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방/논픽션

긴 글 실화 / 늙어서도 미스 홍

웃는곰 2026. 3. 9. 16:36

미스 홍의 일생과 출판하는 나

 

 

미스 홍은 부잣집 딸이었다.

대학 다닐 때 얼마나 예뻤던지 아는 사람마다 며느리 삼자고 졸랐지만

콧대 높은 명문가에 자존심이 강한 미스 홍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대학을 나오자마자 한국에 나와 있는 미국 군수물자 회사에 특채로 입사하여

유능한 여자 통역 사원으로 높은 급료를 받았다.

그렇게 몇 년 하는 동안 전쟁이 끝나고 그 회사는

귀국하게 되었고 미스 홍은 바로 중학교 영어선생이 되었다.

 

미스 홍은 그 중학교에서 가장 잘 생기고 명문대 출신인 수학 선생을 만나게 되었고

두 사람은 사랑에 빠져 바로 결혼하였다.

수학 선생이 얼마나 잘 생겼는지 미스 홍네 집에서는 그에게 아주 큰 집을 사 주었다.

인물 좋고 머리 좋은 남편은 학교를 그만두고 집값이 한창 올라가던 시절

큰 집을 팔아 작은 집 일곱 채를 사며 건설업에 투신했다.

이어 부동산 붐이 일어나 미스 홍 남편은 집을 짓고 팔고 하다가 나중에는

아파트를 지었고 준재벌이 되었다.

미스홍은 남편만 믿고 모든 재산 등기를 남편 이름으로 했다.

 

 

돈 많이 버는 미남 사장은 꽃뱀의 유혹에 빠져 미스 홍과

이혼을 하자고 했고 자존심 강한 미스홍은 한 마디로 남편을 차버렸다.

그리고 외로워진 독신이 된 미스 홍은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오직 가슴에 품은 한을 하나님께 의지하여 살았다.

남편에게 재산 분배 요구를 했지만 남편은 한 마디로

거절하여 본시 친정 재산의 가치는 의미가 없게 되었다.

 

 

자존심 강한 미스홍은 교회를 나가도 작은 교회는

눈에 차지 않아서 대형교회로만 돌았다.

그러다가 한 교회에 정착하게 되었는데

그 교회에서 건축헌금을 작정하라고 하여 선뜻

6천만 원을 작정하고 온갖 일을 다하여 그 헌금을 바쳤다.

그리고  주위 성도들의 존경도 받았고 인간 대우도 받았다.

 

세월이 가고 나이가 70이 넘었을 때 또 3천만 원 작정 헌금을 하고

그것을 바치기 위해 온갖 일을 다 했다.

식모살이까지 할 정도로 힘겹게 3천만 원을 달성하고 났을 때는

70중반의 할망구가 되었다.

그 나이가 되어서도 미스 홍은 여전히 미스 홍이라는

말을 좋아했고 가방에는 영어 단어장이 들어 있었다.

 

버스를 타거나 쉬는 시간이 있을 때는 영어 단어를 외우고

시간이 나면 글을 썼다. 그러나 글이 자기 하소연하는 글일 뿐

소설도 아니고 수필도 아닌 일종의 수기였다.

내가 미스 홍을 만났을 때는 3천만 원 작정헌금을 마쳤을 때이니

그분이 70중반이 넘어서였다.

 

 

그에게는 훌륭한 아들과 며느리가 있고 머리 좋은

손자가 있지만 아무도 그에게 어머니 대우를 하지 않았다.

이유는 돈만 생기면 교회에 헌금하고 늘 빈털터리로 손만

때문에 미움을 받은 것이다.

대형 교회에서는 헌금도 대형이 아니면 대우받지 못한다.

대형교회 성도들의 건축헌금 약정은 솔직히 말하면 하나님한테 한다기보다

사람의 눈을 의식한 체면치례로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미스 홍은 6천만 원의 헌금을 했지만 액수로는 상위권에 못 드는 중간 정도일 뿐이다.

그러나 그런 금액을 만져도 못 본 사람들한테는

하나님의 영광과 신심을 보여주는 선망의 대상이다.

그 대우 받는 재미(?)로 미스 홍은 작은 교회에는 관심도 없고

대형교회에서 충성을 다한 것이다.

나는 미스 홍이 “소설을 썼으니 출판을 해 달라”

고 하여 만나게 되었는데 원고는 소설이 아니라 수기였다.

 

일생 동안 여기저기 사랑과 봉사를 아끼지 않고 해 주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배신뿐이라는 한 맺힌 수기였다.

교회에서 만나 알게 된 사이라 나는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 책을 내드리기로 했다.

230쪽짜리 책을 펴내자면 적어도 250만 원 이상이 필요한데 150만원을 마련할 테니

어떻게든 자기 소원을 풀어 달라는 거였다.

미스 홍의 사연을 들어보면 정말 화가 날 정도로 별별 사연이 다 있었다.

화려한 젊은 시절의 오만한 고백, 남편에 대한 한, 자식에 대한

오해와 갈등과 감정이 있어 출판해 주기엔 조심스런 원고였다.

 

 

그러나 원고도 안 본 상태로 간곡히 부탁하기에 출판을 허락한 터라

거절할 수도 없고 돈 때문에 안 내준다고 오해할 것이 걸려 출판을 하고 말았다.

미스 홍은 어느덧 80이 넘어서 길도 제대로 못 찾고 기운이 없고

다리가 부어서 제대로 다니지도 못한다.

그런 가운데 30만원씩 6개월에 한 번 1년에 한 번 등 3번을 가지고

오시기로 했는데 내가 마중 나가야 하고 가실 때는

정거장까지 부추겨 드려야 했다.

 

미스 홍은 내 팔에 매달리다시피 하고 말했다.

“내가 좀 더 일찍 사장님을 마났어야 했는데 너

무 늦어서 출판비도 제대로 못 해드려 미안해요.”

“지금은 어디 사시나요?”

“수서에 살다가 잠실에 작은 문간 셋방을 얻어 사는데

아들이 보내주는 생활비 30만원으로는 참 살기 힘들어요.

그것에서 조금씩 떼어 사장님께 가지고 오는 거예요.

옛날 사장님을 만났으면 출판비 500만 원도 넉넉히 드릴 수 있었을 텐데……”

나는 권사님이 불쌍해졌다.

 

“권사님, 이제 오고가기도 힘드시니 그만 오세요.

돈도 그만 가져 오시고요. 90만원이나 받았습니다.

가끔 안부 전화나 주시고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해 주세요.”

“아직도 두 번은 더 와야 하는데 무슨 말씀이야. 약속은 지켜야지.

사장님도 보고 싶어서 돈 마련해 가지고 올 거야.

사장님은 꼭 우리 아버지 같다니까. 호호호”

 

 

“농담도 잘하시네요. 돈은 더 가지고 오셔도 안 받습니다.

아버지가 딸한테 박박 긁어가며 다 받아야 합니까? 하하하”

 

이래서 우리는 가슴을 열고 웃고 헤어졌다.

그리고 미스 홍 권사님은 전화도 없으시고 연락두절 기간이 6년이 넘었다.

어쩌면 지금 90은 되셨을 것 같은데

이 세상에 사시는지 천국에 사시는지가 더 궁금하다.

만약 미스 홍이 1970년대에 6천만 원을 아주 작은 개척교회

젊은 목사님한테 헌금을 했더라면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 본다.

 

꼭 큰 교회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유익한 점을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지만

자존심 때문일 수도 있다.

대형 교회에서 그 정도 헌금해 가지고는 인사 기록에도 오르지 못한다.

 

나를 마지막 찾아 왔을 때 미스홍 권사는 아는 사람 집에

보증금 500에 5만원씩 내고 사는데 아들이 보낸 돈은

병이 나면 약값으로 다 들어가고 자기는

아무 집에서나 허드렛일을 도와주기도 한다 했다.

이제는 그것마저 못할 것이다.

아들이 도와주었으면 모르되 안 도와주었으면……?

 

그 분이 작은 교회에 6천만 원(당시 강남 아파트 2채 값)과

3천만 원(강북 아파트 1채 값) 합 9천만 원을 헌금했더라면

그 목사님이 늙은 권사가 셋방살이에 힘겹게 사는 것을 방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셋방에 사는 권사를 대형교회 목사님은 알지도 못하지만

교인들마저 위로하는 사람이 없었던 듯하다.

20대의 꽃보다 아름답던 여자도 눈이 너무 높으면

80대에는 이름만 아름다운 미스일 뿐

허수아비 옷만도 못한 것이 아닌가.

 

남은 출판비는 안 가져와도 좋으니

한번 편히 지내고 계시다는 소식이나 들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