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시 / 강화도
추억의 지름길
심 혁 창
추억이 있어서
인생은 즐겁다
추억의 지름길
흙 묻은 얼굴들
하늘은 빨아 건 듯 해맑고
풍년이 들녘에 금빛으로 누웠다
바람도 수그리고 숨죽인 들길
승용차 두 대 봉고차 한 대
자동차 삼 형제 랄랄랄 빵빵
웃음 싣고 기쁨 싣고 달려가던 날
강화도 가는 길은 자동차 물결
샛길을 모르면 늦어진다고
출발부터 지름길로 길을 잡았다.
지름길 잘 잡아 빨리 왔다고
강화 다리 건너며 벌어진 입들
"높은 산 숲 속에는
전설 같은 절이 있고
더 멀리 산 너머 마니산 뒤에
유서 깊은 유명한 진(陣)이 있는데
오늘은 다 못 보고 정수사만 봅시다
그림보다 아름답고
가슴보다 넓은 바다 기다립니다"
소년처럼 티 없이
자기 고향 자랑이듯
웃으며 안내하던
동그란 목사님.
손끝 가리키는 바다 끝 멀리
강화도는 물결에 흔들리고
바다를 깔고 앉은 산자락 굽이굽이
끝인 듯 숨어 뻗은 춤추는 관광도로
앞차를 따라가며 뒤차를 돌아보고
바다 멀리 밀고 앉은
정수사를 찾았다
말로 듣던 강화도
밟고 서서 또 찾는
강화도 향수
못 다 보고 돌아서는 아쉬움이여
잘 오려니 믿었는데
봉고차가 안 보인다
제멋대로 달리다가
미아 되어 사라졌다
잃는 건 아픈 것
잃은 양 찾아가는
김목사님 장장로님
낯선 섬길 바람 따라
고개 넘어 달려갔다
잃은 양 기다리는 남은 양 무리
은행잎 주워 들고 추억을 짠다
은행나무 가지마다
잎 지는 소리
잦아드는 여운이
가슴 찢는다
은행잎
밟고 서서 어깨 비비며
카메라 렌즈 속에 얼굴 담았다
담아도 담아도 모자라는 얼굴들
운전하는 김 집사께
은행잎 선물했다
즐거워 낯붉히며 받아들던 넓은 미소
길 잃은 봉고차
탕자처럼 돌아왔다
티 없는 웃음 보따리
터지도록 가득 싣고
낙엽은 바위와 역사를 엮고
바람도 고개 죽여 기도하는 언덕길
예비하신 땅에서 예배 드렸다
무릎 꿇은 산마루 내려앉은 하늘 끝
새들은 노래로 나무는 기도로
우리는 소리 높여 주님을 찬양했다
예배 후 바다로 달려갔을 때
바다엔 파도 소리 떠 있고
하늘엔 갈매기 향연
가슴 바다에 열어
시기 질투 쏟아내고
파도로 헹군 자리
아기 때 잃은 마음
새살로 돋아난다
내 마음 알 길 없어
바다에게 물어본다
욕심의 크기는 얼마나 넓고
사랑의 밑바닥은 얼마나 깊으냐고
하늘은 수평선에
파랗게 젖어 가라앉고
내 마음 욕심에 젖어
까맣게 젖었는데
그래도
살아야 하느냐
물어도 답이 없다
바다는 숨쉬는 그림
온 종일 배 띄우고
갈매기를 날린다
수평선 아득히 구름 막 치고
평화를 노래하며
대답하는 말
바람처럼 구름처럼 흘러가거라
바다는 반짝이는 금반석
하늘은 바다에 날개 내리고
수평선 노을 깔고 해는 얹혔다
물결도 조용히 기도하며
바람아 가지 마라
손짓하지만
하루는 어제처럼 짧게 기운다
바다는 해를 삼키고
안개자락 풀어 올려 입술 닦는다
형제는 둘러 잡고 주님 영광 찬양
사랑의 하나님께 기도 드렸다
해 삼킨 바다
어둠 이불 둘러쓰고
눈을 감는다
길가 철 늦은 장미 한 송이
조화처럼 웃고 손짓하지만
향기도 나비도 없이
해쓱한 얼굴에 외롬이 짙다
가는 님 떠내 놓고
돌아선 얼굴 같은
길가 혼자 남은
코스모스 가는 허리
꽃 무게가 서럽다
소녀 웃음 같은
장미 한 송이
김집사 까만 모자에 꼽아주었다
꽃 몇 송이 얹은 얼굴
부끄럼이 붉게 탄다
서울 가는 밤길 캄캄한 들길
마음은 바쁜데 갈 길은 아득타
새까만 들녘
금고리 엮어놓은 듯
빛으로 이어지는 자동차 행렬
앞질러 달리는 마음
차창마다 넘친다
나만 먼저
나만 빨리
나만 편히 가고 싶은
욕심으로 살찐 사람들
요리 가면 좋을까
조리 가면 빠를까
바퀴는 땅에 붙어
구르다 서고
머리마다 생각만
차 속에서 뱅뱅
구경도 버렸다
양보도 버렸다
낭만도 깔고 앉아
가슴 태운다
아는 길도 물어 가라
가르치고 배웠는데
성급한 마음들은 지름길로 들었다
가다 돌고
돌다 가고
앞차 뒤차 섰다 가다
뱅글뱅글 배뱅글
자동차 삼 형제
돌고 돌다 막혔다
신나게 질러가며
콧노래도 불렀다
줄서서 기어가는 멀리 뵈는 차 꼬리
요리 가면 빠르다
질러가던 지름길
누구보다 빠르게
누구보다 편하게
서울에 당도한 양
뽐내면서 달리던 길
차마다 웃음 천국
하하 깔깔 허허 호호
나이도 지워지고 지위도 내던지고
활짝 열린 마음들
깔깔대는 김집사
헉헉대는 이집사
배꼽 닳는다 허리 잡던
이집사 박집사
아무것도 아닌 말에
웃음 터지고
세상 때는 바다에 씻고
웃음보만 가지고 오던 길
집사도 장로도 목사도 히히 껄껄
의미 없는 말에도
웃음꽃이 만발
길은 차츰 좁아지는데
지름길은 다 그런 거라고
그래서 남들은 모르는 길이라고
그래서 남보다 빨리 가는 길이라고
험하고 좁아지는 길도
참고 참고 달렸다
포장도로 끝나고 풀 덮인 농로
지름길이 끝내는
배신할 줄 몰랐다
지름길에 속았다
그것만이 아니다
앞에 가던 장로님 차
진흙탕에 머리 박고
부룽부룽 부루룽
몸부림에 헛소리만 뿜고
뒤따르던
김집사 운전대 잡고
왜 이래, 왜 이래!
앞차 뒤차 나란히 길바닥에
붙었다
가지도 못하고
오지도 못하고
장미 꼽은 김집사 모자
차창 앞에 내려지고
은행잎 고은 빛도 차창 앞에 내렸다
장미도 은행잎도 빛을 잃고 누웠다
까칠한 코스모스 가늘게 떨고
좌절한 생명들이
이리저리 뒹군다
하하 웃던 얼굴들
차 문 열고 기어 나와 차 밑을 본다
푹 빠진 네 바퀴는 밀어본들 꼼짝 않고
구두도 양복도
진흙탕을 들쓰고
어영차 이영차!
밀어도 그만
당겨도 그만
헛바퀴는 흙물 뿌리며 왱왱 돌고
앞뒤에 얼쩡대다 흙탕물만 들썼다
형들은 진흙탕에 빠지고
막내 봉고
따라오다 멈칫거린다
봉고차 돌아가서 구원을 청해 보자
여러 머리 의견 모아
견인차 부르러 갔다
칠흑 같은 하늘에는 별무리 총총하고
추억으로 뜨는 별은
떠난 임의 눈빛이다
하나님,
우리의 기도를 들으셨지요
가는 길 안전하게 지켜 주시고
운전대 잡은 손에 운전사가 되어 달라고요
그런데 이게 뭡니까?
하나님은 고요한 중에 대답하셨다
"네 기도를 들어 주었느니라
내가 잡아주지 않았으면
너희는 물에 빠졌으리라"
"어디 물이 있습니까? 길이 질퍽거릴 뿐이었습니다"
"길옆을 보아라"
길옆을 보았을 때
바로 곁으로 큰 물결이
길보다 높게 번득이고
흙탕길은 수로가 넘친 농로였다
나는 고백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누군가의 입술에서 나오는 고백
"하나님이 선물을 주시려고
시련을 먼저 주신 거예요
어려울 때 하나님을 찾아야 해요."
레카 차 데리고 온다던 봉고
왜소한 사람 하나 태우고 왔다
철사 줄 한 가닥 달랑 들고
골리앗과 싸웠다던 다윗이 다시 왔나
지금이 구약시대냐고
피식 웃고 말았다
키 작은 그 사람
끈을 매고 끌어당길 궁리를 하다
차에 올랐다
푹 빠진 차 바닥에 배를 깔고
헛 바퀴를 왱왱!
쫘악 흙탕물 뻗치는 줄기
뒤에서 밀던
나
바지 윗도리
얼굴에서 머리까지
흙탕물을 들썼다
깜깜한 어둠 속
사정 모르는 김 목사님
혹시나 기적이라도?
얼굴을 들이댔다
그 찰나 또 한 번
헛 바퀴 웨웨웽
쫘아악!
목사님 윗도리 아랫도리
얼굴 머리 흙탕물에 범벅이 됐다
비명도 못 지르고
퉤! 퉤! 퉤!
운전은 할 줄 알까 무시했던 시골 다윗
순식간에 빠진 차를 밀어붙여 끌어냈다
야아호!
야아호!
김집사, 이집사, 차에 오르고
다시 켜진 불빛은 새 소망에 넘친다
흙탕물 뒤집어쓴 내가 차에 오르자
모두들 하하하하
꼴 좋다고 호호히히
백미러에 비친 내 꼴
이게 누군가!
그래도 웃고 있는 바보 같은 내 얼굴
농로를 벗어나 포장도로 들어설 때
사르르 미끄러지던
평안하고 아늑하던 부드러운 그 맛!
차창 앞 이리저리 지쳐 뒹굴던
코스모스 장미도 웃음을 찾고
은행잎도 일어나
새 얼굴로 빛난다
은행잎은 손 벌려 박수를 치고
장미는 입 벌리고 노래를 하고
코스모스 하늘하늘 지휘를 한다
야아호! 야아호!
랄라 랄라 랄랄랄
추억으로 가는 길
울퉁불퉁 험한 길
그래도 먼저 가는
지름길이 좋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