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 23 / 작은 고추가 더 맵다
속담에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도 있지만
꽃들 중에는 작은 꽃이 더 예쁜 꽃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
사람들은 나무에 달린 꽃만 꽃으로 보고 풀꽃은 무시하고 있어.
나는 산 속 오솔길을 호젓하게 걷다가 꽃보다 예쁜 아가씨를 보았어.
실버들같이 가냘픈 허리에 빨간 끈으로 머리를 질끈 매고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숲을 헤집는 아가씨였어.
신기해서 다가가 물었어.
“아가씨 뭘 찾으세요?”
별빛 눈에 장미처럼 예쁜 천사가 올려다보며 대답했어.
“꽃을 찾아요.”
내가 꽃으로 뒤덮인 산을 가리키며 말했어.
“저기 진달래 개나리 산수유가 지천인데 왜 풀숲을 뒤져요?”
아가씨가 물소리같이 맑은 소리로 대답했어.

“사람들은 나무에 달린 큰 꽃들만 좋아하고
수풀 속에 피어 있는 별꽃들은 무시해요,”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사람들이 큰 꽃들한테는 이름도 지어 주지만
풀숲에 피러 있는 작은 꽃들한테는 이름도 지어주지 않아요.”
“그러네요.”
아가씨가 웃으며 말했어.
“저는 이렇게 작은 풀꽃들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이름도 지어 주어요.”
“참 좋은 생각을 하시네요.”
“지금 찍은 꽃 이름은 무엇인가요?”
“노을이에요.”
“왜 노을이지요?”
“이 애는 꽃잎이 노을빛이라…….”
그러면서 이 잡듯이(1950년대 이가 많아 옷 슬기에 숨은 이를 잡을 때 하던 말)
풀을 조심스럽게 헤쳤어.
“왜 그렇게 조심스럽게 헤치시나요?”
“아주 작은 꽃은 살짝만 잘못 건드리면 다쳐요.”

“놀랍네요. 풀꽃을 그렇게 사랑하시는군요.”
“네, 오늘은 여기서 그만 하고 화성 바닷가로 가려고 해요.”
그리고 자리를 떠나 산 아래 버스 정거장으로 가면서 인사했어.
“안녕히 가세요.”
나는 아가씨가 차타고 가는 것을 보다가 보도블록과
벽 사이에 돋아난 새싹들을 발견했어.
“너희는 어쩌자고 사람들 다니는 보도블록 틈에서 돋났니? 이름은?”
가만히 들여다보니 여러 종류의 풀들이
비좁은 틈에서 얼굴을 내밀었어.
어떤 것은 잎이 납작한 것도 있고 뾰족한 것도 있고,
발길에 잎이 찢어진 것, 오물이 묻은 잎사귀를 들쓰고 있는 것,
작은 어깨에 꽃까지 피워 들고 있는 것, 일개미하고 씨름하는 것.
나는 풀숲에 피는 꽃을 찾아다니는 아가씨만큼이나
도로변 시멘트 벽 사이, 블록 틈에 돋은 생명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피기 시작했어.

저 작은 풀들이 한 여름 위험을 무릅쓰고
이사도 못 가고 불쌍하게 살다 죽는 것.
사람도 어떤 사람은 부유하게 살다 죽고
어떤 사람은 가난하게 살다가 죽는 것.
기름진 땅에 돋아 기름이 야들하게 흐르는 풀이나
돌 틈에 태어나 초라한 꼴로 살다 죽는
풀이나 무엇이 다를까 생각했어.
그래서 작은 틈바구니에 핀 풀들을 사랑해 주기로 했어.
화려한 벚꽃이 이렇게 보도블록에 버려진 것과
그 틈바구니에 돋은 이 생명들 사진을 봐.
작은 고추가 더 맵다는 말과 작은 꽃이 더 예쁘다는 뜻은
무엇이든 왜소하게 보인다고 약한 것이 아니라
약하게 보이지만 실력은 매우 강하다는 뜻이 아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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