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술피리의 마술
1. 움막집
“엄마, 저 옆집에 떡 하나 봐!”
“그렇구나. 떡 찌는 냄새가 나는구나.”
“먹고 싶다. 시루떡이겠지 엄마?”
“그래. 콩 놓고 팥도 한 켜씩 놓은 시루떡일 게다.”
“말린 호박꼬지도 넣은 호박떡이겠지?”
“여름내 말린 호박꼬지를 넣었겠지. 덕치야 미안하다.”
“왜?”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시루떡도 해 주지 못해서…….”
“괜찮아 엄마. 먹고 싶어도 참을 수 있어.”
덕치 엄마는 아들이 먹고 싶어하는 떡을 구해다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슬그머니 일어나 옆집으로 가 보았습니다.
옆집 주인이 떡을 막 쪄내어 시루에서 김이 무럭무럭 올랐습니다. 주인 여자가 떡을 칼로 넓적넓적하게 썰어놓으며 딸을 불렀습니다.
“양희야, 이 떡 뒷집 할아버지댁에 가져다 드리고 오너라.”
양희가 떡을 배달하고 오는 동안 또 다른 집으로 가져다 주라고 했습니다. 많은 떡을 이집 저집 돌려주고 돌아온 양희가 물었습니다.
“엄마, 움집 덕치네는?”
“덕치네 줄 떡이 어디 있니? 우리 먹기도 모자라는데.”
“그래도 그 집만 빼놓고 안 주면 되나?”
“그 집이라니! 그게 집이냐. 움막이지.”
“그래도 한 조각이라도 가져다 줘요.”
“안 돼! 가는 정이 있으면 오는 정도 있어야 하는데 지금 떡 한 조각 가져다주면 언제 받아먹니?”
이때 곁에서 듣고 있던 아들 양철이 말했습니다.
“엄마 말이 맞아. 그런 집에 뭘 갖다 준다는 거야? 거지같은 것들한테.”
딸 양희는 마음이 고운 아가씨였습니다.
“오빠,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니야. 그 집은 거지가 아니야. 덕치가 움집에 살아도 공부는 우리 반에서 가장 잘한단 말이야.”
“네가 언제부터 덕치 걱정을 했냐? 움집에 살면 거지지 거기가 따로 있냐?”
덕치 엄마는 문앞에 숨어서 다 들었습니다. 그리고 부끄럽고 서러운 생각이 들어 눈물을 흘리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떡 타령을 하던 아들 덕치는 앉은뱅이 백상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울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고 말했습니다.
“공부하니?”
“응.”
“뭐 먹을 것 줄까? 밭에서 무라도 하나 뽑아다 줄까?”
“응.”
덕치 엄마는 텃밭으로 갔습니다. 가을무가 싱싱하게 자라서 보기도 좋았습니다. 무를 하나 쑥 뽑아 들고 중얼거렸습니다.
“떡이 먹고 싶은 애한테 이게 뭐야.”
덕치 엄마는 무를 아들한테 가져다 주고 들로 나갔습니다. 사람들이 벼를 다 베고 나면 빈 논에 돌아다니며 이삭을 주웠습니다.
덕치 엄마는 아들 하나를 데리고 시부모님이 묻힌 산으로 와서 산소 곁에 움막을 짓고 삽니다. 가을에는 벼 이삭을 줍고 봄에는 보리 이삭을 줍기도 하고 산나물을 뜯어다 팔아서 근근히 살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다행히도 부모님 산소 곁에 커다란 살구나무와 복숭아나무 두 그루가 있어서 그것이 익으면 따다가 동네 사람한테 팔아서 보리쌀을 바꾸어 먹었습니다.
그렇게 가을 겨울이 가고 봄이 되어 살구나무에 살구가 주렁주렁 달린 어느 날입니다.
2. 어른께 드리는 마음
덕치는 새총 놀이를 좋아합니다. 와이 자 형 두 가닥 나뭇가지에 고무줄을 매어 만든 총이 새총입니다. 새총에 달린 고무줄에 공기 돌을 재워 쏘면 무엇이든 목표물을 정확히 맞히는 재주가 뛰어났습니다.
봄이 되자 살구나무 높은 가지 끝에 다른 살구보다 먼저 익은 빨간 살구가 보였습니다.
“엄마. 저 익은 살구 딸까?”
“저 높은 데 있는 걸 어떻게 따니?”
“난 딸 수 있어, 엄마 저 나무 아래서 치마를 펼치 기다려 봐. 내가 새총으로 맞춰서 딸게.”
“그것을 어떻게 맞춘다는 거냐?”
“난 자신 있어. 엄마 저 아래 가서 치마로 받아.”
엄마는 덕치가 하는 말은 무엇이나 믿습니다. 새까맣게 높이 달린 살구를 어떻게 맞출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도 살구나무 아래서 치마를 받치고 섰습니다.
덕치가 새총을 들고 고무줄을 길게 당기며 한 눈을 감고 살구를 겨냥했습니다. 이어서 공기돌을 숑 하고 날렸습니다. 공기돌은 살구 꼭지를 정확하게 맞혔습니다. 사과처럼 크고 빨간 살구가 엄마 치마폭에 톡 하고 소리를 내면서 떨어졌습니다. 엄마는 신기해서 웃으며 말했습니다.
“네 말대로 살구가 떨어졌다. 크고 예쁘구나.”
“엄마, 내 말이 맞지? 또 딸게 그렇게 기다려.”
“숑!”
새총에서 공기돌이 바람을 가르고 날아가 다른 가지에 붙은 빨간 살구를 맞추었습니다. 덕치는 또 공기돌을 날려 그 곁에 있는 것을 떨어뜨리고 또 떨어드렸습니다. 한참 후에 엄마 치마폭에는 싱그런 향기를 날리는 살구가 소복했습니다.
“엄마, 이거 먹어 봐. 아주 크고 맛있겠어.”
엄마는 아들이 내미는 살구를 먹지 않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딴 맏물은 어른이 먼저 드셔야 하는 거다.”
“어른이 어디 있어? 우리 집에 어른은 엄만데!”
“우리 동네에는 큰 어른이 계신데 내가 무슨 어른이냐? 이 살구는 옆집 양희 할아버지한테 먼저 드려야 하는 거다.”
“엄마가 먼저 먹으면 좋겠는데, 그래야 나도 먹지.”
“먹고 싶어도 참아라. 며칠만 더 있으면 저렇게 주렁주렁 달린 살구가 모두 익어서 우르르 쏟아질 텐데 그 새를 못 참겠니?”
“참을 수 있어. 엄마가 가져다 드려.”
“알았다. 내가 얼른 가져다 어른께 드리고 오마.”
덕치 엄마는 집에서 가장 크고 좋은 접시를 행주로 잘 닦은 다음 살구를 보기 좋게 담아 들고 양희 할아버지를 드리려고 갔습니다.
대문간에 들어서서 보니 식구들이 둘러앉아 무엇인가를 먹다가 후닥닥 감추면서 양희 엄마가 말했습니다.
“거지 여편네 온다. 입 다물어!”
그렇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못 들은 체하고 말했습니다.
“양희 할아버지는 안 계신가요?”
양철이가 입에 무엇인가를 우물거리며 대답했습니다.
“들에 나가고 없어어어. 캭캭 그윽.”
덕치 엄마가 살구 접시를 내밀며 말했습니다.
“이거 할아버지 드리려고 가져왔는데…….”
양희가 보고 자리에서 발딱 일어나 부엌에서 다른 그릇을 하나 들고 와서 살구를 옮겨 담고 빈 접시에다 먹다가 숨겼던 떡 한 조각을 얹어 내밀었습니다.
“아줌마, 고마워요, 대신 떡 조금 드릴게요.”
“고마워 양희…….”
덕치 엄마는 조심스럽게 자리를 떠나 가려고 했습니다. 이때 양철이가 지껄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엄마, 살구는 물에다 다시 씻어 먹어. 저 아줌마 더러운 그릇에 담아 온 거 그냥 먹기 싫어.”
덕치 엄마는 그 소리를 듣고도 못 들은 체 발길을 떼어놓았습니다. 이번에는 양철이 엄마가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할아버지는 이가 셔서 못 먹는다. 너희들이나 먹어라. 이런 걸 누가 좋아한다고 가지고와 성가시게.”
그 소리를 듣고도 덕치엄마는 묵묵히 돌아오면서 생각했습니다.
‘그 애들 먹이려고 우리 덕치도 못 먹게 하고 가져온 게 아닌데…….’
덕치 엄마는 눈물이 나는 것을 억지로 참고 집으로 왔습니다. 엄마 속도 모르는 덕치가 물었습니다.
“엄마, 할아버지가 되게 좋아하시지?”
그 말에 거짓 대답을 하면서 들고 온 떡 접시를 내밀로 말했습니다.
“그래, 많이 좋아하시더라. 그리고 이렇게 떡까지 주셨다.”
떡을 본 덕치가 눈이 둥그레졌습니다.
“떡?”
3. 집이 없는 아이
“그래 네가 먹고 싶어하던 떡이다.”
덕치는 떡을 떼어 엄마 앞에 내밀었습니다.
“엄마도 먹어.”
엄마는 거짓말을 했습니다.
“나는 양희네 집에서 먹고 왔다. 이건 너 다 먹어라.”
“정말?”
“그래, 엄마 말을 못 믿니?”
“그럼 나 혼자 다 먹어도 괜찮아?”
“그래, 다 먹어라, 너 주려고 먹다가 남겨온 거야.”
“엄마, 고마워요. 아주 맛있겠다. 냠냠.”
눈 깜짝할 사이에 덕치는 떡을 먹어치웠습니다. 엄마도 침이 꼴깍 넘어가는 것을 참고 얼굴을 돌렸습니다. 그러면서도 아들이 맛있게 먹는 것이 대견하고 좋았습니다.
학교에서 덕치는 점심시간이 가장 괴로웠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도시락을 싸 가지고 오지만 덕치는 도시락도 없지만 싸올 것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봄이면 살구 몇 개를 싸가지고 왔다가 점심시간마다 밖으로 나가 살구를 먹고 점심을 때우기도 하고 살구가 나지 않는 계절에는 우물물을 마시고 배를 채웠습니다.
그것을 눈치 챈 선생님이 아이들한테 물었습니다.
“임덕치는 집안이 어떠냐?”
다른 아이들보다 한 동네에 사는 양철이가 먼저 대답했습니다.
“걔네 집도 없어요.”
“집이 없다니?”
“집이 아니니까요.”
“집이 아니라니?”
선생님은 이상해서 또 물었습니다.
“집이 아니면 어디서 먹고 자는 거냐?”
양철이 간단히 대답했습니다.
“선생님이 직접 가 보시면 알아요.”
“그러냐?”
선생님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집이 없다면 어디 산다는 말인가? 궁금해진 선생님이 덕치한테 말했습니다.
“임덕치, 선생님이 오늘 너의 집 가정방문을 하고 싶은데 어떠냐?”
“저의 집에 오시겠다고요?”
“그래, 이제부터 다른 아이들 집도 방문할 계획인데 네가 반장이니까 너희 집을 먼저 방문하고 싶구나.”
“그러세요. 좋아요 오세요.”
덕치는 조금고 당황하지 않고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선생님은 속으로 집도 없다는 아이가 어떻게 저리 밝은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밝은 덕치를 보자 마음이 놓였습니다.
“알았다. 당장 가기로 하자.”
선생님은 덕치를 앞세우고 가정방문을 했습니다. 학교에서 반시간 정도 걸어갈 만큼 떨어진 산 동네에 도착했습니다. 덕치는 신이 나는 듯 동네 골목을 이리저리 돌아 산 동네 맨 끝 야트막한 산 아래 살구나무가 있는 언덕으로 올랐습니다.
“너희 집은 어디냐?”
“다 오셨어요. 바로 저 언덕 아래 있어요.”
“언덕 아래?”
“네, 다 왔어요. 여기가 우리 집이에요.”
선생님은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언덕 아래 땅굴을 파고 판자때기로 문을 해달은 움막이기 때문입니다.
“여기가 너의 집이냐?”
4. 땅속에는 두더지만 살지 않는다
“네, 우리 집이에요. 선생님 안으로 들어오세요.”
덕치는 먼저 들어서서 선생님한테 들어오기를 청했습니다. 선생님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며 허리를 숙이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땅굴 집이라는 말은 들어보았지만 그런 집이 자기 제자네 집일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집이라고 하기에는 안 어울리는데 덕치는 자연스럽게 자기 집이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안 계시냐?”
“엄마는 살구 팔러 가셨어요. 선생님 살구 좋아하시나요?”
그러면서 한쪽 구석 함지박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살구를 가리켰습니다. 덕치는 살구를 작은 접시에 차려내 놓았습니다.
“선생님, 이 살구 아주 맛있어요, 잡수어 보세요.”
살구가 이렇게 빨갛고 사과만큼 큰 것은 처음 보는 선생님이십니다.
“이게 살구냐?”
“네, 우리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사과살구나무에서 딴 거예요. 아주 맛있어요.”
선생님은 살구 하나를 먹어 보았습니다. 과연 다른 살구와 모양도 다르지만 맛도 기가 막히게 향그럽고 달았습니다.
“예쁘기도 하지만 맛도 좋구나. 너는 이렇게 좋은 살구만 먹어서 그렇게 씩씩한가 보구나.”
그러면서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한쪽 천장에 구멍을 내고 비닐로 가린 것이 유일한 창문이었습니다. 그 창으로 햇빛이 들어와 방을 밝혔습니다.
“덕치야, 넌 이 집이 좋으냐?”
“네, 여기보다 좋은 곳이 저한테는 세상에 없어요.”
“그렇구나!”
“우리집은 땅 속이라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듯해요. 사람들은 우리 보고 춥겠다 덥겠다고 하지만 우리는 춥지도 덥지도 않아요. 겨울에는 여기다 불을 피우면 얼마나 따듯한데요. 그리고 봄이면 온 산에 꽃이 피고 살구꽃이 피면 한겨울에 눈을 뒤집어 쓴 것같기도 하고 구름이 내려앉은 것 같은 살구꽃 덩어리는 정말 예뻐요, 향기는 또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온 세상 벌과 나비가 다 모여들어요. 벌들이 붕붕붕붕 날고 나비가 홀홀 날아다니는 봄은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지 남들은 몰라요.”
“그러냐?”
“우리 집에는 살구나무만 있는 게 이니고요 바로 옆에 복숭아나무가 있어요. 복숭아꽃도 예쁘지만 살구를 다 따고 난 다음에는 복숭아가 빨갛게 익어서 우리 식구를 먹여 살린다구요.”
“그러냐?”
“나는 엄마하고 둘이 살지만 아주 재미있어요. 엄마도 나를 위해 무슨 일이든지 즐겁게 하신다고 하시거든요. 땅속에는 두더지만 사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람이 살기에 편하면 되지 않나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집이 우리 집이에요.”
“그러냐?”
“가끔 가다가 엄마가 고기가 먹고 싶다고 히시면 내가 새총으로 무엇이든지 잡을 수 있어요. 꿩도 잡고 산토끼도 잡을 수 있고요. 뭐든지 엄마가 먹고 싶다고 하시면 제가 잡아와요.”
“그러냐?”
“저는 큰 집에 사는 것도 부럽지 않아요. 큰 집에 살면서 집안 싸움하는 것도 보았어요. 집이 크다고 행복한 게 아니고요 가족이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집이 행복한 집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냐? 그래서 너는 항상 밝고 행복해 보이는구나.”
“네, 점심시간만 빼고요.”
선생님은 그 말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어떻게 하든지 점심시간도 행복하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5. 선생님의 사랑
선생님이 반 아이들한테 물었습니다.
“우리 반에 점심 도시락을 안 가지고 오는 사람이 몇이나 되나?”
앞자리의 중식이가 대답했습니다.
“세 사람입니다.”
“누군가?”
“광문이하고 덕치하고 영준입니다. 그런데 광문이는 점심시간마다 이리저리 다니면서 다른 애들 밥을 빼앗아 먹고 덕치는 우물에 가서 물을 퍼먹고 영준이는 제 짝 재운이가 싸온 도시락을 나누어 먹습니다.”
“그렇구나. 선생님이 오늘 좋은 소식이 있어서 물어본 것이다. 교장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앞으로 점심을 가지고 오지 않는 학생에게는 우리 시에서 특별히 지원금을 보내주어 점심 굶는 학생이 없도록 한다고 했다. 그 대신 점심은 담임선생님이 책임지고 직접 준비해 가지고 와서 먹게 하라는 지시였다.”
중식이가 까부는 소리로 말했습니다.
“선생님, 네 사람이라고 하고 저도 끼워 주세요.”
“넌 안 돼!”
“저도 선생님이 싸다 주시는 도시락이 먹고 싶어요.”
“우리 반에서는 세 사람 이상 안 된다.”
이렇게 하여 선생님은 다음 날부터 교장선생님의 지시라고 하면서 도시락 세 개를 더 싸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렇게 되어 덕치도 점심시간을 즐겁게 보내게 되었습니다.
덕치네 집 뒤에는 커다란 미루나무 한 그루가 있고 그 꼭대기에는 까치집이 있었습니다. 덕치가 하교하여 돌아오는 길목에서 참새들이 데모라도 하는 것처럼 여기저기서 짹짹거리고 아우성을 치고 까치 부부도 깍깍 소리를 치며 까치둥지를 맴돌고 있었습니다.
“저게 뭐야?”
덕치는 눈을 비비고 올려다보았습니다. 까치집에는 새로 태어난 새끼들이 오르르 머리를 내밀고 있는데 커다란 뱀이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기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어미 까치 부부는 날카롭게 소리치며 뱀을 물리치려고 날아들었다가 다시 하늘로 솟구치고 있지만 뱀을 물리치지 못했습니다.
까치 새끼들은 그것도 모르고 먹이를 달라고 어미 까치를 향해 짹짹거렸습니다. 그러는 동안 뱀은 새끼들을 잡아먹으려고 혀를 날름거리며 둥지 바로 아래서 목을 쑤욱 빼 올리고 입을 딱 벌리고 있었습니다.
“어! 까치 새끼들이 위험하다.”
덕치는 이렇게 소리치고 움집으로 달려가 새총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 사이 뱀이 까치 새끼 한 마리를 물으려고 입을 크게 벌렸습니다. 그 순간 덕치가 새총을 쏘았습니다. 새총의 공기 돌이 쌩하고 바람을 가르고 날았습니다.
공기돌은 뱀의 머리를 정확하게 맞혔습니다. 그 순간 뱀이 머리를 홰홰 젓다가 공중에다 커다란 원을 그리며 밑으로 곤두박질을 쳤습니다.
뱀은 땅에 떨어져 쭉 뻗고 죽었습니다. 아우성을 치던 까치 부부는 둥지로 날아들어 새끼들을 돌보고 여기저기서 짹짹거리던 참새들도 어디로 갔는지 조용했습니다.
덕치는 까치 새끼들을 위험에서 건져 주고 안으로 들어가 낮잠을 자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 밖에서 까치 한 마리가 가까이 와서 깍깍거리고 짖어댔습니다.
덕치는 문을 열고 팔을 내저으면서 소리쳤습니다.
“까치야, 조용히 좀 해. 남 낮잠도 못 자게 왜 이래?”
그러나 까치는 달아나지 않고 더 가까이 오더니 입에 물고 있던 무엇인가를 덕치 앞에다 떨어뜨리고 멀리 날아갔습니다.
“이게 뭐야?”
6. 까치가 준 선물
까치가 물어다 주고 간 것을 집어든 덕치는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습니다.
“이게 뭐야? 피리같이 생겼는데……?”
아무리 보아도 피리였습니다. 구멍이 몇 개 뚫어져 있고 입으로 불어보아도 좋을 것 같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한번 불어 볼까?”
이렇게 중얼거리며 피리를 불어보았습니다.
“삐! 삐!”
피리소리가 퍼지자 갑자기 눈앞에 두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주인님, 부르셨습니까?”
덕치는 깜짝 놀랐습니다.
“어! 아저씨들은 누구세요?”
“우리는 주인님 하인입니다.”
“누가 주인이에요?”
“금방 삐삐하고 부르시지 않았습니까?”
“그건 내가 이상한 피리가 있어서 불어본 거예요.”
“주인님, 이제 무슨 일이든지 시켜주십시오. 우리를 부르실 때는 먹구야 퍼덕아 하고 부르셔야 합니다. 이렇게 얼굴이 노란 저는 먹구이고 이 푸르스름한 넓죽이는 퍼덕이입니다.”
“나는 아직 초등학생이에요. 어른들이 왜 이러세요?”
“그러시면 피리를 한 번 더 불어 보세요. 주인님께서는 우리보다 키가 더 커지실 것입니다.”
“농담하지 마세요.”
“아닙니다. 한번만 더 삐이 하고 불어보세요.”
덕치는 피리를 입에 대고 한번 삐이 하고 불어보았습니다. 그 순간 입었던 옷이 찢어지고 키가 두 사람보다 훨씬 큰 장정으로 변했습니다. 옷이 찢어진 틈으로 궁둥이가 보였습니다. 하인이라는 먹구가 또 말했습니다.
“한번만 더 삐이삐이하고 불어 보십시오.”
덕치는 그 말대로 두 번을 불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나한테 맞는 큰 옷이 있었으면…….’
그 순간 찢어졌던 옷이 떨어져 나가고 말끔하고 몸에 맞는 새 옷이 입혀졌습니다.
‘허허, 참 이상하다. 이 피리가 요술을 부리네.’
두 하인이 나란히 섰습니다. 그런데 덕치가 두 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고 장대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조금 전까지는 아저씨로 보이던 사람들이 하인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반말로 했습니다.
“너희 두 사람은 어디서 왔느냐?”
“우리는 주인님이 불러서 온 하인일 뿐입니다. 무엇이든지 원하시는 건 저희한테 명령하십시오.”
덕치는 나무 문짝이 가려진 움집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 움집을 헐고 큰 기와집으로 바꾸었으면 좋겠다.”
“예, 알겠습니다.”
두 하인은 당장에 움집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다 방이 열두 개나 되는 큰 기와집을 지어놓았습니다.
“주인님, 이만하면 되겠습니까?”
“됐다.”
반말로 대답하고 나니 두 사람이 더 하인처럼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멀리서 복숭아를 팔고 돌아오는 어머니가 가까이 와서 기와집을 보고 놀라 발길을 돌리며 중얼거렸습니다.
“이상하네. 우리 집은 여기였는데 웬 기와집이지?”
그 모습을 본 덕치가 어머니를 불렀습니다.
“엄마, 여기가 우리 집이에요.”
엄마가 청년으로 변한 덕치를 올려다보며 물었습니다.
“댁은 위신데 나를 엄마라고 부르시오?”
“저 덕치예요. 엄마 아들 덕치.”
“목소리는 덕치가 맞는데 너무 커서 믿을 수가 없어.”
그 모습을 보던 하인 먹구와 퍼덕이가 앞으로 나오며 인사를 올렸습니다.
“주인마님,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먹구입니다. 그리고 이 친구는 퍼덕이라고 합니다.”
덕구가 반말로 명령했습니다.
“나의 어머니시다. 큰 절로 모셔라.”
덩치가 소도둑같이 큰 두 사람이 넙죽 엎드려 절을 올렸습니다. 절을 받는 어머니는 정신이 달아날 지경이었습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덕치라고 했으니 다시 묻겠다. 네가 내 아들 덕치란 말이냐?”
“그렇다니까 엄마.”
7. 허허 이런 변이 있나
“이 기와집은 누구네 집이냐?”
“우리 집이에요, 엄마. 안으로 들어가 보실래요?”
엄마는 머리를 갸웃거리며 아들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미음자로 네모 반듯하게 지은 집이 으리으리했고 넓은 마당 한가운데는 살구나무와 복숭아나무가 심겨 있고 화단 둘레는 앵두나무가 있는가 하면 그 모퉁이에는 맑은 물이 찰찰 넘치는 샘이 있었습니다.
엄마가 또 물었습니다.
“이게 정말 우리 집이란 말이냐?”
이때 먹구와 퍼덕이가 대신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님.”
엄마는 어리둥절한 채 물었습니다.
“날 보고 마님이라니! 이 장정들은 누구냐?”
덕치 대신 먹구가 대답했습니다.
“저하고 이 퍼덕이는 마님댁 하인입니다. 앞으로 무엇이든 필요하시면 시켜 주십시오.”
엄마는 어이가 없어서 입을 딱 벌리고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아들한테 물었습니다.
“나는 지금 정신이 하나도 없다. 너는 또 어떻게 하여 이 두 사람보다 키가 더 큰 사람으로 자란 것이냐?”
“엄마, 그런 건 나중에 물으시고 안방으로 들어가 보시지요.”
“무슨 집이 이렇게 크냐, 방은 또 몇 개냐?”
퍼덕이가 얼른 대답했습니다.
“마님, 방은 열두 개가 있고요, 하나는 마님 방이고 하나는 주인님 방이고 하나는 우리 둘이 사는 방이고…….”
엄마는 아들을 올려다보며 생각했습니다.
‘내가 꿈을 꾸는가. 갑자기 이렇게 큰 집이 생기고 하인까지 두다니 이게 무슨 조화속인가?’
아들 덕치가 말했습니다.
“엄마, 방으로 들어가 보세요. 엄마 방은 왕실 같아요.”
엄마는 방으로 들어가 보고 놀랐습니다. 부잣집에서도 보지 못한 칠보 자개장이며 화장대와 바닥에는 비단 보료가 깔려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방으로 들자 덕치가 다른 방을 둘러보며 하인들에게 말했습니다.
“이 방에는 쌀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먹구가 대답했습니다.
“주인님 무엇이든지 필요한 것이 있으면 여기에 무엇을 채워 달라 하시면서 피리를 삐삐 부세요. 그러면 당장에 채워집니다.”
“그러냐? 쌀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삐삐.”
그 순간 방안에 갑자기 쌀이 가득히 채워졌습니다. 덕치는 다음 방으로 가서 피리를 불면서 생각했습니다.
‘이 방에는 오곡백과가 가득했으면 좋겠다.’
놀라운 일입니다. 생각만 하고 피리를 불었는데 콩과 팥과 옥수수와 과일이 가득히 찼습니다.
먹구가 말했습니다.
“주인님, 이제는 마을 사람들한테 우리들도 소개해 주시고 큰 잔치를 벌이시지요.”
“큰 잔치는 무엇을 가지고 차리느냐?”
“그런 염려는 마시고 무엇이든지 필요한 것을 생각하시며 피리를 삐삐 하고 부시면 다 마련됩니다.”
이때 대문 밖에서 누군가가 큰소리로 불렀습니다.
“이리오너라. 안에 뉘 없느냐?”
덕치가 급히 달려나갔습니다. 동네에서 호랑이로 불리는 큰대문집 영감이 나타났습니다.
“어서오십시오, 할아버지.”
영감이 덕치를 올려다보면서 물었습니다.
“댁은 뉘시오?”
“할아버지, 저 덕치입니다.”
“덕치라니 늙은이한테 농담하는가?”
“덕치가 맞습니다.”
“덕치가 언제 이렇게 컸다는 게야? 그럼 너의 엄마 나오라고 해라.”
덕치 엄마도 벌써 다 듣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영감이 물었습니다.
“덕치 어멈. 이 사람이 덕치가 맞소?”
덕치 엄마가 겸손히 대답했습니다.
“네, 어른님 제 아들이 맞습니다.”
“맞다니, 이 장정이 아들이 맞다고?”
곁에서 듣던 퍼덕이가 끼어들었습니다.
“할배요, 우리 주인 말씀을 못 믿겠으면 돌아가시오.”
영감이 화를 냈습니다.
“뭐야? 돌아가라니 넌 누구냐 이 싸가지 없는…….”
이번에는 먹구가 끼어들었습니다.
“영감님, 점잖게 말씀하시지요. 처음 보는 사람한테 싸가지라니 그게 무슨 말버릇이오?”
영감이 화가 뻗쳤습니다.
“뭐, 이놈아. 말버릇이라니? 어른한테 할 소리냐?”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도 고운 법이란 말도 모르오 영감?
덕치가 가로막고 겸손히 말했습니다.
“어른님 고정하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영감이 물었습니다.
“저것들이 하인이라고 했나?”
“예, 그렇습니다.”
“저 버르장머리 없는 것들을 이 동네에서 당장에 내보내게. 안 내보내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알겠는가?”
먹구가 대신 대답했습니다.
“할배, 우리가 나가라고 한다고 나갈 사람 같소. 우리는 죽을 때까지 주인마님을 모실 하인이오.”
영감은 더 노했습니다.
“허허, 이것들이 위아래도 못 알아보는 모양인데 어디 두고 보자.”
영감은 집으로 돌아가 동네 사람들을 모아놓고 말했습니다.
8. 동네 사람들의 분노
“동네 사람들 들어보시시오. 저 움집 터에 언제부턴지 갑자기 고래 등 같은 집이 한 채 지어 있지 않겠소?”
양희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나도 이상해서 무슨 집인가 알아보려고 하던 참이었습니다.”
영감님이 말했습니다.
“하도 이상한 집이 생겨서 무슨 집인가 하여 내가 찾아갔다가 아주 큰 봉변을 당했소이다.”
사람들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물었습니다.
“아니, 어른께서 봉변을 당하다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봉변도 이만 저만한 것이 아니었소. 그 집에 가 보니 주인이라는 사람이 덕치라는 거야, 허허허 덕치가 언제 적 덕친지 모르겠더군.”
“덕치라면 어린 애 아닙니까?”
“어린애가 아니라니까. 허허 참. 키가 장대같이 크고 게다가 하인까지 두었더란 말일세.”
동네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놀란 소리를 했습니다.
“하인까지요?”
“그렇다니께. 그 하인이란 싸가지 없는 녀석들이 주둥아리를 함부로 놀리는 바람에 내가 울화통이 터질 뻔했지 않겠소.”
동네에서 힘이 가장 세고 덩치가 큰 광덕이가 나섰습니다.
“싸가지 없는 하인들을 그냥 보고만 계셨습니까?”
“그것들이 말하는 것도 그렇고 행동거지도 얼마나 거만한지 허허 참 내가……,”
광덕이라는 젊은이가 손을 번쩍 들면서 소리쳤습니다.
“갑시다. 당장 가서 그 싸가지 없는 놈들한테 본때를 보여줍시다.”
다른 사람들도 소리쳐 대답했습니다.
“그럽시다. 우리 동네에 그런 자들이 있을 수 있습니까. 당장에 물고를 냅시다.”
마을 사람들이 주먹을 불끈 쥐고 우르르 덕치네집으로 몰려갔습니다. 생전 보지도 못한 큰 집을 보고 놀라 입을 떡 벌리고 한 마디씩 했습니다.
“이게 여염집이야 궁궐이야?”
“언제 이따위 큰집을 누가 지은 거래?”
“당장에 움집 덕치를 끌어내어 무릎을 꿇립시다. 어디서 굴러먹던 놈들을 하인이랍시고 들여서 어른도 몰라보고 행패를 부리게 해!”
“덕치 이 녀석 나와라!”
“덕치 나와라.”
소란스런 소리를 들은 덕치가 대문을 열고 인사했습니다.
“어른님들 어서 오십시오.”
광덕이가 나섰습니다.
“네가 움집 덕치란 말이냐?”
“네, 제가 덕치입니다.”
“거짓말 말고 당장 덕치 나오라고 해. 그 어린 것이 언제부터 하인까지 두었다는 거야?”
“제가 덕치입니다. 아저씨, 제가 덕치예요.”
광덕이라는 사람이 덕치가 아저씨라고 부르자 눈을 부릅뜨고 물었습니다.
“나를 놀리는가? 내가 덕치를 몰라서 당신이 나를 아저씨라고 놀려?”
“놀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저 보고 당신이라고 하시면 안 됩니다. 아저씨.”
“아저씨? 내가 어째서 당신 아저씨야? 나보다 덩치도 더 큰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큰대문집 영감이 말했습니다.
“네가 덕치가 맞는다면 너의 어머니를 좀 보시자고 하거라. 어린 덕치는 어디다 숨기고 제가 덕치라는 거야. 허허 참.”
“할아버지, 제가 덕치 맞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둘러서서 소리쳤습니다.
“덕치라니! 이놈이 보자보자 하니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 당장 안으로 들어가 집안을 뒤집어 엎어서라도 덕치를 찾읍시다.”
사람들이 대문 안으로 우르르 몰려 들어가 이방 저 방을 열었다 닫았다 아우성을 쳤습니다. 그러다가 한 방을 열자 낯선 젊은이들이 있는 것을 보고 물었습니다.
“네놈들은 누구냐?”
큰대문집 할아버지가 손짓을 했습니다.
“저놈들이 바로 나를 욕보인 불한당들이오.”
광덕이가 앞으로 나서며 물었습니다.
“두 사람, 나오시오. 어른한테 행패를 부린 자들이 당신들이오?”
먹구가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아무한테도 행패를 부린 적이 없습니다. 댁들은 무슨 일로 이렇게 몰려오셨소?”
“몰려왔다고? 두 놈 다 나와! 동네 어른들 앞에서 사죄하라고!”
퍼덕이도 한 마디 했습니다.
“사과는 무슨 사과, 우리가 언제 죄라도 지었단 말이오?”
“이것들 하는 소리가 뭐 이 따위야!”
“이 따위라니 그게 말이라고 지껄이는 거요?”
“뭣이 어째? 지껄인다고?”
9. 왕호랑이로 변한 하인
동네 사람들과 먹구 퍼덕이 사이가 점점 험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광덕이가 주먹을 불끈 쥐고 나섰습니다.
“이것들이 어디서 굴러먹다 온 것들이야! 당장에!”
먹구도 지지 않고 대들었습니다.
“당장에 어쩔 건데? 엉?”
이때 덕치가 두 사람을 불렀습니다.
“먹구, 퍼덕이 당장 내 방으로 들어와라!”
덕치가 소리치자 마을 사람들도 잠시 주춤했습니다. 하인이라는 두 사람은 덕치 말에 순한 양처럼 허리를 숙이고 덕치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두 하인을 당장에 물고를 내려고 주먹을 물끈물끈 쥐고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방안에 든 하인들한테 덕치가 말했습니다.
“잠시 내가 너희들을 사나운 동물로 만들겠다. 동네 사람들을 해치지는 말고 모두 달아나게만 하거라.”
먹구가 물었습니다.
“주인님, 우리를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내가 마음으로 너희가 호랑이로 변해라 하고 피리를 불겠다. 그러면 저 뒷문으로 나가 동쪽 끝에 안채와 바깥채가 나뉘어진 골목으로 나오면서 으르렁거리기만 하면 된다. 호랑이가 된 너희를 보면 동네 사람들이 오금아 날 살려라 하고 달아날 것이다. 그들이 다 달아나고 나면 다시 사람으로 만겠다.”
퍼덕이가 재미있다는 듯 낄낄거렸습니다.
“주인님, 기막힌 아이디어십니다. 당장에 우리를 호랑이로 만들어 주십시오.”
“알았다. 내가 피리를 불 테니 너희는 이 뒷문으로 나가서 동쪽 안채 골목으로 가거라.”
두 사람이 뒷문으로 빠녀나간 다음 덕치가 피리를 꺼내어 불었습니다.
“삐삐! 호랑이로 변해라.”
놀라운 일입니다. 두 하인은 금방 무시무시한 호랑이로 변하였습니다.
그것도 모르는 마을 사람들은 하인과 덕치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하인 말고 덕치가 나와라. 거렁뱅이 네 놈이 언제부터 이런 집에 사는 부자라는 거냐, 당장 나오지 못할까.”
한 사람이 방으로 뛰어들 기세로 마루까지 발을 올려놓았습니다.신발도 벗지 않은 채 마루를 쾅 하고 밟는 순간.
“어흥! 어흥, 까아왁!”
갑자기 집 귀퉁이에서 호랑이 소리가 땅과 하늘을 울렸습니다. 동시에 두 눈을 버쩍거리는 호랑이 두 마리가 나타나 마을 사람들한테 달려들었습니다. 호랑이에 놀란 사람들이 그만 혼비백산하여 달아나기 시작했습니다.
“호랑이다! 호랑이다!”
마을 사람들은 기급을 하고 허둥지둥 대문 밖으로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고 두 마리 호랑이는 으르렁거리면서 사람들 꽁무니를 따랐습니다. 호랑이에 잡혀 먹히지 많으려고 늙은이 젊은기가 정신없이 달아났습니다.
눈 깜짝할 모두가 멀리 달아났습니다. 호랑이가 된 두 하인은 서로 얼굴을 비비며 시시덕거렸습니다.
“어흥, 히히히, 달아나는 것들 꼴이라니”
“흐흐흐. 광덕이라는 놈 웃겼어. 큰소리를 땅땅 치더니 달아날 때는 일등이더군. 히히히 어흥!”
마을 사람들은 겁에 질려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달아났습니다. 그 사이에 두 마리 호랑이는 어슬렁어슬렁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달아나던 사람들이 호랑이가 쫓아오지 않자 돌아보았습니다. 그 가운데 하 사람이 소리쳤습니다.
“호랑이가 산으로 달아난다.”
다른 사람이 겁에 질린 채 말했습니다.
“빨리 집으로 가자. 저 놈들이 언제 다시 돌아설지 모른다.”
이렇게 하여 동네 사람이 다 돌아간 뒤에 호랑이가 된 하인을 향해 덕치가 피리를 불었습니다.
“사람이 되어라.삐삐!”
그 순간 하인으로 변한 두 사람은 집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먹구가 말했습니다.
“주인님, 참 재미있습니다. 이런 일 자주 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너희가 동네 사람들한테 맞아 죽지 않을까 걱정을 했다.”
“그런 염려는 마십시오. 우리가 위험하면 사람들보다 몇 배나 빠르게 달아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수고들 했다.”
그리고 장차 계획을 말했습니다.
“앞으로 나는 이런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주인님, 무슨 일이든지 시켜만 주십시오. 다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그럴까?”
10. 도깨비인가 하인인가
덕치가 자기 사정을 설명했습니다.
“우리 집은 조상 때부터 가난하여 농사지을 땅이 한 평도 없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조상님들이 묻히신 이 산이 하나 있을 뿐이다. 이 산은 높은 봉으로 부터 흘러내린 비탈이 땅이 비옥하여 잡초가 해마다 무성하게 자란다. 나는 어머니와 둘이 할아버지, 아버지가 묻히신 이 묘 옆에서 겨우 움집을 짓고 살았다.”
먹구가 말했습니다.
“조상님들이 이렇게 높은 산과 비탈이 넓은 땅을 물려주셨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그것도 없었다면 움집 지을 곳도 없었을 것이 아닙니까?”
“네 말이 맞다. 움집 지을 이 자리마저 없었으면 거리로 떠돌아다니는 거지로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집이 있고 하인을 자청하고 나를 돕는 너희들이 있으니 나도 논과 밭만 있으면 다른 소원이 없겠다.”
퍼덕이가 큰소리를 쳤습니다.
“주인님, 아무 염려 마십시오. 저 넓은 산비탈에다 논도 풀고 따비도 일구면 되겠습니다. 시켜만 주십시오. 우리가 당장에 논과 밭을 만들어 놓겠습니다.”
“고맙다. 그런데 무슨 수로 그렇게 당장 논밭을 이룬다는 것이냐?”
“염려 마십시오. 우리는 주인님의 하인이지만 우리도 몰고 다니는 하인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동원하면 무엇이든지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며칠 사이에 이 집을 지어 드린 우리가 아닙니까?”
“그래 나도 놀랐다. 이렇게 큰 집을 장난감 놀이하듯 지어 놓은 너희들의 솜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주인님의 명이라면 무엇이든지 해결할 수 있습니다. 당장에 저 산비탈을 논밭으로 만들어 놓겠습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두 하인이 대답을 하고 밤에 잠을 자지 않고 산비탈로 나갔습니다. 덕치는 그것들이 어떻게 일을 하는지 궁금하여 몰래 뒤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어두운 산비탈에서 퍼덕이가 산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이리 오너라. 불어라!”
그 소리가 어둠을 뚫고 울려퍼지자 갑자기 바람이 불어오면서 산속을 뒤집어놓기 시작했습니다. 바람이 지나가는 곳마다 나무와 풀이 쓰러지고 뽑히고 이어서 땅이 갈아엎어지고 이리저리 논두렁이 생기고 논바닥이 만들어졌습니다.
덕치는 돌아와 밤잠을 설쳤습니다.
‘저 하인들이 무엇이기에 바람을 부려 나무를 뽑아내고 땅을 갈아엎어 논을 만든단 말인가. 하인이라면서 마음대로 부리라고 하지만 그 엄청난 능력을 가진 것들을 내가 어찌 감당할 수 있단 말인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이 내 하인이 아니라 나는 그들의 하인감도 못된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인가.’
이런 저런 생각에 잠을 못 이루고 뒹굴다가 날이 밝아 문을 열고 나서니 하인 둘이 겸손이 말했습니다.
“주인님, 말씀하신 대로 저희가 산비탈에다 논을 만들고 밭을 만들었습니다. 가서 보시지요.”
덕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체하고 두 사람을 따라 산비탈로 나갔습니다. 밤에 보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네모반듯한 논들이 계단식으로 이루어지고 높은 곳에는 밭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밭 가운데는 커다란 샘도 파여 있고 샘에서는 샘물이 펑펑 솟아올라 논마다 물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덕치가 놀랍고 어이가 없어서 무슨 말을 못하고 있자 퍼덕이가 빙긋이 웃으며 물었습니다.
“주인님, 어떻습니까? 마음에 드십니까?”
“암, 마음에 들다마다. 그런데 이 큰 공사를 어떻게 하룻밤에 해 낼 수 있었더냐?”
먹구가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주인님, 그런 것까지 아시려고 하지 마십시오. 무엇이든지 소원하시는 대로 말씀만 하십시오.”
“알았다. 고맙다.”
이렇게 놀라운 일이 있고 난 다음부터 마을에는 이상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습니다.
11. 동물놀이 시삭
“덕치네는 호랑이를 기른다.”
“덕치네는 도깨비하고 산다,”
“덕치가 갑자기 어른이 된 것도 이상하다.”
“하인들도 예사 사람 같지 않다. 로버트인지도 모른다.”
“이 동네에 저런 집이 있는 것은 불길한 징조다.”
“덕치네를 동네에서 내쫓자.”
이런 소문이 도는데 이상한 일은 장정 몸집이 된 덕치가 학교 다닐 때 한 반에 아이들을 만나면 덩치 값도 못하고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과 어울리는 덕치가 학교를 못 나가고 그만 둔 것은 덩치 때문이었습니다. 선생님들보다 키가 더 큰 제자가 있을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학교에 가지는 못하지만 반 친구들만은 덕치를 친구로 생각하고 놀러 왔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배운 것을 가르쳐주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호랑이한테 놀랐던 동네 사람들은 자기 아이들이 덕치네 집으로 놀러가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집안에 호랑이를 기르고 있어서 언제 호랑이한테 물려갈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나쁜 소문이 널리 퍼지자 아이들이 놀러오지 않음으로 덕치는 외로워졌습니다. 날마다 하인들이 만들어 놓은 논과 밭에 나가 하인들과 일을 했습니다. 하인들은 어디서 구해 왔는지 논에는 벼를 심어 놓고 밭에는 감자도 심고 콩도 심었습니다. 농작물은 다른 집들보다 훨씬 잘 되었습니다.
하루는 덕치가 하인들한테 말했습니다.
“요새는 동네 친구들이 오지 않아서 아주 심심하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먹구가 대답했습니다.
“주인님이 그런 조무래기들과 어울리시는 것을 보면 우리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주인님이 좋아서 하시는 일이라 참고 있었습니다. 요새 동네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으니 별 소문이 다 나 있습니다.”
“무슨 소문이더냐?”
“우리가 호랑이 놀이를 했을 때 놀란 사람들이 지금은 우리 집 근처에도 안 오지만 주인님이 호랑이를 기른다고 합니다.”
갑자기 퍼덕이가 털퍼덕 주저앉으며 껄껄거렸습니다.
“우리가 호랑이라고? 하하하, 주인님, 저를 토끼로 만들어 주십시오. 그러면 동네 아이들을 모두 몰고 오겠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일단 토끼로 만들어주시면 압니다.”
“그래 볼까?”
그러면서 피리를 꺼내어 불었습니다.
“퍼덕이 토끼가 되어라 삐삐이.”
눈 깜짝할 새에 퍼덕이가 하얀 토끼로 변했습니다. 토끼로 변한 퍼덕이가 먹구한테 말했습니다.
“내가 동네 아이들 몰고 오거든 나를 불러서 네 품에 안아라. 그리고 아이들이 하는 걸 보아가며 네가 나를 데리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이를 해 보아라.”
먹구가 신이 난 듯 대답했습니다.
“좋아, 좋아. 네가 토끼가 되면 나는 너를 부리는 주인이 된다. 알았지?”
“좋아. 내가 마을로 가서 동네 아이들을 몰고 올 테니 알아서 해.”
덕치가 주의를 주었습니다.
“조심해라. 네가 작은 토끼로 변해서 마을 사람들한테 걸리면 다칠 수도 있다.”
“염려 마십시오. 주인님. 내가 얼마나 빠른지 두고 보시면 압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토끼로 변한 퍼덕이가 제비보다 빠르게 마을을 향해 달렸습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동네가 온통 시끄러워졌습니다. 아이들 외치는 소리가 들끓었습니다.
“토끼다. 잡아라.”
“예쁜 토끼야, 놀자!
“토끼가 양희네 집으로 달아났다.”
토끼가 양희네 집으로 들어가자 아이들이 양희네 집으로 몰려들었니다.
“토끼야 어디 숨었니?”
“토끼야, 나와라!”
그러는 사이에 토끼가 담 구멍으로 빠져나와 덕치네 집으로 달렸습니다. 아이들이 덕치네 집으로 와와 몰려들고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소리쳤습니다.
“얘들아! 그리로 가면 안 된다. 호랑이 나온다.”
그런 소리가 나는가 싶었는데 토끼를 향해 먹구가 달려갔습니다. 아이들이 그 뒤를 따랐습니다. 토끼는 덕치네 안마당으로 들어가고 아이들도 따라 들어갔습니다. 아이들이 토끼야 하고 소리치자 먹구가 달아나는 토끼 귀를 잡았습니다.
“하하하, 내가 잡았다. 너희들도 만지고 싶으냐?”
“네, 네, 네.”
“그럼 이리 와서 한 번씩 만져보거라.”
아이들이 달려들어 토끼 귀를 만져보기도 하고 안아 보기도 했습니다. 먹구가 아이들을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얘들아, 토끼 데리고 재미있게 노는 것 보여줄까?”
“네, 네, 네.”
이때 덕치도 방에서 나와 구경을 했습니다. 덕치 친구들이 우르르 덕치 곁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덕치야, 아니, 덕치 아저씨!”
덕치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난 아저씨가 아니야. 갑자기 이렇게 커졌을 뿐이야. 그래도 마음은 너희들과 똑같아.”
“그래도 너무 커서 아저씨 같잖아. 덕치야, 내가 반말해도 괜찮아?”
“그럼, 너하고 나는 친구인데. 그렇지 애들아?”
아이들이 모두 깔깔거리며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너희들이 나를 친구로 생각한다고 했으니까 나도 너희들을 만나면 친구가 되어 줄게.”
퍼덕이는 귀가 잡힌 채 말했습니다.
“먹구야, 그만 땅에 내려 놔. 아이들하고 내가 놀아줄게.”
“알았어. 아이들한테 무슨 재주를 보여려 줄 거냐?”
12. 달아난 토끼와 아이들
토끼가 된 퍼덕이는 아이들을 가운데로 몰아 놓고 주변을 뱅뱅 돌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빨리 돌며 달리는지 프로펠러같이 어지러웠습니다. 아이들이 모두 신기하여 와와 소리치며 좋아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돌던 퍼덕이 한 자리에 딱 멈춰 섰습니다. 그리고 눈을 뱅글뱅글 돌리며 귀를 세웠다 축 늘어뜨렸다가 다시 세우고 깡충깡충 춤을 추었습니다. 아이들도 재미있다고 따라서 깡충깡충 춤을 추면서 퍼덕이 뒤를 따랐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토끼가 달아나기 시작하여 담장에 뚫린 구멍으로 쏙 빠져나갔습니다. 아이들이 따라가다가 토끼가 나간 구멍으로 들어갈 수가 없게 되자 대문으로 돌아나가 토끼가 달아난 담장 구멍쪽으로 달렸습니다.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 때 저쪽 모퉁이에서 사람으로 변한 퍼덕이가 점잖을 부리며 태연하게 나타났습니다. 아이들이 모여들어 물었습니다.
“아저씨, 토끼 못 보셨어요?”
“아저씨, 토끼가 어디로 갔는지 아세요?”
“저 구멍으로 빠져 나왔어요.”
“아저씨, 토끼가 달아난 쪽을 가리켜 주세요.”
아이들이 각기 한 마디씩 물었습니다. 퍼덕이는 시치미를 뚝 떼고 대답했습니다.
“토끼가 어디 있다는 거냐?”
“조금 전에 이 구멍으로 나갔어요. 아저씨 바로 옆에 있는 구멍인데도 모르세요?”
“구멍이 있다고?”
“네, 저기 보이지 않아요?”
“그렇구나, 토끼가 저기로 달아났다는 것이냐?”
“네, 네.”
“글쎄다, 어쩌면 저 산속으로 달아났는지도 모르겠다. 허허허.”
“아저씨는 왜 웃으세요?”
“못 본 토끼를 보았느냐고 하니 우습지 않으냐? 하하하하.”
퍼덕이는 생각할수록 재미있고 우스워서 더 크게 웃어댔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토끼는 달아나면 돌아오지 않는다. 그만들 집으로 가서 공부나 하거라.”
“싫어요, 토끼하고 놀래요.”
“토끼가 그렇게 좋으냐?”
“예쁘잖아요. 귀여워요.”
“너희도 토끼가 되고 싶으냐?”
“네, 토끼가 되고 싶어요.”
“토끼 말고 또 뭣이 되어 보고 싶으냐?”
“비둘기요.”
다른 아이가 말했습니다.
“나는 꽃이 되고 싶어요.”
퍼덕이가 아이들을 둘러보며 말했습니다.
“알았다. 내가 너희들이 하고 싶어하는 대로 소원을 들어주겠다. 그 대신 비밀이다. 알았지?”
“네, 아저씨.”
“내일 이 자리로 오거라. 오는 순서대로 내가 너희들 소원을 들어주겠다.”
“정말이에요 아저씨?”
“정말이다. 그 대신 아무한테도 말해서는 안 된다.”
“엄마한테도요?”
“그럼.”
“동생한테도요?”
“그렇다니까. 누구한테도 말하면 내가 소원을 들어주지 않을 거다. 알겠니?”
“네. 약속 지킬게요. 아저씨도 약속 지키셔야 해요.”
“알았다. 내일 이 자리로 오는 사람마다 소원대로 해 주마.”
13. 비둘기가 된 아이
아이들이 다 돌아가고 난 뒤에 퍼덕이가 덕치한테 말했습니다.
“주인님, 부탁이 있습니다. 내일 담장 구멍 밖에 아이들이 올 것입니다. 담장 안에서 내다보다가 아이가 와서 소원을 말하면 피리를 불어서 그 아이의 소원을 들어주십시오.”
“아이들이 정말 올 것 같은가?”
“틀림없이 올 것입니다. 내일 아이들 목소리가 나면 내다보고 그 소원을 들어주십시오.”
“알았다.”
하루가 가고 다음날입니다.
덕치는 약속한 대로 담장 안에서 내다보고 퍼덕이는 아이들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맨 먼저 상준이라는 아이가 길가의 꽃들에게 안녕안녕 인사를 하며 팔짝팔짝 뛰어왔습니다.
퍼덕이가 굵고 우렁우렁한 목소리가로 아이한테 물었습니다.
“어디를 가느냐?”
상준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습니다.
“아저씨, 약속했잖아요?”
“약속대로 해 주기로 했지. 그래 넌 뭐가 되고 싶으냐?”
하늘이 바다처럼 맑고 상쾌한 날씨였습니다. 아이가 물었습니다.
“그런데 아저씨는 누구세요?”
“네가 아저씨라고 하지 않았느냐?”
“아저씨는 도사님인가요?”
“도사? 넌 그걸 어디서 들었느냐?”
“아저씨는 저를 아세요?”
“알다마다. 네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무엇이고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아는걸.”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게 뭔데요?”
“공부.”
“그럼 가장 좋아하는 건 뭔지도 아시겠네요?”
“좋아하는 건 나하고 같다, 허허허허.”
“뭔데요?”
“노는 것.”
“맞았어요. 저는 공부하라는 엄마 목소리만 들어도 소름이 돋아요.”
“그 대신에 놀다 오너라 할 때는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는 것 같지?”
“네, 아저씨도 어렸을 때 그러셨어요?”
“그랬으니까 딱 맞추는 거 아니냐?”
상준이는 아저씨가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퍼덕이가 빙긋이 웃으면서 물었습니다.
“넌 무엇이 되고 싶으냐?”
“비둘기요.”
“비둘기라고?”
“네.”
“왜?”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서 가고 싶은 데는 어디든지 갈 수 있잖아요. 엄마가 공부해라 하는 소리 안 들어도 되고요.”
“그렇지. 그럼 비둘기가 되거라.”
“정말이에요?”
“네 겨드랑이가 간질간질하지?”
이때 담장 안에서 삐삐 하고 피리소리가 나고 상준이는 갑자기 겨드랑이 간질거리더니 날개가 돋았습니다. 퍼덕이가 물었습니다.
“어떠냐? 한 번 날아 보겠니?”
“네.”
상준이는 날개를 활짝 펴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힘껏 저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비둘기가 되어 하늘을 날았습니다.
“야 신난다. 아주 높은 산들이 저 아래 내려다보이고 큰 집들이 성냥갑처럼 옹기종기 몰려 있다. 야호 야아호!”
아래서 아저씨가 올려다보고 물었습니다.
“어떠냐? 기분이 좋지?”
“네 기분 짱이에요! 야아아 호오!”
상준이는 더 높이 더 멀리 날아올랐습니다. 올라갈수록 더 넓은 세상이 내려다보이고 가슴이 터질 듯이 기뻤습니다. 아저씨가 저 아래서 소리쳤습니다.
“넌 이제 공부는 안 해도 되겠지?”
“네, 공부 같은 건 필요 없어요. 저는 비둘기가 되어 기뻐요.”
“알았다. 네 마음껏 돌아다니며 실컷 놀고 오너라.”
“감사합니다. 아저씨.”
상준이는 바다가 보이는 들판을 지나 멀리 완도 섬으로 날아갔습니다. 섬 둘레에는 고깃배가 떠 있고 구름 위로는 비행기가 상준이보다 낮게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상준이는 구름보다 더 높이 날아올라 세상 구경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배가 고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와 내려다보니 집은 자기 집인데 엄마 아빠는 안 보이고 알 수 없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뜰에서 콩을 까고 있었습니다. 콩을 보니 배가 더 고파졌습니다. 상준이 마당에 내려 콩 한 알을 집어 먹었습니다.
갑자기 할아버지가 긴 막대기로 상준이 날개를 때렸습니다. 그 순간 날개가 부러져 날 수가 없었습니다. 땅바닥에서 파닥거리는 상준이를 할아버지가 달려들어 목을 조였습니다.
“이런 못된 놈 여기가 어디라고 와서 콩을 먹어?”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상준이 크게 소리쳤습니다.
“아빠 저예요.”
“뭐야? 네가 누굴 아빠라는 거야? 난 아들이 없어 이놈아.”
그 목소리는 아버지 목소리였습니다. 그러나 얼굴은 주름투성이라 아버지 같지 않았습니다. 곁에 있던 할머니도 달려들며 외쳤습니다.
“꽉 잡아요. 세상에서 말하는 비둘기는 처음 보아요. 잡아다 장에서 팔면 큰돈 되겠어요.”
상준이는 더 놀라 외쳤습니다.
14. 요정이 된 하인
“엄마아! 나야 나!”
엄마가 놀란 소리를 했습니다.
“별꼴이야. 내가 왜 네 엄마냐? 내가 비둘기냐?”
“엄마! 나 몰라? 엄마 아들 상준이 몰라?”
“이 놈아, 내 아들 상준이는 공부하기 싫다고 집을 나가 없어진 지가 오십 년이 넘었다. 별 미친 비둘기도 다 보겠네. 내가 상준이를 잊기 위해 몇 년을 가슴앓이를 했는데 네 놈이 나타나 내 아픈 가슴에 못질을 해? 못된 놈의 비둘기 같으니!”
노인이 된 아버지가 막대기로 한 쪽 남은 날개를 때려 떨어뜨렸습니다. 상준이는 두 날개를 다 잃고 엉엉 울었습니다.
“엄마, 아빠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이제 공부도 하고 말도 잘 들을게요.”
그러나 노인이 된 엄마 아빠는 무서운 얼굴로 달려들어 몽둥이로 때리고 팔과 다리를 묶었습니다. 상준이 우는 소리로 애원했습니다.
“엄마! 엄마, 나야 나! 나라고!”
상준이 온 힘을 다해 발버둥을 치며 소리칠 때 아저씨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떠냐? 비둘기가 되니 그렇게도 좋으냐?”
상준이 꿈에서 깬 듯 아저씨 목소리가 들리자 정신이 났습니다.
“아니에요. 아저씨 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때 담장 안에서 삐삐하고 피리소리가 났습니다. 그 순간 비둘기가 되어 날던 상준이가 아이로 돌아왔습니다.
“어떠냐? 재미있었지?”
“아니에요 꿈을 꾼 것 같아요.”
“무서운 꿈을 꾸었더냐?”
“네, 아주 무서운 꿈이었어요. 난 집으로 갈 거예요.”
“잘 가서 엄마 말씀 잘 듣거라. 알았느냐?”
“네.”
상준이는 집으로 달려가 엄마를 불렀습니다.
“엄마아!”
늙어서 무섭게 보였던 엄마가 사랑이 가득한 눈으로 아들을 맞았습니다. 젊은 엄마 얼굴을 본 상준은 너무 기뻐서 엄마 품에 안기며 소리쳐 불렀습니다.
“엄마아! 나 이제부터 엄마 말씀 잘 들을 거예요.”
상준이가 이렇게 하여 집으로 돌아가자 잠시 후 다른 여자 아이가 나타났습니다.
“아저씨, 오늘 약속 아시지요?”
“알지. 그래 넌 무엇이 되고 싶으냐?”
상희는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무엇이 되면 재미있을까?’
그러면서 눈길을 돌려 바라보니 장미가 입술을 빨갛게 바르고 뽐냈습니다.
“이 세상에 나보다 빨간 입술을 가진 꽃은 없을 거야.”
그 소리에 분꽃이 고개를 반짝 들고 말했습니다.
“흥! 해가 질 때쯤이면 너도 별수 없을 걸, 난 해가 지고 어두워질 때 화장을 한다!”
다른 꽃들도 지지 않고 화사하게 웃으며 자기 얼굴이 가장 예쁘다고 자랑했습니다. 꽃들 이야기를 듣던 상희가 중얼거렸습니다.
“너희들은 좋겠다. 공부도 안 하고 날마다 꽃밭에 둘러 앉아 시시덕거리며 놀기만 하니까 얼마나 좋겠니.”
이때 퍼덕이가 말했습니다.
“상희야, 넌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는 거냐?”
상희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저씨, 내 이름을 어떻게 아세요?”
“내가 누구 같으냐?”
“솔직히 말해도 되나요?”
“그럼.”
“요정 같아요.”
“맞다. 난 꽃 요정이야.”
“꽃 요정이라고요?”
“그래, 난 꽃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요정이란다.”
“사람들의 소원은 안 들어 주시나요?”
“가끔 들어주기도 하는데 왜?”
“저도 소원이 있어요.”
“뭔데?”
“나는 꽃이 되고 싶어요.”
“왜 꽃이 되고 싶지?”
“공부하기 싫어서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네 나이 때는 부지런히 공부를 해야 하는 건데 하기 싫다고?”
“공부도 적당히 하라고 하면 좋은데 우리 엄마 아빠는 너무 하세요.”
“어떻게?”
“학교 갔다 오자마자 피아노 학원 가라, 수학학원 가라, 태권도 학원 가라 하시다가 집에 오면 가정교사가 기다리고 있어요. 나는 숨이 막혀 못 살겠어요. 꽃이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나는 사람이 싫어요.”
“그래서?”
“꽃이 되면 예쁘게 화장하고 친구들과 하루 종일 저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즐겁게 보낼 수 있잖아요?”
“정말 소원이냐?”
“네, 소원이에요.”
“좋아, 그럼 무슨 꽃이 되고 싶은지 말해 보아라.”
15. 화려한 부끄러움
“여기서 가장 크고 빨갛고 노란 술이 달린 예쁜 꽃이 되고 싶어요.”
“알았다. 이 안으로 들어와 꽃 사이에 서 보아라.”
상희는 꽃 사이로 들어갔습니다.
“이렇게요?”
“그래 됐어. 넌 아주 예쁜 꽃이 된 거야.”
“무슨 꽃인가요?”
“상희꽃이란다.”
“제 이름이잖아요?”
“네 이름이 싫으냐?”
“좋아요.”
꽃 요정 아저씨가 된 퍼덕이가 다른 꽃들을 향해 말했습니다.
“여러분, 새 친구가 생겼어요. 인사하세요.”
놀란 듯 바라보고 있던 장미가 불만스럽게 말했습니다.
“흥 키만 크면 단 줄 아나? 난 장미다.”
“난 상희야. 친하게 지내자.”
해가 질 무렵 화장을 곱게 하면서 분꽃이 입을 삐죽 내밀었어요.
“피, 키만 크면 예쁜 줄 아나 보지?”
고개를 높이 빼고 잎사귀로 하늘에 부채질을 하던 해바라기가 화난 얼굴로 말했어요.
“너 지금 뭐라고 했어? 키만 크다고 다냐고?”
“아니야, 너 보고 한 말이 아니야. 새로 온 저 애 보고 한 말이었어.”
“그래? 새로 온 너는 제법 나만큼 크구나. 입술이 장미보다 더 빨간데?”
“고마워요. 해바라기 아저씨.”
“내가 왜 아저씨냐? 난 이래봬도 여자란 말이야.”
“미안해요. 아줌마.”
“아줌마라고? 아직 시집도 안 간 나한테 아줌마?”
“미안해요.”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빨간 꽃을 이고 있는 채송화가 깔깔거렸습니다.
“야 키다리. 너 말 조심해야겠다. 호호호호.”
상희꽃은 무릎 밑으로 내려다보이는 채송화한테 말했습니다.
“너나 조심해. 땅딸보야.”
“뭐라고?”
“너나 조심하라고. 쬐그만 게 까불어.”
이때 개미가 상희 다리를 타고 기어올랐습니다.
“아이 간지러워! 이게 뭐야, 개미 아냐?”
개미가 뾰족한 머리를 흔들면서 대답했습니다.
“개미다, 너 새로 온 모양인데 어디 꿀맛 좀 볼까?”
개미는 빨간 꽃을 비집고 들어가 노란 술을 더듬다가 고개를 저었습니다.
“뭐 이따위 꽃이 있어. 너도 꽃이냐?”
상희는 얼굴이 빨개진 채 대답했어요.
“꽃이 아니면 뭐냐?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것 같은 쪼그만 것이!”
“빨아먹을 것도 없는 네가 꽃이라고? 히히히 웃겼어!”
개미는 줄기를 타고 내려가다가 상희를 꼭 물었습니다.
“아얏! 왜 무는 거야?”
“다리 맛은 어떤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내일 보자.”
개미는 다른 꽃으로 갔습니다. 이때 어디서 왔는지 예쁜 노랑나비가 날아와 꽃밭을 둘러보면서 귀엽게 말했어요.
“어! 예쁜 꽃이 하나 더 피었네?”
상희는 예쁘다는 말에 가슴이 벅차고 눈물까지 찔끔 나왔어요. 노랑나비가 반갑고 좋았습니다.
“나비님, 반가워요. 이리 오세요.”
“알았다. 새 꽃. 참 예쁘다. 어디 뽀뽀 한번 해 볼까?”
“아이 부끄럽게 뽀뽀는…….”
상희는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러나 어느새 나비가 노란 꽃술에 얼굴을 묻고 긴 빨대 침을 꽉 꼽았습니다.
“아야!”
상희가 소리치자 나비는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오르며 놀렸습니다.
“모양은 꽃 같은데 이게 무슨 꽃이 이래. 꿀 한 방울 없는 꽃도 꽃이냐. 에이 입맛만 버렸잖아.”
예쁜 나비는 다른 꽃으로 가서 꿀을 빨고 꽃과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상희는 화도 나고 다른 꽃이 부러웠습니다. 이때 커다란 벌이 날아오며 인사를 했습니다.
“안녕! 빨간 꽃. 난 빨간 색을 좋아하거든!”
상희는 벌이 날아와 웃어주었지만 무서워서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러나 벌은 바람보다 빠르게 달려들어 노란 꽃술에 빨대 침을 깊이 박았습니다.
“아, 아얏!”
상희가 소리치자 벌은 깜짝 놀라 꽃잎을 비집고 나와 부웅 날아오르며 소리쳤습니다.
“아이구 깜짝야! 뭐 이따위 꽃이 있어. 향기도 없고 꿀도 없고 맛이라곤 없잖아.”
이 모습을 둘러보던 다른 꽃들이 까르르 까르르 웃어댔습니다.
“호호호 어디서 온 떠돌이가 꽃이라고 까불어?”
“꽃이 되고 싶다고? 넌 꽃이 아니야. 꿀도 없고 향기도 없는 게 꽃잎만 무성하면 꽃인 줄 아냐?”
곁에서 보던 해바라기가 불쌍하다는 듯 위로했습니다.
“괜찮다. 참거라. 네가 아직 임신을 하지 않아서 그런 거야.”
상희는 깜짝 놀랐습니다.
“임신이라고요?”
16. 사람이 될래요
“임신을 해야 꿀샘이 생기지.”
“그래도 임신이라는 말은 싫어요.”
이때 곁에 있던 나팔꽃이 긴 목을 내밀고 다가오더니 가느다란 덩굴손을 내밀어 상희 허리를 휘감았습니다. 그리고 뱅글뱅글 돌아 위로 올라오며 방실거렸습니다.
“어휴! 이제야 하늘이 보이네. 어디서 굴러온 꽃이 멋대가리 없이 키만 큰 거야, 하마터면 내가 햇빛도 못 받고 죽을 뻔했잖아. 아! 이제 살았다.”
상희는 나팔꽃을 좋아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보니 아주 얄미운 꽃입니다. 허리를 감고 타오르더니 목을 조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꽃대를 더 높이 올려 입을 짝 벌리고 하하하고 웃어댑니다.
“나팔, 너무 시끄럽다. 조용히 좀 해.”
상희가 이렇게 말하자 곁에 있던 코스모스가 눈을 흘기며 비웃었습니다.
“제깐 게 나팔꽃이 부르는 명곡을 들을 줄이나 알까. 뭘 알아야지 무식한 것이.”
“뭐라고? 무식하다고?”
“그러니까 공부를 더 했어야 해. 너 학교 가기 싫고 공부하기 싫다고 꽃이 된 아이 아니니?”
“그런 말을 왜 하니?”
“이래봬도 우리 꽃들은 떡잎 때부터 꽃이 필 때까지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을 배운단 말이야. 넌 그런 것도 안 배웠고 사람들이 하는 공부도 안 했잖아.”
이때 커다란 벌레가 줄기를 타고 엉금엉금 기어오르며 중얼거렸습니다.
“이 꽃나무는 처음 보지만 꽃도 화려하고 잎도 무성하여 먹을 만하겠는걸. 히히히, 어디 보자.”
징그럽게 생긴 벌레는 상희의 줄기에 붙은 파란 잎을 갉아먹기 시작했습니다. 상희는 징그러워서 눈을 감았습니다. 간지럽고 아프고 따가워서 소리쳤습니다.
“아야, 아얏!”
그러나 벌레는 아주 맛있다고 싱글거리며 잎사귀 하나를 다 먹고 다른 잎사귀로 입을 돌렸습니다. 잠깐 사이에 잎사귀 두 개를 먹어치운 벌레는 기분이 좋아서 꽃잎 속으로 들어가 노란 술 위에서 쿨쿨 잠이 들었습니다.
해가 밝게 내리쬐는 오후가 되었습니다. 어디선가 사람들이 웅성거리더니 가까이 왔습니다. 한 사람이 상희를 발견하고 말했습니다.
“여기 좀 보십시오. 이상한 꽃이 피었습니다.”
사람들이 몰려와 들여다보며 신기하다고 고개를 주억거렸습니다.
“내 평생에 이런 꽃은 처음 봅니다. 꽃대가 실하고 꽃이 참 푸짐합니다. 장미보다 예쁘고 백합보다 예쁘지 않습니까.”
“기후 변화가 심하다고 하더니 이런 꽃까지 나타나는군요. 이건 우리가 좋아할 일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잘 보세요. 이렇게 아름다운 꽃이 우리나라에는 일찍이 없었잖습니까.”
이 말에 상희는 얼마나 행복한지 춤을 추고 싶어서 꽃잎을 오므렸다가 활쫙 펴 보였습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아우성입니다.
“이 꽃은 정말 신기하고 볼만합니다. 활짝 웃어 보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래요, 정말 신기하고 아름다운 꽃입니다. 방송국에 연락하여 오늘 저녁 텔레비전에 나오토록 합시다.”
이 소리를 들은 꽃들은 상희를 부럽게 바라보았습니다. 꽃 중의 왕이라고 뽐내던 장미도 화가 나서 얼굴이 더 빨개졌습니다. 꽃 속에서 쿨쿨 자고 있던 벌레가 일어나 밖으로 나오며 지껄였습니다.
“뭣들이 남의 단잠을 깨우는 거야. 시끄러워서 잘 수가 없잖아.”
그것을 본 한 사람이 벌레를 가리키며 “아름다운 꽃에 벌레가 먼저 끼었습니다.” 하자 다른 사람도 한 마디 했습니다.
“벌써 꽃잎을 갉아 먹었어요. 그냥 두었다가는 신기한 새 꽃이 피해를 입겠습니다.”
한 사람이 상희꽃 노란 술에 코를 대고 향기를 맡다가 얼굴을 찡그리며 소리쳤습니다.
“아이, 구려!”
“뭐야? 구리다고?”
다른 사람이 코를 대보다가 더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보기는 좋은데 냄새는 똥내야. 퉤퉤.”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꽃들이 와아하고 웃어댔습니다.
“뽐내더니 꼴좋다. 저 사람들 얼굴 좀 봐. 호호호호.”
상희는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꽃들이 볼까 봐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한 사람이 살충제 약통을 메고 왔습니다.
“꽃에 벌레가 생기면 안 되지. 꽃들아, 잠깐만 고개를 숙이고 참거라, 벌레 잡는 약을 뿌려주마.”
갑자기 그 사람이 뿌린 약이 안개처럼 뿜어져 꽃밭에 내렸습니다. 꽃들은 숨을 멈추고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소독약 냄새가 얼마나 독한지 어디로든 달아나고 싶었습니다.
그 뒤를 이어 한 사람이 낫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이 꽃은 그냥 두면 안 됩니다. 이런 꽃이 있으면 토종 꽃들이 피해를 입습니다.”
이때 어른들 사이로 작은 아이가 나타나 말했습니다.
“아저씨, 꽃들 중에 가장 예쁜 꽃 한 송이만 꺾어가게 해 주세요.”
이 말에 호호대며 잎으로 탬버린을 치고 노래하던 꽃들이 바들바들 떨면서 어깨를 움츠렸습니다. 작은 아이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마음에 드는 꽃을 찾았습니다. 목이 잘려나갈 위험에 빠진 꽃들은 목을 움츠리고 속삭였습니다.
“나를 꺾으면 어떡하지?”
“조용히 해, 아이가 이쪽으로 오고 있어.”
“사람들은 무서워. 보기만 하면 좋을 텐데 꺾어가려고 하는 게 무서워.”
그 아이가 상희꽃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여기 아주 예쁜 꽃이 있어요. 나 이 꽃 꺾어 갈래요.”
아이가 꺾으려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상희는 무섭고 급하여 자기도 모르게 요정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아저씨, 살려주세요! 나 꽃 안 할래요. 도로 사람 될래요.”
요정 아저씨가 물었습니다.
“사람이 되면 네가 하기 싫은 공부를 해야 하는데 그래도 좋으냐?”
“네, 공부하겠어요. 엄마 아빠 말씀은 무엇이든 다 잘 듣겠어요.”
“알았다. 사람이 되거라.”
이때 담장 구멍을 내다보고 있던 덕치가 피리를 불었습니다.
“삐삐!”
아이는 사람이 되어 자기 집으로 달려가며 소리쳤습니다.
“엄마아! 아빠아!”
17. 엄마가 된 아이
상희가 도로 사람이 되어 집으로 돌아간 다음 동네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덕치가 내다보고 있는 구멍 앞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었는데 누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정미야아!”
엄마가 부르는 소리입니다. 정미는 엄마가 과외 공부하러 가라고 부르는 소리가 가장 싫습니다. 다른 아이들처럼 신나게 놀고 싶은데 엄마는 동생과 언니를 학원으로 보내고 나면 정미를 찾는 것입니다.
엄마가 이쪽으로 오는 걸 보고 정미는 커다란 미루나무 뒤에 숨었습니다. 그리고 종알거렸습니다.
“엄마가 찾지 못하시겠지. 나도 빨리 엄마가 되고 싶어. 난 엄마가 되면 우리 엄마처럼 공부해라 공부해라 지겹도록 들볶지 않을 거야.”
이때 요정 아저씨가 나무 뒤로 오면서 물었습니다.
“정미야, 넌 엄마가 되고 싶다고 했느냐?”
“그랬어요. 엄마가 되면 공부도 안 하고 집에서 동네 사람들하고 수다 떨고 놀 수도 있지 않아요. 그리고 나는 우리 엄마처럼 공부해라, 학원 가라 하고 아이들을 괴롭히지 않을 거예요.”
“그럼 좋은 엄마가 되어 보겠느냐?”
“네?”
이때 덕치가 구멍으로 피리를 불었습니다.
“삐삐이!”
퍼덕이가 늙은 요정의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넌 이제 엄마가 되었느니라. 집으로 가 보거라. 아이들이 기다린다.”
“아이들이 뭐예요?”
“가 보면 알게 되느니라. 내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부르거라. 알겠느냐?”
정미는 별일이야 하고 요정 아저씨를 비웃듯 눈을 흘기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대문 안에 들어서자 머리가 하얀 할머니가 꾸짖었습니다.
“넌 어디를 그렇게 싸돌아다니다가 이제 오는 거냐?”
정미는 허리를 숙이고 말했습니다.
“죄송해요. 어머니.”
머리가 하얀 할머니가 안에다 대고 소리쳤습니다.
“얘들아, 느이 어미 왔다.”
그 소리에 방에서 아이 셋이 조르르 몰려나왔습니다.
“엄마, 어디 갔다 이제 오는 거야?”
정미는 삼남매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오래 기다렸니?”
“네, 배고파요 밥 주세요.”
“알았다. 들어가 공부하고 있어라, 알았지?”
“숙제는 다 했어요. 나가 놀다 와도 되지요?”
“그래라, 빨리 와야 한다.”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가고 난 다음 집안을 둘러보니 여기저기 치울 것도 많고 걸레질할 곳도 많았습니다. 집안 청소를 하고 있는데 옆집 아주머니가 호랑이 눈을 하고 큰아들 영채를 끌고 들어오면서 소리쳤습니다.
“이 아이 버릇 좀 고쳐 주세요.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쳤기에 이 모양이에요!”
정미는 깜짝 놀라 바라보았습니다.
“무슨 일인가요?”
“이 애가 우리 집 빈 장독에다 강아지를 집어넣고 뚜껑을 닫았지 뭐예요.”
엄마가 된 정미는 아들을 영채를 꾸짖었습니다.
“네가 정말 그랬어? 왜 남의 강아지를 거기다 집어넣었어?”
영채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 똥강아지가 내 발을 물었어요. 그래서…….”
정미는 옆집 아주머니한테 사과를 했습니다. 아주머니는 화난 얼굴로 사과도 안 받고 돌아갔습니다. 아주머니가 나간 문으로 둘째 아들 영민이가 울며 들어왔습니다.
“넌 또 뭐냐?”
“옆집 중학생 형이 나를 배불뚝이 못난이라고 놀려요.”
“그 애 어디 있니?”
“밖에요.”
정미는 밖으로 나가 보았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냥 집으로 들어오니 두 아들이 축구 볼을 굴리며 좁은 마당에서 공차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큰아들이 찬 공이 날아가 금방 빨아 널은 빨래에 흙을 묻히고 떨어졌습니다. 그것을 둘째가 달려들어 힘껏 차자 공은 씨잉 하고 날아가 마루 위의 어항을 깼습니다. 순식간에 마루가 물바다가 되고 안에 있던 금붕어들이 쏟아져 나와 팔딱팔딱 뛰고 엉망진창이 되었습니다.
18. 정말 난 못 살겠어
정미는 두 아이에게 소리쳤습니다.
“너희들 정말 이럴래? 난 못 살겠어.”
두 아들이 다가와 응석을 부렸습니다.
“엄마아 미안해요. 잘못했어요.”
“당장 학원에 가서 공부하고 와.”
두 아들이 똑같이 대답했습니다.
“학원 가기 싫어요. 어항 깨진 것 우리가 치울게요. 학원은 가지 말라고 하세요, 네에?”
“안 돼! 빨리 가지 못해!”
두 아이가 가방을 메고 나갔습니다. 그 아이들이 나가자마자 막내 영미가 들어오며 손을 내밀었습니다.
“엄마 학원비 주세요. 학원 갈 시간이에요.”
“내일 줄게, 내일.”
“오늘 안 가져오는 사람은 학원에 오지 말라고 했어요. 학원 가기 싫은데 안 갈래요.”
영미는 참새처럼 팔딱팔딱 뛰어 밖으로 나갔습니다. 아이가 나간 문으로 할머니가 들어오며 다그쳤습니다.
“마당에 널어놓은 고추는 언제 빻을 생각이며 김치는 언제 담글 거냐? 너같이 느려서야 어디 밥이나 제대로 얻어먹겠니?”
“알았어요, 어머니.”
할머니 말씀을 고분고분 듣고 돌아서는데 학원 선생님이 오셨습니다.
“영채와 영민이가 며칠째 학원에 나오지 않아 궁금하여 왔습니다.”
정미는 깜짝 놀라 물었습니다.
“오늘도 안 갔나요?”
“네.”
“얘들이 그럼 어디를 갔다 온 거야. 학원 간다고 날마다 나갔다 왔는데…….”
“그러셨어요? 아이들 들어오면 너무 꾸짖지 마시고 잘 달래서 내일부터는 꼭 나오게 해 주세요.”
학원 선생님이 나가고 얼마 안 있어서 아이들이 가방을 메고 들어왔습니다.
“엄마 배고파요 밥 주세요.”
“밥 달라고?”
“네. 배고파요.”
“너희들 어디 갔다 오는 거야?”
“학원에요.”
“학원에 갔다 왔다고? 정말이야?”
“정말이에요.”
“학원에서 오늘 뭘 배웠나 말해 봐.”
“그걸 어떻게 다 말해요. 엄마가 알아듣기나 해요?”
정미는 화가 났습니다. 거짓말 하는 아이들이 미웠습니다.
“너희들 똑바로 말해. 거짓말 하면 가만 안 둘 거야.”
“뭘 똑바로 말하라는 거예요?”
정미는 큰소리로 꾸짖었습니다.
“오늘 학원에 갔었다고?”
“네, 네.”
이때 할머니가 나타나 정미를 꾸짖었습니다.
“넌 왜 애들을 보기만 하면 들볶는 거냐? 우리 강아지들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할머니는 두 아이를 끌어 가슴에 안으며 역성을 들었습니다. 정미는 더 화가 났습니다.
“어머니가 이러시니까 아이들이 점점 나빠져요.”
할머니가 더 큰소리로 대꾸했습니다.
“뭐야? 내가 어쨌다고? 넌 뭘 그렇게 잘 했냐? 날마다 애들 보고 학원 가라 공부해라 달달 볶아대니 애들이 기가 살겠니? 애들 적에는 그저 저 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뛰어 놀고 건강하게 자라면 되는 거야. 요새 어미들은 애들을 공부하는 기계로 아는지 아이들이 기를 펴고 놀 수 없게 만든단 말이야. 옛날에는 그렇게 안 해도 제 할 일 다하고 어른 되고 시집 장가 가고 자식 낳고 잘 했다.”
“어머님이 자꾸 이러시면 아이들만 버려요.”
“네가 아이들을 버려놓고 있지, 나 잘 못한 건 하나도 없다. 그렇지? 우리 강아지들.”
할머니 품에 안긴 두 아이는 좋아서 생글거리며 엄마를 놀리듯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모르겠어요. 애들이 잘못 되면 어머니가 책임지세요.”
“내가 왜 책임을 지냐? 네 자식들 네가 잘 키워야지.”
“그러니까 제가 아이들 잘못하는 것을 꾸짖는 거 아녜요?”
“애들이 무슨 큰 잘못을 했다고 그 야단이냐?”
정미는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아이들도 보기 싫고 할머니도 보기 싫어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아이구! 하나님 구름님. 난 엄마 노릇 못해 먹겠어요. 아저씨 저 좀 살려주세요.”
이때 요정 아저씨가 물었습니다.
“엄마 노릇 할 만하지?”
“아저씨 전 엄마가 싫어요.”
“그럼 어떻게 해 줄까?”
“어린이가 되고 싶어요.”
“학교 가기 싫다면서?”
“학교 갈래요.”
“엄마 노릇하기가 힘든 모양이로구나.”
“엄마 말 잘 듣는 학생이 되고 싶어요.”
아저씨는 빙그레 웃으시었습니다.
“공부하라고 채근하는 엄마가 있는 어린이가 가장 행복하다는 걸 알았겠지.”
정미가 애원했습니다.
“아저씨, 저 아이가 될래요.”
이때 덕치가 구멍을 내다보며 피리를 불었습니다.
“삐이삐이!”
정미는 다시 아이가 되어 집으로 달려가면서 엄마를 불렀습니다.
“엄마아아아!”
19. 너희는 염소가 되어라
아이들이 다 돌아가고 나자 퍼덕이가 싱글벙글 덕치 곁으로 와서 말했습니다.
“주인님, 참 재미있습니다.”
“더 재미있는 일도 있다.”
“또 뭐가 있습니까?”
이때 논으로 밭으로 다니면서 농사를 짓던 먹구가 다가오면서 물었습니다.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미나게 하고 계십니까? 주인님.”
덕치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퍼덕이하고 동네 말 안 듣는 말썽꾸러기들 교육을 좀 시켰다.”
“교육을 시키다니 무슨 교육을 시키셨다는 말씀입니까?”
“차차 알게 될 테니 기다려 보거라. 그런데 논밭 작황은 어떠하냐?”
“기가 막히게 잘 되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히히히.”
“무엇이 그리 재미있어서 킥킥거리느냐?”
“들에 나가서 돌아 보십시오. 우리 농사는 대풍년인데 다른 집 농사는 대흉년이란 말입니다.”
“그러냐?”
덕치는 하인을 데리고 논밭을 둘러보았습니다. 먹구 말대로 덕치네 농사는 잘 되었는데 마을 사람들 농작물은 모두 가뭄에 타서 아무것도 거둘 것이 없었습니다.
“우리 농사만 잘 되었구나. 장차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살겠느냐?”
먹구가 신이 나서 말했습니다.
“남들 걱정할 게 뭡니까. 동네 사람들이 먹을 게 없으면 우리한테 식량 사정을 할 테고 그러면…….”
“그러면?”
“두고 보시면 압니다.”
이렇게 농사 이야기를 하는 동안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왔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식량난을 겪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농사를 잘 지어 곳간에 양식을 넉넉히 채운 덕치는 아무 걱정 없이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
봄마다 살구와 복숭아를 이고 다니며 보리쌀과 바꾸어 오던 덕구 어머니는 안방마님이 되어 고운 비단 옷을 입고 하인들이 차려주는 밥상을 받으며 세상 부러울 것 없이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흉작으로 아랫말 끝에 사는 사람이 먹을거리가 떨어지자 덕치네 곳간을 뚫고 도둑질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것을 안 덕치가 피리를 꺼내어 불었습니다.
“너희 가족은 염소가 되어라. 삐이삐이!”
그 순간 도둑질을 하러 온 사람이 염소로 변하여 돌아가면서 짚 단 하나를 물고 갔습니다. 자기가 염소가 된 것도 모르는 그 사람은 입에 물고 있는 짚단을 가족들 앞에 내놓았습니다. 요술 피리 소리에 염소로 변한 가족들이 둘러 앉아 볏짚을 먹었습니다.
다음날입니다. 동네에서 꽤 큰소리 치고 살던 우중이네도 양식이 떨어졌습니다. 우중이 아버지가 아내한테 말했습니다.
“이대로 굶어죽을 수는 없지 않소. 덕치네 곳간에는 쌀이고 곡식이 산더미 같다 하오. 뭘 가지고 가서 식량을 바꾸어 올 수 있겠소?”
“무엇 하나 가져다 줄만한 것이 없으니 어떻게 하겠어요. 급하면 도둑질이라도 해야지…….”
“내 평생에 남의 물건에 손을 대 본 적이 없는데 이 지경이 되고 보니 체면이고 뭐고 생각할 수가 없구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굶어 죽을 수는 없지 않아요.”
“그렇게 가만히 앉아 굶어 죽는 것보다 도둑질이라도 해서 살아야할 것 같소. 내 오늘 밤 덕치네 곳간에서…….”
그렇게 말한 우중이 아버지는 한밤중에 덕치네 곳간을 살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곳간 한쪽에 구멍이 나 있어서 쌀자루를 대고 쌀을 퍼 담는 순간 어디선가 피리소리가 들렸습니다.
“삐이삐이! 너희 가족은 모두 토끼가 되어라.”
그 순간 우중이 아버지는 귀가 축 늘어진 토끼로 변했습니다. 토끼가 된 우중 아버지는 두리번거리다가 옆에 배추더미가 있는 것을 보고 가장 큰 것 한 통을 안고 집으로 갔습니다.
“마누라 나 왔소.”
“벌써 오셨어요?”
이렇게 말하는 아내도 토끼가 되어 귀를 늘어뜨리고 나와서 반겼습니다, 그리고 배추를 보자 좋아서 깡충깡충 춤을 추면서 말했습니다.
“아이고 맛있게 생겼네, 어디서 구하셨수? 빨리 먹어 봅시다.”
부부 토끼는 아들을 불렀습니다. 아들도 어린 토끼가 되어 깡충깡충 조르르 뛰어와 배춧잎을 갉아먹기 시작했습니다.
또 한편 동네에서 가장 부자로 알려진 양희네 집에서도 양식이 떨어져서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양희 엄마가 말했습니다.
“식구는 많고 먹을거리라곤 없으니 어떻게 살아요?”
양희 아버지가 침통하게 말했습니다.
“어쩌겠소. 덕치네 집에 땅 문서라도 가지고 가서 겨울 양식을 구해 와야 할 것 같소.”
“그렇게라도 해야겠지요. 당장 가서 양식을 구해 오세요.”
양희 아버지는 기가 차서 너털웃음을 웃었습니다.
“허허, 이런 변이 있나! 움집 거지한테 땅문서를 바치고 양식을 구걸하게 되다니! 이럴 수가, 허허허.”
그러면서 장롱 깊이 간직한 땅문서를 들고 부부가 덕치네 집으로 갔습니다.
20. 부자의 구걸
양희 엄마는 덕치가 살던 움막에 큰 기와집이 생겼다는 말은 들어 보았지만 ‘그깟 것들이 뭐?’ 하고 깔보고 무시했습니다. 그래서 구경도 해 보지 못하다가 오늘 처음 그 집을 보았습니다.
동쪽으로 세 칸, 서쪽에 세 칸, 남북 쪽에 각각 세 칸씩 열두 칸 기와집이 웅장하게 지어진 궁궐 같은 집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기는 안채 네 칸에 사랑채 세 칸짜리 초가를 가지고도 동네에서 궁궐집이라고 불렸는데 덕치네 집은 청기와에 화려한 무늬가 그려 있는 벽이며 대문이 엄청나게 커서 감히 그 문에 들어설 엄두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곁의 남편한테 물었습니다.
“이렇게 큰 집이 덕치네 집이란 말이우?”
“그렇다는구려. 이런 집은 처음 와 보오.”
“대단한 집이구려. 괜히 겁이 나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아요.”
“그래도 어쩌겠소. 들어가 봅시다.”
부부가 대문으로 들어가려는데 하인이 막고 섰습니다.
“뉘신데 함부로 들어오시오?”
하인의 말씨가 매우 거만하게 느껴졌지만 꾹 참고 대답했습니다.
“집 주인 덕치를 만나러 왔소.”
“무슨 일로 오셨소?”
“그건 알 것 없고 주인이나 불러주시오.”
“그건 알 것 없다 하시니 나도 들여보내 줄 수 없소.”
“허허, 이 사람이?”
“허허, 무슨 일로 왔는지 알아야 주인어른께 말씀드릴 게 아니오?”
양희 아버지는 기가 찼습니다. 언제부터 이런 하인을 두고 살았다고 건방진 것이 앞을 막나 괘씸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허허, 허허, 흠흠!”
어이가 없는 양희 아버지는 헛기침을 했습니다. 안에서 하인이 하는 소리를 듣고 덕치가 나왔습니다.
“어른님, 오셨습니까? 어서 오시지요.”
“그럼세, 내가 좀 할 말이 있어서 왔네.”
양희 부모는 안으로 들어서서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안방에서 곱게 차려입은 덕치 어머니가 치마를 잘잘 끌고 나오며 반겼습니다.
“어른님들 어서 오세요. 이 누추한 곳까지 어인 일로 오셨습니까?”
양희 아버지는 속으로 혀를 찼습니다.
‘쯔쯔, 이런 집이 누추하다고 하면 우리 집은? 허허허…….’
양희 엄마도 입이 벌어진 채 다물어지지 않았습니다. 봄마다 새까만 얼굴에 살구 광주리를 이고 다니던 여편네가 무슨 팔자가 뒤집혀서 이렇게 잘 사는지 별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양희 어머님, 이리로 올라오세요.”
덕치 어머니는 말씨부터도 옛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대답하기도 버거웠습니다.
“야, 그러지요.”
방 안으로 들어서서는 더 놀랐습니다. 으리으리한 칠보 자개장에 황금 보료 위에 황금 방석을 내놓으며 앉으라고 했습니다. 부부는 쭈뼛거리며 그 앞에 앉았습니다.
그렇게 앉은 양희 엄마는 과거의 일을 되새겼습니다.
‘언젠가 새로 딴 맛물 살구를 가지고 오던 날 우리 식구끼리 떡을 먹다가 움집 거지 온다고 감추었는데……. 부끄럽구먼…….’
덕치가 하인들에게 명하여 차를 들였습니다. 차도 향기롭기가 하늘을 나는 기분이 들고 혀끝에 감치는 맛이 목 안을 등불이 비치기라노 하듯 환했습니다. 감동에 감동을 하면서도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할 수 없는 것은 무엇엔가 찍어 눌린 듯한 육중한 분위기 때문이었습니다.
덕치가 겸손히 물었습니다.
“무슨 일로 이렇게 두 어른님께서 오셨습니까?”
막상 말을 하자니 입이 떨어지지 않아 양희 부모는 서로 바라보고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한참 머뭇거리다가 양희 아버지가 입을 열었습니다.
“저, 그게 말일세, 그게…….”
“네, 말씀하시지요.”
“금년에는 대흉년이 아닌가?”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자네는…….”
“네. 말씀 하시지요.”
“좀 말하기 거시기하네만…….”
답답하고 속이 얼얼한 양희 엄마가 대신 말했습니다.
“다른 게 아니고 우리 집 양식이 다 떨어져서 말인데…….”
“그러시군요.”
“남의 양식을 거저 달라기도 거시기하고 꾸어달라기도 그래서 우리 집 땅 문서를 가지고 왔으니 겨울 날 양식을 좀…….”
“땅 문서를 가지고 오셨다고요?”
양희 아버지가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네. 땅 열 마지기 문서를 가져왔으니 잘 쳐서 쌀을 좀 주게.”
덕치가 오금을 박듯 물었습니다.
“꼭 그래셔야 하겠습니까?”
이 순간 덕치 어머니도 옛날 일을 생각했습니다.
‘어느 핸가 내가 새로 난 맛물 살구를 따가지고 찾아갔을 때 식구들이 둘러앉아 떡을 먹다가 감추던 사람들이 지금은…….’
덕치가 땅 문서를 받아 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큰 땅까지 주실 필요는 없으십니다. 다섯 마지기 문서만 받고 겨울 날 양식을 넉넉히 드리겠습니다.”
이때 어머니가 손을 저었습니다.
“안 된다.”
21. 아름다운 복수
어머니가 안 된다고 말할 때 양희 부모는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양희 아버지도 순간적으로 옛일을 떠올렸습니다.
‘그랬지, 저 부인이 맛물 살구를 땄다면서 들고 오던 날 우리가 무슨 짓을 했던가. 먹던 떡을 숨기고……. 허허, 저 부인도 그 날 눈치를 챈 것 같았어. 오늘 이러실 만도 하지……허허.’
덕치가 놀란 얼굴로 어머니를 바라보았습니다.
“어머니?”
어머니는 아들한테서 땅 문서를 받아들며 말했습니다.
“안 된다. 땅 문서를 받아서는 안 된다. 돌려 드려야 한다.”
이 말에 양희 엄마는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옛날 일을 노엽게 생각하여 우리가 굶어죽어도 땅문서 따위를 받고 양식을 줄 수 없다는 거로구나. 그러시면 어쩌나……?’
생각을 하던 양희 어머니가 사정하는 얼굴로 말했습니다.
“마님, 그런 거라도 받으시고…….”
덕치 어머니는 깜짝 놀라며 말했습니다.
“마님이라니요? 안 될 말씀입니다. 궁궐 댁 어르신네가 이 하찮은 것을 보고 마님이라시면 안 됩니다.”
양희 어머니가 고개를 숙이고 말했습니다.
“부끄러워요. 다 제가 못 나서 그랬습니다.”
“아닙니다.”
이렇게 말하고 덕치를 바라보고 말을 이었습니다.
“덕치야, 이 어른들은 우리의 의지였고 고마운 분들이었다. 이분들한테 무엇 하나라도 받고 양식을 내드리면 우리가 죄짓는 것이다. 땅문서는 돌려드리고 필요한 대로 겨울 양식을 내드리도록 하자.”
“그러지요, 어머니. 고맙습니다.”
덕치가 어머니와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양희 부모는 어리둥절했습니다. 벌을 내리는 게 아니라 상을 베푸는 소리로 들렸기 때문입니다.
양희 부모는 머리가 땅에 닿도록 인사를 하고 돌아갔습니다. 덕치 어머니는 옛일을 떠올렸습니다.
‘움집에 살 때 저 댁에서는 떡을 막 쪄내어 시루에서 김이 무럭무럭 올랐지. 주인 여자가 떡을 칼로 넓적넓적하게 썰어놓으며 딸을 불렀지.
“양희야, 이 떡 뒷집 할아버지 댁에 가져다 드리고 오너라.”
양희가 떡을 배달하고 오는 동안 또 다른 집으로 가져다주라고 했고. 많은 떡을 이집 저집 돌려주고 돌아온 양희가 “엄마, 움집 덕치네는?” 하자
“덕치네 줄 떡이 어디 있니? 우리 먹기도 모자라는데.”
“그래도 그 집만 빼놓고 안 주면 되나?”
“그 집이라니! 그게 집이냐. 움막이지.”
“그래도 한 조각이라도 가져다 줘요.”
“안 돼! 가는 정이 있으면 오는 정도 있어야 하는데 지금 떡 한 조각 가져다주면 언제 받아먹니?”
이때 곁에서 듣고 있던 아들 양철이
“엄마 말이 맞아. 그런 집에 뭘 갖다 준다는 거야? 거지같은 것들한테.”
양희는 마음이 고운 아가씨라
“오빠,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니야. 그 집은 거지가 아니야. 덕치가 움집에 살아도 공부는 우리 반에서 가장 잘한단 말이야.”
양희가 한 이 한 마디가 떡보다 더 좋았고 용기를 주었던 것입니다. 그의 부모가 한 말을 생각하면 노엽지만 양희가 한 말 한 마디가 모든 섭섭함을 다 씻고 겨울 양식을 거저 대 주기로 한 것입니다.
덕치 어머니는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오늘은 왜 이렇게 기쁠까? 섭섭했던 감정을 용서하는 것은 바로 감정의 올가미에서 풀려나 나를 용서하는 것……. 이런 걸 아름다운 복수라 하나? 아니, 용서로 바꾼 아름다운 사랑일 거야. 호호호.”
22
그렇게 하여 양희네 걱정은 없어졌지만 동네에 많은 가정이 약식 걱정을 하였습니다. 그러는 중에 덕치네 창고를 털어가려고 왔던 사람들이 모두 덕치의 피리소리에 따라 집집마다 동물이 되었습니다.
오리가족은 꽥꽥거리며 돌아다니고 양이 된 가족은 애앵애앵소리를 지르면서 산으로 들로 다님 나무 껍질을 까먹는가 하면 원숭이가 된 가족은 종일 산으로 가서 마른 나무 열매를 따먹었습니다.
온 마을이 동물농장처럼 되어 제각기 자기가 사람이었던 것을 잊어버리고 동물 하는 짓을 그대로 하고 살았고 양희네 집만은 사람으로 덕치네가 주는 양식으로 겨울을 났습니다.
그러는 가운에 땅 문서라도 들고 온 사람들은 양식을 거저 대주고 사람으로 살도록 해 주었습니다.
덕치가 까차한테 얻은 요술피리는 무엇이든지 덕치가 하고 싶어 하는 대로 마술을 부려주었습니다.
날개를 다오
바퀴를 다오
안 보이게
토끼로 변신 고양이로 변신 개로 변신 등등
온 마을에 변화가 생기고
가물어서 굶어 죽게된 사람들이 양식구걸할 때
노랑 먹구
파란 퍼덕
양희
양철
덕치
짧게 한번 돈 물어다 주는 두깨비
길게 한번 모르는 것 대답해 주는 선생
짧게 두 번 날고 싶을 때 태워주는 새
길게 두 번
짧게 세번
길게 세 번
세상 무서운 줄 모르게 발전하고 출세한 가난한 소년이 오만 방자해지자 벌을 태리는 천사
윤경은 선생님께
이정숙 선생님의 멜을 받고 선생님을 알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그간 평안하시었지요?
별로 잘 쓰지도 못하는 글을 이정숙 선생님께서 과찬하여 드리신 것 같아 겁도 나도 쑥스럽기도 합니다.
윤선생님은 학계에서 매우 존경받는 분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선생님 덕택으로 그렇게 귀하신 선생님을 알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글쓰는 재주가 이것뿐이라 어린아이들 이야기랍시고 글쓰기 흉내를 내는 정도입니다. 이선생님 말씀 듣고 제 이름을 인터넷에서 찾아보셨다니 얼마나 송구하고 고마운 일인지 모릅니다.
저는 이름이 심혁창으로 닉네임이 ‘웃는곰’입니다. 바보같이 웃는 곰이지요. 네이버 블러그에서는 <웃는곰 심혁창>을 쳐야 나오고요 ‘다음’에서는 심혁창 블로그를 쳐야 나옵니다. 블로그에는 자랑만 늘어놓았지 별것 아닌 글들입니다. 기대하지 마시고 사랑의 눈으로 보아 주세요.
먼저 동화 다섯 권을 올립니다. 보시고 칭찬해 주시면 곰이 신이 나서 다른 것도 올리겠습니다.
이렇게 글을 올릴 수 있게 된 윤선생님께 감사드리고 이정숙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내내 하시는 일마다 하나님의 은총중에 이루어지시기를 기도합니다.
2016년 3월 18일
웃는곰 심혁창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