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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으로 보낸 편지

웃는곰 2017. 7. 25. 14:23

  

 

땅속으로 보낸 편지

 

선생님께서 편지를 한아름 안고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오늘은 엄마한테 이 편지를 갖다 드리세요. 엄마가 보시고 나면 이 봉투를 주실 거예요. 그러면 그대로 가지고 내일 학교로 오세요. 알았죠?"

 

"."

 

선생님께서는 한 사람에게 하나씩 봉투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수나도 받았습니다. 봉투마다 꼭꼭 봉하여 내용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수나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선생님이 주신 봉투를 엄마에게 드렸습니다. 엄마는 봉투를 뜯어보신 후에 빙그레 웃으셨습니다. 수나는 언제나 엄마가 그렇게 웃으실 때가 가장 예쁘다고 생각했습니다.

 

"엄마 무슨 편지예요?"

 

", 좋은 말씀이다. 답장은 내일 아침에 해드릴 테니 가지고 가서 선생님께 드리도록 해라."

 

이튿날 아침 엄마는 하얀 봉투를 정성껏 싸서 봉하고 수나에게 주었습니다. 봉투 속에는 무엇인가 이상한 것이 들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학교 교실에 들어서자 아이들이 모두 봉투를 가지고 나와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모두들 엄마가 주신 편지를 가지고 왔지요?"

 

"네에!"

 

"그럼 편지를 들고 모두 나와요."

 

선생님은 교실을 나서셨습니다. 아이들은 선생님을 따라 줄을 서서 걸었습니다. 모두들 이상하지? 하는 눈으로 서로 바라보면서 선생님을 따랐습니다. 선생님은 넓고 길게 손질된 화단으로 가셨습니다.

 

화단에는 어느새 여러 개의 호미와 학생들의 이름이 예쁘게 씌어 있는 작은 명패 팻말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화단 앞으로 나란히 세우신 다음 팻말을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부르며 그것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여러분, 모두 자기 이름이 적힌 팻말을 받으셨지요?"

 

"네에."

 

"이제부터 내가 하라는 대로 하세요."

 

선생님은 맨 앞에 아이에게 호미를 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잘 보아 두세요. 여기 미나가 가지고 온 편지를 화단에다 묻겠어요. 이렇게 적당한 깊이를 파고 편지를 묻는 거예요."

 

미나가 호미로 땅을 파고 흙 속에다 가지고 온 편지를 묻었습니다. 그 아이를 따라 다른 아이들도 땅을 파고 각자가 가지고 온 편지를 묻고 그 자리에다 자기 명패를 꼽았습니다.

 

모두가 편지를 땅에 묻은 다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즐거웠지요? 오늘 여러분은 엄마가 주신 편지를 땅에다 부친 거예요. 이제 기쁜 소식이 여러분에게 올 거예요. 어떤 소식이 오게 되는지 며칠만 있으면 알게 돼요. 앞으로는 이 화단을 잘 가꾸어야 해요. 알았죠?"

 

아이들은 무슨 답장이 올까 하여 머리를 갸웃거렸습니다. 수나도 많이 궁금하였습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엄마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엄마, 편지 봉투에 무슨 답을 넣었어요?"

 

"그게 그렇게도 궁금하냐?"

 

", 엄마."

 

"며칠만 있으면 알게 된단다."

 

"가르쳐 주시면 안 돼요?"

 

"가르쳐주면 재미가 없어. 조금만 기다려보려무나."

 

수나는 많이 궁금했지만 참고 기다려보기로 했습니다. 다른 아이들도 궁금하여 엄마에게 물어보았지만 아무도 대답을 해 주지 않았습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밤에 비가 내렸습니다. 한 아이가 화단으로 나가서 자기 이름이 있는 곳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거기에는 아주 귀여운 싹들이 파랗게 웃으며 두 손바닥을 벌리고 기지개를 펴듯 돋아나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가 신기하다는 듯 큰소리로 알렸습니다.

 

"얘들아, 나와 봐! 화단에 나와 봐!"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갔습니다. 그리고 제각기 자기 이름이 있는 곳으로 가서 화단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여기저기 화단에는 파란 새싹들이 고개를 들고 인사를 했습니다. 아이들은 모두가 좋아서 소리를 지르고 웃고 신기해했습니다.

 

수나도 자기 이름이 있는 곳으로 가 보았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새싹이 돋아났는데 수나의 자리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수나는 실망하여 아무 말도 없이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엄마한테 불만스럽게 말했습니다.

 

"엄마, 난 뭐야, 뭐냐구?"

 

"그게 무슨 소리냐? 뭐가 뭐야?"

 

"다른 애들은 다 편지 답장이 왔는데 나만은 아무 소식도 없잖아."

 

", 그거 말이냐? 아마 네 것은 다른 애들 것보다 훨씬 늦게 대답을 할 거야.

 

"그게 뭔데요?"

 

"그 대답은 내가 하는 게 아니야. 선생님이 비밀로 하라고 하셨거든."

 

이튿날 학교에 갔을 때 다른 아이들은 화단을 떠나지 못하고 자기 이름 앞에서 새로 소복이 돋아나는 새싹을 보면서 깔깔거렸습니다. 미나가 수나에게 다가왔습니다.

 

"수나야, 넌 무슨 싹이 돋았니?"

 

"아직 안 나왔어, ?"

 

"몰라, 아기손 같은 새싹들이 와글와글 돋아나고 있어."

 

"그러니? 어디 한번 가보자."

 

미나 자리로 가 보았습니다. 이름도 알 수 없는 야들하고 귀여운 떡잎들이 서로 어깨를 비비며 기어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어떤 아이의 것은 떡잎이 넓적하고 어떤 아이의 것은 뾰족뾰족한 것이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리고 있었습니다. 아주 작은 것들은 땅바닥에 붙어서 기어다니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것은 남 모르게 훌쩍 자란 것도 있었습니다.

 

아직도 모자를 벗지 못하고 있는 것들은 두꺼운 껍질을 들쓰고 두 떡잎으로 힘껏 밀어 올리고 있는 것도 있었습니다. 화단 가득히 새싹들이 돋아나 제각기 어깨를 펴고 하늘을 향해 노래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은 제각기 자기 떡잎을 보면서 그것이 무엇일까 궁금해했습니다. 아이들의 마음을 잘 아시는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모두 자기가 보낸 편지에 답장이 왔지요?"

 

"."

 

"아직도 소식이 없는 사람 있나요?"

 

"."

 

수나가 대답했습니다.

 

"그래요? 그렇지만 더 기다려 보면 소식이 올 거예요. 궁금하다고 땅속에 보낸 편지를 다시 열어보면 안 돼요. 알았지요?"

 

"."

 

몇 밤이 지났습니다. 아이들은 제각기 새싹들이 무슨 꽃인지 궁금하여 선생님께 여쭈어 보기로 했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데리고 화단으로 나가셨습니다. 그리고 맨 끝에서부터 하나씩 들여다보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싹은 봉숭아 같다. 그리고 이 싹은 분꽃, 이 싹은 코스모스, 이 싹은……"

 

다 둘러보니 같은 것들도 있고 저 혼자인 것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이제 자기 꽃이 아름답게 피어날 것을 생각하면서 꽃 꿈에 빠졌습니다. 봉숭아꽃이 필 것을 생각하는 아이들은 벌써 손톱에 빨간 봉숭아물이 들어 있기라도 한 듯 들떠 있고 그것이 부러운 아이는 자기에게도 봉숭아꽃을 물들이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이제 화단에 돋아난 새싹들이 긴 목을 내밀고 자기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하자 반가워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그러나 수나의 소식은 아직도 없었습니다.

 

다들 자기 꽃이 더 예쁠 것이라고 자랑들을 하는데 수나는 아무 것도 할 말이 없었습니다. 남들은 화단을 하루에도 몇 번씩 가서 들여다보고 물도 뿌려줍니다. 그러나 수나는 풀이 죽어서 화단에도 가기 싫었습니다. 화단만 보면 짜증이 나려고 합니다.

 

그렇게 몇 날을 더 보내고 난 어느 날 미나가 달려와 알려주었습니다.

 

"수나야, 너 소식 왔어, 가봐!"

 

"그래? 뭐 나왔어?"

 

수나는 반갑고 기뻐서 화단으로 달려갔습니다. 화단 수나 이름 아래에는 땅을 뚫고 올라오는 새싹이 보였습니다.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굵고 빨갛고 힘이 차 보이는 새싹이 물도 주지 않아 딱딱하게 굳은 땅을 뚫고 힘차게 돋아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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