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방/동화

할아버지 미워

웃는곰 2016. 4. 18. 14:10

할아버지 미워

머리말

요새 아이들이나 어른이나 생활습관이 엉망이다.
아내도 남편도 상하가 없어지고 아이들도 말버릇이 부모를 닮아간다. 그런데 부모들은 아이들 생각을 하지 않고 멋대로 말하니 아이들도 따라 그런다. 아이 하나에 어른 두서넛이 매달린 세상이다 보니 아이가 집안의 왕이고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가 다 종이 되어 제 정신이 아니다.
교육이라는 것도 감성을 다듬는 정서가 아니라 반드시 남을 이기고 올라서야  한다는 전쟁교육이다.
모두가 책을 떠나 티브이나 스마트폰에 매달려 속도에만 숙달되어 가고 있다. 날마다 어제 것이 주변에서 사라지고 새로운 것이 빨리 나타나 숨 쉴 새 없이 우리 생활을 바꾸어 놓는다.
가훈도 없으니 종훈이 있을 수 없고 집에서 가르침이 없으니 나가서 예의범절이 엉망이다. 어른이라는 사람들이 무너진 오륜 앞에서 한숨만 쉰다. 눈앞에 보이는 막된 인간의 망동을 보면서도 말을 못한다.
한 아파트에서 일어난 이야기다. 경상도 할배, 전라도 할배, 서울 노학자, 동네 늙은이, 교양있는 부인들이 등장하여 삼강오륜을 바로 세우려 노력한다.
아이들 말씨는 엉망이다. “할아버지 어디가? 아버지 밥 먹어,” “할아버지 죽지 마,” “그러냐? 난 돌아갈란다. 죽어서야 되겠느냐?” “할아버지 어디로 돌아가는데?” “내가 사람으로 생기기 전에 있던 곳으로 간다. 그 동안 내가 입고 다니던 몸뚱이는 땅으로 돌려보내고 간다. 너희들도 이 담에 나 있는 곳으로 오거라.”
버릇없이 크는 아이들 집에 할아버지가 온다. 처음에는 좋다고 환영했으나 차츰 할아버지가 가풍과 규율을 잡아가자 아이들이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점점 할아버지가 미워진다. 할아버지는 젊은 세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안 된다.
못된 버르장머리는 아이들만 있는 게 아니다. 애 아범 아들과 며느리가 그렇고 동네 부인네들 중에는 허영에 들떠 싸가지가 없이 군다. 이것을 바로잡아 보자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다.

1. 자식 자랑
서울 가는 기차에서 할아버지 둘이 한 자리에 앉았다.
두 시간은 가야 서울이다. 콧대가 반듯하고 빳빳해 보이는 영감이 얌전하게 함께 탄 옆자리 영감한테 인사를 건넸다.
경상도 사투리로 물었다.
“어디까지 가십니꺼?”
전라도 사투리로 대답했다.
“서울 안 가요!”
“서울까지 가십니꺼?”
“그렇당게요.”
“잘 됐십니더. 우리 통성명이나 하입시더.”
“그러시더라구요. 나는 배성수라 하오.”
“내는 최명구요.”
“서울 어딜 가신다요?”
“팔당동 재개발 아파트락하는데 서양 이름이라 기억은 못하오. 아들이 새로 샀다캐서 집 구경 하러 가오. 영감은 어딜 가시오?”
“팔당동 재개발 아파트라고 하셨당가요?”
“그렇소. 아주 비싸다캤소.”
“나도 그 동네에 새로 지은 에버그린힐굿네이버아파트라고 아들이 새로 샀다고 해서 가는 길이랑게요.”
“영감! 바로 내가 잊어버린 아파트 이름이 그런 것이었소. 에버인지 아범인지 그렇게 길었소.”
“그렇담시 같은 동네로 가는 길이 아닌갑소이?”
“그런가 보오. 내가 기차에서 내리면 아들이 온닥했는데 같이 가입시더.”
“참 잘 되었구먼이라우. 나는 택시를 타고 갈 참이었는디……. 아들이 바빠서 못 나옹게 택시를 타고 아파트 이름만 대주면 서울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같은 아파트로 가는 길에 만났으이 이것도 인연 아닌기요? 우리 집안 이야기며 아들 이야기나 하면서 가입시더.”
“영감님 아들은 무슨 일을 한당가요?”
“우리 아들은 서울서 제일 큰 대학을 나와서 가장 큰 은행에 다닌다카는데 들어도 다 잊어뿌러서 모르겠소. 영감님 아들은 무슨 일을 하십니꺼?”
“우리 아들은 서울서 일류대학을 나와서 일류 회사의 부장이랑게요.”
“훌륭한 아들을 두신 것 같소.”
“영감님 아들이 더 좋은 일을 하는 갑소.”
“손주는 몇이나 되시오?”
“아들 딸 남매가 있는디 모두 재주가 뛰어나다고 한당게요. 영감은 어떠시오?”
“나는 손자만 둘이락하오. 그 아들도 머리가 어미 애비를 닮아서 천재락합디더.”
“우리 애들도 천재란 소문이 자자한디 그런 것까지 같당게요.”
“영감은 무슨 일을 하셨소?”
“면사무소에서 부면장까지 지내고 지금은 놀고 먹지라우.”
“크게 출세하셨소. 나는 농사만 짓다가 늙었소.”
“면장도 못한 주제가 무슨 출세랑가요.”
“그래도 펜대만 굴리지 않았소.”
해도 좋고 안 해도 좋고,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인 이야기를 하다가 서울역에 도착했다. 서울역 앞에서 기다리던 최영감 아들이 달려왔다.
“아버지 왔어?”
“그래, 오래 기다렸나?”
“아니, 금방 왔어. 내가 근무하는 은행이 바로 저 건너편이야.”
그러면서 곁에 서 있는 배영감을 보고 물었다.
“이 할배는 아버지캄 왔나?”
“그래, 내캄 왔다. 네 차에 같이 타고 갈기다.”
그렇게 하여 최영감 아들 차에 오른 배영감은 속으로 곱씹었다.
‘아들 녀석 말씨가 저게 뭐여. 말끝마다 반말인데 저 영감도 한심하군.’
차를 모는 아들이 곁에 앉은 아버지를 향해 물었다.
“농사는 잘 지었어?”
“그래, 잘 지었다.”
“올해는 쌀 몇 가마니나 줄 거야?”
“네 맘대로 가져가라. 농사는 내가 짓고 먹기는 네가 하는기 아이가.”
“고마워 아버지.”
그리고 뒤를 향해 물었다.
“할배는 어디까지 가시오?”
최영감이 얼른 먼저 대답했다.
“우리 집까지 가신다캤다.”
“우리 집? 와?”
“그래, 와? 안 되나?”
“어디를 찾아온 건데?”
“네가 산다카는 아파트에 아들이 산다카더라.”
“아버지 친군가?”
“친구 삼기로 했다.”
“알았어. 그럼 우리 집으로 달릴게.”
배영감은 영 불편했다. 자기 보고 할배라고 한 것도 맘에 안 들고 아버지한테 꼬박꼬박 반말하는 것이 마뜩찮아서 속으로 되씹었다.
‘서울서 가장 큰 대학에서 공부를 했다면서 말버릇이 저게 뭔가? 세상이 변했다지만 너무 심하지 않은가. 애아비라는 것이 말씨가 그게 뭐여, 허허. 저런 것도 아들이라고 자랑을 하다니! 쯧쯧…….’ 
그러나 편하게 자가용을 타고 가는 길이니 무슨 불평인들 할 수 있을까. 더구나 남의 자식이 그 아버지하고 하는 소린데……. 아주 상놈 집안 같은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꾹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차는 아파트 앞에 도착했고 최영감의 안내를 받으며 배영감은 아들네 집보다 남의 집을 먼저 찾아들게 되었다.
아들이 안에다 대고 소리쳤다.
“덕수야, 윤수야 할배 왔다.”
시골 할아버지가 왔다는 소리를 들은 손자 손녀가 달려 나오며 할아버지 품에 안겼다.
“할배, 우리 할배, 할배.”
최영감은 두 아이를 품에 안고 좋아했다.
“잘들 있었나? 귀여운 아들!”
그러는 동안 배영감은 집안을 둘러보며 생각했다.
‘집안은 그럴 듯하게 꾸몄는데 자식 교육은 엉망이로군, 허허허.’
이때 최영감 며느리가 나와서 인사를 했다.
“할배, 어서 오이소.”
“그래, 그런데 내가 와 니 할밴교?”
“아들 할배 아닌교.”
배영감이 은근히 화가 나서 나서고 말았다.
“며느리도 경상도 출생랑가?”
최영감이 대답했다.
“아니라요, 서울서 나서 우리집으로 시집와 경상도 말을 하는기라예.”
“말씨까지 닮는 걸 봉게 효부인갑소.”
“하모, 효부제.”
이렇게 하여 차 대접을 받고 배영감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최영감 아들이 물었다.
“할배요, 아들이 우리 아파트에 산다고 했지예?”
“그러네. 1동 101호라고 했네.”
“우리가 103호니께 저쪽 첫 집입니더.”
배영감이 최영감한테 인사를 했다.
“편하게 왔소. 우리 이자 친구 됐응게 내일 또 만납시다요, 내일.”
“하머, 내일 기다리겠소. 잘 가이소.”
배영감이 101호 문 앞에서 부저를 눌렀다. 안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아들이 문을 열면서 안에다 대고 소리를 질렀다.
“후빈아, 유빈아 할부지 왔다.”
배영감은 흠칫 놀랐다.
‘아아니, 내 아들도 반말을 하는 겨? 참 거시기하네.’
2. 그 아들이나 내 아들이나
아버지 속도 모르는 아들이 반말 인사를 했다.
“아부지 왔어?”
손녀가 달려와 품에 안기며 새처럼 귀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할부지, 왜 이렇게 늦게 와?”
작은손자도 인사랍시고 하는데 인사도 아니고 반말이었다.
“할부지, 뭐 가져왔어?”
며느리가 겸손히 인사를 했다.
“아부지, 오시오이.”
배영감은 옆집 아이들 반말 소리에 비위가 상해 있는 터다. 그래도 자기 집 아이들만은 안 그러려니 했는데 같은 모양이라 어이가 없어서 허수로 오냐 오냐 하고 집안을 둘러보았다. 최영감네 집이나 이 집이나 꾸며놓은 것은 비슷했다.
그렇다고 아이들한테 갑자기 큰소리를 칠 수도 없어서 소파에 가서 앉으며 물었다.
“아따, 집은 좋구만이 을매나 주고 샀다냐?”
“은행 끼고 이억 줬어.”
“은행을 끼다니 문소리랑가?”
“은행에서 돈을 빌려서 샀구먼.”
배영감은 아들이고 손자고 말을 나누고 싶지 않았다. 말끝마다 반말이기 때문이었다. 참다못해 아들한테 한마디 했다.
“야아야, 우리 집은 양반집이 아니냐?”
아들이 대답했다.
“양반, 양반 하지 마, 양반이 밥 먹여 주는 세상이 아녀.”
“넌 지금 몇 살이랑가?”
속이 뒤틀려 이 철부지야 하고 물어보는 말인데 아들은 엉뚱한 대답을 했다.
“아부지, 벌써 치맨가? 아들 나이도 모르고 큰일 났네.”
“내가 몰라서 묻는 줄 아능가?”
“올해 서른이 꽉 찼다고 했더니 인생 반은 살았다고 남들이 웃어.”
배영감은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나이만 허벌나게 주워 먹었당게, 허허, 허…….”
“내 나이에 이런 집 산 사람도 별로 없어. 그리고 내가 부장이 된 게 가장 빨라서 다들 부러워하는 걸.”
“내 보기엔 부러울 것 없당게.”
“아부지는 아들이 자랑스럽지도 않어?”
“넌 몇 살이랑가?”
“아부지, 치맨가 봐. 또 나이를 물어?”
“암만 생각혀도 넌…….”
“아부지 맘 알아. 다들 그러는데 백 살 먹은 아부지가 여든 살 먹은 아들을 어린애로 보고 길조심해라, 말조심해라 한다는데 아부지가 그러네.”
배영감은 점점 어이가 없어서 대답 대신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었다. 옆에서 귀여운 눈을 말똥거리고 있던 손자가 기어 올라와 목을 감고 매달렸다.
“할부지, 뭐 가지고 왔어?”
“아무 것도 안 가지고 왔다.”
“그럼 문방구서 총 사줘.”
그 집이나 이 집이나 하는 짓거리들이 이 모양이니 기가 찰 수밖에 없다. 손자 녀석은 철없이 졸라댔다.
“할버지, 안 사줄 거야, 응?”
“안 사준다. 할아버지 돈 없다.”
돈이 왜 없나. 사 주고도 남는다. 그런데 애나 어른이나 하는 반말에 부아가 나서 그렇게 대답한 거다. 이번엔 작은손녀가 예쁜 입을 오물거리며 팔을 잡아당겼다.
“할부지, 일어나.”
“왜?”
“가게 가아.”
“왜?”
“과자 사러.”
요것들이 보면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귀여운데 입에서 나오는 말이 영 아니다. 배영감은 일어서서 집안을 둘러보았다. 아이 둘에 부부가 사는 집에 방이 다섯 개나 된다. 손자 방에는 컴퓨터도 있고 스마트폰도 굴러다니고 여기저기 장난감 총이며 야구 방망이까지 어수선했다.
아직 혼자 자기에는 이른 손녀한테도 방을 따로 정해 주었다. 그 방에는 여기저기 사람 인형이며 곰, 말, 토끼 등 장난감이 널브러져 정신이 없었다. 아들이 따라다니며 자랑을 했다.
“아부지, 이 애들이 컴퓨터를 얼마나 잘 하는지 몰라. 컴퓨터 게임은 나보다 더 잘한당게.”
“그려어? 저것들을 다 돈 주고 산 거 아니랑가?”
“돈 안 주고 어떻게 사. 다 돈이지.”
역정이 난 배영감 엉뚱한 소리를 했다.
“야아야, 나 경운기 하나 사줄래?”
“경운기?”
“경운기는 어른 장난감이 아니랑가. 나도 장난감 타고 다니며 농사짓고 싶응게.”
“아부지는!”
“안 되것냐?”
“아부지가 얼마나 더 산다고 그런 것까지 사.”
점점 아들 하는 소리가 기가 찼다. 이놈을 그냥 주먹으로 쥐어박을까?
할아버지 미워 3 / 어른님과 종훈
그렇게 하루가 가고 다음 날 아침이다. 며느리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고 또 불만스러운 것을 참고 배영감은 밖으로 나왔다. 25층이나 된다는 까마득한 꼭대기보다는 일층이라 좋았다. 바로 앞에는 넓은 풀밭이 있고 어디서 옮겨다 심었는지 한쪽 구석엔 가지가 빼딱빼딱한 조선소나무가 있고 그 아래 평상을 놓아 그늘도 지고 좋았다.
배영감이 어슬렁거리고 소나무 아래 평상으로 가서 앉았다. 마침 어제 친구 삼은 경상도 최영감이 나와서 곁으로 왔다.
“편히 주무셨능기요?”
“잘 잤소이다. 영감도 편히 주무셨능요?”
“아들이 편히 두지 않아서리.”
“아들이 그렇게 귀찮게 굴러쌌당가요?”
“아들이야 조용했지만 아들이 말이오.”
“거 무슨 말씀인지 못 알아먹겠당게요.”
“우리 자식 말고 손자들 말이락하이.”
“거시기 경상도 사투리로 어린 애들을 아들이라 한다더니 그 말이 그 말이 아닌감.”
“알았으이 되았소.”
이때 가운데 2호집 문이 열리며 대머리 영감이 나와서 평상 쪽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친절한 배영감이 자리에서 먼저 일어서서 인사를 건넸다.
“영감님. 이리 오시오이. 우리 같이 늙어강게 말벗이나 하시장게요.”
대머리 영감이 착하게 웃으며 다가와 대답했다.
“두 분께서는 처음 뵙는 어른이신데 새 집에 다니러 오셨습니까?”
최영감이 손을 먼저 내밀며 인사를 청했다.
“나는 최명구락합니더.”
“예, 저는 심흥식이라고 합니다.”
배영감도 이어서 악수를 청했다.
“나는 전라도서 온 배성수인디요 자식놈이 새 집을 샀다고 하여 구경왔으라우.”
“그러시군요. 두 분이 모두 훌륭한 자제분을 두셨습니다.”    
최영감이 자식 자랑을 했다.
“내 아들은 서울서 가장 큰 대학교를 나와서 가장 큰 은행에 들어갔다카오.”
2호집 영감이 겸손히 대답했다.
“그러십니까. 참 훌륭한 아드님을 두셨습니다.”
배영감도 지지 않고 자식 자랑을 했다.
“지 아들도 서울서 일류 대학을 나와 일류 회사 부장이 되었당게요.”
“그러시군요. 모두 훌륭하십니다.”
경상도 최영감이 또 물었다.
“영감님은 보이 학같이 보이오. 무신 일을 하셨기에 그리 고우시오?”
“별 것 안 했습니다. 평생 선생으로 있다가 고등학교 교장을 지내고 정년이 되어 지금은 놀고 있습니다.”
배영감이 깜짝 놀랐다.
“고등학교 교장까지 하셨간디요? 대단하시구먼유.”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면 부끄럽지요.”
최영감이 또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라머, 아들은 뭘 하십니꺼?”
“대학 교수입니다.”
배영감이 감탄했다.
“앗다. 교육자 가정이시오이.”
심교장 영감이 물었다.
“영감님도 곱습니다.”
“난 고향에서 부면장까지 하고…….”
그러다가 머리를 긁으며 최영감을 가리켰다.
“저 영감 덕에 어제는 아주 편하게 여기를 찾아왔당게요.”
“그렇습니까. 이렇게 만났으니 우리 집에 가서 차라도 한잔 하십시다.”
최영감이 좋아했다.
“그렇지 않아도 입이 섭섭한데 잘 되었십니더. 가입시더.”
배영감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침부터 낯선 사람들이 가면 자부가…….”
교장 영감이 말을 가로막았다.
“그런 염려는 마시고 가시지요.”
그렇게 하여 세 사람이 2호집으로 들어갔다. 낯선 사람이 들어왔는데 며느리가 반가워하면서 인사를 했다.
“어서 오세요 어른님들.”
최영감은 아무 생각 없이 듣고 말았지만 배영감은 속으로 깜짝 놀랐다.
‘어른님이라고? 어르신이라고 하는 소리보다 굉장한 대우를 받는 기분이 드는데……. 어른님이라! 내가 어른님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그러면서 집안을 둘러보았다. 최영감도 두리번거리며 충격이라도 받는 눈치였다. 배영감이 응접실 높이 걸린 액자를 가리키며 물었다.
“주인장 어른, 저 액자에 씌어 있는 글자는 무엇이랑가요?”
“종훈입니다.”
종훈이라는 말을 처음 들어본 경상도 최영감이 물었다.
“종훈이 뭐꼬?”
교장 영감이 설명했다.
“대개는 집에 가훈을 많이 걸어 놓지만 우리 집은 종훈과 가훈을 함께 걸어 놓았습니다. 종훈은 선대 어른들께서 후손에게 주시는 교훈이지요. 가훈과 비슷하지만 약간 다릅니다.”
한문을 좀 아는 배영감이 글자를 읽었다.
“독지경문 역행효제라……. 한문은 조금 배워서 알겠지만 뜻은 거시기하구먼이라우.”
“독지경문(篤志經文)은 뜻을 확고히 세우고 열심히 공부할 것이며 역행효제(力行孝悌)는 부모님께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를 깊이 하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최영감이 감탄했다.
“듣고 보이 참 좋은 뜻이 아닌기오.”
배영감이 물었다.
“저렇게 훌륭한 문구는 어느 조상님이 내리셨당가요?”
“예, 저 문구는…….”
이때 며느리가 차를 내왔다. 교장 영감은 말을 중단했다.
“차나 마시면서 말씀드리지요. 이 차는 제가 중국에 갔다가 좋은 차라고 하여 구해 온 것입니다.”
그리고 종훈 이야기를 했다.
4. 올해 네가 몇 살이랑가?
“나의 9세조 할아버지께서 이조판서를 지내고 돌아가시자 임금님이 애석한 마음을 담은 글을 내리셨답니다. 그 글 속에 임금님께서 평소 보시던 대로 ‘독지경문하고 역행효제’하더니 세상을 떴도다. 후손들은 고인의 삶을 본받아 선대의 행실을 따르고 명예를 지키도록 하라. 하는 말씀이 있어서 조상 대대로 그 말씀을 종훈으로 삼았답니다.”
배영감이 놀랍다는 듯 말했다.
“참 훌륭한 조상님을 두셨습니다. 저 종훈 아래 ‘정직하고 당당하라’고 써놓은 글은 무엇인가요?”
“그건 가훈입니다. 자식들한테 언제나 정직하게 살고 매사에 당당하게 행동하라는 뜻을 담았습니다.”
최영감은 묵묵히 생각에 잠겼다.
‘높은 집안인 것 갑다. 우리하고는 다르게 사는 집안 아이가. 우리 집안에서는 종훈이라카는 소리도 들어본 적이 없고 가훈도 없제…….’
배영감이 궁금한 것이 많아졌다.
“교장 영감 댁이 우리 아들네 집보다 넓은 것 같소이.”
“다 똑같은 평수니까 넓고 좁을 것이 없을 겁니다. 궁금하시면 우리 집안을 둘러보시겠습니까?”
최영감이 대답했다.
“그렇게 해주시면 죄송캐서…….”
교장 영감은 일어서서 집안을 소개했다.
“그럼 둘러보시지요. 저 방은 우리 아들 부부의 방이고 이쪽은 손녀 방, 이 방은 손자하고 내가 지내는 방, 이쪽은 서재입니다.”
배영감은 교장 아들과 며느리 방에 책장에 책이 가득한 것을 보고 놀랐는데 초등학생 딸이 쓴다는 방을 보고 더 놀랐다. 방에 장난감은 하나도 없고 책장에 동화책이 가지런히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최영감은 교장 영감 서재에 들어서서 입을 딱 벌렸다.
“아니! 이기는 서점이 아닝기요? 무신 책이 이리 많소. 이 책들을 교장 영감은 다 읽으신기요?”
“예, 이쪽 책은 제가 다 읽은 것이고 저쪽은 아들이 읽고 꽂아놓은 것입니다.”
배영감도 감탄했다.
“어매! 책이 이렇게 많은 집은 처음 본당게요. 이게 다 돈 주고 산 것이 아니간디요?”
“예, 다 돈 주고 산 것이랍니다.”
“와아! 이기 을매나 큰돈이고!”
다 둘러보고 나와서 배영감이 물었다.
“이 넓은 집에 책만 가득하고 텔레비전은 저것 하나밖에 없다요?”
“예, 저거 하나뿐입니다.”
최영감이 텔레비전 숫자만 보고 생각했다.
‘텔레비전이나 그런 건 우리 집만 몬하구마. 그건 우리 아들이 나은기라.’    배영감도 텔레비전과 컴퓨터가 하나밖에 없는 것을 보고 은근히 위로를 받았다.
‘책이 아무리 많아도 텔레비전이 세 대나 있고 컴퓨터가 방마다 있는 우리 집만은 못혀. 다 평등하지는 않은 것 같당게.’
거실 텔레비전 앞에서 최영감이 물었다.
“교장 영감님예, 텔레비전이 한 대밖에 없으이 우찌 된 일이오? 우리 아들 집만도 못한 것 같소.”
배영감도 한 수 거들었다.
“아이들이 있고 부부가 딴 방을 쓰는디 텔레비전은 한 대밖에 없응게 많이 불편하겠소. 그리 안 하오?”
교장 영감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대답했다.
“불편하지 않습니다. 우리 집은 텔레비전을 켜는 시간과 시청하는 시간이 정해 있답니다. 아침은 6시에 켜고 7시에 끕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5시에 켜고 7시까지 아이들 시청시간이고요, 7시부터 아이들은 자기 방으로 들어가 책을 읽습니다. 그리고 어른들은 7시부터 9시 반까지만 시청하고 열시부터 잠자리에 듭니다.”
경상도 최영감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 사람들은 참 훌륭한 분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전라도 배영감도 마찬가지로 텔레비전만 많다고 집안이 더 나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떠날 인사를 했다.
“아침 일찍이 결례가 많았으라우. 이자 갈 볼랑게 편히 쉬시오이.”
이때 교장 영감의 아들이 가방을 들고 안방에서 나와 인사했다.
“아버님, 다녀오겠습니다.”
아버지 앞에 허리를 깊이 숙이고 인사한 다음 두 영감한테도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이웃 어른님이 오셨다는 말씀 들었습니다. 더 편히 쉬시지요.”
남편을 배웅하던 며느리가 얌전히 말했다.
“어른님들, 아버님하고 더 계시다가 식사도 하고 가시지요.”
경상도 최영감이 대답했다.
“고맙십니더. 아침은 집에 가서 먹겠십니더.”
교장 아들의 뒤를 따라 두 영감도 나와 각기 자기 집으로 갔다.
배영감이 집으로 돌아오자 아들이 물었다.
“아버지는 아침부터 어딜 갔다 와?”
배영감은 또 속이 뒤틀렸다. 그래서 물었다.
“넌 몇 살이랑가?”
“아부지는 치맨가 봐. 어제도 묻더니 오늘도 또 물어? 병원에 가 볼까?”
“내가 네 나이를 몰라서 묻간디?”
“그게 무슨 말이래?”
배영감은 혼자 중얼거렸다.
“종훈이 뭔지도 모르고 가훈도 없이 길렀응게 내가 이 꼴을 당하는겨.”
아들이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부지는 아무래도 이상혀. 종훈이가 뭐여?”
“아따, 이, 이, 어이구우! 답답혀.”
“뭐가 그렇게 답답혀?”
“네가 올해 몇 살이랑가?”
5. 꽃나무 의사
“왜 자꾸 나이는 물어쌌는겨?”
배영감은 또 혼자 씨부렁거렸다.
“내가 부면장이면 뭐고 면장이 되면 뭐하냐? 자식들 교육 하나 제대로 못 시켜놓고 아이구, 답답혀어.”
“아부지, 말로 하시오. 내가 더 답답하당게.”
“그냥 공부만 1등해라, 회사만 좋은 데 들어가라, 손이 발이 되게 빈 것이 다 무슨 소용이다냐?”
이때 손자 후빈이가 와서 말했다.
“할부지, 엄마가 밥 먹으래!”
배영감이 손자한테 물었다.
“넌 몇 살이다냐?”
“나 열두 살이야. 할부지가 그것도 모르고 있었어?”
“열두 살이면 뭐하냐. 열두 살 같아야지.”
아들이 끼어들었다.
“아부지, 저 애가 열두 살이지만 알 건 다 안당게요, 컴퓨터는 천재랑게요.”
배영감은 더 뒤틀려서 말하기가 싫었다.
“밥 먹으라니 밥이나 먹으러 가자.”
할아버지가 식탁에 가서 앉으려는데 손자가 날래게 숟갈을 먼저 들고 밥을 퍼먹었다. 이어서 아들과 며느리가 먼저 국을 떠먹고 밥을 퍼먹었다. 다섯 살짜리 손녀가 멈칫거리자 며느리가 한 마디 했다.
“빨랑 처먹지 않고 왜 그려?”
손녀가 할아버지를 빤히 바라보면서 말했다.
“할아버지 먼저 드셔요.”
그 한 마디에 배배 꼬였던 배영감 마음이 다소 풀렸다.
“음음, 그래, 먹자.”
배영감이 숟갈을 뜨고 난 뒤에야 손녀가 숟갈질을 시작했다. 배영감은 기뻤다.
‘사람 같은 건 너 하나밖에 없구나, 귀여운 것.’
배영감은 상 가운데 놓인 조기를 발라 손녀 숟갈에 올려주며 말했다.
“유빈이는 할부지 맘을 아는가벼? 이거 맛있다.”
“아니에요, 할아버지 잡수셔요.”
어린 것의 말씨에 얼마나 마음이 녹는지 배영감은 자기는 못 먹어도 모두 손녀한테 먹이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할부지 잡수시라고 했어?”
“네, 할아버지가 많이 잡수셔야 해요.”
“흐흐흐, 그래 많이 먹을랑게 너도 많이 먹어라.”
아들이 조기조림에 든 물렁한 무를 아버지한테 건져 주면서 말했다.
“아부지, 이거 먹어 봐, 물렁하고 맛있어.”
배영감은 그 말에 은근히 또 부아가 나려고 했다. 이때 어린 손녀가 엉뚱한 소리를 했다.
“아빠, 할아버지한테는 먹어 봐 하는 거 아니에요. 잡수어 보세요, 해야 한다고 교회 선생님이 말씀하셨어요.”
딸이 하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 아들이 대답했다.
“그랬구나, 유빈이 말이 맞다.”
그렇게 말하는 사이에 아버지가 왜 자꾸 자기 나이를 묻는지 깨달았다. 그래서 아버지한테 겸손히 말했다.
“아부님, 죄송하구먼유. 아부님이 내 나이를 자꾸 물으시는 이유를 몰랐는데 이제야 깨달았응게 용서하시오.”
“그럼 됐응게 밥이나 먹더라고.”
아들이 변명을 늘어놓았다.
“저는 어려서부터 아부지한테 반말을 하면서 자랐기 때문에 존댓말을 쓰면 거리감이 생겨서 그랬는데 이제부터는 조심하겠습니다.”
배영감은 아주 흐뭇했다. 어린 손녀의 한 마디가 그 아비 습관을 바로 잡았으니 얼마나 놀라운가. 배영감이 웃으며 말했다.
“모두들 유빈이한테 배우랑게. 유빈이가 교회 선생님한테서 배운 대로 엄마하고 아부지한테 가르쳐 드려라.”
배영감은 노여움이 풀려서 속에 꼼치고 있던 말을 털어놓았다.
“내가 너희들을 바르게 가르치지 못한 게 죄랑게. 앞으로는 집에서나 나가서나 밥상에서는 어른이 수저를 먼저 든 다음 수저를 들어야 한당게. 알았능가?”
며느리가 먼저 사과를 했다.
“아부님, 죄송하구먼유. 제가 못나서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고 저도 실수를 했구먼유. 앞으로는 안 그럴랑게 용서해 주시어요.”
“알았응게 이제 그렇게 하거라.”
아침 식사를 마치고 배영감은 귀여운 손녀 손을 잡고 그 아이 방으로 가 보았다. 방구석에 장난감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유빈아, 이게 다 네 것이냐?”
“네, 할아버지.”
“이것들 이름이 다 뭐라냐?”
“이건 마이리틀포니, 이건 실바니안, 이건 리틀미미, 이건 주방놀이 세트, 이건 아이클레이, 이건 아이도우…….”
배영감은 아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어 정신이 없었다.
“그만 혀라. 그게 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할아버지, 이거 가지고 놀이하실래요?”
“그런 거 난 모른당게. 무슨 장난감 이름이 모두 그렇다냐. 좋은 우리말 두고 그게 뭐랑가.”
아이가 갑자기 붕대하고 가위를 챙겨 들고 말했다.
“할아버지, 저기 가실래요?”
“어디라냐?”
“저 꽃밭에 꽃나무를 옆집 아이가 공치기하다가 다쳐놓았어요.”
“그래서?”
“약 가지고 가서 싸매 주려고요.”
“뭐야? 꽃나무를 치료해 준다고?”
“네. 꽃나무가 많이 아플 거예요.”
배영감은 놀랐다.
‘이 어린 것이 천사처럼 마음이 곱지 않은가!’
그래서 물었다.
“누가 너한테 그렇게 하라고 가르쳐 주었당가?”
“아무도 안 가르쳐 주었어요. 아픈 꽃나무한테 약 발라주고 싸매 줄 거예요. 내가 꽃나무 의사예요.”
“꽃나무 의사라? 허허, 천사보다 귀여운 의사로구나. 어디 가 보자.”
6. 난 할배가 좋아
배영감은 손녀를 따라 정원으로 나가며 중얼거렸다.
“지금이 어느 땐디 꽃이 핀당가, 장미도 지고 살구꽃도 진 지가 언젠데 이 여름에 무신 꽃이 피는가?”
그 소리를 들은 손녀가 작은 소리로 종알종알했다.
“그런 꽃 있어요. 아주 예뻐요.”
“예쁘다고?”
“그 꽃나무는 날마다 꽃이 펴요.”
“그런 꽃나무가 있당가?”
아이는 풀밭을 건너 구석으로 가서 꽃이 무더기로 피어 있는 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꽃나무예요.”
“응, 그렇구나. 여름 내내 피는 꽃이지, 무궁화로구나.”
“무궁화가 뭐예요?”
“이 꽃나무 이름이 무궁화란다.”
“할아버지도 이 꽃나무 알고 계셨어요?”
“암, 이 무궁화는 우리나라 꽃이랑게.”
“우리나라 꽃이 뭐예요?”
“우리나라 꽃……. 그러니께 너 태극기 알지?”
“네, 우리나라 국기예요.”
“바로 국기처럼 꽃도 나라꽃이 있는데 이 무궁화는 우리나라 꽃이란다.”
“우리나라 꽃이라고요? 그럼 더 사랑해 주어야지요?”
“그려, 더 사랑해 주어야 한당게.”
손녀는 붕대와 가위를 가지고 무궁화 앞으로 갔다. 가지 하나가 찢어져 잎도 시들고 꽃도 시든 채 축 늘어져 있었다. 손녀 유빈은 찢어진 가지를 잡아 올리며 말했다.
“할아버지, 이 약 바르고 붕대로 매주세요.”
아이의 소원은 간절했지만 이미 찢어져 시든 가지는 도로 매주어 봤자 헛일이었다. 그런데도 붕대로 묶으라는 맘이 고마워서 배영감은 아이 말대로 붕대로 감고 꼭꼭 묶어 주었다.
시든 가지에 붙은 꽃과 봉오리가 안쓰럽기만 했다.
“할아버지, 이제 꽃이 살겠지요?”
“살아났으면 좋겠당게…….”
이때 3호집 최영감이 문을 열고 나와서 다가왔다.
“영감, 거기서 무얼 하시오?”
배영감이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구먼유.”
최영감이 유빈이를 보고 물었다.
“이 아는 영감 손녀인가요?”
“그렇당게요.”
“참 이쁘게 생겼십니더.”
유빈이 배꼽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하모, 이쁜기 인사도 잘하네.”
어린 것이 깍듯이 인사하며 존경어 쓰는 것이 귀여워서 최영감은 자기 집 아이들 생각을 했다.

어제 배노인과 집에 들어갔을 때 아들, 손자, 며느리가 모두 반말 하는 소리에 많이 실망하고 노여웠었다.
그래서 배영감이 돌아가고 난 뒤 아이들한테 다짜고짜 노염이 찬 소리를 질렀다.
“이눔아들아, 모두 이리 오래이!”
아들이 불만스럽게 물었다.
“와?”
손자도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할배, 나 장난감 가지고 놀 기다.”
“다들 오라카문 올 것이지 무신 말이 많나?”
며느리도 몇 발자국 다가오면서 물었다.
“할배요, 지는 바쁜디.”
최영감은 부아가 났다.
“너는 서울서 컸다카면서 우째 갱상도 말 흉내를 내는기가?”
“흉내 내는기 아이라. 덕수 아부이와 살다 본께 그리 되었지.”
손자 둘과 아들 며느리를 둘러앉히고 최영감이 입을 열었다.
“니들은 손님이 와 있는데 말버릇이 그기 뭔고? 존경어를 써야 하는기다. 니들이 모두 몇 살인데 그런 것도 모르나? 아들이 둘씩이나 있는 아비가 아배한테 반말을 하고 남 보기 부끄럽지 않나 말이더.”
아들이 대답했다.
“아부이, 그기 어찌 그리 쉽겠습니꺼.”
“소리는 갱상도라도 말씨는 서울말을 써야 하지 않나?”
“지는 경상도 말이 더 좋아예.”
손자가 끼어들었다.
“할배. 아빠한테 그러지 마.”
최영감이 나직한 소리로 손자한데 말했다.
“이제 내가 갈쳐주는 대로 하그라. 알겠나? 아빠한테 그러지 마 하지 말고 아빠한테 그리지 마세요 하그라. 알겠나?”
“그러지 마세요, 이렇게?”
“하모. 그러지 마세요, 이렇게요? 하고 말끝마다 요요를 붙이거라.”
“알았어요요, 할배. 이렇게요요?”
노여웠던 최영감이 웃음이 났다.
“잘했다. 요요는 한 번만 하그라.”
“알았어요 할배, 이렇게 요요요?”
최영감은 그 날로 아들 부부와 손자들이 모두 말끝에 요자를 붙이게 만들었다. 다음 날 아침 손자가 와서 인사를 했다.
“할배, 안녕히 주무셨습니요요?”
아들도 따라와서 인사를 했다.
“편히 주무셨는기요요?”
최영감이 웃으며 대답했다.
“잘 잤다. 요요 하지 말거라.”
손자가 얼른 대답했다.
“할배, 이제 요요 하지 말라고 했지?”
“허허, 욘석이 할배를 놀려?”
“아냐, 할배. 난 할배가 좋아!”
최노인은 할배가 좋다는 말에 그만 가슴이 녹았다.
“할배가 정말 좋은가?”
“좋아, 좋아.”
7. 진리 앞에 겸손하라
배영감 손녀가 가위와 붕대 남은 것을 들고 돌아가며 인사를 했다.
“할아버지, 저는 먼저 집으로 갈게요.”
배영감이 대답했다.
“그래, 그리하거라. 난 이 할아버지하고 이야기하고 가마.”
최영감은 배영감의 어린 손녀가 겸손한 말씨로 인사하는 소리를 듣고 말했다.
“영감, 아이들 교육을 잘 시킨 것 갑소. 어린기 인사는기 여간 귀엽지 않소.”
배영감은 기분이 좋았다.
“다 즈네들이 알아서 거시기하는 거랑게요.”
“그라도 할배가 잘 가르친 것이 아니것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2호집 교장 영감이 나왔습니다.
“무슨 이야기들을 그렇게 재미있게 하십니까?”
최영감이 대답했다.
“편히 주무셨능기오?”
“예, 편히들 쉬셨습니까?”
배영감도 한 마디 했다.
“교장 영감은 이마가 해처럼 환하게 빛낭게 거시기하네요, 하하하.”
교장 영감이 겸손히 대답했습니다.
“과찬이십니다.”
최영감이 문득 생각난 듯 말했습니다.
“교장 영감, 부탁 하나 하고 싶은데 들어주실랍니꺼?”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면 들어드리겠습니다.”
“내가 교장 영감 집에서 보고 배운기 있어서 하는 말입니더.”
“말씀하시지요.”
“내도 가훈이락하는 거 하나 만들어 우리 집에 걸고 싶은데…….”
“그렇습니까? 가훈을 무엇으로 정하시었는지요?”
“진리 앞에 머리를 숙여라 카는 생각이 났십니더. 하지만 내가 글씨를 쓸 줄 몰라서리.”
“좋은 생각을 하셨습니다. 제가 잘 쓰지는 못하지만 붓글씨로 써 드리겠습니다.”
“바로 그깁니더. 부탁합니더.”
“우리 집으로 가십시다. 제가 마침 서재에 먹 갈아놓은 것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세 영감이 2호집 서재로 들어갔다. 교장 영감이 화선지를 펴 놓고 글씨 쓸 준비를 하고 물었다.
“진리 앞에 머리를 숙여라 하는 말씀이시지요?”
“야, 그렇십니더.”
교장 영감이 붓으로 가훈을 정성껏 썼다. 시원하고 활달한 글씨가 명필이었다. 그것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던 배영감이 감탄했다.
“우리 전라도는 명필이 많기 땜시로 예향이라고 자랑하는디 교장 영감 글씨를 봉께 전라도 자랑이 부끄럽소이다.”
교장 영감이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무슨 말씀을 그리 하십니까. 저는 기초가 없습니다.”
“아니랑게요. 글씨를 봉게 나도 우리 가훈 하나 써 달라 싶은데 안 되겠으라우?”
“이왕 붓 들고 칭찬까지 들었으니 졸필이지만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마음으로 정하신 가훈을 말씀하시지요.”
“고맙구먼이라고요. 지는 겸손, 봉사, 배려라고…….”
“좋은 말씀이십니다.”
“지는 부면장을 지내면서 아래 직원들한테 강조한 말이 이 세 마디였당게요. 면민한테 겸손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한테는 봉사하며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모든 일을 친절하게 처리하면 일보러 온 사람이 좋아할 것이니 그리 하라고 가르쳤당게요.”
최영감이 배영감을 다시 보았다는 듯 말했다.
“영감, 참 좋은 관리시었소.”
배영감이 겸손히 대답했다.
“부면장이 관리 소리 들어서 된당가요?”
“면사무소는 관청이니끼니 관리가 아닌기요?”
교장 영감이 말했다.
“암이요, 관청이니 관리시지요. 아주 모범적인 관리셨던 거 같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가훈 두 장이 탄생했다. 교장 영감이 두 사람을 둘러보며 물었다.
“이렇게 써도 마음에 드시는지요?”
영감 둘이 똑같이 대답했다.
“아주 좋십니더. 명필이시랑게요.”
“고맙습니다. 우리의 만남을 기념하여 표구까지 제가 해서 드리겠습니다.”
“아입니더. 표구는 제가 가지고 가서 하겠십니더.”
최영감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배영감도 말했다.
“거시기 할 건 없당게요. 명필을 거저 받는 것만도 황공한디…….”
교장 영감이 화선지를 안쪽으로 밀어 놓으며 말했다.
“두 분 마음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드리는 정성이니 사양하지 마십시오.”
최영감이 흡족한 듯 얼굴을 펴고 말했다.
“내가 이자껏 가훈 하나 없이 자식들을 키웠으이 부끄럽십니더. 이제야 교장 영감 덕에 아비 노릇을 하게 되었십니더.”
배영감도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최영감만 그런게 아니랑게요. 나도 자식들한테 가훈을 걸어놓고 가르치게 되었응게 이제야 아비가 된 느낌이랑게요.”
교장영감 며느리가 다과를 준비하여 내오며 겸손히 말했다.
“변변치 않지만 차라도 드시면서 정담을 나누시지요.”
최영감이 정중히 인사했다.
“고맙십니더. 잘 마시겠십니더.”
둘러앉아 차를 마시면서 교장 영감이 의견을 내놓았다.
“우리 영감 셋이 나란히 만났으니 서로 이렇게 부르는 게 어떻겠습니까?”
8. 어른님 벗님 
배영감이 물었다.
“문 말인디요?”
“우리는 나이도 비슷하고 사정도 비슷하니 서로 존경하는 의미로 벗님이라고 부르기로 하시지요.”
최영감이 눈을 꿈쩍거리며 대답했다.
“그거 개안캤십니더. 아들 같으면 동무락하지만 이자 할배들이니께니 벗님이락하면 을매나 좋십니꺼.”
배영감은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교장선생꺼지 하신 어른을 나 같은 것이 어찌 벗이 되겠스라우?”
교장영감이 대답했다.
“지금 저는 교장도 아니고 다만 영감님의 친구일 뿐입니다. 그래서 피차 존경하는 의미로 영감 영감하지 말고 벗님이라고 하자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도 줄어들고 동심도 멀어집니다. 그러니 우리 서로 동심으로 벗님이라 부르면서 어린이들처럼 바르게 삽시다.”
최영감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십니더. 우리 벗님합시더. 벗님, 이래 불러도 됩니꺼? 하하하.”
교장영감이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하. 좋지요, 벗님!”
배영감도 한 마디 했다.
“벗님들 오늘부터 우리는 거시기가 된 거지라우?”
최영감이 받았다.
“하모, 하모. 우린 거시기 아닌교, 하하하.”
교장영감도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우리 모두 거시기구먼, 하하하. 이제부터 우리 거시기를 시작합시다.”
최영감이 물었다.
“벗님, 거시기락하문 뭔기요?”
교장영감이 대답했다.
“앞으로 우리가 똘똘 뭉쳐서 젊은이들과 아이들이 잘못하는 습관을 찾아 다니면서 고쳐 주자는 것입니다.”
배영감이 물었다.
“그게 무신 소리랑가요? 버버, 벗님! 하하하.”
최영감이 같이 웃으면서 말했다.
“와? 버버, 버버는 와? 벗님이락하는기 그리 어렵십니꺼?”
“쉽지 않당게요. 버, 벗님.”
교장영감이 말했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고 했지요? 먼저 내 집안의 질서와 가풍을 바로 잡고 난 다음 세상길로 나갑시다.”
최영감이 받았다.
“하모, 그래야 합니더. 내 먼저 우리 아들 집에 가서 가풍을 바로 잡고 오겠십니더.”
배영감도 같은 말을 했다.
“그 말이 맞당게요. 제 집안 단속도 못 하면서 거시기 한다는 건 안 되지라우.”
교장영감이 말했다.
“그럼 지금 쓴 가훈을 내일 액자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내일 오셔서 각자 가훈을 가져다 집에 걸고 가정교육 먼저 시키고 집안 질서를 잡아 봅시다.”
최영감이 말했다.
“그 종이를 주시면 집에 가서 제가 만들어 올랍니더.”
교장영감이 사양했습니다.
“이왕 우리가 벗님이 되기로 했으니 제가 표구까지 해서 드리겠습니다. 사양 마시고 내일 오십시오.”
배영감이 멈칫거리며 대답했습니다.
“버, 벗님, 거시기하구먼이라우.”
교장영감이 배영감 말투를 따라 대답했다.
“벗님, 거시기할 것 없당게요. 하하하.”
이렇게 하고 세 영감은 각기 집으로 돌아갔다. 최영감이 아들 집으로 들어가 집안을 둘러보면서 무엇을 먼저 바로 잡아야 할까 생각했다.
먼저 손자들이 쓰는 방으로 들어가 보았다. 방안에 책 같은 건 없고 온통 장난감으로 정신이 없게 널브러져 있었다. 그것을 들여다보다가 손자를 불렀다.
“덕수야, 윤수야아이!”
아이들이 달려왔다.
“할배, 왜 불렀어어, 요오오?”
방바닥에 흐트러진 장난감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기 다 뭐꼬?”
큰손자가 대답했다.
“할배, 이건 레고블럭, 변신로봇, 또봇, 카봇, 최강정사 미니특공대 로봇, 뽀르르, 인형변신 자동차, 터닝메카드, 축구공, 야구공…….”
최영감은 정신이 없었다.
“그기 다 무신 소리가?”
9. 할배, 이러지 마!
최영감이 아이들 방을 둘러보며 물었다.
“덕수야, 니는 올해 몇 학년이고?”
“삼학년이야, 요오오.”
“넌 장난감은 많이 가지고 있음서 동화책 같은 기는 와 없노?”
“그 따위 동화를 누가 좋아해, 요오오.”
“장난감이 좋은가 책이 좋은가?”
“책도 공부도 다 싫어. 장난감이 좋아아아, 요.”
최영감이 아들을 불렀다.
“니 듣거라. 아들이 모두 장난감만 좋아하고 공부는 싫다카는데 니는 우찌 생각하노?”
“아버님예, 장난감은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거 아닙니꺼.”
“공부는 어른이 돼서 하는긴가?”
“아입니더. 아이들 때 장난감 가지고 놀면 머리가 좋아진다 안 합니꺼.”
“내는 그리 생각지 않는다. 이자 내가 하라는 대로 하거라.”
“예. 말씀대로 하겠십니더.”
최영감은 장난감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장난감을 당장에 모두 사과 박스에 담아 빈방에 두거라.”
아들이 놀란 듯 물었다.
“와 예?”
최영감이 명령하듯 말했다.
“그라고 아들 방에 책장 들이고 서점에 가서 동화책을 사오니라.”
“갑자기 와 이러십니꺼?”
최영감은 옆잡 교장영감님 댁 아이들 방을 머리에 떠올렸다.
“장난감은 이자 내가 관리할기다. 아들 방에 동화책하고 어미가 읽을 책을 사다가 채워라.”
“그기 얼마나 비싼데 그러십니꺼?”
“장난감 살 돈은 있으문서 책 살 돈은 없단 말이가?”
“그기는 아니지만…….”
“당장 내 말대로 하거라. 책 살 돈은 내가 줄기다. 아들을 이렇게 버릇없이 키우면 우찌 되는지 아는가?”
“아부지는…….”
“퍼뜩 사과 박스 가오너라.”
아들이 마지못해 사과 상자를 가지고 왔다. 최영감이 장난감을 상자 안에다 집어넣자 손자가 말했다.
“할배, 왜 그러시는데에에 요?”
“몰라서 묻나? 책을 읽지 않으려면 장난감도 가지고 놀지 말거라.”
덕수가 목정을 돋우어 소리쳤다.
“할배, 그러지 마!”
최영감이 눈을 부릅뜨고 대답했다.
“니 지금 뭐락해나? 그러지 마락했나?”
덕수가 바닥에 뒹굴며 울음을 터뜨렸다. 곁에 있던 윤수도 울며 밖으로 나가며 짜증난 소리를 했다.
“할아버지 미워!”
그러나 최영감은 들은 체도 않고 장난감을 모두 상자 속에 넣고 말했다.
“할배 명령이다. 이자부터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싶으면 동화책 한 권을  읽어라. 그러면 동화 책 한 권 읽을 때 한 가지씩 가지고 놀게 해줄기라.”
덕수가 대들 듯 말했다.
“할배가 사 준 것도 아닌데 왜 우리가 가지고 놀지 못하게 하는 거야?”
최영감이 큰소리로 꾸짖었다.
“이놈아가 매를 좀 맞아야 하겠나? 말끝에 요자를 붙이라 안했나?”
“할배 미워!”
아들이 보고 있다가 한 마디 했다.
“아부지 갑자기 이러시면 안 됩니더.”
“지금이 아이면 언제 하겠나? 아들 다 크고 어른 되면 할기가? 니가 아들편 드나?”
“아입니더. 아들은 제가 잘 갈칠랍니더.”
“넌 몬한다. 내가 해야 한다. 내가 하는 대로 따르거라. 오늘은 아들 장난감부터 치우고 내일은 가훈을 가져다가 걸어 놓고 가정교육을 시킬기다. 알겠나?”
“아부지, 이러지 마시오.”
“니가 몬하는 긴 내가 해야 하는기라. 알겠나? 수신제가 치국 평천하락하지 않았나.”
“아부지, 우째 갑자기 이러십니꺼?”
“내도 생각이 있어서 그런다카이.”
최영감은 자기 아들 집도 교장영감 집처럼 만들어 놓을 생각을 굳히고 있었다.
“니는 당장 서점에 가서 아들한테 좋은 책을 사오거라. 장난감 놀이보다 책 읽기를 좋아하게 만들 책임은 부모한테 있는기라. 알갔나?”
10. 장난감 대신 책하고 놀아라
한편 배영감도 집으로 돌아가 손녀 유빈이 방으로 갔다.
“아가야, 너는 장난감이 좋은가 책이 좋은가?”
“장난감이 좋아요.”
“워째서?”
“책은 아직 읽지 못해요.”
“느이 오빠 후빈이는?”
“오빠도 장난감을 더 좋아해요.”
“가서 후빈이 데려오너라.”
유빈이 쪼르르 나가서 오빠를 불러왔다. 할아버지 배영감이 물었다.
“넌 학교 다닌다지, 몇 학년이냐?”
“삼학년.”
“넌 공부가 좋으냐 장난감이 좋으냐?”
“당근, 장난감.”
“공부는?”
“골치 아퍼.”
“허허, 이녀석들이 누굴 닮아서 이런당가.”
후빈이 얼른 대답했다.
“난 아빠 닮았대.”
곁에서 빤히 바라보던 유빈이 말했다.
“오빠, 할아버지한테는 반말 하면 안 되는 거야.”
후빈이 불만스럽게 대답했다.
“내 맘.”
배영감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유빈이 말이 맞당게. 할부지한테 반말하면 못 쓰는 거여.”
후빈이 반문했다.
“그럼 뭐라고 해?”
유빈이 대답했다.
“뭐라고 해? 하는 게 아니고 뭐라고 해요? 하고 요를 붙이는 거야.”
배영감은 손녀가 하는 말이 기특하여 칭찬했다.
“네 동생 말이 맞당게. 어른한테 말할 때는 어른님 하고 말끝은 요자를 꼭 붙여야 하는겨, 알았능가?”
“응, 요오오.”
유빈이 말했다.
“응이 아니고 예, 하는 거야. 응은 반말이야.”
배영감이 두 아이를 귀엽게 바라보며 유빈이를 칭찬했다.
“오빠보다 동생이 더 잘 아는구나. 후빈이도 이제 알았능가?”
“예.”
“되았다, 앞으로 어른한테는 꼭꼭 요 하고 요자를 붙이고 어른을 부를 때는 어른님 하고 부르거라. 알았으면 예 하거라.”
“예, 네네, 어른님 할아버지.”
“하하하, 할아버지한테는 어른님이라고 하는 게 아니랑게.”
“할아버지라고만 해, 요오?”
배영감은 아이들이 겸손히 말하는 것을 따르자 이번에는 장난감을 치우기로 했다.
“너희들이 장난감을 너무 많이 가지고 논게 공부가 싫어지는 거여.”
유빈이 물었다.
“왜요?”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 자꾸 장난감이 좋아지고 책을 읽으면 책이 좋아진당게.”
후빈이 말했다.
“책은 싫어, 요오오.”
“장난감만 가지고 노는 아이는 이담에 책 읽은 아이를 못 당한당게.”
유빈이 말했다.
“할아버지, 나는 글씨는 아는데 책을 빨리 못 읽어요.”
“그러냐? 벌써 글씨를 배웠어? 아직 어리니까 빨리 읽지 못해도 자꾸 읽으면 된다. 장난감은 그만 가지고 놀아라. 이 장난감은 내가 모두 가지고 가서 두었다가 후빈이가 동화를 하나 읽고 동화 이야기를 해주면 하나씩 가지고 놀게 해 줄랑게 그리 알아라.”
후빈이가 골난 얼굴로 말했다.
“할아부지, 정말 그럴 거야. 요오오?”
“그래, 느이 아부지한테 거시기 동화책을 많이 사오라고 할랑게.”
후빈이 뿌루퉁한 채 물었다.
“거시기 동화책이 뭐야, 요오오?”
“거시기가 있당게.”
유빈이가 끼어들며 귀엽게 말했다.
“할아버지가 거시기라고 하시는 건 아주 좋은 책이라는 말이야, 오빠도 장난감하고만 놀지 말고 책하고 놀아.”
후빈이 불만스럽게 말했다.
“너도 장난감 놀이 좋아하면서?”
“그렇지만 할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은 따라야 하는 거야. 할아버지, 그렇지요?”
배영감은 손녀가 하는 말은 무엇이든지 귀엽고 예뻤다.
“암, 암. 유빈이는 어른보다 생각이 깊고 말을 잘한당게.”
배영감 아들 배달해가 들어왔다.
“아부지 애들하고 무슨 야기를 그렇게 잼나게 하신대유?”
“너 잘 왔다. 서점 가서 동화책 좀 사오니라.”
“동화라니유?”
“거시기, 그 뭐냐, 거시기 애들 보는 책 말이랑게.”
“거시기 하시니께 알겠구먼유. 책값이 겁나게 비싼디 몇 권이나 사올까유?”
“많이 사오거라. 내가 돈도 좀 줄랑게.”
배영감은 품에서 돈을 꺼내어 넘겨주면서 일렀다.
“그림만 잔뜩 있는 책 말고 교육적으로 거시기한 책을 사오랑게.”
“거시기한 책만 골라올랑게요.”
배영감 아들 배달해는 서점에 가서 책을 한 보따리 사들고 왔다.
“아부지, 책 배달왔구먼유.”
“하하하, 배달해가 책배달이라? 내가 이름은 잘 지었당게. 아비는 책배달하고 아이들은 책 읽고 이제 우리 집은 책 읽는 소리로 가득하겠구먼. 하하하, 그래야 하는기여.”
11. 아부이, 우째 이러십니꺼
최영감은 아들한테 책을 사오라고 하면서 품에서 백만 원을 내놓았다. 아들이 깜짝 놀라 물었다.
“아부이, 우째 이러십니꺼?”
“와, 돈이 적나?”
“아입니더. 아부지가 책 사라고 이렇게 큰돈을 주실 줄은 몰랐십니더.”
“아들 습관 고치자카문 백만 원이 문제가 아이다. 시장에 가가 책장하고 아이들 보는 책을 사오니라.”
최영감은 손자들한테 말했다.
“할배는 너희들 책 읽는 소리가 안 듣고 싶나. 책 잘 읽으면 장난감 하나 주고 한 번씩 놀게 해주구마.”
손자가 말했다.
“할배, 내가 가장 실어하는 게 뭔지 알아, 요오오?”
“뭔고? 말해 보그라.”
“책, 요오오.”
“이눔아야. 장난감은 가지고 놀면 재미는 있지만 이담에 아무 도움도 몬 된다. 책은 읽어두면 어른이 되어서도 써 먹는기라.”
“아이 때는 아이가 좋아하는 걸 줘야 해, 요오오.”
“그러니께 책 읽는 소리를 들려주면 장난감도 가지고 놀게 해준다 안 했나?”
“할배 미워, 요오오.”
“난 미워해도 괘안타.”
“할배, 무슨 책을 사올 건가, 요오오.”
“무신 책이 좋은고?”
“만화.”
“만화도 사 올기고 동화책도 사올기라. 어려서는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기라.”
“할배도 어려서 책을 많이 읽었나, 요오오?”
“할배가 어렸을 때는 육이오 전쟁 때라 책도 없고 공책도 없었다. 동화책은 읽고 싶어도 없어서 몬 읽었제.”
“전쟁하는데 왜 책이 없어, 요오오.”
“니들은 모른다. 더 커야 전쟁이락하는 기 을매나 무서운지 알기라.”
“할배도 총 들고 군인했어, 요오오?”
“나는 어려서 군대는 몬 가고 집에서 나무만 하러 다녔다.”
“나무하는 게 뭐야, 요오오?”
“그런 것도 모르는 니들은 을매나 행복한지 모른다. 할배는 할배 아부지 지게를 지고 산에 가서 나무를 해가 비탈길을 내려오다가 지게 다리가 턱에 걸려 넘어져서 시껍을 하지 않았나.”
이때 옆집 심교장 영감이 왔다.
“가훈이 다 되어서 가지고 왔습니다.”
최영감은 심교장 영감한테 달려가 굽실거리며 받았다.
“교장 영감님, 고맙십니더. 잠깐 들어오시소.”
교장 영감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벗님, 벌써 잊으셨습니까? 영감 영감하지 말고 벗님하기로 했잖습니까?”
최영감이 손자 눈치를 보면서 우물거렸다.
“마, 맞십니더. 버버버.”
“벗님하세요.”
“버벗님.”
“됐습니다. 저는 이만 가겠습니다. 저 앞 벽에 걸면 아주 좋겠습니다.”
교장 영감은 손짓을 해가면서 가훈 걸 자리를 설명하고 돌아갔다. 손자가 물었다.
“할배, 저 할배 알아, 요오오? 왜 교장 영감이라며 할배가 절절 매, 요오오?”
“저 할배는 전에 교장 선생님이었다카는기라.”
“교장 선생님이었다고, 요오오?”
“그래, 아주 훌륭한 분이신기라.”
최영감은 이렇게 말하면서 심교장 영감네 집에 가득하던 책과 벽에 걸려 있는 종훈과 가훈을 생각하고 있었다.
‘내도 이자 가훈을 걸어 놓고 자식들을 갈치게 됐다. 책장도 들여 놓고 아들 말버릇도 심교장 영감집 아들처럼 고쳐놀기라.’
그러는 사이 아들이 트럭에다 책장과 책을 싣고 돌아왔다.
12. 요오 요오하는 입이 참 예쁘다
최영감은 신이 나서 책과 책장을 손자 방에다 들여놓은 다음 책을 보기좋게 꼽았다. 손자도 책이 싫다더니 덩달아 신이 나서 책을 집어다 할아버지를 도왔다.
잠깐 사이에 장난감 방이 책방이 되었다. 그것을 보니 마음이 흡족했다.
“내가 평생에 몬 해본 책방을 만들어 보지 않았나, 하하하.”
손자 후빈이도 좋아서 깔깔거렸다.
“할배, 책이 많으니까 부잣집 같아, 요오오. 할배도 어렸을 때 책 읽어 보았어, 요오오?”
“하모, 초등학교 다닐 때 국어책을 안 읽었나. 달달 외우고 다니던 생각이 지금도 난다. 달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달 어디어디 떴나 남산 위에 떴제.”
“할배도 공부 잘했나, 요오오?”
“잘 몬했다. 너처럼 공부하기 싫어하다가 중학교도 몬 가고 농사만 짓지 않았나. 공부하기 싫은 사람은 다 꼬래비 인생을 살아야 하는기라.”
“정말, 요오오?”
“그렁게 넌 공부 잘해야 한다. 알겠나?”
그러는 사이 아들이 가훈을 거실 벽 중간 높이 반듯하게 걸어 놓았다. 최영감은 그 앞에 정중한 자세로 서서 한참을 보다가 아들 손자를 보고 말했다.
“저 말은 내가 평생 가슴에 담고 살던 말인기라. 교장 영감이 저리 잘 써서 주시니 가슴이 찡하고 눈물까지 날락하지 않나.”
그리고 고개를 들고 바라보는 손자 얼굴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네가 한번 읽어보래이.”
손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큰소리로 읽었다.
“진리 앞에 겸손하라.”
이번에는 최영감이 아들한테 눈길을 돌렸다.
“니도 한번 읽어 보거래이.”
“안 읽어도 다 압니더. 쑥시럽게 뭘 읽습니꺼.”
“허허, 진리락하는 기 뭔지 아나?”
“그런건 다 압니더.”
“그러면서 아비 말을 안 듣는가? 그기 겸손하지 못한 기라.”
아들이 얼른 받아 말했다.
“아부이 죄송합니더. 읽겠십니더.”
아들은 자세를 바로 하고 큰소리로 읽었다.
“진리 앞에 겸손하라.”
이번에는 뒷전에서 말없이 구경하던 며느리한테 말했다.
“이자 너도 한번 읽어 보거라.”
며느리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버님예, 지도 읽으락하십니꺼?”
“니는 우리 가족이 아인가? 저건 바로 우리 가족이 모두 지켜야 하는 가르침인기라. 우리 가족은 읽고 기억하고 행하여야 하는기다.”
“알겠습니다. 아버님.”
며느리도 또박또박 읽었다.
“진리 앞에 겸손하라.”
최영감도 한번 큰소리로 읽은 다음 말을 이었다.
“진리라는기 특별히 정해 있는 규칙이 없는기라. 진리란 순리를 따르는기고 경우에 어긋난 것을 따르지 않으며 예의를 지키고 어른 앞에 겸손하고 아들 앞에 어른다워야 하는기라. 내가 학교에서 배운 것으로는 삼강 오륜이락하는기 있는기라. 그 가르침을 따르면 진리 앞에 겸손하게 사는 길인기라.”
아들 최고봉이 놀란 듯 말했다.
“아부이, 농사만 잘 짓는 줄 알았는데 우찌 그리 고상한 말씀도 아십니꺼?”
“니는 내가 농사꾼이매로 아주 무식한 줄만 알았나?”
“죄송합니더.”
“내가 평생 가슴에 담고 산 기 바로 진리 앞에는 거역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진리 앞에 한 번도 거역한 일이 없는기라. 그러다 보이 내가 이 나이가 되도록 실수는 하지 않고 안 살았나. 너희도 저것을 날마다 보면서 바르게 살거라.”
그리고 손자한테 말했다.
“니도 내 말 알아듣겠는가?”
“예, 할배.”
“이자부터 책을 한 권씩 읽고 그 내용을 할배한테 말해주면 내는 장난감도 하나 내주고 나도 같이 놀아주고 상도 줄기다. 그래도 할배가 미운가?”
“할배 말씀이 진리지, 요오오?”
“하모.”
“진리를 따라야지, 요오오.”
최영감은 만족해서 크게 웃었다.
“요오 요오하는 입이 참 예쁘다. 하하하.”

13. 좋은 이웃은 바로 스승
한편 옆집 배영감 댁에 심교장 영감이 왔다.
“모두들 계셨구려. 가훈 배달 왔습니다.”
배영감이 놀라 굽실거리며 받았다.
“부르시면 갈 텐데 우찌 이러신대유?”
“이웃 좋은 게 뭡니까. 이렇게 배달해 드리기도 좋지 않습니까?”
교장 영감이 들고 온 것을 전해주고 바로 돌아갔다. 유빈이 보고 있다가 물었다.
“할아버지, 뭐예요?”
배영감이 거실 벽걸이 못에다 가훈을 걸면서 대답했다.
“이건 가훈이라는 거다.”
“우리 집 가훈이에요?”
“암, 가훈이다. 우리 집에도 가훈이 있어야제.”
“할아버지가 정하신 거예요?”
“암, 암.”
유빈이 읽어 보았습니다.
“겸손, 봉사, 배려 너무 어려워요.”
“너한테는 어려울 거다만 누구한테나 공손하고 남을 도울 줄 알며 무슨 일에나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되라는 말이다. 이 말은 내가 부면장할 때 직원들한테 늘 하던 말이었당게.”
“겸손하게 남을 돕고 남의 맘을 이해하라는 말이지요, 할아버지?”
“그래, 바로 그런 거다. 그러면 남들의 사랑을 받는단 말이여.”
“할아버지, 옆집에는 가훈도 있고 종훈이라는 것도 있었어요.”
“네가 언제 그 집을 가 보았능가?”
“그 집 아이와 친해요. 그 애 할아버지는 훌륭한 분이래요.”
“훌륭한 게 무엇이냐?”
“높게 보이는 거, 그런 건데 쉽게 말할 수가 없어요.”
“그럼 됐다. 네 생각이 그러면 그런 겅게.”
“우리 집에도 가훈이 있으니까 아이들한테 자랑해도 되지요, 할아버지?”
“유빈이는 우찌 그리 말도 이쁘게 하는지 모르겠당게. 서울서 나서 그런가 사투리도 안 쓰고 반말도 안 하고 이쁘당게.”
“옆집에서 보고 배웠어요. 우리도 이제 가훈이 있으니까 옆집 같아요.”
“그러냐? 이자 장난감만 가지고 놀지 말고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당게. 동화책도 사왔응게.”
“동화책이 어디 있어요?”
“네 방에 동화책을 겁나게 많이 사다 놓았당게.”
배영감은 만족하여 맘속으로 말했다.
‘가훈도 옆집처럼 걸려 있고 아이들 방에는 장난감 대신 동화책이 가득하니 나도 교장 영감 흉내를 좀 냈다. 서당 개 삼 년에 풍월을 읊는다고 안 했당가. 교장 영감 같은 훌륭한 이웃이 있고 그런 분의 하는 걸 따라만 해도 가풍이 바로 서지 않겠나. 좋은 이웃은 바로 스승인 거여.’
유빈이 방으로 들어가자 후빈이도 따라 들어갔다. 방바닥에 깔려 있어야 할 장난감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후빈이 골난 소리를 질렀다.
“내 장난감 다 어디 있어?”
배영감이 대답했다.
“거시기 했다.”
“거시기가 뭐야, 요오오?”
“앞으로는 책 한 권 읽으면 장난감 한 번 내주고 놀게 할탱게 그리 알더라고.”
“난 책 읽기 싫어, 요오오!”
“책 읽기 싫으면 장난감도 그만 가지고 놀랑게.”
“할아버지 미워!”
“미워도 할 수 없제. 책 안 읽고 장난감만 가지고 노는 아이가 난 밉당게.”
이때 유빈이 끼어들었다.
“오빠, 할아버지 말씀을 잘 들어야 하는 거야. 가훈이 있는 집에서는 가훈을 지켜야 해. 저기 겸손이라고 쓴 것 안 보여? 옆집 할아버지도 우리 할아버지처럼 책 읽은 사람만 장난감을 가지고 놀게 하고 있어.”
배영감은 손녀가 하는 말이 너무 고맙고 귀여워서 입술에 웃음이 노래처럼 흘렀다.
“암암, 유빈이 말이 천번 만번 맞당게. 유빈이한테 무슨 상을 줄까?”
유빈이 대답했다.
“저는 할아버지가 기뻐하시는 얼굴이 상이에요.”
배영감은 손녀 말에 감동해서 뿌루퉁해 서 있는 손자를 보며 웃었다.
“유빈아, 내가 너한테 줄 상 대신 후빈이를 업어주면 안 될까?”
유빈이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할아버지 따봉! 할아버지가 상으로 오빠를 업어주시면 최고예요!”
배영감은 손자 앞에 등을 돌려댔다.
“업혀라. 할애비가 유빈이 줄 상 대신 한번 업어 줄랑게.”
후빈이 뿌리쳤다.
“싫어요.”
“할애비는 너를 업어주고 싶어서 그러는디 우째 싫어? 업혀 보랑게.”
후빈이 물러서면서 대답했다.
14. 송하 삼총사 결의
“할아버지 말씀 잘 들을게요. 그리고 제가 이담에 커서 할아버지 업어드릴게요.”
배영감은 손자 말에 깜짝 놀랄 만큼 감격했다.
“후빈이가 그런 생각을 우찌 했당가?”
“할아버지, 제가 말 잘 듣고 책도 읽을게요.”
갑자기 달라진 손자를 본 배영감은 감동 감격하여 할 말이 안 나왔다.
“그렁게, 후빈이가 이자 할애비 말 잘 듣고 책도 읽겠다고?”
“할아버지가 꾸짖지 않고 유빈이한테 줄 상으로 업어주신다고 하셨잖아요. 할아버지가 주신 상을 제가 갚을 거예요.”
“허허, 참 신통하기도 하다. 네 속에 어른이 들어 있당게.”
배영감은 신이 나서 장난감을 하나 들고 나왔다.
“상으로 장난감 줄게 갖고 놀아라.”
“아니에요. 책 먼저 읽고 나서 가지고 놀 거예요.”
“허허, 귀여운 녀석. 네 말에 할애비가 춤을 출 것같이 기쁘당게.”
후빈이 유빈이한테 말했다.
“유빈아, 동화책 보러 가자.”
유빈이도 좋아서 방글거리며 저희 방으로 갔다. 배영감은 아이들이 안 보이자 혼자 벙글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한낮이라 해가 온 풀밭을 달구고 있었는데 소나무 아래 평상에는 교장 영감과 최영감이 나란히 앉아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두 영감이 뭣들 한당가?”
교장 영감이 대답했다.
“지금 뭐라고 하시었소? 우리 보고 영감이라 하셨소?”
배영감은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거거, 거시기하구먼유 벗님들.”
“그래야지요. 우리는 이제 벗이오.”
최영감이 웃으며 말했다.
“이자부터 우리는 늙은벗 삼총사락합시더.”
교장 영감이 대답했다.
“늙은 벗 삼총사라? 그것도 괜찮지만 늙은벗이 이상합니다. 늙을 노에 벗우를 써서 노우 삼총사라 하면 어떻겠습니까?”
배영감이 웃으며 대답했다.
“노우? 그거 영어로 아니라는 말 아닌갑소? 그렁게 삼총사가 아니라는 말이 되는디?”
최영감이 한마디 했다.
“수신제가 치국 평천하락했으이 치국 삼총사락합시더.”
교장 영감이 가만히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그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치국이란 바로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인데 우리 늙은이 삼총사가 국가적인 큰일은 못해도 우리 지역사회와 젊은 세대들의 그릇된 습관을 고쳐주는 일을 하는 치국삼총사로 합시다.”
배영감도 고개를 끄덕였다.
“참말로 좋은 생각 같소이. 늙은이라고 뒷방에 박혀 잔소리나 하고 기침이나 콜록거릴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하여 큰일 한번 해보더라구요.”
두 사람이 자기 의견을 받아들이자 최영감이 신이 났다.
“이호집 교장 벗님이 대장하고, 내캉 일호집 벗은 부하로 하입시더.”
교장 영감이 사양했다.
“똑같은 벗인데 무슨 대장이 있고 부하가 있습니까. 그냥 벗으로 하십시다.”
배영감이 가만있지 않았다.
“우리 셋이 도원결의했응게 당연히 유비가 있어야 하고 장비와 관우가 있어야 하는 게 맞당게요.”
교장 영감이 말했다.
“도원결의가 아니라 송하결의로 하는 게 좋겠소. 이 소나무 아래서 결의를 했으니 말이오.”
최영감이 박수를 쳤다.
“교장 말씀이 맞십니더. 송하결의라! 참 좋은 말씀 아닝교?”
“그러고 봉게 송하결의가 맞는 말 같당게. 하하하 내가 무식해서 도원결의라고 했응게 이해하시오이.”
최영감이 결정하는 말을 했다.
“송하결의는 되았으이 심교장이 유비, 배영감이 관우, 내가 장비를 하겠소. 우리 이자부터는 삼총사 유비, 관우, 장비요.”
배영감이 좋아서 손뼉을 쳤다.
“우리 삼총사 이름도 정해졌응게 송하결의회를 하능게…….”
최영감이 말을 막았다.
“오늘은 내가 낼랑게 우리 집으로 가입시더.”
배영감이 가로막았다.
“아니랑게요. 내가 먼저 말했응게…….”
교장 영감이 말했다.
“아우들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게요? 송하결의를 했고 내가 유비가 되었으니 당연히 관우, 장비한테 한 턱 내야지. 아니 그렇소? 내 말에 따르지 않으면 부하가 아니외다. 하하하.”
소나무 아래서 삼총사가 웃자 소나무도 바람을 일으키며 손뼉을 쳤다.
15. 삼강오륜을 아시는가?
유비가 된 교장 영감이 제안했다.
“우리가 삼총사 결의를 했으니 무엇인가 해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장비 최영감이 동의했다.
“유비 형님이 하자는 대로 하면 안 되겠십니꺼?”
교장 영감이 웃으며 말했다.
“유비 형님이라니, 우리는 서로 벗이라고 하지 않았소?”
배영감이 나섰다.
“장비 말이 맞당게요. 우리는 벗으로 만났다가 송하결의를 하면서 삼총사가 되었고 유비, 관우, 장비를 정했응게 삼형제 삼총사가 맞당게요.”
장비가 거들었다.
“관우 형 말씀이 맞십니더. 내는 나이도 그렇고 직업도 농사꾼이었고 큰형님은 교장을 지내고, 관우 형님은 부면장까지 했으이 순서를 정하는 것이 맞십니더.”
유비 교장 영감이 약간 멋쩍어하면서 대답했다.
“좋습니다. 두 벗이 그렇게 하자 하였으니 무슨 일이든 우리가 할 일을 할 때는 유비, 관우, 장비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만났을 때는 친구로 합시다.”
장비가 말했다.
“형님, 무슨 일을 먼저 하실랍니꺼?”
관우 배영감이 제안했다.
“지금 세상은 삼강오륜이 땅에 떨어졌다고 한탄하고 있응게 삼강보다  땅에 떨어진 오륜 줍기로 하시면 좋지 않을기라오.”
유비 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말씀이오. 땅에 떨어진 오륜을 찾으러 갑시다.”
장비 최영감이 눈이 둥그레졌다.
“형님들, 오륜이 땅에 떨어졌다카문 월드컵 경기장으로 가야지예?”
유비 교장 영감이 빙그레 웃었다.
“월드컵 경기장에도 오륜이 있기는 하지, 하하하.”
관우 배영감도 따라 웃었다.
“참 거시기한 말이구먼, 하하하하.”
“와들 웃으십니꺼? 내 말이 틀렸십니꺼?”
유비가 말했다.
“장비 말이 틀리지는 않았어. 오륜은 오륜이니까. 하하하.”
“그런데 와 또 웃으십니꺼?”
관우가 물었다.
“장비가 오륜기는 알아도 삼강오륜은 모르는갑소.”
“와 내가 모릅니꺼. 삼강이락하면 한강, 낙동강, 대동강이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크지 않십니꺼. 아닌가베, 압록강도 있고 두만강도 있고 영산강도 있고 금강도 있으이 삼강이 아이라 7강 오륜이 맞십니더.”
관우 배영감이 손뼉을 쳤다.
“장비가 지리 공부는 제대로 한 것 같당게. 우리나라에 큰 강이 일곱 개가 있고 작은 강이 또 있지, 하하하.”
“와 자꾸 웃으십니꺼?”
유비가 대답했다.
“장비 말도 맞아서 웃는 거라네. 삼강은 물이 흐르는 강을 말하는 게 아니라네.”
“강 말고 또 있습니꺼?”
유비 교장 영감이 선생 때 제자들한테 하던 말을 했다.
“삼강오륜(三綱五倫)은 원래 중국 전한(前漢) 때 동중서(董仲舒)가 공맹(孔孟)의 교리에 입각하여 삼강오상설(三綱五常說)을 논한 데서 유래되었다네. 그 가르침은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과거 오랫동안 사회의 기본적 윤리로 존중되어 왔으며, 지금도 일상생활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윤리 도덕을 말하오.”
관우 배영감이 감탄했다.
“교장 선생을 했다더니 참말이랑게. 내도 잘 모르는 것을 설명항게 그 동안 말로만 지껄이고 모르던 역사까지 알았소이.”
장비는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되었다.
“그기 무신 말이오? 그 강이 중국에서 왔다꼬?”
유비가 대답했다.
“맞소. 그 말은 중국에서 왔소. 우리가 하는 삼강오륜은 물이 흐르는 강이 아니라 세상을 바로 잡고 이끄는 유교의 도덕관념에서 기초가 되는 세 가지의 강령과 다섯 가지 윤리를 말하는 것이라오. 장비가 이해를 못하는 것 같으니 이왕 말이 나온 김에 확실히 알고 봅시다. 관우는 삼강오륜을 기억하시오?”
16. 떨어진 오륜 줍기
관우 배영감이 대답했다.
“삼강은 군위신강(君爲臣綱)·부위자강(父爲子綱)·부위부강(夫爲婦綱)이 아닌갑소?”
“맞습니다. 말씀하신 김에 그 의미도 말씀해 주시지요.”
“군위신강은 임금에 대한 신하의 도리, 부위자강은 아버지에 대한 자식의 도리, 부위부강은 남편에 대한 아내의 도리로 사람이 반드시 지켜야 할 덕목이지라오.”
“참 잘 기억하십니다. 그럼 오륜은?”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이지라오.”
옆에서 보던 장비 최영감이 놀라 한마디 했다.
“관우 형, 제법이시오. 존경시럽십니더.”
교장 영감 유비가 말했다.
“관우님 기억력이 대단하십니다. 오륜에 대한 설명까지 부탁합니다.”
“이 말은 맹자(孟子)에 나오는데 부자유친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도리와 사랑, 군신유의는 임금과 신하는 의리를 지키고, 부부유별은 부부 사이에는 서로 예를 갖추고 지켜야 할 도리를 구별하고, 장유유서는 젊은이는 어른 앞에서는 차례와 질서를 갖추어야 하고, 붕우유신은 친구 사이에 의리와 도리를 지켜야 한다는 가르침이 아니랑가요?”
유비 교장 영감이 감탄했다.
“허허, 선생 노릇을 평생 한 나보다도 설명을 더 잘했습니다. 면장을 해야 할 어른이 부면장을 한 것 같소이다.”
“그리 말씀하시면 부끄럽지라우.”
장비 최영감은 입을 벌리고 듣다가 한 마디 했다.
“내가 서울 와 훌륭한 어른을 벗으로 삼았으이 크게 출세한 것 같십니더. 하하하.”
교장 유비가 말했다.
“이제 한 가지 우리가 할 일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삼총사가 서로 이름 대신 관우 장비 하고 부르기로 하고 땅에 떨어진 오륜 중에 한 가지씩 실행해 봅시다.”
장비가 말했다.
“오륜이 뭔지 알았응게로 유비 형님이 하자카는 대로 할 깁니더.”
“고맙습니다. 내일 아침엔 남들보다 일찍 식사를 하고 나오시오. 그리고 이 아파트 앞에서 동네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오륜이 어떻게 지켜지고 있는지 봅시다.”
관우 배영감이 새까맣게 올려다 보이는 아파트를 보면서 말했다.
“모두가 25층이고 한 층에 세 집이 산게로 75가구가 한 지붕 아래 사는 꼴이랑게요. 시골 동네로 치면 아주 큰 동네가 아닌가유.”
“하모, 우리 동네가 다 해 봐야 열여덟 집이지만 큰 동네 축에 들어가는데 일흔다섯 집이 모여 있으니 시골 면만이나 할 것 같소.”
유비가 말했다.
“한 가정에 네 식구가 산다면 얼마요?”
관우가 금방 대답했다.
“사 곱하기 칠십오면 삼백 명이 사는 셈인디, 거시기하구먼.”
장비가 말했다.
“삼백 명이 저 승강기를 타고 들락거리는 거 아닙니꺼?”
유비가 대답했다.
“그렇지요. 삼백 명입니다만 더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세 가정의 숫자만도 얼마나 됩니까? 우리만 해도 열여덟 명입니다. 한 가정에 여섯 식구가 삽니다.”
관우가 직업의식이 발동해서 유비한데 물었다.
“이 정도면 이장도 있어야 하고 세무 공무원도 있어야 할 것 같은디 그건 누가 관리하남유?”
“나도 모르겠으니 내일부터 알아봅시다.”
이렇게 하고 헤어졌다가 다음 날 아침 일찍이 삼총사가 모였다. 유비 교장 영감이 말했다.
“오늘부터 우리 삼총사가 저 엘레베터 앞에 나란히 서서 나가는 사람과 들어가는 사람이 어떤 모습인지 지켜봅시다.”
장비 최영감이 불만스럽게 말했다.
“그기 뭡니꺼? 늙은이들이 줄래줄래 서서 오가는 사람을 바라보면 아들 장난하는 것 같고 낯 뜨겁게시리…….”
유비 교장 영감이 꾸짖는 어조로 말했다.
“약속했잖습니까. 안 하시겠다는 겁니까? 장비!”
“아입니더. 안 한다카는 기 아이고……. 할 깁니더.”
이래서 송하결의 삼총사가 아침에 출근하는 아파트 사람들을 지켜보기로 하고 계단 앞에 주르르 섰다. 배영감이 중얼거렸다.
“누가 가장 먼저 나올랑가?”
17. 얼굴을 보면 마음도 보인다
7시가 되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남녀 고등학생들이 우르르 나와 삼총사 노인들 앞을 돌아보지도 않고 지나갔다. 이어서 중학생쯤 된 아이들이 쏟아져 나와 삼총사 앞을 갸웃거리며 지나가고 다음 문이 열리자 초등학생들이 올망졸망 나와 삼총사 앞에서 장난기 어린 눈을 깜박거리며 꾸벅꾸벅 인사를 하고 달려 나갔다.
7시 반쯤 되자 엘리베이터 안에서 예쁘게 차린 아가씨들이 나오고 멋쟁이 차림의 청년들이 나와 노인 삼총사 앞을 지나갔다. 아가씨들은 이상한 노인들 다 보았네 하는 얼굴로 킥킥거리고 청년들은 힐끗 쳐다보는 눈이 늙은이들이 무슨 짓이야 하는 빛이 역력했다.
8시에 문이 열리자 중년 신사들이 배를 내밀고 어깨에 힘을 준 채 힐끔거리며 쳇쳇하는 소리를 내는가 하면 한창 젊은 아낙들이 힐끔힐끔 곁눈질로 보면서 엉덩이를 흔들고 지나갔다.
9시가 되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서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나왔다. 키가 미루나무처럼 커다란 젊은 노인이 삼총사 앞에 멈추더니 말을 건넸다.
“댁들은 무슨 볼일이 있어서 이리 모이신 게요?”
장비 최영감이 대답했다.
“사람 구갱 안 합니꺼.”
“예? 사람 구경을 하신다고요?”
교장 영감 유비가 대답했다.
“그렇소. 사람도 보고 인심도 구경하는 중이라오.”
“사람 구경은 말이 되지만 인심을 구경한다는 말이 됩니까? 인심이 보여요?”
“보이다마다요. 사람은 얼굴과 동시에 마음씨도 보입니다.”
키다리 영감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노인장, 농담하시오?”
“아침부터 농담이나 할 우리로 보이시오?”
“아침부터 노인 셋이 조르르 서 있는 모양은 보기가 좀 이상합니다.”
“추해 보인단 말씀이시오?”
“그런 뜻은 아니지만…….”
관우 배영감이 끼어들었다.
“영감은 어디를 가시는 중이시오?”
“영감이 갈 데가 어디 있겠소. 그냥 나서서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다 해가 지면 오지요. 그건 왜 물으시오?”
장비가 대답했다.
“그라문 우리하고 같이 하입시더.”
“뭘 같이 하자는 것이오?”
“우리는 송하 삼총사래요, 영감도 한 몫 끼시오.”
“허허 참 이상한 양반들 다 보겠네. 나도 끼라고요?”
“끼시소. 저기 교장을 지내신 어른은 유비이고 이쪽 부면장까지 지내신 분은 관우, 내는 장비요. 영감도 끼어줄기니 들어오시소.”
“유비 관우 장비가 모인 곳에 내가 뭘로 끼겠소?”
“내 보이 영감은 제갈공명 같소. 제갈공명 하시오.”
“하하하. 삼국지를 엮으시는구려. 내가 제갈공명?”
관우 배영감이 한 마디 도왔다.
“장비가 참 말 잘했당게. 이 영감 가만 봉게 제갈공명처럼 머리 좋고 인물 좋소이.”
관우의 말에 키다리 영감이 기분이 좋아진 얼굴로 말했다.
“제갈공명! 내가 세상에 나서 처음 들어본 소리요. 내가 제갈공명 같다고요, 하하하.”
교장 영감 유비가 말했다.
“영감도 하루 종일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 돌아오신다니 내 처지나 같습니다. 나도 직장을 그만 두고 무려 이십 년 가까이 하는 일 없이 시간만 잡아먹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셋이 저 소나무 아래서 송하 결의를 하고 삼총사가 되어 무슨 할 일이 없을까 찾는 중이었습니다. 영감님도 우리와 함께 삼국지를 만듭시다. 내가 보기에도 총명하게 보이시니 제갈공명이라는 이름에 어울릴 것 같소. 어떻소?”
“그렇게 말씀하시니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제갈공명으로 가입을 하면 사총사가 되나요?”
신이 난 장비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
“하모, 하모 사총사 오총사 모이는 대로 하입시더.”
키다리 영감이 마지못한 듯 대답했다.
“별로 할 일도 없이 심심한데 그리 해 봅시다. 밑져야 본전 아닌가 하하하.”
교장 유비가 반겼다.
“고맙습니다. 이리 쉽게 동지를 얻을 줄은 몰랐습니다. 알고 보면 영감이나 나나 비슷할 것이오.”
키다리 영감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유비 형님, 나 보고 제갈공명이라더니 금방 영감이오? 하하하.”
“고맙소. 속이 키보다 넓은 사람 같소. 이제부터 제갈공명이라 부르겠소.”
“오늘 나는 크게 출세를 했습니다. 형님들 이제부터 제갈공명이라고 불러주십시오.”
곁에서 신이 난 얼굴로 보던 관우와 장비가 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소이, 제갈공명.”
“고맙소, 제갈공명!”
이렇게 네 사람이 둘러서서 웃음마당을 이루고 있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작달막한 키에 머리가 하얗고 옴팡지게 생긴 땅딸보 노인이 나왔다. 노인이 나서는 것을 본 네 사람이 일렬로 서서 노인을 바라보았다.
땅딸보 노인, 네 영감이 줄을 서 있는 것이 이상했던지 다가와 물었다.
“댁들은 무얼 하시오?”
장비가 대답했다.
“우리는 사람 구갱, 인심 구갱합니더.”
“사람 구경이 하고 싶으면 시장통이나 큰 길에 나가 보셔야지요.”
“인심 구갱은 여기가 좋십니더.”
“인심 구경을 하시다니. 살다 보니 별 소리를 다 듣겠소. 사람 맘이 보이기나 하시오?”
“인심은 얼굴을 보는 순간 보입니더.”
“허허, 농담도 잘 하시오.”
“영감, 이러지 마고 내 말, 아이라 유비 형님 말씀을 들어보시소.”
“유비요? 지금이 춘추 전국시대나 되오?”
“맞십니더. 영감님 닮은 인물이 삼국지에 하나 있십니더.”
“뭐라고요?”
18. 아파트 현대판 칠현
“조조락하는 인물이 영감님을 닮은기라예.”
땅딸보 영감이 재미있는 대답을 했다.
“이보시오. 조조가 나를 닮다니, 그게 말이 되오? 내가 조조를 닮았다면 말이 되지만.”
유비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영감님 말씀이 맞습니다. 조조가 먼저 사람이니 후에 난 사람을 조조가 닮을 수는 없지요.”
그러면서 장비를 보고 물었다.
“장비는 농사만 짓다 왔다더니 그게 아니구려. 삼국지에 나오는 인물을 다 꿰뚫고 있지 않소?”
“남새시럽십니더. 농사 짓가 심심하면 삼국지를 읽다보이 그리 됐십니더. 아주 쬐금 압니더.”
“아니오, 대단한 실력이시오. 안 그래요 관우?”
관우 배영감이 목을 낮추고 대답했다.
“저는 삼국지를 제대로 읽어보지 못해서 아는 게 없당게요.”
땅딸보 영감이 눈을 이리저리 깜박거리며 물었다.
“그러니까 여기 서 있는 사람들이 모두 삼국지 인물 아닌가. 유비, 관우, 장비, 그러면 끝에 키다리 영감은 제갈량이라도 되오?”
장비가 냉큼 대답했다.
“맞십니더. 제갈량이신기라예. 이자 영감님이 조조가 되시면 삼국지가 제대로 되어 가겠십니더.”
“허허 이 사람, 생김새는 그렇게 안 생겼는데 아는 건 많은가 보오.”
“지는 삼국지락하면 우리 조상 족보보다 더 많이 압니더.”
땅딸보 영감은 보기보다 통이 컸다.
“나를 조조라고 하니 과히 기분 나쁘지는 않소. 그럼 나도 조조라고 저 제갈량 옆에 서 있으라는 말이오?”
유비 교장 영감이 겸손히 말했다.
“그러실 것 없습니다. 바로 제 자리 위에 서십시오. 우리 형제들과 함께 하시는 것만도 영광입니다.”
“나 같은 늙은이가 무슨 영광이 되겠습니까. 그리고 순서로 보아 내가 막내인 것 같으니 내 자리를 찾아가 서겠습니다.”
조조가 된 땅딸보 영감이 끝에 서더니 한 마디 했다.
“이 동네에 우리 또래 늙은이가 둘이 더 있소. 그 사람들만 들어오면 우리가 칠형제가 될 것 같소.”
일은 참 재미있게 돌아갔다. 그 말이 떨어지자 엘리베이터가 열리며 영감 둘이 나타났다. 땅딸보 영감아 반가워서 소리쳤다.
“이보게들 이리 오게. 아주 잘 되었어.”
두 영감 중에 한 영감은 발을 약간 절었지만 아주 쾌활한 성격이었다.
“딸보, 무슨 좋은 일이 있나?”
“좋은 일이 있어. 이리들 오게.”
두 사람이 가까이 오자 서둘러 소개를 했다.
“여기 계신 어른이 유비, 다음이 관우, 다음이 장비, 그리고 제갈량, 그리고 내가 조조. 두 사람은…….”
말을 하다 말고 장비를 보았다.
“장비 형님, 이 두 사람은 누구로 할까요?”
장비 최영감이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헤헤헤, 지가 뭘 안다꼬 그러십니꺼. 앞에 오신 분은 동탁 같고 뒤에 오신 분은 여포 같십니더.”
땅딸보 영감 조조가 손뼉을 쳤다.
“장비 형님은 바로 점쟁이시오. 두 사람을 보니 동탁 같고 여포가 틀림없어요. 하하하.”
두 사람은 영문을 몰라 눈을 이리저리 돌렸다. 동탁이라고 불린 사람이 쾌활하게 웃으며 받았다.
“햐, 거참 지미있다아, 하하하 내가 동탁이라고? 동탁 좋지! 내가 동탁이라 하하하.”
뒤에 따르던 영감도 재미있다는 듯 말했다.
“나를 여포라고? 하하하 좋지요.”
두 사람 말에 신이 난 장비가 어깨를 추켜올리고 말했다.
“오늘 일이 잘 되았십니더. 금방에 칠형제가 만들어진 거라예.”
잠잠하던 관우가 입을 열었다.
“이러다 봉게 우리가 칠현 같소이다. 송하결의 삼형제가 아니라 송하칠현으로 하면 어떨랑가요?”
땅딸보 영감 조조가 대답했다.
“그거 아주 좋습니다. 송림칠현이라!”
유비가 관우한테 물었다.
“칠현을 다 아시나?”
“안당게요. 중국 춘추시대에 유명한 일곱 현인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당게요. 백이(伯夷) ·숙제(叔齊) ·우중(虞仲) ·이일(夷逸) ·주장(朱張) ·소련(少連) ·유하혜(柳下惠)가 아니랑가유?”
장비가 놀라서 물었다.
“관우 형은 어찌 그리 잘 아시오?”
“내가 부면장할 적에 직원들이 들어오면 너는 백이 너는 숙게 하고 일곱 칠현 이름을 붙여주고 일은 그 칠현처럼 바르게 하라고 입이 닳도록 훈계했당게요.”
유비가 흡족해서 물었다.
“칠현 이름을 그렇게 다 외우는 사람은 보지 못했는데 참 훌륭하오. 이왕에 백이 숙제가 나왔으니 그 형제 이야기도 마저 하시구려.”
“관리라면 시골 면장이나 서울 시장이나 다 그런 사람들 본을 받아야 한당게요.”
조조 땅딸보 영감이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면장도 아니고 부면장을 했다면서 어찌 그리 많은 것을 아시오? 그 고장 면장은 또 얼마나 많은 것을 아실까?”
“시골사람 우습게 보지 말랑게요. 우리는 애향 애민 정신으로 백이 숙제같이 의리로 살아오고 있당게요.”
장비가 재촉했다.
“백이 죽제가 뭔 소린지 모르지만 빨리 말해 보이소.”
19. 노인들의 아이들놀이 준비
관우 배영감이 말을 받아 긴 이야기를 계속했다.
“백(伯)과 숙(叔)은 위아래 서열을 나타내는 것인디 백이와 숙제 형제는 은(殷)나라 고죽국(孤竹國)의 왕자였다고 하지라오. 아버지 왕이 죽으면서 후계를 막내아들로 하라고 하였당게요. 그러나 막내아들은 형님을 두고 아우가 왕이 될 수 없다고 후계자가 되기를 사양하였고 형은 아버지의 뜻이 그렁게로 그리 하는 것이 옳다고 우기다가 끝내 두 사람이 선정으로 이름난 주문왕이 다스리는 나라로 떠나고 가운데 아들이 왕위를 이었지라오. 그러나 선한 정치를 하던 문왕이 죽고 그 아들 무왕(武王)이 은나라의 주왕(紂王)을 토벌하고 새로운 주왕조를 세우면서 악정을 했다 하오. 그런 횡포를 보고 무왕은 인의(仁義)에 어긋난다 하여 형제는 주나라 곡식 먹기를 거부하고 수양산으로 들어가 고사리를 꺾어먹고 살다가 굶어죽었다고 안 하오. 의좋은 형제의 우애를 많은 사람들이 칭송하고 크게 우러러 보게 되었고 백의 숙제 형제는 그렇게 하여 이름을 남겼지라오.”
관우 배영감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 가지 이상한 소리를 했다.
“그런디 죽림칠현이라고 하는 말은 확실한디 그 칠현 이름이 나를 어지럽게 한당게요. 사전에는 죽림칠현을 산도(山濤), 왕융(王戎), 유영(劉伶), 완적(阮籍), 완함(阮咸), 혜강(嵇康), 상수(尙秀)라고 나와 있어서 중국 상나라 은나라 인물들 같고 춘추시대 칠현이란 내가 좋아하는  백이 숙제인게로 나대로 했응게 칠현은 죽림 칠현 후대의 인물들로 알더라구유.”

장비 최영감이 둘러보면서 말했다.
“관우 형님이 많이 아시는 것 같소. 우쨌든 삼총사가 칠총사가 안 되었는기요.”
땅딸보 조조가 말했다.
“칠총사가 아니라 이제 송림칠현이 되었다고 해야 합니다.”
그 말에 제갈량이 토를 달았다.
“송림칠현이 아니라 뭐랄까…….”
유비 교장 영감이 말을 받았다.
“자, 이렇게 서서 있을 것이 아니라 저 소나무 아래 평상으로 갑시다.”
모두가 평상으로 가 둘러앉았다. 유비가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여기는 소나무 아래 평상이오. 좀 부족하긴 하지만 우리 일곱이 결의를 다졌으니 현대칠현이라고 합시다. 그리고 소나무 같은 절개로 뜻있는 일을 하기로 하면 칠현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이오.”
막내가 된 여포가 물었다.
“다 늙은이들이 무슨 일을 크게 할 것이 있습니까? 그저 밥이나 먹고 장기나 두다 가면 되는 거 아닙니까?”
동탁이 손을 저었다.
“늙었다고 다 산 것처럼 말하면 안 됩니다. 늙어서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 값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비가 무릎을 치며 말했다.
“맞십니더. 늙었다꼬 죽을 날만 세고 있으면 안 되는기라예. 늙은 값을 하고 죽어야 하는기라요.”
유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장비가 생각은 바로 하는 것 같소. 우리 이제부터 누가 보아도 아이들 짓 같은 일을 하나 해 봅시다.”
제갈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 늙어 가지고 아이들 같은 짓을 하다니요?”
“그렇소. 내일 아침부터 시작하기로 하겠소. 오늘 아침에 삼총사가 먼저 아파트 입구에서 무엇을 얻었습니까.”
조조는 머리가 잘 돌아갔다.
“낚시질에 성공했지요. 세 분이 서서 네 사람을 건져서 목줄을 매놓았지 않습니까? 하하하.”
“맞습니다. 삼총사가 송하칠현으로 발전했습니다. 이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한 번 해 봅시다.”
동탁이 물었다.
“무슨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서 하시는 말씀이시오?”
“있지요. 내가 하자는 대로만 하면 우리가 쳐 놓은 그물에 고래, 고등어로부터 새우까지 다 걸려들 것입니다.”
여포가 물었다.
“그럼 우리가 어부가 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어부가 되어 물을 흐려놓는 미꾸라지를 잡아 맑은 물을 만들어 보자는 것입니다.”
장비가 말했다.
“우리 장형님이 하자고 하면 다 그리 해 봅시더. 교장을 지내신 교육자가 헛소리 치겠십니꺼.”
관우 배영감이 말귀를 알아들었다.
“물을 흐려놓는다는 건 윤리가 땅에 떨어졌다는 말씀이랑게요. 떨어진 윤리를 바로 잡자는 게 아니랑가요?”
“그렇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끝내고 내일은 아침 일곱 시에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으로 모두 나오시오. 그리고 관우 부면장께서는 삼국지에 나오는 인물을 알아 오시오. 최소한 유비, 관우, 장비, 조조, 제갈량, 동탁, 여포가 어떤 인물인지나 알고 이름을 자기 이름으로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관우가 겸손히 대답했다.
“말씀대로 할랑게요, 아는 데까지는…….”
이때 장비가 말을 끊었다.
“유비 형님예, 삼국지 인물에 대하여는 지가 억시게 마이 압니더. 그런 건 이 장비한테 맡기시소.”
관우가 얼른 대답했다.
“고맙지라오. 내가 그걸 다 알아 오자면 밤을 새워야 할 판인디 나 대신 한당게 겁나게 고맙지라오.”
“그럼 그렇게 하시오. 내일 아침에는 내가 하라는 대로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서 내가 하는 대로 따라 하면 됩니다.”
제갈량이 물었다.
“무엇을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그건 내일 아침에 봅시다.”
20. 할배, 무슨 놀이하는 거야
아침 일곱 시도 되기 전에 송하칠현 영감들이 아파트 앞 문 앞에 모여 옆으로 나란히 서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조조가 누구든 들으라는 듯 말했다.
“이게 뭐 하자는 겁니까?”
장비가 억센 소리로 대답했다.
“어제 아치게 낚시에 걸려서 코가 꿰고도 감이 안 잡히시는기요?”
조조가 금세 알았다는 듯 대답했다.
“그럼 오늘은 누구를 낚시질합니까?”
“낚시할 때 고기 보고 너 잡혀라 하고 낚시꾼 맴대로 합디까? 두고 보입시더.”
이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중고등 여학생들이 몰려나왔다. 엘리베이터 앞에 영감 일곱이 규율부처럼 서 있는 것을 보고 킥킥거리며 그 앞을 종종걸음으로 지나갔다.
그 다음에 문이 열리자 초등학생들이 나와 영감들을 둘러보며 시시덕거리다가 한 아이가 소리쳤다.
“할배 왜 여기 나와 있어?”
할배라고 한 아이의 할아버지 동탁이 당황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학교 잘 다녀와라.”
“할배 무슨 놀이하는 거야?”
“아니다, 학교나 가거라.”
아이는 영감들을 세듯이 짚어보며 낄낄거렸다.
“와! 우리 할배 히히히.”
“그게 무슨 짓이냐? 빨리 학교 가거라.”
“알았어. 나 학교 갔다 올게 기다려!”
그러면서 발을 떼는 순간 교장 영감 유비가 길을 막았다.
“너 잠깐 섰거라.”
“왜요?”
“이제부터 할아버지한테 지금 나한테 말한 것처럼 할아버지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하든지 다녀올 게요 하고 존댓말을 써야 한다. 알았지?”
그 아이는 엉뚱한 대답을 했다.
“우리 할배하고 말하는데 남의 할배가 왜 참견이죠?”
당황한 동탁이 얼굴을 붉히고 꾸짖었다.
“어른한테 그게 무슨 말 버릇이냐?”
아이는 들은 척도 않고 달아나면서 한 마디 뱉었다.
“할아버지 미워!”
그 아이가 달아난 다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다른 초등학생 여자 아이들이 조잘거리며 나왔다. 한 아이가 늘어선 영감들을 보면서 깔깔거렸다.
“저것 봐, 할아버지들이 웃겼어. 호호호.”
다른 아이가 말했다.
“할아버지들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야.”
“할아버지들이 군대처럼 주르르 서서, 넌 안 우습니?”
그러다가 영감들 사이에 끼어 있는 여포를 보고 낄낄거렸다.
“어어? 우리 할아버지도 끼었어, 호호호.”
그렇게 말하는 아이의 할아버지 여포 얼굴이 빨개졌다. 어이가 없어서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얌전한 한 아이가 입에 손을 세워 대고 말했다.
“할아버지들 들으셔.”
교장 유비가 여포의 눈치를 채고 말했다.
“학교 늦는다. 빨리들 가거라.”
그 말에 여학생들이 낄낄거리며 나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이번에는 회사원인 듯한 청년들이 나와서 노인들 앞을 성큼성큼 지나가며 힐끔거렸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으로 보아 이상한 영감들 다 보았네 하는 모양이었다. 그 뒤에 어려 사람이 지나갔지만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상한 영감들을 다 보겠네 하는 눈치였다.
아홉 시가 될 무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화장을 곱게 하고 멋지게 차려입은 부인들이 나왔다. 그 중에 어깨가 남자처럼 떡 벌어진 부인이 영감들을 한 차례 쓸어 보고 피식 웃으며 옆에 부인한테 말했다.
“노인들이 할 일이 없으면 파고다 공원이나 가지 이게 뭐야, 안 그래?”
그렇게 말하고 지나갈 줄 알았는데 장비한테 얼굴을 맞대고 물었다.
“할아버지들 무슨 데모하시나요? 불만이 있으면 말로 할 일이지 왜들 이러시나요?”
장비가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가 데모하는 것으로 보입니꺼?”
“할아버지는 처음 뵙는 분인데 언제 우리 동에 오셨나요?”
“오늘 서울 온 지 사흘 되었소.”
“무슨 불만들이 있으셔서 이렇게 나와 계신가요?”
“불만이 참 많십니더.”
“무슨 불만이신지 집에서 해결하셔야지요.”
“두고 보면 압니더. 좋은 일이 있을 깁니더.”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니 다행입니다. 수고들 하세요.”
부인들이 나가고 엘리베이터는 입을 다물고 조용했다. 일곱 영감이 줄레줄레 소나무 아래 평상으로 가 둘러앉았다. 유비가 송하칠현의 얼굴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동네 사람들 모습을 보신 소감이 어떠신지요?”
배영감 관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제나 오늘이나 다른 바가 없당게요. 오늘 봉게 사람들 얼굴이 익더만…….”
교장 유비가 침착하게 말했다.
“그렇지요. 사람은 한번 보면 아무 감정도 못 느낍니다. 이웃이라는 것이 얼굴이 익어야 이웃이 되고 얼굴이 익어야 마음도 열리고 친구가 되는 법입니다. 우리가 아침마다 나와서 오늘처럼 서 있어 보십시다.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두고 보면 압니다. 동탁 영감, 오늘 아이가 돌아오면 꾸짖지 말고 기다리시면 반드시 아이의 말씨가 달라질 것입니다. 여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을 갑자기 어른 노릇을 하라고 하면 반발심만 키웁니다. 아셨지요?”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비 교장이 이어서 장비한테 일렀다.
“오늘은 장비가 유비는 어떤 일물인지에 대하여 말해 보시오.”
“유비는 교장 선생님이 더 잘 아실 것 아닙니꺼?”
“다 알아도 다시 듣고 싶어서 그럽니다.”
“알았십니더, 유비 말고 다른 사람은 우짭니꺼?”
“날마다 이렇게 모일 텐데 급할 것 없어요. 내일은 아침에 우리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우리가 먼저 인사를 하고 우리 인사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보십시다. 그리고 난 다음 여기 모여서 소감을 나누고 관우에 대하여 장비가 설명하면 좋을 것이오.”
장비 최영감이 물었다.
“그럼 유비에 대하여 말씀드릴까예?”
“들어 봅시다.”
21. 할배, 뭐 잘못 먹었어?
장비 최영감이 기억을 더듬어가며 말했다.
“유비의 본명은 현덕(玄德)이라 하였고 중국 삼국 시대 촉한(蜀漢)을 세운 황제 전한(前漢) 경제(景帝)의 아들 중산정왕(中山靖王) 유승(劉勝)의 후손이락합니더. 황족의 후손이지만 생활이 어려버서 어려서부터 짚신, 돗자리를 맹글어 팔았다고 안 합니꺼. 삼국지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과 달리 제대로 갖추지도 모한 채 도원에서 맺은 결의형제와 손잡고 젊은이들을 모아 병사를 맹글어 원소, 원술의 동맹에도 참여하여 황건적을 토벌하기도 했닥합니더.”
배영감이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가 한 마디 했다.
“허허, 농사만 지었다드이 제법 많이 알고 있는 거 같당게.”
조조가 배영감의 말을 잘랐다.
“남이 이야기하는데 초 치지 마시오.”
장비가 김이 빠진 듯 간단히 마쳤다.
“유비, 관우, 장비와 병사들이 여러 전투에 참가했지마 아무 업적도 세우지 몬하다가 제갈량, 조자룡 등을 만나 세력을 맹글었고 손권과 손잡고 적벽에서 조조를 크게 물리치고 천하 삼 분의 일을 차지하고 한나라 정통을 계승한다는 맹분으로 촉한의 황제가 됐십니더. 그러나 결의형제 관우와 장비가 사망하자 무리하게 대군을 일으키다가 크게 패하여 제갈량한테 나라를 맡기고 세상을 떴십니더. 여기까지입니더.”
교장 영감 유비가 만족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나라 농부는 물론 전 국민이 장비처럼 책을 많이 읽고 이렇게 발표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애써서 깔보려는 이웃나라 일본 사람들은 노숙자도 독서를 열심히 한다고 합니다. 일본 직장인의 한 달 독서량은 7.5권이라는데 우리나라는 0.7권이라고 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전철을 타면 곧 스마트 폰에 빠집니다. 독서하는 국민이 강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오늘은 이 정도로 하고 내일 아침에 아파트 앞으로 나와서 또 출근하는 사람들을 봅시다.”
이렇게 말하고 유비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모두가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하루가 가고 집집마다 저녁이 되자 가족들이 모였다.
동탁이 집으로 들어가자 손자가 물었다.
“할배, 오늘 할배들이 모여서 무슨 놀이 했어?”
“무슨 놀이라니?”
“할배들이 나란히 서서 놀이했잖아? 재미있었어?”
이때 궁금하다는 듯 아들도 물었다.
“아버지, 오늘 노인네들이 주르르 서서 뭐 한 거야?”
동탁은 갑자기 아들 손자가 묻는 말에 기분이 상했다. 자식까지 둔 아들이 지금까지 반말을 하는가 하면 그 아들 손자까지 아비를 닮아서 반말을 하지 않는가.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인데 송하칠현의 결의를 하고 난 입장에서 갑자기 땅에 떨어졌다는 삼강오륜과 예의범절이 가슴에 못처럼 박혔기 때문이다.
통탁이 아들한테 물었다.
“넌 그렇게밖에 말을 못 하겠니?”
“아버지, 그게 무슨 말이야?”
“허허, 네가 지금 몇 살이냐?”
“아버지 벌써 치매야? 아들 나이도 모르고.”
“허허, 네가 아들 둔 아비가 맞느냐?”
“아버지, 왜 갑자기 이상한 것만 물어?”
이때 손자가 끼어들었다.
“할배, 오늘 할배들하고 뭐 잘못 먹었어?”
통탁은 점점 기분이 나빠졌다.
22. 가훈 없이 가르친 집
9층에 사는 동탁은 더 말하고 싶지 않아서 사귄 지는 얼마 안 되지만 송하칠현으로 결의한 1층 교장 유비 영감 아파트 앞으로 갔다. 미안하긴 하지만 눈 딱 감고 부저를 눌렀다.
“누구십니까?”
안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리면서 문이 열렸다.
“접니다.”
“동탁께서 웬일이십니까? 저의 집을 다 방문하시고.”
“용서하십시오. 아무 목적도 없이 그냥 뵙고 싶어서 왔습니다.”
“그러시다면 더 반갑지요. 어서 들어오세요.”
동탁은 정갈하게 꾸며진 집안을 둘러보며 놀랐다. 모든 가구가 짜임새가 빈틈없이 놓여 있고 깨끗해 보였다. 무엇보다 거실 앞 벽에 높이 달린 액자에 종훈과 가훈을 보는 순간 부끄러운 생각마저 들었다.
‘정직하고 당당하게 살라는 말씀이로구나. 나는 돈만 모으고 잘 사는 것만 생각하고 가훈 같은 건 생각지도 못했는데……. 가훈이 있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유비 교장 영감 며느리가 차를 내왔다. 자세가 겸손하고 얌전해 보였다. 차를 들면서 물었다.
“가훈은 보았지만 종훈이라는 건 처음 봅니다.”
“가훈은 제가 정한 것이지만 종훈은 우리 문중에서 조상님이 주신 말씀을 모두가 집에 걸어놓고 마음에 새기고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합니다. 동탁께서는 가훈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동탁은 갑자기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부끄럽습니다. 아직 그런 걸 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셨군요.”
이때 학교에서 돌아온 손자가 허리를 깊이 숙이고 인사를 했습니다.
“할아버님, 학교에 다녀왔습니다.”
“오, 잘 다녀왔느냐. 우리 집에 오신 손님이시다. 인사 올려라.”
손자는 얌전하게 인사를 했습니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저는 심범수예요.”
동탁은 웃는 얼굴로 인사를 받았다.
“그래? 아주 귀엽게 생겼구나. 공부도 잘하겠지?”
“네, 열심히 하고 있어요.”
손자가 제 방으로 들어가자 동탁이 언뜻 떠오르는 생각이 나서 말했다.
“유비 형님, 청이 있습니다.”
갑자기 형님이라고 부르는 소리에 교장 영감이 놀랐다.
“나 같은 사람한테 형님이라 하시니……. 무슨 청이신지요?”
“송하칠현 아우가 아닙니까. 저도 가훈을 하나 가졌으면 합니다. 우리 집안에 걸어둘 가훈 하나 정해 주십시오.”
“가훈은 남이 정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직접 후손에게 주고 싶은 바를 정하시면 됩니다. 이 자리에서 정해 주시면 제가 잘 쓰지는 못하지만 붓으로 써 드리고 액자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까지 할 것은 없으십니다. 우리 아이들은 말버릇이 나쁩니다. 그래서 생각난 것이 ‘공손한 말씨 겸손한 허리’라고 하고 싶습니다.”
“참 좋으신 말씀입니다. 말은 공손히 하고 몸가짐은 겸손히 하라는 말이 그 이상 무엇이 있겠습니까. 하하하 훌륭한 할아버지십니다.”
“부끄럽습니다.”
“됐습니다. 제가 붓으로 정성껏 써서 내일 표구상에 맡겼다가 액자가  되면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그렇게까지 하시지 말고 종이에다 글씨만 써 주시면…….”
“아니지요. 글씨도 좋은 표구를 해 놓을 때 돋보인답니다. 제가 만들어야 제 맘에 들고 제 맘에 들면 동탁 영감 맘에도 들 것입니다.”
“정 그러시다면 형님 말씀에 순종하겠습니다.”
“오늘은 세상 이야기나 하고 내일 아침에 일찍이 나오셔서 허리봉사를 하십시다.”
“허리봉사요? 그게 무슨 말씀인지요?”
“두고 보시면 압니다. 내일 일찍이 아파트 입구로 나오시면 세 번째 하는 허리봉사입니다.”
“하하하, 이 나이가 되도록 허리봉사라는 말은 처음 들어 봅니다.”
“그렇지요, 나도 처음 해보는 일이니까요.”
동탁은 가훈을 정해놓고 보니 아들과 손자의 반말 소리에 오그라졌던 감정이 풀리고 기분이 좋아졌다. 집으로 돌아가 현관문을 들어서자 손자가 조르르 달려와 물었다.
“할배, 어디 갔다 와?”
아들도 또 같은 소리.
“아버지 어디 갔다 와?”
동탁은 이상하게 마음이 즐거워서 아이들 반말도 이제 마지막이다 하는 생각을 하며 대답했다.
“저기 갔다 온다. 나 오늘 가훈 정했다.”
손자가 물었다.
“가훈이 뭐야?”
아들도 물었다.
“가훈이 다 뭐야? 지금 누가 그런 거 걸어 놓고 살아?”
동탁은 두고 보자고 다짐하고 교장 집과 자기 집을 비교해 보았다.
23. 책은 지식을 담긴 밥솥 같은 것
동탁은 자기 집으로 돌아와 집안을 둘러보았다. 가훈도 없는 집에 고급 양탄자를 깔고 고급 소파에 가구만 번드르르하다.
아들 내외 방, 손자 방, 자기 방, 거실 어디를 보아도 책 한 권이 없다. 아들 방에는 컴퓨터와 텔레비전이, 손자 방에는 온갖 장난감이 널브러져 장난감 가게 같다. 여기도 총 저기도 총, 대포, 탱크 전쟁터다.
자기 방에 들어가 보아도 책 한 권 없다. 마누라 얼굴만 한 헌 텔레비전이 주인이고, 거실에는 벽보다 크게 보이는 큰 텔레비전이 부자라는 위세를 보이듯 버티고 있을 뿐이다.
동탁은 혼잣말을 했다.
“허허, 내가 가장다운 가장인가? 사람은 교양이 있어야 하고 삼강오륜을 지켜야 한다고 말은 했지만 이게 다 뭔가. 유비 형님 댁은 종훈에 가훈이 있고 거실에도 책장에 책이 가득하고 아이들 방에도 책장이 보였는데 우리 집에는 책장은커녕 책 한 권이 없잖은가.”.
이런 생각을 한 동탁이 손자를 불렀다.
“광우야 이리 온.”
“할아버지 왜?”
“넌 무슨 책을 좋아하니?”
“난 책이 싫어.”
녀석은 머리까지 살래살래 흔들었다.
‘저렇게 젓는 머릿속에 무엇이 들어가야 하는가? 책이 아니면 머릿속에 지식을 담을 수 없지 않은가. 책은 바로 머릿속에 지식이 담긴 밥솥 같은 것인데…….’
동탁은 이렇게 생각하다가 물었다.
“넌 뭘 잘 하느냐?”
광우는 들고 있던 총을 이리저리 돌려대며 탕탕탕 쏘는 시늉을 하다가 방으로 뛰어 가더니 탱크와 대포를 들고 나와 자랑을 했다.
“나? 이거 탕탕탕! 우르르쿵쿵 둘둘둘. 재미있지 할아버지?”
“그렇게도 좋으냐?”
“좋아, 그런데 우리 집에 있는 것보다 옆집에 있는 아이는 더 좋은 탱크를 가지고 있어. 할아버지, 그거 사 줘, 응?”
“옆집에 책은 없더냐?”
“없어. 걔네는 아빠도 장난감 가지고 탕탕탕 따따따 쾅쾅하고 아주 재미있게 놀아주고 엄마도 같이 놀아준다는데 우리 아빠는 텔레비만 봐.”
“엄마는?”
“엄마는 스마트폰으로 친구들하고 하루 종일 전화하고 히히 호호 히히 호호.”
“모두 그 모양이니 큰일이로다.”
“왜? 할아버지?”
“넌 장난감만 가지고 놀다가 뭐가 되고 싶으냐?”
“몰라. 할아버지 탱크 큰 거 사줘.”
이때 며느리가 들어왔다.
“아버지, 광우하고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하세요?”
“아무 것도 아니다.”
동탁은 옆집 유비 형님 집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책 한 권 없는 집구석에 장난감만 잔뜩 쌓아놓고 자식 잘되기를 비는 부모와 할아비가 있으니 소원대로 될 줄 믿는 게 어리석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가까이 오는 며느리한테 물었다.
“얘야, 우리 집에는 어째서 책 한 권이 없느냐?”
“왜 없어요? 광우 교과서가 다 책인데요.”
“광우 책가방은 어디 있느냐?”
“몰라요, 학교 갔다 오면 아무데다 휙 던지고 장남감 놀이만 하니까요.”
“너는 광우 책을 읽어본 적이 있느냐?”
“제가 몇 살인데 초등학고 이학년 책을 읽어요.”
“그러냐? 광우가 책을 읽다가 모르는 것을 물으면 어떡하겠니?”
“그런 염려는 없어요. 집에서는 공부를 하지 않는 아이라 물어볼 일도 없고요. 삼학년이 되면 과외 보내게 될 테니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돼요 아버지.”
“참 편리하게 생각하는구나.”
“지금은요, 아버지 학교 다닐 때 생각하시면 안 돼요. 어렸을 때는 자기 하고 싶은 것을 맘껏 하게 해 주어야 해요.”
“그게 부모가 할 일이냐?”
“그것 말고 더 있어요?”
“우리 집에는 책이 겨우 광우 교과서뿐이로구나.”
“모르는 건 다 스마트폰에서 확인하면 알아요. 책이 무슨 소용인가요?”
“그래서 책이 하나도 없는 집을 만들었느냐?”
“그런 건 아니에요. 그 채임은 광우 아빠한테 있어요. 저는 지금까지 광우 아빠 책 읽는 것도 못 보았지만 책 한 권 사오지 않았어요.”
“유대인은 자식들 보는 앞에서 하루에 한 시간 이상 책 읽는 모습을 부모가 보여주면서 기른다고 했다.”
“우리가 유대인인가요? 나라마다 다 다르지요.”
동탁은 꼬박꼬박 나름대로 대답하는 며느리를 보자니 어이가 없어서 한 마디 했다.
24. 책장 없는 부잣집
“어떤 집을 방문했을 그 집에서 가장 귀하게 눈에 띄는 것은 무엇이더냐?”
“많지요 뭐.”
“무엇이 그리 많더냐?”
“고급 소파, 고급 양탄자, 물고기가 동동 떠다니며 노는 어항, 외제 자동차, 명화……, 어떤 것은 외제라 알 수도 없는 것들이지요”
“또 무엇이 있더냐?”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아요.”
“네가 댄 것들 중에 없는 것을 하나 우리 집에 준비해야겠다. 그러면 다른 집보다 좋겠지?”
“뭔데요?”
“책장이다. 그것을 좋은 것 하나 사다 놓고 책을 채우자.”
“책을 누가 본다고 그런 걸 준비하고 책을 채워요. 요새 책값이 얼마나 비싸다고요. 책 장 하나를 채우자면…….”
“좋은 어항에 황금잉어 한 마리를 사들이는 데 얼마나 드는지 아느냐?”
“아주 큰 어항은 이백만 원도 넘고요 황금잉어는 오백만 원짜리도 있다는데요.”
“우리야 그렇게 비싼 것은 못 사더라도 최소한 얼마짜리를 사면 좋겠느냐?”
“어항 오십만 원, 외국 물고기 백만 원이면 어울릴 거예요.”
“책장은 얼마나 가느냐?”
“쓸만한 건 오만 원짜리부터 십만 원 정도인 것 같아요.”
“책은 얼마치나 사면 되겠느냐?”
“오십, 아니 백만 원……?”
“금붕어 사다 놓고 물고기 먹이를 사들이자면 한 달에 얼마나 들겠느냐?”
“물고기가 얼마나 먹어요. 한 달에 삼만 원 어지면 뒤집어쓰지요.”
“그렇게 돈 들이고 어항 사고 물고기 사다 먹이면 일 년 뒤에 무엇이 남겠느냐?”
“남기는 뭐가 남아요, 볼 때 즐거웠으면 된 거지요.”
“책장을 사다 놓고 한 달에 삼만 원씩 새 책을 사들이고 읽으면 어떻겠느냐?”
“바쁜데 누가 책을 읽어요, 아버지.”
“그렇게 바쁜데 물고기는 언제 보고 즐기겠느냐?”
“그것하고 같은가요? 아버지는 시대에 뒤떨어지…….”
“그렇게 하고도 광우가 공부 잘하기를 바라는 거냐? 물고기나 들여다보고 있으면 아이 머리가 좋아지고 지식이 늘어나겠느냐?”
“그건 정서적으로 좋은 거예요.”
“책을 읽으면 정서적으로 뒤떨어지고?”
“아이들 때는 맘대로 해 주어야 해요. 스마트폰, 장난감도 가지고 놀고.”
동탁은 은근히 부아가 났다. 며느리 생각이 자기 생각과 같지 않고 옆집 교장 유비 영감 집 가족들과는 전혀 딴판이기 때문이었다. 동탁은 명령에 가깝게 말했다.
“우리 집에도 책장 하나 들이자. 그리고 책도 네가 볼만한 것과 광우한테 읽혀야 할 책과 아비가 읽어야 할 책을 두 권씩 사오거라. 내가 볼 책은 내가 가서 사오마.”
“아버지, 이 좁은 거실에 책장까지 들여놓으시게요?”
“책장 하나가 얼마나 자리를 차지한다고 좁다는 게냐?”
“그래도…….”
오십 평 아파트에 거실이 이십 평도 넘고 방이 빈 방까지 넷이나 된다. 고향 사람들이 부자라고 부러워하는 아들 집인데 책장 하나가 없다. 더구나 책장 놓을 자리가 없다니! 동탁은 오금 박듯 말했다.
“내가 하라는 대로 하거라. 네가 안 한다면 내가 책장과 책을 사오마. 그리고 저렇게 큰 텔레비전은 이렇게 좁은 거실에 어울리지 않게 크다. 벽보다 큰 텔레비전은 놓으면서 책장 하나 놓을 자리가 없대서야 되겠느냐.”
“아버지, 억지예요.”
“책장 놓을 자리나 만들어 놓거라. 내가 시장 가서 하나 사오겠다.”
동탁은 집을 나서서 시장 가구점으로 갔다. 오만 원 짜리 책장이 쓸만 했다. 크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고 책 몇 권 꽂기에 적당했다. 그것을 사서 리어카에 실려 집으로 돌아왔다. 책장을 거실에 들여놓으려고 생각했는데 며느리가 손 하나 까딱 않고 있었다. 
책장을 메고 들어오는 가구점 점원을 보자 놀란 며느리가 소리쳤다.
“아저씨, 그렇게 들어오면 어떡해요? 복도에 놓고 가세요.”
그 소리에 동탁은 가구점 점원한테도 민망하고 화가 불끈 치솟았다.
25. 책은 소리 없는 선생
어른이 되어 가지고 젊은 며느리한테 속내를 드러낼 수는 없는 것. 동탁은 화를 참고 점잖게 말했다.
“책장은 나중에 광우 아범 오면 들여놓기로 하고 나는 서점에 가서 책을 몇 권 사와야겠다.”
그 말을 남겨놓고 가까운 동네 서점으로 갔다. 먼저 아이들이 볼만한 동화책과 부모가 읽어야 할 자녀지도 양육 도서와 며느리를 위해 요리 책도 사고 소설과 수필집도 샀다.
아들을 위해서는 인생독본과 바른 처세와 교양도서를, 그리고 자신을 위해 역사책 몇 권을 샀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복도에 세워두고 온 책장이 없었다. 며느리가 거실 정면 벽에다 책장을 얌전히 세워 놓았다. 그것을 보는 순간 조금 전에 노엽던 감정이 가라앉았다.
“책장은 누가 이렇게 들여놓았느냐?”
며느리가 겸손히 말했다.
“아버지, 죄송해요. 제가 들여놓았어요.”
“잘 했다. 수고했구나. 저걸 혼자 들여놓았어?”
“광우가 도와주었어요.”
동탁은 광우를 바라보았다.
“너도 이제 엄마를 도울 만큼 컸구나. 수고했다.”
철부지 광우는 자랑스러운 듯 할아버지한테 눈을 찡긋하고 물었다.
“할아버지 장난감 사왔어?”
“안 사왔다.”
“왜?”
“너도 장난감만 가지고 놀아서는 못 쓴다. 그 대신 네 선물 사왔다.”
광우는 선물이라는 말에 눈이 동그래졌다.
“뭔데? 뭐 사왔어?”
동탁은 책장 앞으로 가서 책 포장지를 풀어가며 말했다.
“이리들 오너라. 내가 선물을 주겠다.”
며느리도 손자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따리에서 무엇이 나오나 하고 보았다. 책이 나오자 광우가 실망한 소리로 말했다.
“책이잖아 할아버지?”
“그래, 책이다. 너 보라고 동화책 사왔다.”
“책은 싫어. 새로 나온 장난감 탱크 큰 거 사줘.”
며느리도 들여다보다가 중얼거렸다.
“전부 책이잖아요?”
“책이다. 이건 광우를 위해 네가 보아야 할 자녀 양육서이고 이건 가족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요리책이다.”
“아버지, 요새 책 보고 아이들 키우는 집이 어디 있어요. 학교에서 다 가르치는데 엄마가 뭘 가르쳐요. 그리고 요리는 제가 다 알아서 하는 건데 돈 아깝게 비싼 책은 왜 사오셨어요?”
“아이들을 학교에서 가르치면 얼마나 가르치겠느냐? 가정에서 가르쳐야 할 것이 있고 학교에서 가르칠 것이 따로 있다. 그리고 요리 책도 전문가의 글을 보고 하는 것과 아는 대로 하는 것은 다르다.”
광우가 뾰로통해서 불만했다.
“할아버지 책 싫어, 장난감 사줘.”
동탁은 약간 노기 띤 소리로 대답했다.
“안 돼! 이제부턴 장난감 대신 책을 읽어야 한다. 너 글씨 알지?”
“알지만…….”
“알았으면 됐다. 이제 네 방에 있는 장난감 모두다 할아버지 방으로 가져와라.”
“왜?”
“내가 이 책들을 책장에 꽂아놓을 테니 넌 동화를 읽어라. 한 권을 읽으면 장난감 하나를 내주겠다.”
“싫어!”
“싫으면 장난감도 안 준다. 책을 맨 아래 층에다 놓을 테니 한 권 읽고 읽은 이야기를 나한테 해 주면 장난감 하나를 내주겠다.”
동탁이 며느리한테도 말했다.
“너도 여기 있는 육아 양육서를 하나씩 읽고 난 다음 맨 위 칸에 올려  놓아라. 우리 식구가 날마다 읽은 책이 아래층에서 위층으로 가득히 찰 때까지 내가 책을 사들일 생각이다.”
“아버지, 바쁜데 언제 그럴 시간이 있어요?”
“한꺼번에 다 읽으라는 거 아니다. 하루에 한 페이지씩 읽으면 책 한 권 1년 안에는 다 읽을 것이 아니냐? 내 말대로 해라.”
광우가 불만스럽게 말했다.
“할아버지 미워! 난 책 읽기 싫은데…….”
동탁이 며느리한테 말했다.
“네가 일찍이 광우가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었더라면 저런 소리가 안 나왔을 거다. 이제라도 집안 분위기를 바꾸어 보자.”
며느리도 불만에 찬 소리로 대답했다.
“알았어요. 그까짓 책…….”
“책은 말없는 선생이다. 책한테 함부로 말하면 못 쓴다.”
동탁은 동화 책 한 권을 손자한테 안겨주고 아이 방으로 가서 장난감을 모두 모아 안고 자기 방으로 갔다. 광우는 책을 집어던지고 장난감을 들고 나가는 할아버지한테 소리쳤다.
“할아버지 미워! 미워!”
“미워도 할 수 없어. 네가 던진 책이나 집어와. 그 책 안 읽으면 장난감도 안 준다.”
손자 광우는 갑자기 집안이 떠나갈 듯 큰 소리로 울음보룰 터뜨렸다.
“아앙! 난 책 싫어. 장난감 줘. 할아버지 미워! 아앙 앙!”
이때 직장에서 퇴근하여 돌아온 아들이 광우 울음소리에 놀라 물었다.
“아버지, 쟤가 왜 울어?”
26. 자식 탓할 자격이 있는가 
동탁은 아들이 꼬박꼬박 반말하는 것이 마뜩치 않았다. 그러나 자기가 자식 버릇을 잘못 길들여놓은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꾸짖었다.
“다 내가 잘못해서 광우가 운다. 네가 달래주거라.”
“아버지가 왜 애는 울리고 그래?”
“너도 내가 하자른 대로 하려면 쉽지 않을 거다.”
“뭔데?”
“내가 오늘 책장을 사오고 책도 사왔다. 너 보라고 인생독본하고 처세철학 책도 샀고 광우 어미를 위해서도 책을 사왔다.”
“아버지, 책값이 아깝지도 않아? 지금 세상에 그걸 누가 본다고 사와.”
“네가 그런 말 할 자격이 있는 거냐?”
“책 안 읽어도 컴퓨터 잘하고 스마트폰 게임 잘해.”
동탁은 점점 부아가 났다.
“넌 광우가 저렇게 크도록 보고만 있을 거냐?”
“광우가 왜? 장난감 총을 얼마나 잘 쏘고 레고블럭, 변신로봇, 또봇, 카봇, 최강정사, 미니특공대 로봇 뽀르르 인형변신 자동차 터닝메카드 조립도 얼마나 잘하는데 그래.”
동탁은 그만 정신이 어지러웠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아들의 약점이라고 생각한 점을 꼭 찔렀다.
“광우가 책 읽는 것은 보았니?”
“책? 책이 없는데 무슨 책을 읽어?”
“그래서 내가 책 사오고 광우 장난감을 압수했다.”
“그래서 우는 겨야?”
“너도 네 방에 컴퓨터 치우고 책 좀 읽어라.”
“아버지는 구식이야, 구식.”
“네가 책 읽는 것을 보여주지 않아서 광우가 버릇이 나빠진 거다. 아이는 어른을 따라 한다.”
“그런 걸 알면서 아버지는 왜 나 보는 데서 책을 안 읽었어?”
동탁은 찔끔했다. 그러나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때는 책이 귀해서 그랬다만…….”
“그때는 그렇고, 지금은 책 읽는 시대가 아니야. 전자시대라고, 지금은 부모가 아이들 보는 앞에서 스마트폰 실력을 보여주어야 한다구.”
동탁은 아들하고 싸울 생각이 싹 달아났다. 그래서 자기 방으로 가면서 중얼거렸다.
“말이나 못해야지……, 허흠, 허흠.”
자기 방으로 들어와 아들이 한 말을 생각해 보니 노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반말로 꼬박꼬박 대답하는 것이 싫었고 자기도 평생에 아들 앞에서 책 읽는 모습을 한 번도 보여주지 못했다. 그보다는 술주정이나 하고 답배나 뻑뻑 피워대고 시시덕거리며 살아 왔으니 아들한테 그런 소리 들어도 싸다고 생각했다.
‘다 내가 뿌린 대로 거두는 거야. 내가 누구를 탓할꼬.’
그렇게 하여 책장 아래층에는 손자 동화책과 아들 책, 며느리 책이 가족의 환영도 받지 못한 채 벌을 서듯 주르르 서서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이다. 부지런히 챙기고 아래 층 엘리베이터 앞으로 내려갔다. 어느새 송하칠현이 모두 나와 옆줄로 서 있었다. 
27. 옆구리 찔러 절 받기
유비 교장 영감이 반갑게 인사했다.
“어서 오시오, 동탁 영감.”
동탁은 허리를 굽실거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늦은 것 같습니다.”
“약간 늦으시었습니다. 이렇게 모두 나오셨으니 오늘은 출근하는 사람이나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우리가 겸손히 인사를 하기로 합니다.”
장비가 물었다.
“형님예, 쬐그만 아들이 나와도 말입니꺼?”
“예의를 지키고 가르치는데 어른 아이가 따로 있습니까. 오늘은 제가 하자는 대로 해 보시기 바랍니다. 초등학교 아이들한테는 학교 잘 다녀오너라 하시고요 좀 큰 중고등학교 아이들한테는 학교 잘 다녀와요 하시고 청년이든 장년한테는 안녕히 다녀오십시오, 하고 허리를 굽히시기 바랍니다.”
관우 배영감도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우리가 먼저 인사를 하는 건 옆구리 찔러 절 받기 아니랑가요?”
교장 유비 영감이 대답했다.
“옆구리를 찔러 자기 사람 만든 기억들이 없으십니까?”
그 말에 모두가 웃어댔습니다.
“하하하, 나도 우리 마누라 옆구리 찔러서…….”
교장 영감이 말했다.
“인심이 다 그런 겁니다. 어른이 아이들한테 대접을 하면 아이들이 몇 배로 대접을 합니다.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는 말 아시지요?”
이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가장 먼저 중고등 여학생들이 나왔다. 아이들은 어제도 보았던 노인들이 또 나와서 줄을 서 있는 것을 보고 주춤주춤 낄낄거리면서 노인들 앞을 걸었다. 노인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이고 인사를 했다.
“잘들 다녀와요.”
아이들은 어깨를 움츠리고 낄낄거리며 새들처럼 달아났다. 이어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초등학생들이 쏟아져 나왔다. 송하칠현 노인들이 또 허리를 숙이고 인사를 했다.
“잘들 다녀오너라.”
그 가운데 광우도 끼어 있었고 조조 손자도 끼어 있었다. 동탁 손자 광우가 할아버지 앞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할아버지 오늘도야?”
“그래, 학교 잘 다녀오너라.”
“알았어, 바이 바이!”
이어서 조조 손자도 새소리처럼 빽빽거리는 소리로 말했다.
“할배! 오늘은 무슨 놀이를 하는 거야?”
“놀이하는 거 아니다. 너희들 학교 가서 공부 잘하고 오라고 동네 어른들이 인사를 하는 거다.”
그 아이가 칠현을 훑어보며 한마디 했다.
“할아버지, 다녀오겠습니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따라서 인사를 했다.
“할아버지,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히히히!”
할아버지 소리를 들은 칠현은 기쁜 얼굴로 인사를 받았다. 이어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젊은이들이 가방을 들고 출근길에 나섰다. 문 앞에 노인들이 질서 있게 서서 허리를 숙이려 하자 먼저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어른님들 안녕하세요? 어제도 나오셨더니 오늘도 또 나오셨습니다.”
장비 최영감이 대답했다.
“그라요, 오늘도 나왔심더. 날마다 나올긴게 그리 알고 잘 다녀오시소.”
젊은이들은 당황하는 듯 멈칫거리며 노인들을 보았다. 그 가운데 제갈량 큰손자가 끼어 있다가 할아버지 앞으로 다가갔다.
“할아버님도 여기 끼셨어요?”
“그래, 아주 훌륭한 분들이 하시는 일이라 나도 끼어서 협조하기로 했다. 회사에 잘 다녀오너라.”
젊은이들이 일제히 노인들 앞에서 허리를 깊이 숙이고 인사했다.
“다녀오겠습니다.”
칠현 노인들은 벙글거리며 인사를 받았다.
“잘들 다녀오시게나.”
엘리베이터 문이 또 열리며 젊은 부인들이 깔깔거리며 쏟아져 나왔다. 그 가운데 한 부인이 옆줄로 선 칠현을 발견하고 말했다.
“어어머! 저건 뭐야?”
부인들이 입을 딱 벌린 채 칠현을 바라보았다. 그 가운데 수다쟁이 경이 엄마가 나섰다.
“할배님들, 지금 뭐하는기요?”
교장 유비가 대답했다.
“떨어져 뒹구는 오륜을 찾는 중입니다.”
“오륜이락하면 월드컵 경기장에 가야지 우째 여기서 찾는기요?”
“거기도 오륜이 떨어져 찾기 힘들고 여기서도 찾기 힘듭니다.”
“아래층 할배 아니신기요?”
“그렇습니다. 맨 아래층 늙은이올시다.”
이때 교양 있게 생긴 부인이 나섰다.
“오륜을 찾는다는 말씀에 저도 동감입니다. 어른님들께서는 어제도 나오신 것을 보았는데 오늘도 수고를 하시는군요.”
부면장 관우 배영감이 반가운 듯 대답했다.
“그렇당게요. 우리는 땅에 떨어진 삼강오륜을 우리 동네만이라도 바로 세우자고 이런당게요.”
“감사합니다. 저도 여러 어른들 하시는 일에 협조하겠습니다.”
“고맙구먼이라, 알아주는 것만도 고마웅게 사모님까지 수고하실 것은 없을 것이구먼유.”
짜리몽땅한 부인이 교양 있는 부인의 팔을 잡아당기며 길을 재촉했다.
“이러다가는 늦어요. 빨리 가야 해요.”
교양 있는 부인이 손을 뿌리쳤다.
“거기 가서 시시덕거리는 것보다는 여기 어른들이 하시는 일에 협조하는 것이 더 좋을 거예요.”
짜리몽땅 부인이 노인들을 무시하는 듯 말했다.
“인생 다 산 노인들하고 뭘 해요.”
“그런 소리 말아요. 어른들이 다 생각이 있어서 이러시는 것 같은데 오늘은 가지 맙시다.”
여섯 명의 부인들이 두 패로 갈렸다. 세 사람은 가자 하고 세 사람은 노인들이 하는 일을 알아보고 협조하자는 것이었다. 그들을 바라보던 교장 유비가 입을 열었다.
“내가 여러분에게 몇 마디 드리고 싶은데 들어주시겠습니까?”
부인들이 모두 그 앞으로 둘러섰다.
“바삐 가시려는 길을 막아서 미안합니다만 우리가 몇 가지 생각할 점에 대하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유대인에 대하여 무관심하고 일본 사람들은 안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의 좋은 점까지 미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와 유대인과 일본인의 의식은 많이 다릅니다. 누구한테든 배운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배우지 못하면 무식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배우는 건 지식이지만 일반 사람한테 배우는 건 지혜입니다. 유대와 일본인들한테 배울 점 몇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길이 바쁜 분은 가시고 아닌 분은 남으셔서 제 이야기를 마저 듣고 가시기 바랍니다.”
부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 자리를 뜨고 나머지는 그대로 있었다. 칠현의 여섯 명과 부인 다섯 명이 둘러섰다. 교장 영감이 소나무 아래 평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기왕이면 저 평상으로 가서 편히 앉아 이야기합시다. 어떻습니까?”
모두가 좋다고 발길을 옮겨 평상으로 가서 둘러앉았다. 유비 교장 영감이 학생들한테 하듯 말을 시작했다.
“첫째 우리나라 사람은 사소한 일로 다투기만 해도 그동안 받은 은혜는 뒷전이 되고 원수가 됩니다. 그러나 유대와 일본 사람들은 의리를 중시하고 한번 진 은혜는 죽을 때까지 잊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우리나라 사람은 귀한 손님을 모실 때면 외식을 해야 대접을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일본 사람은 귀한 손님은 자기 집으로 초대해야 정성껏 모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리는 것이 아니라 공기 밥에 단무지 3쪽, 김 3장이면 족하게 여깁니다. 셋째로 우리나라 여성은 명품 백을 들어야 남부럽지 않다고 생각하고 가짜 백이라도 그런 것을 메고 다닙니다. 그러나 유대나 일본 여성들은 거의가 집에서 자기가 만든 수제품을 자랑스럽게 메고 다닙니다.”
이 말에 부인들은 자랑하며 들고 다니던 자기 백을 들여다보았다. 교장 선생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이왕 말하기 시작한 것이니 몇 마디 더 하겠습니다.”
28. 한국인이 고쳐야 할 점
둘러앉은 사람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고 들었다. 유비 교장 영감은 늙은이답지 않게 정정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나라 자식들은 부모를 화수분, 아니 봉으로 생각합니다. 평생 벌어 가르치고 키웠더니 더 안 준다고 원망하기도 하고 심한 아들은 부모를 해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유대인이나 일본인은 자립심이 강하여 부모 돈은 부모 돈, 내 돈은 내 돈으로 알고 부모님한테 손을 벌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유대인이나 일본인은 집 크기를 중시하지 않습니다. 일본 같은 나라는 장관이 되어서도 20평짜리 빌라나 아파트에 삽니다. 그런데 한국은 어떻습니까? 장관이 아니라 국장 부장만 되어도 대궐 같은 집에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의식이 문제입니다. 남녀가 결혼을 전제로 교제할 때도 여자가 남자한테 얼마나 사랑하느냐를 따지기 전데 몇 평짜리 집에 사느냐고 묻습니다. 작은 평수라고 하면 절교합니다. 이래서 되겠습니까? 모두가 반성해야 합니다.”
잠깐 말이 끊어진 사이에 가만히 듣고 있던 장비 최영감이 입을 열었다.
“형님예, 그리 말씀하니께니 부끄럽기만 합니더.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 아닌교.”
배영감도 가만있지 않았다.
“그 말씀이 맞구먼유. 자식이 50평짜리 아파트 샀다고 해설랑 온 동네방네 소문을 냈는디…….”
교장 영감이 대답했다.
“우리나라하고 일본하고 같지는 않으니 집 크기만 가지고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집이 크든 작든 집에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잘 차려놓고 싸움질이나 하고 아버지와 아들이 재산 시비나 하면 작은 집에서 오순도순 사는 집만 못한 것 아닙니까. 이왕에 이렇게 고급 아파트에서 사는 우리가 억지로 남을 따라 할 것은 없습니다. 일본 사람이 20평집에서 누리는 기쁨보다 배로 기쁨을 누리며 살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송하결의를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아름답고 살기 좋은 아파트, 예절 바르고 삼강오륜이 바로 서는 동네를 만들자는 것이니 우리는 실천하여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교양 있게 생긴 부인이 물었다.
“송하결의가 무슨 말씀인가요?”
조조가 나서서 대답했다.
“머리 위를 보십시오. 꾸부정하면서도 가지가 이리저리 지붕을 이루고 잎이 무성한 소나무가 있잖습니까. 처음에는 여기 계신 영감님 세 분이 삽국지에 나오는 도원결의처럼 결의를 하셨고 그 뜻을 따르는 우리 영감들 넷이 가담하여 소나무 아래서 결의했다고 하여 송하칠현의 결의를 했습니다.”
부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죽림칠현이 있었다고 했는데 송하칠현이 되셨군요. 일곱 어른님들 축하드립니다.”
“축하까지 받을 것은 없지만…….”
유비 교장 영감이 말을 막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지금 다하면 잔소리처럼 들릴 테니 다음에 말하기로 하고 장비 영감께서 삼국지 인물 이야기나 듣고 오늘 아침 행사는 마칩시다.”
장비 최영감이 물었다.
“오늘은 누구 야길 할까에?”
“누구 이야기든 하시오. 조조에 대하여 말해 보시겠소?”
“예, 삼국지에서 유명한 조조는 안휘성 출신으로 황건적의 난을 평정하는 데 큰 공을 세워서 이름이 시상에 알려졌십니더. 동탁을 암살하려다가 실패하고 숨어서 떠돌다가 원소, 원술을 만나 동맹을 맺었지만 아무 뜻도 이루지 못했십니더. 그란디 동탁이 죽자 후한의 마지막 황제 헌제한테 붙어 충성하였십니더. 그란디 자기가 미워하던 동탁보다 더 권세를 부렸십니더. 그리고 가장 큰 세력자인 원소를 관도대전에서 격파하고 화북 지방을 거의 다 손아귀에 넣었십니더. 그리함 위세가 하늘을 찌르게 되자 천하 통일을 위해 남하하였으나 손권, 유비 연합군에게 적벽에서 대패하고 그 후로는 양자강 이남으로 그 세력을 뻗지 못했잖십니꺼. 승상이라는 관직도 위왕(魏王)이라는 관직도 거부하고 황제에 오르지 않다가 낙양에서 사망했십니더. 조조는 그 후 난세(亂世)의 간웅(奸雄)이락하여 간신(奸臣)의 대명사처럼 불렸으나 근대에는 진정한 승리자이자 영웅으로 재평가하는 경향이 큽니더.”
이 모든 것을 지켜보던 교양 있는 부인이 감동하여 한 마디 했다.
“우리 아파트에 이렇게 훌륭한 어른들이 계시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고맙습니다. 오늘 점심은 제가 모시겠습니다.”
그 말에 곁에 있던 부인이 끼어들었다.
“박여사, 기왕이면 국제관 엘에이 갈빗집으로 가면 어떨까?”
배영감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지금까지 유비 교장 형님의 말씀을 어디로 들었당가요?”
그 부인이 물었다.
“귀로 들었지요, 호호호.”
유비 교장 영감이 두 사람 사이를 정리하듯 말했다.
“그러시면 제가 좋아하는 근사한 식당으로 모시겠습니다, 여사님.”
29. 나라는 미원도 장점은 따라야
교장 유비가 앞장서서 찾아간 집은 시장 어귀에 있는 칼국수 집이었다.
뒤를 따르뎐 부인들이 속닥거렸다.
“겨우 칼국수 집 아냐?”
“글쎄, 이게 뭐야. 어울리지 않게…….”
두 사람 사이에 박 여사라는 교양 있는 부인이 말을 막았다.
“어디면 어때요. 어른들이 좋다고 하시면 그런 줄 알아야지.”
“그래도 우리 수준에 어느 정도는 맞아야 하지 않아요?”
“우리 수준이 뭔데요?”
그러는 사이에 모두가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교장 유비가 부인들이 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못 들은 척하고 자리를 잡고 말했다.
“이 집이 시설은 이렇게 엉성해도 맛은 일류입니다. 식당 구경만 하러 다니는 사람은 이런 국수 맛을 못 봅니다.”
배영감이 받아 말했다.
“그렇당게요. 겉만 번지르르하게 꾸미고 맛이 없는 식당이 더 많당게요. 사람들이 음식 실력을 보지 않고 가게 시설에 관심을 더 가진게로 모양만 갖추고 속이 없는 식당이 생긴당게요.”
경상도 장비 최영감도 한 마디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 고쳐야 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입니더. 뭐락할꼬, 시골 사람들한테 서울 사람들이 배울기 많십니더.”
식당에 불만이 있는 땅딸보 아줌마가 마뜩치 않았던지 한 마디 했다.
“농촌 사람들만 사람이고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씀인가요?”
장비가 대답했다.
“그런 말씀이 아입니더. 일본 사람은 근검절약이 부자의 비결이라고 생각한닥합니더. 그런디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렇지 않십니더.”
박 여사도 한 몫 끼었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미워하는 일본이지만 그들한테 배워야 할 것은 배워야 합니다. 일본인들은 이자가 없어도 현금은 은행에 맡깁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은 한 탕하여 벼락부자가 될 것을 생각하고 복권이나 사행게임에 매달리는가 하면 많은 현금을 감추어 놓고 사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다 보니 사기꾼이 많다고 합니다.”
대화가 이상하게 시작되어 모든 사람이 한 마디씩 일본 이야기를 꺼냈다.
조조가 한 마디.
“우리나라 사람은 기록에 둔하여 자기 아내 생일도 모르고 지내다가 싸우기도 하지만 일본인은 추락하는 비행기 안에서도 메모를 할 만큼 기록하는 면에서는  세계적으로 탁월하다고 합니다.”
동탁도 한 마디 했다.
“한국인은 공금을 눈먼 돈이나 떡고물로 알고 있습니다. 먼저 먹는 놈이 임자라는 의식이 강합니다. 그러나 일본인은 공금을 무서워하고 공금을 횡령하다 걸리면 집안이 망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국노조는 회사가 2천억 손실이 나도 성과급 달라고 파업합니다. 일본노조는 흑자가 나도 회사의 앞날을 생각해 임금동결을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잘못하고도 무조건 오리발부터 내밀고 CCTV에 찍혀도 자기가 아니라고 발뺌합니다. 일본인은 잘못은 끝까지 책임을 지고 책임자가 할복자살까지 하는 것을 봅니다.”
갑자기 이야기가 일본인 추켜세우는 말이 나오자 유비 교장선생이 말머리를 돌렸다.
“한국 사람은 어떤 면이 좋은지 누가 말해 보시지요.”
관우 배 영감이 동문서답을 했다.
“우리나라 사람은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도 소송을 한당게요. 다른 나라 사람은 역지사지, 입장을 바꿔 생각하고 웬만한 일은 대화로 끝낸다 안 하오.”
유비 교장 선생이 정리를 했다.
“유대인이나 일본 사람은 노숙자도 많은 독서를 한다는데 우리나라 사람은 독서보다 술 마시고 주량 자랑하기를 좋아하고 전철이든 어디서든 시간만 나면 스마트 폰을 들고 오락 게임을 합니다. 그러면서 한 달 독서량은 0.7권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은 한 달에 11권의 책을 읽는가 하면 일본인도 한 달에 7.5권이나 읽는답니다. 우리가 바로 되자면 독서를 많이 해야 합니다.”
박여사가 동감이라고 말했다.
“맞습니다. 얼마 전에 신문에 난 것을 스마트폰으로 읽은 정보는 도움이 되기보다 해가 된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독서는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고 머리에 깊이 기억되는데 다른 매체를 통하여 접하는 정보는 기억에서 빨리 지워진다고 했습니다.”
제갈 량도 한 마디 했다.
“한국인은 경찰을 너무 우습게 압니다. 데모대에게 얻어맞고 병원으로 실려가는 경찰이 있는 나라는 아마 우리가 유일할지도 모릅니다. 일본이나 홍콩 등은 공권력 앞에 절대적입니다. 한국인은 대통령을 우습게 여깁니다. 사고만 터지면 뭐든 대통령이 책임지라고 합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대통령의 말이 절대적입니다. 그것은 바로 애국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공권력과 경찰의 권위와 법질서 의식에 투철해야 합니다.”
땅딸보 부인은 처음부터 이 식당에 온 것을 불만스럽게 생각하던 차에 모두가 일본사람 칭찬만 하는 것을 보고 배알이 뒤집혔다.
“여보시오! 여러 어르신네들! 언제부터 친일파가 되어 일본을 그렇게 추켜 세우십니까? 듣다 보니 친일파들만 모인 것 같아서…….”
박여사가 조용히 말을 막았다.
“순금 엄마,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여기 어르신님들이 일본이 좋아서 그러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들에게 배울 점을 말하는 것뿐이에요.”
순금엄마라는 땅딸보 부인이 화를 바락 냈다.
“그래도 어느 정도래야지요!”
“그러시면 순금 어머니께서 한국인의 자랑도 말씀해 보세요. 우리가 배울 것은 다 알아듣고 배울 것이니.”
“내가 그런 것까지 말해야 하나요? 국숫집에 와서 어울리지 않게 고상한 척들 마세요.”
그러면서 자리에서 발딱 일어나 자리를 떴다. 그것을 보던 관우 배 영감이 가만히 있지 못했다.
“허허허, 이를 우짤까이? 책에서 본 게 한국인은 잘 웃지 않는다. 언제나 화난 얼굴을 하고 다닌다. 그러나 실제로 화난 것은 아니다. 일본인은 잘 웃는다. 허파에 바람이 들었나 보다 싶은 정도다. 그러나 속마음에는 칼을 품고 있는지 모른다고 했당게요. 저 부인이 화를 내고 나가기는 했지만도 속까지 화가 난 것은 아닐 것이구먼유. 우리가 다 이해해야지 안 그러혀오?”
그 말에 모두가 박수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21. 한국인은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다.
 노인들이 그래서 더 힘들다.

일본인은 누구에게나 '하이하이'하며 깎듯이 대한다.
동방예의지국이 과연 어딘지 헷갈린다. 
 
22 .
 
23. 한국인은 약속은 해놓고 지키지 않는다.
 "중요한 일이 생겨서..."하고 변명한다.

일본인은 약속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킨다.
그들에게 약속은 생명과 같다.
 



26. 한국인은 말을 퉁명스럽게 한다.
 한국 방송은 싸우는 것처럼 들린다.

일본인은 상냥하게 말한다.
듣다 보면 귀가 간지럽다.

/
 

동탁 손자 반말
여포 손녀 까불이
제갈량 얌전 아이
가슴딱 부인 괄괄

유비가 관우한테 물었다.
“죽림칠현을 다 아시나?”
“안당게요. 중국 춘추시대에 유명한 일곱 현인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당게요. 백이(伯夷) ·숙제(叔齊) ·우중(虞仲) ·이일(夷逸) ·주장(朱張) ·소련(少連) ·유하혜(柳下惠)가 아니랑가유?”

1  유비   77세
백이(伯夷)

1층
정직하고 당당하게
2  관우   76
숙제(叔齊)
전라도
1
겸손, 봉사, 배려
3  장비   75
우중(虞仲)
경상도
1
진리 앞에 머리를 숙여라
4. 조조   74
이일(夷逸)

3

5. 제갈량 73
주장(朱張)

7

6. 동탁   72
소련(少連)

9
공손한 말씨 겸손한 허리
7. 여포   71
유하혜(柳下惠)

25




칠현 : 유비 관우 장비 조조 제갈량 동탁 여포 

 

진(晉)나라의 학자 진수(陳壽:233∼297)가 편찬한 것으로, 《사기(史記)》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와 함께 중국 전사사(前四史)로 불린다. 위서(魏書) 30권, 촉서(蜀書) 15권, 오서(吳書) 20권, 합계 65권으로 되어 있으나 표(表)나 지(志)는 포함되지 않았다. 위나라를 정통 왕조로 보고 위서에만 <제기(帝紀)>를 세우고, 촉서와 오서는 <열전(列傳)>의 체제를 취했으므로 후세의 사가(史家)들로부터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촉한(蜀漢)에서 벼슬을 하다가 촉한이 멸망한 뒤 위나라의 조(祚)를 이은 진나라로 가서 저작랑(著作郞)이 되었으므로 자연 위나라의 역사를 중시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 때문에 후에 촉한을 정통으로 한 사서(史書)도 나타났다. 그러나 찬술한 내용은 매우 근엄하고 간결하여 정사 중의 명저(名著)라 일컬어진다. 다만 기사(記事)가 간략하고 인용한 사료(史料)도 지나치게 절략(節略)하여 누락된 것이 많았으므로 남북조(南北朝) 시대 남조(南朝) 송(宋)의 문제(文帝, 407~453)는 429년에 배송지(裵松之, 372-451)에게 명하여 주(註)를 달게 하였다. 《삼국지》에 합각(合刻)되어 있는 배송지주(裵松之註:裵註)가 그것이다. 이 배송지의 주는 본문의 말뜻을 주해하기보다는 누락된 사실을 수록하는 데 힘을 기울여, 어환(魚豢)의 《위략(魏略)》을 비롯한 하후담(夏侯湛)의 《위서(魏書)》 이하 당시의 사서와 제가(諸家)의 계보(系譜) ·별전(別傳) ·문집(文集) 등 140여 종의 인용문이 기재되어 있다. 이 제서(諸書)는 그 후 태반이 산일(散逸)되었는데, 여기에 인용된 글들이 당시의 사실을 고증하는 데 귀중한 사료가 된다. 그 중에서도 어환의 《위략》은 특히 귀중한 사료가 많이 있어, 이것을 배송지가 인용한 주를 바탕으로 하고, 거기에 다른 일문(逸文)을 추가하여, 청(淸)나라 때 장붕일(張鵬一)이 《위략집본(魏略輯本)》 25권을 편찬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삼국지 [三國志] (두산백과)
조조
자는 맹덕(孟德). 지금의 안휘성 출신으로 황건적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운 후 세상에 두각을 나타내었다. 동탁 암살 실패로 세상을 떠돌던 중 원소, 원술과 동맹을 맺기도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후에 동탁이 죽자 후한의 마지막 황제 헌제를 옹립하였으나 그 자신은 동탁보다 더한 전횡을 휘두른다. 또 최대 군웅 세력인 원소를 관도대전에서 격파하고 화북 지방을 거의 다 손아귀에 넣으면서 그 위세가 하늘을 찌르게 된다. 그 후 천하 통일을 위해 남하하였으나 손권, 유비 연합군에게 적벽에서 대패하고 그 후로는 양자강 이남으로 그 세력을 뻗지 못했다. 승상, 위왕(魏王)의 관직을 받았으나 스스로 황제에 오르지는 않았고 220년에 낙양에서 사망했다. 아들 조비(曹丕)가 뒤를 잇고 헌제에게 양위를 받아 위나라 황제가 된 뒤 태조 무황제로 추존되었다. 그동안 '난세(亂世)의 간웅(奸雄)'이라 하여 간신(奸臣)의 전형처럼 그를 평가했으나 근대에 이르러 여러 제후와 군벌 중 진정한 패자(覇者)이자 영웅으로 재평가하는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다.


유비(劉備, 161년 ~ 223년)

자는 현덕(玄德). 중국 삼국 시대 촉한(蜀漢)의 개국 황제. 전한(前漢) 경제(景帝)의 아들인 중산정왕(中山靖王) 유승(劉勝)의 후손이다. 황족의 후예임에도 삶이 어려워 어려서부터 짚신, 돗자리 등을 만들어 팔았다고 전해진다. 또한 삼국지에 등장하는 여러 군웅들과 달리 아무런 기반도 없이 결의 형제들과 함께 거병하였다. 원소, 원술과의 동맹에도 참여하고 황건적을 토벌하는 등 여러 차례 전투에 참가하였으나 뚜렷한 업적을 이루지는 못했고 도겸, 유표, 조조에게 의탁하는 등 자리를 잡지 못하고 떠돌았다. 하지만 제갈량, 조자룡 등 인재를 등용하면서 서서히 자기 세력을 확보하였고 손권과 손잡고 적벽에서 조조를 대패시켜 천하 삼분지계를 완성한다. 그 후 스스로 한의 정통을 계승한다는 명분으로 촉한의 황제가 됐으나 결의 형제인 관우와 장비가 잇따라 사망하자 그 복수를 위해 무리하게 대군을 일으켰고 결국 이릉에서 대패하여 제갈량에게 나라를 맡기고 세상을 뜬다.

 * 배우: 위허웨이 * 출생: 1971년(중국) * 학력: 상하이 희극 대학 연기과 * 주요 출연 작품: <삼국>, <지취금미>, <국중국>
 

 
관우(關羽, 160~ 219년)

자는 운장(雲長). 현재의 산시성 출신으로 탁현(褶縣)에서 유비를 만나, 장비와 함께 의형제를 맺으면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다. 의병에 가담하고 여러 전투에 참가하였는데 단칼에 화웅의 목을 벤 일로 여러 군벌들과 조조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긴다. 후에 조조는 여러 차례 관우를 회유하려 하였으나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208년 적벽대전에서 수군을 이끌고 큰 공을 세웠으나 과거의 은혜를 갚기 위해 패퇴하는 조조를 살려 준 일화로도 유명하다. 후에 홀로 형주를 지키던 관우는 손권의 협공으로 대패하여 사망한다. 후에 유비는 관우의 복수를 위해 무리한 전쟁을 일으켜 패망의 길로 접어들고 만다. 현재 관우는 충신의 전형으로서 민중 사이에서 무신(武神)으로 숭배되고 있다.

 * 배우: 위룽광 * 출생: 1958년(중국) * 학력: 베이징 방송 학원 석사 * 주요 출연 작품: <무사(한국)>, <월광보합>, <뮬란>, <대병소장>, <삼국지 용의 부활>, <신화>
 

 
장비(張飛, ?~221)

자는 익덕(益德). 연나라 출신인 장비는 성격이 호탕하고 시원시원한 인물. 유비와 관우를 만나 의형제를 맺고 함께 한나라의 부흥을 위해 의병에 가담한다. 유비, 관우와 함께 공손찬, 공융, 도겸 휘하에서 장수로 참전하여 많은 전쟁에서 용맹을 떨쳤다. 조조가 형주(荊州)를 공격해 오자 장판교(長坂橋) 위에서 기병 20기만을 데리고 고함소리로 조조군을 물리친 일화가 유명하다. 이후 적벽대전에서 조조의 대군을 물리치는 데 큰 수훈을 세우고 유비가 익주(益州)를 공략할 때도 선봉에 서서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급한 성격과 더불어 술에 대한 집착으로 여러 차례 문제를 일으켰고 관우와 유비에게 지적을 당했으며 군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유비가 관우의 복수를 위해 대군을 일으켰을 때 부장에게 살해되고 만다.

 * 배우: 캉카이 * 출생: 1973년(중국) * 학력: 베이징 전영 학원 * 주요 출연 작품: <무사>(한국), <촉산전>, <오행전사>, <삼국>, <신수호지>
 

 
제갈량(諸葛亮, 181~234)

자는 공명(孔明).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출신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려운 세상을 피해 은거했음에도 그 명성과 학식이 높아 와룡선생이라 불렸다. 207년에 삼고초려를 통해 유비에게 발탁된 후 천하 삼분지계를 준비한다. 다음 해에 오나라의 손권(孫權)을 설득하여 유비와 연합하게 하였고, 적벽대전에서 계략을 써서 조조의 대군을 물리친다. 유비는 점점 더 제갈량을 신임했고 황제에 오른 후에는 그를 승상으로 삼았으며 세상을 떠날 때에는 나라와 자식을 모두 부탁했다. 유비는 자신의 아들 유선(劉禪)이 황제의 재목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황제에 올라도 좋다고 유언하였으나 제갈량은 끝까지 유선에게 충성을 다하였다. 두 번에 걸쳐 출사표를 쓰고 직접 군을 지휘하여 출병하였으나 전쟁 도중 사망하고 만다. 그의 출사표는 지금까지도 역사상 가장 뛰어난 명문장으로 꼽힌다.

 * 배우: 루이 * 출생: 1976년(중국)  * 학력: 상하이 연극 학원  * 주요 출연 작품: <공자-춘추전국>, <칠검>, <타임투러브>
 

 
조운 (趙雲, ?~229년)
 
자는 자룡(子龍). 상산군(常山郡) 출신. 8척에 이르는 큰 키에 준수한 외모를 지닌 조운은 무예가 매우 출중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창을 잘 썼다고 한다. 공손찬의 부하였던 조운은 공손찬에게 몸을 의탁한 유비를 보고 그의 부하가 된다. 유비가 장판에서 조조의 공격으로 탈출할 때 홀로 적진을 뚫고 가서 어린 유선을 구출해 온 일화가 매우 유명하다. 후에 유비가 황제가 된 후 관우, 장비, 황충, 마초 등과 함께 오호 대장군이 된다. 관우가 손권과 위나라의 협공으로 사망하자 유비는 오나라 정벌에 나서는데, 이때 조운이 나서 위나라를 먼저 치지 않으면 위태로울 것이라고 간언하였다 전해진다. 하지만 유비는 결국 조운의 말을 듣지 않았고 정벌을 강행했으며 이 과정에서 장비마저 목숨을 잃고 만다. 유선이 황제가 된 후에 정남장군이 되었으며 고령의 나이에도 제갈량과 함께 북벌에 나섰고 229년 노환으로 사망하였다.

* 배우: 녜위안* 출생: 1978년(중국) * 학력: 상하이 희극 대학 * 주요 출연 작품: <천녀유혼2003>, <당왕조>, <삼국>, <여인본색>
 

 
동탁(董卓, ? ~ 192년)
 

자는 중영(仲潁). 지금의 감숙성 출신. 처음에는 중국의 소수 민족이었던 강족(羌族)을 토벌해 세력을 키웠다. 당시 전횡을 일삼던 환관 십상시를 제거하기 위해 외척이었던 하진의 부름을 받아 낙양으로 입성하게 된다. 그러나 그가 낙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십상시와 하진이 모두 사망한 상태였기 때문에 동탁은 힘 들이지 않고 조정을 장악할 수 있었다. 그는 헌제를 옹립하고 스스로를 상국에 임명한 후 조정을 주물렀다. 동탁의 폭정이 계속되자 전국 제후들이 들고 일어나 원소를 필두로 하는 동맹군이 결성되었다. 이에 겁을 먹은 동탁은 낙양성을 불태우고 장안으로 천도하였다. 천도 후에도 그의 만행이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자 당시 조정의 사도였던 왕윤은 연환계를 쓰고 그 결과 자신의 양자였던 여포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 배우: 뤼샤오허* 출생: 1945년(중국)* 학력: 주요 출연 작품: <시황제 암살>, <소오강호>, <여포와 초선>, <조조와 채문희>
 

 
여포(呂布, ?~198)
 
자는 봉선(奉先). 현재의 네이멍구 출신. 원래 병주자사 정원의 수하로 있었으나 후에 동탁과 정원이 대립하자 동탁의 편에 서서 정원을 죽인다. 이때 동탁이 여포의 마음을 사기 위해 적토마를 선물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당시 적토마는 천하에서 가장 빠른 말로서 ‘사람 가운데는 여포, 말 중에는 적토마’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후에 동탁의 양자가 되어 권력을 휘둘렀다. 하지만 단순하고 귀가 얇은 성격이었던 여포는 왕윤의 연환계에 빠져 동탁을 살해한다. 헌제에게 관직을 받았으나 장안을 공격해 온 곽사, 이각에게 패해 도망친다. 후에 거처 없이 떠돌며 무용을 필요로 하는 자에게 의탁하였다가 유비의 하비성을 빼앗아 세력을 굳히는 듯했으나 조조의 군대에게 포위되었고 결국 부하들의 반란으로 조조에게 사로잡혀 처형되고 만다. 

* 배우: 허룬둥* 출생: 1975년(미국)* 학력: 온타리오 예술 대학* 주요 출연 작품: <소피의 연애 매뉴얼>, <서유기>, <진왕 이세민>, <소년 양가장>,                           <착신아리2>
 

 
손권(孫權, 182~252)
자는 중모(仲謀). 오나라 초대 황제. 손견(孫堅)의 차남으로 형인 손책이 죽자 그 뒤를 계승했다. 조조의 세력이 강남을 향하자 대신들은 화의를 청하였으나 주유와 노숙이 전쟁을 주장하자 그 뜻을 따랐다. 손권은 유비와 손잡고 적벽대전에서 조조를 대패시킨 후 확고한 위상을 세웠고 스스로 오나라의 황제가 되었다. 형주의 귀속 문제로 유비와 마찰이 계속 되던 중, 조조와 결탁하여 관우를 죽이고 형주를 빼앗았다. 하지만 태자가 급작스럽게 죽는 바람에 후계 쟁탈전이 벌어지고 그 과정에서 국력이 많이 쇠약해졌다. 결국 10살의 막내 아들을 태자로 세운 후 71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 배우: 장보 * 출생: 1982년(중국) * 학력: 중국 중앙 연극 학원 * 주요 출연 작품: <손자대전>, <창궁의 묘>
 

 
주유(周瑜, 175년~210년)
 

자는 공근(公瑾). 노강군 서현 출신. 명문가 출신의 주유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신동으로 이름이 높았다. 손견의 장자인 손책과 형제처럼 지냈다. 손견이 죽은 후 손책의 수하가 되어 여러 전공을 세운다. 손책의 뒤를 이어 동생 손권(孫權)이 정권을 잡자 그에게도 충성을 다했다. 조조가 강남으로 압박해 왔을 때 노숙과 함께 항전을 결사하였고 손권을 설득한다. 때마침 손권을 찾아온 제갈량과 손잡고 적벽대전을 대승으로 이끌고 오나라의 기반을 닦는다. 이때 자신보다 뛰어난 제갈량을 질투하며 하늘을 원망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후에 삼국 통일을 이루겠다는 꿈을 품고 익주 정벌을 나섰다가 돌아오는 중 36세로 요절하고 만다. 당대의 미녀로 꼽히는 소교를 아내로 두었다.

* 배우: 황웨이더* 출생: 1971년(타이완)* 학력: 문화대학교* 주요 출연 작품: <회옥공주>, <모의천하>, <자등련>, <유성호접검>, <비룡재천>,                           <경화연운>


 

 
사마의(司馬懿, 179~251)
자는 중달(仲達). 지금의 하남성 온현 출신. 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난 사마의는 학식이 깊어 명성이 자자했다. 이를 들은 조조는 그를 초빙해 태자의 스승으로 삼았으며, 뛰어난 안목과 책략으로 조정에서 큰 활약을 했다. 조조가 죽은 후 조조의 아들 조비를 섬겼으며 조비가 죽은 후에는 조예를 보좌하였다. 이때에 대장군이 되어 제갈량이 이끄는 촉한의 공격을 물리치기도 하였다. 후에 조조, 조비, 조예, 조방을 모두 섬긴 4대 충신으로 추앙 받아 무양후에 봉해졌다.
 * 배우: 니다훙 * 학력: 중앙 연극 학원 * 주요 출연 작품: <인생>, <거상 치아오쯔용>, <황후화>
 

 
소교(小喬)
언니 대교와 더불어 당대의 최고 미인 자매로 꼽힌다. 주유는 손책과 함께 형주의 많은 지역을 점령하였는데 그때 교공(橋公)의 두 딸을 생포하였다. 이를 계기로 언니 대교는 손책의 아내가 되었고 동생 소교는 주유의 아내가 되었다.삼국지연의에서는 적벽대전(赤壁大戰)이 발발하기 전, 손권의 참전을 유도하기 위한 제갈량의 꾀에 소교가 등장한다. 제갈량(諸葛亮)은 조조가 지은 동작대부에, 조조가 대교와 소교를 탐한다는 내용을 집어넣어 불렀고 이를 들은 주유가 대노하여 전쟁에 참여했다고 전해진다.  * 배우: 자오커 * 출생: 1983년(중국) * 학력: 베이징 전영 학원 * 주요 출연 작품: <용문객잔>, <세월 풍운>, <관운장>
 

 
초선(貂蟬)
 

한나라의 사도 벼슬을 하고 있던 왕윤의 양녀. 원래 충신의 후예였던 초선은 왕윤의 눈에 들어 양녀가 된다. 우연한 계기로 여포가 초선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왕윤은 여포에게 초선을 시집 보내기로 약속한 후 동탁을 집으로 불러들여 초선을 만나게 한다. 초선의 미모에 빠진 동탁은 초선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고 여포는 초선을 되찾기 위해 양아버지 동탁을 죽인다. 이로서 한나라를 부흥시키겠다는 왕윤의 계략은 성공하지만 초선의 말년은 비참했다고 한다. 사실 초선은 정사에는 등장하지 않는 허구의 인물로 헌제의 시녀와 추문이 있었던 동탁의 이야기를 삼국지연의에서 각색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초선은 담비의 꼬리와 매미의 날개라는 뜻인데 이는 궁중 관리의 의복에 다는 장식이다. 아마도 관리의 관복을 담당하는 궁녀였을 것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 배우: 천하오* 출생: 1976년(중국) * 학력: 북경 중앙 연극학원* 주요 출연 작품: <대돈황>, <천하무쌍>, <지취금미>, <황상이대야>
 

 
손상향(孫尙香)
손견의 딸이자 손권의 누이. 상향이라는 이름은 경극에 등장하는 것이며 손부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문무를 겸비한 여걸로 유명한 손상향은 평소에도 칼을 차고 다녔으며 오라비인 손권도 함부로 하지 못했다고 한다. 손권의 권유로 유비에게 시집을 갔다. 훗날 유비가 익주를 평정한 후 손권의 계략으로 오나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그때 유비의 아들 유선을 데려가려고 하다가 조운 때문에 실패하고 그 일로 인해 유비와는 다시 만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 배우: 린신루 * 출생: 1976년(타이완) * 학력: 중싱 고등학교 * 주요 출연 작품: <안개비연가>, <황제의 딸>, <미인심계>, <녹정기>, <남재여모>,                            <반생연>

동생하고 싸울 때 동생편만 드는 할매
아래층에서 위층이 뛰어 시스럽다고
밥투정한다고 얀단
한 자리서 안 먹고 왔다갔다 한다고
엄마 말 안 듣는다고 할배가 대신 야단칠 때

미울때:공부 다 했는데 또 하라고 했을때. 선물 2개 사 주기로 해 놓고선 1개만사주거나 아예 안 사줄때.
맛있는 음식 해 주기로 했으면서 안 해줄때등이요
다음에 또 생각나는거 있으면 보낼게요


민엽장난감 레고블럭 변신로봇 또봇 카봇 최강정사 미니특공대 로봇 뽀르르 인형변신 자동차 터닝메카드 축구공 야구공
동생하고 싸울 때 동생편만 드는 할매
아래층에서 위층이 뛰어 시스럽다고
밥투정한다고 얀단
한 자리서 안 먹고 왔다갔다 한다고
엄마 말 안 듣는다고 할배가 대신 야단칠 때

 




전라도 영감 배성수/후빈 손자 유빈 손녀  은행원 배달해
경상도 영감 최명구/덕수/ 윤수  아들 기업 최고봉
2호집 대머리 교장 심윤식이 아들 교수



죽림칠현(竹林七賢)은 중국 위(魏) , 진(晉) 왕조 시절 완적(阮籍) , 혜강(嵆康) , 산도(山濤) , 상수(向秀) , 유령(劉伶) , 완함(阮咸) , 왕융(王戎)을 가리킨다. 정치 권력에는 등을 돌리고 죽림에 모여 거문고와 술을 즐기며, 청담(淸談)을 주고받고 세월을 보낸 일곱 명의 선비들이다. 개인주의적, 무정부주의적인 노장사상(老莊思想)이 그들의 근본 사상이었다.
“언제나 죽림 아래 모여 거칠 것 없이 술을 마셔, 죽림 7현이라고 불렀다”라고, 6조 송의 유의경(劉義慶)이 《세설신어(世說新語)》에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이, 7인을 한 그룹으로 묶어서 생각하는 것은 일찍부터 있었다. 그러나 그 사상적 중심은 혜강과 완적의 두 사람이며, 다시 산도와 상수, 유령과 완함·왕융의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죽림이란 방외(方外)의 땅, 즉 자연이란 뜻이다. 조씨의 위(魏)에서 사마(司馬)씨의 진(晉)으로의 정권 항쟁기에 스스로의 정치적 입장을 밝히지 않고 죽림과 술에 자기도회(自己韜晦)하려고 하였다.
혜강은 반사마(反司馬)의 거병(擧兵)을 하려 했고, 완적은 혜강이 사마소 때문에 형사(刑死)한 다음해에 죽고, 그 다음해에야 사마씨의 진왕조가 정식으로 성립된다. 산도는 이 정권교체기에 79세의 장수를 누리다가, 진나라 원훈(元勳)으로서 죽었다. 《장자》의 주서(註書)를 쓰고 은일의 뜻을 보인 상수도 사마소에 사관(仕官)을 구했다. 완적에게서 속물이란 평을 받은 왕융은 진나라 시대까지 장수했으며, 인색하여 밤낮 돈계산을 했다고 전해진다. 〈주덕송(酒德頌)〉을 쓰고, 언제나 술을 휴대하고, 종자(從者)에게 괭이를 가지고 따르게 하여, “내 죽은 곳에 나를 묻어라” 하고 기이한 말을 토한 유령의 과대한 도가적 언사는 자기도취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들은 정치적 계절(季節)에 명철보신(明哲保身)하지 않으면 안 된 중국의 사군사(士君士)들에게 하나의 상징적인 존재로서 전해 내려온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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