
“사람이 어리게 보인다고 다 어린 애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내가 아주 신기한 비밀을 보여드리고 싶은데 믿어보시겠습니까?”
“네, 믿지요.”
로리는 품속에서 아주 작은 리모컨 같은 것을 꺼내 보이며 말했습니다.
“이게 뭔지 아시겠습니까?”
“글쎄요 장난감 같기도 하고 텔레비전 리모컨 같기도 합니다.”
“자, 자세히 보시지요.”
나는 그 이상하게 생긴 기계를 들여다보았습니다. 거기에는 이상한 숫자 같은 것이 새겨 있고 아무것도 아닌 장난감으로만 보였습니다.
“어때요? 이해가 갑니까?”
“아무리 보아도 아이들 장난감 같아서 아무 생각도 안 납니다.”
“장난감이 맞습니다. 이 장남감은 나만 가지고 노는 기계입니다. 우리 별 어른들은 이런 건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그 장난감은 무엇에 씁니까?”
“내가 가지고 놀고 싶은 대상을 만나면 장난하는 기계입니다.”
이때 하늘 높이 비행기 한 대가 구름 위를 날고 있었습니다. 로리가 비행기를 올려다보며 말했습니다.
“저 비행기를 잘 보십시오.”
“어디가 이상합니까?”
그 순간 비행기가 크게 원을 그리며 구름 아래로 내려왔다가 곧장 높이 솟아올랐습니다.
“앗! 비행기가 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로리는 손에서 장난감이라는 물건에서 손을 돌리며 말했습니다.
“내 장난감 멋지지 않습니까?”
“뭐가 말입니까?”
“날아가던 비행기가 구름 아래로 한 바퀴 돌아 높이 치솟지 않았습니까?”
“……?”
“바로 내가 장난을 한 것입니다. 이 장난감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 작은 물건이 어떻게 큰 비행기를……?”
“비행기뿐이 아닙니다. 또 다른 것도 보시겠습니까?”
그러면서 손으로 장난감을 슬쩍 문지르자 높이 나무 숲 위로 날아가던 뻐꾸기가 방향을 선회하며 우리 곁으로 날아와 내렸습니다. 나는 꿩이 사람 곁으로 날아드는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꿩이 사람한테 날아들다니!”
로리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꿩을 돌려보내겠습니다.”
순간 꿩이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 쏜살같이 사라졌습니다.
“어떻습니까? 재미있지 않습니까?”
“그것으로 장난을 하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못 믿으신다면 한 번 더 보여드릴까요?”
“그 장난감 기계가 뭔데 날아가는 새까지 맘대로 합니까?”
“이 정도 장난감은 지구 과학의 만 배 정도밖에 발전하지 못한 수준입니다. 상상이 갑니까?”
“그게 정말 장난감입니까?”
“당신이 장난감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유니코 별에서는 정말 장난감에 지나지 않습니다.”
“날아가던 비행기를 정말 그렇게 하신 것입니까.”
“비행기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보다 더한 것도 할 수 있습니까?”
“할 수 있지요. 지구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이 장난감 하나면 무엇이든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말을 못했습니다.
“……?”
“지구과학은 전파를 활용하는 단계까지 이르러 무선으로 통신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핸드폰이 바로 그런 최첨단 기술의 결과물이지요.”
“만약 전파를 방해하는 기술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전파를 능가하는 방법은 없을 것입니다.”
“그럴까요? 꽃집에서 내가 했던 일을 생각해 보시지요.”
“뭡니까?”
“뇌파입니다.”
“네?”
“내가 말하지 말라고 지시할 때 입을 다무셨지요? 그때 내 말소리가 들렸나요?”
“소리는 안 들렸지만 마음으로 당신이 나한테 하는 말이 전달되었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전자과학이 최첨단이라고 하지만 과학의 초기단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보다 높은 단계가 있습니까?”
“있습니다. 이제 몇 가지 더 보여드리겠습니다.”
14. 새들이 하는 말을 듣는 귀
이 한 마디를 남기고 로리는 앞장서서 산을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시내 골목길을 걸어가다가 한 곳에서 새소리가 요란하게 나자 발길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저 소리 안 들립니까?”
“들립니다.”
“새 소리지요?”
“예, 새들이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새들이 노래를 부른다고요?”
“노래 소리를 모르시나요?”
“저게 새들의 노래라고요? 어디서 나는지 가 봅시다.”
로리는 새소리를 따라 부지런히 걸었습니다. 그리고 새를 파는 가게 앞에 멈추었습니다.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주인은 예쁜 새들이 든 조롱을 밖에다 걸어놓았습니다.
주둥이가 노랗고 예쁜 새가 새장에서 내다보고 소리쳤습니다.
“찌찌 빼쪽 쪼로롱 쪼로롱!”
나는 그 소리가 노래로 들렸습니다. 그러나 로리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습니다.
“새들이 저렇게 외치는 소리가 노래라고요?”
“새 소리가 귀엽지 않습니까?”
“저 새가 나를 보고 말했어요. 아저씨,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하고요.”
“네?”
“잘 들어 봐요, 새장에 갇힌 새들이 모두 제각기 자기들 말로 외치고 있어요. 모두가 살려달라는 소리예요. 저 파랑새가 뭐라고 하는지 들리지 않으세요?”
“쪼로롱 쪽쪽 쪼롱쪽쪽하는 소리가 아주 귀엽지 않습니까?”
“그 소리는 우리에게 하늘을 주세요. 사람들이 미워요. 왜 우리 하늘을 새장으로 가두는 거예요? 우리를 풀어 주어요, 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리 새들이 말하는 소리로 들으려도 들리지 않고 예쁜 노래로만 들렸습니다.
“저렇게 예쁜 소리로 노래하는데 왜 엉뚱한 생각을 하십니까?”
“사람들은 자기한테 유리한 소리로만 듣습니다. 새들이 하는 소리와 벌레들이 하는 소리를 다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과학이 발달한 나라에 산다고 하면서 기초과학도 모자라는 수준의 귀로는 대자연의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과학의 발전이 새소리나 짐승이 하는 소리까지 들어야 합니까?”
“그렇게 질문하는 당신은 그래서 자연을 정복할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저 새소리를 다 듣고 이해하면 새들을 우리의 친한 친구로 만들 수도 있고 때로는 나를 위한 군대 노릇까지도 해 줍니다.”
“그런 건 다 공상이지요.”
“공상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은 공상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므로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창의력이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없는 무엇인가를 상상으로 할 수 있다면 그 상상으로 하는 물건을 만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상상력은 바로 창작력입니다.”
이때 새집 주인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로리를 보고 물었습니다.
“너도 새를 좋아하느냐?”
“예.”
“조그만게 새보다 귀엽게 생겼구나. 그래 어떤 새가 마음에 드느냐?”
로리가 파랑새를 가리켰습니다.
“저 새가 갖고 싶어요.”
“돈은 있어?”
“없어요.”
“돈이 없으면 새도 줄 수 없지.”
“할아버지, 저 새가 하는 소리 들리세요?”
“이놈아, 새가 무슨 소리를 한다는 게야. 새들은 무두 노래를 할 뿐이다.”
“새들이 모두 하늘을 달라고 소리치고 있어요. 할아버지, 제가 새들을 하늘로 보냈다가 돌아오게 할까요?”
“그게 무슨 소리야? 새를 하늘에다 풀어 준다고?”
“네, 그 대신 새가 하늘을 마음껏 날고 돌아오게 해 드릴게요.”
“어린 녀석이 엉뚱한 짓거리를 하려 드는구나. 새들은 가두어 놓고 보아야 하는 법이야.”
이때 로리가 품에서 장난감을 꺼내어 무엇인가 주물럭거렸습니다. 그 순간 새장 문이 열리고 새들이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할아버지가 놀라 소리쳤습니다.
“이 놈아, 네가 장난을 한 게냐? 어째서 새장 문이 저절로 열린단 말이냐?”
그러는 동안 새들이 하늘을 한 바퀴 돌아 줄을 서서 새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나도 놀라고 할아버지도 놀랐습니다. 그러나 로리는 태연하게 가지고 있던 장난감을 아무데나 놓아두고 화장실로 갔습니다. 할아버지가 그 이상한 장난감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렸습니다.
“이상한 물건도 다 보겠다. 이게 뭐야? 애들 장난감 같은데 뭐에 쓰는 물건이지?”
나도 그것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것은 분명이 요술 상자 같은 것입니다. 새장의 새들도 다 그것으로 조종하여 새들을 내보냈다가 돌아오게 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할아버지는 그것을 들고 살펴보며 중얼거렸습니다.
“이상한 녀석도 다 보겠네. 새들을 가지고 노는 게 아닌가.”
할아버지는 로리가 두고 간 장난감을 주물럭거리다가 그 자리에 놓고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저 새들은 풀어놓으면 달아나는 놈들인데 돌아오다니 이상한 일이야, 이상해.”
로리가 돌아오자 할아버지가 물었습니다.
“네가 그 장난감 가지고 새들을 놀렸던 것이냐?”
15. 독심술과 과학의 차이
“아닙니다. 이 장난감은 그런데 쓰는 게 아닙니다. 저는 새들하고 대화를 했습니다.”
“뭐야? 새하고 말을 했다고?”
“네.”
“네가 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는데 무슨 말을 했다는 게야?”
“새하고 말하는 소리는 사람이 들을 수 없어요.”
“네가 새하고 어떻게 했단 말이냐?”
“제가 새들한테 말했어요. 그 문손잡이를 부리로 물고 당겨라. 그러면 문이 열린다. 나갔다가 내가 돌아오라고 하면 곧장 돌아와야 한다. 알았지? 하고요.”
“허허, 별난 녀석도 다 보았네. 새 점치는 사람이 새하고 말한다는 말은 들어보았지만 그것도 거짓말이었다는데 네가 할애비 앞에서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냐?”
할아버지는 그제야 곁에 선 나를 알아본 듯 동의를 청했습니다.
“여보시오. 그렇지 않소? 그런데 이 아이와 함께 오신 게 아니시오?”
“예, 동행입니다.”
“이 애는 누구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인데, 말하는 게 아이 같지 않아요.”
“맞습니다. 아이라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아이가 아니면 어른이란 말이오?”
“어른도 아주 굉장히 나이가 많은 어른입니다.”
“에이, 농담 마시오. 저 어린 것을…….”
그러면서 로리를 다시 뜯어보다가 물었습니다.
“너 올해 몇 살이냐?”
“이백억 살이 조금 넘었습니다.”
새장 주인은 화를 냈습니다.
“어린 것이 어른을 함부로 놀리면 못 써. 이백억 년이라니 그런 억지소리를 하다니! 버르장머리가 없군.”
“주인어른께서는 올해 몇 살이신가요?”
주인어른은 더 화를 냈습니다.
“이런 건방진 놈 보았나. 어린 것이 어른한테 몇 살이냐고?”
“저보다 나이가 이백억 년을 빼고도 삼십 살은 젊으신데…….”
“뭐야? 네가 팔십이 넘은 아이라고?”
“이백 억년을 빼고도 그렇습니다.”
“이런 싸가지 없는 놈 보았나. 어디서 돼먹지 않은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게여?”
내가 끼어들었습니다.
“주인어른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분은 어린 아이가 아닙니다. 말씀드린 대로 이백억 살이 넘은 분이십니다.”
주인이 화를 또 냈습니다.
“당신까지 나를 놀리는 게요?”
주인은 노기를 참느라고 침을 꼴깍 삼키며 속으로 말했습니다.
‘못된 놈 같으니라고, 애를 데리고 다니면서 어른답지 못하게 굴다니 이것들을 경찰에 넘겨야 정신을 차릴라나.’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로리가 대답했습니다.
“아저씨, 그렇게 하세요. 경찰에 신고하세요.”
“뭐야? 경찰에 신고하라고?”
이렇게 말하던 주인이 다시 생각했습니다.
‘가만! 저 어린 녀석이 내가 속으로 한 말을 알고 하는 소리가 아닐까?’
로리가 대답했습니다.
“맞아요. 주인어른 생각을 알고 대답했습니다.”
“뭐야? 네가 나를 놀리는 게냐?”
그러면서 또 생각했습니다.
‘요것이 독심술을 했나. 내 생각을 읽고 있지 않나. 허허.’
로리가 또 대답했습니다.
“나는 독심술 같은 건 쓰지 않아요.”
주인어른은 놀랐습니다.
“얘야, 네가 독심술도 쓰지 않으면서 내 속을 들여다본단 말이냐?”
“독심술은 과학이 발달하지 못했을 때 쓰는 거지요.”
“과학? 네가 과학을 알고 하는 소리냐?”
“주인어른은 과학이 얼마나 발달하면 남의 마음을 꿰뚫어볼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사람 맘은 못 알아보는 법이다.”
“사람 내장을 다 들여다보는 기술도 있지 않습니까?”
“엑스레이 말이냐?”
“그보다 더 발달한 것 말입니다.”
“그보다 어떻게 더 발달한다는 거냐?”
“그렇게 생각하시는 아저씨가 문제입니다. 사람은 상상으로 무엇인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면 그런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도 아셔야 합니다.”
‘요것 봐라. 어린 것이 못하는 소리가 없잖은가. 어른처럼 말하는 건방진 녀석 아닌가.’
로리가 또 대답했습니다.
“저는 건방져서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아저씨 생각이 유치해서 하는 소리였습니다.”
“유치하다고? 듣자듣자 하니 별 소리를 다 하는구나. 당장 나가라.”
“알았습니다. 나가라고 하시니 나가겠습니다. 그 대신 이것 좀 보관해 주십시오.”
그러면서 들고 있는 장난감을 내밀었습니다. 주인은 속으로 경계심을 가지고 말했습니다.
‘이게 시한폭탄이라면……?’
로리가 대답했습니다.
“시한폭탄은 아닙니다. 제가 다시 올 때까지만 보관하고 계십시오.”
주인은 마지못해 받아들었습니다. 그것을 맡긴 로리가 내 앞을 걸어 나갔습니다. 나는 그 뒤를 묵묵히 따랐습니다.
우리가 떠난 뒤 주인어른은 그 물건이 이상하게 생각되어 궁리 끝에 경찰에 신고하기로 했습니다.
16. 경찰로 넘어간 장남감
새 가게 주인이 이상하게 생긴 장난감을 주무르며 중얼거렸습니다.
“아무리 나이가 많다고 까불어도 내 보기에는 어린 애이고 그 애가 가지고 다니는 것도 장남감……. 이걸 가지고 무슨 놀이를 하는 것이기에 아무한테나 맡긴단 말인가.”
그러면서 대단한 물건이 아닐 것이라고 단정했습니다. 만약 귀한 물건이라면 이렇게 쉽게 남의 손에 맡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못 보던 이상한 물건이니 경찰에 신고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경찰에 연락을 했습니다.
신고를 받은 경찰 두 사람이 차를 몰고 와서 물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별 것도 아닙니다만 이상한 아이가 나타나 이상한 물건을 맡기고 갔는데 너무 이상해서 신고를 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이상한 장난감을 경찰한테 넘겨주었습니다. 경찰도 처음 보는 물건이라 이해할 수가 없어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아이들 장난감 같습니다. 텔레비전 리모컨도 아닌 것 같고 여기저기 점과 부호가 씌어 있는 것으로 보아 아이들 장난감 같습니다. 그러나 수상한 물건이라고 신고하셨으니 가지고 가서 전문가한테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러시지요. 그 아이가 다시 온다고 하기는 했지만 믿을 수가 없습니다. 어린 것이 엉뚱한 소리를 하고 갔으니 믿을 수가 있어야지요.”
“무슨 말을 했습니까?”
“키도 작고 이상하게 생긴 어린이인데 제 나이가 이백억 살하고도 팔십 살이라는 것입니다.”
“이백 억 살이라고요? 하하하, 어린 애한테 놀림을 당하신 것 같습니다. 이백억 살! 하하하.”
경찰은 기가 막혀서 하하거리다가 그 장난감을 가지고 경찰서로 돌아갔습니다. 간부 경찰이 출동했다가 돌아온 경찰한테 물었습니다.
“무슨 신고였나?”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린 애가 장난감을 새 가게 주인한테 주면서 까불다 간 모양입니다. 보십시오.”
경찰 간부는 그것을 받아들고 이리저리 살피면서 말했습니다.
“이게 도대체 뭔가. 장난감 치고는 상당히 단단하고 섬세하게 만들어졌는데…….”
그들 가운데 장난감 놀이를 좋아하는 젊은 경찰관이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다 말했습니다.
“저를 주어 보십시오. 제가 무슨 장난감인지 알아보겠습니다.”
“그런가? 가지고 놀던지 연구를 하든지 맘대로 해 보게.”
간부 경찰이 신출내기 젊은 경찰에게 내주었습니다. 장난감 놀이를 좋아하는 경찰이 이리저리 둘러보고 톡톡 쳐보기도 하는 중에 어디를 어떻게 했는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갑자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컴퓨터를 놓고 죄인을 조사하던 경찰들이 모두 똑같은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앗! 아앗!”
“전기가 나가서 다 망쳤다. 아아!”
“왜 갑자기 전기가 나간 거야?”
갑자기 사무실이고 가정이고 어디든 전기가 나갔습니다. 사람들은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세상은 전기에 순전히 의지하고 살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전화도 안 되고 스마트폰도 켜지지 않고 모두가 멍청해졌습니다. 달리던 차들도 전기가 꺼지고 발동이 중단되었습니다.
장난감을 가지고 주무르던 경찰도 그것을 책상 위에 팽개쳐 둔 채 시장골목으로 달려갔습니다. 시장 골목마다 캄캄했고 사람들이 에컨이 안 나온다면서 오만상을 찌푸리고 부채질을 하면서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수족관에 물고기들이 전기가 끊기자 모두 죽어서 둥둥 뜨고 냉장고마다 음식이 쉬어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사람들은 발만 동동 굴렀습니다.
“이게 어찌 된 일이야?”
“발전소에 불이라도 났나?”
“나는 망했다. 물고기가 다 죽었다.”
“전화도 안 되고 스마트폰도 먹통이야 이게 웬일이야?”
사방이 아우성으로 가득했습니다. 전기가 끊어진 빌딩마다 엘리베이터가 서고 지하철도 꼼짝 못하고 고층 아파트 사람들은 높은 계단을 끙끙거리며 걸어 내려오고 올라가기도 하지만 엘리베이터는 사람을 가둔 채 문도 열리지 않아 고생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간부 경찰이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굴려놓아 뒹구는 장난감을 들여다보며 말했습니다.
“저것이 무슨 비밀을 숨기고 있는 게 아닐까?”
17. 자력이 지구를 떠났을 때
전기가 끊어진 것은 우리나라뿐이 아니었습니다. 전 세계 모든 국가의 전기기가 마비되었습니다. 엔진이 걸리지 않아 배도 비행기도 뜨지 못하여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경찰서장이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며 말했습니다.
“이 물건에 비밀이 있는 같으니 과학기술처에 감정을 의뢰하여 보아야겠소.”
그러면서 부하 경찰을 시켜 그것을 과학기술처로 보내었습니다. 나라에서 일류 과학자로 알려진 전기 전문연구원들이 그것을 들여다보면서 제각기 한 마디씩 했습니다.
“이건 장난감 같은데 무엇에 쓰는지 모르겠습니다.”
“장난감 치고는 굉장히 정교하게 만들어졌습니다.”
“여기 이 부호들은 무엇일까요? 고대 문자 같기도 한데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글자입니다.”
“화학이나 물리학에서도 우리는 이런 부호를 쓰지 않습니다.”
“이름 없는 완구사에서 만들어 놓은 것을 아이들이 가지고 다니다 버린 것 같기도 합니다.”
“전자파로 확인을 했으면 하는데 전기가 나갔으니 그것도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저러나 전기기기들이 모두 먹통이 된 것뿐 아니라 못 쓸 애물단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분석할 수도 없고 알 길이 없는 장난감을 가지고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경찰에 돌려주어 주인을 찾아주도록 하고 다른 방도를 연구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그렇게 하여 장난감은 경찰서 경찰관이 가지고 새 가게 주인을 찾아갔습니다. 추녀 밑에 돌아가며 조롱을 주렁주렁 매달아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주인이 경찰이 찾아오자 물었습니다.
“우리 집에 전기가 나가서 에어컨도 켤 수 없습니다.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추운 나라에서 사들인 새들은 에어컨 바람을 쏘여주어야 하는데 에어컨이 고장이 나서 새들을 모두 죽일 지경입니다. 왜 전기가 나갔나요?”
“저도 모릅니다. 갑자기 모든 전기가 끊어지고 전기 기구들이 고장이 나 있습니다.”
“왜 그런지 모르십니까?”
“모르겠습니다. 이 물건을 두고 간 아이가 아직도 안 왔습니까?”
경찰은 장난감을 주인 앞에 내놓았습니다. 주인은 받아들면서 말끝을 흐렸습니다.
“그 애가 언제 온다는 약속을 한 것도 아니라…….”
경찰이 돌아가며 말했습니다.
“이 물건이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그 아이가 오면 어디다 쓰는 것인지 알아보아 주십시오. 이 따위가 세상 전기를 모두 끊어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닐 테고. 참 답답합니다.”
경찰관이 돌아가자 새 가게 주인은 장난감을 들여다보면서 중얼거렸습니다.
“이 녀석이 어디를 가서 안 오는 거야. 이것을 찾으러 올 텐데 왜 이리 늦는가.”
세상이 온통 전기기기가 무력해지자 가로등도 꺼졌고 집안 등도 꺼져서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암흑세상이 된 것을 보며 로리를 의심했습니다.
‘저 사람이 무엇인가 비밀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한 것으로 보아 사람이 할 수 없는 기적 같은 짓을 한 것으로 보면…….’
그러면서 주절거렸습니다.
“로리, 이 세상은 전기 없이는 못 사는데 전기가 다 나갔으니 어쩌지요?”
“전기가 없으면 다른 대안은 없나요?”
“전기보다 강한 에너지는 없습니다. 전 인류가 전기의 혜택으로 발전도 하고 삶의 질을 높이기도 합니다.”
로리가 잠깐 생각을 하다가 새 가게를 향해 부지런히 걸으며 중얼거렸습니다.
‘어떤 사람이 위험한 짓을 한 것 같다. 과학이 최고로 발달했다고 자랑하면서 전기 작동이 멈추자 모두 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가.’
로리와 내가 새 가게에 도착했을 때 새장마다 목이 터져라 부르짖던 새들의 소리가 그치고 고요했습니다. 주인어른이 두 사람이 나타나자 반겼습니다.
“어서들 오시오. 어디를 갔다 오십니까?”
로리가 대답했습니다.
“세상 구경을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전기가 나가서 사람들이 모두 당황해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주인어른은 로리를 역시 어린애로 얕잡아보고 말했습니다.
“말도 마라, 갑자기 온 나라의 전기가 끊어져서 날리도 이런 날 리가 없다. 넌 이걸 찾으러 온 것이냐?”
그러면서 장난감을 내주었습니다. 로리는 받아들고 빙긋이 웃었습니다. 내가 그 모습을 보고 궁금하여 물었습니다.
“왜 웃으시오?”
“아무것도 아닙니다. 장난감이 장난을 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사람들은 자력 앞에 참 무력합니다. 그까짓 전기 하나 나갔다고 온 나라가 이 지경이 됩니까?”
나는 어이가 없어서 로리를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그까짓 거라니 전기 자력이 지구를 움직이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단 말인가.’
로리가 내 속을 들여다보고 대답했습니다.
“지구가 전기 자력에 의해 살아 움직이는 것은 맞지요. 지구인들이 그래서 미개한 과학 수준에 있다는 말입니다. 자력이 지구를 떠날 때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했어야 하는데 그 대책은 아직 세우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자력이 지구를 떠나다니 그런 말이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전기 없는 수준의 에너지를 갖기는 불가능합니다.”
“과학의 발전이 전기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말씀입니까?”
18. 다시 살아난 전기기들
“그렇습니다. 과학의 발전 에너지는 오직 전기뿐입니다.”
“지구의 자력이 다른 별의 영향을 받아 다른 별로 끌려가 없어지고 나면 어떻게 될까요?”
“그런 불가능한 상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우주 속에서 천체들이 어떤 경쟁을 하고 있는지 아시나요?”
“별들이 경쟁을 하다니요 말이 됩니까?”
“지구는 언제까지나 살아 있을 것 같습니까?”
“네? 지구가 살아 있다니요? 식물입니까 동물입니까?”
“지구는 살아 있는 생명체입니다. 지구 중심에 있는 심장에서 불이 활동함으로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이 살 수 있지만 그 불이 꺼지면 지구는 죽고 동식물도 다 죽습니다.”
“지구가 죽는다는 말은 처음 들어 봅니다.”
“그렇겠지요. 지구인은 잠깐 살다가 지구 속으로 도로 들어가니 무엇을 알겠습니까. 지구 중심에서 펄펄 끓고 있는 심장의 열기가 지구 표면에 열을 공급하여 주어 모든 동식물이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지구 중심의 불이 꺼지는 순간 지구는 죽은 떠돌이별이 되는 것입니다. 행성은 자기(磁氣)를 다른 별에 빼앗기고 죽은 별이 되어 중심을 잃고 방황하는 것입니다. 지구에 열이 사라지면 지구를 싸고 있는 물이 모두 얼어버립니다. 그리고 살아 있는 것들은 다 죽고 지구가 냉각되는 순간 수정된 동물의 난자와 정자, 식물의 수정된 씨앗만 영하 수백도의 얼음 속에 갇힌 채 생명을 유지합니다.”
“공상의 비약이 심하십니다.”
“공상이라니요? 사람들은 억년이나 백억 년 전 역사를 모릅니다. 인류가 만들어 놓은 기록도 지구가 죽을 때 같이 사라졌다가 사람이 부화하여 생기고 발전하면 또 역사를 만들고 그 다음 과학을 극도로 발전시켜 공멸하여 없어집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는 지구가 죽었다 살았다 하는 동안 모든 기록은 사라지기 때문에 불과 1억년 정도도 못 되는 짧은 기간에 존재하는 역사만 인정하고 지식으로 평가하고 사니까요.”
“로리씨, 지금 일어난 전기사고는 어떤 것인가요?”
“지금 인간의 과학 수준으로는 해결하지 못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곁에서 두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있던 가게 주인어른이 끼어들었습니다.
“어른들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어찌 저 어린 것한테 물으시오?”
내가 반문했습니다.
“주인어른은 우리가 나누는 말을 다 들으셨나요?”
“듣기는 했지만 그건 어린 애들이나 하는 봄꿈같이 유치한 이야기라 흘려버렸습니다.”
“주인어른님은 로리씨를 어린 아이로만 보시는데 다시 보셔야 합니다.”
“다시 봐도 어린애가 틀림없어요. 제 말로는 이백억 살 어쩌고 하는데 사람이 그렇게 오래 살았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공연히 어린 것이 하는 말에 어른답지 못하게 끌려다니시면 안 됩니다.”
“어른께서는 지구가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말을 못 들으셨습니까?”
“말이야 그럴 듯하지만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오? 지구가 살았다 죽었다 한다니 어른답지 못하게 쯔쯔!”
“어떻게 해야 로리씨가 우리보다 엄청나게 높은 나이를 가진 분으로 인정하겠습니까?”
“글쎄올시다. 내가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면 모를까 나보다 어린 아이를 어른으로 대접할 수는 없지요.”
로리가 대답하듯 끼어들었습니다.
“어른님 말씀이 맞습니다. 어른께서 보아온 인간 수명에 대한 지식이 백 년 이내이니 어찌 하겠습니까. 나를 어린애로 보셔도 좋습니다. 우리 유니코별에서는 어차피 어린애 취급을 받고 사는데 여기라고 더 다를 것이 있겠습니까.”
나는 이 말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나이는 분명히 우리보다 수백 억 살 위인 것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말했습니다.
“주인어른께서는 아무리 뭇 믿으시겠다고 해도 믿으셔야 합니다. 새장의 새들은 내보냈다가 돌아오게 하는 것을 보지지 않았습니까?”
“그거야……. 마술사라면 그럴 수도 있지요.”
“주인어른이 한번 해 보시겠습니까?”
주인이 말을 못하고 어물거리는 동안 나는 화분이 저절로 옮겨졌던 기적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내 팔이 닿지 않아 망설일 때 나보다 높이 놓였던 화분이 저절로 내려오게 한 것도 로리씨의 능력이라고 믿기 때문에 한 가지 부탁을 했습니다.
“로리씨, 전기가 들어올 수 있도록 해 주시지요.”
주인어른이 비웃는 소리를 했습니다.
“허허, 별 소리를 다 하시오. 우리도 못하는 것을 어린 것한테 부탁하다니! 한심하오.”
로리가 크게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어른님을 위해서는 안 하고 싶지만 내 친구 분이 나를 믿어주시니 그 믿음을 보고 믿음이 헛되지 않게 해 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감격해서 말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로리님.”
참 이상한 일입니다. 내가 감사의 말을 하는 순간 꺼졌던 등불이 켜지고 죽은 듯 닫혔던 에어컨이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새 가게 주인어른은 로리를 믿지 못하고 한 마디 했습니다.
“우연의 일치야, 우연.”
19. 비밀이 숨은 눈빛
전기가 나갔을 때는 조용하던 새장이 갑자기 활기를 띠기 시작했습니다. 새장마다 쪼로롱 쪽쪽, 삐꾸 끼꾸 꺄아악 꺅!
그런데 에어컨 바람을 쏘이고도 깨어나지 못하는 새들이 있었습니다. 한대지방에서 온 새들은 더위를 이기지 못하여 죽은 것입니다. 주인이 볼 멘 소리로 불만했습니다.
“어떤 놈들이 장난을 하는 거야. 남의 사업 망쳐 놓고 이게 뭐야. 비싼 북극 새들이 다 죽었으니 어쩌면 좋은가, 아아! 난 망했다 망했어.”
로리가 새들을 향해 말했습니다.
“얘들아, 그만 자고 일어나라, 일어나!”
주인이 비웃는 소리를 했습니다.
“이놈아, 죽은 새들한테 그만 일어나라고? 허허, 어린 것이 뭘 몰라 허허허.”
그러나 로라는 아무렇지도 않게 새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새들이 모두 날개를 벌려 기지개를 켜고 깨어났습니다. 그것을 본 주인이 엉뚱한 소리를 했습니다.
“하하, 이놈들이 모두 자고 있었구나. 내가 그것도 모르고 죽은 줄 알았지 않은가. 하하하.”
주인은 로리를 향해 말했습니다.
“꼬마야, 넌 어떻게 새들이 자는 줄을 알았더냐? 난 저것들이 다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네가 잠을 깨워 주었구나.”
나는 보기 답답했습니다. 주인이 죽은 새들을 살려내는 로리의 능력을 알지 못하고 딴 소리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들으라는 소리로 물었습니다.
“로리씨, 어떻게 새들을 살리셨습니까?”
“새들은 죽은 것이 아니라 모두 자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도 새들은 죽었었습니다.”
“죽음을 결정짓는 것은 열입니다. 새들이 죽은 지 얼 마 안 되기 때문에 그 몸에 열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럴 때는 뇌파를 이용하여 자극을 주고 명령을 하면 깨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뇌파라고요? 그게 뭡니까?”
“자기에 따른 전파가 있고 생명체에는 뇌파가 있습니다. 기초 과학단계에서는 자기를 이용하여 전기를 일으키고 전파를 사용할 줄 알지만 더 발전하면 전파를 능가하는 뇌파를 사용하여 무엇이든지 해결합니다.”
“이해가 안 갑니다.”
“그것을 이해할 과학단계에 있지 않으시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새 가게 주인이 듣고 있다가 한 마디 했습니다.
“꼬마야, 네가 자는 새들을 뇌파라는 것으로 깨운 것이냐?”
“그렇습니다.”
주인은 갑자기 로라 눈동자를 뚫어져라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얼굴은 어린애인데 눈빛에 숨은 빛이…….”
그러다가 그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어른님, 용서하십시오. 제가 눈이 멀어서 어른님을 몰라보았습니다.”
로리가 태연히 말했습니다.
“주인어른 왜 이러십니까? 저는 아이입니다.”
“아닙니까. 아니십니다. 어린이가 아니십니다.”
내가 물었습니다.
“어린 꼬마라고 하시다가 왜 갑자기 이러십니까?”
주인어른이 정색을 하고 대답했습니다.
“내가 나이만 먹고 헛살았소. 겉 사람만 보고 판단했었는데 저 어른을 잘 본 결과는 속사람이 따로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신도 말했듯이 저 어린이 모습의 어른은 이백억 살이 넘는 어른임을 알았습니다.”
로리가 어린아이 얼굴을 하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다행입니다. 빛을 보고 빛의 비밀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깨달으신 것입니다.”
그 말에 나는 움찔했습니다. 그 동안 로리와 함께 다니면서도 눈빛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많은 사람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거기 숨은 역사가 보이는 것입니다. 늙은이를 함부로 보아온 내가 얼마나 무모한 사람이었나를 생각했습니다. 노인의 희미해진 눈빛 속에 숨은 깊은 비밀을 읽을 수 있는 눈이 없었던 것입니다.
노인들의 희미한 눈빛 속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은 소리가 아니라 눈빛 속에 어린 뇌파로 읽는 것입니다. 그 비밀을 읽을 수 있는 눈은 교만해서도 안 되고 자만해서도 안 됩니다. 겸손과 온유로만 읽을 수 있는 것입니다.
로리가 말했습니다.
“이제 지구를 떠나야겠습니다.”
“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세상 구경을 다 했으니 돌아가야지요.”
20. 마술 같은 과학기술
나는 갑자기 보물을 강물에 빠뜨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아직도 보실 것이 많은데 가시면 안 됩니다.”
“더 둘러본들 뭘 더 보겠습니까?”
“그래도…….”
“내 나이를 알아본 노인도 있으니 더 머물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과학이 고도로 발달한 사람을 만나면 신으로 생각하는 머릇이 있습니다. 내가 더 이상 머물면 저 주인어른이 나를 신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우리로서는 신으로 생각해도 좋을만하지 않은가요? 우리 지능으로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시지 않습니까.”
로리는 들고 있는 장난감을 보여주며 말했습니다.
“이것이 하는 것일 뿐 내 능력으로 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것이 그렇게 대단한 물건입니까?”
“그렇지요. 이 작은 것이 지구 과학의 이백 억 배의 성능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것으로 또 어떤 기능을 보여주실 수 있습니까?”
“이 도시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 어떤 것입니까?”
“저기 고개 너머 이백 층 건물이 가장 높습니다.”
“그리로 갑시다. 잠깐 눈을 감고 내가 뜨라고 할 때 뜨십시오.”
그는 내 손을 잡고 잠깐 있다가 말했습니다.
“이제 눈을 뜨십시오.”
나는 눈을 뜨고 깜짝 놀랐습니다. 어느 사이에 우리는 빌딩 가장 높은 헬리콥터 비행장에 서 있었습니다.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이 장난감이라는 기구의 성능을 보여드린 것입니다.”
“참 신기합니다. 그 기계의 성능이 그렇게 대단합니까?”
“당신이 생각하는 것의 이백 억 배의 성능이 있으니 당신의 머리로 기능을 평가하려 하지 마십시오.”
나는 기가 차서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로리가 빌딩 아래 멀리 넓은 도로를 달리는 차를 내려다보면서 말했습니다.
“저기 빨간 차를 보시지요. 다른 차들은 평균 백 킬로로 달리고 있는데 저 차는 이백 킬로로 달리고 있습니다.”
내려다보니 빨간 차가 다른 차들 사이를 이리저리 누비고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 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얄미운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로리가 말했습니다.
“저 빨간 차가 어떻게 되는지 잘 보십시오.”
로리는 아무 몸짓이나 말도 하지 않는데 빨간 자동차가 갑지가 속력이 떨어져 다른 차보다 느리게 가더니 길가로 가서 섰습니다. 운전하던 사람이 내려서 차를 여기저기 들여다보았지만 아무 데도 고장 난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다시 엔진을 켰습니다. 하지만 차는 꿈쩍도 않았습니다. 운전자는 다시 내려와 차바퀴를 툭툭 차고 보닛을 열었다 닫았다 하다가 어이가 없다는 듯 허리에 손을 얹고 차를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도 타지 않은 차가 혼자 스르르 굴러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차주가 놀라서 차를 따라 뛰었습니다.
차는 참시 갓길을 느리게 달리다가 멈췄습니다. 운전자는 다시 차에 올라 천천히 몰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궁금한 생각에 입을 열었습니다.
“로리씨, 저 차가 왜 저 짓을 합니까?”
“내가 그랬지요.”
“네?”
“운전 습관이 나쁜 버릇을 고쳐놓은 것입니다.”
“정말입니까? 로리씨는 아무 손도 쓰지 않고 가만히 계시지 않았습니까?”
“이 장난감이라고 하는 기계와 나는 뇌파로 의견을 교환합니다. 내가 저 차를 이렇게 하여야 하겠다고 하면 그렇게 만들어 줍니다.”
“그게 정말 가능할까요?”
“당신들이 생각하는 과학 수준으로는 불가능하지요. 그러나 이 기계와 내가 의견만 나누면 무엇이든지 가능합니다.”
“참 믿을 수가 없습니다. 너무 신기합니다.”
“기계만 가지고 노는 게 아닙니다. 사람 마음까지도 움직여 놓습니다.”
“……?”
“새 가게 노인한테 다시 가 볼까요?”
“뭐 더 보여주실 것이 있습니까?”
“보여드리지요.”
21. 친구여 안녕!
눈 깜짝할 사이에 온다 간다 말도 없이 사라졌던 로리가 나를 데리고 다시 나타나자 주인 영감은 감동한 듯 말했습니다.
“도사 도령님 또 오셨군요. 감사합니다.”
그러면서 로리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로리가 말했습니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저는 도사도 아니고 신도 아닙니다. 보시다시피 어린애입니다.”
“아니십니다. 그러지 마시고 우리 집으로 가시지요. 제가 정성껏 모시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여 나는 로리와 주인어른 댁으로 갔습니다. 주인이 대문을 열고 들어서며 소리쳤습니다.
“여보, 귀한 손님이 오셨어요. 나와 보시오!”
여보라는 안주인은 나타나지 않고 넓적한 코에 눈이 툭 튀어나온 개구리 같은 땅딸보 청년이 먼저 나왔습니다.
“누가 왔다고, 아부지?”
주인어른이 로라를 가리키며 대답했습니다.
“이 어른이시다.”
땅딸보가 갑자기 개구리 소리 만큼이나 시끄러운 소리로 웃어댔습니다.
“이히히히, 아부지 치매야? 이 꼬마가 어른이라고 이히히.”
주인어른이 민망한 듯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도사님, 노여워 마십시오. 제 자식이지만 좀 덜 떨어져서 그렇습니다.”
땅딸보가 또 웃어댔습니다.
“히히히, 우리 아부지 웃겼어. 땅꼬마 보고 도사라고? 이히히히.”
주인어른이 노기 띤 소리로 말했습니다.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하는 거냐? 귀한 손님한테!”
“요렇게 작은 애를 도사 귀한 손님이라고? 히히히.”
그러면서 로리 앞으로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습니다.
“꼬마야, 몇 살이냐? 일곱 살? 히히히.”
로리는 정말 아이처럼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땅딸보는 신기하다는 듯 지껄였습니다.
“내가 맞혔지? 정말 일곱 살 맞지? 히히히.”
그리고 주인영감한테 말했습니다.
“아부지, 내가 이 애 나이 맞추었지? 일곱 살이면 나보다 스무 살 하고도 두 살이나 어린애야.”
그러면서 눈길을 로리한테 돌렸습니다.
“네가 도사라고? 히히히 네가 도사면 나는 대장이다. 히히히. 넌 도사 아니지?”
“네, 도사가 아닙니다.”
“아부지! 얘도 제가 도사가 아니라는데 아부지만 도사라고 하는 게 웃겼어 히히히.”
주인 영감이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이 덜 떨어진 아이 말은 못 들은 것으로 하시고 안방으로 드시지요.”
내가 앞장서서 안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로리도 따라 들어왔습니다. 영감님 아들이 따라 들어오면서 엉뚱한 소리를 했습니다.
“나 장가 아직 안 갔다. 그렇지만 너보다는 어른이야.”
그러면서 나를 향해 물었습니다.
“그렇지 아저씨?”
나한테 동의하라는 눈빛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나는 동의할 수가 없었습니다. 로라는 도사도 아니지만 이 세상에서 당할 자가 없는 굉장한 과학기술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주인영감 아들은 또 이상한 짓을 했습니다. 요를 가져다 방에 깔아놓으면서 윷놀이를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주인 영감은 기가 막혀 어설피 입을 열었습니다.
“도사님, 저 애가 저렇습니다. 서른 살이 다 되어 가는데 어린애짓을 하다가 어른 흉내를 내는가 하면 밤중에는 미친 사람처럼 돌아다니면서 늑대 짖는 소리를 합니다. 미친 것도 아니고 정신병자도 아닌데 이 애비 속을 날마다 뒤집어 놓습니다. 어쩌면 좋겠습니까?”
나는 로리가 무슨 대안을 내놓지 않을까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로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습니다.
“병원에 가 보셨습니까?”
“병원뿐 아니라 굿도 해 보고 별짓을 다 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저도 능력이 없어서 도와드릴 수가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아무 심려 마시고 편히 쉬었다가 가십시오.”
안주인이 다과상을 차려왔습니다. 주인 아들이 상 앞으로 바짝 다가앉더니 이것저것 마구 집어 먹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로리는 차만 마시고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주인 아들과 눈을 맞추었습니다. 잠깐 사이에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주인 아들이 갑자기 로리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습니다.
“어른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이러지 마시고 일어서십시오.”
주인 아들은 아주 짧은 순간에 다른 사람이 된 것입니다. 주인어른도 그 곁에 엎드렸습니다. 그 순간 나는 로리가 신이 아닌가 생각하고 경외심마저 들었습니다. 청년이 또 숙이고 말했습니다.
“도사님 감사합니다.”
“저는 도사가 아닙니다. 이러지 마십시오.”
로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도 없이 길로 나섰습니다. 내가 따르며 물었습니다.
“그 청년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 사람은 지구 사람들이 장차 보여줄 추한 모습이었습니다. 섣부른 과학과 의학에 의존하다가 모두 저 꼴이 되고 정상적인 사람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모두가 욕심에 차 있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사랑하는 법을 모릅니다.”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가만 두어도 잘 자라고 꽃피고 열매 맺을 꽃들을 사랑한다는 구실로 가두어 놓고 장사를 하고 하늘을 날아다녀야 할 새들을 새장에 가두어 놓고 사랑한다고 하면서 장사를 합니다. 전혀 사랑을 잘못하고 있습니다. 그 두 가지만 보아도 전체 지구인이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고 자기 욕심을 채우기에만 매달린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이억 년 전 내가 어렸을 때 지구는 이런 지구가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지구인이 로리씨 때같이 될 수 있을까요?”
“고칠 수 없을 정도로 이미 잘못 되었습니다. 나는 여기서 더 머물 수가 없습니다. 당신서부터 나를 발전한 과학인으로 보지 않고 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숨긴 마음이 부끄러워졌습니다.
“부끄럽습니다. 내 생각과는 다른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신도 나와 함께 오래 있으면 과학의 힘보다 미신적인 생각으로 나를 신쯤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 단계가 오기 전에 떠나야 합니다. 잠간 눈을 감으십시오.”
그의 말대로 나는 눈을 감았습니다. 그리고 눈을 뜨라고 했을 때는 내가 처음 올랐던 높은 산 정상에 있었습니다. 로리가 말했습니다.
“나는 뉴니코 별에서 영원히 살겠지만 당신은 지구에서 오십 년을 못 살고 지구 흙속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영원히 다시 만나지 못하겠지만 내 친구 지구인의 하나로 기억하겠습니다.”
로리가 장난감 같은 기계를 작동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 파란 빛이 멀리서 다가와 반짝하는 사이 내 곁을 스치고 지나고 로리는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