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속의 아이들. 27 / ⑦ 차용증보다 신용이 먼저
“교장 선생님, 고맙습니다. 제가 이리 오기 전에는 사글셋방을 살았지만
선생님 은혜로 지금은 집도 사고 사업도 잘되어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누구신지 모르지만 학교 간식비를 제공하신 분의 은혜도 잊지 않겠습니다.”
“모두가 부형님이 성실하여 받은 보응이지요.”
“모두가 교장선생님의 은덕입니다.
말씀드리기 조심스럽습니다만 이제 저도 학생들한테 간식거리를
제공할 만큼 좋아졌으니 간식은 앞으로 제가 맡도록 해주십시오.
그리고 그 동안 도와주신 분한테는 고맙다고 전해주시고
이제 다른 사람이 뒤를 잇게 되었다고 해 주십시오.”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분이 그런 제안을 받아들일 분이 아니십니다.”
“어떤 분이신데 그럴까요? 저를 살려주신 분이시라 만나서
은혜를 갚아야 할 분이 아니신가요?”
“그렇기는 하지요. 그분은 부형님과 우리 학교에 큰 힘이 되어 주신 분입니다.”
“그분이 뉘신지 말씀해 주시면…….”
“그 청만은 들어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시면 더 여쭙지 않겠습니다.
그분의 짐을 제가 반이라도 나누어질 수 있는지 그것이나 상의해 보시지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아무 생각 마시고 지금 하시는 일에만 전념해 주십시오.
저는 직원회의가 있어서…….”
교장 선생님은 급히 자리를 떴습니다.
덕구는 학교에서 나와 좁쌀영감을 찾아갔습니다.
영감은 여전히 꼬장꼬장한 모습으로 자기 건물 관리사무실에서 까치보다
빽빽대는 음성으로 누군가와 전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내일까지 원금 돌려오라고! 이 사람아,
이자도 제대로 안 보낸 것이 몇 달째야? 뭐야? 이자가 높다고?”
덕구가 들어서자 영감은 전화를 급히 끊고 금니를 번쩍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아아니, 박사장이 웬일이신가?”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그럭저럭 살고 있네만, 무슨 바람이 불어서 예까지 오셨나?
듣자 하니 요새 덕구찐방이 날개가 돋혀 사고 싶어도 못 산다는 소문이 자자하던데 어떤가?”
“소문이 그런 것뿐이지요.”
“다 듣고 있었네.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를 안 주려고 하루에 천 개밖에 안 만든다면서?”
“아닙니다.”
“그런데 왜 그런 소문이 떠도나? 다른 사람들은 그런 빵을 만들려고 해도 못 만든다는 말도 들리던데 무슨 재주로 그렇게 좋은 빵을 만드는가?”
“좋은 자료에 아낌없는 정성을 담을 뿐이지요.”
“참 좋은 말일세, 좋은 자료에 정성을 담는다? 하하하. 좋은 말이야.”
“영감님, 제가 약속한 사 년이 아니라 이년 만이지만 빌렸던 돈을 갚으러 왔습니다.”
영감은 눈을 번쩍 떴습니다.
“뭐라고?”
“빌려주셨던 돈과 이자를 갚으려고 왔습니다.”
“이 사람아, 내가 차용증을 잃어버려서 찾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지 않았던가?”
“차용증이 무엇이 그리 중요합니까.
그런 것 없어도 신용이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저는 차용증보다 신용을 더 믿습니다.”
“자네는 그런지 몰라도 나는 달라. 만약 누군가가 내가 잃어버린
차용증을 주워가지고 박사장한테 돈을 내놓으라고 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럴 리는 없습니다. 거래 은행 계좌를 알려주시면 오늘이라도 입금해 드리겠습니다.”
“그건 안 될 말일세. 난 그렇게는 못해.”
“왜 그러십니까? 갚는다는데…….”
“돈을 떼이더라도 차용증 없이는 못 받네.
어디 가서 자네가 그것을 찾아가지고 온다면 모를까.”
“그러지 마시고 은행 계좌나 알려주십시오.”
“안 된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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