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꽃대궐
나는 그림보다 아름답고 동화보다 즐거운 꽃 나라에서 자랐다.
가을이면 초가지붕에 황금 호박이 임산부 배를 하고 뒹굴고
빨간 고추며 대추가 해를 쪼이며 평화를 노래하던 고향 집.
초가지붕 아래 동생들 웃음소리에 묻혀 뒹굴던 추억이
아직도 쟁쟁한데 인생 황혼에 옛꿈을 그린다.
겨우내 봄을 기다리던 하얀 매화와 빨간 매화 두 그루가
눈 속에서 봄을 맞아 깔깔거리면 봄마다 노랑 개나리가 뒤란을
둥그렇게 감싸고 어깨동무를 하며 영차영차,
비탈진 넓은 뒤란 맨 위 구석엔 빨간 작약이 봄마다
튼실한 새순으로 돋아 풍만한 꽃을 피워 여름을 풍요롭게
밝히고 그 바로 곁에 난초가 예쁜 손을 내밀고 봄을
밀어 올려 팔을 활짝 펴고 여름내 꽃을 피워 들고 바람을 지휘했다.
그 위로 배나무 두 그루가 하얗게 꽃을 피워 향기로
하늘을 덮고 여름이면 가지마다 파란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팔이 아프게 가을을 기다리고. 배나무 바로 옆엔
백합 두 송이가 나팔 입을 벌리고 합창을 하면
온 뒤란이 향기로 넘실거리고 바로 귀퉁이에
어깨를 편 앵두나무가 눈 화장을 곱게 하고 바람에
화르르 화르르 꽃을 날린 뒤 여름 내내 빨간 앵두를
자랑하면 그것을 따먹으려고 비탈진 나무
밑에 길을 내고 오르내렸다.
바로 흙길 옆 장독대를 돌아가며 파랗게 뒤덮은
돌나물은 저희들도 꽃이라고 노란 입을 벌리고 헤헤 헤헤.
또 장독대 옆에는 빨간 맨드라미가 닭 벼슬 꽃대를
세우고 으스대는가 하면 여름이 짧다고 몸부림치는
봉숭아는 노랗고 빨간 분꽃과 시샘이라도 하듯 빨갛게
입술 화장을 하고 웃어대는,
향기 가득한 뒤란은 나의 놀이터였다.
앞마당 가에는 돌아가며 채송화가 납작하게 줄기를
깔고 앉아 빨간 꽃을 피우고 구석 그늘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제비꽃(반지곷)이 피는가 하면 텃밭에는 보랏빛 감자꽃,
울타리 둘레엔 새빨간 양귀비꽃,
밭 구석 마당가에는 역사를 알 수 없는 아름드리
큰 살구나무가 터줏대감처럼 버티고 있었다.
달밤이면 달을 나무 끝에 높이 꼬여 들고 흔들던 살구나무.
봄마다 넓고 높이 솟은 살구나무가지는 꽃방망이인 양
파란 하늘에 구름처럼 떠있고 그 사이를 벌 나비가 온 종일
붕붕거리며 춤을 추었다.
마을 건너 멀리서 바라보면 초가지붕이 커다란
솜이불을 덮은 듯 살구나무 꽃가지가 하얗게 덮여
꽃무리가 우람스러웠다.
그 위로 한 가닥 바람이 스쳐 가면 사르르 사르르 꽃잎은
눈꽃보다 아름답게 하늘을 가렸고 마당 귀퉁이는
봄 내내 새하얀 살구꽃잎 밭이었다.
나무 아래 꽃잎을
받아 물던 동생들 입술은 꽃잎처럼 예뻤다.
유독 우리 동네는 우리 집에만 넓은 뒤란이 있고 사과살구나무가
있어서 나는 자랑스러웠고 동네 아이들의 부러움을 샀다.
봄부터 가을까지 꽃 속에 묻혀 살던 내 고향집은
그림보다 아름다운 꽃대궐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살구나무도 떠났고 초가지붕도 세월 따라 떠났다.
남은 건 슬레이트지붕에
주인 없는 대문으로 이름 없는 바람만 찾아왔다
쓸쓸히 돌아간다.
언젠가 내가 돌아가는 날 새 집이 지어지고 친구들 웃음소리가
넘치겠지. 그 때 우리 카페 친구들 웃음 소리도 섞여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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