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방/논픽션

옷이 날개

웃는곰 2026. 6. 18. 19:53

내가 군에 입대하여 일반복을 벗어버리고 군대 훈련복으로 갈아입던 날 이야깁니다.

막사 내무반에 양쪽으로 40명을 두 줄로 앉혀 놓고 너덜너덜한 훈련복 한 둥치를

끌고 들어온 기간병이 앞에서부터 옷을 한 사람 앞에 하나씩 던져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희끄무레한 옷 속에 딱 한 벌, 새파란 새옷이 끼어 있었습니다.

모두들 그 옷이 자기 순서에 던져주기를 바라고 눈길을 모았지요

낡은 옷이 하나하나 던져지고  마침내 그 파란 새옷이 휙 날았습니다

그 새옷이 날아와 내 품에 덥썩 안겼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모두 부럽게 바라보았습니다.

나는 기뻤지만 차마 웃지도 못했지요 

다른 아이들 눈치가 보여서.

 

훈련복을 다 나누어 준 다음 기간병이 모두에게 실과 바늘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나도 받았지만 옷이 새것이라 기울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 양편에 낯선 신입병을 힐끔거리며 속으로는 희희낙락했지요

 

오른쪽 친구는 불만이 많았습니다.

옷을 깁지 않고 앉아서 구시렁거리며 불만을 해대고 몸부림을 쳤습니다.

나는 그 애 보기가 매우 미안했습니다.

그런데 왼쪽 아이는 아무 소리 않고 그 너덜거리는 옷을

구석구석 서툰 바느질로 꿰맸습니다

어찌나 많이 기웠는지 실이 모자라자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내 실을 달라는 눈빛이었지요

나는 그 사람에게 내 것을 주었습니다.

 

한 시간쯤 뒤에 기간병이 와서 옷 보수 점검을 했습니다

모두들 꿰맨 옷을 자기 앞에 내놓고 점검을 받았는데........

 

기간병이 보수 상태를 점검하다가 내 오른 쪽 신병을 향해 벼락을 쳤습니다.

"너! 이게 뭐야? 왜 안 기웠나?"

"네네에 너무 많이 찢어져서 기울 수가 없었습니다."

"뭐야? 이 새끼 여기가 어딘지 아나?"

"네네에!"

"여기는 군대다. x으로 밤송이를 까라면 까야 한다 알았나?"

"네네에"

기간병은 내 왼쪽 신병이 기워 놓은 옷을 집어들고 흔들어대며 말했습니다.

"똑똑히 봐라. 이 옷이 너보다 더 낡은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잘 꿰매놓은 것 안 보이나?"

그 날 불만하며 옷을 깁지 않은 친구는 입대 첫날부터 구두발로 채이고

벌을 선 다음 잠도 못 자고 하라는 대로 옷을 기웠습니다.

나중에 얼굴이 익고 보니 왼쪽 친구는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가 입대한 사람이고

오른쪽 친구는 사회에서 건달로 놀다 입대한 사람이었습니다.

 

지금은 안 그렇지만 60년대초의 훈련복은 너무 낡아서 하루만 훈련장에서 기다 들어오면

여기저기 찢어지고 뚫어지고 엉망이라 밤이면 옷 깁기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만은 새 옷을 입어서 보기도 좋고 꿰맬거리도 없어 편했는데

옷이 날개라더니 다같이 대열에 서 있어도 내가 가장 말끔해 보이므로

나는 중대본부에서 불러다 행정사무 보조일을 시켜서 훈련도 제대로 안 받고

적당히 6주를 마치고 부대배치를 받고 훈련소를 떠났습니다. 

 

나는 이 추억을 새기며 인생과 운명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대열에 설 때 시간과 배치된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만 앞세울 만큼 시간이 지났으면 내가 옆사람 자리에서  낡은 옷을 받았을 것이고

조금 더 빨랐더라면 또 낡은 옷이 내 차례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 옷이 둥치에 묶일 때와 내가 만나는 시간은 보통 인연이 아닙니다.

 

옷 하나를 차지하는 데도 그런 관계이니 인생과 출생은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 것일까.

운명이란 그렇게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두 친구가

주어진 옷을 어떻게 다루는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차피 운명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것입니다.

새옷 받은 사람의 운명이 있는가 하면 헌옷을 받아 기워야 하는 사람 운명 말입니다.

왼쪽 친구는 더 낡은 옷을 받았지만 열심히 보수하여 벌을 서지 않았는데

오른쪽 친구는 덜 낡은 옷을 받고도 보수를 소홀히 하여 밤마다 벌을 서다가 훈련을 마쳤습니다.

 

한 번 주어진 운명은 저주하고 불만하기보다 그에 순응하고

최선을 다하여 받아들이고 겸손할 때  아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기 운명을 스스로 저주하는 사람은 남이 아닌

스스로에게  저주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운명을 사랑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돕고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