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손
1. 이상한 목소리
높은 산 위에 오른 남수 이마에서는 땀이 비 오듯 흘러 내렸습니다.
“휴우! 다 올랐다.”
산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모두 발아래 아득히 펼쳐져 있고 구름도 저 아래 산허리를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내가 구름보다 높이 올라온 거야. 야아, 호오!”
이때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이마의 땀을 핥고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바람결에 큰 산이 움직이는 것 같은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남수야아아!”
“네에?”
남수는 고개를 돌려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또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남수야아!”
“누구세요?”
“나다.”
“네?”
남수는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멀리 구름이 흘러가고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 땀으로 젖은 옷을 말려 줄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또 이상한 소리가 물었습니다.
“시원하냐?”
“네, 시원합니다. 그런데 누구신가요?”
“차차 알게 될 것이니라. 자꾸 묻지 말거라.”
“어디서 말씀하시는지 안 보입니다.”
“보려고 할 것도 없다. 차차 알게 될 것이니라.”
남수는 자리를 옮겨 큰 바위 위로 가 앉았습니다.
“시원하냐?”
“네, 시원합니다. 그런데……”
“그런데 뭐냐? 또 누구냐고 묻고 싶은 거냐?”
“네.”
“나를 따라 오너라.”
갑자기 큰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남수는 바람에 날려 바위 위에서 공중으로 부웅 떠올랐습니다.
“아! 무서워요.”
“염려할 것 없다.”
잠깐 사이에 남수는 바람에 실려 지나가는 구름 위에 올랐습니다.
“구름을 밟고 섰거라.”
“누구세요?”
“또 물으면 널 구름 밑으로 떨어뜨리겠다.”
“네?”
커다란 여객기가 구름 저 아래로 부지런히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남수는 멀리 보이는 강과 바다와 산과 들을 내려다보며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건 꿈이야 꿈!”
“꿈이 아니니라. 너는 나하고 다니며 세상 구경을 하도록 하자.”
2. 꽃들의 가절한 소원
남수는 구름을 타고 가볍게 초원 가운데로 내렸습니다. 사방에 만발한 꽃들이 방긋방긋 웃으면서 손짓을 했습니다.
“이리 오세요.”
“내 곁으로 오세요.”
여기저기서 꽃들이 부르는 소리가 노래처럼 들려옵니다. 남수는 꽃들이 하는 소리에 놀랐습니다.
“어? 이상하다. 꽃들이 말을 하잖아?”
이때 그 우렁우렁한 목소리를 가진 이상한 아저씨가 물었습니다.
“어떠냐? 꽃들이 모두 예쁘지 않으냐?”
“네.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아저씨는 어디 계신가요?”
“여기 있다.”
오른쪽에서 소리가 나서 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왼쪽에서 같은 소리가 나고 또 돌아보면 뒤에서 납니다. 뱅글뱅글 돌아보아도 아무도 없는데 소리는 분명하게 들렸습니다.
“여기가 어디에요?”
“네 코 앞에 있고 네 귀 속에 있다.”
“아저씨 무서워요.”
“무서워할 것 없다. 너는 나를 친구로 생각하면 된다.”
이때 꽃들이 한 목소리로 불렀습니다.
“이리 와요. 이리 오세요.”
남수는 꽃들 앞으로 가서 인사했습니다,
“안녕?”
“와아! 우리 천사가 왔다.”
꽃들이 갑자기 좋아하며 반겼습니다. 이때 이상한 아저씨가 물었습니다.
“저 애들이 왜 너를 반가워하는지 알겠느냐?”
“모르겠어요. 그런데 아저씨는 누구시죠?”
“네 친구라고 하지 않았느냐. 저 꽃들이 너를 반가워하는 이유를 말해 주랴?”
“네.”
“저 꽃들은 네가 도와 줄 것이라고 생각해서 반기는 거란다.”
“뭘 도와줄 수 있나요?”
“네가 꽃들에게 나비 노릇을 하는 거다. 손끝으로 저 꽃의 수술에서 꽃가루를 묻혀 이쪽 꽃에다 묻혀 주거라.”
남수는 하라는 대로 손끝에 한쪽 꽃술 가루를 묻혀다 다른 쪽에다 묻혀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꽃이 기쁜 얼굴로 말했습니다.
“고마워요, 이제 나는 씨를 받았으니 열매를 맺을 수 있어요. 감사해요.”
이때 다른 꽃이 아주 슬픈 소리로 말했습니다.
“저 좀 도와주세요. 지금 꽃가루를 받지 못하면 저는 씨도 못 받고 죽어요.”
남수는 그 꽃에게 꽃가루를 묻혀 주었습니다. 슬퍼하던 꽃이 금방 환하게 웃으며 고마워했습니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이때입니다. 들판에 가득한 꽃들이 똑같이 울상을 지으며 소리쳤습니다.
“우리도 있어요. 꽃가루를 주세요오오오오.”
남수는 어떤 꽃을 도와주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멍하니 서 있으니 이상한 소리가 물었습니다.
“왜 가만히 있느냐? 저 꽃들이 모두 너만 바라보고 있지 않으나? 빨리 도와주거라.”
“이 꽃들에게 다 꽃가루를 묻혀 주라고요?”
3. 꽃들의 씨받이 축제
이상한 아저씨가 대답했습니다.
“그래야지, 어떻게 하겠느냐. 나비도 몇 마리 있지만 저 꽃들을 도와 줄 수가 없다. 해가 지면 저 꽃들은 시들어 죽고 말 텐데 네가 안 도와주면 누가 도와주겠느냐?”
“저 많은 꽃들을 어떻게 저 혼자 도와줘요.”
“안 되겠지?”
“네, 아저씨가 해 보시면 안 되나요?”
“그럼 그렇게 해 보자. 넌 구경이나 하거라.”
구름 한 점 없이 고요하던 들판 저쪽에서 솨아아 하고 소리가 나며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아주 시원하고 부드러운 바람입니다. 바람이 불자 꽃들이 모두 머리를 들고 웃으며 소리쳤습니다.
“바람이다! 바람이 분다!”
꽃들이 모두 입을 크게 벌리고 웃으며 꽃가루를 날렸습니다. 아름다운 꽃들이 바람에 허리를 잡고 하하 호호 웃고, 그 위로 노란 꽃가루가 구름처럼 날아 이리저리 내렸습니다.
꽃들은 행복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바람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남수도 꽃들이 하는 소리를 따라 말했습니다.
“바람님, 정말 고맙습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단숨에 하여 주시었습니다. 꽃들이 저렇게 행복해 하는 것 보시지요? 저도 행복합니다.”
이상한 소리가 물었습니다.
“정말 너도 행복하냐?”
“네, 아저씨.”
“다행이다. 그럼 이번에는 어디로 가 볼까?”
“어디로 가시려고요?”
“따라와 보거라.”
바람이 남수 몸을 감싸고 하늘로 올랐습니다. 잠깐 사이에 남수는 지나가는 구름을 탔습니다.
“어떠냐? 기분 좋지?”
“네, 그런데 아저씨는 누구신가요?”
“내가 대답을 하지 않아도 차차 알게 된다. 자꾸 묻지 말고 따라오기나 하거라.”
남수는 바람을 타고 넓은 강가로 갔습니다. 강에는 시커먼 기름이 바닥을 덮고 있고 그 사이로 물고기 두 마리가 힘겹게 지느러미를 저으며 말했습니다.
“우리도 이제 죽는 거다. 이 기름이 우리를 다 죽이고 있어. 옛날에는 바닥에 모래가 있고 물가에는 예쁘고 먹기 좋은 풀이 많았는데 풀도 죽고 다른 고기들도 사라졌어.”
이상한 아저씨가 물었습니다.
“저 물고기들이 하는 말을 들었느냐?”
“네. 저 물고기들이 죽으면 어떻게 해요?”
“사람들이 저렇게 만들어 놓은 거다. 공장에서 기름을 흘려보내어 강을 썩힌 거야.”
“고기들을 도와줄 수 없을까요?”
“도와주고 싶으냐?”
“네.”
“그럼 잘 보거라.”
이때 갑자기 공중에서 회리바람이 크게 일어나며 어디서 왔는지 모를 구름이 몰려와 하늘을 새까맣게 덮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바람이 일어 강물 바닥을 뒤엎었습니다. 순식간에 장마가 지자 강바닥에 깔린 기름띠가 떠내려가고 모래 바닥이 드러나고 맑은 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맑은 물에 물고기 두 마리가 춤을 추듯 헤엄을 치고 돌아다니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다른 몇 마리 고기도 나타나 장난질을 쳤습니다.
그뿐 아니라 강가에 시들어 축 늘어졌던 풀들이 모두 고개를 들고 손을 저으며 노래를 부르고 아름다운 꽃을 달기 시작했습니다.
남수는 그것들을 보면서 중얼거렸습니다.
“아! 아름다운 강이다. 아름다운 꽃들이 노래를 한다.”
이상한 아저씨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렇게 좋으냐?”
“네. 그런데 아저씨 어떻게 해서 갑자기 구름이 몰려오고 비가 왔을까요? 더럽고 지저분했던 강이 저렇게 맑아지고 아름답게 흘러가고 있어요.”
“썩은 강물은 큰비를 맞고 장마가 쓸고 지나가야 맑아진다. 더러운 바닥이 쓸려 나간 강바닥이 보기 좋구나. 안 그러냐?”
“네, 그런데 어떻게 하여 갑자기 구름이 몰려왔을까요?”
“그건 차차 알게 되느니라. 다음에 다른 구경을 하러 가보자.”
4. 자연을 사랑하지 않은 죄
남수는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실려 구름을 타고 강줄기를 따라 날았습니다. 시커먼 강에서 흘러내린 기름과 더러운 것들이 모두 바다로 흘러들어갔습니다.
파란 바다가 순식간에 시커멓게 변하고 여기저기서 고기들이 죽어 하얀 배를 내놓고 물 위로 떠올랐습니다.
물고기를 잡아 살아가던 어부들이 모두 울상이 되어 웅성거렸습니다.
“썩은 강물이 흘러들어 바다가 오염되었다.”
“이제 우린 망했다. 망했어.”
“바다 밑바닥에 오물이 쌓이고 썩어서 고기가 살 수 없게 되었다.”
바다가 오물로 썩었다는 보고를 받은 대통령이 왔습니다.
“대통령님, 바다를 보십시오.”
대통령이 바다를 보면서 물었습니다.
“이 바다 밑을 청소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큰 배에서 내린 선장이 말했습니다.
“이 바다를 다 청소하자면 우리나라 사람이 모두 나와서 십 년을 해도 못할 것입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어부가 말했습니다.
“십년이 뭡니까. 백년이 가도 못 치웁니다. 이대로 있다가는 물고기가 다 죽고 물고기가 죽으면 우리 어부들도 다 죽습니다.”
다른 어부가 또 말했습니다.
“대통령님이 하시겠다고 하면 안 될 일이 무엇이 있습니까. 모든 국민이 다 이리 모여서 바다 청소를 하라고 명령을 내리시지요.”
대통령이 대답하기 전에 장관이 말했습니다.
“이런 일은 대통령님이 지시한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다른 어부가 화난 얼굴로 말했습니다.
“뭐요? 이 나라에서 대통령이 하겠다고 하면 못 할 일이 어디 있습니까. 이런 일은 대통령밖에 할 사람이 이 나라에는 없습니다.”
대통령이 나직이 말했습니다.
“이 일은 정치적으로 해결할 문제도 아닙니다. 사람들이 평소에 오물을 함부로 버리지 않았어야 합니다. 자연과 강물 사랑을 사람들이 해 왔다면 이런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다른 어부가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은 국민을 원망하시는 겁니까? 이 문제를 대통령도 해결할 수 없다고요? 왜 일찍부터 오물을 함부로 버리지 못하게 법으로 막지 못했습니까?”
어부들과 정치인들이 대책 없는 말씨름을 하고 있을 때 이상한 아저씨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얘야, 넌 다 들었지?”
남수는 간단히 대답했습니다.
“네.”
“너라면 어떻게 하겠느냐?”
“저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습니다.”
“네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네, 없습니다.”
“그렇다면 저 어부들과 사람들은 오물과 썩은 바다 때문에 다 죽고 말겠구나.”
“그럴 것 같습니다.”
“저대로 버려두면 바다가 모두 썩고 사람도 다 죽는 거다.”
“아저씨는 좋은 생각이 있으신가요?”
“암. 있지.”
“아저씨는 누구신데요?”
“어부보다 힘세고 대통령보다 똑똑하니라.”
“그럼 아저씨가 해결해 주시지요.”
“그러마. 사람들이 수백 년 걸려도 못한다는 큰일을 그리 쉽게 하겠느냐? 일주일만 기다려라.”
“일주일씩이나요?”
“저 큰 바다를 네가 청소하자면 며칠이나 걸리겠느냐?”
“저는 죽을 때까지 해도 못 합니다.”
“그런 일을 내가 일주일 동안 하겠다는데 오래 걸린다고?”
“제가 잘못했습니다. 아저씨는 누구신가요?”
“그런 건 묻지 말라고 하지 않았더냐? 또 물으면 널 바다에다 던져 버리겠다.”
5. 태풍의 힘
남수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텔레비전을 켰습니다. 좋아하는 만화 게임 시간인데 갑자기 방송국에서 긴급 뉴스를 방송하고 있었습니다.
“필리핀 부근에서 아주 강한 태풍이 발생했습니다. 이번 태풍은 대단한 위력을 가지고 북동진하여 우리나라 남해안과 서해안을 돌아 동해안까지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됩니다.”
방송 소리를 밖에서 들은 아버지가 들어오셨습니다.
“무슨 태풍이 불어온다는 거냐?”
“몰라요.”
“몇 년 동안 태풍이 없어서 좋았는데 걱정이구나.”
아버지가 텔레비전 앞으로 가서 귀를 기울였습니다. 텔레비전에서는 가지가지 주의 사항을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오일 내로 태풍이 우리나라에 도착합니다. 먼 바다에 나가서 조업하시는 분은 돌아오시고 해변의 배들은 모두 묶어 놓아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농작물 관리도 철저히 하셔야 합니다.”
이렇게 주의 사항을 알려주고 있었지만 남수는 좋아하는 만화를 보지 못하여 팅팅거렸습니다.
“파도가 오면 오는 거지, 왜 내가 좋아하는 만화 방송은 안 하는 거야.”
이어서 방송은 만화 게임을 하지 않고 전국적으로 태풍 피해 위험지역을 돌아가며 주의를 주는 방송을 계속했습니다.
남수는 방으로 가 만화책을 보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자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어른들은 모두 일터로 나가고 남수 혼자 마을 뒷산에 올라 바람이 불어오는 남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때 그 이상한 아저씨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
“바람 부는 걸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저씨는 어디 갔다 오셨어요?”
“어디를 갔느냐고? 너하고 같이 있었는데 모르느냐?”
“어디요?”
“묻지 마라, 자꾸 물으면 바깥으로 내쫓을 거다.”
“아저씨가 뭔데 나를 내쫓아요? 여기는 우리 집이에요.”
“알았다. 나가자. 바다 구경이나 가자.”
갑자기 바람이 일어나고 남수는 부응 떠서 구름 위로 올라갔습니다.
“어떠냐? 구름 타고 다니는 것도 즐겁지 않으냐?”
“네 즐거워요. 그런데 아저씨는 누구시냐구요?”
“또 그 소리! 자꾸 물으면 저 아래로 떨어뜨린다. 조용하거라.”
“알았어요.”
구름은 비행기 위를 높이 날아 바다 위에 멈추었습니다. 멀리 태풍이 불어오는 소리가 들리고 바닷물을 태풍이 끌어올리며 파도를 일으키고 저 아래 낮은 구름에서는 천둥과 번개를 번쩍거리면서 빗줄기를 쫙쫙 쏟아 내리고 있었습니다.
바다는 밑바닥까지 뒤집혀 출렁거리고 태풍의 눈을 중심으로 무서운 바람이 바다를 휘저었습니다. 바닥에 가라앉았던 온갖 오물이 태풍에 끌려올라 부서지고 깨지고 엉망입니다.
그 무서운 태풍이 서해를 거쳐 남해를 뒤엎고 동해 쪽으로 빠져나갔습니다. 태풍이 지나간 바다는 오물로 썩었던 물이 맑아지고 잔잔한 물결 위에 싱싱한 물고기들이 몰려다니며 물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어떠냐? 바다가 맑아졌지?”
남수는 소리 나는 쪽을 돌아보며 대답했습니다.
“네, 아주 좋아졌어요.”
“어떠냐? 내가 말한 대로 바다 청소가 되지 않았느냐?”
“아저씨, 참 신기합니다. 아저씨는 그런 걸 어떻게 아셨어요?”
“그런 건 묻지 말라 하지 않았더냐? 무엇이나 다 물어보아도 좋으나 내가 누구인지는 묻지 말거라.”
남수는 보이지 않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더 물을 수도 없어서 다른 것을 물었습니다.
“바다 바닥에 쌓였던 오물들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더 깊은 바다로 흘러갔느니라.”
“그럼 더 깊은 바다는 전보다 더 썩은 바다가 되지 않나요?”
6. 바다 밑에 뚫린 구멍
“그것이 알고 싶으냐?”
남수는 깊은 바다 속으로 흘러들어간 오물들이 어떻게 될까 궁금했습니다.
“알고 싶어요. 깊은 바다는 얼마나 썩었을까요?”
“간단히 설명해 주마. 깊은 바다 속으로 들어간 오물들은 거기서 강한 염분에 녹아 작은 입자가 된다. 그리고 바다 밑으로는 매우 큰 지하수 구멍이 여기저기 나 있어서 바닷물의 무게에 눌린 압력에 의해 육지 쪽으로 밀려올라간 물이 사방으로 지하수를 이루고 흐르게 되느니라. 알겠느냐?
“그래서 지하수가 생긴 건가요?”
“그렇지 않고서야 지하수가 어떻게 생기고 높은 산꼭대기까지 물이 올라가 나무와 풀들이 먹고 자라겠느냐? 바다가 엄청난 무게로 누르는 힘으로 물은 육지를 향해 밀려 오르고 물속에 녹아 있는 각종 성분은 자기 성분을 따라 흘러가느니라.”
“무슨 말인지 어렵습니다.”
“어려울 것도 없느니라. 기름기는 기름기를 따라 흘러가고 철분은 철분대로 자력에 의해 끌려가고 가스는 가스끼리 몰려 한쪽으로 흐른다. 그러다 보니 기름끼리 몰려가는 곳에는 물이 따르지 못하고 기름 웅덩이를 만든다. 그것이 유전이 되는 것이고 철분은 그것들끼리 모여 광산을 이루고 석탄 성질을 가진 것들은 그것들끼리 흘러가 모인 곳이 탄광이 되느니라. 더 어렵게 말하면 삼투압 현상과 모세관현상이 이루어져 끼리끼리 모이는 것이니라.”
“점점 더 어려워요. 제가 그런 것을 어떻게 알아듣는다고…… 그런데 아저씨는 누구신데 그런 것까지 아시나요?”
“허허 묻지 말라고 하지 않았더냐. 바다로 모인 오물이 어떻게 정화되어 다시 육지로 올라오고 산위에까지 물이 올라가는지 알겠느냐? 그게 바로 모세관현상이라는 것이니라.”
“바다 밑에 구멍이 나 있다는 말과 그리로 물이 흘러들어 지하수가 되어 육지로 올라온다는 말은 들어본 일이 없어요. 그렇지만 그럴듯해요.”
“건방진 녀석, 뭣이 어때?”
“아닙니다. 아저씨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더 묻고 싶은 게 있느냐?”
“아저씨는 만물박사신가요?”
“무엇이든지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다 물어 보거라. 네가 하루에 오줌을 몇 번 싸고 밥은 얼마나 먹는지도 다 알고 있느니라.”
“아저씨는 점쟁인가요 귀신인가요?”
“둘 다 아니다.”
“그럼 누구시냐고요?”
“너 자꾸 물을래? 용서하지 않겠다.”
“아닙니다. 취소합니다. 취소!”
“바다가 잔잔해졌으니 저리 가 보자.”
7. 지구 밖으로 나간 아이
남수는 구름에 실려 아주 높이 날았습니다.
지구가 둥그렇게 공처럼 떠 있는 것이 내려다보이고 여기저기에는 산도 있고 강도 있고 바다도 있고 사막도 있었습니다.
남극과 북극 끝에는 하얀 얼음산으로 덮여 있고 지구는 납북을 축으로 비스듬히 배를 내놓고 천천히 서에서 동으로 빙그르르 돌아가고 있습니다.
파란 바다는 하늘처럼 고요하고 황색 사막은 바람에 모래가 이리저리 날려 이리 쌓였다 흐트러지고 저리 쌓였다 날아가고 뿌연 하늘은 전쟁터 같았습니다.
이상한 아저씨가 물었습니다.
“어떠냐? 지구가 아름다우냐?”
“바다와 산은 아름다운데 사막은 정신이 없습니다.”
“저기 좀 보아라.”
갑자기 먼데서 아득히 보이던 별이 갑자기 이쪽으로 날아왔습니다. 지구보다 몇 배나 큰 별입니다. 별은 지구에서 볼 때 아름답지만 그 큰 별 덩어리는 무서운 위력으로 보이며 눈 깜짝할 새에 멀리 달아났습니다.
“보았느냐?”
“네, 아주 무서웠어요.”
“저 별은 혜성이라고도 하고 살별이라고도 하느니라. 알겠느냐? 더 설명해 주랴?”
“네, 설명해 주세요. 아주 무서운 별이었어요.”
“혜성은 대부분 어두운 것이 보통이지만, 지구에 가깝게 접근하거나 매우 밝은 혜성이 지구 근처를 통과할 때는 멋진 모양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혜성이 지나가며 남긴 먼지 찌꺼기는 혜성의 궤도를 따라 이동하다가 태양풍에 의해 서서히 밀려나게 되며, 그 궤도 사이를 지구가 통과하면 대기와의 마찰에 의해 불타면서 지구로 떨어지는데, 그것이 바로 별똥별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유성우가 되느니라.”
“아저씨는 그런 것도 아시나요?”
“참고로 한 마디 더 하마. 혜성은 궤도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도 있으며 일부 과학자들은 공룡의 멸종이 혜성의 충돌로 인해 일어났다고 주장하기도 하느니라. 한때는 혜성이 목성과 충돌하여 튀어나온 혜성이 지구와 충돌할 위험이 있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겁을 먹은 적도 있느니라. 혜성을 너의 나라 동양에서는 빗자루, 서양에서는 머리 푼 별로 생각하느니라. 사람들이 정한 혜성의 천문 기호(☄)는 원과 머리카락 같은 꼬리로 그려 놓았느니라. 내가 지구로 튀어오는 혜성을 밀어내어 사람이 다치지 않게 하였느니라.”
“아저씨, 뻥이 너무 심해요.”
“뻥이라고 했느냐?”
“아저씨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큰 별을 밀어낼 수 있어요?”
“허허, 내가 너한테도 인정을 못 받는구나.”
“인정을 못하는 건 아니에요. 그렇다는 거지요.”
“그렇다는 게 인정하지 못한다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냐? 또 내가 누구냐고 묻고 싶어졌느냐?”
“네, 아저씨는 누구신데 내 속까지 말아 맞추시나요? 아주 신기해요.”
“너같이 작은 가슴과 머리에 들어 있는 비밀을 몰라서야 되겠느냐?”
“정말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다고요?”
“암.”
남수는 속으로 ‘내가 꿈을 꾸는 거야, 아니야. 귀신한테 홀린 거야. 아이 무서워. 도깨비도 아니고 아저씨는 누구시냐구요?’하고 생각하는데 아저씨가 말했습니다.
“너 지금 ‘내가 꿈을 꾸는 거야, 아니야, 귀신한테 홀린 거야. 아이 무서워. 도깨비도 아니고 아저씨는 누구시냐구요?’ 이렇게 생각하고 있잖으냐?”
“……”
8. 아저씨는 하나님이라도 되나요?
“군말 말고 가자.”
“어디로 가시는데요?”
“네가 알 것 없다. 어린 녀석이 말이 많아.”
남수는 어느새 구름을 타고 앉았습니다. 이상한 아저씨가 말했습니다.
“저 아래를 내려다 보거라. 무엇이 보이느냐?”
구름 아래 지구는 누가 굴리는 것도 아닌데 혼자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뭘 보라는 말씀인가요?”
“저 큰 바다에는 섬이 떠 있고 육지를 보면 산과 나무가 무성한 곳이 있는가 하면 모래 바람이 일어나는 사막이 보이지 않느냐?”
“네.”
“그리고 저쪽은 어떠냐? 산에 나무도 없고 들판에는 사막도 아닌 메마른 땅이 보이지 않느냐?”
“네. 거기도 사람이 사나요?”
“사람이 살고 있다. 사막에도 오아시스에는 사람이 살고 있느니라.”
“왜 지구는 저렇게 모양이 다른가요?”
“내가 그렇게 만들었느니라.”
“아저씨가 하나님이라도 되시나요?”
“네가 또 내가 누군지 묻고 싶은 게로구나.”
“저렇게 큰 지구를 누가 사막도 만들고 산도 만들 수 있어요?”
“저 숲이 우거진 산과 들에 사는 사람들과 메마른 땅에 사는 사람 등 두 종류가 있다.”
“네?”
“하나님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과 하나님이 없다고 우기는 사람들이니라.”
“벌거숭이산과 들에는 누가 사나요?”
“거기는 하나님은 없다고 저희끼리 신상을 만들어 놓고 절하고 춤을 추고 점을 치고 사느니라.”
“그런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요?”
“인도 파키스탄 태국 중국 이란 등이 그러하니라.”
“하나님을 믿는 나라는 어떤 나라가 있나요?”
“영국 미국 유럽 여러 나라와 네가 사는 한국이니라.”
“한국은……”
“한국은 남북이 다르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냐?”
9. 크고 부드러운 손
남수는 자기 마음을 아저씨가 다 들여다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맞아요. 이제부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속으로만 말할게요. 그러면 되지요?”
“말하지 않아도 나는 네 속을 다 들여다보고 있지만 그래도 네가 말할 때 나는 너를 믿는다.”
“다 아시는데 뭘 말해요? 말할 필요가 없잖아요?”
“어렸을 때 네 동생과 같이 놀다가 배가 고프면 어떻게 했느냐? 동생이 엄마 배고파 밥 주세요 하면 엄마는 동생 밥은 주지만 너한테는 밥을 안 주었던 기억이 있지?”
“네.”
“엄마는 너나 동생이 똑같이 배가 고플 거라는 걸 안다. 그러나 말하는 사람한테는 밥을 주지만 가만히 있는 사람한테는 밥을 안 줄 수도 있다. 알겠느냐?”
“우는 아기 젖 준다는 속담처럼 말인가요?”
“그래, 바로 내가 그와 같은 것이니라. 네가 뭘 생각하는지 알고 있지만 말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주지 않고 어떤 대답도 하지 않느니라.”
“알았어요, 앞으로는 무엇이든지 아저씨가 다 알고 계신 줄 알지만 말로 할게요.”
“그렇게 하거라.”
“저 아래 우리나라를 보면 남쪽은 숲이 우거지고 기름져 보이지만 북쪽은 메마르고 사막처럼 보이고 저녁에는 불빛도 안 보입니다. 왜 그런가요?”
“저 북쪽에는 여기 저기 사람 형상을 만들어 세운 우상이 보이지 않느냐? 어디든 사람이 우상을 만들어 세운 땅에는 비구름이 지나가도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고 어쩌다 비구름이 몰리면 홍수를 퍼붓고 돌아보지 않느니라.”
“누가 말인가요?”
“내가 말이다.”
“아저씨가 하나님보다 더 무서운 분이신가요?”
“넌 아직도 나를 보지 못했지?”
“네.”
“보고 싶고 만져보고 싶으냐?”
“네.”
“그럼 만져 보거라.”
구름을 미는 바람이 부드럽게 남수 손을 쓰다듬고 어깨와 머리 위를 시원하게 불어왔습니다.
“시원하냐?”
“네, 아주 시원하고 부드러워요.”
“내가 너를 쓰다듬어 주었느니라.”
“아저씨는 어디 계신데요?”
“전에도 말했잖으냐? 나는 네 코 앞에 있고 입술 위에 있다고.”
“그러시긴 했지만……”
“너는 아무도 못 보는 곳에서 혼자 비밀을 만들지만 나는 네가 숨어서 하는 일과 숨 쉬고 말하는 것을 다 알고 있느니라.”
“정말이에요?”
“네가 숨 쉴 때 나는 네 속으로 들어가 네 맘까지 더듬느니라.”
“아저씨는 뻥이 심해요.”
“뻥이라고? 저쪽으로 가 보자.”
남수는 구름이 흘러가는 데로 갔습니다. 한 동네마당에서 두 사람이 싸우고 있었습니다.
“저 두 사람이 싸우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옳은지 알겠느냐?”
빨간 옷을 입은 사람이 파란 옷 입은 사람을 깔고 배 위에 타고 앉아 주먹으로 때리고 목을 조르고 있었습니다.
“파란 옷 입은 사람이 죽을 것 같아요. 저렇게 맞으면 죽잖아요?”
“그렇지, 가만히 두면 빨간 옷 입은 사람이 파란 옷 입은 사람을 죽일 것이니라.”
“어떻게 해요?”
“내가 저 빨간 옷 입은 사람을 넘어뜨려야겠다.”
이때 갑자기 빨간 옷의 사람이 코를 쥐어뜯으며 펄펄 뛰다가 벌렁 나자빠졌습니다.
“어떠냐?”
“참 신기하네요. 아저씨가 정말 하신 거예요?”
“못 믿겠느냐?”
“아저씨는 보이지 않는 마술사인가요?”
10. 비밀을 다 아는 분
“아직도 너는 내가 누군지 모르겠느냐?”
“마술사 같아요.”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마술사 점쟁이 무당들이니라.”
“아저씨를 보게 해 주세요.”
“나는 아무도 볼 수 없느니라. 그러나 나는 사람을 만지고 있고 사람들도 나를 만지기도 하고 뒤집어쓰기도 하느니라.”
“아저씨는 어디 계시고 누구하고 사시나요?”
“살아 있는 것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있고 그들과 살고 있다.”
“죽은 것들과는 안 사시나요?”
“그것들하고도 산다. 너는 커다란 통에 연필, 지우개, 깡통, 인형, 전화기, 가위, 볼펜, 자동차장난감 이런 것들을 넣고 눈 감고 손을 집어넣고 그것들이 무엇인지 맞추라고 하면 다 알 수 있겠지?”
“네.”
“나도 바로 너처럼 세상 모든 것을 만지며 그런 것들이 무엇이며 어디가 찌그러지거나 깨지지 않았나 하는 것을 다 아는 손이니라.”
“정말이에요?”
“그러니라. 너와 다른 것은 모든 것들이 하는 말까지 다 알아들을 수 있으며 사람이나 동물이 생각하는 것까지도 아느니라.”
“아저씨는 누구신데요?”
“묻지 말라고 이르지 않았더냐?”
“그렇지만 궁금해요.”
“내가 네 비밀도 하나 말해 줄까?”
“제가 무슨 비밀이 있는데요? 비밀 같은 건 없어요.”
“거짓말 하면 안 되느니라. 네가 다섯 살 때 오줌을 싸지 않았더냐?”
“네?”
“벌써 잊은 게로구나. 넌 오줌을 싸 놓고 엄마한테 들킬까봐 요를 둘둘 말아 이불장 속에 넣었지 않느냐?”
“그런 것도 아시나요?”
“또 말해 줄까? 엄마가 동생 주라고 맡겨놓은 고구마 두 개 가운데 하나를 먹고 하나는 안 먹은 척하고 거짓말 하지 않았더냐?”
“아저씨는 귀신이네요, 귀신, 아이 무서워.”
“귀신도 모르는 것을 나는 알고 있느니라. 네가 속으로 말하는 것을 귀신은 모르지만 나는 아느니라.”
“아저씨는 귀신의 귀신이신가요?”
“귀신이라고 다 귀신은 아니니라. 귀신(鬼神)이 있고 귀신(貴神)이 있느니라. 앞에 말한 귀신은 못된 짓만 하는 악귀이고 나는 좋은 일만 하는 귀신이라고 하면 될까? 하하하하.”
“아저씨는 진짜 누구신가요?”
“묻지 말라 하지 않았더냐. 앞으로 너는 말조심을 해야 하겠다. 너무 건방져. 어디를 가도 내가 널 따라가고 있고 무엇을 하든지 비밀로 한다고 하지만 내가 다 알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거라. 네가 숨을 쉬고 있는 바로 코 속에 내가 있고 네 입술에 내가 있어 네 말을 들으며 네 머릿속에 내가 있어 네가 생각하는 것을 다 아느니라. 좋은 생각, 옳은 말만 하고 비밀을 만들지 말고 살아야 하느니라. 알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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