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회장은 길을 나서며 생각했다.
‘3시간 후에는 흙으로 돌아간다. 나는 한 평생 무엇을 위해 싸웠던가.
장로 직분을 지키느라고 본색은 숨기고 가장된 삶을 더 많이 살았다.
실제 해 보고 싶은 것은 못 해 보았어.
어차피 세 시간 뒤에는 이 인간 세상을 떠난다.
못해 본 것이나 해보자.’
김회장은 장로라는 직분을 가지고 있어서 자기
본성대로 살아 보지 못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는 가고 싶어도 참고 안 갔던 고급 술집으로 갔다.
머리는 좀 희끗희끗해도 평소에 잘 가꾼 몸이라 귀티가 나고 점잖아 보였다.
그를 보자 술집 지배인이 큰소리로 반겼다.
“어서 오십시오!”
그는 들어서면서 주문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술과 가장 비싼 안주와 가장 예쁜 여자를 보내주시오.”
그리고 생각했다.
‘한 시간은 술과 예쁜 여자를 즐기며 시간을 보내고
또 한 시간은 친구들을 만나 하직 인사를 나눈 다음 집으로 가서
한 시간 동안 자식들에게 유산을 분배하면 내가 할 일은 다 하는 것이다.’
잠깐 사이에 술상이 차려지고 꿈에서도 보지 못한
꽃같이 예쁜 아가씨가 들어와 술을 따랐다.
김회장은 숨이 막힐 만큼 눈이 부시게 예쁜 얼굴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너는 사람이냐 인형이냐?”
인형처럼 예쁜 여자의 몸에서는 풋과일 향이 나고 석류보다 빨간 입에서는
옥이 부딪는 소리보다 아름다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인형은 아니어요.”
“이리 와 내 무릎에 앉아 보아라.”
“지빈이라고 해요. 그럼 선생님 품에 안겨드릴게요.”
지빈이 살포시 김회장 품에 안겼다.
“넌 소원이 무어냐?”
“이 술 한 병 값만 있었으면 좋겠어요.”
“겨우 술 한 병 값이라고? 내가 다섯 병 값을 치러주면
오늘 나를 즐겁게 해 주겠느냐?”
“그렇게 많이나요?”
김회장은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대답했다.
“한 병 값이 얼마나 된다고 그러느냐?”
빨갛고 향이 그윽한 술이 김회장 입술을 적시며 목으로 넘어갔다.
“아아! 이 그윽하고 달콤하고 싸아한 맛,
이게 사람이 만든 술이란 말인가. 한 잔 더 부어라.”
“그렇게 급히 드시면 안 되어요.”
“그래, 천천히 마시마. 이 한 병 값이 얼마나 나가느냐?”
“세상에서 가장 비싼 술을 주문하셨잖아요?”
“그랬지.”
“한 병에 일억이에요.”
“일억?”
“네, 놀라셨어요?”
“아니다. 지빈이 소원이 다섯 병 값이면 좋다고 했겠다?”
“네.”
“좋다, 그렇게 해 주마. 자. 한잔 더 마시고 너도 한 잔.”
“이 술은 아주 천천히 마시셔야 해요. 아주 천천히.”
“천천히 마실 시간이 없다.”
김회장은 두 잔째 비우고 한잔을 지빈에게 넘겼다.
지빈이 장미같이 예쁜 입술로 술잔을 빨며 핥듯이 혀끝으로 찍어 들였다.
한잔을 비우는 동안 김회장은 취기가 돌아 게슴츠레한 눈으로
미색에 빠져 몽롱한 채 지빈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언제 이렇게 야들하고 봄볕 같은 여자의 품을 느껴 보았던가.
술이 전신을 안마하듯 피를 타고 돌며 김회장을 황홀한 경지로 끌었다.
그는 지빈의 웃음소리와 전신의 피를 빨아내는 듯한
요염한 자태에 술 한 잔을 더 마셨다.
지배인이 와서 말했다.
“손님 만족하십니까?”
“암, 암.”
그는 혀 꼬부라진 소리를 하며 지빈의 몸을 더듬었다.
“손님, 주문하신 술과 음식 값을 어떻게 결제하시겠습니까?”
“카드로 해야지. 지빈에게 약속했으니
5억은 지빈이 몫으로 하고 나머지는 얼마나 되는가?”
“안주 1억에 술이 1억이니 총 7억입니다.”
“알았다. 십억도 안 되는 돈을 가지고…… 자 이것으로 정리해라.”
김회장은 황금 카드를 내밀었다.
지배인은 들어보기만 하고 처음 보는 카드에 놀라 눈을 크게 뜨고
돌아가 카드 계산기에서 영수증 용지를 빼 들고 돌아왔다.
“손님 여기에 사인해 주십시오.”
“알았다. 지금 몇 시냐?”
“11시 59분입니다.”
“뭐라고?”
지빈이 상냥하고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손님 이제 시작인 걸요.”
“시작? 시작이라고 했……”
김회장은 미친 듯이 일어나 밖으로 달려나가
술집 대문 앞에 고꾸라져 눈을 감았다.
지배인이 놀라 외쳤다.
“손님! 정신 차리세요. 결제하셔야지요.”
김회장은 황금 카드를 남긴 채 그렇게 죽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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