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를 살린 토끼
위기에 몰린 토끼
하얗고 예쁜 토끼 한 마리가 곰과 늑대에 쫓겨 호랑이 앞으로 달려오며 소리쳤습니다.
“아저씨, 호랑이 아저씨 저 좀 살려주세요!”
호랑이가 눈을 번쩍거리며 토끼를 바라보고 싱그레 웃었습니다.
“허허허, 내 밥이 제 발로 오는구나. 허허 어흥!”
토끼가 호랑이 품속으로 바람처럼 파고들었습니다. 그 뒤를 커다란 곰과 늑대가 달려오다가 딱 멈춰 섰습니다.
늑대가 말했습니다.
“미련한 놈 우리가 무섭다고 도망쳐서 겨우 더 무서운 호랑이 아가리로 들어가다니! 으히히히.”
곰도 한 마디 했습니다.
“토끼 놈은 귀만 크지 머리는 돌대가리라니까. 우리한테 잡혀 먹히지 않겠다고 호랑이 아가리로 들어가다니 흐흐흐.”
호랑이가 품에 안긴 토끼를 무서운 눈으로 들여다보며 물었습니다.
“이놈아, 내가 누군지 아느냐?”
“호랑이 아저씨잖아요.”
“허허허, 내가 얼마나 무서운지 아느냐?”
2. 호랑이 품에 안긴 토끼
“알아요.”
“안다면서 나한테 살려달라고 왔단 말이냐?”
“예, 호랑이 아저씨.”
“도토리만한 놈이 간도 크구나. 내가 얼마나 무서운 줄은 알면서 나한테 달려들다니. 미련한 놈 으흐흐흐.”
“호랑이 아저씨 궁조입회(窮鳥入懷)라는 말 아시지요?”
“이놈아, 나 같은 호랑이가 그런 말을 어떻게 아느냐?”
“호랑이 아저씨는 동물의 왕이잖아요.”
“왕이면 다냐? 네가 아는 대로 말해 보아라.”
“포수가 새를 잡으려고 총을 겨누면 위기에 몰린 새가 달아나지 않고 포수 품으로 날아든다는 말이에요.”
“음, 포수가 총 한 방 안 쏘고 새를 잡아먹는단 말이로구나.”
“아니에요. 포수는 날아든 새가 귀여워서 먹이도 주고 쓰다듬어주고 새장도 만들어 행복하게 살게 해 준다는 거예요.”
“허허, 귀만 큰 줄 알았더니 아는 것도 제법이로구나. 네 말을 들으니 내가 널 잡아먹을 수가 없잖으냐?”
“호랑이 아저씨, 배고프시면 저를 언제든지 잡아 잡수세요. 미련한 곰이나 못된 늑대한테 잡혀 먹히는 것보다 호랑이 아저씨의 밥이 되는 게 훨씬 기뻐요. 호호호.”
3. 토끼를 우리 먹이로 주세요
“하하하, 놈이 귀여운 소리만 하는구나.”
이때 호랑이 품에서 호호거리고 웃는 토끼를 바라보고 있던 곰이 말했습니다.
“호랑이 형, 그 토끼는 저희들 먹이로 해주세요. 형님 먹이로는 너무 작아요.”
늑대도 말했습니다.
“토끼 같은 작은 것들은 형님 먹이로는 안 어울립니다.”
호랑이가 말했습니다.
“그럼, 내 먹잇감으로는 어떤 것이 좋으냐?”
“얼룩말이나 코끼리나 낙타같이 큰 것들을 잡아먹어야 어울리십니다.”
“음, 그런 것들이 없을 때는 뭘 잡아먹으랴?”
곰이 대답했습니다.
“산돼지도 있고 노루도 있으니 아무것이나 잡아먹어야지요.”
“그런 것들이 없을 때는 어떻게 하랴?”
“할 수 없이지요. 작지만 품속의 토끼라도…….”
“이놈들아, 너희가 궁조입회라는 말을 아느냐?”
“궁조? 궁조……,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토끼만도 못한 무식한 놈들. 내 말을 들으면 토끼를 내주마.”
4. 토끼를 내주는 조건
곰과 늑대가 좋아서 벙글거리며 대답했습니다.
“정말이십니까?”
“너 같은 것들한테 거짓말을 하겠느냐? 대신 내 말을 꼭 지켜야 한다. 알겠느냐? 하라는 대로 안 하면 잡아먹을 것이다.”
곰이 몸을 이리저리 흔들면서 대답했습니다.
“좋습니다. 말씀만 하십시오.”
호랑이가 늑대한테 눈길을 보내자 늑대도 대답했습니다.
“말씀만 하십시오. 맹세합니다.”
“좋다. 이제부터 누구한테 토끼를 내주면 좋을지 결정하겠다. 둘이 싸워서 이기는 놈한테 토끼를 내주겠다. 자, 싸워라!”
곰과 늑대가 놀라서 한 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
“네?!!”
“둘이 싸워서 이기는 놈한테 토끼를 내준다고 했다. 싸우지 않으면 당장에 둘 중에 한 놈을 내가 잡아먹을 것이다. 죽기 싫으면 싸워라. 알겠느냐?”
곰이 늑대를 보고 눈을 하얗게 흘겼습니다. 늑대도 곰을 노려보며 앞발을 쳐들었습니다. 곰이 화난 소리를 질렀습니다.
“어우웅! 훅훅!”
늑대도 눈을 부릅뜨고 부르짖었습니다.
5. 먹이를 위한 사생결투
“캉! 카캉캉! 우으욱!”
늑대가 먼저 앞발로 곰의 콧등을 할퀴었습니다. 한 방 맞은 곰이 눈에 사나운 빛을 뿜으며 늑대를 번쩍 들어 메어쳤습니다. 땅바닥을 뒹군 늑대가 일어서며 곰의 뒷다리를 물고 늘어졌습니다. 곰도 늑대 꼬리를 물었습니다.
뒷발 물린 곰이 늑대 꼬리를 끊어져라 꽉 깨물었습니다. 늑대가 물었던 입을 벌리고 캑캑 소리를 치면서 나뒹굴었습니다. 나뒹군 늑대가 곰의 뒷다리를 다시 물었습니다. 곰과 늑대는 물고 물린 채 우웅! 캬캭! 이리저리 어지럽게 뒹굴었습니다.
토끼가 물었습니다.
“호랑이 아저씨, 누가 이길까요?”
“두고 보자.”
“곰이 이길 것 같지 않아요? 호랑이 아저씨?”
곰과 늑대는 한나절을 싸우다가 지쳐서 물었던 입을 짝 벌리고 피를 흘리며 제각각 떨어져 벌러덩 나뒹굴었습니다. 호랑이는 곰과 늑대가 흘린 피를 보고 빙긋이 웃었습니다.
“미련한 놈들. 토끼 하나를 먹자고 피를 흘리다니, 흐흐흐.”
곰은 눈을 번쩍거리며 헉헉거리고 늑대는 네 다리를 쭉 뻗고 벌러덩 자빠져 죽은 듯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6. 형님 고맙습니다
호랑이가 늑대 곁으로 가서 앞발로 늑대를 툭툭 쳤습니다. 늑대는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곰은 숨을 헐떡거리며 눈을 껌벅껌벅하고 호랑이를 향해 말했습니다.
“호랑이형, 내가 이겼지? 토끼는 내 거야. 그렇지 형?”
호랑이가 토끼를 돌아보고 물었습니다.
“토끼야, 곰이 너를 먹겠단다. 어떠냐?”
“싫어요. 난 호랑이 아저씨 거예요.”
“그래도 곰이 이겼으니 약속을 지켜야 할 것 아니냐.”
곰이 일어서지도 못하면서 좋아서 흐흐거렸습니다.
“으흐흐흐. 호랑이형님 의리가 고맙습니다.”
호랑이가 대답했습니다.
“이제 한 가지 조건을 내놓겠다. 일어나서 토끼하고 저 산 위에 있는 큰 바위를 돌아오너라. 네가 먼저 돌아오면 토끼를 내주고 토끼가 먼저 돌아오면 내가 너를 잡아먹겠다.”
곰이 일어서려다가 쿵하고 쓰러지면서 울상을 지었습니다.
“호랑이형님, 저는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토끼하고 경주를 못하겠다는 것이냐?”
“지금은…….”
“그러면 토끼도 내줄 수 없다.”
7. 토끼의 착한 마음씨
호랑이가 죽어 자빠진 늑대를 보고 말했습니다.
“흐흐흐, 오늘은 저 놈을 먹고 내일은 저 곰을 잡아먹어야겠다. 토끼야, 네 덕에 포식을 하게 되었다. 고맙다. 흐흐흐.”
곰이 놀라 소리쳤습니다.
“호랑이형,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어? 나까지 잡아먹겠다고? 그건 안 돼!”
토끼가 호랑이한테 사정했습니다.
“호랑이 아저씨, 곰 아저씨는 아직 살아 있지 않아요? 많이 아플 거예요. 살려주세요.”
호랑이가 사랑이 가득한 눈으로 토끼를 쓰다듬었습니다.
“흐흐흐, 요 녀석 얼굴만 예쁜 줄 알았더니 맘씨도 예쁘구나. 알았다. 네가 그렇게 사정하니 소원대로 곰은 살려주마.”
이 소리에 곰이 눈물을 흘리면서 토끼한테 말했습니다.
“토끼야 고맙다. 이 은혜 잊지 않을게. 내가 일어나면 너를 날마다 업어주마. 호랑이형 고마워.”
“흐흐흐 알았으니 네가 나으면 토끼한테 신세를 갚아라.”
호랑이는 늑대를 잡아먹고 불룩한 배를 쓰다듬으며 큰 나무 밑으로 가 벌렁 누워 토끼한테 일렀습니다.
“난 배가 부르면 잠이 온다. 한숨 잘 테니 곰을 잘 지켜라.”
8. 칠엽삼홍초(七葉三紅草)
호랑이가 쿨쿨 자고 있을 때 나무 위에서 큰 뱀이 혀를 날름거리며 내려와 호랑이 등을 꽉 물고 똬리를 틀었습니다. 뱀이 물자 호랑이가 깜짝 놀라 몸을 흔들었지만 뱀은 꼼짝 않고 달라붙어 독을 뿜어댔습니다. 잠깐 새에 호랑이 등이 퉁퉁 부어올랐습니다. 토끼가 울먹이는 소리로 말했습니다.
“호랑이 아저씨, 아저씨 어떡해요? 아주 큰 뱀이에요.”
그 소리에 눈을 감고 있던 곰이 고개를 들고 바라보다가 놀라면서 토끼한테 말했습니다.
“저놈은 아주 독하다. 그냥 두면 호랑이형님이 돌아가신다.”
“곰 아저씨, 어떡하지요?”
“나도 일어설 힘이 없어서 도울 수가 없다. 내 말대로 하거라. 저 산 꼭대기에 큰 바위가 보이지? 그 바위 밑에 가면 잎사귀가 일곱에 빨간 열매 세 개가 달린 풀이 있다. 그 풀을 사람들은 칠엽삼홍초라고 한다. 그 풀을 뜯어다 뱀한테 대면 뱀이 죽는다. 빨리 올라가 칠엽삼홍초를 뜯어 오너라.”
“네, 아저씨 고마워요. 빨리 가서 뜯어오겠어요.”
토끼는 있는 힘을 다해 산꼭대기를 향해 달렸습니다. 큰 바위 가까이 가 보니 파란 잎사귀 위에 빨간 열매가 달린 풀이 보였습니다.
9. 만신창이가 된 토끼
토끼가 바위 밑으로 들어가 풀을 뜯으려는 순간 바위에 붙은 벌집에서 왕벌들이 와르르 달려들어 토끼를 공격했습니다. 토끼는 순식간에 벌이 달라붙어 온 몸이 새까만 토끼가 되었습니다. 귀가 찢어지는 듯 아프고 등과 다리가 저렸습니다. 그래도 토끼는 칠엽삼홍초를 뜯어 물고 비탈을 데굴데굴 굴렀습니다.
등에 붙은 벌떼들이 떨어져 나갔으나 귀에 붙은 벌들은 귓속까지 파고들며 쏘아댔습니다. 토끼는 입에 물고 있는 칠엽삼홍초를 놓치지 않으려고 입을 악문 채 눈물을 흘리며 산비탈을 계속 구르고 또 굴렀습니다. 벌에 쏘인 등에 가시가 박히고 풀숲에 찔린 다리에서 피가 났습니다.
높은 산을 다 내려왔을 때는 벌들이 모두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러나 가시에 찔리고 풀에 긁힌 몸뚱이는 피로 얼룩져 하얀 토끼가 빨간 토끼로 변했습니다. 토끼가 가까스로 기어서 호랑이 가까이 다가갔을 때 호랑이의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이구우! 나 죽는다, 아이구 어으흐흐응!”
호랑이가 퉁퉁 부은 채 몸을 꼬면서 우는데 뱀은 눈을 부릅뜨고 더 무서운 기세로 호랑이 등을 공격하고 있었습니다. 힘이 없어서 일어서지 못하는 곰이 머리만 쳐들고 소리쳤습니다.
“토끼야, 빨리 그 풀을 뱀한테 대라!”
10. 은혜 입은 호랑이
토끼가 달려들어 약초를 뱀한테 대는 순간 뱀이 똬리를 풀며 기다란 장대처럼 쭉 뻗었습니다. 그리고 피를 흘리며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그 순간 놀랍게도 퉁퉁 부어올랐던 혹이 가라앉고 괴로워하던 호랑이가 정신을 차렸습니다.
“토끼야 고맙다. 네가 나를 살렸다.”
“호랑이 아저씨, 저한테 고맙다고 하지 말고 곰 아저씨한테 고맙다고 하셔요. 곰 아저씨가 약초를 가르쳐 주어서 뜯어왔어요. 곰 아저씨가 아니었으면 호랑이 아저씨는 죽었을 거여요.”
호랑이가 곰한테 고맙다는 눈길을 보냈습니다.
“곰아, 고맙다. 고마워! 이 은혜 잊지 않으마.”
곰이 빙긋이 웃으며 받았습니다.
“호랑이형, 나보다 토끼가 아니었으면 형은 죽었을 거야. 저 토끼 꼴 좀 봐. 하얗던 것이 빨간 토끼가 되지 않았어?”
호랑이가 토끼를 사랑스럽게 앞발로 쓰다듬었습니다.
“네가 고생했다. 귀도 등도 상처투성이로구나. 네 상처는 내가 핥아주면 바로 바로 낫는다. 내 침이 약이다.”
호랑이가 혀로 빨간 토끼 등과 귀와 배, 다리를 핥아주자 토끼가 감격하여 말했습니다.
“호랑이 아저씨, 저보다 건강해지셔서 고맙습니다.”
11. 나를 호랑이라 부르지 말아다오
호랑이가 곰과 토끼를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네가 곰을 살리고 곰은 나를 살렸으니 은혜 위에 은혜로다. 이렇게 기쁜 일이 어디 있느냐. 으흐 하하하.”
토끼도 깔깔거리며 좋아했습니다.
“호랑이 아저씨, 곰 아저씨 고맙습니다.”
이때 호랑이가 너그럽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예쁜 토끼야, 나 보고 호랑이, 호랑이 하지 마라.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게 호랑이라는 소리다. 난 그 소리가 싫다.”
이때 곰도 한마디 했습니다.
“흐흐 크크웅, 사람들이 곰이라고 하는 소리가 나도 싫다. 사람들은 미련 바보 곰탱이를 곰이라고 한다. 내가 왜 곰탱이냐. 너까지 나를 곰 아저씨라고 하는 건 싫다.”
호랑이가 번쩍거리는 눈으로 둘을 번갈아 보며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쁜 아기를 보면 토끼같이 예쁘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토끼가 부러웠느니라. 토끼야, 이제부터 곰 아저씨, 호랑이 아저씨 하고 부르지 말아다오. 나는 너를 좋아하는데 네가 나를 호랑이라고 부르면 너하고 나 사이에 거리가 생기는 느낌이 들어서 싫다. 흐흐흐.”
12. 너는 내가 되고 나는 네가 되고
곰도 턱을 주억거리면서 말했습니다.
“맞아요 형님. 나도 토끼가 곰 아저씨라고 부를 때마다 나는 곰 너는 토끼? 하고 섭섭한 생각이 들어요. 이제부터는 토끼가 그냥 아저씨라고 불렀으면 좋겠습니다.”
호랑이도 고개를 끄덕거리며 싱글벙글 대답했습니다.
“아우 말이 맞다. 토끼야, 이제부터 우리를 부를 때는 그냥 아저씨라고 불러라. 그러면 너는 내가 되고 나는 네가 되는 거 아니겠느냐. 우리 사이에 벽을 헐고 살자. 어떠냐?”
곰이 앞발로 박수를 치며 말했습니다.
“우우우, 짱! 아주 마음에 딱 드는 말씀입니다. 이제부터 나는 호랑이 형이라고 부르지 않고 그냥 형님이라고 하겠습니다. 호랑이 형님도 저를 그냥 아우 하고 불러주십시오.”
호랑이가 크게 웃으며 앞발을 높이 들고 산이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로 만세를 불렀습니다.
“으흐흐 하하하! 오늘부터 우리는 곰도 토끼도 호랑이도 아닌 한 형제다 만세, 만세 만만세! 어흐흥!”
만세 소리는 봉우리마다 만세, 만세 메아리 치고, 산속 나무들도 이파리마다 반짝반짝 웃고, 산새들도 몰려와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어 깊은 산속은 평화와 사랑으로 가득했습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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