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193 / 태풍 허풍
“국자 씨, 딸 하나는 참 예쁘게 두셨소.
내가 전국 방방곡곡 떠돌며 많은 여자들을 보았지만
아가씨처럼 예쁜 사람은 보지 못했소.
나를 보고 첫 대면에 화를 냈지만 화내는 얼굴이
꽃처럼 예쁘게 보였으니 참 예쁜 인물이오.”
윤달이 더 있기 싫다는 듯 뾰로통해서 나가버렸다.
그 뒷모습을 보고 태풍이 국자를 향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국자 씨 딸이 참 예쁘게 생겼소. 내가 좋은 데 중매 한번 할까?”
국자가 딱 잘라 말했다.
“씰대 없는 소리마, 갸는 이미 내가 점찍어 놓은 신랑감이 있으니께.”
“그럼 머지않아 혼인잔치가 벌어지겠군. 그런 의미에서 소주 한 병.”
“돈도 안 내면서 무신 소주여. 늦기 전에 돌아가.”
“난 갈데없는 신세여. 이럴 때 아는 사람 좋다는 게 뭐여?”
“어디서 지내는겨?”
“고시원이라는 거 알지? 거기가 내 연구실이야.”
“그게 뭔 소려. 나 문 닫을랑게 빨리 가아.”
“알았어. 내일 또 올게.”
“또 올 거 읎어. 안 반가우니께 다시는 오지 말어.”
“내가 손님으로 와도 안 된다고?”
“그런 손님 기차로 실어와도 싫어.”
“두고 보자.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고 했으니.”
“그 주제에 큰소리는.”
술값도 안 내고 소주 한 병을 마신 태풍이 돌아갔다.
국자는 돌아가는 뒤에다 소금을 뿌리며 지껄였다.
“가난 귀신 물러가라. 다시는 오지 말고.”
메세나운동을 아시나유?
한편 곳간이 조용하여 하필이 이층으로 올라가 보았다.
언제 왔는지 허당하고 하우가 주문서의 책을 찾고 있었다.
허당은 꼬부랑글씨 책을 찾고 하우는 한글로 된 책만 찾고 있었다.
“하우는 안 가고 뭘 혀?”
“주문서 책 찾고 있잖아.”
허당이 왔다는 말도 없이 와 있는 것을 보고
못된 녀석이라는 생각을 하고 꾸짖듯 말했다.
“허당은 언제 온 겨? 말도 없이 그럼 못 써.”
“죄송해요 아저씨.”
“조심혀.”
하필은 전보다 말투가 누그러졌다.
만약 허당이 국자 딸하고 맺어지면 큰 손해를 보기 때문에
모질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속셈이 있기 때문이었다.
‘저 인물을 놓치면 3억이 날아가는 겨.
내 맴에는 안 들지만 하우가 좋아하는 눈치니께…….’
하필은 어떻게 해야 허당 앞으로 된 통장을 자기 통장에다
이체시킬까 연구하며 하루를 보내고 말았다.
다음 날 허당은 「헌 책방 할아버지」 열 권에
「으라차차 뚜벅이」라는 동화책 세 건을 얹어 들고 서울로 갔다.
날마다 다니는 길이라 익숙하게 회장 회사 빌딩 앞에 도착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오는 것을 아는 경비실장과 김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경비실장이 인사도 건너뛰고 물었다.
“책 선생, 오늘도 새 동화책 가지고 오셨지요?”
“야.”
김씨는 조심스럽게 인사를 했다.
“책 선생님 날마다 뵈어 반갑습니다.”
“고마워유. 오늘은 「으라차차 뚜벅이」라는 동화책을 가져왔쥬.
두 분이 하나씩 보세유.”
김씨가 받아서 경비실장한테도 한 권을 넘기자 경비실장이
제목을 보고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는 흉내를 내며 지껄였다.
“뚜벅 뚜벅, 무슨 책 제목이 이렇게 웃기나 하하하.”
허당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책을 대할 때 읽어보지 않고 함부로 말하는 건 실례유.”
경비실장이 코가 납작해져 고개를 꺾었다.
“죄송합니다. 내 주둥이가 이래서 미움을 삽니다.”
허당은 더 말하지 않고 회장실로 갔다. 회장은 늘 너그러운 얼굴로 반겼다.
“어서 오시오. 허선생.”
“지는 선생이 아니라니께유.”
“알았소. 미스터 허, 오늘은 덤으로 무엇을 가지고 오셨나요?”
“이런 책인디유. 기업을 크게 허시는 분들이 읽어보면 꼭 참고가 될 것 같아서 가져왔지유.”
회장이 받아서 여기저기 훑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음, 메세나운동을 권장하는 획기적인 동화로군.
기업인들이 연구해 볼 아이템인데…….”
허당이 물었다.
“회장님은 메세나운동을 알고 계셨나유?”
“알고 있지요. 이런 동화책이라도 널리 보급된다면 기업인들이
연구할 콘텐츠가 될 텐데, 요새 기업인들은 이 분야에 어둡단 말이오.”
“그렇지유? 국내에서 훌륭헌 작가를 발굴허고 작품을
세계화시켜 세계 시장을 공격허면 기업도 유익허고
우리나라에서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올 것이구먼유.”
“맞아요. 나도 이 동화책을 다 읽은 후에 그 방향을 연구해 보리다.”
신사임당과 장희빈 같은
허당은 회장님의 안목에 감동하였다.
“회장님은 심지가 깊고 위트 있는 뛰어난 분이시유.
먼저 드린 귀 밝은 임금님도 읽으셨지유?”
“그 동화책도 다 읽었지요. 나라 임금님이 그 정도로 심지가 깊고
지혜로워야 나라가 잘되고 지방 관리들도 동화속의 이장을 본받아야 할 내용이지요.
동화라고 하여 우습게보았는데 읽고 보니
나도 반성하고 마음을 새롭게 갖는 계기가 되었어요.”
“회장님이 바로 귀 밝은 임금님이시네유.”
“하하하,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고맙소.”
“모든 사람들이 회장님처럼 동화책을 즐겁게 읽고
스토리가 주는 메시지를 활용하면 을마나 좋겠어유.”
허당은 회장님과 이런 대화를 나눈 다음 곧장 책 곳간으로 돌아왔다.
사무실 안에서 어제 왔던 태풍영감 목소리가 회리바라처럼 어지럽게 흘러 나왔다.
“하하하, 하필이, 이 집에 일하는 청년이 있는가?”
“그려.”
“그 청년 인물이 어떤가?”
“별루여.”
“국자 말로는 그 청년을 자기 사윗감으로 정했다는데 어떤가?”
“괜한 소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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