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속이는 아들
아버지가 목욕탕에를 다녀오시며 기분이 좋아서 말씀하셨다.
"서울 사람 인심이 시골 사람보다 더 좋더라. 오늘은 목욕탕엘 갔더니 웬 젊은 사람이 다가와서 등을 밀어 주겠다고 하는 게야. 나는 미안해서 안 된다고 했지. 그랬더니 막무가내로 내 등을 씻겨주는 거야."
"모르는 사람이 그랬습니까?"
"모르는 사람이었지. 사람이 얌전하게 생겼는데 참 친절하고 등도 잘 밀더구나."
"수지 맞으셨네요."
"그런 셈이지."
"그 사람 참 고마운 사람이네요."
그리고 또 한 주일이 지나서 아버지는 목욕탕에를 갔다 오시더니 기분이 좋으신 듯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오늘도 또 그 사람을 만났어. 나를 아주 반기면서 등을 밀어주겠다는 거야."
"그래서요?"
"안 된다고 했지. 그런데 역시 친절하게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이 나서 할아버지 등을 밀어주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니 가만히 있으라'는 게야. 그 말을 들어보니 효자 같더라. 그래서 또 등을 맡겼지."
"참 고마운 사람이군요."
"눈감으면 코도 떼어간다는 서울에 그런 착한 사람도 있으니 여간 고맙지 않았어."
"앞으로 그 사람이 또 나타나서 친절하게 해 주시거든 시원한 것이라도 하나 사주세요."
"돈이라도 주고 싶은걸."
"돈은 주실 것 없고요. 박카스나 한 병 사주시면 되지요."
"그럴까?"
우리 아버지는 돈을 가지고도 쓰지 않고 아끼신다. 옷도 새로 사드리려고 하면 '다 죽을 때가 된 사람이 무슨 옷이 필요하냐. 있는 것만 입어도 못다 입고 간다.'가 대답이시다.
목욕탕에 함께 가서 등에 때라도 밀어 드리고 싶어서 함께 목욕탕에를 가자하면 절대 사양하신다. 이유는 유교사상이 깊으신 까닭에 아들 앞에서 벗은 몸을 보여 주기 싫어서다.
그런 아버지한테 돈을 주고 등을 밀어달라고 하시라 하면 씨도 안 먹는 소리다.
그래서 나는 잔머리(?)를 굴렸다.
그것은 목욕탕 때밀이와의 비밀 약속이다. 아버지 몰래 때밀이와 약속을 하고 90이 다 된 노인이 오시거든 성이 심씨냐고 물어본 다음 그렇다고 하거든 때를 밀어드리라고 했다.
물론 대금은 지불하고.
그러나 그 속사정을 모르는 아버지는 친절한 사람이 나타나 등을 밀주는 것이 고마워 좋아하시는 거다.
이렇게 거짓말을 해놓고 능청을 떠는 나는 언젠가 아버님을 모시고 탕에 가서 등을 직접 밀어드릴 것이다. 이 세상에 계신 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