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허리를 약간 다쳐서 물리치료를 받으러 가는 길이었다.
지하철 경로석으로 한 사람이 다가왔다.
떨그덕 떡덕 떨그덕 떡!
그 사람 발소리다. 허리는 구부러지고 한 어깨는 하늘로, 한쪽 어깨는 아래로 처진 채 한 눈은 일그러지고 얼굴은 팽팽한데 영 버린 모습이다.
비실비실 떨그덕 소리 나는 구두를 끌고 맞은편으로 가더니, 앉는가 했는데 노인 앞에 천원짜리 돈이 들린 한 손을 내밀고 구걸을 하는 것이었다.
한참을 무슨 소린지 모르게 중얼거리며 애걸하지만 그 사람은 들은 체도 않았다.
그 사람이 떨그덕거리며 내 앞으로 왔다.
무슨 말인가 하는데 잘 들을 수는 없고 동냥을 해 달라는 것인 듯하였지만
나는 오늘 따라 병원비 7천 원만 가지고 있어서 망설이며 계산을 해 보았다.
병원비는 5800원인 것 같다. 천원을 주면 될 것 같은데 혹 더 달라면 어쩌지? 하고
계산하는 동안 그가 일그러진 소리로
"건강하세요"
하고 다음 옆 사람에게 갔다. 다음 사람도 눈을 감고 입을 꼭 다물었다.
그 딸그닥거리니는 발길은 젊은이 쪽으로 갔다.
양쪽 줄에 14명을 지나 또 14명을 지나 저쪽 경로석에 도착했다. 나는 그를 지켜보며 생각했다.
"저 사람이 예수님이다. 내가 배고플 때 도와 준 너를 기억한다 하신 예수님이다. 예수님이 내 곁에서 구걸할 때 나는 침묵했고 그냥 보내놓고 이렇게 맘이 언짢으니 어쩌면 좋을까. 더구나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아닌가. 안 되겠다. 천원의 여유가 있을 수도 있으니 그거라도 주자."
떨그덕거리는 사람은 모두에게 구걸하고 아무도 돈을 안 주어도 옆으로 갈 때는 "건강하세요"하고 힘들게 꼬인 허리를 깊이 숙였다.
건강이 얼마나 중한 것을 깨달은 그인지도 모른다.
날 때부터 저런 모양으로 나오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나는 일어서서 부지런히 승객들 앞을 지나 그에게 가서 천원을 쥐어주고 내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그랬더니 마음이 얼마나 홀가분하고 개운한지 커다란 짐을 내려놓은 듯 가벼워졌다.
메리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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