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님은 하나님을 믿습니까?”
“하나님은 믿지만 교회는 믿지 않습니다.”
176. 그걸 모르면 사람이 아니지요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하나님은 믿으면서……?”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하나님은 믿어야지요.”
“기사님은 기독교인이시군요?”
“저는 기독교도 불교도 안 믿습니다.”
“……?”
“더욱이 교회는 안 나갑니다.”
“카바레에 나가는 여자보다 교회에 나가는 여자가 아내였으면 좋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랬지요. 그렇지만 예수는 안 믿습니다.”
“예수가 누군지는 아십니까?”
“교회도 안 나가는 사람이 예수를 어떻게 압니까.”
“그래도 예수라는 이름은 아시지요?”
“그걸 모르면 사람이 아니지요.”
“기사님, 오대조 할아버지 이름은 아시겠지요?”
기사분이 나를 이상한 눈으로 돌아보며 대답했다.
“증조할아버지 이름도 모르는데 오대조를 어떻게 입니까.”
“그러시면 우리나라 대통령 이름은 다 아시지요?”
“대강 알지요.”
“고려시대 왕 중에 어떤 왕이 가장 훌륭했습니까?”
“조상 이름도 못 다 아는데 고려 때 왕을 어떻게 압니까?”
“그럼 세계적인 대통령이나 왕 가운데 아는 이름이 있으신가요?”
177. 사람인지 신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없습니다.”
“아는 이름이 있으실 텐데요.”
“없다니까요.”
“예수라는 이름은 아시지요?”
“예수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조상 이름도 어떤 왕의 이름도 모르는데 예수는 아시네요.”
“예수가 사람입니까.”
“사람이 아닌가요?”
“사람 같기는 한데 사람인지 신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신으로 믿기 때문에 신자가 된 것입니다. 예수를 그냥 사람으로 치고 생각해 보시지요. 전 세계인들이 모두 자기 조상 이름은 모르면서 예수라는 이름은 2천 년 전 사람인데 그 앞에 무릎을 꿇으니 어떻게 생각되시나요? 예수를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한 왕 이름마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는 누구시기에 수십억 인구가 믿고 오늘 같은 날 밤이 새도록 그 이름 앞에서 기도를 드리겠습니까? 사람이라고만 생각해도 대단한 분이 아닌가요?”
“그렇기는 합니다.”
“인간 예수라고 치더라도 교회에 나가는 아내와 카바레에 나가 춤추는 아내가 전혀 다른 것을 생각하면 어떤 아내의 남편이 되시고 싶습니까?”
“그야 교회에 나가는 아내지요.”
178. 아무나 목사가 되나
운전기사는 고개를 돌려 나를 힐끗 보더니 물었다.
“생각해 보니 사람들이 예수를 왜 믿는지 알 것 같습니다. 나 보고 예수 믿으라고 하시는 말씀은 아니시지요?”
“물론 아닙니다. 만약 기사님이 예수를 믿고 아내 분까지 교회에 나가시게 되는 변화가 일어난다면 큰 복이라는 말씀이지요. 그렇게 되면 부인께서는 기사님을 위해 늘 기도하실 것이고 바람날 염려도 없을 테니 말입니다. 하하하…….”
“가만히 생각해 보니 모두가 맞는 말씀입니다. 저도 한번 그 문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손님께서는 누구신가요? 목사님이신가요?
“아닙니다.”
“장로님이신가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운전대를 잡고 수십 년을 다니며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았지만 손님 같은 말씀을 하시는 분은 처음입니다. 목사님이시지요?”
“아닙니다.”
“저를 감동케 하신 분이시니 목사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가진 돈이 없어서 택시를 탔습니다. 집에 들어가서 택시비를 가지고 나올 테니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목사님을 모셨으니 돈은 안 받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내가 부랴부랴 돈을 가지고 나왔을 때 차는 멀리 달려가며 빵빵 하고 경적 인사를 했다. 나는 지금도 그 기사를 못 잊고 기도한다.
179. 돈 줘!
아침 아홉 시.
출근하자마자 누가 사무실 문을 쾅쾅 사납게 두드렸다. 누군가 하고 문을 열어 보니 어떤 사람이 축 늘어진 사람을 하나 업고 들어와 소파에 털썩 내려놓고 한 마디 했다.
“나 광문인쇄소에서 왔습니다. 거기서 돈이 없다고 여기 와서 받아가라고 하여 왔습니다. 그 인쇄소에 줄 돈 백이십만 원 맞지요?”
나는 얼결에 대답했다.
“그렇습니다만…….”
그 사람은 간단히 한 마디
“그 돈 이 사람한테 주세요.”
하고 바람같이 돌아갔다. 얼결에 나타나 이상한 사람만 내팽개치고 그 사람이 돌아가자 어이가 없어서 아야 소리 한마디 못했다. 소파에 벌렁 누운 사람이 돼지 멱따는 소리로 한 마디 뱉었다.
“돈 줘!!”
그 사람을 들여다보니 비쩍 마른 새까만 얼굴에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자다가 홍두께 맞은 사람처럼 그 사람을 들여다보다가 내 자리로 돌아왔다. 바로 출근한 영업담당 직원이 그 사람을 보고 놀라서 물었다.
“누구십니까?”
그 말을 들은 그 사람이 내뱉었다.
“돈 줘!”
180
직원이 놀란 눈으로 누구냐고 물었다. 내가 나직이 대답했다.
“광문인쇄소에서 보낸 사람.”
“그 박사장 말씀인가요?”
내가 고개를 끄덕해 보였다.
“아니, 그 사장님이 어쩌자고 이러시나요?”
“돈 못 갚은 죄지…….”
소파에 누워 있는 사람이 또 소리쳤다.
“돈줘!”
그 사람을 자세히 보니 전신 불구자였다. 걷지도 못하고 제대로 못 움직이는 살아 있기만 한 사람이었다. 당장에 돈을 주고 싶지만 갑자기 돈이 들어올 만한 곳이 없었다. 영업직원은 서점에 일 보러 나가고 뒤이어 미스 강이 출근을 했다. 들어서자 웬 사람이 소파에 누워있는 걸 보고 놀라서 물었다.
“사장님, 누구…….”
죽은 듯 누워 있던 사람이 미스 강의 말을 자르고 소리쳤다.
“돈 줘!”
미스 강은 놀라 아무 소리도 못하고 자리에 가서 컴퓨터를 켰다.
나도 자리로 가서 앉았다. 기가 막혔다. 인쇄소 사장한테 전화를 했다.
“사장님, 수금 사원을 보내셨습니까?”
“수금사원이 아니고……. 그 사람들이 갔습니까, 놀라셨지요?”
181. 하나님 나 좀 구해 주세요
“놀랐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면 바로 갚겠습니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인쇄잉크 값 밀린 것 때문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그 사람들이 나타나 일을 못하게 하여 밀린 돈 가운데 120만원이라도 가서 받아가라고 그 사람들을 보냈습니다. 미안합니다만…….”
“알겠습니다. 돈이 들어오면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이렇게 말을 했지만 바로가 언제가 될지 알 수가 없었다. 벌렁 누워 있는 사람을 보면 마음이 어수선하여 일이 잘 안 잡혔다. 나는 마치 큰 바위에 놀린 기분이었다. ‘하나님 나 좀 구해 주세요.’ 하는 말이 입에서 맴돌았다. 세상에서 나를 구해 줄 사람도 없지만 내 맘을 이해할 사람도 없었다. 이런 상황이지만 집에서마저도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내 고민을 가족한테까지 나누어 줄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점심때가 되었을 때 고향에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점심이나 같이 하자고 찾아왔다. 나는 난감했다. 친구는 무심코 말했다.
“오랜만인데 점심이나 같이 하자.”
이때 소파에서 소리를 질렀다.
“돈 줘!”
친구가 놀라 작은 소리로 물었다.
“뭐냐?”
“아무 것도 아니야.”
182. 오직 돈 줘 뿐!
나는 친구를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친구가 물었다.
“저 사람 뭐야?”
“돈 받으러 온 사람.”
“얼마나 되는데?”
“120만원.”
“그렇게나? 20만원이라면 나라도 갚아 주겠지만…….”
“말만 들어도 고맙다. 오늘 점심은 내가 살 테니 미스 강하고만 나가서 먹어라.”
“아니야, 내가 사러 온 것이니 같이 나가자.”
“저 사람을 두고 어떻게 나가냐.”
그렇게 하여 친구는 미스 강만 데리고 나가서 점심을 먹으러 갔다. 내가 소파에 누워 있는 사람한테 물었다.
“점심시간인데 뭘 시켜 드릴까요?”
“돈 줘!”
“돈은 되는 대로 드릴 테니 점심은 무엇으로 드릴까요?”
“돈 줘!”
그 사람은 무슨 말을 해도 돈 줘라는 말밖에 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나도 점심을 굶었다. 친구가 돌아간다고 인사를 왔다. 내가 친구를 잡고 간곡히 부탁했다.
“오늘 본 것 못 본 거로 하고 시골 사람들한테 소문 내지 마. 특히 우리 부모님 아시면 안 돼. 알았지?”
'문학방 >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첩한테 남편 빼앗긴 조강지처 (0) | 2023.09.14 |
---|---|
如意吉祥 ( 여의길상 ) (0) | 2022.11.08 |
놈과 나1-170 (0) | 2019.08.03 |
나도 하나 주세요 (0) | 2019.07.06 |
천원으로 벗은 짐 메리크리스마스 (0) | 2011.1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