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길에 한학자 한 분과 전철을 탔다. 젊은이 좌석이 네 개나 비어 있고 한쪽 끝에 노타이 양복쟁이 40대가 앉아 있었다.
웬 떡이냐고 그 빈자리에 가 앉았다. 그 사람 옆에는 한학자가 앉고 나는 그 다음에 앉았다. 40대가 물었다.
“이번 정거장이 어딥니까?”
한학자
“신촌입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정거장은 어딥니까?”
“홍대입니다.”
“감사합니다.”
“영등포구청역은 지났습니까?”
“네 정거장 남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택시를 타고 오다가 운전사가 전철역에다 내려주어 바꿔 탔습니다.”
“……”
“이번 정거장이 어딥니까?”
“신촌입니다.”
40대, 밖을 보며
“맞습니다. 신촌역이 맞습니다. 감사합니다. 길 안내를 아주 잘 하시는군요. 저는 오늘 좋은 택시 운전사를 만났습니다. 망우리에서 타고 신정동까지 가자고 했는데 시청 앞까지 데려다주면서 거기까지 가자면 요금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저를 그냥 내려주었습니다. 그 운전사 고맙지 않습니까?”
“……”
“앞으로 몇 정거장을 가야 신정동입니까?”
“영등포구청역에서 갈아타고 한참 가셔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정거장은 어디지요?”
“홍대역입니다.”
“그렇군요. 길을 아주 잘 아십니다. 감사합니다. 영등포구청역을 지났습니까?”
“……”
나도 한학자도 은근히 불쾌해지기 시작했다. 그 사람에게서 술 냄새가 풍겼다.
“택시 운전사 참 이상한 사람 아닙니까? 신정동까지 가면 요금이 많이 나온다고 시청역에서 내려주며 지하철을 타라는 거예요. 사실 나는 돈이 없지만 그 운전사 정말 친절한 사람이었어요. 누가 거저 태워줍니까? 안 그렇습니까? 이번 정거장이 어딥니까?”
한학자와 나는 일어섰다. 그리고 뒤 칸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쩐지 자리가 비었더라. 허허허.”
내가 웃자 그도 한 마디 했다.
“오죽했으면 택시가 중간에 내려놓고 돈도 안 받았을까요”
“비어 있는 자리 조심해야 하는 건 알면서 또 눈먼 짓을 했습니다.”
'인생 게시판 > 사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인들의 겸손 (0) | 2007.09.11 |
---|---|
통근 일기 (20) 7월 4일 / 돈 중독은 약도 없다 (0) | 2007.07.04 |
돈이 그렇게 좋더나 (0) | 2007.07.03 |
멋진 사나이 (0) | 2007.06.26 |
큰나무 작은나무 (0) | 2007.06.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