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9일 이찍 길을 떠나 브뤼셀에서 300키로 떨어진 프랑스 파리를 향해 떠났다.
몇 군데 다니다 세느강변 에펠탑 아래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모퉁이에
무궁화 한 그루가 지친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저 혼자 외롭개....
누가 저를 각별히 사랑해 주지 않아도 꿋꿋아 웃음만은 잃지 않고 서 있는 무궁화를 보면서 우리의 모습과 우리의 기질을 생각했다.
프랑스에도 무궁화가 있더라는 감동에 가장 먼저 올린다. 나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 나라 꽃
벨기에에서 프랑스로 들어가는 길목
여기 역시 국경이 따로 보이도록 금을 그어 놓은 곳이나 담이 없다. 차 옆에 작은 초소가 국경 검문소인데
아무가 지나가도 내다보는 사람이 없다. 있으나마나한 시설물
프랑스라는 나라 참 대단히 넓고 풍요롭게 보인다. 룩셈브르크는 대지가 울멍줆엉하게 넓은데 비해
여기는 잣대로 밀어 놓은 듯 평평한 대지가 구름 끝에서 구름 끝으로 이어진다
여기도 모두 밀밭과 옥수수 밭
시속 130키로가 규정속도인 나라 / 사위 차가 앞에서 대지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딸이 바짝 따른다.
안아서 키운 것이 엊그제 같은데 딸이 두 아이이의 엄마가 되어 지금은 친정 엄마 아빠를 태우고
당차게 따라가는 것이 신통하고 고맙다.
파리 시내로 들어섰다
승용차를 호텔에 주차시키고 파리 지하철을 탔다. 파리 지하철은 한국보다 좋을 줄 생각했는데 실망이다
우리나라 시골 장날 장꾼 타고 다니는 버스만도 못한 데다가 냉방은커녕 한증막이다
한국의 지하철은 화려하고 시원한 것이 자랑스럽게 여져졌는데......
이 부자 나라에서 돈이 없어 냉방을 못할 리는 없고 깊은 뚯이 있으려니 싶다
자연보호 독성가스 없애기 위한 전진국의 모범이 아닐까.
지하철을 바꾸어 타려고 지하 터널을 통과 중. 비좁은 통로에 벽화만은 화려하다
지하철을 세 번 바꾸어 티고 간 곳이 유명한 몽마르뜨 언덕
상상의 언덕은 간 곳 없고 높은 게단이 버티고 가로막아 서 있고 곁에 에스커레이터가
돈 내고 올라가잔다. 타고 올라가는 사람이 반도 넘었다.
나도 걷지는 못했고 그 걸 타고 올랐다.
1876년부터 40년에 걸쳐 지어짐. 빈잔틴 양식으로 몽마르뜨 언덕의 상징이 됨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패한 프랑스가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성금을 모아 지음.
내 상상의 언덕은 숲이 있고 잔디밭이 있고 거기 챙이 넓은 아가씨가 파란 눈에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려니 했는데
전혀 그것이 아니었다.
온 세상에서 모여든 별별 사람 전시장이다. 검은 사람, 하얀 사람, 누런 사람, 희도검도 않은 사람
게다가 별별 언어 별별 옷차림이 개미집 같다
멀리 내려다보이는 곳이 파리 시가지다. 어디나 그렇듯 오래 전에 건축된 도시는 나무가 없다.
여기는 서울보다 더 나무가 안 보이고 회색 시멘트 구조물로만 보인다
여기까지 왔으니 합동 기념 사진은 한번 찍자고 몽마르뜨 성당 계단 앞에 모였다.
몽마르뜨 성당은 매우 웅장했다. 그러나 어디서든 성당 안에서는 사진 쵤영을 금했다.
한 바퀴 돌아보기는 했으나 외모만 보고 돌아서야 했다.
몽마르뜨언덕
해발 129m의 야트막한 몽마르뜨 언덕은 쌩 드니 St. Denis 가 순교한 곳이라 ‘순교자의 언덕’이라고도 부른다고 함.
19세기말에는 르누아르· 고흐· 로트렉· 피카소 등 가난한 예술가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예술가촌을 형성했다 함. 그러나 무도장 등 유흥업소가 난립하면서 상업화해 가는 풍토에 환멸을 느낀 예술가들이 몽빠르나스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지금은 관광객을 상대로 돈벌이하는 예술가와 섹스숍이 즐비한 환락의 거리로 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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