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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번 들어도 좋은 이야기 74 / 훈민정음 해례본 이야기

웃는곰 2026. 6. 25. 20:00

백번 들어도 좋은 이야기 74 / 훈민정음 해례본 이야기

선대의 인류가 후대에 남긴 유산은 경우에 따라

한 국가가 뒤흔들리기도 할 만큼 영향력이 크지요.

 

그래서 세계 유산을 지정하는 전문 기구가 존재하는 것이고

각 나라마다 문화재를 관장하는 문화재청이라는 게 있지요.

 

70년 전 한국인이 목숨을 걸고 지켰던 우리 고유 유물

세상에 공개되자 중국이 발칵 뒤집혔다네요

 

도대체 어떤 것이기에 중국에 난리가 났을까요?

자세한 내용을 알아 보지요

 

중국은 한국 문화를 중국 예속화를 시도하면서

개도 웃을 주장을 펼치고 있어요

 

한복·한식 등 한국 문화를 뭐든 자기들 것이라고 우기고

그 추악함은 하늘을 찔러 반중 감정이 반일 감정을 넘을 정도

 

중국은 감히 건드려서는 안 될 것에도 손을 댔으니

세계가 인정하는 한글이지요

 

한글은 역사상 최고의 성군 세종대왕이 창제한

인류가 사용하는 전 세계 7000여 개의 문자 중에서

유일하게 창제년도와 창제자가 밝혀진 유일한 유산

 

우리 민족 언어 한국어를 구사한다는 건 자긍심 고취

성역 같은 유산을 추악한 중국은 시기하고 폄훼

 

훈민정음은 중국어의 발음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훈민정음은 옛 한자를 베껴서 만들어졌다

별별 소리 다하며 빼앗으려 했지만

 

위대한 세종대왕은 후대 중국이 몹쓸 짓 벌일 것을

미리 아시고 한글을 빼앗기지 못하도록 세우신 방패

 

그것이 바로 한글의 창제과정이 들어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

해례본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한글의 창제에 대한 갖가지 구구한 추측이 난무했지만,

해례본이 발견됨으로써 한글이 어떤 원리를 바탕으로 해서,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가를 알 수 있게 되었지요

 

해례본이 발견된 시기는 1940년으로 당시 일본은 한국의 문화를 말살시키려고 악을 쓰던 시기.

 

한글 창제 원리가 들어 있는 해례본 존재가 일본에 발각되면 위험함을 알고

목숨을 걸고 해례본을 지킨 애국자가 있었지요

 

그가 바로 문화지킴이로 알려진 간송 전형필어른.

전형필은 문화지킴이이라는 칭호 그대로 24살 때,

오세창이 당시 전형필에게 이런 말을 했다네요

 

우리 조선은 꼭 독립되네, 동서고금에 문화수준이 높은 나라가

낮은 나라에 영원히 합병된 역사는 없고,

그것이 바로 문화의 힘이지. 그렇기 때문에 일제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의 문화 유산을 자기 나라로 가져가려고 하는 것일세.”

 

이 말에 감명받은 전형필은 마음을 굳게 먹고, 당시 일본으로 유출되는

서화·도자기·불상·석조물·서적 등을 닥치는 대로 수집해 자기 땅에 남기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네요.

 

전형필은 어떻게 훈민정음 해례본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까요?

1940년 훈민정음 해례본을 발견한 사람은 국문학자 김태준의 제자였던

이용준으로 자기 처가인 광산 김씨 종가 긍구당 서고에 보관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사실을 김태준에게 알려주었고 김태준은 이용준과 안동으로

내려가 해례본을 직접 확인한 김태준은 경악을 금치 못 했다네요

 

그들은 이 위대한 유산을 잘 보관할 수 있는 사람을 물색했고,

김태준은 당시 문화재 수집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던 전형필을 떠올렸다네요

 

전형필은 김태준에게서 해례본 이야기를 듣자마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즉시 그 자리에서 은행으로 달려가 11천 원을 찾아다 1천원은 김태준과

이용준에게 사례금으로 주고 1만 원은 해례본 값을 치렀다고 하지요.

 

그때 당시의 물가로 따지면 기와집 열 채 값에 해당되는 금액이었고,

현대의 물가로 환산하면 무려 30억 원에 해당되는 금액.

 

당시 전형필이 해례본의 가치를 얼마나 높게 봤는지 알 수 있는 일화지요

 

전형필은 이것을 사들이고 광복이 될 때까지 이 해례본의 존재를 철저히 숨겼지요

 

한국 문화를 철저히 말살시키려던 일제강점기 말에, 한글 창제 원리를 자세히 설명한

이 책이 드러났다면 큰 화를 당했을 것이 당연지사.

 

이후 전형필은 한국 전쟁이 발발했을 때도 피란갈 때 이 책을 먼저 챙겼고,

베개밑에 두고 잘 정도로 애지중지하였다네요

 

지금까지 해례본이 이어져 내려온 것은 그런 전형필의 노력의 덕이며,

1956년에는 이 소장본을 바탕으로 사진을 촬영하여 만든 영인본이 제작되지요.

 

전형필은 영인본 제작을 위해 소장본을 흔쾌히 내놓았고,

책을 한 장 한 장 해체하는 것까지 직접 했다네요

 

이후 해례본은 간송 미술관에 보관됐고, 그 사실이 알려지자 중국에서는

정부 인사를 파견까지 했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로 정세를 살폈다고 해요

 

현재 중국은 한글을 빼앗으려고 난리를 치고

훈민정음은 한자의 발음을 쉽게 표기함으로써 자음을 정립하여

중국어를 통일하는 것이 목적이다라는 헛소리를 해대며 발악.

 

해례본이 국보 70호로 지정되고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으로 지정된 이상,

국제사회와 한국은 중국의 추악함을 규탄하고 있지요

 

민족의 혼과 얼을 지키고 한국 고유 문화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전쟁 속에서도 목숨을 걸고 훈민정음 해례본을 지킨

간송 전형필선생님 앞에 경의의 예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