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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사람 152 / 경로석의 빈자리

웃는곰 2026. 1. 26. 19:30

옆 사람 152 / 경로석의 빈자리

 

오늘 나는 신길역에서 천안행 급행전철을 탔다.

경로석이 꽉 차고 백발이 빽빽이 서 있었다.

그런데 서울역에 도착하자 서 있던 사람이 줄줄이 내리고

앉은 사람 가운데 맞은편에 한 사람 내 앞에 두 사람이 내렸다.

 

나는 비어 있는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차가 신도림역에 멎자 내 옆자리 영감이 내리고 나만 남았다.

그런데 맞은편에도 한 사람이 내리자 거기도 두 자리가 비어 있었다.

차가 가산디지털역에 멎자 그 사람마저 내렸다.

건너편은 3자리가 공석이고 내 쪽은 두 자리가 공석이었다.

 

가산디지털 역에서 젊은이들이 우르르 올랐다.

그런데 경로석이 빈 것을 보고도 경록석은 비어둔 채 젊은이들로 만원을 이루었다.

양쪽에 빈 좌석이 활짝 퍼져 있는데 아무도 앉지 않았다.

모두가 서 있고 나 혼자 앉아 있자니 나도 일어서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참고 앉아 젊은이들이 빈자리에 앉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서 있는 사람 중에 나이가 든 사람이 보여서 말했다.

손님 여기 앉으시지요.”

그 사람은 겸손히 대답했다.

저는 그 자리에 앉으려면 2년 더 있어야 합니다.”

 

그 정도시면 앉아도 되실 것 같습니다. 빈자리가 많지 않습니까?”

그 자리는 나이가 앉는 자리지요.”

? 노인이면 누구나 앉는 자리 아닌가요?”

저는 아직 노인이 되자면 더 있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머쓱해진 나는 서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매우 피로해 보이는 아가씨가 있기에 말을 건넸다.

아가씨 여기 앉아 가세요.”

아가씨는 고개를 살짝 저으며 배시시 웃어보였다.

 

여기 앉았다가 노인이 오시면 자리를 내주면 되잖아요.”

역시 아가씨는 감사하다는 눈으로 인사를 하고 서 있었다.

어디까지 가는 사람들인지 모르지만

모두가 빈자리를 쳐다보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양쪽 다섯 자리에 혼자 앉아 있는 것이 민망스럽기까지 했다.

누구든 옆에 앉아주었으면 좋겠는데

차가 성균관대 역에 섰을 때 할머니 한 분이 타셨다.

그분은 빈자리를 보시고 머뭇거렸다.

 

만원 차에 텅텅 빈 좌석이 이상했던 모양이었다.

내가 앉으시라는 눈짓을 하자 조심스럽게 앉으셨다.

초만원 차에 빈자리를 보면서도 앉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젊은이들을 둘러보면서 생각했다.

 

내가 저 나이일 때 이런 자리가 비어 있었다면

나도 지금 사람들처럼 서서 갔을까?

젊은이들이 그 자리에 앉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었을 텐데

노인들을 위해 서서 가는 것이 고맙기도 했다.

 

수원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렸다.

돌아보니 빈자리는 역시 주인 없이 손님을 기다리고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