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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야기 1 / 우렁이 각시

웃는곰 2025. 4. 1. 19:36

엄마 이야기 1 / 우렁이 각시

 

내가 8,9살 때 우리 엄마는 28세 새댁이었다. 지금은 28세라면 팔팔한 아가씨다. 추억마저 아득한 옛날.

등잔불도 끄고 캄캄한 밤에 잠이 안 오면 엄마 곁에 누워 옛날얘기 해줘하면 밤마다 들려주시던 엄마 이야기는 우렁이 각시 이야기, 박국새 이야기, 밥보 각시, 결혼 첫날밤 부부, 외다리 장군, 옥례야 옥례야 등, 내가 잠들 때까지 들려주신 이야기가 날마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 들어도 재미있었다.

엄마 생각하며 그 이야기들을 쓰고 싶어졌다. 여기서 누군가가 읽어준다면 나는 행복할 거다. 혹시 들어본 이야기일 수도 있다. 우리 엄마만 아는 이야기는 아니었을 테니까

 

1. 우렁이각시 이야기

옛날 옛날에 아주 깊은 산속에 총각 농부가 살았답니다.

7월 더위에도 산에서 나무를 해서 지고 논둑길을 걷다가 물고에 못 보던 커다란 우렁이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아니! 웬 우렁이가 이렇게 크고 예쁜 개 있을까?”

농부는 우렁이가 크고 예뻐서 잡아가지고 집으로 와 물동이에 넣어주며 말했습니다.

 

우렁아, 좁지만 이 물동이 속에서 나하고 같이 살자. 내가 먹이도 넣어줄게.”

그리고 우렁이를 사랑스럽게 들여다보았습니다. 물동이 속의 우렁이는 옥빛으로 환하게 빛났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갔다가 돌아와 보니 아무도 없는 집인데 누가 맛있는 점심상을 잘 차려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 이게 뭐야? 누가 왔다 갔나? 시집간 누나가 왔다 갔나?”

그러면서 맛있게 밥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나무를 하러 갔다가 돌아와 보니 또 누가 차려놓았는지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고맙게 생각하며 배가 불룩하도록 잘 먹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이튿날은 장날이라 지게에 땔나무를 지고 장터로 나가니 많은 사람들이 전에 없이 달려들어 좋은 값으로 나무를 사주었습니다. 우렁이가 온 뒤로는 나무장사가 잘되었습니다.

 

그 날도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와 보니 또 밥상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이상하게도 날이 갈수록 더 맛있는 상을 차려놓아 몸이 튼튼해지고 나무를 해도 잘되었습니다.

 

날마다 잘 먹고 낮에는 산으로 가서 나무를 했습니다. 언제나 돌아와 보면 맛있는 밥상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나무를 해서 팔다 보니 여름이 가고 가을이 되었습니다. 산에는 단풍이 곱게 들었습니다. 총각은 예쁜 단풍잎을 하나 따다가 물동이에 넣어주며 말했습니다.

우렁아, 어느새 여름도 가고 가을이 왔다. 산에 단풍이 곱게 물들었어. 아주 예쁜 단풍이 있어서 너 주려고 하나 따 왔다. 볼래?”

 

그리고 며칠이 지났습니다. 날마다 누가 밥상을 차려놓는지 궁금해진 총각농부는 나무를 하러 가다가 돌아와 숨어서 집안을 지켜보았습니다.

놀랍게도 물동이에서 선녀같이 예쁜 아가씨가 나오더니 어디서 났는지 맛있는 반찬을 차리고 솥에서 밥을 펐습니다. 밥을 푸는 가냘픈 허리가 얼마나 곱고 예쁘던지 참지 못하고 달려들어 끌어안았습니다.

아기씨!”

깜짝 놀란 아가씨는 슬픈 얼굴로 돌아보며 대답했습니다.

서방님 왜 이러셔요.”

아기씨 너무 예쁘고 고맙고…….”

서방님, 오늘 하루만 더 참으시면 되는데…….”

그러면서 눈물을 주르르 흘렸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오늘이 천년 되는 마지막 날이어요. 저는 오늘만 넘기면 사람이 되어 서방님을 모실 수 있었는데 그만…….”

아니! 그럴 수가!”

 

저는 천년 동안 이 산골에서 우렁이로 지내면서 동네 농부들의 눈을 피해 왔어요. 그렇게 살면서 동네 총각들 가운데 가장 부지런하고 성실한 분을 찾았어요. 서방님이 가장 성실하고 착하여 서방님의 아내가 되고 싶어 서방님 눈에 띄게 하여 저를 여기까지 데리고 오게 했어요. 오늘이 천년 마지막 999일째 날이라 하루만 넘기면 사람이 될 수 있었는데 그만…….”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나하고 삽시다.”

 

안 되어요. 저는 도로 우렁이로 돌아가야 해요. 제가 우렁이가 되거든 3일 안에 강가로 가서 저를 보내 주세요. 그래야 다시 우렁이가 되어 살 수 있어요. 이대로 3일이 지나면 저는 죽어요.”

그러면서 아가씨는 물동이 속으로 들어가 우렁이가 되었습니다. 총각 어부는 그만 물속의 우렁이를 들여다보고 탄식을 하며 울다가 물동이 옆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총각농부는 꿈에 붕어가 되어 우렁이와 재미있게 놀다가 사흘째 되는 날 잠에서 깼습니다. 그리고 3일째 되는 밤 꿈에 우렁이가 말했습니다.

저를 꼭 강물에 놓아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저는 죽어요.”

그래도, 아씨…….”

농부는 아가씨의 소원대로 울면서 우렁이를 안고 십리나 되는 강가로 가면서 동그란 볼을 비비며 말했습니다.

우렁아씨, 오래 오래 살아요.”

총각농부는 도려내는 듯 아픈 가슴에 우렁이를 품었다가 강물에 곱게 띄워주었습니다. 그리고 물결 따라 흘러가는 우렁이를 따라 한없이 가며 외쳤습니다.

우렁아씨, 나도 같이 가요.”

총각농부는 그대로 깊은 강물에 뛰어들어 우렁이 뒤를 따라 파도를 타고 흘러갔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어린 나는 가슴에 무엇인가 잃어버린 아쉬움을 품고 꿈나라로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