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늙으면 다 그렇겠지. 허리도 굽고 얼굴엔 나이 거미줄이 치고.
바지 앞에 달린 자크가 너무 높이 달렸다는 불만도 젊어서는 모르지만 늙어서는 겪어야 할 일인 것 같다.
"다 늙어 죽을 날만 기다리는 게 좋은 옷은 무슨……"
노인이 된 아버지는 옷을 살 때마다 이 같은 말씀으로 싸구려만 사신다. 어제는 길에 나가셨다가 오천 원 주고 바지를 하나 사 오셨다. 그리고 자크 손잡이를 잡아떼고 밑으로 찢어놓고 나를 주신다.
"이 옷 좀 고쳐야겠다."
들여다보니 수선을 해야 하게 생겼다. 왜 새 옷을 찢으셨을까? 생각했지만 바로 고쳐오겠다고 들고 나가 세탁소에 맡겼다.
퇴근하는 길에 말끔하게 고친 바지를 찾아 가지고 와 아버지 앞에 내놓으면서 자랑스럽게,
"아주 잘 고쳐졌습니다. 보세요."
가만히 들여다보시던 아버지 말씀.
"잘못 고쳤어. 나는 이렇게 고쳐달라고 한 것이 아닌데."
"아니에요. 아주 잘 되었어요." 하고 토를 달았더니,
"자크가 너무 걷어올려 달려서 소변을 못 보겠어, 그래서 찢었는데 도로 똑같이 달아 오면 어떡하냐?"
이 말씀에 속으로 '늙으니 소변보는 통로도 밑으로 축 처져야 하네?' 하고 허허 웃고 더 이상 아무 말 않고,
"알았습니다. 시원하게 고쳐다 드릴게요."
내가 나가는 등에다 하시는 말씀,
"돈 또 달라거든 고치지 말고 가져와, 그냥 입게."
"알았습니다."
오천 원 짜리 바지에 자크 달다 오천 원이 들었지만 거짓말로 삼천 원 들었다고 했더니 더 들게 되거든 고치지 말자는 말씀이다.
세탁소에서 사정 이야기를 하고 다시 길게 달아 달랬더니 알았다고 저녁에 오란다. 퇴근길에 들렀더니 아주 시원하게 찢어서 길게 자크를 달아 놓았다.
"감사합니다. 얼마나 드릴까요?"
주인 대답.
"천 원만 주세요"
나는 고맙다고 허리를 숙이며
"어제보다 더 수고하셨는데 천 원을 드릴 수는 없지요. 미안하지만 삼천 원만 드리겠습니다." 했다. 주인은 고마워서 어쩔 줄을 모른다.
나는 그의 감사해 하는 얼굴이 고마워서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오천 원 짜리 바지 하나에 수선비가 팔천 원 들었으면 너무 비싼 것 아닌가, 허허허' 하고 돌아와 아버지 앞에 가만히 내놓았다.
"보세요, 아주 잘 되었지요?"
들여다보시던 아버지.
"잘 만들었어. 이래야 좋지, 그런데 얼마나 더 주었어?"
"잘못 고친 거라 돈은 더 받지 않겠다고 해서 공짜로 고쳐왔습니다."
"참 고마운 사람들이로군. 그러니까 이 바지가 팔 천 원에 산 셈이 되었지?"
"예, 그 사람이 또 돈을 내라고 했더라면 만원이 넘을 뻔했습니다."
"그러면 고치지 말라고 했잖은가."
"그렇지요, 공짜니까 그냥 고쳤지요, 뭐."
아버지는 공짜라고 해야 마음이 편하시리라 생각하고 속이는 불효를 저지르면서 나는 또 허허허허 허허허허 팔 천 원어치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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