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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번 들어도 좋은 이야기 14 / 전두환과 K-반도체

웃는곰 2026. 2. 14. 10:43

백번 들어도 좋은 이야기 14 / 전두환과 K-반도체

- 이철호 논설고문문화일보 -

 

198328일 삼성 이병철 회장이

반도체 산업에 진출한다는

도쿄 구상을 밝혔다.

모두가 무모하다며 들고 일어났다

정부 반대도 격렬했다.

 

농수산부는 반도체한다고 곡창인 기흥의 논밭을 허물 수 없다

막아섰고, 상공부는 대일 무역적자가 심각하다

일본산 반도체 장비 수입에 반발했다.

 

김재익 청와대 경제수석만 오명 과학기술 비서관을 통해

도쿄 구상의 중요성을 꿰뚫고 있었다

그는 전두환 대통령에게 반도체 산업 필요성을 열심히 각인시켰다.

 

1983109, K-반도체 운명은 기로에 섰다.

북한의 아웅산 묘소 테러로

김 수석 등 수뇌부 17명이 폭사한 것이다.

하지만 전 대통령은

사태 수습 한 달 뒤인 11,

첫 산업시찰로 삼성 반도체 부천공장을 방문했다.

 

당시 안내를 맡은 이건희 부회장에게

애로사항이 있으면 다 말하라고 했다.

그리고 전 대통령은 이후 반도체 산업의 최전선에 섰다.

 

반도체는 국가 명운이 걸린 일이라며

기흥 건설 현장까지 찾아갔다.

논밭 매입은 물론 공장 부지로 형질 변경까지 직접 챙겼다.

각 부처에 전력과 용수 공급을 독려했다.

 

그 해 일본에서 받아낸 40억 달러의 안보·경협차관

최우선 투자 순위도 반도체로 돌렸고,

당시 50%였던 일본산 반도체 장비 수입 관세는 0%로 내리도록 지시했다.

전무후무한 속도전 끝에 기흥 반도체 공장은 착공

6개월 만에 준공됐다.

 

전 대통령은 퇴임을 불과 며칠 앞둔

19882, 4MD램 개발 주역들을 모두 청와대로 불렀다.

노고를 치하하며 술잔을 돌리던 그는

“64MD램은 세계에서 제일 먼저 개발해 주시오라고 부탁했다.

그때는 대통령이 아니었지만,

돈이 없으면 내 머리카락이라도 팔아서 한턱 내겠소.

이제 몇 가닥 안 남아서 아주 비싸게 팔릴 거요라며

자신의 머리를 매만졌다.

만찬장은 웃음으로 가득했다.

 

삼성은 김재익 수석의 은덕을 잊지 않았다.

이건희 회장은 부탁 하나는 꼭 들어드리고 싶다며 유족을 챙겼다.

 

박사 과정 때 열심히 공부했던 미 스탠퍼드대에 작은 흔적이라도

남기고 싶다는 유족들의 희망에 따라 남몰래 거액을 희사해

스탠퍼드대 경제학관에 김재익 룸이 생겨났다.

 

K-반도체 신화는 그렇게 이병철 회장의 뚝심과

전 대통령의 전략적 결단, 김재익의 통찰력이 맞물려 시작됐다.

지금 삼성반도체는 세계를 흔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