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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사람 69 / 남자가 아니잖아!

웃는곰 2025. 9. 26. 09:38

옆 사람 69 / 남자가 아니잖아! 

 

서울역 출발 169분 차 출발 10분 전.

내 옆자리에 청바지 상하의에 까만 운동모자를 쓴 젊은이가 급히 오더니

종이 백을 던지듯 툭 던져놓고 핸드폰을 귀에 댄 채

승강대유리문 밖으로 나갔다.

 

매우 급한 전화를 할 일이 있나 보다 생각하고 종이 백을 힐끔 보니

무엇인지 가득 들었다.

차 떠나기 10분 전에 나간 사람이 차가 떠나고

20분이 지난 영등포 역에서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 사람이 어떻게 된 거야?

입석표 승객이 와서 자리를 들여다보고 지나간다.

혹시 빈자리가 아닌가 해서다.

그럴 때 이 청년이 오지 않으니 안타까웠다.

종이 백을 놓고 어딜 간 거야?

 

차가 안양역을 지났을 때 새까만 모자에

하얀 영문자가 쓰여 있는 모자의 주인이 들어왔다.

그가 자리에 앉으려고 할 때 내가 고개를 들고

어딜 갔다가 이제…….”

하고 물으려다 상대의 눈과 마주쳤다.

예쁜 여자 눈이었다.

 

이 사람, 남자가 아니잖아?’

그래서 물었다.

남자요? 여자요?”

상대가 겸손히 인사 겸 대답했다.

죄송해요. 급한 전화가 있어서 밖에 나가서 전화를 하고 오느라고…….”

 

목소리도 얌전하고 맑고 갸름한 얼굴에 몇 개의 죽은깨가 있어

더 예쁘게 보이는 여자였다.

난 남자인 줄 알았습니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여자시군요. 어디까지 가시나요?”

평택까지 가요. 아이들이 거기서 기숙을 하고 있어서

몇 가지 가져다 줄 것이 있어서 가는 길이에요.”

 

서울 사시는군요.”

, 방배동에 살아요.”

거기 부자 동네지요?”

남들은 그렇게 말하지만.”

부자들은 책을 안 보지요?”

그렇지 않을 거예요.”

 

내가 가방에서 <개나리 울타리>를 꺼내어 내밀었다.

이런 책 보셨나요?”

못 본 책인데 휴대하기 좋게 작고 예쁘네요.”

모양만 예쁜 게 아닙니다. 독서 좋아하세요?”

. 저는 시간 날 때는 언제나 독서를 해요."

그러면서 자기 가방을 열었다.

"보실래요. 제 가방은 책이 주인이에요.”

그렇습니까? 내 책 받으시고 그 책도 보여주실래요?”

 

젊은 부인은 가방에서 스님이 쓴

명상록 을 내밀었다.

스님이 쓰신 책이네요. 불교신자신가요?”

 

아니에요. 전 기독교신자입니다.”

그런데 스님이 쓴 책을?”

이 책 저 책 읽다 보면 종교와는 상관없이 명상할 수 있는

수양서적이 손에 잡히더라고요.”

좋은 취미를 가지셨네요.

얼굴도 고우시지만 마음은 더 구우십니다.

제가 드린 책은 명상하고는 거리가 먼 세상 이야기입니다.”

 

부인은 울타리 목차를 들여다보더니 내가 쓴

발행인이 드리는 말씀을 차분히 읽고 나서 말했다.

이 발행자 말씀이 옳아요.

우리나라는 스마트 폰 때문에 사람들이 책을 안 읽어요.

지금은 이런 분도 있어야 해요.”

 

이렇게 몇 마디 하는 사이 10분이 지나고 나는 수원서 내리고

젊은 부인은 평택으로 향했다.

무슨 이야기든 더 나누고 싶었지만 야속한 시간이 허락지 않았다.

 

인상 좋은 예쁜 부인이 인사를 얌전하게 했다.

나는 인사를 받고 차에서 내려 돌아오며 생각했다.

부인이 이런 분도 있어야 해요하는 한 마디.

! 얼마나 감격스럽고 소중한 소린가.

 

나는 그 자리에서

내가 그 머리말을 쓴 발행인이요하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그러면 그분은 나한테 실망하여 감정이 상할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어서였다.

이런 글을 쓴 사람이 겨우 이렇게밖에 안 돼?’

하고 실망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독자는 글 쓴 사람을 몰라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평소에 해 왔다.

글로 보면 작가가 매우 훌륭한 인물로 존경됐는데

작가의 실상과 행동거지나 외모를 보고 실망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글 쓰는 사람은 삶이 바로 그 글이 되어야 한다.

인간성이 개 같은 인물이 입만 열면 남보고 인간이 먼저 되라

어쭙잖은 충고를 하는 사람을 보아서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