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 풍경 / 오진은 중환자를 만든다
아버님이 비뇨기과가 없는 중급 종합병원에 입원하신 후
매주 금요일 야간 간호를 해드리며 본 병실 풍경이다.
사인용 병실에
새 환자 한 분이 들어왔다.
그분이 모자를 쓰고 들어왔을 때는 육십대 초로 보였는데
모자를 벗으니 갑자기 팔십 노인으로 변했다.
얌전하게 생기고 얼굴에 사지가 멀쩡하고 눈이 반짝이는
것으로 보아 환자 같지 않았다.
저 사람은 어디가 아파서 왔을까?
보호자도 없이 다닐 정도면 가짜 환자일지도 모른다.
환자는 간호사를 따라 들어와서 지정해 준 병상에 단정히 앉아 있었다.
어디가 어때서 왔을까? 아무리 보아도 환자가 아니었다.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
그가 갑자기 맞은편 환자 간병인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저기! 아주머니 의자 아래 커다란 벌레가 들어가요!”
그 소리에 간병인이 소스라치게 놀라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어디요?”
“숨었어요.”
그가 하는 말을 듣고 아주머니는 의자 방석을 뒤집어 보기도 하고
밖으로 나가 탁탁 털어가지고 들어왔다.
이상도 하다. 이 병실에 벌레가 있을 리 만무한데
웬 벌레가 나타나 그렇게 빨리 사라지다니!
나뿐 아니라 모두들 그 병상 아래에 온 신경을 쏟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그 환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히 앉아 벽을 보고 있었다.
얼마쯤 지나서였다. 그가 벗어놓은 하얀 운동화를 신다가 중얼거렸다.
“이놈의 벌레들이 운동화에 가득하네.
아이 징그러운 것들이 우글거려 신을 신을 수가 없어.”
나는 그가 신으려는 운동화 속을 들여다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신발을 엎어서 탁탁 털었다.
벌레들이 다 쏟아져 나갔다면서 신을 신고 나갔다.
잠시 후 간호원이 와서 그 환자는 무슨 환자냐고 물어보았다.
간호원이 뭐라고 대답을 하고 나갔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나 혼자 그 환자의 병명을 지어 보았다. ‘망상증 환자’라고.
그 환자는 드러눕다가도 침대에 벌레가 기어간다고 눕지 못하고
신문지 등으로 벌레를 털어내는 시늉을 하고 누웠다.
가끔 가다가 사람이 지나가면 저기 벽에 붙은 벌레 좀 잡으라고 한다.
병실 사람들은 그 환자가 무슨 병인지를 알게 되어 그가 하는 벌레 소리는 믿지 않는다.
그 환자는 자기 눈에만 보이는 벌레와 싸우느라고 아무 일도 못하는 사람이다.
또 그 곁에 키가 180은 훨씬 넘을 만큼 잘생긴 환자가 있다.
나이는 50대인데 혼자 일어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침대 끝에 끈을 달아 놓고 일어설 때는 그 끈을 잡고 일어선다.
그러다가 중심을 잃으면 옆으로 넘어져 침대에서 떨어지고 만다.
그러나 누가 조금만 잡아주면 일어서서 걷는다.
다리를 길게 뻗고 걷지만 걸어갈 때는 인물이 돋보이는 잘난 외모다.
가끔을 손을 벌벌 떨기는 하지만 정신은 맑고 말도 반듯하게 잘한다.
친밀감이 드는 사람인데 앉고 설 때 안타깝게 보여 마음이 아프다.
또 맞은편에는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외모가 멀끔한 70대 환자가 있다.
코에는 산소 호흡기가 코를 감싼 테이프로 고정되어 있고
목에는 구멍을 뚫어 수시로 영양분을 부어주는 장치가 되어 있다.
말도 못하고 손도 못 움직이는 살아 있는 송장이나 같은 사람이
황소같이 큰 눈만 멀뚱히 뜨고 반듯이 누워 천장만 바라본다.
허리에는 등창이 곪아 수시로 소독을 하면서 약을 바르고 문질러주어야 하는 환자다.
간병인과 그 부인이 한 순간도 자리를 뜨지 못한다.
어쩌다 코로 쾍킁 하고 액체를 발사한다.
그러면 곁에 간호하던 사람의 얼굴이 그 오물을 뒤집어쓴다.
그래서인지 간병인을 한 달에 200만원씩 준다는데도 일주일이면 달아났다.
또 그 곁에는 중풍으로 7년째 누워 있다는 60대 환자가 있다.
그 환자는 앞 대문이빨이 금이빨인데 헤헤 하고 웃는 얼굴을 보면 아주
순박하고 착하게 보인다.
밥을 먹여주면 턱이 늘어져 밥을 흘리고 그럴 때는 부인이 아이 나무라듯
밥 흘리지 말라고 윽박지른다.
그러면 그 사람은 흐흐흐하고 웃을 뿐
왜 윽박지르느냐고 항의는 할 줄 모른다.
그렇게 네 명의 환자가 있고 창가에 우리 아버님이 누워 계시다.
우리 아버님이 그 병원에서는 최고령의 환자시다.
뼈와 가죽만 남은 아버지는 비뇨기과 없는 중급병원이라는 곳에서
치매 환자라고 하여 특수 시립 요양병원에 오셨지만
치매는커녕 젊은 우리보다 기억력이 더 좋고 판단력이 높았다.
방광기능이 저하되어 오줌을 시원하게 배설하지 못하여 중급 종합병원에 입원하여
보니 비뇨기과가 없어서 내과 의사가 오줌 좀 시원히 싸게 해 달라는
환자를 애매하게 엑스레이 촬영만 하고 방광에 오줌이 없는데
상상으로 찼다고 느끼는
착각 환자라고 계속 엉뚱한 내과 약만 주다가 치매환자라는
병명을 붙여 치매노인 병원으로 보낸 것이다.
역시 그 병원에서도 오줌 좀 눌 수 있게 해 달라고 사정하니
이삼일은 치매로 보다가 비뇨기과 병원으로 가서 진단해 보라는 권고를 받고
비뇨기과의원에 가 보니 방광에 오줌이 꽉 채였지만
수축력이 약해서 그런다고 배를 뚫고 호스로 배출시키더니 보름 만에 완전히 치료해 놓았다.
이제는 배설을 잘하시니 아무 병도 아닌 환자가 되어 누워 계시지만
그 동안 방광과 씨름하느라 영양상태가 나빠져 이젠 보식이 필요한 환자가 되고 말았다.
옆으로 앞으로 누워 있는 젊은 환자들을 보면 우리 아버지는 환자도 아니다.
이제 잘 잡숫고 잘 싸시고 쿨쿨 잘 무주시니 효성으로 모시면 건강해지실 것이다.
이렇게 병원 신세 3개월 동안 보고 배운 것도 많았다.
어떤 병이든 전문가를 제대로 만나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처음부터 비뇨기과를 찾아갔더라면 그 고생도 안 하시고
천만 원이라는 병원비도 절약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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