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준 열사
만국평화회의 장소 / 드 리제르잘 밖의 풍경
당시의 외국 신문과 기자 브리핑
3인의 사절은 헤이그에서 각국 대표와 언론에 을사조약의 부당성과 불법성 그리고 일제의 침략성을 알리는 활동을 하였고, 7월 14일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여 일본의 침략행위를 세계에 호소하였으나 열국의 냉담한 반응에 할복 자결로 대한인의 독립의지를 보여주었다.
* 빨간 글씨를 해놓은 것은 내가 한 것으로 할복자살이 아니라는 설명울 위한 것임*
열사가 가신 지 38년째인 1945년에 조국광복이 이루어졌고, 바로 그 해에 독립협회 사건 때 이상재 선생에게 무죄 선고하여 파면된 전력이 있는 독립투사 함태영(뒤에 부통령이됨)선생이 중심이 되어 본 이준열사기념사업회를 결성하였다.
이준역사 기념관 홈페지 주소 http://www.leejun.org/
사진에 보이는 이 분이 이준 열사기념관 관장이시다/ 대단한 애국심을 가지고 방문하는 우리나라 사람에게 열성적으로 이 열사의 모든 것과 나라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하신다.
1939년 평남 축생/이화여대졸업/화란 에라스무스 대학 수학/ 화란한인학교 초대교장/이준열사기념관건립(공동) 관장
상소문
이위종은 러시아 영사 이범진의 아들
이위종의 호소문
청년 이위종 / 그도 열사로 불러 마땅하다
독립군 군가
만국평화회의와 밀사 기사
참석한 나라들의 지도(초기 유럽 참가국 중심 )
하멜 표류기의 저자 소개
네덜란드와 한국 관계
유럽인 최초의 한국 이름을 가진 박연 동상
원명과 소개는 자료를 참작
Jan Janszoon Weltevree, the first Dutchman in Korea
A summary of another Dutch first during the years of explorations and competition for global trade domination.
Jan Janszn. Weltevree was born around 1595 in De Rijp (?), a very picturesque village north of Amsterdam. He joined a crew on the vessel 'Hollandia' and departed on March 17, 1626, for the Dutch East Indies. Jan Jansz. left Jakarta in 1627 for Japan on the vessel 'Ouwerkerck'. Strong head winds during their journey required additional supply of drinking water and Jan Janszn., together with two shipmates, Dirck Gijsbertz. and Jan Pieterse Verbaest, went ashore on the island of Chesu (or Quelpaert) about 12 miles south of the Korean peninsula. They were captured by the Koreans and the ‘Ouwerkerck’ soon left without them. The then ruling Yi Dynasty practised a strict isolation policy and ‘accidental visitors’ were not allowed to leave the country. Jan Janszn. took the name Pak Yôn (Mister Jan) and became a senior court official. He was a tall, rather heavily build man with blue eyes, blond hair and a long red beard. He married a Korean woman who gave him two children, a boy and a girl. When in 1653 the Dutch vessel ‘de Sperwer’ shipwrecked on its way from Jakarta to Taiwan on the Korean coast, Jan Janszn. acted as interpreter and advisor to the King. A few of the surviving crew managed to escape after thirteen years and brought home tales of their ordeal as well as their encounter with Jan Janszn. who at the time of their departure was still alive and about 70 years old. One of the survivors, Hendrick Hamel, wrote a journal about his stay in Korea, the first document on Korea ever published in Europe.
The statue displayed on this page is of Jan Janszn. by Elly Baltus and can be found next to the Grote Kerk in De Rijp. A replica statue was erected in Seoul in 1991.
박연에 대하여 더 자세한 기록을 찾아 넣었다
하멜이 타고 온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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